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그가 그일 때까지
(옛적에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지구는 가만히 있는데 태양과 달과 별이 돈다고 믿었다.
여기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처음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갈릴레이까지 나서자
교황청은 긴장을 했다.
회유하고 겁박하고,
결국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지동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다.
태양이 은하계를 도는 것이다.
은하계가 은하단을 도는 것이다.
은하단이 대우주의 중심을 도는 것이다.
만일 천동설이 맞다면,
현대과학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구가 가만히 있는데 태양이 지구를 돈다면,
대체 태양은 얼마만한 속도로 돌아야 하는가.
지구가 가만히 있는데
은하계, 은하단, 대우주가 지구를 돈다면,
대체 저들은 얼마만한 속도라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빛의 속도라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에 수백억 광년을 달려야 할 것이다.
차라리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좋겠다.
지구는
하루에 몇 백만 킬로미터만 가면 될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지동설을 의심해 볼 수는 없겠는가.
옛적 천동설이 의심의 여지가 없던 통설이었을 때
여기에 의심을 가졌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처럼 말이다.
지동설을
불변의 진리로 알고 있는 현대과학에
의심을 제기해볼 수는 없겠는가.
명상에 들면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세상에
딱히 중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중심과 주변이 없다.
모두가 중심이다.
누구나 중심이다.
마야는 당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를테면 당신은 바퀴의 축이다.
바퀴가 수천수만 번을 돌아도
그 축은 그대로다.
단 한 번도 돌아본 일이 없다.
당신의 자리는 순진무구한 자리다.
청명한 자리다.
한 점 티끌도 없는 자리다.
바로 공(空)이다.
현대과학에 의하더라도
우주의 중심은 없다고 하지 않은가.
우주의 중심이 없다면,
모두는 서로를 돈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지구를 도는 것이다.
아니다.
지구는 돌지 않는다.
태양만 지구를 돈다.
당신이 지구와 태양을 함께 놓으니
지구와 태양이 서로를 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구에 있으며,
지구가 중심이라면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다.
‘태양이 중심이라면’이라는
가정은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확대되어 태양까지 당신이 된다면
역시 태양계가 중심이 된다.
어느 무엇도 돌지 않는다.
은하계와 은하단 그리고 대우주가
태양계를 도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은하계로, 은하단으로, 대우주로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모두가 하나다.
모두가 중심이다.
모두는 돌지 않는다.
우리는 공(空)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마야다.
마야는 춤이다.
처음도 끝도 없는 춤판이다.
춤판에서는 오직 흥겨움만 있다.
당신의 사연은 계속된다.
당신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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