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튜브의 역사파트를 사랑해주시는 분 감사드립니다 위화도 회군과 고려의 멸망 요동정벌 정도전의 개혁 등논란이 되는 주제에 관해서는 저희 인문채널휴에 좀 더 자세한 강연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박성용-z1k4 жыл бұрын
박사님 언제나 즐겨보고 있습니다. 영상 언제나 기대하고 있어요
@명카츄4 жыл бұрын
박사님 이 리플보고 당장 달려가서 보고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재밌게 쉽게 역사 알려주시는 모습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complex02454 жыл бұрын
IF 만약에 일본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하지 않았고, 미국과 몰래 맺었던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유지하면서 태평양 서쪽에 해당하는 동아시아 위주로만 집중했다면. 근대사는 어떻게 됐을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L_c__y-n4b4 жыл бұрын
@@complex0245 우리나라입장에선 최악이네요 만약 그랬다면 한글은 정말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박근형-u9w4 жыл бұрын
동학농민운동이 성공 하였다면
@rogue25863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도 당시 요동을 먹긴 힘들었음 이미 고려시대에 요동성을 먹고도 퇴각 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일시적인 함락은 가능해도 관리 파견하고 주민 이주하여 영토 확장 하는 건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는 반증이죠. 요동에서 한참 남쪽인 4군 6진 조차 백성을 이주 시키는게 힘들었고 군인들 조차 가기 싫어 일부러 비리 저질러서 처벌받는 일도 종종 있었음 고구려도 괜히 전성기에 국내성이 아닌 평양 일대로 이주한게 아님
@바르톨로메오크리스토3 жыл бұрын
👌
@안치문-q4u3 жыл бұрын
위화도는 여의도의 13배 되는 큰섬이고 단순한 모래톱이 아닌 높은곳 해발(강물기준)10m 로 넓은 농경지가 있고,요동(요양,심양)쪽으로 진격하는 지름길은 아랫쪽에 있는 위화도로 가야만 강을2개 건너게 되고,윗쪽 옛길(나루)로 가게되면 큰강을5개나 건너야 하고 건너자마자 험지에 큰성이 버티고 있기 때문 입니다.
@pocari_song4 жыл бұрын
샤를세환님이 밀덕으로 부럽다면 허준님은 이렇게 여러 박사님들을 통해 많은걸 알아가는게 부럽다
@naruhd4 жыл бұрын
역사 + 족발 방송은 역사상 최초일듯..ㅎㅎ
@bignose_164 жыл бұрын
역사포차같아서 이런 느낌이 너무 좋네요~ㅎㅎ
@양동훈-j3h2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을 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 응원하겠습니다. ☝️😇🙏😂😀💕🤘✍️
@YHChoiable3 жыл бұрын
2:28 위화도의 위치가 잘못 표시된 것 같습니다. 지도상 저 곳은 위화도로 자주 잘못 나오는 지역이고, 위화도는 이보다 좀 더 위에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압록강 하중도 십여개중 가장 큰 곳이 위화도입니다.
@ttff99784 жыл бұрын
15분 짜린데 진짜 유익한 정보 얻고 갑니다.
@황필립의잡동사니4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조선건국도 세종대왕의 탄생도 없었겠죠 하지만 우리역사에 북벌의 꿈을 제대로 이룬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좀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imssm23 жыл бұрын
아마도 역사가 많이 바뀌어있겠죠 훗날에 조선족이 독립하면 또 모를까
@yops85744 жыл бұрын
진짜 콘텐츠 좋다 허준씨 굿 아이이디어
@hyj78624 жыл бұрын
와 방금 임박사님 채널 생방보고 왔더니 개진상까지!!!! 게다가 제 아이디어 채택되어서 엄청 신나네요!!!!
@PeacefulMusicTri4 жыл бұрын
잘보면 허준님도 역사 상식이 굉장히 풍부하십니다.ㄷㄷ 루비콘강이 바로 나오시다니...
@이진용-j9w4 жыл бұрын
예전에 국방티비 토크멘타리 전쟁사에서 허준씨가 사회보면서 씨저에 대한 로마전쟁편이 있어요 거기서 루비콘강이며 갈리아정벌이며 다 나와서 모를수가 없죠 이미 방송까지 한건데요 ㅎ
@오유석victorio4 жыл бұрын
임박사님 소개 영원한 삼국지 아저씨 ㅋㅋㅋㅋㅋ
@redshield28424 жыл бұрын
결론은 조선반도 색이들은 영원히 조선반도를 벗어날수 없다 이말이네 ㅋㅋ 감솨합니다 역시 소국은 대국을 섬겨야죠
@오유석victorio4 жыл бұрын
@@redshield2842 그걸 왜 제 대댓글에?
@jsobbajjsl70424 жыл бұрын
@@오유석victorio 별사람 다있죠 이 세상에는
@외롭지않아-d1c3 жыл бұрын
@@redshield2842 뭐지?
@snavahabx3 жыл бұрын
@@외롭지않아-d1c 중궈인듯
@용이엄마-o6n4 жыл бұрын
오호%@% 너무 좋아요 재미있고 상상력 뿜어내는 역사 좋아요 허준님 파이팅 하시고 박사님들 너무 좋아요 사랑합니다♡♡♡
@senkim72604 жыл бұрын
제 생각은 고려 말 부터 조선 초기의 개혁 정신이 세조로 오면서 개혁은 사라지고 권위만 남게 된것 같습니다. 단지 왕실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말이죠. 당연히 신분을 얻었으면 개혁을 빨리 끝내고 그것을 굳히고 싶었겠죠. 조선시대의 문제점은 초기의 개혁을 너무 일찍 끝냈고 그 정신마저 단절해 버린 거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는 너무 왕조가 오래 갔다고 봅니다. 쿠테타든 뭐든 한번 더 뒤집혔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주라발발타4 жыл бұрын
뒤집히지 않은것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사에서 1392년 이후 생긴나라중 500년이상 왕조가 유지된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것나름대로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여
@sunkim39994 жыл бұрын
초반에 태종이 국가 시스템 버그를 싹 날리고 최적화를 시켜버렸기에 500년 유지가 가능했을거라 봐요. 생각보다 외척이나 직계혈통의 형제들이 살아있으면, 얘도 정통 쟤도 정통 그래서 언제든 피바람이 불 수 있는데, 초기에 그걸 싹 잡아서....후대 왕들이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악성코드나 시스템 꼬이는거 푸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유지할 수 있었다고 봐야죠. 지 아들까지 뒤주에 넣어 죽일 정도로요.
@강아지고양이-g3o3 жыл бұрын
이 나라 민족성 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음. 그나마 초반에 많이 해놔서 다행이었지. 당장 한국만 봐도 상공업 발전 근본론을 부정하고 정치도덕이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하는 21세기 성리학자같은 정치인들 슬금슬금 기어나와 결국 정권까지 잡았잖아요. 지들이 하는 짓이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없지만 도덕적인 개혁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면서. 국민들도 그런 인간들 주장 맞다고 맞장구치기 바쁘고. 조선하고 다른 게 뭔가요? 조선도 현실문제 중시하던 관학파를 정치도덕 중시하는 사림파가 밀어내며 그렇게 된 거 뿐입니다. 지금 나라꼬라지 보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고요. 국민성이 이런데 뭐.. 그나마 자유주의라는 사상적 방어장치가 있는 현대 한국에서도 막기 힘든 게 정치도덕 광기인데 아예 대놓고 성리학밖에 없던 조선시대에 성리학으로 공격하는 사림파를 뭔 수로 막겠음?
H i / 공문서가 버젓이 나왔는데 , 저게 왜 개소리인거임?? 저게 거짓말이면 니가 함 반박해보던가
@김경모-p9r3 жыл бұрын
2:28 지도에서 위화도라고 나온 섬은 류초도이고 위화도는 신의주 동북쪽에 보이는 압록강 물줄기가 2개에서 하나로 모이는 곳에 있는 섬입니다.
@apc8493 жыл бұрын
고려가 과연 점령지를 유지할 수 있었나를 생각하면 요동정복의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긴 어렵죠. 정복이란 것이 당사자의 의지, 현 국제정세 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니.
@박승강-r2y4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은 게임으로치면 트롤러들 다보인 판에서 빠른 리겜각이냐, 아니면 좀 해보고 탈주하냐의 차이 같네요.
@고광기-h8g4 жыл бұрын
이해가 쏚쏙!!!!
@BangdengE4 жыл бұрын
굳이 말하면 거의 다 말아먹은 게임 바론 뺏고 영혼 먹어서 역전 했는데 우리팀이 던지냐 상대팀이 사리냐 대결임
@즉시창조4 жыл бұрын
@@BangdengE 1절
@ssssohn14 жыл бұрын
저를 역사 덕후로 만들어 주신 허준씨, 임용환박사님 두 분이 좌우에서 깔끔 명확하게 정리해 주시네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였는데, 의미있고 좋은 인식이 된 거 같아 감사합니다. 토크멘터리 70편까지 몰입시청해 오면서, 몇몇 쓴 댓글도 달았지만, 두 분 팬이 된거 자수합니다^^. 그나저나, 언제 199편까지 달려갈지..ㅠㅠ
@이연-b3j4 жыл бұрын
"고려는 기상이 굳건한데 조선이 생겨서 사대를 중시하게 됐다"가 말씀대로 성립 할 수 없듯이 "아니다"또 한 성립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모두 사건의 연속성을 가진 나비효과로 맞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확고하게 "이것은 아니다" 라고도 말 못 하는 문제 "아닐수 있다"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의견 저런의견 답은 없지만 틀린의견이 아닌 다른의견이 맞는 듯 합니다.
@기자형의수리수리마4 жыл бұрын
정말 재미있게 잘보고 있는 기자형 입니다. 허준씨의 기막힌 콘텐츠 아이디어 칭찬합니다^^ 역사를 한번 더 되돌려보고 한번더 생각하게 해주는 알찬 콘텐츠~
@itbeat78994 жыл бұрын
언제나처럼 재밌게 보겠습니다. 박사님들 화이팅!
@itbeat78994 жыл бұрын
허튜브도 화이팅 ㅋㅋ
@아메-r5z3 жыл бұрын
다긁어모은 병력5만으로 당시 북원과 전투중인 명이었기에 요동을 먹을수는 있었을것같습니다.요동을 점령했어도 5만병력이 전부인고려가 명의 지속적인 공격으로부터는 절대 못버틸것같네요.최전선 5만병력이 뚫리는순간 후방은 무주공산임.그당시 명의 국력이면 20만씩 전멸당해도 5번이상은 쳐들어올수있었을것같음
@coupangpang39993 жыл бұрын
저당시에 동원한 병력은 10만이라고 하더군요
@공수겸장-x9q3 жыл бұрын
쌉인정 저시대에는 쪽수가 많으면 장땡인 시절임
@style_k3 жыл бұрын
쪽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명나라는 원나라 까지 싸그리 몰살 시키고 청소하던 최정예 였고, 당시 고려 병사들은 고려 장정들 박박 긁어 모은 일반 병사들 이었음,,, 더 중요한건 보급이 안되서 전쟁중에 굶어 죽었을듯
@12k-t2x4 жыл бұрын
공무원하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사를 필수적으로 배우게되고 또 한국사라는 과목이 재미있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생김으로 그걸보고 그 배움으로 통해서 역사를 보는 주관적 시점이 생기다 보니 여러가지 if가 생긴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듣도 보도 못한 소리가 나온게 아닐까합니다.
@론아-p6i4 жыл бұрын
준형 언제 이벤트 해주세요 참가자 뽑아서 일반일들 옆에서 같이 참여할수 있게 저도 저분들이랑 같이 대화하보고 싶어요
@coffeesilver34174 жыл бұрын
최영 장군이 고구려의 연개소문 정도의 인물이었군요 이 사람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고려는 무너질거란 말씀을 하실정도라니... 고구려도 연개소문 사후 무너져 내렸죠.. 고려 얘기를 하니까 생각이 난것인대, 만약 궁예가 권력에 취하지않고 성군으로 남아 왕건이 세운 고려가 아닌 궁예의 태봉이 후삼국을 통일 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고려에서 조선이 아닌 태봉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정도로 그쳤을까요? 고려는 외침에 단호히 맞설정도로 강인했지만 민생안정이 목적이었는지 한반도 밖으로 나아가는 정복전쟁을 펼치진 않았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궁예는 태봉, 마진 건국때부터 거란과 여진을 정벌하고 옛 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북진을 추구했다는데, 태봉이 후삼국을 통일했다면 그게 성공했을까도 궁금하네요.
@JPDin4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신도시 하나 지으면 도시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데 10년 이상 걸리는데... 요동을 먹었다해도 이주시키고 정착하는데 들어갈 비용, 인력 감당 안됨. 또 그 당시 거의 바닥에 가까웠던 고려재정으론 더더욱... 회군 안 했어도 쿠데타 분명 일어났을거임
오!!!우연히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끝까지 보고있네ㅋㅋㅋ 좋아요와 구독 누르고 갑니다.
@j86634 жыл бұрын
요동정벌때 만약 비가 오지않았더라면 아니면 정벌시기를 늦추었더라면... 그러고 보니 사극 용의 눈물편에서 이방원이 1차 왕자의난을 일으킨 원인을 정도전의 요동정벌 때문이라고 하는거 같더군요 정도전의 생각에는 요동정벌만 성공하면 조선제국을 세울수 있고 성주로는 이방원을 시키면 될거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던걸로 말이죠
@장두석-d5h4 жыл бұрын
형님 너무 재밌습니다 ㅋㅋㅋ
@bbokdoong3 жыл бұрын
역사에서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죠.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세종대왕도 한글도 이순신도 거북선도 없었겠죠. 우리나라가 만주를 회복해서 강대국이 됐을것이다? 강대국이 됐는데 히데요시의 일본에게 점령당해 없어졌을수도 있죠.
@amuro59684 жыл бұрын
역사강사들이 국뽕강의하는거 보다가 이거보니 정화되는것같네요
@user-ed4eg4ms3j4 жыл бұрын
저는 세월뽕 쳐맞은 버러지 세월호 헬원고 윾가족이 더 역겨워요
@t-ho4 жыл бұрын
You Tube 아직도 이런놈이 잇네
@user-ed4eg4ms3j4 жыл бұрын
@@t-ho 세월호 hell원고 구데기
@sunglee86084 жыл бұрын
ㅉㅉ 국뽕강의라뇨 ? 다 한국의 역사 사실을 말하시는 유튜버들인데 님 정말 삐뚫어지신분이신듯
@ghwnsha4 жыл бұрын
@@sunglee8608 왜 풀발기냐 ㅋㅋㅋㅋㅋㅋㅋ 유튜브에서 설치는놈들 제정신 아닌 국뽕들인거 펙트인데 혼자 풀발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금은 재정 더 안좋아도 점령이 가능했던 이유가 요동지역의 사람들이 대부분 만주족 계열이라 민심을 쉽게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죠. 근데 고려는 고려인이 요동을 먹은지 꽤 오래돼서 큰 연고가 없었고,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한중왕유비4 жыл бұрын
@@hsh6036 기록에보면 발해멸망400년후인데도 아직 고려(고구려)계통인구가 많았나봅니다. 이성계자체도 친여진세력이 매우큽니다. 이성계의 1차정벌때, 대부분 반겼고, 고려계통을 해방시켜준다는 방을붙이자 수만명이 모였단 기록도있죠
@hsh60364 жыл бұрын
@@한중왕유비 그래서 정도전이 조선세우고 요동정벌 주장한게 이성계 있을 때가 그나마 가능성 있다고 생각을 했을거고, 최영이 이성계에게 맡긴거도 그거때문일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류민족이 동족인 것과 비주류민족이 동족인 것은 그래도 차이가 있죠. 후금은 요동의 주류 민족이 동족인거고 고려는 요동의 주류가 아닌 여러 소수민족중 큰 부류의 민족이 동족인거니까
@한중왕유비4 жыл бұрын
@@hsh6036 그정도 차이는 있을수있지만, 요동쪽 지역은, 여진족이 통치자로 지배했던건, 사실상 이때가 처음입니다. 고조선-고구려-당-발해가 계속 지배계층이었고, 요동은 고구려계통의 인구수가 상당할걸로 보입니다. 천년이 넘게 요동은 고구려-발해가 지배했으니깐요. 여진족세력이 강한곳은 동만주였죠. 함경도도 사실상 여진족이 수백년을 있었지만, 조선이 점령후 금방 흡수당했죠. 1000년넘게 고구려계툥이 지배했다면, 그쪽 만큼은 당시 여진이 흡수한지역이라고 볼수없습니다. 아 그이전에 금이 잠시지배한적은 있긴하네요 이부분 정정.
@hsh60364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요동정벌의 문제가 뭐냐면 요동땅을 보시면 반도랑 한반도 근처는 산지이지만 요하 동쪽은 쭉 평야에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먹기도 쉬운데 그만큼 빼앗기기도 쉽다는 뜻이에요. 만약에 삼국지의 촉지방, 지금의 사천성처럼 분지지역 느낌이면 먹기는 빡시지만 한번 먹으면 지키기가 쉬워서 성 쌓은 다음 뻐기면 되는데 요동 자체는 뻐기기가 힘들죠. 게다가 명 입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라 죽어라 뺏으려 들거고, 고구려시대에야 철갑기병이 굉장히 파괴력있던 시대라서 철 생산지인 요동이 메리트가 엄청나게 컸지만 조선시대엔 철갑기병에 대한 대처법이 어느정도 나와서 상대적으로 군사적 메리트도 그 시대에 비해 떨어지죠. 결론적으로 요동 정벌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차라리 명한테 일단은 고개숙이고 국력을 키우면서 명의 내분을 기다리는게 최선의 선택이였다고 생각해요
@winwinwinw4 жыл бұрын
최근에 발견하고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계속 재밌는 컨텐츠 부탁드립니다
@koreastar4 жыл бұрын
역주행까지!! 감사합니다~~!!
@쩐다-s7z4 жыл бұрын
진짜 사이다 2리터 마신거 같다 사람들이 조선은 유교에 사대만 한 답답한 나라라고 까기만 하는데요.. 사실 지극히 단편적으로 고려의 국제무역 고려청자 등 화려한 예술품 제사 물려받는 등 여성권리가 조선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극히 일부만 보고 고려가 조선보다 진취적이다 조선은 퇴보했다는 등 까는거 보면 너무 답답했는데 진짜 좋은 영상인거 같아요~ 고려시대 조선보다 외침이 훨씬 많아서 치안도 불안하던 때가 많았고 귀족사회의 고착화로 인해 무신정변이 괜히 일어난게 아닐 정도로 훨씬 계층간에 폐쇄적이었죠 또 사찰과 승려들은 시간이 갈수록 왕실과 귀족과 유착되서 부패와 수탈은 상상초월이었습니다 민란 때 백성들의 공격 1순위가 절이었을 만큼 대중의 분노를 샀었을 정도고 괜히 사대부들이 단순 유교때문에 게거품 물고 조선초기 불교를 탄압한게 아닙니다. 폐단이 극심했기 때문이죠 영상에서 나온대로 이미 고려 말기가 되었을 때는 위정자들 특히 개혁파들은 고려를 뜯어고쳐서 갈아엎어야 할 대상으로 봤을 정도입니다. 고려말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 조선을 까는 현대인들의 인식처럼 백성들이 고려가 조선보다 살기 좋은 국가였을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결정적으로 조선의 국력과 군사력이 약하다지만 영토도 조선이 고려보다 더 넓었잖아요 이 영상을 보고 많은 대중들이 오해를 풀고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화이팅입니다!
@쩐다-s7z4 жыл бұрын
@@장채원-t4t 님 말씀대로 고려와 조선 사실 500여년간 존속한 나라인데 한 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죠 ㅎㅎ 일단 저는 그간 댓글들이나 반응들이 고려>>>조선 이런식으로 단편적으로 까는 경향이 심해서 두 나라가 장단점이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고려도 폐단이 강했다는 측면을 짚지 않고 일부만 보기 때문에 조금 안 좋은 면을 짚기 위해 이야기한 것이죠. 저도 단순하게 조선>>고려 또는 고려>>조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상이 생각할 시야를 넓혀줘서 좋은 것이죠 영토는 착각한 것은 아닙니다. 강역과 지금의 국경선은 다를 따름이죠. 심양까지 영향력이 있었다고 그게 고려의 국력 신장이 된다거나 실질 지배영토였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님도 말씀하셨다시피 고려왕족을 통해 견제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더욱 정부의 실효지배가 가능했냐는 다른 문제죠 그것도 100년도 못갔구요 그렇게 보면 간도도 조선백성이 농사짓고 살고 어느정도 영향력이 미쳤기에 우리의 강역이 꽤 넓어집니다. 논란이 많죠 간도가 어디까지였는지 두고.. 다만 영향력과 실제 국경 실효지배는 또 다릅니다.강역과 국경을 같은 개념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청나라와 국경을 결정짓게 되죠 그리고 고려가 조선보다 국경이 작았다고 해서 국력이 약하거나 조선이 먹은땅이 알짜였냐는 또 다른 문제란걸 저도 압니다. 고려의 중앙지배력이 약하기 때문에 불교 특히 사찰이 치안 징세 등 행정기구 역할도 겸한 것도 중세유럽의 카톨릭 비슷한 위치인것도 (차이가 있지만) 맞습니다. 다만 상기한대로 대부분 조선= 쓰레기 혹은 고려 혹은 고구려가 이어졌어야 했는데 하는 너무 단편적인 해석과 감정적인 글이 많아서 영토문제와 고려의 폐단. 그리고 조선초기 왜 그렇게 개혁하려 했는지 이해가 없는 분들을 위해 댓글을 쓴 것입니다. 댓글들 쭉 보세요. 실제로 영상에서 박사님들이 제발 오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하시지만 여전히 욕 투성이라 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좀 더 많은 걸 생각할 수 있도록 이런 영상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을 뿐이죠.
@okikika30264 жыл бұрын
영토야 조선이 넓은건 세종때 4군6진 이고 그 이후 간도관련해서 기록도애매하고 고려때 진취적으로보인건 그만큼 거란,여진과의 전쟁으로 나라를 지켜내고 북진정책에서 수비만한 이미지지만 조선초중기까지 만주에 국가들이고려때는 오히려 금나라 이후 몽골원나라까지 고려해야겠죠...
@fhfzpdlrxla4 жыл бұрын
침략은 잘 막아내는 것보단 최대한 줄이는 게 더 나은데, 왜 그걸 다들 간과하시는지...
@오규열-v2r4 жыл бұрын
항상 나오는말이, 조선때가 고려때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발전했다는데.. 시대적 진보는 생각안하는지?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정경사는 발전을 하죠. 그건 고려나 조선의 우두머리 개인이 이끄는게 아닌, 사회적 분위기가 이끄는거라고 생각해요. 팩트는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발전이 급격이 이뤄지며 글로벌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조선은 임란이후로 굉장히 폐쇄적으로 변하며 막장으로 치달았다는거. 동아시아에서 조선대가 가장 영향력이 적었다는거. 그건 팩트죠.
@즐기는사람-l1s3 жыл бұрын
위화도의 위치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과 분석이 있습니다. 인하대 복기대교수팀이죠
@user-mp4re1bx3g4 жыл бұрын
이 영상 안봤으면 ㄹㅇ 평생 위화도가 섬인줄 알았을듯. 그냥 모래톱이구나
@청솔향-g9u4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모래 톱입니다. 600년전에는 어땟는지 누구도 모르죠!
@Meunuaru4 жыл бұрын
그것도 섬은 섬이죠. 여의도도 옛날에는 그냥 모래톱이었는데
@uijinlee70164 жыл бұрын
@@청솔향-g9u 600년 가지고는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큰 지진이나 화산이 터지지 않는 한 말이죠..
@청솔향-g9u4 жыл бұрын
@@uijinlee7016 //네! 물론 안정된 지질구조나 노년기 지형이라면 그렇지요. 하지만 강 하구의 천중도만큼 변화무쌍한게 있을까요? 과거 현대의 지형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하던 사람들이 단체로 좆된적이 있었지요. 왜냐하면 오랜 시간동안 강줄기가 완전하게 바뀌어 버린 겁니다. 그정도로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위치때문에 뭔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지형입니다. 게다가 한반도 서해안 강 하구는 조수차가 극단적으로 크고 퇴적층이 홍수한번 날때마다 난리치는 곳입니다.
@user-umop23erty4 жыл бұрын
@@uijinlee7016 암반이 아니면 하천 주변 지형은 백년만에도 바뀝니다 ㅋㅋㅋㅋ
@golden_radix43544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의 뿌리는 부여에 있는데 자료가 너무 없는거 같아요. 주제로 한번 다뤄주시면 좋을꺼 같습니다. 또 고대삼국의 언어차이와 지금우리가 쓰고있는 언어는 그 뿌리가 어딘지도 다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jjk27694 жыл бұрын
간단히 말해서 위화도 회군 안했으면 부우덕의 20만대군과 북원을 초토화 시키고 회군하던 남옥의 15만 기병 도합 35만대군을 상대해야함 그것도 야전으로 만약 명군이 야전 안벌이고 수성전만해도 병참능력 극악을 달리던 고려군은 알아서 무너짐. 그러면 개경은 다이렉트지 뭐
@steveyu79474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는 고려가 무너진것이 시스템의 한계에 도달했기에 변화가일어났다는것에 부분 동의합니다ᆢ 이건 고려라서가 아니라, 어느 정권의 시스템을 막론하고 변화의 요구는 계속있는것이기도 하고, 신생세력이 기존세력을 밀어내려는 과정은 끊임없이 발생하는것이니까요... 또한 위화도회군을 한것 역시 당시 그시점의 국력으로는 한계치가 있어서 일시 점령한다 하여도 이후 현실적으로 안정화된 명나라를 지속 감당하기 어렵기에 그시점의 현실을 반영한 결정을 했다는것 역시 부문 동의하구요 고려말 그시점은 최대 5만정도를 동원 가능한 국력으로 점령후 향후 안정을 찾게되면 수십만씩 동원이 가능한 명을 원거리에서 장기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을껄로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역사는 누구도 장담못합니다. 또 역사는 승자의 역사아니겠습니까? 만일 고려가 5만을 동원해 북원과 같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명초기에 영향력이 아직 미약한 요동을 치고 위화도 및 주변을 세력권에 넣는다면, 그리고 이것을 발판으로 북원이 계속 건재하였다면, 최영의 의도대로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비약일 수 있지만, 북원은 고려를 더욱더 함부로 할 수 없고, 명 역시 고려를 적으로 돌릴수는 없을것이며, 황제국의 지위를 다시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생각입니다. 고려는 안정만 된다면, 역사적으로 군사적 강국이었습니다. 중기전까지만 하더라도 30만이상을 보유했으며, 윤관의 17만 별무반처럼 대규모 원정군을 가진적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고려는 그만큼 강국이 될수있는 DNA가 있었습니다. 이런가정들과는 또다른 한편으로 넥스트 시스템으로써 조선의 적합성과 기존 고려시스템 개선 중 어떤것이 장기적으로 민족의 발전에 도움이되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 중소지주출신이 많은 신진사대부들이 당시 권문세족과 거리가 있고 중앙권력에서 떨어져있는 이성계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함께 고려말의 정권의 약함과 주변국 정체의 혼란한 시점을 노려 기존 기득권인 권문세족과 고려왕조를 몰아내고 새로운 기득권으로써 등장한것이 과연 시대적인 필요에 의한것인지 아님 권력의 투쟁으로써 새로운 권력층의 선택인지 냉정히 생각해봐야하지않을까요 현대에 와서 역사를 정립할때 고려말이 총체적인 한계가 왔다 하겠지만ᆢ 사실 총체적인 위기를 따지자면 고려중기 무신정권때 수십년간 강화도로 천도를 하면서까지 대몽항쟁을 했던때가 더큰 한계점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최강국인 원나라를 상대 하는것 만큼 시스템의 위기와 한계가 고려 역사속에서 어디있었겠습니까? 원을 상대한 나라들은 멸망하거나 사직이 없어지거나 둘중하나였지만, 고려시스템은 그런여건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오히려 고려말의 상황은 원명교체기때라 주변국의 간섭과 힘이 약화된 시점으로 다시금 고려가 부흥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던 상황과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장군도 무리를 해서라도 5만명의 원정군을 꾸려 조율자의 지위를 차지하려했던거구요. 개인적으로 최영장군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신진사대부는 이때를 오히려 자기들이 정권을 차지할수있는 적기로 봤고, 힘을 보태야할때 칼을 꺼꾸로겨누었습니다. 그어떤 시스템도 내부에서 신진사대부같이 하면 버티기 힘들것입니다. 무신정권과 100년의 원나라 지배로 약화된 고려시스템이 내부의 적으로 불시에 공격받아 시스템이 다운된것이지, 시스템이 떨어지거나, 잠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분명히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신진사대부들이 자신들의 정권유지와 체계를 위해 구축한것들..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선택함으로써 사회를 철저하게 양반 선비제도의 경직된 신분제를 만들고 본인들의 당위성 명분으로 반원친명을 통해 수백년간 사대문화를 만들고 역사관과 시대관을 한반도로 국한시켜버린것은 결코 시대적인 요구가 아닌 새로운 기득권인 신진사대부들이 대내외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써 택했다는거라고 생각되며, 여기에 더해 반란의 위험을 없애고자 중앙집권체제지만 학문과 예식만을 고집하는 문화때문에 역사에서 오랑캐들에게 수많은 굴욕이 발생했다는건 조선이라는 시스템 역시 고려대비 총체적으로 우위에있는 시스템은 결코 아니며 문제와 모순된 개선점이 많은 시스템이였다는 것입니다. 고려는 임진왜란때 선조처럼 나라를 버리고 도망갔던 왕도 없었고, 병자호란때 인조같이 굴욕을 당한왕도 없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때는 이순신이란 특별한 위인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함에도 그시스템이 오히려 방해를 하는 모순의 최고봉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고려말시스템에서 정몽주가 계속있어서 개선이필요한 부분을 고치고 재편했다면 좋았을것이라고 종합의견드리며 이만줄이겠습니다.
@Yaid10244 жыл бұрын
유능한 교수님,박사님들 모셔놓으니 너무 재밌네요ㅎㅎㅎㅎ
@kmr95464 жыл бұрын
우리 허준형님 영상 고맙습니다
@senkim72604 жыл бұрын
ㅋㅋㅋ 전 임박사님이 저자세인것을 정말 처음 봅니다.
@우중문-t1b4 жыл бұрын
역사의 이면을 알수있는 좋은 영상이네요
@김민철-d1n1k4 жыл бұрын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공민왕 때가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만약에 노국공주가 죽지 않고 오래살았더라면 개진상 IF도 해주세요~ 박사님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합니다.
@트리이카리아4 жыл бұрын
진짜 진짜 재밌어요~~~^^
@남호양-m5z4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항상 유익했지만 오늘은 진짜 역대급이였던거 같습니다....항상 좋아요 눌렀지만 오늘은 특별해 3번누르고갈께요
@mjkim46364 жыл бұрын
If 언제나 기다림ㅎㅎ
@shj974 жыл бұрын
사실 요동가면 ㅈ되는게 그 당시 명나라는 명장들이 넘칠때라 정말 수여전쟁처럼 100만 대군이 한반도로 왔을지도 모르는 상태였죠. 전 회군이 민족을 위해 옳은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arona69714 жыл бұрын
명나라 건국되고 많은 장군들 숙청되지 않았었나요?
@유명천작4 жыл бұрын
@@arona6971 그 때는 이미 천하가 안정되엇을때에요. 한참 지난다음입니다.
@미제드론4 жыл бұрын
@@arona6971 그 다음세대격인 영락제가 명 주변국들에게는 더더 헬이었죠
@유유킹-r2q4 жыл бұрын
오늘도 감사합니다!!!
@kimtj-mf2yq4 жыл бұрын
13:18 시원
@joguk13464 жыл бұрын
잘보고 가요^^
@kth2602784 жыл бұрын
와~~출연진 실화입니까?ㄷㄷ
@ehdgmlalfla4 жыл бұрын
ㅎㅎㅎ 이번 편도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합도 좋네요! ㅎㅎㅎ 그나ㅏ 족발이 땡기네요...ㅋㅋㅋ
@킴바-c2e4 жыл бұрын
본인을 위해 국뽕을 조미료로 넣어 연기나하는 그런 사람 보다가 담백한걸 보니 속이 풀리는 느낌이다
@nabe49874 жыл бұрын
설○석ㅋㅋㅋ
@다이키리-i3b3 жыл бұрын
땡민땡
@julee03532 жыл бұрын
교수님들이 찐이죠...👍👍👍
@chatnoir7094 жыл бұрын
평소 궁금했던 점들이 해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걱-x7q4 жыл бұрын
심양에서 왕 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술합참4 жыл бұрын
꿀잼 이내요 박사님들 화이팅
@정재묵-w6c4 жыл бұрын
지식이 있어야 가정할 수 있는 것. 좋은 말이네요
@FightCast4 жыл бұрын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부탁드립니다~^^
@inowhere2154 жыл бұрын
허준형님 정리하는 거 장난아니다 ㄷㄷ
@Tristan748594 жыл бұрын
배경 실화인가ㅋㅋㅋㅋ리얼토크쇼네
@ookjoo20003 жыл бұрын
재밌네요 ㅎㅎ 이런거 좋아요
@황순영-g1t4 жыл бұрын
허준님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졌다면 if로 다뤄주세요 ㅎㅎ
@고광기-h8g4 жыл бұрын
이거 재밌겠다;;;ㄷㄷ
@날개이름4 жыл бұрын
리틀보이 펫보이가 없었다면, 진짜 다운폴작전이 실행됬을까? 1억 총옥쇄 진짜 했을까?
@gbchoi33894 жыл бұрын
흥미로운주제네요 늦출순있지만 대세를 거스를순 없다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세박사님이 판단하기에 한국사에서부터 세계사까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른 사건이나 시도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Horowitz.Vladimir4 жыл бұрын
결론 추가 : 사람의 결정 하나로 역사가 바뀌는 일은 극히 드문, 거의 없을 수도 있는 일이다
@andoroi27874 жыл бұрын
근데 그것도 그렇다고 단정지을수 있나 뭐 하나만 달라져도 나비효과가 엄청 클거같은데
@정군-u5i4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후동님 말대로 나비효과라는건 무서운건데.. 사람 결정하나에도 얼마나 많은게 연쇄적으로 바뀔수가 있는건데..
@blur990094 жыл бұрын
@@정군-u5i 이 영상에서 나오듯이 개혁의 속도를 빠르게 했냐 느리게 했냐. 전체적으로 바꿀 기회가 왔냐 아니면 그 기회가 천천히 점진적으로 왔냐의 차이일뿐. 역사의 전체적 방향을 확 바꿀 수는 없음.
@lilillliilililll60884 жыл бұрын
나는 창업군주가 어젠다 키핑을 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봄 터키의 그리스 침공이나 레콩키스타는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일어났는데 세계사 바꿔버림
@blur990094 жыл бұрын
@@lilillliilililll6088 한사람의 결정 같지만 그 밑에는 이미 그런 흐름이 있었으니 가능하러
@spearfong48736 ай бұрын
우리민족 역사상 만주를 수복할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이때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요동과 만주를 수복할수 없을겁니다.고려의 요동정벌 당시 요동지역에는 원나라에 끌려간 많은 고려유민들이 있었고 이들과 힘을 합쳐 요동을 통치할수있는 기반은 충분히 있던게 사실입니다.위화도회군 이전 요동을 일시적으로 점령한적도 있었고 당시 원나라가 세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명나라를 견제할수있는 정도의 힘은 있었다고 봅니다.위화도회군 이전보다 더 일찍 원나라와 협력하며 명나라를 견제하고 요동을 점령하였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명장 최영장군이 총사령관이 되어 요동정벌후 고려유민과 함께 요동성을 굳건히 지키고 원나라와 협력하여 명나라를 견제하고 여진족을 회유하여 만주지역을 적절히 통치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겁니다.무엇보다 고구려의 삼국시대와 달리 고려는 한반도의 통일왕조여서 북방지역을 수비하기에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halidabasid47064 жыл бұрын
1. 북원은 위화도 회군 2주일전 수도가 함락당하고 실질적으로 망했다. 2. 요동 수비병은 명나라 편제상 대략 6만7천이 주둔중이다.(국가 초기라 서류상 군대도 아님) 3. 북원을 박살낸 남옥은 15만 대군을 가지고 몽골에 있었다. 4. 북경에서는 연왕 주체가 북방군을 대리고 주둔중이었다. 아직 주원장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이걸 4만명 가지고 뚫으라고요?
@jaeyun35765324 жыл бұрын
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닙니다. 물론 숫자가 많은쪽이 유리하겠지만 직접 붙어보기 이전에 승패는 절대 가늠할 수가 없음
@미제드론4 жыл бұрын
@@jaeyun3576532 숫자는 고사하고 장마철에 허구헌날 비가 와서 가뜩이나 우리의 장기인 궁시류의 위력이 엄청 너프되었는데 뭘 어떻게 좋은 전쟁을 할수가 있겠습니까 거기다 명은 연주성(백암성) 봉황성(오골성) 오녀산성 득리사산성 같은 옛 고구려시대 이젤론급 요새들을 재활용해서 들어가 앉아 수비하고 있는데 이건 십만을 헤아린다던 나하추도 성 하나 못 떨어트리고 도망갔는데 이성계의 군대가 무슨 수로 싸움이 되겠습니까
@심심해-e4u4 жыл бұрын
@@jaeyun3576532 그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4만으로 30만 요동군을 어떻게 뚫음ㅡㅡ
@complex02454 жыл бұрын
아주 재미있게 잘 봤어요 ^^
@rogo56464 жыл бұрын
정도전이 하려던 요동정벌은 가능성이 진짜 있던 경우 인가요 ?? 궁금합니다
@미제드론4 жыл бұрын
남옥 풍승 부우덕 그리고 뭣보다 명 영락제 주체가 있는데 이 사람이 흑룡강의 여진족부터 베트남까지 정벌하고 정화원정 지원하고 티무르하고 맞짱 뜰뻔했던 사람입니다. 친정도 여러변 다녔었고 몽골지역 정벌할땐 50만의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당시 조선국력으로 요동을 쳐들어갔다간 홍건적의 난을 다섯번 연속으로 겪는 수준의 재앙을 겪었을 것입니다.
@style_k3 жыл бұрын
5만 군사를 먹여 살릴 경제력도 없는 국가가 고려 입니다,,,, 전쟁은 경쟁력입니다. 조선은 상비군을 유지할 능력도 없었구요, 낮은 세율 때문에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가난에 시달렸던 나라가 조선이구요,, 1%의 가능성도 없어요
@안성현-n3g3 жыл бұрын
임박사님 팬입니다ㅎㅎ
@류정민-x1l4 жыл бұрын
근대전 중국은 지금의 미국이상...고구려고구려 하는데 삼국시대 진나라후 중국이 갈기갈기 찢겨 역사상 가장개막장이라는 5호16국 역사적 배경이 없다면 고구려의 융성도 애당초 불가능
@황정국-f9f3 жыл бұрын
흠그런식으로치면 고구려 광개토때 신라흡수합병 백제흡수합병하고 여진거란 회유책으로흡수하고했으면 중국도 만만했을듯...그리고 진짜 한족만의중국은 항상 약체국가였어요 강한중국은 이민족들이중국먹었을때임
@Supertoritori4 жыл бұрын
잘봤습니당
@Hyuchan10024 жыл бұрын
이성계로서는 빡치지 ㅋ 요동점령해도 후속 지원 없이 내버려둬서 간신히 살아돌아왔는데 ㅋ 또 나가라고?ㅋ 고려의 국력으로는 커버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됨. ㅋ
@신무근-l1u4 жыл бұрын
이성계도 1차 요동정벌때 군량 타버리고 보급도 안해줘서 나하추한테 추격당하면서 겨우돌아옴..ㅋㅋㅋ
@Star-in3hz4 жыл бұрын
오늘 즐거운 영상 감사해요 박사님들 홧팅~~ 그런데 포은도 회군때 찬성했었나요?
@황병철-u6w4 жыл бұрын
명은 둘째치고 잔존 몽골... 아니 그곳에서 고대부터 있던 여진/거란부터가 만만칠 않은데;; 세종대왕때 두만강으로 여진을 밀어내는것만도 간신히 이루었는데...;
@시신핑코로나온바이러4 жыл бұрын
이성계시대조선군이면 몰라도 그이후조선군은 쓰레기죠 명나라빽믿고 국방력은 쓰레기수준인데 임란때 더 좋은 무기를 갖고있음에도 개털린거보면 실전을 안해보니 국방력쓰레기수준
@이창엽-e5m4 жыл бұрын
@@시신핑코로나온바이러 조선 건국 후 세종 때의 조선군은 고려 말 이상으로 강했습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강군이었던 시기죠.. 조선이 궤도에 오르고 전성기였을 시기라..
@시신핑코로나온바이러4 жыл бұрын
@@이창엽-e5m 제 말뜻을 이해못하신듯한데 그냥 조선군대는 쓰레기라는겁니다 조선역사상 가장강군이면 뭘함? 만주수복함? 계속 명나라 꼬붕짓만하다가 끝난나라인데 우리나라역사상 가장치욕스러운 나라가 조선임 고려시대까지는 중국한테 대들기라도했지 조선은? 사대만하고 끝남 더 웃긴건 지금 정치인들도 사대함 아직도 노예근성이 사라지고 있지않고 있습니다
@2rm7304 жыл бұрын
@@시신핑코로나온바이러 고려가 어디 중국에 대들었음?? 난 이걸 모르겠는데? 그럼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강군 가졌는데 우리도 뵹신이란거??
@kkim7764 жыл бұрын
@@시신핑코로나온바이러 고려가 뭔 중국한테 대들어요 ㅋㅋ 고려때야 중원에 송나라 만주에 요,금이 대립하던때라 발언권이 꽤 크긴했지만 몽골등장하고는 개털렸는데 애초에 중국에 통일왕조가 들어서면 근본적인 국력차이땜에 굽히고 들어갈수밖에없죠
@jung-wancho9140 Жыл бұрын
일설에 조선시대 기록에 위화도 140번 이상 나온다는데요 허우범박사님 강연 위화도 관련 보면요. 임선생님 말씀과 비교하면 어느것이 맞죠?
@leejjong884 жыл бұрын
고려에서 조선으로 지배층이 바뀌면서 세상의 변화가 일어난줄 알았는대 ....고려가 그대로 유지 됐어도 변화했을 거라니 ....역시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군요.
저때 이미 고려는 망한 상태였음. 윤관의 여진 정벌때는 무려 17만 병력이었는데...고작 다 모은 병력이 5만인데 수도로 쳐들어오니 막을 병력이 겨우 수천...위화도회군이 반란이든 혁명이든 이미 고려는 망한 상태였음
@이동연-c6d3 жыл бұрын
하긴 젊은이들이 군역 피한다고 권문세가의 노비가 되거나 머리를 밀고 승려가 되서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군역에 지게 했으니 만약 요동을 쳤다면 고려군은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 꼬라지를 맞았죠.
@바르톨로메오크리스토3 жыл бұрын
👌
@너울-i4q2 жыл бұрын
지금 생각하면 회군은 잘한거임. 저때 전쟁까지 갔으면 오히려 먹혀서 우리도 중국말 쓰고 있었겠지
@taxwinner39102 жыл бұрын
@@너울-i4q 조선이 중화 아님? ㅋㅋㅋ 소중화
@이순신박사 Жыл бұрын
5만인데 너무강력한 더블테이커가 존재했죠 최영 이성계 ㄷㄷ
@dhk39842 жыл бұрын
임용한 이 분은 식민사관이 굉장히 강하신분 같아보이네. 뭐 무조건 안됬을것이다 이런식이네ㅋㅋ
@MoonbomSunny Жыл бұрын
본인 보다 똑똑해 무식아
@안범진-v4f4 жыл бұрын
아.. 여기가 그 유명한 허준님의 맛집??
@bleee14 жыл бұрын
이성계 애초에 몽골 혹은 여진 사람으로 추정됨, 아버지 이름이 울르스불카 할아버지 이름이 바얀티무르 의형제 이름이 쿠란투란티무르 청나라 애신각라 누르하치의 조상 애신각라 먼터무가 자기 젊었을적 이성계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등..
@jaehoonha611 ай бұрын
만고역적 이성계
@이준호-h7d4 жыл бұрын
만주에 진출했는데 군량미 수급이 안되서 후퇴했다고
@TV-gg3dp4 жыл бұрын
4명의 교수님들과 허준형님 다 너무 좋아
@chicken0404 жыл бұрын
아무래도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더라도 후퇴를 해야할거 같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 한반도에 왜적들이 들끓었고 요동을 관리할 여력과 병력에 보급할 여력도 없었기에 후퇴해야 했을 것 같습니닷
@밥집남편3 жыл бұрын
모든 전투와 전쟁은 그 지역에 정착하여 관리할려고 하는것만은 아니다. 단지 두들겨 패서 혼만 내주고 내 힘을 자랑하고 그냥 돌아올수도 있는거다. 너무 뒤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거는 항상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말일 뿐이다.
@joseph29534 жыл бұрын
이번꺼 편집 좋아~ 편집자 칭찬해~
@CJ-sm2rg4 жыл бұрын
하지만 이성계가 왕이 되지않았다면 이도가 왕이되지 못했을것이다. 지금우리는 한자로 댓글을 쓰고있을지도, 상상만해도 머리아프다.
@DanJJSTChoi4 жыл бұрын
C J 일어나 영어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흠칫-y7f4 жыл бұрын
오늘 처음봤는데 재미있어서 나온거 다봤네요...
@jaihoonsim4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요동에 많은 수의 고려인이 몽골에 의해서 이주를 하여 이미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민왕 때 요양을 점렴하고 요양 주만들은 이제부터 고려의 국민이라고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누루하치 때 청나라가 세워질 때 주요 세력 중의 하나 였습니다. 만일 고려가 요양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성계가 다시 요양을 점령했다면 통치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user-gy2vn6vu2m3 жыл бұрын
개소리ㄴ 세대가 너무 지난상황이였음
@jaihoonsim3 жыл бұрын
@@user-gy2vn6vu2m 책 좀 보고 삽시다. 몽골이 쿠빌라이 시대에 만주 지배를 위해서 고려인을 요양지역으로 이주 시킨것은 원사에 나오는 사실임. 이들이 후에 누루하치가 추대를 받을 때 고려인 세력도 있었음. 만주 여진족이 중국을 정복하기 전에 추대세력으로 참여하여 만주족으로 인정받은 고려인의 성씨가 50여개 있을정도 임. 이들이 바로 몽골 쿠빌라이에 의해 강제 이주 된 고려인의 후손임.
@user-gy2vn6vu2m3 жыл бұрын
@@jaihoonsim 현대에 이민 3세대도 한국인 정서가 거의 없는 상황에 4세대 5세대 지난 그 상황에 무슨 고려인? 뭐 민족뽕있으신가? 그리고 강끼고 산꼇던 조선시대 북부 국경도 2차례나 털렸음. 성 알박으면 방어가 가능할거 같음?
@jaihoonsim3 жыл бұрын
@@user-gy2vn6vu2m 역사공부 더 하시길. 먼 세대차이도 아니고. 농경사회에서 100년 200년 전승을 이어가는것이 힘들까요? 지금처럼 정보화 시대로 보니까 님이 대답이 안나오는것 임. 그럼 유태인은? 오스만 치하에서 기독교를 지킨 그리스 인들은? 몽골멸망부터 공민왕까지 세대차이가 있나요? 동일세대 입니다. 당연히 공민왕이 요양성에 입성할 때 많은 고려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누루하치 등극 때 추대 세력으로 요양지역 고려인이 포함된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들도 그 때까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고려성씨를 유지했고 고려인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했으니까 고려인이라고 여진에서도 부른거고. 국뽕과 사실 구분을 좀 하시는게 어떤지. 역사적 기록을 부인하는거는 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user-gy2vn6vu2m3 жыл бұрын
@@jaihoonsim 정보화 시대가 더 쉽지 않을까? 기록을 남기는것도 정보를 찾는것도 한 세대의 수명도 현대가 더 길고 좋음. 이 시대의 100년이면 최소 4세대 5세대인데 이미 전승은 다 변질됐고 통혼되어서 혼합될때인데 요양?
@minji62874 жыл бұрын
잼있네요 ㅎㅎㅎ
@kakuka49534 жыл бұрын
조선초 4군6진 개척하는거도 피똥쌌는데 무슨 만주를 점령한다고...
@딴짓은나의힘2 жыл бұрын
이런 포멧 좋네요. 편안하게 식사하시면서 ㅋ
@phssky774 жыл бұрын
위화도회군을 하지않고, '북벌을 하였더라면'이라는 상상은 국뽕상상이었군요.
@hsh60364 жыл бұрын
만약 17만 별무반을 유지하고 30만 병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고려 초중기의 국력을 북벌할 때 갖고 있었으면 비벼볼 만 했는데 고려 말기는 나라가 개판인 상태라 안돼요
@jjk27694 жыл бұрын
북벌은 커녕 지금 조선성 되있었을 확률이 더 큼
@꽁기깅강-l9i4 жыл бұрын
@@hsh6036 애초에 상대가 주원장임;;
@ghwnsha4 жыл бұрын
북벌 한다고 깝치다가 개쳐맞고 군대 전멸해서 나라.좃망
@유복수-v6r4 жыл бұрын
군대는 인구수보다 군대경험 가지고있는 최정예병력+좋은장군 이게 더중요함 그런면에서 볼때 전투는 이겼을거같음
@성이름-v1p2j3 жыл бұрын
원나라가 적당히 밀렸으면 고려/조선이 국력을 회복한 뒤에 요동을 노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명나라가 주변국을 다 즈려밟고 부동의 원탑으로 떠오르는 상황이었으니..
@user-twoguyss4 жыл бұрын
형 if 이거 영원히 해줘요ㅋㅋ
@wh30224 жыл бұрын
요동정벌이 성공할수도 있음 명나라 초기에는 아직도 북원이라는 몽골세력이 존재하기에 명이 요동에 힘을 쏟아붓지 못함 ,명나라 세번째 황제조차 북원정벌에 가는 도중 죽어버림, 그 이후의 명나라황제들은 그 이전만큼 업적이라고 별로 없는 별별 희한한 놈들이였음 그러니 누르하치가 북경을 몇번 갔다오더니 명은 덩치만 컸지 별볼일없다고 한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