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도 겨울에 요강갖다 놓고 오줌누고 했지요^^ 그래도 그시절이 때론 그립기도 하네요^^
@이도우-h9x Жыл бұрын
한국도그랬습니다
@pokarelim2813 жыл бұрын
ㅎㅎㅎ 물에 석탄을 으게서 난로에 불을때는 이야기 오랫만에 듣습니다. 75년도 경남 창원의육군 훈련소에서 불침번 설때 참 많이 했었지요
@김성자성자-u7m Жыл бұрын
아버지가 많이나오셔서 븍한관련 말씀 해주세요
@심상일-s2b3 жыл бұрын
행복하게 잘지네세요~
@이종걸-f2w3 жыл бұрын
아버님의 말씀을듣다보니 우리나라 50~70 년대초 생활상하고 비슷하군요ㆍ 우리나라도 50 년전까지는 화목을 주로 땔감으로 썼지요 그이후 연탄을 전국으로 보급하면서 아궁이 개량사업을 전국적으로 했지요ㆍ 그게 새마을 운동의 일환이었지요ㆍ 그러면서 육십년대초에서 칠십년대초까지 전국의 산에 식목을 해서 지금의 산림을 이루었지요 오 ~ 육십년 자란수목이 지금은 참보기 좋습니다ㆍ 나는 지금칠십중반을 넘긴 사람이기때문에 발전상을 잘알고 있습니다ㆍ 국가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거지요ㆍ 북한도 빨리 하루라도 빨리 지도자의깨우침이 있기를 바래야지요ㆍ 지금의 북한이 오늘의 대한민국처럼 국민들이 잘살려면 얼마나 시간이걸릴까요? 재미있게 잘듣고있습니다ㆍ 추위에 건강조심하세요ㆍ
저 어렸을때가 생각나네요 ^^ 요강사용한거며 한겨울에 화장실똥이 역고드름처럼 얼어서 깨가며 사용했던기억도.. 밤에 화장실갈때 들고갔던 빨간색랜턴도 기억이 뚜렷합니다. ㅎㅎ 어렸을적엔 40~50여가정이 화장실 하나에 수도가 한개를 사용하는 그런집에서 살았죠. 우리집도 단칸방에 다섯식구가 뒤엉켜 잘만큼 작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지금은 추억이랍니다. 어렀을적 한겨울밤 잠결에 요강이 아닌 아버지가 드시던 노란색물주전자에 소변본걸 모르고 아버님이 아침에 드셨더랬죠. ㅎㅎ그후 그시절 이야기에 아버지는 늘 놀림을 받았고 즐겁게 웃곤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침일찍 일나가시며 냉동실에 얼려둔 설탕물맛도.. 빗자루로 장농바닥을 흝으며 애타게 1원이라도 나오길 기대했던 추억들.. 1원에산 아폴로3개를 3형제가 하나씩 나눠 하루종일 입안에넣고 빨고 씹고 또 씹었던 추억들.. 모든게 지금의 삶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졌기에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는거 같습니다. 부모님이 주말도없이 하루종일 막노동판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만큼 무언가 하나둘 늘어나는 집기들이 있었기에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날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그시절이 행복했던거겠죠. 희망=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북한동포들에게도 훗날 언젠간 지금의 고생들을 웃으며 얘기할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꿔봅니다.
@조진기-p8x3 жыл бұрын
의상이 점점 멋져지셔서 보기좋아요
@금도끼-v5l3 жыл бұрын
식구들이다 탈북해서 다행이네요 대한민국에 오신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맛난거 많이 드시고요 영상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중에 요강 얘기가 나와서 한 말씀~~~ 우리 남한에서도 요강 많이 썼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와 동생들 5식구가 단칸방에 살면서 요강을 썼습니다.. 근디........ 어쩌다가 요강에 빨간 물이 가득한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에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빨간 색깔의 물이 무엇인지 짐작만 했지요... 그 시절에 요강의 색깔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분이......... 딱 한분이었습니다.... ㅎㅎㅎ
@뱀부-z6w3 жыл бұрын
오늘도 토요일이라 아버지와 같이 하시네요~~^^
@황정빈-b1l3 жыл бұрын
저도 어렸을때 호롱불 들고 다녔어요 단양 인데 80년에 전기가 첨 들어 왔어요
@김광년-f9e3 жыл бұрын
남한도 그런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김장이라고 하지만은 많은 양은 아니지요. 화장실도 밖에 있었구요. 늦게나마 얻으신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user-ji7gc2nt4v2 жыл бұрын
은정 씨랑 아버지 말씀 하시는 게 너무나 구수 하고 , 슬프고도 참담한 북한 이야기
@구미아빠-d9g3 жыл бұрын
두분 행복하세요 😸
@アユイ-e4l3 жыл бұрын
강은정TV, 재미있게 보고 있답니다. 은정씨의 아버님(강일규님)이 말씀하시는 "화로", 추억이 솔솔 살아나네요. 죄송스러운 표현이 될지 모르겠으나, 북향민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옛 추억이 솔솔 떠오르곤 하지요. 참고로 6,70년대 북향민들이 많았지요. 모두다, 열심히들 사셔서,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도 추운겨울, 화로에 의지하여 추위를 달랬지요.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조부모님들, 참으로 고생많으셨지요. (조부모님들을 떠올리니, 슬그머니 눈에 물이 고이는군요.) 화롯불에 구워먹었던 고구마, 일품이었지요. 대한민국의 젊은이와 어린아이들, 에어콘은 알아도 "화로"는 모를 것입니다. 잊었던 추억, 되살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다시 돌아가 살라 하면 죽는 게 낫다는 말이 참 가슴아프네요. ㅜㅜ 거지중에 상거지, 특대형 거지, 에는 아주 폭소가 나왔지만요
@minsoochoi48423 жыл бұрын
강선생님 영상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립니다. 북한생활상을 구체적으로 구수하게, 재미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부 이야기는 우리 60년대, 70년대초와 비슷해서 추억회상합니다. 천정에 쥐, 밤에 변소 같이 가는 것 등... 자주 나오셔서 북한 생활모습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갈 수 있다면 북한가서 1주일만 생활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50년전 생활을 추억해 보고 싶어서요.
@phhjkim07133 жыл бұрын
강선생님 웃으시는 모습과 웃음소리가 너무나 진솔해 보입니다. 포항에 혹시 오실일이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식사대접해 드리고 싶네요.
@sagekim29313 жыл бұрын
70년도초반 외갓집가면 외할아버님께서 겨울에는 놋그릇화로불을 뒤척이시던기억이난다. 요즘은 어디 토속박물관에나가야 있던데...
@jennysong60183 жыл бұрын
참북한 한심하네요 잘들 오셨어요 생각만해도 끔찍스럽네요. 70년대 초까지 한국도 그랬어요 그이후부턴 빠른속도로 화장실이 변했죠 어릴때 학교에서 소풍가면 화장실가는게 끔찍스러워 친구들하고 산에가서 서로가 망보면서 소변 누고 내려오고했던 생각나요 북한은 나라도 아녜요 빨리 무너져야되요 ㅋㅋㅋㅋ 거지중에도 상거지 특대형거지 ㅎㅎㅎ 넘웃겨요 그지같은나라 빨리 통일되야지요 아버님 너무재밉었요
@김렬-z2v3 жыл бұрын
감자는 한끼는 먹을수가 있어도 두끼는 못 먹어용 !!!
@K경민-e2v3 жыл бұрын
강일구씨 짱짱 해여
@patriot39163 жыл бұрын
와 자막까지 빵빵 나오고 정말 좋습니다.
@안신자-b9b3 жыл бұрын
우리는 50년대 화로 사용했던거 같아요.
@써니써니-i4o3 жыл бұрын
그 힘든시절 향수도 힘들땐 힘이 되더군요! 그때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정도도... 얘기 들으면서 어린시절을 추억해봅니다!
@asfinagtransport33253 жыл бұрын
언제나 잘 보고 갑니다~ 화로는 아마 6~70년대 생이면 그리운 마음도 있을거에요. 저는 도시에 살았지만 시골 큰 집에 가면 여물 쑤고 숯 긁어모아 화로에 넣고, 그 위에 가래떡이나 군밤 같은거 구워먹은 추억이 있거든요. 지금은 물론 오븐으로 굽습니다만...ㅎㅎ 요샌 딱히 월동 준비라고 할게 없는 것 같아요. 겨울옷은 일년 내내 그냥 드레싱 룸에 넣어놓고, 이불도 사계절 내내 여름 홋이불 덮고 자니... ㅎㅎ
@TV-qf8hy3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영상 잘봤습니다 아버님 항상 재미있게 말씀 해주시는거 같아요 감사 합니다~~^^
@윤관중-z9f3 жыл бұрын
와~ 대박! (감자)완전웰빙식품만 드셨네요
@김어군3 жыл бұрын
일규 형님 언제 시간 나면 탁배기 한잔 하고 싶네요~따님 은정씨도 항상 행복 하세요~
@sunkk5508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50년대는그랬어요.초등학교시절이생각납니다
@동동동주-h2d3 жыл бұрын
저도 60년대 시골 살때 방안에 들여놓은 오강에서 소변보고, 방안에 화롯불 들여놓고, 화롯불에 참새고기 구워먹고, 엄마가 화롯불에 김 구워 주고, 짚으로 만든 움막을 들추고 땅에 묻은 항아리속 김장배추김치 꺼내 먹으면 진짜 맛있었고 고드름 따서 먹기도 하고 칼싸움도 했어요. 마을뒤에 야산이 있어서 난방은 나무로도 하고 추수한 깻대, 콩대로도 하고. 아궁이에 불때던 생각 나네요. 요리는 석유곤로로도 했어요. 등잔불로 조명을 하다 전기불은 1970년도에 들어온것 같아요. 1960년대에 새마을운동 한다고 초가집도 다 스레트지붕 집으로 바꾸고 마을길 신작로 넓히고 하던 생각 나네요. 새마을노래,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 부르던 생각나네요. 1970년대 라디오에서 북한방송이 잘 잡혀서 북한방송 많이 들었어요. 북한 여자 아나운서의 특유의 간들어진 목소리가 생각나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 하시었습니다. 그 방송 들으면서 신처럼 수령을 떠받들어야 하는 북한 사람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coolenjoynet3 жыл бұрын
저 어릴때 할머니 시골집에 가면 응가싸고 그 위에 재를 뿌리고 삽으로 응가 모으는 곳에 모아서 발효시켜서 거름으로 쓰던게 생각나네요...ㅋ
@왕펑3 жыл бұрын
어려웠던 시절... 사람의 삶이란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호두-h8l3 жыл бұрын
여기도 60~70년대 변소귀신 얘기 여러 장르가 있었지요. 대표적으로 빨간종이주까? 파란종이주까 진짜 무서웠어요 ㅠ
@김주현-g1o3 жыл бұрын
우리 60년대 70년대 네요~~ 60이상 되신 시골 분들은 다 공감 할듯...
@봄이-u3b3 жыл бұрын
북한은 겨울에 얼어죽을수 있다는게 실감하네요
@김법사-k3f3 жыл бұрын
형님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임채옥-m1c3 жыл бұрын
아버님 안녕하세요
@박동서-l4u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도 60,7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살았어요. 온 산이 발가벗었지요.
@초이스-h4u3 жыл бұрын
저희 어릴때 70~80년도에는 시골에서는 나무를 땔감으로 썼지요 장작을 준비합니다 물론 화로도있었구요 학교에서는 나무또는 석탄비슷 한것도 난로에.. 그후로는 연탄을지나 등유 보일 러로 바뀌었구요 북한을보면 70~80만도 못한것 같습니다..
어릴적 화장실 밖에 있어써요 나무도 옛날에는 산에 가서 해왔습니다 참고로 67년생 양띠 입니다
@김영석-c2u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60년대 생활 하고같습니다
@jyhyun6053 жыл бұрын
지도자를 잘 만나야 국민이 행복합니다
@young-om3sv3 жыл бұрын
ㅎㅎ 우리도 어릴적 서울이지만 변두리에는 초가집에 쥐,지네벌레,변소간 구데기,인분을 거름 준 밭가랭 ...... 생각나네요~~^^ 거저~ 남한이 너무 빨리 변해버린거죠 아바이텔레비젼으로 바뀌면 올드세대에게 인기 짱이겠어요^^
@workphonetk26873 жыл бұрын
화장실 이야기 쥐이야기 김장 이야기 어쩜 그렇게 같은지요
@정인구-m4c3 жыл бұрын
저도 어릴적 재래식화장실을 경험햇던 세대이기에 공감합니다! 지금은 마치 그런적이 없었던것처럼 살고는 있지만 이방송 멘트들으면서 아~나도 어릴적그랬지 하며 그때를 회상해보네요 아버님과 다정히 방송하는걸보니 보기좋군요! ,, 그목숨건 탈북과정을 마치격지 않은사람처럼요 ~ 보기좋군요 /앞으로 살다보면 시행착오 격으면서 그때의 시절을 망각하면서 사시겟지만 하루하루 즐기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coralreef37283 жыл бұрын
북녘 주민들의 월동준비에 대한 생생한 증언 잘 들었습니다. 역시 아버님의 실감나는 말씀은 내용 전달면에서 최고 !!! 저(猪)는 참수(斬首) 않 당하려고, 모든 동선(動線)을 극비로하고, 여러 개 사단의 특수부대들이 겹겹으로 경호한다는데, 언젠가 루마니아의 차우체스크 처럼 최후를 맞겠지요. 猪는 8 차 당 대회에서 '핵' 소리만 36 차례 부르짖으며, 한국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천 년 원수 중공이 北에 식량-에너지-무기 소재+기술을 제공한다고합니다.
통일되면 개인적으로 신의주에서 살고싶은데요.대륙과 이어지는 교통지대니까요,추위가 걱정입니다. 역사를 봐도 고구려전쟁은 원정하는 국가마다 추위로 다 무너졋지요. 여름에는 너무더워서 북한지역이 피서지역으로 좋겟지만 겨울은 정말 극한체험일거 같습니다. 강원도에 1주정도 겨울여행을 갔는데 정말 춥더라고요; 그런데 북한은 강원도가 가장 따뜻하다던데요? 난방이라도 잘되야하는데 걱정입니다.
@우주를행하여3 жыл бұрын
행복하게 잘 사시길 기도합니다.
@대한민국만세장희3 жыл бұрын
강선생님 예기 대충 알것이요 50여녀전에 우리도 그렇케 사는집 많았어요 우리는 고구마를 수수깡 역어서 한통 만들어서 긴긴밤 가족들이 한두대씩 깍아 먹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60년 70년 초반 그런것 같은데
@kjs69213 жыл бұрын
감자박살탕
@중석-x3d3 жыл бұрын
춥고 배고프고 지금 우리나라 에도 어려운 이웃들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데 더욱 어렵게 지낼것같아요 ᆢ
@사또-q2j3 жыл бұрын
은정씨 아버님과 행복하셨으면 좋겠네요
@jimyung303 жыл бұрын
아버님 말씀 정말 재밌게 잘하셔요 빠져들어서 들었어요
@kjs69213 жыл бұрын
강일규 선생님 뵈면 아버님 생각이 나네요
@버들피리-c9u3 жыл бұрын
효녀 은정씨도 그렇지만, 아버님 일규씨야 말로 수많은 탈북민 유투버 중 최고의 인기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라며 다음 영상 기다립니다.
@adorable25453 жыл бұрын
은정님 아버지랑 이 이야기좀 다뤄 주세요. 92년도 IMF(국제통화기금)를 겪고 금 모으기 운동해서 극복했던것과. 또 태안 앞바다 대형 배 충돌 사고로 기름유출 했는데 우리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 손잡고 가족들이 가서 자원봉사해서 원상복귀 했던 우리나라 국민성에대해 탈북민으로서 느낀점을 듣고 싶어요,, 그때 IMF때 은행대출 금지되고 회사 문닫고 실업자 생겨 가장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모두가 눈물로 엄청 크나큰 고통을 그때 겪었었지요. 이런 감동의 영상 모아서 보시고 아버지랑 꼭 느낀점을 이야기 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