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남님의 마태복음 원론을 해설하는 임웅재 신부님의 개론이 명쾌합니다. 제 주위에 자신있게 소개하고픈 명품 채널입니다.
@ajpark98188 күн бұрын
대림시기와 성탄을 보내면서 정말 와 닿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hajongkim830714 күн бұрын
가장 비극에 언제나 신은 없죠. 애초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요? 여기 아둘람공동체는 내년 캘린더의 일정 기간을 할애하여 특정 영역의 전문연구인과 함께 관련 주제를 한껏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요? 안병무의 민중신학이나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관한 기층적 지겨움은 '안병무도서관'이나 '함석헌기념사업회'에의 전화 한 통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후원금을 贊助하면 더욱 감사하겠죠. 최요한님의 믿음이 깊습니다.
@100억벌뻔-n1s23 күн бұрын
🎄메리크리스미스🙏
@hajongkim830723 күн бұрын
성경은 원죄와 회개와 순종과 구원의 예외없는 순차성을 roadmap한 신과 인간이 공저한 환타지소설이죠. 특히 구약의 폭력성이 지금의 이스라엘까지 유전되고 있다는 오대환 목사님의 '바른 신학'이 반갑습니다. 믿음의 공부가 깊은 분이시군요.
@hajongkim8307Ай бұрын
올곧은 배은선님의 정신적 기층은 한 입 줄여 입양된 지난한 삶 가운데에서도 도산의 민족과 씨알의 민중을 절감한 椿堂 어른의 깊은 자존감으로 보입니다. 저도 많이 닮고 싶은 부자지간의 끈질긴 유산이군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당최 분칠할 줄 모르는 말간 민낯에 늘 반갑습니다.
@hajongkim8307Ай бұрын
서울 무교동 낙지골목은 酒黨의 聖地이죠. 무교동 '산(生) 낙지'가 '산(山) 낙지'로 고향이 바뀌듯 과연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요? 제 평생의 화두입니다. 강직하신 최재구님이 안 보이시네요. 제가 이분의 광팬입니다.
@hajongkim8307Ай бұрын
동네 형 닮은 김경일 신부님의 '배 째라' 신학은 삶 속의 고단한 여정이죠. 이분을 분명 어디선가 뵌 듯합니다만, 기억이 가물하군요. 혹시 서울 정동 '세실(cecil)' 레스토랑이었나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일관된 지향점에 공감합니다.
@hajongkim83072 ай бұрын
선병질적인 뒷담화의 난장질도 부족했는지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저장 파일마저 홀랑 들고 튄 어느 장물 먹사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는 다중이들의 불감증이 놀랍군요. 어느 群像이든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기 마련이죠.
@hajongkim83072 ай бұрын
구약은 타의적 服從만을 끌탕했지만 신약은 자의적 順從을 꿀맛했죠. 인간의 성품은 하나님이 훅 불어 넣은 동질의 숨결이 아닌 아예 태초부터 진행된 유전학적 연관과 교차의 생물성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적 기독교를 지지합니다. 희망과 절망의 극대칭에서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던 예수의 의미가 더욱 단단하게 다가서는 아침이군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풋 설익은 그러나 찬찬한 속내의 알곡진 평민신학이 참말 압권입니다. 박정섭님의 믿음이 깊습니다.
@hajongkim83072 ай бұрын
마왕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죽은지 벌써 10년이 지났군요. 그의 참여시적 가사를 개인적 실존주의로 해설하는 임원 목사님의 '신해철 평전'에 공감합니다. 참 좋은 contents의 발굴입니다. 신해철, 그를 다시 추념합니다.
@hajongkim83072 ай бұрын
양보영님의 일관된 신학은 대단히 optimistic합니다. 밝고 유쾌하며 흐뭇하죠. 그리고 자신의 수족처럼 잡힐 듯 자연스럽습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은 분명합니다. 교회는 예수의 목수질이 아니었으니까요.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소금과 빛이 믿음의 귀한 생필품입니다.
@hajongkim83072 ай бұрын
확신이란 가장 1차원적인 감정 쏠림이죠. 예수조차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민간(?)신학이 참신합니다.
@LAinaTV3 ай бұрын
구독~ 좋아요!!!🎉🎉🎉 권혁태 조카님 ㅋㅋㅋ 영상 잘 봤습니다~ ㅋㅋㅋ
@hajongkim83073 ай бұрын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은 순차적 (sequential)이 아닌 무작위적(random) 우연과 오랜 시간의 결과물이죠. 최재구님의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사업을 인공선택으로 가두리하는 기존의 정통신학을 가뿐하게 방류합니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을 의미하는 모빈(牡牝)아라는 두 음절의 한자어가 있습니다. 소 우(牛) 부수에 더한 흙 토(土)와 비수 비(匕)의 제부수는 각각 숫컷과 암컷의 발정난 생식기의 모양을 본뜬 형성자이죠. 개천가의 물구유에 허옇게 발가 벗긴 나뭇가지를 총총히 세워놓고 갈증에 환장한 양떼를 잔뜩 물 멕인 야곱이 야무진 독학으로 유전공학을 연습한 듯하군요. 이 친구 아주 영악합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거침 없는 콘텐츠는 대단히 독보적이죠. 최재구님의 공부가 깊습니다.
@hajongkim83073 ай бұрын
하나님을 아는체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이는 알 수 없는 분이시죠. 하지만 알려주십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를 통해서요. 갑자기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떠오릅니다. 이유는 모르겠군요.
@hajongkim83073 ай бұрын
문형훈님의 음성엔 가득한 진심이 느껴집니다. 마치 종례시간의 담임꼰대처럼 걸핏하면 뒷담화 꼬투리에 징징대던 어느 입(入)애굽 먹사와 많이 비교되죠.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hajongkim83073 ай бұрын
믿음은 私有財가 아닌 이웃과 함께 나누는 公共財로 보입니다. 약 1년 전에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公共財를 私有財로 장물애비한 어느 먹사가 있었죠. 똑같은 추석 명절에 성경을 거꾸로 사는 참 딱한 인생입니다.
@hajongkim83074 ай бұрын
영화 밀양과 더 영화 같은 세월호가 미량의 사랑과 용서마저 절망시킵니다. 창세기 사람의 피조물은 최악의 불량상품입니다. 그땐 아예 품질관리(Quality control)의 개념이 없었지 싶어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참 좋은 곳입니다. 늘 성원합니다.
@hajongkim49344 ай бұрын
전주(처음엔 이게 이분의 雅號인 줄 알았어요)에 주소한 김수일님의 구수한 나레이션으로 전설의 고향 '금산교회'편을 들었습니다. 너무 흔한 직업적 성령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에 천착된 개신교의 뿌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합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참 좋은 예수 닮은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 당최 꾸미질 못 하는군요.
@hajongkim49344 ай бұрын
가나안 사람이 기독교를 멀리 하는 가장 큰 사유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따로따로 삼위가 같은 한몸이라는 삼위일체입니다. 이 삼위 가운데 특히 성령이라는 detail이 이웃집 남자처럼 가장 낯설죠. 김경일 신부님의 성령론은 빛바랜 바울 서신을 가슴 시린 삶의 파동으로 다시 우편하고 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성령이 분명 계시는군요.
@hajongkim49344 ай бұрын
예수의 진정한 衣鉢傳人은 누구일까요? 김근수 교수의 명저 '예수운동 역사와 신학'은 유대독립전쟁을 분기점으로 예수 사후 100년의 격동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성경의 관념과 해석과 실행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깊숙한 내공이 있어요. 배은선님의 찬찬한 책갈피가 정겹습니다. 주위에 널리 소개하고픈 명강의로군요. 감사합니다. (어느분이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editor로 수고하는지 모르겠으나 thumbnail이 조금 아쉽군요)
@hajongkim49344 ай бұрын
삶의 가장 환난은 가난과 병이라는 구체성이죠. 구약의 하나님은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있긴 합니까)?"라는 묵은지 주문을 겉절이 추상성으로 접시에 담습니다. 늘 개운찮은 같은 맛이죠. 하지만 신약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못질 대신 그걸 한껏 짊어진 분입니다. 이들이 부자지간인 게 정말입니까? 친일파 김동인(이분의 따님이 서울 상도중학교 제 국어선생님이셨어요)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성경의 부록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엔 남의 글을 삼시세끼 죽어라 컨닝하는 어느 먹사 닮은 불량학생이 없어서 참 좋습니다.
@ajpark98185 ай бұрын
아 그랬군요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직접 성경을 보면서도 눈이 가리워진 채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주 솔직히는 다윗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어버이 수령님이 나뭇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 ..... 이와 유사하단 생각을 좀 하게도 됩니다 하도 한국 사역자들이 다윗을 좋아하고 그를 방패삼길 즐겨하여 최근 부터 다윗 왕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신성남 선생님의 지적이 저에게 언제나 그렇듯이 진리를 올바로 찾아가는데 크나큰 도움이 됩니다 별도로 성경에 의문을 가지고 수십년을 지내오다 비로소 개인적인 의문을 해소하면서 진리로 자유케됨을 얻어가는 여정중에 있습니다 신 선생님 발제 하실떄 항상 기다려 집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신성남님은 영화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의 캐릭터와 많이 닮았죠. 어차피 골로 갈 친구였는지 골리앗은 다윗이 아닌 엘하난이 죽인 듯하군요. 하나님과 인간이 共著한 성경의 正金을 채굴하는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거침없는 역량에 감탄합니다. 흐뭇한 8월 되시길 바랍니다.
@jae-guchoi19955 ай бұрын
ㅎㅎ삼상과 삼후의 시점상의 차이를 보면 삼상의 David가 죽인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히브리 원문은 삼하 21:19에서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되어있고 영어 번역본들은 KJV를 위시해서 약40% 정도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다고 번역되어있고 약60%의 번역본들은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되어있 습니다. 그런데 정황상 삼상의 기사는 David가 어렸을 때이고 삼후의 기사는 David왕 때 기록이니 히브리원문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임스왕은 성경번역본을 감수하면서 이것 저것 살펴보고 그렇게 번역을 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jae-guchoi1995블레셋(팔레스타인)의 맹장 골리앗을 여럿이 죽입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최재구님의 서사적 편년체를 찬찬히 곰씹어보니 '그럴싸'하군요. 공감합니다. 어느덧 8월입니다. 세월은 다윗의 물매질이 가소로운 파리올림픽의 한국양궁처럼 한 치의 오차없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흐뭇한 월간 되시길 바랍니다.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神話와 實話의 차이를 하나로 얼개하는 이병석님의 창세기가 신선합니다. Eden school에는 아담과 하와의 사람만이 아닌 뱀과 같은 동물도 개근하고 있던 걸로 보입니다. 남녀공학 같은 반이죠. 그리고 거기 골머리 교장이신 하나님은 범생이와 무지랑이 모두를 유급 없이 졸업시켜 우선 사회로 배출하고 그들을 오래 지켜보며 사랑하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주제 선택이 손에 잡힐 듯 친숙하고 탁월하군요. 멋진 채널입니다.
@bsl22464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단지 우리가 성경을 바라다 보는 눈을 달리하여 창조사건 전의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無敎會主義는 미운 사람과 나를 분리시키는 자기방어기제의 일종이며 철저한 개인기의 영역에 속하지만 현대적 의미로는 부동산과 등기권 목사가 없는 교회를 단순 지칭하는 듯하죠. 하지만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라는 왜인의 新神社 운동에 불과한 이걸 한국인이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에도 여러 말 못 할 갈등이 있을 수 있겠죠. 當然之事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찬찬한 믿음이 無敎會主義의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습니다. 예수가 교회입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ajpark98185 ай бұрын
우찌무라 간조는 무슨 상관이라고 요즘 운운하는지 들. 기존 교회 문제를 말하면 이런식의 공식이 등판.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무교회주의는 루터의 탈가톨릭부터 우찌무라 간조의 신신사 운동으로 동양화된 걸 김교신이 수입하였죠.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예수가 교회이며 동학이 적시하는 사람이 교회라는 인내천의 뜻을 다시 적습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You Tube에도 많은 몸글과 댓글의 후기로 더욱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hajongkim49345 ай бұрын
한국은 만 65세부터 재외동포의 2중국적이 가능합니다. 제가 이번 9월이면 여기에 해당되죠. 하지만 현재 시민권자 신분의 타국에 자신 명의의 집을 포함한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있는 2중국적의 재외동포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연금과 건강보험 그리고 정부주택의 혜택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확인불가의 사각지대에 자신의 처지를 은폐하고 태연히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편취하는 얄팍한 처세는 내 조국을 두 번 기망하고 배신하는 몹쓸 짓이죠. 그 사람의 인성이 가장 고스란한 건 말과 글이 아닌 돈입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주제 선택이 다양하고 생산적입니다.
@hajongkim49346 ай бұрын
割禮(창17:10~11)와 洗禮(출30:17~21)는 구약에 근거한 유대인의 율법입니다. 김재주님의 담론 가운데 오래전 언약된 아브라함의 구약과 신약의 예수를 관통하는 구원의 전개와 완성에 발군의 공부가 느껴집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에 평민신학(?)의 재야 고수가 허다합니다. 신앙과 신학을 예수와 엠마오하는 대한민국의 명품 채널입니다.
@hajongkim49346 ай бұрын
제 개인적인 채점으로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여러 얼굴 가운데 小市民的 진솔함이 가장 美人입니다. 고스란한 自然美人이죠. 억지로 끌어들인 돌려막기로 머릿수 채우기에 머리털 빠지는 어느 '텅 빈' 공동체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군요. 박정위님의 시간적 성경해석은 불가의 圓形的 劫의 개념과 많이 닮았죠. 뛰어난 담론에 공감합니다.
@hajongkim49346 ай бұрын
여기 시드니 한인교회의 새벽기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주권 좀 나오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이민브로커는 아니시죠. 제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살면서 아쉬운 게 있으면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해볼게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기도가 진솔합니다.
@hajongkim49346 ай бұрын
이병석 시인의 등단은 침체된 한국 시문학계의 낭보입니다. 특히 '할미꽃'이 가슴에 와닿는군요. 가을 조국길의 도서구입목록에 반갑게 추가합니다.
@hajongkim49347 ай бұрын
멀리 떨어진 간접성의 SNS 만남일지라도 그이의 人性은 깊게 고인 音聲의 떨림으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自發的 순수함이 정겹습니다. 좋은 분들이군요.
@hajongkim49347 ай бұрын
빅뱅(Big Bang) 이론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을 아예 우주 밖으로 날려버리죠. 구약의 神話를 實話로 물질화한 신약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최재구님의 믿음이 깊습니다.
@hajongkim49347 ай бұрын
김경일 신부님은 당신의 작은(?)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왕따의 아이콘이었던 기시감적 연민을 느끼는 듯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의 이웃 사랑은 노예제 신분사회의 수직적 개념이었죠. 온통 사랑 타령의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는 굉장한 동네입니다. 꾸밈 없는 생얼만 가득하니까요.
@hajongkim49347 ай бұрын
하나님은 낯선 缺乏性의 양부모에 불과하죠. 그의 수직적 양육법은 자녀의 평생된 고해와 죄성의 화두를 결코 해결하지 못 합니다.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소시민적 진솔함에 공감합니다.
@hajongkim49348 ай бұрын
루터 이후 500년의 개신교가 미증유의 처참한 개밥그릇으로 망가진 경우는 한국이 처음이죠.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깊은 탄식에 일말의 희망을 가져 봅니다. 참 귀한 공동체이죠.
@hajongkim49348 ай бұрын
'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시인 오규원의 장례는 그의 유작의 마지막 문장처럼 강화도 전등사의 수목장으로 치뤄졌죠. 김웅재 신부님의 진한 감수성 믿음이 오랜 구약의 시편을 떨린 가슴으로 전승합니다. 이분은 지독한 작가이시죠.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에 奇人異士가 허다합니다. 많이 배우는 귀한 週刊의 담론입니다.
@hajongkim49348 ай бұрын
계속되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알던 생생한 sample case가 바로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에 있었죠. 남이 차린 밥상머리에 슬쩍 숟가락만 얹다가 인성의 바닥이 드러나자 아예 통째로 밥상을 들고 튄 호주 시드니 難民 비자(Refugee visa) 출신의 어느 먹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팔자소관도 참 가지가지이죠.
@ajpark98188 ай бұрын
신선생님 말씀 주의깊게 듣다가 예수는 신화다 라는 책 주문해 오늘 받았네요 이런일이 세상에 존재 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크게 감사드립니다
@sungyonglee10138 ай бұрын
자유는 부분적이며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수 없다 생각 합니다.마치 평등,차별,완벽,귀천,평화…처럼요. 다만 사고의 자유를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할것 같읍니다.
@조인철-p5w8 ай бұрын
줌 아이디 알려주세요
@David-i5o8q8 ай бұрын
870 123 4252 (아둘람온라인공동체) 비밀번호 : 0000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한국 시간입니다.
@hajongkim49348 ай бұрын
牧子의 종교밥(진솔하게 표현하셨어요)을 미쁘게 나누는 김경일 신부님이야 물론이지만 사모님의 인내심이 대단합니다. 참 곱고 감사한 분들이시죠.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hajongkim49348 ай бұрын
성경에 적혀 있으니 한치도 틀림없는 사실이지 "뭘 더 따지고 대드냐?"는 기계적 믿음은 사람이 아닌 로봇의 강철갑주 경직성에 불과하죠. 신성남님의 출애굽기 數理 領域에 만점으로 공감합니다.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최강 병기는 진솔한 자기 고백이죠. 875원 대파 한 단의 허망한 세치혀로 눈치코치 머릿수에 안달하는 어느 '텅 빈' 계모임과는 확연히 다르군요. 주위에 널리 소개하고픈 명품 채널입니다.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행동의 야고보 대신 믿음의 바울을 衣鉢傳人한 마틴 루터는 독일농민혁명선언문에 서명을 거부했죠. 사회적본능 대신 자기보호본능에 충실하며 "너는 죽고 난 좀 살자!"로 평생을 영리하던 처세의 달인답습니다. 경주에서 발원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진하며 충주를 거쳐 고부(정읍)에서 개화된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명종기의 '망이•망소이 난' 이후에 출전된 최대의 기층적 저항입니다. 지금의 촛불혁명이 동일 혈맥의 증손자 쯤 되겠죠.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가 민족의 동학이자 촛불입니다. 성원합니다.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지성수목사(?)의 역전과 반전의 부활은 종교비자가 아닌 조국팔이 난민비자로 호주 영주권을 취득한 일이죠. 이런 입 싼 매국노는 이중국적을 불허해야 합니다.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3년에 걸친 예수의 公生涯는 믿음에 마주한 구원의 기본소득을 均分하는 독한 여정이었죠. 점점 더 폐렴의 탁성이 깊어지는 박정섭님은 내성만 보태주는 의사의 의례적 처방전 대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서 '나는 잠시 자연인이다'의 생활환경을 바꾸셔야 합니다.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어떤 간접성의 만남이든 그 사람의 진면목을 헤아리긴 어렵지만 본인 스스로 이를 때깔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성수목사(?)의 모든 말과 글은 100% 남의 걸 복사해서 지껄이고 짜집기하는 일련된 모방 범죄의 찌라시이죠. 그는 기초적인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버겁고 힘들어 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그의 비상식적 기태를 마주하는 여기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진실성엔 아쉬움이 많았어요. 비겁한 침묵 대신 듣기 싫은 소릴 할 줄 알았어야죠.
@hajongkim49349 ай бұрын
남극세종과학기지의 1년 rotation 연구원들을 제외하곤 700만을 상회하는 '디아스포라' 한국인 가운데 가장 남쪽에 원점하는 권혁태님(老顔의 '옹' 대신 童顔의 '님'이라는 존칭접미사로 갈음합니다)은 결코 짧지 않은 한국 이민사의 境界的 人間文化財 1호로 지정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분이시죠. 지구 행성의 土末에서 피부로 체감되는 주의 놀라운 창세기에 언어가 무색합니다. 믿음은 꿈틀대는 생물성이죠. 아둘람온라인공동체의 내공 깊은 담론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좋습니다. 주위에 널리 소개하고픈 명품 채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