포항사람의 포항이야기 | 포항시 승격 70년 특별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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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승격70년 특별다큐 "포항사람의 포항이야기"
바닷가 작은 마을 포항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
열정 바쳐 경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도전과 극복이 만들어낸 진짜 삶의 현장!
당신의 기억 속 포항은 어떤 모습인가요?
포항 사람이 들려주는 진짜 포항 이야기.
#포항시 #포항역사 #포항여행

Пікірлер: 20
@wxxixlxx2283
@wxxixlxx2283 Жыл бұрын
포항에서 35년 살면서 당연하게 느꼇던 모습들이 이젠 자부심과 긍지로 느껴집니다. 이런 도시에서 살게되어서, 살수 있어서 감사함 또한 느낍니다. 시민 여러분 파이팅합시다
@카짱-f7f
@카짱-f7f Жыл бұрын
지반이 약하여 높은 건물은 타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나 옛 포항의 모습과 현재 발전된 포항의 모습은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절 땀 흘리고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박흑랑
@박흑랑 3 жыл бұрын
와 포항 시민이면 이정도 영상은 보고 가는 게 좋은 것 같네요 저도 곧 포항 시민이 되겠습니다 포항 인구가 50만 이하로 떨어지면 난 자신도 무너진다^^
@김형식-m6r
@김형식-m6r 5 ай бұрын
내 고향 죽도시장 이제는 하나같이 떠나갔지만 눈이 시리도록 그립습니다 죽도 김형식 ᆢ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죽도 명칭 유래 1. 갈대 밭 → 갈대 섬 2. 말을 줄여서 → 대섬 3. 대섬을 한자로 하여 →> 대죽 : 竹 섬도 : 島 4. 그리하여 "죽도"
@chloro8421
@chloro8421 6 ай бұрын
사방 기념공원 우습게 봤었는데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이 수고하셨군요.
@yijung4561
@yijung4561 3 жыл бұрын
포항 MBC 개국 기념일(1972년 4월 10일 ?) 난 보도부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울산 mbc에서 4년간 근무하던중 포항으로 간것이다 4년간 근무중에 "전가족 미국이민"을 결정하여 미국으로 왔으며 지금까지(85세) (켈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에 살고있다 오랜새월 여기 살고있으나 그때의 기억을 어찌 잊으리요 함깨 근무했던 동료들 (최창식 사장, 이기수총무부장등) 모두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누가 좀 알여줬으면 합니다
@jaedonyoon6164
@jaedonyoon6164 3 жыл бұрын
포항MBC는 1971년에 개국 했습니다. 울산MBC는 1968년 4월 10일 개국
@카짱-f7f
@카짱-f7f Жыл бұрын
저는 40대 중반이지만 포항에서 태어나 20년동안 자랐지요. 한국과 포항이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건강하세요
@전북현대최하위추락
@전북현대최하위추락 4 жыл бұрын
옛날때라서 기억이 안나네요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부산 남포동 명칭 일제 강점기에 매립된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 있던 해안. [명칭 유래] 남포(南浦)는 일제 강점기 때의 남빈(南濱) 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본래 남포 해안은 주먹만 한 크기의 옥돌 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 매립되기 전까지 자갈이 많다고 ‘자갈치’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도 자갈치 시장이 있어 잘 알려진 지명이다. 부산항은 북항 제1부두 가 매축 건설되기 전에는 부산포였는데 부두가 건설되며 북빈(北濱)으로 불렸고, 남항의 내만 지역은 남빈(南濱)으로 구분되어 불렸다.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바꾸며 남빈을 남포로 개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남포는 본래 보수천이 유입하는 일대로 부산포로 불렸다. 1902년 7월 일제에 의해 북빈매축공사(北濱埋築工事)가 이루어지며 북빈(北濱)과 남빈(南濱)으로 구분되었다. 남빈(南濱)은 본래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이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조업하는 소형 어선이 정박하는 포구 였다. 북빈매축공사 이후 자갈 해안은 남빈 해수욕장 으로 이용되었다. 1926년 북빈매축공사가 완공되며 현재의 자갈치 해안을 중심으로 바다를 매축하는 남빈 매축 공사 (南濱埋築工事)가 시작 되어 1938년까지 약 12년간에 걸쳐 대규모 매축공사가 진행되었다. 대대적인 매축 공사 이후에는 도시화가 진전되어 일본식 가로인 이른바 남빈정(南濱町) 으로 되었다가,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남빈은 우리나라 고유의 한자식 지명인 “남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관련 기록] 자갈치 일대의 매축을 알리는 기념비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이 지역은 1928년까지 바다였으며, 남항 일대를 완전 항만으로 삼으며 하양장 설비를 갖추기 위해 부산축항합자회사 에서 충무동, 남부민동, 남포동 일대를 메워 항만과 시가지를 건설하였다. 매축 면적 26만 238제곱미터, 매축 기간 1931년부터 1940년. 매축 범위 충무동, 남부민동, 남포동 일대.”
@양복란-n1t
@양복란-n1t 3 жыл бұрын
아주휼륭한포항자랑스러워요사랑해요내고향더욱발전하시기를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 참고 부산 남포동(南浦洞)은 1931년 시작된 남빈(南濱) 매축공사로 대규모 토지가 조성되며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6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부산의 도심으로 성장하며 상업 및 업무 기능이 집중함에 따라 주거 인구는 줄어든 반면 유동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 상업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행정동으로 남포동 1개가 있다. [명칭 유래] 남포는 남빈(南濱)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남빈은 일본인들이 붙인 명칭 으로 바닷가의 용미산(龍尾山) [현재는 착평 공사로 사라지고 없음]을 기준으로 남쪽 해안 이라는 의미이다. 이후 이 지역에 시가지가 형성되며 남빈정(南濱町) 이 되었고, 광복 이후 영도의 남항동과 구별하여 남포동으로 개칭되었다. [형성 및 변천] 남포동은 본래 부산포의 일부로 "자갈 해안"이 발달해 있어 "자갈치"로 불리던 지역이다. 일본인들이 바닷가의 용미산을 기준으로 남쪽의 자갈치 지역은 남빈(南濱), 북쪽은 북빈(北濱)으로 불렀다. 1931년 시작된 남빈 매축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곳은 전관 거류지의 일본인이 이용하는 남빈 해수욕장 이었고, 대대적인 매축 공사 이후 시가지가 확대되며 용두산 아래 바닷가였던 지역과 매축 공사를 한 지역이 부산부 (釜山府) 남빈정(南濱町) 1·2·3 정목이 되었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한국식 동명으로 변경하며 남빈정 1·2·3정목이 남포동 1·2·3가로 개칭되었다. 1949년 부제(府制)가 폐지되고, 부산시(市)로 승격하였고, 1951년 중부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57년 구제(區制) 실시 에 따라 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 하였으며, 1982년 대교동 3가와 동광동 1가가 남포동에 편입되었고, 충무동 1·2·3가가 남포동 4·5·6가로 개편되어 남포동 1·2·3·4·5·6가가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1·2·3·4·5·6가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포항, 일제시대 지어진 "지명" 언제까지 사용하나 ? 향토사가 하억찬 (포항 일월향 문화진흥원장)은 포항의 마을 명칭(동명/ 洞名)에서 특이하게 나타난 동빈(東濱/東浜)과 남빈(南浜/ 南濱)에 대한 의문에서 일제식 지명의 표현임을 알아내고 다른 지역과 다르게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나타내어 동명(洞名)변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제 강점기때 영일만은 풍부한 어족 자원은 일본어민의 포항 진출을 활발하게 하였고 포항으로 밀려드는 일본어선과 거류민의 증가로 인해 선박의 안전과 수출입이 가능한 항구와 거류민 지역의 확대가 필요하였다. 지금의 동빈내항(東浜内港)은 원래 형산강 하구지역으로 1910년대부터 일제는 형산강 방사제 공사를 시작으로 형산강 하구지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빈항(東浜港)이 건설되었다. 또한 늘어나는 일본 거류민의 정착과 관공서 및 산업시설확장을 위해 칠성강변을 매립하여 남빈정(南浜町)으로 칭하였다. 여기서 빈(賓)이란 지명은 일본식 명칭으로 항구/바닷가를 의미하고, 정(町)은 일본에서는 '동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포항시에서는 1945년 광복 후 일본식 동명과 거리명을 한자식으로 개편하였으나 동빈(東浜)과 남빈(南浜)에 대해서는 이것이 새롭게 만들어진 단순한 지역명으로 생각해서 인지 변경하지 않았다. 지금의 '포항시'도 1917년 '지정면'으로 승격하면서 일본식 지명인 초음정(初音町), 영정(榮町), 명치정(明治町), 소화정(昭和町), 신흥정(新興町), 본정(本町), 욱정(旭町), 중정(仲町), 남빈정(南濱町), 동빈정(東賓町) 1~2 정목(町目) 등의 11개 구역으로 분할되었다, 광복 후에는 덕산동, 신흥동, 덕수동, 여천동, 중앙동 등으로 대부분 변경 되었으나 동빈과 남빈은 일본식 명칭이 그대로 남아 현재까지 포항의 공식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식 지명에 관하여 논하자면 1) 부산에서는 일제 때 부산항 해안을 매축 (매립)과정에서 북빈, 동빈, 남빈의 항구 명칭이 생겼으나,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동빈(東浜)은 동항(東港), 서빈(西浜)은 서항(西港)으로 개편되고, 남빈은 부산 영도의 남항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자식 지명인 남포동(南浦洞)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또한, 마산지역도 1908년 일본이 현재 창포동 일대의 각국 거류지에 설치된 일본인 마을을 빈정(濱町) 이라는 지명을 광복 후 1946년 창포(昌浦)동 으로 변경했다.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浜・濱・濵」물가 "빈" 「浜、濱」の異体字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향토사가(郷土史家)인 하억찬 포항 문화원장은 "포항시도 동명 명칭의 문제는 빈(賓)이란 명칭을 일본식 표현이라고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광복 후 일본 제국주의식 명칭을 바로 고치지 못함과 동시에 후손들이 포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반성하고, 광복 77주년 지난 지금이라도 뜻깊은 3.1절 104주년을 앞두고 100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일본이 남겨준 어두운 과거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행정구역의 명칭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통 을 담은 특성을 살리고 정체성을 담아야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시민의견 수렴과 홍보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의 광복은 정치적 해방일뿐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해방을 뜻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성명처럼 지명이란 땅의 변화와 역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일제시기에 침략의 결과로 만들어진 지명을 창씨개명된 이름을 원래의 이름으로 바꾸듯이 땅이름 역시 우리의 이름으로 바꿀 때가 진정한 독립이라 할 수 있다. 땅의 이름이 일본식 명칭으로 존재하는 한 그것은 일본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였다는 흔적을 남겨 놓을 뿐 만 아니라 그것을 고치지 않고 있는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광복 후 바로 지명 변경을 하지 못한 우리 포항지역 의 지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동안 인식하지 못하고 고치지 못한 우리에게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이 기회를 통해 바로 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결코 일본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알고도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은 막아야 할 것이다. * 인천의 경우 築峴町 →築峴洞 쌓다 축 재고개 현 마을 동 축현 또한 일제식 표현 * 여의도 "윤중로" 거리도 일본식 표현
@Ilikepeoplewholikeme
@Ilikepeoplewholikeme 2 ай бұрын
1. 영일군 영일군(迎日郡)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연일군,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을 통합해서 설치되었고 1995년 1월 1일부로 포항시와 통합되어 사라진 경상북도의 폐지된 행정구역이다. 2. 역사 1914년 연일군,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을 영일군으로 통합하고 1906년 장기군으로 편입된 양북면과 양남면을 경주군으로 환원 1917년 포항면 일부를 형산면으로 분리 1931년 포항면이 포항읍으로 승격 1934년 죽북면과 죽남면을 죽장면으로 통합하고 장기면과 봉산면을 지행면으로 통합 1938년 형산면 포항읍으로 재편입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 1949년 8월 14일 포항읍을 포항부로 승격 * 1949. 8.15 시 명칭 1956년 흥해면과 곡강면을 의창면으로 통합 1957년 달전면이 의창면과 연일면에 분할 편입 1973년 의창면이 의창읍으로 승격 1980년 연일면이 연일읍으로 승격하고 오천면이 오천읍으로 승격 1983년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 1986년 기계면 기북출장소가 기북면으로 구룡포읍의 대보출장소가 대보면으로 분리 1991년 지행면을 장기면으로 환원 1995년 도농복합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항시와 통합
@SiYeongo
@SiYeongo 3 жыл бұрын
광고가 너무 많습니다….다큐면 편하게 보게 해주세요
@thk8895
@thk8895 4 жыл бұрын
어휴... 해병대 얘기가 넘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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