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저때가 정말 재밌었지요 저때는 국내배구도 하루 두게임씩 했었는데 그 두게임 다 보고 갈정도로 재밌었는데 ...
@cascade21412 жыл бұрын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최강의 레전드 라인업이네요. 김호철 감독의 토스는 정말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네요.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호철을 능가하는 세터가 나오지 못하는게 참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남배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서 이때처럼 수준 높은 경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유니폼도 세련되어서 전혀 40년전 같아 보이지가 않네요.
@ppark-h6x Жыл бұрын
이후에 신영철 세터가 잘했었죠.
@junozard Жыл бұрын
@@ppark-h6x 신영철 세터 시절도 제2의 전성기였죠...
@henry-kb1yj Жыл бұрын
그렇죠...강만수...김호철...👍
@핵탄두-r4u13 күн бұрын
최태웅이잇다
@코크-n3h12 күн бұрын
김호철은 이탈리아팀에 스카웃되어 갔죠 그때 당시 한때 세계 1위 2위를 다툴정도 였다고 하더군요
@라온하루-k5p2 жыл бұрын
우와~ 감격의 그 인물들...... ^^ 국내 최고 거포 강만수, 럭키금성의 강두태, 고려증권에 장윤창등 막강 거포 공격 트리오, 세계 최고의 단신 세터 김호철, 빠른 속공의 대명사 문용관, 대표팀 최장신 블로커 막내 이종경 정말 환상의 멤버들이네요.
@양성욱-h9c2 жыл бұрын
배구천재 노진수가 강만수 대각이었어요.
@잡초-d9p2 жыл бұрын
럭키금성이 아니라 금성사입니다.
@다이겨우즈-v9i2 жыл бұрын
역대 최고 멤버
@이영하-g6p2 жыл бұрын
강만수 김호철 강두태 장윤창 은 당시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 이었습니다
@seo81042 жыл бұрын
여기에 잠깐 보였던 정의탁이 전성기 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봄이-z7k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잊을수 없는것이 마치 코드가 왜이리 작아졌지 라고 느낄만큼 선수 한분 한분 존재감이 충만했음 오관영 해설도 수준높음
@형석김-d1f2 жыл бұрын
추억의 멤버. 강만수 강두태는 해외에서 선수생활하다가 온걸로 알고. 김호철도 이탈리아. 장윤창에 문용관 이종경 199까지. 그 뒷세대가 한장석 노진수 하종하 마낙길 임도헌 이상렬 이렇게 나갔고. 그뒤가 신진식 김세진. 예전에 배구에서 스타선수들이 참 많고 인기도 많았었는데. 하종화와 나카가이치랑 맞대결도 볼만했고. 고쳤음.
저도 그 뒷세대를 더 많이 아는거 같아요 영상에선 장윤창,강만수 선수만 기억나요 뒷세대때 배구 인기 엄청났죠 최천식 선수도 응원했던 기억이ㅎㅎㅎ
@초심유지-x1b2 жыл бұрын
신영철을 빼먹으셨네요 ㅜㅜ 월드리그에서 세터상도 받았는디 ㅎ
@yongdave41672 жыл бұрын
우와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ㄷㄷ
@zirve76147 ай бұрын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이네여🤗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러 갔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정말 역대급 드림팀이었고 메달권에 진입을 기대해볼만 했는데 예선 탈락을 했던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임재경-l6h Жыл бұрын
좋은화질로 다시 볼수 있어 감사합니다
@감동사냥꾼13 күн бұрын
한국 배구의 부활을 기원합니다. 귀한 영상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ol2july2 жыл бұрын
브라질이 못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너무 잘하네
@user-72MyMusicBox2 жыл бұрын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최강의 드림팀... 월드클래스 수준이였심. 벤치 멤버가 정의탁 류중탁 .. 세계적으로도 이런 조합 구성은 안나올듯...
@arnold80272 жыл бұрын
역대 최강 맴버죠! 개별적인 포지션 선수 능력치도 역대 모든 선수들 통합해서도 한등급 위였죠! 도사 세터 호철이! 삼각공격편대 강만수 장윤창 강두태! 그리고 이종경 유중탁 문용관! 최고였죠!
@joonyoungyoo89762 жыл бұрын
미국팀이 우리 팀이 두려워서 브라질한테 져 주는 바람에 결승에 못 간 아쉬운 대회. 금메달까지 노려볼 만한 전력이었는데, 신체조건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강만수 195, 장윤창 195, 문용관 190, 강두태 197, 이종경 199, 김호철 175
@최창락-d3e2 жыл бұрын
악수거부하면 싸대기 날아오겠지
@이영하-g6p2 жыл бұрын
웬만한 유럽팀에도 신체조건이 밀리지 않았어요
@joshualoveu22 жыл бұрын
이종경 기록상 199 실제는 203 이라네요 거인소리듣기싫어서 신장을 낮췄다는..참고로 장윤창 이상렬 후인정선수 제 학교 선배랍니다 ㅎ
@이영하-g6p2 жыл бұрын
@@joshualoveu2 경기대
@appetite42142 жыл бұрын
한국의 1패가 미국전 패배 인데?
@부레끼-i4m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레전드 는 다 모였네요 너무나 반가운 얼굴 고인이된 강두태 선수도 있네요
@andreaskim56862 жыл бұрын
마르팡 증후군으로 요절한 강두태 선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성지공고-한양대-금성 대표팀 부동의 윙스파이커 현대차와 고려증권 사이에서 외롭게 금성팀을 이끌었던 거포 당시 올림픽대표팀은 벤치 선수들까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었음 김호철 백업세터는 금성팀 주전이었던 이범주 노진수 이용선 양진웅 유중탁 정의탁 등 백업선수들로도 국가대표 한 팀이 더 나올 정도였음
@dehwankim2269 Жыл бұрын
강만수는 최고팀에어 활약한 반면 강두태는 선수 부족에 시달리던 금성사에서 혼자 개고생 하면서 혹사 당함..이것만 아니었으면 강만수랑 정말 자웅을 겨루는건데..
@조타이거-x6o5 ай бұрын
와아아 지금 브라질하고 하면 3대빵인데, 저땐 진짜 잘했네요... 배구에서 브라질을 이렇게 가볍게 이기다니요...놀랍습니다.
@오영학-y1s2 жыл бұрын
강만수의 파워,강두태,장윤창의 당시 서구선수들 능가하는 타점높이!
@둥스임2 жыл бұрын
저 시절에는 서브권을 가져와야 득점 가능하니, 경기가 무진장 길어져 선수들의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네요.
@gyunamchol6611 Жыл бұрын
2번이상 공격성공해야 1득점 올리든 시절이네요
@한상철-m6y Жыл бұрын
배구공의 공기압이 현재보다 높았던 시기라 남자배구에선 서브를 받는 쪽이 8,90% 공격 성공으로 마무리되던 시절.91년 마지막 세트를 현 시스템인 렐리 포인트제로 변경한걸 시작으로 98년 현재 제도로 변경
@bulpae9 күн бұрын
고려증권에서 뛰었던 박삼용 형과 예전에 얘기를 나눴는데 블럭킹 하기 위한 점프가 너무 힘들다며 ... 틀어치는공 블럭을 하려며 옆으로도 점프해야 하는데 계속 이어지면 죽을맛이라고 하더군요
@shyunuw7 күн бұрын
대신 세트당 15점이 만점.
@user-ny5qt6xw7wryu2j42 жыл бұрын
아 강두태 선수는 럭키금성인가 계셨었죠. 저 국민학교 6학년때 피서로 무슨 온천 갔다가 로비에서 본적 있었는데, 진짜 제가 강두태 선수 허리에도 못미쳤었는데. 엄청 크셧었죠. 안타깝게 너무 빨리 고인이 되셨다 들었습니다.
@윤유원-v7b2 жыл бұрын
빽어택이일품이었어요
@디어헌터2 жыл бұрын
고인이 되신 강두태님,오관영해설가님.귀한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윤유원-v7b2 жыл бұрын
너무도그리운분들 특히강두태선수는 지금의이경수
@dehwankim2269 Жыл бұрын
@@윤유원-v7b 혹사의 대명사 강두태...금성사에서 몰빵 배구를 최초로 시전한 분..
@윤유원-v7b Жыл бұрын
@@dehwankim2269 그래요 고생 많으셨어요
@윤유원-v7b Жыл бұрын
알아주시니감사합니다
@dehwankim2269 Жыл бұрын
@@윤유원-v7b 선수 부족에 시달리던 금성사에서 혹사만 아니었으면 강만수랑 막상막하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당시에 허리 부상인 상황에서 허리에 고무 벨트를 두르고 경기를 했었다는 얘기를 주간지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그래서 강만수가 현대로 복귀할 당시 강두태는 전성기 때보다 많이 내려온 상태..
@johnyoon7774 Жыл бұрын
그 다음세대가 최천식, 마낙길, 신영철, 노진수, 하종화, 한장석, 이상렬, 임도헌... 이 멤버도 아주 훌륭했었음. 그 다음세대는 박희상, 김세진, 신진식, 장병철, 후인정, 최태웅, 이경수 등등
@방판중년단11 күн бұрын
LA 올림픽때부터 아테네 올림픽때까지는 그래도 우리 남배 성적이 괜찮았었습니다. 시드니와 아테네 올람픽때 두 번 다 조5위로 조별리그 탈락했지만, 조1~4위팀이 죄다 4강 올라갔고, 그 조에서 강팀들과 풀세트 접전도 벌이고 그랬으니.
@인트로쉐프 Жыл бұрын
당시 한국은 동구권팀이 총 출전했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들었을 정도로 강팀였음. 미국이 우리하고의 4강 이후의 대결이 두려워 브라질에게 져줬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만한 팀이였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음. 세터 포지션의 김호철을 제외한 스타팅라인업의 평균 키가 미국이나 브라질보다 컸을 정도. 거기에 강만수, 김호철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이미 월드클래스 스타였음. 우리로서는 다시 꾸리기 힘든 환상의 라인업.
@bsl94152 жыл бұрын
이 멤버가 역대 남자 배구 최강 일듯.
@구름나그네-b1u2 жыл бұрын
이때보다는 1978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4위 멤버가 더 최강이지 않을까 싶네요. LA 올림픽은 동구권 국가들이 불참한 반쪽(?) 대회였으니까요.
@마음-i7d2 жыл бұрын
95년인가 월드리그 6강 멤버가 네임밸류는 조금 떨어질지라도 이때가 최강라인 아닐까요? 신영철 하종화 김세진 박희상 후인정 윤종일 강성형 진창욱 김성채 구준회..
@정씨네-z6g2 жыл бұрын
역대 여자 배구 최강 멤버들은 런던 올림픽 멤버들
@joonyoungyoo89762 жыл бұрын
1978년도에도 강만수, 강두태, 장윤창, 김호철이었고, 그 때 강만수는 날라다녔던게 기억납니다.
@joonyoungyoo89762 жыл бұрын
강만수는 그 당시 세계적인 공격수였고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고 하더군요. 중국은 왕가위, 일본은 나카가이치가 최고었고, 물론 나카가이치는 그 뒷세대지만 그 둘도 강만수에게는 못 미쳤지요
@거북이-s3l9 күн бұрын
고3(84년)때 우리학교 체육관에서 금성 vs 인하대 연습경기 옆에서 봤습니다. 그 때 선수가 아닌 심판 보던 강두태 선수 기억납니다. 당시 인하대에 최천식 한장석 선수 있었어요. 세월이 빠르군요.
@레오쓰-x9n2 жыл бұрын
LA올림픽 정말 아까운 대회였죠. 미국에 딱 한 번 졌는데, 메달도 못 땄죠.
@정성원-r8m2 жыл бұрын
1셋트 접전후 아깝게 진 후, 지레 포기하고 0대3으로 졌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미국은 쉬운 상대 고른 것이니, 미국 탓 만 할 수 없죠. 그것이 실력이죠. 만약에 예선에서 우리가 미국 이겼다면, 미국이 감히 쉬운 상대 고르는 경기를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당연히 브라질 정도를 이길 것으로 김치국 마셨는 데, 고의로 져 주었으니.....
@beckham75912 жыл бұрын
미국의 횡포가 심했던 대회라 생각됩니다. 배구뿐만아니고 복싱에서도 편파가 심했죠. 어린 나이였지만 저때부터 미국이란 나라를 혐오하기 시작했습니다.
@박대통령만만세2 жыл бұрын
1976년생 용띠라서 배구하면 중학교 3학년 시절인 1991년이 많이 떠오릅니다. 1991년 3월 10일 일요일 한양대학교의 대학팀 최초 대통령배 배구 우승. 1991년 3월 26일 화요일 강두태 선수 심장마비로 34세 아까운 나이에 사망. ㅠㅠ. 1991년 5월 월드리그 첫출전. 1987년 8월 바레인에서 열렸던 20세이하 세계선수권서 쿠바를 상대로 3:2 역전시키고 우승. 그때 MVP였던 김은석 선수가 1991년 6월 6일 목요일 백혈병 투병하다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 1987년 20세이하 세계선수권 결승전도 올려주셨음 좋겠습니다. ㅎㅎ
@keemyungkwankee51712 жыл бұрын
91년 올림픽 예선에서 독일을 5세트 11:14로 지다가 역전한 명승부도 나왔었죠.
@seo81042 жыл бұрын
@@keemyungkwankee5171 마낙길의 1인 블로킹이 기억나네요~~
@Kimdojinaah10 күн бұрын
용띠면 동갑인데 박대통령 만만세라니..
@조까치-s9w2 жыл бұрын
한국 배구의 레전드들~
@노콘준상2 жыл бұрын
서브 불로킹은 다시 도입했으먄 좋겠네요.. 강서브가 재미를 반감시키는것도 있어요
@fieldjason97842 жыл бұрын
고 오관영 선생님 목소리 너무 좋다
@지와타네호-b2y Жыл бұрын
강만수 선수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던 것이 아쉬웠음 그런데도 체공력이 어마어마 합니다
@아자아자파이팅-h1g Жыл бұрын
강만수 선수는 파워죠.. 본인도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는 점프는 없다고
@주홍석-x4w11 күн бұрын
강만수 선수는 대각선 공격이 최고였죠
@parkmichael341111 күн бұрын
아 저게 지난거에요?;; 그래도 현 우리나라 선수들에 비하면 엄청 잘하시네요 ㅋㅋ
@황공추2 жыл бұрын
강만수 스파이크 오승환 돌직구 마냥 묵직하다....
@paxyujina20242 жыл бұрын
이당시 김호철은 세계적인 세터였지
@윤유원-v7b2 жыл бұрын
세계톱3리 당시넘버투 대한민국 역사상최고의세타
@김종희-c6p9 күн бұрын
최고의 공격수와 세계적인 세터 나무랄데 없는 멤버였네요 ~
@Biggestaa9 күн бұрын
저맴버도 대단했지만 그후 하종화 마낙길 쌍포시절이 월드리그에 좋은성적거뒀고 김세진 신진식쌍포시절도 대단했죠 실업팀은 고려증권이 정말 낭만의 팀이였고 박삼용 장윤창 정의탁 이성희선수 좋아했었죠 특히 이성희세터 스파이크서비스는 여느 공격수 스파이크서비스 못지않은 대단한 위력이였죠 변웅전아나운서님 목소리 들으니 반갑네요 ㅎㅎ
당시 서브 블로킹이 있었던 시대..15점제... '84년 이 전 인하대 출신의 속공 듀오도 있어야하는 데 문용관과 류중탁... 80녀년대 초 인하대와 경기대하고 경기에서 사실 장윤창의 경기대를 응원하였지만, 실상은 인하대가 더 강했었던... '84년 올림픽땐 당시 최강 쏘련과 동구권이 참전 안 한 대회...
다들 아시다시피 조별예선 3승1패 하고도 미국의 브라질전 0:3 고의패배 때문에 세트득실차에 밀려서 4강진출이 억울하게 좌절된 아픈 기억이 있는 대회였죠. 6번 싸워서 5승1패 했던 미국이 금메달 땄을때 5승1패한 한국은 5등에 그쳐야 했던. ㅠㅠ. 진짜 세터 김호철에 레프트 강만수, 강두태 라이트하고 센터 겸했던 장윤창에 대한민국 최초의 2m 이종경까지 진짜 저때가 한국남자배구 전성기였습니다. ㅠㅠ.이종경을 뺀 나머지 주전선수들은 1978년 세계선수권때 우리가 세계 4강진출 했던 주역들이었죠. 당시 장윤창은 고등학생 신분인데도 국대에서 주전으로 뛰었구요.
@오난희-x6r2 жыл бұрын
78 맴버에서 센터 이인(188) 라이트 정강섭(190)이 빠지고 문용관 이종경이 들어갔네요
@최창락-d3e2 жыл бұрын
미국놈들 탁구배드민턴은 못함 캐나다한테도 깨짐
@박대통령만만세2 жыл бұрын
ㅎㅎ. 맞습니다. 저도 백넘버 4번의 정강섭 선수, 백넘버 8번이셨고 1978년 대표팀 주장이셨던 이인선수 기억합니다. 이인선수는 1984년 올림픽때는 대표팀 코치님이셨죠. ㅎㅎ. 1978년 주전은 아니었지만 국대 엔트리에 문용관 선수도 있었잖아요. ㅎㅎ. 그래서 이종경 빼고 1978년 4강멤버라 한겁니다. ㅎㅎ
@오난희-x6r2 жыл бұрын
@@박대통령만만세 백넘버 정확하십니다 78년 맴버 주전6명에 왼손잡이가 3명 정강섭ㆍ장윤창ㆍ김호철 이었지요~ 팀 구성상 좋아야 왼손잡이가 2명 들어가는데(세터와 라이트) 최초로 그것도 대표팀 주전에 왼손잡이가 3명 들어갔지요 라이트2명이 블로킹시 센터를 겸하는 작전! 장윤창 유중탁 문용과 3명이 신인이지만 실력과 장래성이 있어서 들어갔던걸로 기억됩니다 제가 여자배구매거진 모나리자 입니다 여자배구는 더 많이 기억합니다 여자 78년 세계선수권은 레린그라드에서 있었지요~ 72뭔헨 74테헤란 75 멜버른은 조금 헷갈리고 76 몬트리올 77 월드컵등등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요 ~
@윤유원-v7b2 жыл бұрын
@@박대통령만만세 아하그렇군요 저도배구팬인데님덕에알고갑니다
@kotalife7585 Жыл бұрын
와... 지금 봐도 김호철 감독님 토스는 볼끝이 살아가는게 보이네요.. 요즘 우리나라선수들에게서는 볼 수없는
@richman29182 жыл бұрын
강만수 대각선스파이크, 이종경블라킹은 당시세계무대에서도 위협적이었던것으로 기억함
@lyt99812 жыл бұрын
강만수, 장윤창, 김호철, 이종경….남배의 레전드이넴
@DrykhswКүн бұрын
4:20 😱강서브?
@youngj5200Күн бұрын
저 때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한국이 역대급 멤버로 미국에게만 지고 5승 1패였나의 성적으로 올림픽 5위의 성적을 냈었을 겁니다. 아마도 한국이 강해서 토너먼트에서 재대결 시 한국을 껄끄러워한 미국이 져주기를 해서 한국이 5~8위전으로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미국은 스티브 티몬스, 커치 키랠리를 앞세워서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었죠.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 전이라니... 지금 저 영상을 보니까 캐스터가 당시 일요일 아침 오락프로인 명랑운동회를 진행하던 변웅전 전 아나운서네요. 오관영 씨는 물론 배구 해설 계의 레전드지만 변웅전 씨는 전문성이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어쨌든 지금 봐도 대단한 한국의 경기력이네요.
@발리발리-t4l2 жыл бұрын
와 김호철감독님 저키에 블로킹 대단하네요..
@andreaskim56862 жыл бұрын
당시 우리나라는 방송사 합동 중계를 했을 겁니다 당시 방송사는 k본부 m본부 밖에 없었고 해외여행 자유화도 아직 안 되었을 시기라 제약이 많았음 그래서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변웅전-오관영 중계진이 나올 수 있었음 야구의 김용, 복싱의 이철원, 조춘제, 축구의 원종관, 서기원 등 전설적인 아나운서들 몇 명만 추려서 보냈던 걸로...
@정의맨-f6f Жыл бұрын
야구 이규항 이장우
@슬비니 Жыл бұрын
이광용- 허구연 중계 느낌 ㅎ
@정규석-h9r2 жыл бұрын
당시 강만수 세계 4대 거포중 한명으로 뽑혔었지요~~
@obeel19922 жыл бұрын
이 때가 역대 최강일 듯... 고인이 된 분도 계시는군요
@빼미올-r1x2 жыл бұрын
강두태
@개비-o9e2 жыл бұрын
역대 남자배구 최강팀이죠. 미국이 브라질한테 져준거 맞습니다. 한국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브라질이 한국보다 편해서가 맞겠죠. 한국의 작전미스와 미국의 져주기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한국이 미국과의 예선에서 첫세트를 듀스끝에 지고나서 힘을 아끼기 위해 나머지 두 세트를 대충하게됩니다. 우리의 착각은 미국이 예선 전승을 하거나 브라질에 한세트만 따더라도 상대 전적과 세트득실에서 우리가 2위로 올라가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이 0:3으로 브라질에게 져주면서 3팀이 1패씩 동률이었으나 브라질 1위(3:0, 1:3) 미국 2위(3:0, 0:3) 한국 3위(3:1, 0:3)가 되어 우리는 5~8위전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최첨단인간 Жыл бұрын
이건 코칭스태프가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네요 도대체 뭘 믿고 결과를 속단한건지
@호위무사-d1g2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이때는 배구 보는 맛 났었다
@JyLee-lb2vw2 жыл бұрын
호철감독님 토스끝내주는군요
@김효정-j8u1q2 жыл бұрын
당시 국민들이 올림픽 경기중 가장 기대했던 배구대표팀인데 미국이 결승에서 한국을 피하기 위해 브라질에게 져주기 승부조작을 시전하는 바람에 5위에 그쳤죠 ㅜㅜ
@최창락-d3e2 жыл бұрын
배드민턴은 못하지 미국이 탁구도
@최창락-d3e2 жыл бұрын
이번에 극적 우승함 덴마크 인도우승 제물됨
@parkmichael341111 күн бұрын
그정도였어요? 기가막히네요 👍
@홍삼대원군-m9u10 күн бұрын
@@parkmichael3411 전 세계가 모두 나와도 대한민국은 4강안에 드는 전력이었고 그 어느 나라도 이견이 없을만큼 강팀이었음.
@채실장-x1f Жыл бұрын
호철이형 폼 미쳤네 진짜 토스봐라 경이롭다 ㄷㄷㄷ
@고독한페가수스 Жыл бұрын
나이 60에 농구장 3점라인 밖에서 토스를 해서 림을 통과 시킨 분임 포물선도 3점 슛만큼 아름다웠음 현역때는 더 잘하셨지 않았을까
@비익조k-z4w2 жыл бұрын
이때 강만수 스파이크 서브는 세계 최고였지 워낙 강했 거던 다만 실패율이 높아서..김호철은 컴퓨터 세터라고 했고 워낙 정교하게 올려주거던 이 귀한 자료를 어디서 구했나요.....ㅎㄷㄷ 84년 LA올림픽인가요? 나 중학생 때였는데 이때 장윤창 우리 학교 왔어 난리났었지.... 이때는 서브권이 있었지....그러니 배구 한번하면 2~3시간은 기본이고 3~4시간도 넘을 때가 있었지 여자 선수던 남자 선수던 경기 끝남 다 죽었지...
@babel7175 Жыл бұрын
스파이크 서브는 장윤창, 노진수가 했죠. 강만수는 안했음
@pplove415 Жыл бұрын
역대 최고 세터 김호철. 최초의 스파이크 서브 달인이자 역대급 재능 장윤창, 거포 강만수, 속공 장인 문용관, 미들 블로커 이종경까지.. 지금 대표팀이랑 붙어도 이길 가능성 많은 라인업..
@joonyoungyoo89762 жыл бұрын
1980년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강팀 불가리아와의 경기를 중계방송했는데 다른 선수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가 않아서 강만수 선수가 블로커 세명을 달고 다니며 혼자 해결했는데 5세트가 되니 강만수 선수가 지쳐버려서 결국 게임에서 졌던게 생각납니다.
@김미연-e4w2 жыл бұрын
장윤창의 고려증권에게도 똑같은 경기의 연속 이었습니다.
@지와타네호-b2y Жыл бұрын
저도 그경기 봤어요 완전 아깝게 진 경기
@sanmicheal6754 Жыл бұрын
1980년에 세계 대회를 어디서 해줘요? 그걸 어떻게 봄? 한국이 그걸 방송해줬나요?
@한승훈-c5h Жыл бұрын
방송해줌. 밤에본기억.
@한승훈-c5h Жыл бұрын
강두태 장윤창 공격 통하지 않아서 강만수 혼자 멱살잡고 캐리한 경기.
@oppakimbbq3252 жыл бұрын
장윤창이 센터 공격을 하던 시기가 있었군요... 하긴 주포가 강만수였으니...
@아자아자파이팅-h1g Жыл бұрын
센터라기 보다는 라이트와 센터가 병행되는 작전 같네요.. 이종경 선수도 레프트 라이트 다 때리고 전혀 예측이 안가는 전방위 공격이네요
@loewe-06072 ай бұрын
역대 최강 공격진은 물론이고, 마술사 김호철 세터의 존재도 대단했었죠.
@jdi01422 күн бұрын
저때 배구가 진짜 재밌었음...한일전할때 일본선수들 나까가이치,미나미,오다케 .. 우리나라에 패했을때 표정이 아직도 생생함
@do_ri_do_ri Жыл бұрын
서브블로킹,서브권얻어야 점수낼수있고ㅎㅎ 저때는 게임 시간이 보통 얼마나 됬나요??
@이광희-x1k2 жыл бұрын
농구 배구 이충희 장윤창있을때80년대최고였죠~~
@kph-th7xy2 жыл бұрын
김호철 저 키에 저 높이의 점프력 대단하다. 이때의 앵커가 변웅전이었네 목소리를 들어보니 !
@동안대디 Жыл бұрын
네~~MBC 명랑운동회 변웅전..ㅎ
@cafdr5502 жыл бұрын
이때가 세계랭킹 8 위 정도 었던 걸로 기억 하는데.... 이종경선수가 막내니 할말 다 했지. 이당시 한중일 삼국지도 서로 물리고 물리는 아주 흥미진진했던걸로 기억하고 역시 최고는 신장은 작은편이지만 엄청난 점프력과 파워의 미국선수 키랄디가 최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 옛날 이야기네.
@남자박경원-e2k2 жыл бұрын
키라리 아니었나요?제 기억엔 키라리였던거 같습니다. 지금 검색해도 안나오긴 하는데~ (근데 영어라서 키랄디나 키라리나 별차이 없을거 같기도 하네요. 저는 키라리로 듣기는 했지만 키랄디가 맞을수도 있을걸로~) 당시에 소련에 왼손 거포와 함께 세계 투탑이었던걸로 기억. 미소전 정말 박빙의 경기였네요~^^
@남자박경원-e2k2 жыл бұрын
그리고 무슨 대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대회에서 이태리가 굉장히 잘하고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 세터가 상당히 잘했었는데, 주 공격루트가 안정된 리시브를 바탕으로 두명의 속공선수가 뜨고, 시간차를 기가막히게 쓰는 기계적이고 정교한 플레이를 해서, 상당히 인상깊고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ormeormeable2 жыл бұрын
카치 키랄리
@남자박경원-e2k2 жыл бұрын
@@ormeormeable 카치 키랄리로 검색해보니 구글이나 유투브에 나오네요~ㅎㅎ 키가 신진식보다 1cm더 큰 고작 188cm인데 20세기 최고의 선수였다는게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ormeormeable2 жыл бұрын
@@남자박경원-e2k 당시 미국에는 프로리그가 없어서 비치발리볼로 전향했었죠
@lord1road729 Жыл бұрын
당시 배구는 서브가 네트에 스치기만 해도 파울이었고 낮게 들어오는 서브는 블로킹에 걸리기 쉽상이라 스파이크 서브 구사하기 힘들었슴 서브할때 주심이 네트에 손을 대고있다가 진동만 느껴지면 바로 파울 선언
@pacman4735 Жыл бұрын
한국이 브라질, 아르헨, 이탈리아 쉽진 않지만 다 이기던 시절. 미국 4강 확정하고 2군 내보내 브라질에게 져주면서 은메달까지는 가능했던 한국 메달권 탈락. 미국이 한국을 살짝은 의식한듯 했고, 결국 한국 5위, 브라질 은메달.
@jinseoksohn917 Жыл бұрын
미국이 갑자기 힘을 뺀게 눈에 보였죠 혹시라도 대한민국과 결승에서 붙을지 모른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음
@dusseldoffkrahhen728316 күн бұрын
coreia do sul sempre foi uma pedra no sapato para o brasil. Parabens pelo elevado nivel técnico
@eulho2152 жыл бұрын
브라질에 꿀리지 않는 저 멤버... ㄷㄷ; 호철감독님 토스 끝내주네요 ㄷ
@redlee76882 жыл бұрын
당시 브라질은 지금과 달리 약체였습니다. 브라질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선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때부터였죠.
@buckston2012 жыл бұрын
저당시 김호철이라면 이탈리아 리그에서도 알아주던 최고의 세터였으니까요
@saviora102 жыл бұрын
저때당시는 지금처럼 강팀은 아니였죠
@kjlee3577 Жыл бұрын
이때가 진정한 토탈배구. 센터인 이종경이 오픈공격도 자유자재. 라이트 공격수인 장윤창이 기습속공 & 개인시간차 등등. 김호철 작은 키에도 점프력, 체공력이 좋아 웬만한 공은 네트 앞에서 다 처리해줬죠. (서전트 점프가 90cm인가 그랬다대요. 김호철) 아무튼 이때가 학창시절이었는데 그만 브라질한테 3:1로 이기고서 다음 게임 아르헨티나한테 풀세트 접전 끝에 신승한 걸 보고 아하, 이제 뭐 올라가겠구나 했는데, 그러나 어이없게도 미국이 브라질한테 2진급 내보내면서 삼대빵으로 고의(?)패배해서리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그래 그때 아르헨티나한테 한 세트만 덜 내주었더라도 우리가 세트 득실에서 브라질을 제끼고 4강에 올랐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이때가 한국배구 최전성기인 건 맞다 봅니다. 비록 남미배구가 지금의 실력까지 오르진 않았던 시기였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수비력도 굉장해서 리베로 없던 시절임에도 6인 선수 모두가 다 리시브는 물론 디그 및 2단 토스까지 엄청 잘 해댔었댔죠. 그만큼 좌우공격수나 중앙공격수나 기본기가 굉장히 좋았던 배구선수들이었습니다.
@chhbang Жыл бұрын
축구 2002년 월드컵 4강, 야구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생각하면 남자배구 입장에서는 1984년이 천추의 한
@브루투스-l2x Жыл бұрын
강만수 김호철은 세계적 레벨이고 이종경 장윤창 강두태 역대최고멤버네
@babel7175 Жыл бұрын
당시 강만수 강 두태, 장윤창의 스파이크 파워 속도는 어마어마 했죠. 소련의 사빈선수가 최고 공격수 였지만 강만수의 파워에는 못미침. 사빈선수와 강두태 선수와 높이가 비슷한 정도 일거고 강만수 선수는 불로킹을 밀어낼정도의 파워라는 다소 과장ㅈ섞인 평가도 있었음 제기억으론 195,197신장으로 장윤창 강두태의 서전트가 85이상 이었음
@youngj520023 сағат бұрын
샤빈이 언급되다니 반갑네요. 그리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강만수 선수가 스파이크를 날릴 때 배구공이 찌그러져서 날아간다고 할 정도로 강만수 선수의 파워는 어마어마했었죠.
@박스베타-p2f2 жыл бұрын
강만수 선수 지금으로 치면 김연경 선수라 생각하면 됩니다.
@seo81042 жыл бұрын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물론 강만수 팬이지만은 연경김은 메이웨더급입니다.
@김미연-e4w2 жыл бұрын
ㅎㅎ 지금 김연경선수가 과거 강만수선수라 생각하면 됩니다.
@정성하-y5m Жыл бұрын
다른 거 다 떠나서 진짜 김호철 토스는 죽인다. 저 시절이랑 지금의 서브 강도, 리시브 정확도가 당연히 차이는 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요즘 시터듷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과 정확도.
@김광환-x4s22 сағат бұрын
전설들 다있네요. 40여 년? 당시 배구 한 세트 15점 5세트 배드민턴은 21점 3세트... 그런데 저 때는 서브권이라고 해서(사이드 아웃) 서브를 넣는 팀이 성공을 하면 득점이 되는 경기였지요. 여튼 김호철, 강만수. 강두태, 그리고 중참 고려증권의 장윤창, 정의탁, 문용관 과 신인 이종경... 재밌게 잘보고 좋은 추억 소환에 감사를...
@AllenHCKang Жыл бұрын
자랑스럽습니다!
@iN-uy8gx2 жыл бұрын
장윤창선수가 막내같네요. 강만수 선수는 80년대 중반이 전성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단했죠.
@라온하루-k5p2 жыл бұрын
이종경이 한참 아래 막내로 생각됨 ^^
@오난희-x6r2 жыл бұрын
이종경이 막내!
@바람-i6g2 жыл бұрын
와 엄청나군요 ㅎ ㅎ 정말 화려하다 ㅎㅎ
@kj-wv5rf2 жыл бұрын
저때 장윤창은 진짜 대단했음
@dehwankim2269 Жыл бұрын
대학 시절 만큼은 아니었는데..경기대 시절이 정말 후다닥했었는데..
@yhlee24362 жыл бұрын
헉 우리가 이런 멤버와 역사가 있었다니…브라질을 압도하던 때가있었어!!
@옴파로스-r1v2 жыл бұрын
저때 멤버가 역대 최강이 맞구나
@rich456 Жыл бұрын
맞는 말씀. 국대배구 남자팀으로 환상의 팀이었지요 최강의 멤버 레전드 팀! 다들 건강 하시겠 지요?
@bulpae9 күн бұрын
현대 ( 김호철 강만수 이종경 ) 럭키금성 ( 강두태 ) 대한항공 ( 문용관) 고려증권 ( 장윤창 정의탁 )
@rarg8562 Жыл бұрын
김호철 감독 여윽시!!
@박정삼미래 Жыл бұрын
강만수선수 파이팅
@inflameskim Жыл бұрын
다른 종목에 비해 현재와 비교해도 딸리지 않는 피지컬임. 장윤창195, 강두태197 강만수194 이종경200 문용관191 피지컬은 둘째치고.. 지금은 아시안게임 개막식도 하기전에 인도,파키스탄에게 져 광속탈락해서 집에오는 실정..
@파크냐아수투아루2 жыл бұрын
장윤창의 왼팔 스파이크 카~~
@dehwankim2269 Жыл бұрын
강두태도 정말 잘했었는데 꼴치팀에 선수 부족이었던 럭키 금성에서 혼자 너무 혹사 당하는 바람에..허리 부상 중에 허리에 고무 벨트를 차고 경기에 뛴 적도 있다고 함..반면 강만수는 최강팀에서만 뛰고..
@형구김-h5h Жыл бұрын
이때 주전공격수들 키가 브라질보다 더컸음. 근데 이 키가 40년후인 현재도 이때하고 키가 그대로임. 강만수195 강두태197 장윤창195 이종경 199.5 문용관 190. 근데 이거 맨발키임. 즉 신검할때 키임.요새기준으로 2미터 넘는선수가 두명임.
@bulpae9 күн бұрын
이종경은 실제 2미터가 넘었을거라는 얘기가 있었죠. 다음 세대는 윤종일 제희경등 2미터가 확실히 넘는 센터에 195의 장신 세터 진창욱이 신영철이나 이성희의 서브 세터로 활약하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