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조나 그끝물은 망조가 들어감. 하다하다가 대를이을 후예를 온갖 어거지로 맞추게 되어 지목된 당사자는 정신적 신체적 온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자가 당첨되게 되는데 마지막 왕이 아마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유약한 자다. 그애미는 억지로 자신의 자식을 권좌에 옹립하게 하기위해 무리수를 둔거고...거기다 미신에 의존해서 자식의 미래를 궁금증을 확신받고 싶어함.
@정희조-w6j8 ай бұрын
주님 누가 옳아요 ᆢ 너는 ᆢ아니 지는 모르자나요 ᆢ마음을 말해봐 ᆢ정치는 모르고요 명성왕후가 시아버님을 후대 한건 죄로봅니다 더구나 왕실에서요 그래서 시해당한걸로 봅니다 ᆢ 딸 ᆢ예 ᆢ그걸 아는 자는 너밖에 없다 ᆢ주님 역사가 말하는대요 ᆢ아무리 그래도 그런 죄는 하늘이 용납안 하는거다 ᆢ주님 이민족 용서하소서 ᆢ너는 아무걱정 말거라 ᆢ아멘
@appetite42148 ай бұрын
흥선대원군과 민자영의 갈등이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갈등이죠 흥선대원군이 "내 착한 아들이 아니라 못 된 며느리 탓!" 이라고 생각 한 것 뿐
@황동렬-i6n29 күн бұрын
@@appetite4214 대원군의 아집과 독선이었고 대원군 종복들과 추종자들에 의해 그리고 일제의사관이 명성황후를 악녀로만든 왜곡된 역사인식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원군은 조선을 식민지로 내몰게한 역사의 죄인이며 역적으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의통치 10년간의 업적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끝없는 노욕과 탐욕이 며느리인 왕비를 죽음으로 내몰게했으며 심지어는 아들인 왕까지 시해하려했던 장본인 이기도 하지요. 우리세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제라도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whatthepig494223 күн бұрын
대원군과 고종의 갈등을 조정하는게 민자영이니 민자영과의 갈등임
@황동렬-i6n23 күн бұрын
@whatthepig4942 그리 생각하실수도 있겠죠. 그러나 명성황후는 대원군과 고종의 관계도 잘 하려고 역할을 다해서 했습니다. 요는 대원군의 식지않은 권력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며느리가 시켰다고 노파심에 그렇게 들씌워 놓으니까 모든 대원군 추종자들도 그와같은 생각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인품이나 품행을 보지않고 단정짓고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도리일진데 소문을 내었던 종복들이 제일큰 문제이며 매천야록을 남긴 황현이나 유길준도 모두 대원군 추종자이기에 민왕후를 모함속에 끌어들인것입니다. 물론 고종도 아버지인 대원군의 관계를 미지근하고 유약하기에 옆에있던 왕후는 단지 고종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했기에 조언과 충언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가장큰 문제는 대원군에게 있는 것입니다. 10년간 섭정으로 쌓아올린 공적으로 족했어야 했지만 그추악하기 짝이없는 노욕이 세간에 그리 전파되게 된것으로 봅니다.
@chickim729910 ай бұрын
자신들의 세략을 넓히려 외세를 끌어 드리는 자들은 지금도 너무 많다. 결국 조선은 더 일찍 망했어야 했다. 노비가 전 백성에 50프로 였다니.. 다만 일본에 낭인들에게 조차 궁궐이 짓밟혔다는 것이 참담 하다.
@너나잘하세요-m1x10 ай бұрын
@@Silla_Gates5국사 안배웠음??
@너나잘하세요-m1x10 ай бұрын
@@Silla_Gates5 ㅋㅋㅋㅋ 한심허다
@여야한편-e5l10 ай бұрын
미국은 조선땅 증거 메이저리그 대표단 미국 경성 방문 ㅡ 다음 검색
@킹바보10 ай бұрын
이게 웃긴게 같은동족 노비는 조선이 최고였음
@여야한편-e5l10 ай бұрын
조선이 1 8 8 3 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 색
@문임숙-g5pАй бұрын
이양언니는 일도잘하고 아궂짐도사주엇ㅅ는데나도한번못사준게 마음에 항상걸렷ㅅ다
@IDgoogle-f2v10 ай бұрын
일본군들이 시해하지 않았더라도 조선 민중들에게 맞아죽었을것. 다만 외국인들에게 국모가 시행된게 비극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hmjeon86092 ай бұрын
조선민중들이 그만큼 멍청했다는 이야기
@황동렬-i6n29 күн бұрын
🐕 소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치를떨었어야 할 일본의 만행을 일본을 두둔하는가?
@maus403317 күн бұрын
@@황동렬-i6n 일본이 잘못했지 우리 조상들이 찢어죽였여야 할 기회를 빼앗아간거니까 당시 백성들과 지식인들도 이를 갈면서 증오했었다
@maus403317 күн бұрын
@@황동렬-i6n 일본이 국모 죽인거 이런 만행이 어디있냐며 극대노해도 우리가 찢어죽였어야 할 여자라는게 을미사변 당시 우리 조상들의 반응이자 민자영에 대한 평가였다
@황동렬-i6n16 күн бұрын
@@maus4033 이건또 무슨 헛소리? 우매하고 무지했던 백성들이 대원군 추종자들의 선동에 분별못하고 합세했었던 일부 자각없는 자들의 준동일 뿐이야! 조선조 역사상 가장 영민하신 왕비였고 가장 훌륭하신 국모였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아랑-q6f9 ай бұрын
병인박해때 대원군이 프랑스군을끌여들여 민비의세력을 꺾을려고한것을보면 이사건도 대원군과전혀무관하다고 볼수는없으나 이 시해사건은 흥선대군이 일본에이용당한것으로 봐야것이다. 일본은 이당시 민비가러시아편에서 있었기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있었기때문이다.
@doroshi999 ай бұрын
각자의 이상을 두고 경쟁하는건 정치인의 숙명이긴하지만. 시대가 시대인데. 국제정세 까막눈에 집안싸움 하면서 나라말아먹은 흉적들.
@산마니-c7s9 ай бұрын
내가 어렸을적 1970년대까지 여주에 사시는 어른들께서는 민비를(명성황후란 이름은 아예 몰랐고 불리지도 않았음)시애비 잡아 먹은 ㅇ 이라 불렸음.
부산다방 카운터 는 곱사엿ㅅ는데 부산대학교 을나왓ㅅ다고햇ㅅ고 잘웃고이야기도 잘햇ㅅ다주인 동생이엿ㅅ다
@개구리용사라오10 ай бұрын
이야 김청 엄청 이쁘고 연기도 잘한다
@newnormal-n2s9 ай бұрын
아역은 김소연이네요
@mykang657410 ай бұрын
나라말아먹은 민비를 뭔 황후로 잘도 포장했네
@가나다-w2g2g10 ай бұрын
그건 니금
@mykang657410 ай бұрын
@@가나다-w2g2g 인간아...ㅠㅠ
@여야한편-e5l10 ай бұрын
에디슨이 미국사람인데 어떻게 1887년 경복궁 건천궁에 전구를 정부기관중에 세계최초로 설치했을까? 그 경복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mykang657410 ай бұрын
@@여야한편-e5l ㅇㅋ
@구선호-l2b10 ай бұрын
저런개 국모?
@개똥이-t5e10 ай бұрын
저의 글을 읽으신분들. 죄송합니다.물어 볼게있습니다.혹시, 명성황후,시해 사건..혹여..대원군의 그림과 명분 아닙니까??큰실수 했대면,죄송하고,짧게나마,소견을 듣고싶습니다 그리고,왜 고종등등 독살한것 대해서 무덤을 파서 지금해 국과수 조사안합니까ㅡㅡ?임금이라서 쉽게 못해서?그임금의 후손들이 반기들어서ㅡㅡ?참나...
@hmjeon86092 ай бұрын
고종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는데 무슨 독살.
@johnathanha934010 ай бұрын
홍선 대원군과 명성 왕후가 서로의 정치적 야심을 버리고 한 마음으로 머물렀다면 일본의 이중성을 간파해서 물리쳤을 것입니다.
@하트호야-d5h8 ай бұрын
그럴리가
@pjj72238 ай бұрын
이재명하고 윤석렬이 화합하는 확률이 더 높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ejinJ6 ай бұрын
고종과 민씨일가는 말 할거도 없고 대원군도 국익보단 왕권강화에만 관심 많던 인물 애초에 고종 민비 대원군 이 3명은 국익엔 관심 없었음 정치이념도 철학도 없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 조차 없던 인물들 만약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외세에 대항해서 잠시나마 힘을 합칠만도 한데 그마저도 없던게 바로 이 세 인물
@jungsiklee64179 ай бұрын
기존의 군인들을 훈련시켜 신식군인으로 만들어야지, 별기군을 왜 창설해.
@문임숙-g5pАй бұрын
18번완당집은 일본사람이한국사람한테 가려케주엇ㅅ는데 아무한테도 안가려켜주고 돈을 많이 벌어서 금고을 만들엇ㅅ다고 햇ㅅ고 소전무는 거기서 일을햇ㅅ다고 이양언니가 말해주엇ㅅ다
@이광순-t8j10 ай бұрын
임오군란때 죽여야 했는데 ㅡ
@워렌버핏-o6p3 ай бұрын
흥선대원군이 딱 10년만 더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
@dowoonu2 ай бұрын
제정신인가? 조선이 망한게 쇄국정책때문이란걸 배우지 못했는가
@황동렬-i6n29 күн бұрын
흥선대원군이 계속 집권했더라면 조선의 대한제국은 없었다 이 멍청아!
@효림감동입니다10 ай бұрын
민비의 부정부패로 망했습니다
@황동렬-i6n29 күн бұрын
너같은자들의 군중이 그당시 백성이 아닌게 다행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도 부끄러운줄 알라
@문임숙-g5pАй бұрын
거라고보니 이양언니을 많이 만낫ㅅ는데 부산다방에도 이양언니가 잇ㅅ엇ㅅ는데 소전무을 알앗ㅅ다
@limch976010 ай бұрын
시대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대원군의 노욕이 왕조의 몰락을 재촉한것임. 임오군란은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된 동기를 준 사건임. 민비는 조선이 힘으로 국권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있던 유일한 조선인 임. 그래서 살해한것이고 살해 당하지 않았으면 일본의 국권 침탈이 쉽지 않았을것임.
@pus664610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그 힘을 억제한게 대원군이라 쳐도 지라도 개혁할 생각을 해야지 민씨일가들 해쳐먹었죠?
@여야한편-e5l10 ай бұрын
에디슨이 미국사람인데 어떻게 1887년 경복궁 건천궁에 전구를 정부기관중에 세계최초로 설치했을까? 그 경복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ghwnsha3 ай бұрын
지랄하네 ㅉㅉ
@fantastic_swimmer10 ай бұрын
민비 미화 너무 심하다
@hmjeon86092 ай бұрын
500년간 남존여비에 찌들은 조선에서 시아버지에게 대든 며느리가 좋은 소리 듣긴 힘들겠지만 솔직히 대원군의 끝없는 권력욕이 더 구역질 남
@문임숙-g5pАй бұрын
이수신장군드라마 할ㄷ대큰아들이 이장군이 열두번ㅅ사워서 열두번 다이겻ㅅ다고 해서 열심히 드라마을 보앗ㅅ다동네사람들도 날리가 낫ㅅ다
@문임숙-g5pАй бұрын
거래서세상에 공ㅈ자는없다고 하는모양이다 어더먹고 나도 한번 삿어면 내마음이 편햇ㅅ을 텐데
@alwaysbemine46839 ай бұрын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지않고 살았으면 일본에 안넘어가도 러시아에는 넘어갔을듯
@유심-r2k9 ай бұрын
왜 우리의 황후와 영부인을 그토록 모독하시나요 손이 못생겼다고 얼굴이 안생겼다고 잘라낼수 없는것처럼 우리는 그처럼 모독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잘못이 있어도 올바른 평가가 중요하고 시간이지나 공과를 따지되 올바로 해야합니다 경제적성장뿐아니라 정치적 국민성장도 선진국으로 가늠할수 있는부분입니다
@sejinJ6 ай бұрын
구한말 망국의 왕족을 평가하는데 국민성장과 무슨 상관인가요 오히려 밑도 끝도 없이 국모 타령하는거 보단 냉정하게 평가하는게 성숙한 국민의식이 아닐지 지금 우리는 왕권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고 영부인도 국민 중에 한 사람일뿐입니다 권력자를 성역화 하지 마세요
@황동렬-i6n23 күн бұрын
@@sejinJ 당시얘기를 해야지 왜 지금의 대한민국을 들먹이누? 국모 아니셨나요? 맞지 않습니까?
@sejinJ23 күн бұрын
@@황동렬-i6n 그럼 조선 인조같은 인물도 욕하면 안되겠네요? 당시 조선의 지존이니까? 당연히 후대에서 평가도 포함되는거지 명성황후의 공과를 따지자면 인조랑 큰 차이가 없을텐데
@황동렬-i6n23 күн бұрын
@@sejinJ 인조와 어찌 비견이 됩니까? 인조는 절대 권력자로 당연히 조선조 역사에 씻을수없는 굴욕을 당한 왕이지만 명성황후는 권력자인 왕을 도와 나라를 지키려고 일본을 물리치려다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참변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무도하고도 참혹했던 일본의 만행에 우리 후손들은 치를떨어야하고 망극했던 그사변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1895년 을미년 10월8일(음:8/20)을...
@황동렬-i6n23 күн бұрын
@sejinJ 어찌 인조와 비견이 됩니까? 인조는 절대 권력자로 조선조 역사적인 굴욕을 당했던 무능했던 왕이었고 세자가 후금에 볼모로 끌려가는 수모와 치욕을 겪으면서 8년만에 돌아와 조선을 개화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소현세자와 빈궁인 강씨 그리고 세손들까지 죽인 비정한 아비였고 군주였지만 명성황후는 왕을 보좌하고 일본을 물리치려다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참변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잔악무도한 만행을 자행했던 일본을 생각만해도 치가떨리고 가슴이 아려오는것은 비단 나혼자만의 분노는 아닐것입니다. 이러한 망극했던 시해 사변을 우리 후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1895년 10월 8일 (음:8/20) 을미년 사변의 그날을...
@선희-z4w11 күн бұрын
전부 히석하는 내용인듯
@문임숙-g5pАй бұрын
부산에는 일본집들이 잇ㅅ엇ㅅ다
@bhbgv783710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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