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족 무인 석상은 왜 조선 선비의 묘지에 세워져 있을까? / 일본사신에게 황제폐하 소리를 듣기도 했던 조선국왕 [Lost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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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Heritage

Lost Heritage

4 жыл бұрын

임원준(1423~1500)이라는 15세기 조선초기에 살았던 선비의 무덤에 세워진 여진족 무인석을 주제로 한 내용입니다. 다만, 이 무인석이 여진족을 표현한 것이다라는 가설을 전제조건으로 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베푸신 구독과 좋아요는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운동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여진족 #이성계 #태조 #만주족 #황제 #조선국왕

Пікірлер: 206
@user-hk9gr7sx5h
@user-hk9gr7sx5h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좋은자료를 올려주셔서
@MT-kk2cn
@MT-kk2cn 3 жыл бұрын
이야기의 흐름을 잘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내용의 깊이에서 역사를 좋아하시고 오래 공부하신 티가 나네요.
@user-di9vh1xv5n
@user-di9vh1xv5n 4 жыл бұрын
조선초기 - 약한자는 살아남을수 없다! 조선중기 - 무식한자는 살아남을수 없다! 조선말기 - 가난한자는 살아남을수 없다!
@user-dv6yx3ll4g
@user-dv6yx3ll4g 4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user-tendo
@user-tendo 4 жыл бұрын
중국사 요약판인것 같다 생존 - 초한지, 삼국지 지식 - 송(북송, 남송) 상업 - 청
@user-tq3pu4rw2u
@user-tq3pu4rw2u Ай бұрын
구한말: 친일하는 놈들만 살아남았다. 해방후: 친일하던 놈들이 떵떵거린다. 오늘날: 친일하려 놈들이 앞뒤가없다.
@user-jp6ou1hq6n
@user-jp6ou1hq6n 4 жыл бұрын
정확한 역사관 입니다...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중국에의 사신에게 조선왕이 쩔쩔매는 드라마나 일본에 깨지는 영화나 만들며 알게모르게 국민들에게 신사대주의를 심어주는데...제발 문화예술부터 우리나라의 강대함과 위대함을 심어주는 컨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제발 스스로 국민들을 위축시키는 컨텐츠 제작을 막아야 합니다...역사 해석도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되면 나라의 기상과 혼이 무너져 버립니다...그런면에 본 컨텐츠 같은 영상물이 많이 만들어 져야 합니다...
@user-jp6ou1hq6n
@user-jp6ou1hq6n 4 жыл бұрын
@UCIaZutVhMabqDGmloJSAsow 역사를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가급적 우리역사의 위대함을 심어주어 자신감을 고취시키는게 중요하죠...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 모두 자국의 역사나 나라를 과장해서라도 웅대하게 그리죠...미군이나 일본 중국 자국 군대를 비난하기 보단 영웅화 시키는 경우가 훨 많죠...우리스스로 우리 군대나 국가를 약하게 허접하게 해서 얻는게 무엇이 있을까요?...늘 패배의식만 심어주게 되죠...
@user-tq8ul9jl2w
@user-tq8ul9jl2w 4 жыл бұрын
뭔 개소리인지 왕위 계승도 중국에 허락받고 했던 조선인데
@unitedaccountsofme9297
@unitedaccountsofme9297 4 жыл бұрын
남북국시대 배경으로 세계 최고로 화려한 시절의 한반도를 언제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user-ul3tq9pb8j
@user-ul3tq9pb8j 4 жыл бұрын
7:49 "모름지기 한번 대승을 거둔 다음에 강화를 맺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와... 역사는 배우면 배울 수록 신기하네요. 조선 초는 정말 다이내믹합니다.
@user-hr7ep2ue9j
@user-hr7ep2ue9j 4 жыл бұрын
역사강의 잘 감상 했습니다
@user-ou8li1fi2v
@user-ou8li1fi2v 4 жыл бұрын
우리민족의 역사관을 반드시 재평가 하여야 합니다 ᆞ
@sanghwanlee5673
@sanghwanlee5673 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좋습니다. 현재 우리시대에 계승과 실천이란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실학에 대해 연구해보는것은 어떨까요?
@rl5952
@rl5952 4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난 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크다고 봄. 세종 이후 문종이 즉위하고 그 계보를 이어갔지만 세조가 나서면서 합리적인 조선전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봅니다. 아마도 집현전을 없애버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살리는 곳이 사라지면서 조선의 탄력적인 모습의 기반이 무너졌고 이후 임진왜란으로 체제 자체가 변화되어버렸고요.
@ego6929
@ego6929 3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직전인 16세기 후반까지도 나름 조선자체는 독자적으로 행동했고 명나라에게 상국의 대우를 했어도 그건 순전히 조선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위한 정책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말에 터진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를 아예 부모의 나라로 모시는 수준까지 발전합니다. 그런게 황당해 보일수도 있지만 그 내면을 보면 오히려 그럴만도 했구나하는 마음까지 들기도 합니다.ㅋ 임진왜란때에도 명조정에서는 조선을 도와주지 말고 만약 왜군이 요동까지 오면 여진족과 싸워야할테니 힘을 다 빼놓고 명의 국경에서 분쇄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였던 만력제는 아예 국정운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재상정치를 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이 자리에 30년만에 황제가 나타나서는 조선을 도와야겠다고 천명합니다. 이때 조애경이라는 신하가 황제의 의견을 반대하며 "폐하... 구석진 외국 조선에 대명(大明)의 용사들이 죽어나갈 수 없습니다.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라고 하자 "너는 짐이 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느냐! 네 머리는 철추의 화강석 같은 머리로구나!우방이 위태로운데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겠느냐?"라고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이 만력제로 말할것 같으면 명은 만력제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들을만큼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평생 놀고먹은 황제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선을 구하겠다고 하니 다들 어안이 벙벙했을테지요. 그래서 만력제의 별명이 조선황제입니다. 이 만력제가 자신의 개인 자산을 털면서까지 구원병을 보내주었고 조선을 지원하면서 군량미도 명나라가 직접 부담하도록 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합니다. 개전 첫해에 13만석을 조선에 보내주었고 그 직후 10만석, 같은해 다시 또 10만석, 또 12만석... 이렇게 계속 보내줍니다. 이정도가 되자 조선에서도 명나라가 빵셔틀..아니 쌀셔틀인걸 알고는 툭하면 명나라에 조선에 먹을게 모자란다고 알리고 계속 쌀을 받아내어서 군량미로 썼답니다. 이 덕분에 조선군대가 농지를 잃고도 군량미가 모자라지 않아 전쟁을 잘 수행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만력제는 명군이 조선에서 필요한걸 직접 구해 쓰라며 대량을 은도 보내었습니다. 문제는 조선이 이런 막대한 전략물자를 생산할 여력이 안되었고 길도 안닦여 있어서 군량과 물자를 나르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서 일부 명군이 굶게 생긴겁니다. 명군이 아무리 은이 많아도 식량과 물자를 살수가 없었다는거지요. 결국 은을 통해 식량을 구하지 못한 명나라군대가 조선양민을 수탈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때 조선도 은의 유통을 알게되면서 이후 무역에 은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조선내부도 은을 유통하여 물자를 구매하는 것이 대중화되었고 통화정책에 눈을 뜨게 되고 이후 은을 대신하여 상평통보등의 현대적 개념의 돈이 조선에도 생겨났지요. 임진왜란이 끝난후에는 명나라군대가 돌아가면서 국경에 쌓아놓은 식량 10만석을 조선에 주고 돌아갔습니다. 조선백성이 불쌍하다면서 명나라백성은 한푼도 안도와주던 만력제가 조선에 기근이 들어 전쟁복구가 힘들겠다며 자신의 사비로 챙겨뒀던 은까지 지원해 줬는데 이때 지원한 은을 현재 시세로 따지면 20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러니 조선조정은 명을 은혜로운 나라로 여길수 밖에요. 오죽하면 명나라가 망한 후에도 조선은 계속 만력제의 제사를 지내었는데 이 제사는 고종황제때까지도 지내었습니다.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жыл бұрын
세조보단 인조가문제
@battone
@battone 3 жыл бұрын
당연하지 유교는 고려 건국이념임
@admiralyisoonshin4995
@admiralyisoonshin4995 3 жыл бұрын
격하게 공감합니다. 탁월한 지적입니다!
@user-mu1og3te6n
@user-mu1og3te6n 4 жыл бұрын
정말 좋은정보입니다. 15세이전과 다르게 임진왜란이후17세기부터는 정치사회가 유교사상에 완전히매몰되어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사회로변하게되었지요 15세기까지는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정책뿐아니라 상속에서도 남녀차별이없었습니다
@rl5952
@rl5952 4 жыл бұрын
원래 유교가 남녀를 구분짓는게 아닌데 이건 임진왜란등 전란때문에 사회가 바뀌어 버려서 그런것이라 봅니다.
@user-ld7ov5nn8v
@user-ld7ov5nn8v 2 жыл бұрын
여자가 차별받기시작한건 일제강점기이후, 일본식남녀관계가 한국에 수입된이후
@user-ti6tx5zz8v
@user-ti6tx5zz8v 4 жыл бұрын
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jeffreyahn6451
@jeffreyahn6451 4 жыл бұрын
열심히 응원합니다 ^^
@thisorigin131
@thisorigin131 4 жыл бұрын
와 영상이 깊이가 있어서 끝까지 다봤네요..
@user-ic8my5fx4d
@user-ic8my5fx4d 4 жыл бұрын
이렇게 보면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도 터무니없는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고려에게는 그만한 힘은 있었고 조선초까지도 그 힘이 존재했으니 좋은 콘텐츠입니다 발전 할 것같습니다
@junname.1600
@junname.1600 4 жыл бұрын
고려말이 고려역사상 최고수준 무력을 가진 시기라 북벌도 헛된 망상은 아니죠
@amytom9223
@amytom9223 2 жыл бұрын
@@junname.1600 맞습니다
@user-tq3pu4rw2u
@user-tq3pu4rw2u 4 жыл бұрын
조선은 고려(고려는 고구려를 계승)를 계승한 나라로서 당시의 국제정세로 봤을 때 명을 강국으로 인식하긴 했으나 언제든 대등하거나 오히려 위치를 뒤바꿀 수도 있는 야망과 자신감을 품고있는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일본(왜) 쯤은 염두하고있지도 않았음을 알수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에 비해서 영토나 위세가 작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중국의 한족과 1:1로 대등하거나 실세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았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tellinglui5191
@tellinglui5191 4 жыл бұрын
무슨 책들 보고 공부하는지 궁금합니다. 목소리는 어리신거 같은데 지식이 찰지시다~~ 역사책도 추천부탁드려요. 구독누르고 갑니다.
@lostheritage5691
@lostheritage5691 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좋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영상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라는 책이랑 제목이 기억 안나는데 간사이대학교였나 어느 일본대학에서 봤던 논문이랑 조선왕조실록이 내용상 큰 뼈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공부할 때 원문사료를 중요하게 봅니다. 한국고전종합db랑 조선왕조실록 사이트가 최고인거 같습니다. 그 외에 국내자료도 보지만 외국어 공부할 겸 해외자료를 좀 더 우선시해서 봅니다. 'Gallica'라는 사이트가 좀 볼게 많이 있습니다. 역사취향은 약간 비주류나 변두리 역사에 끌리는 경향이 있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문화재 답사한 거랑 엮어서 영상을 올릴 것 같습니다. 관심 갖아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행복하십쇼.
@tellinglui5191
@tellinglui5191 4 жыл бұрын
Lost Heritage 와! 역시~~~논문까지..뭔가 클라쓰가 틀렸음! 영상보며 너무 많이 배우고 있네요. 시각이미지도 너무 좋고 짱입니다👍👍👍👏👏👏 감사합니다🙏🏻
@anarchist0524
@anarchist0524 4 жыл бұрын
지금보면 인조의 치욕이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처못했던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저런 맥락에서 보면 조선이 청나라를 그렇게도 노골적으로 오랑캐 취급했던 것도 이해는 감
@elvenisar
@elvenisar 4 жыл бұрын
이런건 보지 못하고 구한말 무력했던 모습만 보면서 조선을 일방적으로 까내리기만 하는 사회학과 학생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하던지...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jin_kj
@jin_kj 4 жыл бұрын
정말 좋은채널인데 사실 너무 강의 같은 느낌이 있어서 bgm을 넣거나 해서 흡입력이 조금만 더있으면 엄청 커질꺼같은데
@user-xq5sm4ph4j
@user-xq5sm4ph4j 4 жыл бұрын
잘보고갑니다
@Ima184mm
@Ima184mm 4 жыл бұрын
200년의 태평성대가 조선을 망쳤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속적 으로 주변 나라(여진부족, 일본)를 감시하고 교류를 했어야 했는데 명만 바라보는 패착을 저질 렀죠
@admiralyisoonshin4995
@admiralyisoonshin4995 3 жыл бұрын
영상 내용이 참으로 유익하고, 인상적입니다. 명나라는 조선이 북방 민족과의 친밀 유대관계를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명나라의 위협세력으로 간주. 그러나 조선에 있어 북방민족은 적이 아니라 포용, 활용할 이웃이자 같은 민족과 같았습니다. 한민족의 발상지는 만주 대륙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bca6574
@bca6574 4 жыл бұрын
생각해보면 일본도 북방 여진족도 반도인들을 형님,부모의 국가라고 칭했는데 어쩌다 임진에 병자까지..
@fate0106577
@fate0106577 4 жыл бұрын
소중화론자들 때문이지 뭐
@user-xy8km4zd1e
@user-xy8km4zd1e 4 жыл бұрын
힘쌓는건 오래걸리지만 잃는건 한방이죠..ㅠ
@samki530
@samki530 4 жыл бұрын
모든것은 진양군 이라는 그작자 때문임
@user-vu9bv8ig3m
@user-vu9bv8ig3m 4 жыл бұрын
@@fate0106577 중화론자도 문제있긴 하지만 주원인은 사림이 문제
@user-rh1qp2gf2h
@user-rh1qp2gf2h 4 жыл бұрын
1:44 깜짝이야..-ㅅ-.. 밥먹으면서 아무생각없이 보고 있는터라 옜날 그 뭐 무슨문인갑네.. 하고 보는데 차 지나가길래 깜놀..ㅋㅋ
@neykol2
@neykol2 3 жыл бұрын
와...여진족에 대한 초기정책에 이런 의미가 있었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cohiba3672
@cohiba3672 4 жыл бұрын
조선 쇄락의 근간은 세종의 노비종모법에 있기도함 노비는 노예를 의미하고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아 착취하는 쌍욕 나오는 국가였죠 일반적인 힘있는 농업국가는 다른 나라를 전쟁으로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포로나 그 지역 주민을 노예로 삼는 것이였으나 다른 국가를 침략할 국력이 되지 않았던 비루한 조선은 노예를 확보하기 힘들어 귀족들의 농지 경작에 필요한 노동력을 자국민으로 대체하죠 세종은 노비종모법을 시행하여 어미가 노비이면 무조건 노비가 되는 법을 만듭니다 이 악법은 노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데 공헌합니다 가뜩이나 상업을 경시하는 성리학이 근간인 조선이 대부분의 시민이 노예가 되는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경직화 되고 귀족층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때때로 노비 종부법을 시행하여 노비의 수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는 왕들도 있었으나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양반 귀족층은 이런 정책을 반길 이유가 전혀 없으니 조선 대부분의 시기는 종모법이 대세였고 조선말기에는 노비가 일반 백성의 70%에 가까워지며 대부분의 토지는 양반귀족층의 소유가 되어 근대 시대에는 공산주의가 일반 백성들 대환영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조선의 문화와 예술을 찬란하다 찬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문화의 대부분은 귀족층들의 문화이며 그런 고급 문화와 예술은 당연히 여유와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발생하는 것 들 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는 베니스가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엄청난 경제성장과 함께 나타난 결과이지만 조선은 이렇다할 경제성장도 이루지 못한채 그만한 문화에술을 이루었다면 얼마나 하층민의 착취가 심했는가를 반증하는 결과 이기도 합니다 군역과 세금부과 노동력제공 거기에 소나무껍질까지 뜯어 먹었던 조선 백성들의 참담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hpkim3811
@hpkim3811 4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식민지 건설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방력은 형편없었고 지배층은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내부의 반란을 막기 위해 외세에 의존합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이 아니었어도 내부반란이나 다른 외세에 의해 조선은 망했을 거라고 봅니다.
@dolgum826
@dolgum826 3 жыл бұрын
쇄락>>쇠락
@haklee3030
@haklee3030 4 жыл бұрын
조선초의 사람들은 고려사람이고 고려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으나 점차 친중사대로 나아가서 세종때 사대주의가 완성된다.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4 жыл бұрын
저는 왜와같이 여진족도 우리나라에 한 부분이라 보는 입장이라 좋은 자료같아요... 선비족도 그렇게 보았지만 선비족 만주족이 수당나라를 세우면서 고구려와 70년이상 전쟁을 벌인것으로 보아 악연관계는 맞는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수당나라가 중국공산당 역사로도 보지는 않구요...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4 жыл бұрын
수당은 신비족이 세운 나라 맞죠? 만주족은 수당과는 관련이 없고... 만주족이 여진족 아닌가요?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4 жыл бұрын
@s werr 아직도 식민사관 운운합니까? 일본은 우리의 반일감정과는 별개로 언어학적으로는 한국과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 문화권이고, 우리가 일본이 좋든 싫든 인종적으로는 중국(한족, 중국은 인종적으로나 언어문화권으로나 우리와는 아예 별개)과는 별개로 몽고와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들입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인종적으로 거의 99% 같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gravel1brevet2campinghocke27 4 жыл бұрын
@s werr 글쎄요 어떻게 전해지든 민족에 의미는 받아지는 기준에서 있다고 보거든요...야마토정권이든 그지역에 한 뿌리를 내리고 지냈다면 한 민족으로 보아야 하지않을까요... 다만 인디언 같이 시대 자체가 너무 다르면 민족이기 보다 인구이동으로 보아야 하구요...돌도끼 무기를 쓴 아메리카까지 민족으로 보기는 어렵죠... 역사적 발자취 정도라 보구요... 왜와 일본이 다르듯이 일본은 또 다른 민족이고... 그게 식민사관이라 한다면 도대체 식민사관이란 기준이 뭘까요...전 조작으로 보는데...야마토 정권이 조작인가요... 또 그 시대 그민족이 건너가도 그 원주민이 있을겁니다 그ㅔㄱ다 같은 민족은 아니죠...그것도 구분해야죠... 일본과 대한민국이 뿌리가 같다는거 보다 역사적 왜에 뿌리가 같은거죠...비류백제이든 고구려 망하고 간 원주민이든 신라에서 간 원주민이든요...이미 히라가나든 신라 발음기호에서 갔다는건 증명도 되었죠...그럼 일본까지 볼건지 왜까지 볼 문제지 그게 왜 식민사관으로 몰고가야하는지 알려주세요...그게 조작인가요... 추가로 일본은 정치 경제적으로 이용할뿐이고 중국공산당은 정권유지에 북한과 같이 필요한 필사에 수단 같이 보이거든요... 단지 그뿐인거 같네요 우리는 우리에 역사를 찾자는데 있구요...무슨 이익을 보자고 하는게 아니기에.... 우리란 단어가지고도 미사여구로 조작되 교육을 받아서 한다느니 핑계를 찾는 인간도 있던데...서울 사투리도 표준어로 쓰고 순한글을 찾는 대신 외래어를 표준어로 쓰는 현실에 일본어가 아닌 일제어 세뇌 습관 그러면 설득력이 없다느니 또 핑계를 찾는 사람들보면...
@user-mz3gh5ot9h
@user-mz3gh5ot9h 4 жыл бұрын
@@user-kh3sp9mm7z 일본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계열 남방계라 한국과는 엄청 다른 것들이죠... 생긴것 뿐 아니라 성격도 상당히 소외된 사람들이고, 한국은 대체로 통도 크고 열정적이죠.. 유전이 전혀 다릅니다. 단지 일본을 식민지배 한건 한국이고, 후에은 네덜란드가 일본을 식닌, 후에는 영국이, 독일이, 지금은 미국이 식민중이죠...ㄱ.러나, 아주 예전에는 삼국지의 위 (웨이:중국어)가 고구려에 망하면서 떠돌아 결국 열도 에서 자리를 잡는 왜가 되기도 하죠. 위나하는 고구려에 멸망 당하는 등, 왜가 우리민족은 아니죠...임란 토착왜구라 방법이 없겠지만..여진은 당연히 후에 고려에서 서서히 흡수하니 우리나라의 성원이구요..
@user-wh9gy2qo1u
@user-wh9gy2qo1u 4 жыл бұрын
저는 관점이 조금 다르네요 수당이 한족을 지배하고 우리나라를 침략한게 아니라 통일 전쟁을 한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 망하고 서로 더 멀어졌지만 ....
@gd9209
@gd9209 4 жыл бұрын
말갈 .여진은..우리의 역사라고 봐야합니다.
@Bjoqmspngmwo17639
@Bjoqmspngmwo17639 4 жыл бұрын
구독합니다. 근데 뭐하시는 분이세요???
@2sansamify
@2sansamify 4 жыл бұрын
그 이전 시대에 하나의 나라 같은 국민이라는뜻으로 봐야한다 그 전 전 시대엔 우리한반도 사람은 같은 생활했다고 봐야한다 조선시대 때 압록강.두만강 아래로 국가 관리하기 편리한 경계로 변한게 아닐까
@user-qk4yi9bz1r
@user-qk4yi9bz1r 4 жыл бұрын
조선초만해도....괜찮았는데... 사림이 득세하고 조선은 고꾸러졌지.. 요즘 한국도 16세기 이후와 비슷해져가는거 같아 걱정입니다.
@user-ht8vy6xk5h
@user-ht8vy6xk5h 4 жыл бұрын
조선초기 평민과하층민들은 지옥이었음 압량위천이라고 평민도 내 노비들이라고 소송하던시대임
@Ima184mm
@Ima184mm 4 жыл бұрын
지금 국방비 역대 최대치 찍었는데 ???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조선초가 자주적인 게 아니라 조선 중후기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비정상의 시각을 투영해서 바라보니까 상대적으로 자주적으로 보일 뿐, 걍 조선의 건국 주체들도 어쨌든 고려인으로서 지극히 보편적인 마인드를 가졌을 따름임.
@yi01471
@yi01471 3 жыл бұрын
이분 역사 고수임
@Jin-bg9eb
@Jin-bg9eb 4 жыл бұрын
목소리를 조금만 힘있게 해주시면.. 좋을텐데..^^
@user-xm3yz1zf3g
@user-xm3yz1zf3g 4 жыл бұрын
여진족들이 겁나게 누구 세력들 보다도 ㅎㄷㄷ하죠.ㅋㅎ(일본은 전국통일하고 임란 일으킬때만 절정신급 찍었던 것이고, 이제 다른 평소 막부시기시대들때 우리나라를 아예 상국으로서 항상매번 모셔왔었죠.ㅋㅎ)
@user-eb4rc5sr3c
@user-eb4rc5sr3c 4 жыл бұрын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와 한번쯤 떠도? 엄청딸리진않았죠... 요동정벌도 할만했고,,, 이걸 막은게 이성계와 그밑의 재상들의 생각이었는데 ,,,, 틀린거죠,,,,
@user-ce4wz6gs8p
@user-ce4wz6gs8p 4 жыл бұрын
그 옛날 고려시대는 혼란의 시대였음... 중국대륙은 원나라의 힘이 약화되어 각지에서 자칭 왕들이 들고 일어나서 민란과 병란이 혼재되어 백성들이 힘든 시기에 있고, 한반도 역시 고려 왕조의 실정과 귀족의 탄압에 많은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 북방쪽으로는 현재의 만주지역으로, 남동으로는 일본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일본은 바다란 큰 난관이 있어서 북쪽방면 보다는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 후에 전주 이씨의 조상중 일부가 북으로 가서 원나라 귀의하여 원군생활로 동북방지역에서 활동하다 이성계 대에 이르러 원나라에선 희망 및 장래성을 못보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고 이어 고려에 귀의하였죠... 이성계 일족이 전주 이씨라고 하는 것도 조선 건국후에 왕조실록으로 확정시켰던 것이고, 실재로는 그 사실이 실제인지는 현재 알 수 없는 것이죠.. 조선왕조실록 같은 문헌에 있으니 그렇다고 보는 것뿐이고... 문헌은 어짜피 후대에 작성되어 내려오기에 현대에선 그런가 보다하는 것이다. 교차로 볼 수 있는 중국사적이나 고려 사적이 있다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성계 일족이 원나라에서 대단한 명문가로 활동한 것도 아니기에 그것에 대해 확정할 수있는 근거적 사료도 없다.... 고려사적도 역시 현존하는 것이 모두 조선조에 작성된 것만 있어서 확인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가지 그들 조선왕들이 백성과 서로 말이 통했다면 중국계통만은 아닐 것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도 언어 문제 때문에 그런 노고를 아끼지 않고, 거대한 역사를 이룬 사실로 보면 확실히 여진족 계통보다는 한민족계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Lost Heritage 같은 분이 여러 노고로 좋은 영상을 올려주시기에 역사에 대한 관점이 다방면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잘알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 드려요...
@user-hr7ep2ue9j
@user-hr7ep2ue9j 4 жыл бұрын
용의눈물 사진 자료에서 명나라왕이 입은옷은 황색이 아니고 청색 이였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중국역사를 알지못한 오류 입니다
@dosiss2875
@dosiss2875 2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요동정벌 했으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듬, 당시 일본이 임진왜란보다 더 큰 규모로 쳐들어 온걸 거뜬히 물리쳤을때 였고, 군인들이 전장에 이골이 나있는 프로라 할수 있기 때문에 한번 해볼만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듬
@user-bb9hp7fq2u
@user-bb9hp7fq2u 3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명을하대하는수준이 였다
@user-ic3mt2fz6n
@user-ic3mt2fz6n 3 жыл бұрын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도 고려의 국풍을 이어갔던 조선 초기가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호방하고 지혜로웠던 분위기가 이어졌다면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없었거나 무난했거나... 몹시 아픈 역사로 남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대일항쟁기도 없었고 6.25도 없었을지 모르죠... 씁쓸하네요
@user-cr3th6bf2v
@user-cr3th6bf2v 3 жыл бұрын
사림파 득세 후 몰락한거지 초기 조선 관학파들은 자주적이였고 진취적이였으며 과학기술에 투자도 많이 했었다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고려 물이 빠지기 전의 유산이지 뭐. 조선은 이미 사대를 국시로 정한 그 순간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나라임.
@yosieseisyu3324
@yosieseisyu3324 Жыл бұрын
여진과의 형제적 관계가 이어져 갔더라면 병자호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parksummer6159
@parksummer6159 3 жыл бұрын
6:39 전투마
@user-vr3rj4st5j
@user-vr3rj4st5j 4 жыл бұрын
땅이 사람을 만드는거 같음 이땅에 어느 인간들이 와도
@tv.2745
@tv.2745 3 жыл бұрын
죠션뽕!
@hoonseokhong5069
@hoonseokhong5069 3 жыл бұрын
내용은 참 좋은데...웅얼웅얼 책읽는 목소리가 내용의 직중력을 방해합니다.
@user-js5iw9pz6d
@user-js5iw9pz6d 3 жыл бұрын
조선 개업 시기 자체가 고려가 사대주의가 없었던 나라였으니 당연히 남았던 것이 사실이지 이성계의 역사관이나 창업 신하들 사상이 특별한 강력한 사상이 있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성리학 주자주의에 맹종하던 조선 창업신하중 대표가 정도전이었다, 다만 요동정벌을 추구하다가 이방원에게 죽긴 하나,결과적으로는 주원장이 판단중에 하나가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문서로 확인후 하나가 명나라로 소환시키려다 결국은 조선 자국내에서 왕자의 난과 함께 간 것으로 보인다
@shro4091
@shro4091 4 жыл бұрын
강요된 프레임에 갖히지 않고 큰 틀의 역사, 문화, 인문 및 사회학적 흐름도 고려하여 생각하는 보기 드문 유튜버라 반갑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하나의 과정 속에 놓고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고 알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부정적 요소도 적절히 집어야 하겠지만 본말이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dolgum826
@dolgum826 3 жыл бұрын
@bidory
@bidory 4 жыл бұрын
초기 때가 외교는 훨씬 잘했네 ㅋㅋ
@unitedaccountsofme9297
@unitedaccountsofme9297 4 жыл бұрын
국까들 당황중ㅎ
@dlwogur5462
@dlwogur5462 3 жыл бұрын
세조때 부터 망했지
@btatbb7586
@btatbb7586 4 жыл бұрын
아씨 채널 이름 생각이안나서 존나찾았다 ㅜ
@5587bnnaaa
@5587bnnaaa 3 жыл бұрын
핏줄이 비슷하니. 덜 거북스럽
@madguy881
@madguy881 2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이 유교가 조선을 망쳤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블로거 표현을 빌리자면 유교가 멱살잡고 끌어서 500년 간겁니다.
@vivivi3865
@vivivi3865 2 жыл бұрын
무슨 말같지도 않은ㅋ
@yoonjk81
@yoonjk81 4 жыл бұрын
몽골족,돌궐족,거란족,여진족은 모두 고구려의 후예들로서 고구려가 망한후 갈라져 나온 민족들입니다.몽골제국이 타민족과는 결혼을 금지했으나 고려와만은 통혼(기황후)하고 몽골공주를 고려로 시집보낸건 이유가 있어요.여진족은 중국에서 명분상 작위만 내려줬지 만주에 중국의 행정력이 미치거나 중국인이 사는 땅이 아니었습니다.여진족은 중국보다는 한국에 소속감을 갖고 있었습니다.이성계가 원래 전주이씨지만 북쪽으로 올라가 조상들이 몽골의 벼슬을 지냈고 여진족과 같이 살아 여진족이라 볼수 있지만 당시 이런 일이 흔했고 여진과 한국은 다르다기보다 같다고 생각했던 시절.여진족과 조선사이이에 최초로 적대감이 생긴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있고부터입니다.그 때부터 오늘날 남북한같은 적대관관계가 됩니다.여진족과 한국인이 다르다고 하는 주장은 일제시대 처음 나타난 주장으로 일제의 이이제이 정책에 따라 한국과 만주를 분리하려는 의도에서 생긴 정치적 역사학(식민사학)의 결과입니다.
@Abkaijui
@Abkaijui 4 жыл бұрын
만주족에서 나오는 하플로DNA가 한민족에선 안나옵니다
@yoonjk81
@yoonjk81 4 жыл бұрын
한국인과 만주족은 하플로D계열 DNA가 공히 60% 북방계열로 일치하는 것으로 증명되었읍니다.
@Abkaijui
@Abkaijui 4 жыл бұрын
@@yoonjk81 몽골, 돌궐, 거란, 여진이 고구려에서 갈라져나온 민족이라 말씀하셨는데 몽골은 몽올실위에서 나온 민족이라고 지들도 인정했구요, 돌궐은 투르크계민족으로 한민족과는 다릅니다. 또 거란도 한민족과는 몽골과 가깝고요, 여진은 옛 퉁구스계 숙신이 기원입니다. 이들 민족 모두 고구려이전부터 있던 민족들입니다. 만주족(말갈)이 고구려의 후예라구요? 간접적으로 영향권이 있던것 뿐입니다. 물론 본인들이 고구려의 소속된 것을 인지하면서 같이 당과 싸웠던것은 맡지만 결국 본인들 이익에 따라 달라지는겁니다. 조선초때 아무리 여진수장에게 작위를 내렸어도 금나라 청나라 쳐들어와서 조선인들 얼마나 죽입니까?
@yoonjk81
@yoonjk81 4 жыл бұрын
제가 위에 말한 것들은 이미 분자유전학을 통해 다 증명된 것들이구요.중국이 문화혁명 때 공자묘 파헤치고 문화유적 99%불사르고 근거도 없는 공산당 역사학을 소설쓰듯 새로 만들어 중국어린이들에게 날조교육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거짓말을 백날 가르쳐봐야 사람 바보만드는 것밖에는 안됩니다.중국정부는 징키스칸을 위대한 중국의 영웅이라고 가르치지만 그 말은 중국인만 믿지 세계에 믿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중국인을 반이나 학살한 침략자를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가르치는 어리석음.고구려때 몽골이라는 국가나 민족이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고구려의 국민으로 살았기 떄문입니다. 사실 중국의 산동성,하북성,산서성,섬서성과 그 이북에 사는 중국인들은 모두 한국인의 후손입니다.중국인들의 옛날 족보를 보면 아직도 이 사실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족보에 나타나는 동이족,이족들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동이가 부여,고구려,신라,백제 등 한국인을 가르킨다고 분명히 나와 있어요.
@Abkaijui
@Abkaijui 4 жыл бұрын
@@yoonjk81 거란의 일부는 고구려의 일부가 된적은 있으나 몽골직계 몽올실위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와 관련된것이 없습니다
@louis1071
@louis1071 3 жыл бұрын
정도전과 이성계는 요동정벌할 계획을 하고 있었죠...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는 바람에 무산되었지만... 역사를 보면 판단이 빠른 사람이 승자가 되는걸 볼 수 있어요...만일 정도전이 이방원을 먼저 죽이거나 처리했다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겁니다..이방원이 원래 욕을 좀 먹을 인물인데 아드님인 세종대왕때문에 면피를 하고 있는 상황이죠..
@jinlee6973
@jinlee6973 3 жыл бұрын
그때도 못 이겼어 병신아 명나라 좆밥으로 보노
@vj-qk7uu
@vj-qk7uu 4 жыл бұрын
이황,이이,신사임당!! 대한민국 회폐에서 없에버려야 한다 ~봅니다!!! 선생과 제자 치마바람자모!!! .....ㅉ
@hanbangsabjill
@hanbangsabjill 4 жыл бұрын
이황은 아니다 이황은 자기 집 종이 글공부 배우고 싶어서 몰래 본 거 질책 안하고 같이 껴서 공부하라고 했던 사람이다
@vj-qk7uu
@vj-qk7uu 4 жыл бұрын
@@hanbangsabjill 이황 이다!!!! ... 본래 중국 유교 를 변색시켜 인권유린 ,탄압 의 첫 장을 만든 유교학자 이다!! 그사람에대한 사소한 일들 은 남은 후손들 이 보기좋게 포장한거고!~ 또 아냐 ? ..지집 종이 알고보니 지 씨였는지?? 홍 길 동!!! 같은이들 많았다~~ㅉ~
@vj-qk7uu
@vj-qk7uu 4 жыл бұрын
@@hanbangsabjill 이황은 조선 초기 사람 이자 그전에 고려 사람이다!! ..시대적 배경을 좀 봐라~ 고려시대 노비 값이 말 한필이요 ~조선시대 노비 값이 염소 한마리 값이라~ ~ 이황 은 무얼 보고 무얼 느꼈을까?? 유교의 어질 "인"을 백성에게 배포교육 시켜야 할 자가 젤먼저 나서서 지집노비 상대로 패악을 떨까?.
@hanbangsabjill
@hanbangsabjill 4 жыл бұрын
@@vj-qk7uu ㅋㅋ 똘갱이네 야.. 이황 부인이 정신적으로 문제있던 사람이었단 거 알고 씨부리나? 집안에서 파혼하라고 그렇게 난리쳤어도 이황은 끝까지 자기 부인 지켰다 거기다가 윗동네 영주 순흥 피끝마을에서 밤마다 귀신나온다고 했을 때 손수 가가지고 귀신들 달래주었다는 일화 못들어봤어? 순흥 피끝마을? 세조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운동 계획했다가 걸려서 거기 마을 사람들까지 싹 몰살당했던 곳이다 이황이 살던 당시에는 아직 단종이 복권되지도 못했었다 알겠어? 그리고 이황네 집안인 예안 이씨 집안이 독립운동가 엄청 많이 나온 집안이야 섀끼야 알고 까불어대
@hanbangsabjill
@hanbangsabjill 4 жыл бұрын
@@vj-qk7uu 그리고 이황의 제자 중 한사람이 류성룡이다 섀끼야 이황이 니 말대로 성리학에 목숨걸은 꼰대였으면 류성룡이 전쟁 중에 목숨걸고 명나라 놈들과 대립하면서까지 나라 지키려 했겠냐? 니나 똑바로 쳐알고 씨부려대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4 жыл бұрын
유교와 성리학을 구분못하고 한데 섞어 똥을 만들지 맙시다!!!
@dheameyknous.t.8078
@dheameyknous.t.8078 4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실용주의적 유교는 욕해서는 안 되지요. 성리학이 배타성을 띄고 절대화되면서 조선이 망하기 시작한 거지요.
@joneshubert3791
@joneshubert3791 4 жыл бұрын
막걸리 대신 국뽕 한사발!
@kimseonjong84
@kimseonjong84 3 жыл бұрын
내용은 좋은데 말이 너무....혼자 책읽듯이 웅얼거립니다. 그리고 말이 빨라요 차라리 브금과 자막만 넣었으면 어땠을까요?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4 жыл бұрын
이성계 아버지 할이버지 조상들이 여진족출신인데요...;;;
@unitedaccountsofme9297
@unitedaccountsofme9297 4 жыл бұрын
근거가 어딨죠
@user-ce4wz6gs8p
@user-ce4wz6gs8p 4 жыл бұрын
그 옛날 고려시대는 혼란의 시대였음... 중국대륙은 원나라의 힘이 약화되어 각지의 자칭 왕들 들고 일어나서 민란과 병란이 혼재되어 백성들이 힘든 시기에, 한반도 역시 고려 왕조의 실정과 귀족의 탄압에 많은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 북방쪽으로는 현재의 만주지역으로, 남동으로는 일본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일본은 바다란 큰 난관이 있어서 북쪽방면 보다는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 후에 전주 이씨의 조상중 일부가 북으로 가서 원나라에서 군생활로 동북방지역에서 활동하다 이성계 대에 이르러 원나라에 희망을 못보고는 고려에 귀의하였죠... 이성계 일족이 전주 이씨라고 하는 것도 조선 건국후에 왕조실록으로 확정시켰던 것이고, 실재로는 그 사실이 실제인지는 현재 알 수 없는 것이죠.. 문헌에 있으니 그렇다고 보는 것뿐이고... 문헌은 어짜피 후대에 작성되어 내려오기에 현대에선 그런가 보다하는 것이다. 교차로 볼 수 있는 중국사적이나 고려 사적이 있다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성계 일족이 중국에서 대단한 명문가로 활동한 것도 아니기에 그것에 대해 확정할 수있는 근거적 사료도 없다.... 고려사적도 역시 현존하는 것이 모두 조선조에 작성된 것만 있다...
@commentno3153
@commentno3153 4 жыл бұрын
고려에서 넘어간 고려 출신인데요...;;;
@jiyou8073
@jiyou8073 3 жыл бұрын
발음 아쉽
@user-kq1ly3bh7s
@user-kq1ly3bh7s 4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여진족이잔아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4 жыл бұрын
내말이...!!!!
@user-us9rq1fm1x
@user-us9rq1fm1x 4 жыл бұрын
그럼 조선이 청나라 스몰버전이란 뜻?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4 жыл бұрын
@@user-us9rq1fm1x 굳이 따지자면, 조선은 명나라 스몰버젼이죠;;;;; 태생부터가 명나라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했으니까... 중간에 청으로 갈아탄거구요
@user-dm3tc8zt4x
@user-dm3tc8zt4x 4 жыл бұрын
솔까 만리장성 넘어는 죄 오랑캐라고 하던 한족들 제외하면 죄다 배달의 민족이지 않나 싶음. 물론 뭐 큰집 작은집 이렇게 대가 이어지며 나누어 지긴 했지만. 조선후기에 유교빠들이 설쳐서 친척인 자신들 보다 한족을 더 섬기는 조선이 답답했을테고. 중국내 소수민족들 보면 우리랑 문화와 혼을 공유한 흔적도 많이 보임.
@wiwaxiasilver827
@wiwaxiasilver827 4 жыл бұрын
오, 조선 초기는 그래도 국뽕의 여지가 꽤 있네요. 이렇던 조선을 ㅈ선으로 망하게 한 무능과 탐욕에 젖은 중/후기 조정은...
@_wind_legend_
@_wind_legend_ 4 жыл бұрын
조선을 건국한 사람이 여진족이였으니까 맞겠죠.. 그전에도 많았지만 조선때에는 한반도에 더 많은 종족들이 존재 했겠죠.. 다민족이 모여 지금의 대한민국이 된겁니다.. 대한민국에 살면 대한민국인으로 단합된걸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 실정을 보면 그렇지 않죠..서로 자기들 조상이 제일이라 생각하며 사로 헐뜯고 난리도 아니죠..
@commentno3153
@commentno3153 4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여진 출신이라고 하는 놈이 두 놈 보이는데, 어떤 문헌에서 그리 말하는지 근거를 가져와봐. 그럼 너네들 하는 말에 귀라도 기울여줄게
@American-drone
@American-drone 4 жыл бұрын
전주에서 대대로 살다가 함경도 지역으로 이주한 집안인데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죠
@user-yt1gn6nv6d
@user-yt1gn6nv6d 4 жыл бұрын
일단 기록이 있습니다만 제가 기억이 나지 않아 찾지는 못했네요. 없다고 치고 말하더라도, 그의 출신을 고려인이라고 보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이성계의 출신지는 함흥이지만, 4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200여호 가량의 무리를 끌고 전주에서 함흥으로 이동했다고하죠. 하지만 4대 추존 자체가 족보를 원래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 건국 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과정에서 보통 편집이 들어가죠. 비슷한 예로 신라가 자기 왕실의 기원을 당시 세력이 강했던 흉노에서 찾는다던지, 왕건이 당나라 숙종의 후예였다든지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실제 전주에서 넘어갔는지에 대한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죠. 확실한 것은 그와 그의 아버지 이자춘이 원나라 관직을 받았다는 점이고, 타국적자에게 관직을 주는 법은 예나 지금이나 없으니, 그들의 국적은 원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최소 4대가 타국에서 타국적자로 살면서, 관직을 받았으니 그 대가 이성계 까지 내려오게 된다면, 귀화 전까지 고려사람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고려로 귀화를 하면서 고려인이 되는 것이죠. 한국사를 좋아하시는 일부 매니아들이 국가의 정통성, 민족주의, 식민사관에 대한 반감 등등의 여러 이유로 이성계의 여진이나 원 출신을 부정하시는 경향이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가 원나라 사람이건 여진족 출신이건 전주 출신이건을 떠나서, 그의 국적이나 출신성분이 이후 600년이 한국역사라는 것에 조금도 영향을 주는 사안이 아니므로 재고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user-yt1gn6nv6d
@user-yt1gn6nv6d 3 жыл бұрын
근거 가져와도 수개월동안 귀기울여주진 않는군요ㅋㅋㅋ
@kulkul9803
@kulkul9803 3 жыл бұрын
@@user-yt1gn6nv6d , 님, 무식한 사람들에게 말하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진실을 원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알랑방구를 원하죠. 그러나 100명 중 한 명은 님의 댓글로 진실을 알게 되니 충분리 가치있지 않습니까.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 2 жыл бұрын
@@user-yt1gn6nv6d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로 설득을 하려니 안 통하는 거지. 무슨 개소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ZamBokSaw
@ZamBokSaw 4 жыл бұрын
결론은 정치인들이 잘해야 한다는거와 그리고 친일세력의 역사 왜곡?
@user-hk7gb5lr2i
@user-hk7gb5lr2i 4 жыл бұрын
문재인 이 동영상 봐야하는디.
@kimhun7673
@kimhun7673 4 жыл бұрын
해외 문화재 환수 어쩌고 해놓고서는 실은 반일종족주의 추종하는 국까들....이런 것 볼 시간에 차라리 논문을 보는게 유익할텐데..
@user-ld7ov5nn8v
@user-ld7ov5nn8v 2 жыл бұрын
그러게나 말이예요. 조선이 중기에들어서 맹목적으로 중국을 추종하고 그 어떠한비판을 용납하지않는 사대주의에 빠졌듯이 제 또래 8,90년생들은 어렸을적부터 일본애니에 심취해서 조금만 일본을 비판해도 "반일이다!!!!!" "반일은 정신병이다!!!" "민족주의 국뽕정신병자다!!!!" ....이러면서 거품물고 달려드니 장차 또래들이 사회기득권층이되면 나라가 또다시 일본으로 넘어가지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sullivanst9536
@sullivanst9536 4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여진족출신이니 당연히 이성계 부하도 여진족이 있겠지.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 2 жыл бұрын
그렇게 따지면 당신의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들은 인도 남부 드라비다에서 출발하여 인니와 필리핀을 거쳐, 대만이나 중국 서해안을 따라 한반도에 들어온 사람이니 님은 인니 사람이나 필리핀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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