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처음 하이데거를 접하고 억지로 낑낑대면서 띄엄띄엄 읽다가 세계-내-존재의 공간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그 안경이라는 도구는 코위에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환경세계적으로는 벽에 걸린 그림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기막힌 표현의 예시를 보며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는데, 아, 이 사람은 물리적이고 기하학적인 세계가 아니라 뭔가 우리가 살면서 실제로 느끼는 세계를 그려내려고 시도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 더울때 천식이라는 병을 얻어 방에 누웠는데 평소 편안했던 공간이, 결코 협소하지 않았던 장소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고 사방의 벽이 죄여오고 천장이 낮아지며 압박하는 느낌이 들어 심신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방이라는 공간은 제게, 데카르트가 말하는 연장적인 입방체로 나의 몸과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정한 볼륨을 지닌 구조물이 아니라, 방의 내부 전체가 나의 신체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활동하는 에너지였습니다. 이부자리도 예전의 이부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방바닥과 이부자리의 딱딱함과 푹신함의 정도는 몸과 일체가 되어 특정한 느낌을 발생시키는 활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본능적으로 특정한 자세를 취하고 명상상태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물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충동이 생겨서 스마트폰으로 빗소리를 찾아서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몸이 좀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병원처방과 함께 그렇게 여러가지 종류의 빗소리를 찾아 들으며 하루 2시간 정도 밖에 못자는 일주일을 버텼습니다. 나중에 그 메카니즘을 오행五行적으로 재구해보니까 폐는 金기운인데 제가 근 몇년을 먹는 것이나 정신적으로 스스로 火에 치여서 살아가지고 상극원리에 따라 火가 金을 심하게 침해해서 병이 중해졌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으로 빗소리를 들으면서 水氣가 火氣를 눌러서 폐가 일시적으로 편해졌을 거라 추측합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출장 갖다오시면 항상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얇은 잡지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출장가방에 간혹 들어있던 간식거리와 더불어 다양한 읽을 거리가 가득한 그 보물을 한번씩 안사가지고 오시면 크게 실망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탁월한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근사한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완성했는데 마지막에 대문에서 현관까지 깔아야할 바닥돌을 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깔지 않냐고 물었지만 답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미완의 상태로 입주했는데 몇달이 지나고 그 건축가가 나타나서 디딤돌을 이제 깔때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잔디마당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밟고 다닌 길이 생겼고, 건축가는 그 길을 따라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당시 이 이야기에 엄청나게 감탄했고 그 감동은 아직까지 제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기능에 따라 형태가 자연스레 따르는 디자인이 좋은 것이라는 기준 같은 것을 제게 안겨준 에피소드 입니다. 풍경 좋은 위치에 있는 좋은 아파트에 가보면 온통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놓은 경우가 많은데 데코타일이나 장판보다 확실히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비싼 돈으로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난감합니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해서 인체는 발이 따듯해야 생리가 원활하게 작동하는데, 불쾌한 냉기에 계속 발바닥을 닿게 하는 짓을 돈 들여서 왜 하는 것일까요? 거실에서도 신발을 신고 사는 서양식 생활방식에는 상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맨발로 좌식생활을 하는 한국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 실내화는 불편한 땜방 입니다. 체질적으로 부교감신경긴장형 체질은 속체온이 높아서 그것을 밖으로 발산해야 하기 때문에 탁 트인 곳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교감신경긴장형 체질은 속체온이 낮아서 그것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하기 때문에 아늑한 곳을 좋아한다고 경향이 있습니다. 건축도 의학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차이성에 부합하는 맞춤건축으로 가는게 최종적으로 바람직하겠지만, 인체의 건강한 보편성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주어진 공간을 몸과 상호 순응시키는 삶의 지혜는 포기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근자에 풍수적 미신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덜 떨어진 작자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개소리를 시전하였는데, 삶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이뤄지는 것이며 우리나라에 횡행하는 미신으로서 사주四柱에는 공간이 빠져 있고 풍수風水에는 시간이 빠져 있어서 온전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TV-uw9lz2 жыл бұрын
굿모닝입니다. 무향님^^ 역시 좋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즐겁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구요!
@심형준-m6s2 жыл бұрын
예도 선생님 강의는 구수하고 정겨워요. 그리고 철학 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합니다.
@TV-uw9lz2 жыл бұрын
굿모닝입니다. 형준님^^ 방갑구요. 건강한 주말 보내셔요!
@seongwono62692 жыл бұрын
시간이란 다음으로 공간이란 너무 좋습니다ㅎㅎ
@TV-uw9lz2 жыл бұрын
네, 방갑습니다. 성원님^^ 앞으로 철학을 중화시켜서 삶에 적용시키는 강좌들을 종종 할꺼예요. 예도TV 재생목록에 "예도철학 / 삶이란?"이 있어요. 이 목록에 25강이 있으니 참조하셔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taejukim2 жыл бұрын
선생님과 함께 하는 공부는 좋아요!! 듣고 싶은 강의가 산더미지만 앞으로의 강의들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시간과 공간에대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는데 많이 도움이 된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TV-uw9lz2 жыл бұрын
네, 오랜만에 뵙네요. 방갑습니다. 태주군^^ 늘 건강하시고 미국에서의 공부도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시간과 공간이 인간을 절대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부분은 영향을 줄수도 있겠죠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달라서 기분이 상하거나 하겠지만 타인의 생각도 존중하는 저 자신이 앞으로는 되길 바라며 반성합니다 부처님도 일체유심조라고 하지만 마음의 중요성을 말한것이지 환경의 중요성을 모두 무시한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도 성격이 타협이 없는 스타일인데 조금은 유연하고 경청하는 인간형이길 바랍니다 강의 고맙습니다 10분 남았는데 끝까지 듣겠습니다.비가 내려서 산불이 꺼지길.
@TV-uw9lz2 жыл бұрын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용식님을 보면 정말 고향 생각이 납니다. 예천 지보, 봉화 봉성, 감천 유동 등등이 저희 아부지가 목회하셨던 곳입니다. 유동은 장수와 정말 가깝지요. 아부지 돌아가시고 저지난해 여름에도 갔었는데 용식님이 그곳에 사신다니 새롭게 다가옵니다. 평안한 저녁 맞이하셔요!
@howardlee24862 жыл бұрын
빛은 진량이 있어요
@archineuron2 жыл бұрын
건축판에 있으면 말 가지고 사람들 현혹하려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저도 좀 불편하게 느낄 때가 많더군요. 저도 건축은 사용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고시원에서는 집중과 몰입이 잘되니 고시원 살고 있습니다. 창의력이 필요할때는 근처 공원가면 그만이구요. 사용자가 어떤 공간을 원한다고 할때는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에게 맞지 않는 공간이면 '이 공간이 사용자에게 안 좋은 공간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게 아닌 사람간의 차이를 가지고 함부로 더 좋은 공간에 대한 비교우위를 두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건축에 인문학의 부제가 좀 있습니다... 가끔 이부분이 뼈아프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신경건축을 공부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좀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공간을 말할때 최소단위가 주관적인 기억 입니다. 이런 주관적인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회로는 어느정도 파악이 된 상태인데 이런 것들을 수치화해서 측정하는 것은 아직까지 매우 어렵습니다. 기억, 감정, 느낌, 마음, 재인, 욕구, 정동, 인지, 지각 등등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측정이 어려워 겉으로 들어나는 몇가지 검사 기법가지고 하고 판단합니다.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서들이나 설문, 문제 풀이 실험, 뇌파 가지고 통계 낸다음 어느 정도 맞춰 주는게 고작입니다.
@TV-uw9lz2 жыл бұрын
옵스~ 아키뉴런님, 그쪽 전공자셨군요. 신경건축, 아주 멋집니다. 비판적 사유 아주 좋습니다! 따스한 봄공기 만끽하며 멋진 하루 보내셔요!
@archineuron2 жыл бұрын
@@TV-uw9lz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는거라 미흡한점이 좀 있습니다.^^ 예도님도 멋진 하루 보내세요~^^
@TheSeokmin2 жыл бұрын
제가 예도샘을 존경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허례허식에 빠져있는 학자들과는 참으로 다르다고 느껴서 입니다. 대부분의 제가 만난 교수님이나 학자들은 공부 좀 했답시고(?) 본인이 최고 전문가라고 폼만 잡고요... 진정한 학자들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유명세(!)를 경계하는 법이지요... 내 공부 할 시간도 없는 짧은 인생이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처음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실 무렵.. 배낭을 메시고 걸으시며 철학을 논하시는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소탈한 모습으로 내공이 어마어마한 강의를 하셔서요.. :) 오늘도 깊이 공감이 되고, 너무너무 재밌고 신나는(?) 강의 감사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츄으~~쓰!!!!!! * 제 공간을 사랑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
@TV-uw9lz2 жыл бұрын
석쌤, 존경은 아무나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선생들은 어디에나 있겠지요. 누구든 학생도 될 수 있고 선생도 될 수 있겠지요.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전부 아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앞으로는 강좌하는 사람에 대한 글보다는 강좌 내용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써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셔요!
@TheSeokmin2 жыл бұрын
@@TV-uw9lz 예도샘이 어떻게 ‘아무나’라고 칭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에도 서양철학을 공부하시는 선생님들이 좀 계신데.. 한분을 제외하곤 예도샘처럼 어려운 서양철학을 쉽게 풀어서 해설해주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겉치레만 요란한 철학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관심이 멀어졌었던 서양철학.. 예도샘의 강의 덕분에 다시 철학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샘에 대한 찬양(?)을 줄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