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자락길 7코스 십승지의 의풍옛길에 베틀재가 있다

  Рет қаралды 118

산행유튜브

산행유튜브

Күн бұрын

소백산자락길 7코스는
다른말로 십승지 의풍옛길이라고 한다
삼도 힐링길 Samdo Hiling road 지도
삼도 힐링길은 백두대간 아래에 있는 마을길로 자연을 만끽하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7코스는 삼도 힐링길 반대방향으로 간다
고치동 입구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오전 11시에 의풍리에도착하여 십승지 의풍옛길 소백산 자락길 7코스를 반대방향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A조 13명은 약15km 거리를 트레킹 할 예정이다
김삿갓 문화관은 다음에 가보기로 하였다
의풍삼거리 버스정류장 당산나무
의풍1리 마을입구에 당산나무 한그루가 넘름하다
의풍이라는 명칭은 세갈레의 시내가 있고 산이 높고 아름다우며 땅이 걸어서 사람이 살기에 매우 좋으므로 삼풍리라 하였다가 송저, 어은동, 장항, 와동, 고사동을 병합하면서 의풍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의풍옛길을 따라 가는데 베틀재까지 약3.6km도로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몇명 갑니까 ?
13명 A조 13명
오르막길이라 햇볕은 덥고
그늘로 들어가면 차가운 냉기를 몰고오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푸른하늘의 구름이 아주 멋있다
강아지풀도 즐겁다
억새도 햇빛을 받아 화려하다
7코스를 반대로 진행하여 의풍리에서 출발하여 의풍옛길을 따라 3.6km를 올라 왔다
여기가 베틀재 이다
베틀재의 정상이 베틀의 도투마리에 해당하는데 소백산 형제봉에서 마대산쪽으로 베틀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려시대부터 소금을 운반하던 길로 3대염로의 하나였다고 한다
한양의 마포에서 온 소금을 용진나루에서 내려 짐을 지고 베틀재를 넘어 강원도와 경상도로 지고 나르던 보부상들의 길이 었다
베틀재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충북,경북, 강원 삼도를 볼 수 있는 베틀재는 백두대간에서 동으로 뻗은 형제봉(1,177m)과 마대산(1,050m)사이 해발 651m이다.
십승지라고 하는 것은
정감록에 求穀種於三豊(구곡종어 삼풍)이라 곡식의 종자를 구할려면 풍기,의풍, 무풍 이렇게 삼풍에 가야하고, 求人種於兩白(구인종어양백)이라 태백과 소백사이의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곳으로 십승지라 부르는 데 오르막길 30리 내리막길 30리 이다.
또 이 길은 3도의 문물이 오가 가는 보부상의 길이었다
십승지의 하나인 의풍 이곳은
임진왜란때는 전혀 피해가 없었고, 동학난 때에는 천도교 2대 교주인 최시형 처가가 있었다고 한다
동학 혁명군이 의병을 일으켜 봉기 할때는 소백산과 의풍을 거점지로 활동하였던 곳이다
창의 대장 이강년, 중군장 김상태, 우 선봉장 권용일, 관동 창의대장 이인영, 김규철, 이명상 의병장과 의병들이 활동하였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 사단과 연대가 점령하였기 때문에 국군의 인민군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감행한 조국의 시련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방 후 미 480호 법의 밀가루 공사가 소백산의 벌채용 산판 길을 G.M.C 가 처음 열었던 사연이 많은 고개이기도 하다.
충북의 최북단 동부에위치한 베틀재는3도접경 태백*소백의 연접지로 충북 정도 100주년 사업으로 시작한지 10여년 그리고 60년 숙원사업의 역사적인 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영춘면민들은 개통기념비를 2009년 7월 22일에 세웠다.
[정감록(鄭鑑錄)에서는 비결서 전체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보신보명 (保身保命)의 이상향으로 양백지간(兩白之間)을 꼽고 있다. 양백(兩白)이란 태백과 소백 그 사이를 말하는데, 직선거리로는100여리 정도의 공간이 이에 속한다.
그 중 양백지간의 북쪽은 산이 험준하고 골이 좁아 사람이 살 만한 터전이 별로 없는데 반해, 양백의 남쪽은 산들은 유순하고 수려하며 골과 골 사이로 널찍한 들이 곳곳에 끼여 있어, 사람들이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고을이 많다.
특히 소백산 아래 풍기 땅은 난세에 환란을 피하여 살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중에서 최고의 복지(福地)라고 알려져 있으며, 천재지변도 이곳을 피해가기 때문에 흉년이 없는 풍요로운 땅으로 꼽는다. 따라서 정감록 신봉자들이 소백산 비로봉 아래로 스며들어‘정감록촌’을 이루었다. 삼재팔난을 피해 숨어 들어온 이들이 사는 땅 이곳은 예부터 오지 중의 오지여서 인간의 흔적들이 거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북괴군1개 사단이 끝까지 숨어 주둔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겨나기도 했다.
주자학이 조선왕조체제를 유지하는 국교(國敎)였다면, 양백은 태백과 소백이 합기합수(合氣合水)하는 조화의 땅으로서 두 기운이 합하여 음(ㅡ)양(ㅣ)의 결합(十)을 이루는 십승지(十勝地)이다. 등줄기인 태백산맥과 넓적다리인 소백산백을 거느리고 있으니 더욱 든든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의 사고(史庫): 태백산사고지
임진왜란으로 국가의 중요한 기록이 불타 없어지고 전주사고만이 남게 되자, 조정이 묘향산, 오대산, 적상산, 태백산에 사고를 지어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게 했는데, 그 중 상태가 가장 양호한 실록이 『태백산사고본』이란다. 양백지간이 전국 최고의 피난지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료이다.
출처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베틀재에서 100m 정도 내려오면 좌측으로 넓은 공터를 지나 산길과 만난다
임도를 따라 걷는 소백산 둘레길의 시작이다
가을 날씨가 조금은 시원하고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이 좋고 임도가 넓어서 편하다
숲에서 바람을 타고 온 국화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바람에 낙엽이 날린다
꽃 한송이에 괴상한 벌이 날아들었다
야생화 피어서 자연정원이다
詩. 꽃
詩人.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길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고,
나무그늘아래 가을 바람이 볼어 오기도한다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 졌다
베틀재에서 약 4km를 걸어서 왔는데 약간의 내리막길이여서 편하고 임도가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산길에서 벗어나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935번 국도와 만나 도로를 따라 동대2리 마을로 간다
오지마을이어서 그런지 자동차들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고추밭에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시골풍경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맑은 공기와 한적한 풍경
밭에서 자라는 것을 보면서 옛날 기억들이 떠 오른다
길가 바로 옆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고 있다
밤나무에는 가을이 한창 익어가는 중이다
밭에 나는 것이 코인지 팥인지 이제는 구별하기 어렵다
푸른 가을 하늘아래 옹기종기 있는 집들과 길게 뻗은 도로는 시골풍경을 담은 그림 같은 풍경이다
땀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벼가 익어서 머리를 숙인다
커다란 대봉감에도 가을이 물드는 중이다
한 여름 뜨거운 햇살을 담은 대추열매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도꼬마리 요것을 우리는
어릴 때 옷에 착 달라 붙는다고 해서 도둑놈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표지판이 마을 안쪽으로 가도록 표시를 하고 있다
알이 꽉찬가을배추가 아주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은 길안내가 없는데 이 길 끝에서 좌측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길에 낙엽이 깔여서 걸을때 마다 바스락 거린다
처음오신분 인터뷰를 해 보았다
이 작은 다리를 건너기 위해 여기까지 온것 같다
영춘면까지 4.9km 남았다
앞에 간 팀은 건너편 산허리를 돌고 있다
산허리에서 내려다 보니 저 아래 올라왔던 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저 아래 길은 우리가 조금전 지나온 길이고
저 산봉우리는 수리봉이다
산세가 아름다운 곳이다
A팀과 B팀이 만나서 함께 산행을 한다
누릅실고개 마루
이곳 갈림길에서는 우측으로 가야하고
영춘면 사무소가 1.6km 남았다는 표지판이다
숲의 무법자 사마귀를 보았다
올챙이 이정표가 빨간색은 역방향을 가리킨다
7코스가 끝나는
영춘면 사무소에 도착했다
영춘지명의 유래를 알아보자
"봄이 길어 늘봄"이라는 뜻을 가진 영춘면(永春面)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고, 광개토태왕이 영락6년(396년)백제를 공격하여 58성700촌을 빼았을 때는 백제의 아단성(阿旦城)을 점령한 고구려는 지역의 중요성과 새로 편입된 지역민을 의식하여 한 단계 높여서 을아단현(乙阿旦縣)으로 불렀다. 551년에 을아단현은 신라에 점령되었으며, 이 때 온달장군이 계립현 죽령 서쪽땅을 찾고자 출정하여 아단성 아래에서 격렬하게 싸우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자춘현(子春縣)으로 평구도(平丘道) 30개 역 가운데 의풍역(義豊驛)이 있었다. 조선 정종 원년(1399년)에는 충청도 충주목(忠州牧)에 속하면서 비로소 감무(監務)를 시작, 태종 13년(1413년)에는 현감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영춘현은 195호에 인구 582명, 시위군 27명, 선군 15명,토속성은 조(趙), 윤(尹), 정(鄭), 신(秦)이며, 망성(亡姓)은 석(石), 속성은 이(李)이다.
영춘면사무소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상리 395-5
단양버스 시간표
영춘 - 의풍 의풍 - 영춘
첫차 8:05 8:45 단양
14:10 14:50
17:20 18:00 단양

Пікірлер: 5
Как подписать? 😂 #shorts
00:10
Денис Кукояка
Рет қаралды 7 МЛН
Поветкин заставил себя уважать!
01:00
МИНУС БАЛЛ
Рет қаралды 6 МЛН
The day of the sea 😂 #shorts by Leisi Crazy
00:22
Leisi Crazy
Рет қаралды 2 МЛН
SHAPALAQ 6 серия / 3 часть #aminkavitaminka #aminak #aminokka #расулшоу
00:59
Аминка Витаминка
Рет қаралды 1,9 МЛН
Как подписать? 😂 #shorts
00:10
Денис Кукояка
Рет қаралды 7 МЛ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