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끔 어릴때 빨래터 놀러가던 얘기 종종 해주시곤 했는데.. 저 영상에서 빨래하는 엄마등에 업혀 신나게 흔들리고 있는 아기가 딱 저희 엄니 연세 되셨겠네요.ㅎㅎ손주 안고 즐거워하시던 엄마가 저렇게 아기였을 시절.. 시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값진 영상 감사드려요
@aisookkim69462 жыл бұрын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저희 어머니도 저기 계셨겠지요 서글프고 어머님이 그립습니다...귀한 영상 감사합니다..미국에서 응원합니다 ~
@EnglishBibleeveryday2 жыл бұрын
어떤 기분이실지 상상이 안 가지만 마음이 찡합니다.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저는 일본에서 응원합니다 ❤
@김영철-w1u1r2 жыл бұрын
저 역시도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대구극장 앞이라는데 지금은 그 극장은 없겠지요?
@백경-j6d2 жыл бұрын
54년도 ..참혹했던 전쟁 끝나고 열악한 현실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니..대구 사람들의 인성은 대체로 의롭고선했다고 볼 수 있는 귀한 영상입니다!
@prunus772 жыл бұрын
제가 어릴적 살던 신암동 근처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칠성시장 부근인 듯.. 그리움이 밀려오네요. 감사합니다 ^^
@GEOGRAPHUS-SONG2 жыл бұрын
1950년대... 6.25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전쟁 피해가 거의 없었고 산업시설과 자본이 있었던 대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지요. ㆍ 전쟁 직후임에도... 기아와 폐허의 경관이 아니기에... 편히 봤습니다.
@mentalnursing2 жыл бұрын
이런 귀한 자료들을 복원해주시고 보여주시는 백년전TV가 있어 삶이 윤택해지는거 같아요😊 오늘도 귀한자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koreanlandscape224510 ай бұрын
영상 시작할 때 사진은 지금 상동교 근처 입니다. 왼쪽에 수성못 모습보입니다. 앞산순환도로 시작인 용두산성도 우측에 보이고요..
@softwindpark62622 жыл бұрын
이때 울할배 살아생 전 가장 무서웠던 것이 부억에서 쌀독 바가지 끅는 소리라 했다. 오직 끼니만 걱정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든 시절이 눈물난다. 울엄니 얼마나 고생했길래 한갑 때 돌아가셨다.
@user-happyhappy99882 жыл бұрын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내 고향의 모습이군요. 어린시절 늘 건너다니던 칠성교와 칠성시장,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저도 칠성시장 매주 갔어요 너무 그립네요 ㅠㅠ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46년생 이신데 그때 저기에서 할머니 손잡고 저기에 계셨겠네요. 너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영상을 재반복해서 엄마좀 찾아볼께요 ㅋ
@시현라-i1t Жыл бұрын
대구 출신입니다. 현재 대구의 아파트에서 보는 팔공산 풍경이 저 영상에도 그대로 있네요. 시간이 흘러 세대가 교체되고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완전히 변했는데 변함없는 것은 자연이네요. 기분이 묘합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빛-r1e2 жыл бұрын
제가 태어나가 딱 20년전 고향 대구에 모습이네요.. 제부모님이 아직 어린 소년 소녀일때..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참 그리운 영상입니다..
@aaaaa_3022 жыл бұрын
대구사람인데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user-1ww1002 жыл бұрын
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스모스-j7r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봤습니다.
@빛날흥2 жыл бұрын
아으 진짜 정감이 넘쳐서 눈물이 날 거 같다. 저런 사람들로 경제화 희생될 거 생각하면 참 눈물이 고인다.
@andrew7_TV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sjuiopewrdf28522 жыл бұрын
와 이랫던 세상이 불과 몇십년만에 엄청나게 변하다니
@노잼을예스잼으로2 жыл бұрын
전 부모님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부모님 젊엇을때 환경이 궁금해서 보고 저희 엄마는 과거 회상하려고 봐요 ㅎㅎㅎ 서로 같이 구독하고 잇는줄도 몰랐음
@user-1ww100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ㅎㅎ
@노잼을예스잼으로2 жыл бұрын
저도 감사합니다👍
@잊혀진추억이너무많다2 жыл бұрын
1954년이믄 저희 아버지도 세상에 없던 시절이네요..험 ㅋ 저 시절을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게 영광이네요
@joekim4132 жыл бұрын
내가 지금 42살인데, 86년도 까지만해도 내기억에 계산성당앞으로 소달구지 지나가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는 그래도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입니다. 북한은 지금도 이영상으로 사는데.ㅋㅋㅋ 암튼, 줄을 잘서야 됩니다. ㅋㅋㅋ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저는 50살인데 그때 계산성당쪽에는 소달구지도 보였었군요 저는 수성구 쪽에는 꽤나 번화가 였던걸로 기억을 하고 가끔 외각 시골쪽에가면 소달구지는 봤던거 같아요 어쨌던 영상도 댓글로 추억을 말씀 하시는 분들 너무 반갑고 그립네요 ^^
@canlim18525 ай бұрын
이건 거의 역대급 자료네요. 칠성교 인근 출신인데 어릴때 동네 어른들 얘기가 신천변에 빨래하는 여인들로 온통 하얀옷 물결이었다는데 영상으로 자료가 있다니…ㄷㄷㄷ 정말 소중한 자료네요. 50년대 후반에도 신천을 중심으로 시내방향은 거의 집들이 좋았었고 번화가는 네온 불빛으로 화려했습니다. 농토와 초갓집들은 외곽지역 같네요.
@SouthKorea-z3w2 жыл бұрын
저기가 바로 6.25전쟁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 전선이겠군요. 대한민국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calleigh892 жыл бұрын
저런 시절에도 행복했던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난 안행복해하는걸까. 역시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건가보다
@0126gngmdl Жыл бұрын
울 외할머니 외할부지가 10살 무렵 되셨을때의 모습이군요… 너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살아 계셨을때 영상이 있었다면 보여 드렸다면 옛추억얘기하느라 신나있는 할매 할배 모습이 상상되네요 ㅎㅎ
@임꺽정TV2 жыл бұрын
저때가 사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습니다..지금의 이디오피아보다도 더 가난했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복지구가 아이티 1등 국가가 되었습니다..모두가 박정희 장군님의 노력입니다..
@_NakTa2 жыл бұрын
저 때 이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
@모두까기인형-t8e2 жыл бұрын
헐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실지도 나중에 아버지한테 영상 보여드려야겠어요
@user-1ww1002 жыл бұрын
예전 영상에서 조상님 찾으신 분 계셨습니다 ~ㅎ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user-1ww100 멋지세요ㅠㅠ 우리의 역사를 잊지않게 해주시고 선조와 부모님들의 옛기억을 복원해주셔서 항상 감사 드립니다
@정민호-z9r2 жыл бұрын
처음 사진은 신천교 아닌데요(앞산하고 거리가 너무 가깝고 다리규모가 작음) 지금 중동교 근처인것 같은데 오른쪽 앞산(용두산) 왼쪽수성못이 보이네요. 영상1분쯤 나오는것은 신천교가 맞는것 같아요.
@다누리12 жыл бұрын
중동교면 우리집인데 아빠를 찾아볼께요~
@하늘빛-r1e2 жыл бұрын
그러네요.. 칠성교 쪽이면 산이 저렇게 가깝지 않으니까요.. 50년대 수성못이 맞다면 이상화 시인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그 들 모습이 저 모습과 비슷했을까요? 빼앗긴 들에도 나오는 그 들이 지금의 수성못과 그 주변이 라고 하더라구요.. 수성못에 가면 이 시비도 있구요.
@이루다-n2z2 жыл бұрын
위치상 100% 중동교가 맞아요! 신천에서 가장먼저 생긴다리가 신천교, 그 다음이 중동교랍니다! 저 당시에는 아마 두개의 다리밖에 없었을 거예요.
@Shshsyywy82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3대도시가 서울 개성 대구라던데...그래서 과거 대구사람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한강이남에선 제일크다 제일좋다 제일많다 등등 한강이남이라는 말을 자주 썼었죠 서울밑은 대구가 제일 컸으니 ..참고로 부산은 6.25로 피난때문에 인구가 많아진거에요
@sungjoo12 жыл бұрын
이런걸 복원하는게 너무너무 신기해요~ 신기해서 자꾸보게 되네요ㅋ 북한같다ㅋ
@velociraptor78712 жыл бұрын
저 탈곡기 우리집에도 있었다. 우린 와릉기계라고 불렀는데 소리가 와릉 와릉하는 것 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canlim18525 ай бұрын
빨래터에 연통달린 드럼통은 돈받고 빨래를 삶아 주는 곳입니다. 세탁기 없고 세재 변변찮은 시절 빨래를 삶기도 했었죠. 유년시절 저거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