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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 전 북한 대남공작원
[앵커]
김현희 씨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잘 아는 것 같지만 그러니까 다 아는 것 같지만, 저는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제가 잘 모르고 있구나, 모르는 게 많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평균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김현희 씨에게 제가 몰랐던 것들 대신해서 제가 묻도록 하겠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잘 지냈습니까?
[인터뷰]
이제 내일모레가 11월 29일입니다. 그러니까 29일이니까 KAL기 폭팔 사건이 일어난 지 28주년이 됩니다. 그래서 세월이 그만큼 많이 지나갔지만 그 아픔, 슬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고 다 말로 표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잊을 수 없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서 희생자분들과 또 유가족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앵커]
지금도 이맘때쯤 되면 그때의 일들이 계속 떠오르고 그러십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그렇죠.
[앵커]
어떤 생각들이 드시나요?
[인터뷰]
사건에 대해서 항상 상기되고 또 많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앵커]
꿈에도 지금도 북에 두고 온 가족들도 그렇고요, 지금도 꿈에 나타납니까?
[인터뷰]
가끔 이제는 뭐... 아이들 키우고 바쁘니까 그 전보다는 덜합니다.
[앵커]
두 자녀가 사춘기죠?
[인터뷰]
사춘기가 돼서 조금 바쁘죠.
[앵커]
평양에서 태어나셨고요. 아버님은 외교관이시고 어머님은 교사이고 어릴 때는 아역배우 같은 것도 하셨다고 하고 북한 사회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아주 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셨는데 어떻게 해서 공작원이 되셨을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인터뷰]
평양에서 나서 자라서 쿠바에 가서도 생활을 하고 이렇게 상류층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 평양외국어대학교에 다니면서 아무래도 보고 배운 게 외교관이기 때문에 외교관이라는 꿈을 가지고 평양외국대학교 일본어과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최고의 권력기관인 중앙당 또 거기에서도 대남부서인 대외정보조사부에서 공작원으로 소환하기 위해서 아마 몇 차례 사전에 나와서 다 문건이라든가 출신성분, 학교생활 이런 것을 다 파악을 하고 그다음에 직접 면접도 하고 여러 명, 여러 학생들을 뽑고 면접을 하고 또 시당에 불러서 여러 가지 면접심사를 거쳐서 소환되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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