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페르시아 #300 참고자료 Will, W.: Die Perserkriege, München 2019 Bichler, R.: Herodots Welt, Berlin 1999 Cawkwell, G.: The Greek Wars. The Failure of Persia, Oxford 2005
Пікірлер: 36
@user-gf4xp6ug7m2 ай бұрын
전투시작전부터 이미 자식있는 나이든 시민만으로 고작 300명을 뽑아간 시점에서 살아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되었을까 싶습니다. 헬라스에서 신탁이 차지하던 무게감을 생각하면 온나라가 약탈당하거나 왕이 죽는다는 신탁 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설도 매력적이구요. 스파르타는 승산이 낮거나 얻을것이 적어보이는 전쟁에서는 늘 신성한 축제를 핑계로 파병을 밍기적거리곤 했는데 위험요소가 높은 전쟁에 자국 시민의 동원을 꺼리면서(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진격로와 먼 그리스의 최남단에 위치해서 벌써부터 목숨을 걸어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신탁을 핑계로 사용해 오래도록 이어져내려온 스파르타의 명성을 살리는 동시에 자국의 출혈을 최소화하고자했던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신성성을 명분으로 삼으면 감히 반박하기가 힘들었던 시대였고 출혈을 아끼면서 스파르타가 겁쟁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장 적당한 핑계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전사자들의 친척은 일생을 자랑거리로 삼고다니고 싸워서 지고 도망쳐 돌아온 자의 가족은 감히 고개를 들고다니지도 못했다던 특유의 사회분위기속에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할 희망자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성도 싶습니다. 어차피 돌아갈곳 없었던 망명자들과 마초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 상무적인 무리가 함께 영웅이 되고자 하는것도 이상할것 없고요.
@핸들_쉽지않다2 ай бұрын
신성과 마초가 만나면 이렇게나 무식하고 용감한 선택이 가능한 법이죠 그 시선조차 현대적인 관점이지만요
@드백-c5p2 ай бұрын
외모부터 신뢰가는 유튜버
@ParkJiSeop12 ай бұрын
너무나 신선한 내용 감사합니다. 😊
@historytogether2 ай бұрын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병호박-k2t2 ай бұрын
군인은 질거 뻔해도 해야하는 전투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말.아직 신에게는12척의 배가 남았다고 한것은 이길것이 뻔하니 염려말라는 것이 아니라.꼭 해야만하는 전투는 승패에 관계없이 해야 하는게 군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중과부족 이라서 도망가는게 아니라 죽음 으로써 자존심을 보여주는게 군인이다. 그런 전투들이 세계사에 남았고,이순신 장군의 예는 정말 말도 않되는 승리였다.
@bloo_i2 ай бұрын
매번 느끼는거지만 단순 역사에 대한 소개가 아닌 누가쓴 역사이고 그게 신빙성이 있는지 거기서 나오는 표현은 무엇인지 그게 무슨 의미를 담는지 그게 다른 곳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거 어떤 해석을 만드는지 등을 설명해주는게 너무 좋음 또하나의ㅜ인사이트를 넓혀갑니다
@kanvarry33562 ай бұрын
300명이 남은 건, 페르시아의 주병종이었던 기병 때문에 후퇴 도중 따라잡힐 가능성이 커서 아닐까. 전술상 후퇴할 때는 후위대가 지연전을 펼치는 게 기본이긴 한데, 근데 굳이 이걸 양성하기 힘든 정예 300명 + 왕이 해야 하냐는 의문점이 듦. 어쩌면 오히려 왕이 후위대에 있다는 것이, 페르시아가 지나쳐 후퇴하는 그리스 본대로 공격하지 않고 고작 300명의 후위대를 전멸시키는데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게 만든 효과도 상당했을 듯. 레오니다스 생각엔 7000명 본대를 온존시키는 것을 고려했을때 희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듯.
@wolfk38932 ай бұрын
사실 나름 성공한 지도자들 중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긴 한데 진짜 명군은 착하기만 한 사람보단 대중의 어리석음조차도 대의를 위해 자기 입맛대로 이용할 줄 아는 1류 사기꾼이어야 하는 듯 ㅋㅋ... 페르시아를 핑계로 대면 해군 군비증강에 시민들이 동의해줄 꺼라고 계산하고 이용해먹은게 ㅋㅋ... 키케로도 이런 면 꽤나 있고
@CentralParkish2 ай бұрын
역사를 왜곡한 죄에 대해 얼마나 벌해야 하나.. 역사를 왜곡한 행위도 역사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그리고 페르시아는 왜 기록이 전무하나..
@peteryi17232 ай бұрын
반일선동질과 전교조 선생들이 떠오르네요
@user-byuljeonnam2 ай бұрын
리더십의 실패인지 무능인지는 현존 자료로 알기 힘드니 속단은 금물...
@hjh930503412 ай бұрын
결국은 역사가의 해석만이 남게 됩니다
@digitalpay2 ай бұрын
독일편 지금 정주행 중인데 너무 재밌습니다.
@roadspothunter2 ай бұрын
혹시 독일해군이 1910년~1914년 사이에 조선을 방문하고 경복궁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을까요?? 이베이에서 독일에서 1910년대에 경복궁 수정전과 경회루 등지에서 관광과 만찬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구입했는데 판매자도 1914년 언저리로 생각할 뿐 정확한 날짜는 몰라서요. 자로를 좀 찾아주세요
@루카치-u3m2 ай бұрын
태어날 때부터 아동학대나 다름없는 맹훈련을 받아온 전사들과 지휘관이 한 번의 전투로 몰살당한 격인데.. 스파르타의 한계와 멸망 원인이 드러난 전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4차 십자군 원정 약탈의 근본 원인 사건이라는 1182년 라틴인 학살에 대해서도 다뤄주실 수 있을까요?
@yyhan20002 ай бұрын
저는 리쿠르고스의 법이 스파르탄들을 묶은 게 아닐까 하네요. 레오니다스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스파르탄이 그만큼 완고했다고 봅니다. 아 물론 파우사니아스의 타락 이전에 말이죠.
@user-gg9zg2yi7p2 ай бұрын
재밌댜
@튼튼신2 ай бұрын
크림 반도 쪽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한 이유가 있을까요?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라 눈길 가네요
@Exclamationmarkss2 ай бұрын
독재에서 역사의 자의적 해석 우리나라는 진행중이죠
@주훈김-k1h2 ай бұрын
저희 학교에서 교양 강의하시면 전공보다 더 행복하게 들을 자신있습니다!
@이종화-h7b2 ай бұрын
역사서의 주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구절을 떼다 이용하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일이죠. 원래는 장난스럽게 댓글을 썼으나 영상을 보고 진지해졌습니다...
@lisasimpson67762 ай бұрын
나치 역시 저 문구를, 그것도 침공 전쟁에서 맥락을 거세하고 인용했다 라는 점에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javaxerjack2 ай бұрын
이상하게도 독재국일 수록 이 스파르탄 군대를 선망해서 그런 종류의 군대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blue_towel2 ай бұрын
사자가 새끼를 절벽으로 민다 든지, 솔개가 부리를 부순다 든지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인간 마음대로 해석하는데 인간의 역사는 어련했을까 싶습니다.
@user-rj6yc2ny9t2 ай бұрын
그러고 보니 둘다 미신이죠. 300처럼 왜곡시킨 대표적인 역사가 마라톤의 기원.
@소주좋아-c7z2 ай бұрын
진짜 역사 잘알게생겼다
@lamblamb25062 ай бұрын
역사 잘 알게 생겼다, 외모부터 신뢰가 간다, 등의 댓글들이 심심찮게 보이네요.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했다지만 그 어투의 근간에는 불온한 편견 따위가 기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견에 관한 코멘트보다는 항상 좋은 사료와 역사적 사실로 우리한테 교훈까지 일깨워 주는 고마운 유튜버님께 감사의 말씀을 직관적으로 전하는 게 더 옳은 방법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정성 들여 만들어 주신 영상 감명 깊게 잘 봤고 앞으로도 좋은 자료 꾸준히 업로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항상 잘 시청하고 있습니다!
@iliilliillliil2 ай бұрын
실제로는 300명 아니고 더 많았음. 근데 스파르타의 인구에서 자유시민의 인구가 전성기에도 1만명 넘지 못했고 실제 레오니다스가 이끌고 간 300명은 자식이 있는 아버지들 , 즉 한명 한명이 귀중한 지휘관급 전력인데 이 전력이 허무하게 죽었다는게 아쉬웠음. 스파르타는 모순적이게도 항상 전투를 피하려고 했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장렬히 싸우다 죽는걸 선호했음. 결과적으로 저 300명이 죽지않고 후진양성 또는 지휘관으로 써야 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