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고 .. 매년보리고개를 격던 시절 아닌가..삶에 고단함이 장날 풍경에도 묻어 나는것같다.. 70년초 내 어릴적기억에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을 넘고너머 찾아간 할머니친정에도 옹기종기 초가집이 있었는데...
@yjrm76344 жыл бұрын
내가 초가집에 살고 밤에 호롱불 밑에 공부한 마지막 세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국민학교 5~6학년 때부터 겨울방학에는 지게지고 나무하려 다녔다. 그게 제일 힘든 일. 5일장이 유일한 지역축제. 이따금씩 늦가을에는 강변 자갈밭에 자가발전기로 영사기 돌리는 가설극장이 들어와 꿈 같은 세계를 보여줬지. 돈도 없으면서 구경을 가서 바깥에 서있으면 가끔 상영중간 쯤에 동네유지 어른이 와서 못들어간 애들 돈줘 몽땅 넣어줘서 영화를 보기도 했지. 배고팠지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늙은청춘3 жыл бұрын
내가17세~18정도때이네요!몇밤자고나니75살이나됐네요~그래도저때는사람냄세가많이낫지요!
@웃음건강-t1t2 жыл бұрын
너무. 좋아. 옛날 풍경
@최미순-d9d3 жыл бұрын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mungchuljeon16693 жыл бұрын
나어릴때누룩을산에밭에감추던동네아줌마들생각나네요
@jsm92524 жыл бұрын
가난했지만 정감많고 마음은 부자였던 시절...
@evelyncook77545 жыл бұрын
인심 좋았고 사랑이 넘첫고,효 가 넘첫고 , 예의 가 밝았던 대한민국 국민 들이 들이 였지요. 가진것 은 없었지만 사랑 은 넘첬씁니다
@TheParksanghoon5 жыл бұрын
61년이면 58년전인데..(댓글쓰는싯점은 2019년임) 정말 엄청나게 변해버렸네요 믿기지 않을정도 입니다 같은 나라인게
@shineC-h7l3 жыл бұрын
아주 귀한 영상이네요.
@사계절봄여름가을-n6h5 жыл бұрын
나어릴적이다 서울에사는우리집 방마다 큰항아리 밀주를몰래만들어팔았다 그런데 누가 신고하는지 세무소에서 잘나오고 아버지느 용돈하시라고 드리면 그냥봐주면서 간다하고 또생각나면 연신 세무소에서 자꾸나와 할수없이 때려치웠다 그때 장날도생각나고 옛날생각이난다 그때그시절 어렵게살아도인정도많았고지금까지 흉악범이은없었다 그때 그시절로돌아가고싶다 저기나오는 나이드신분들은모두고인되고 어린아기들은 60대나 70대 80대는되어있겠네
@chunhuikim31935 жыл бұрын
스마일 우리.조상님에 생활.모습을. 영상 정말로.고맙습니다
@이슬-d6r5 жыл бұрын
ㅋㅋ 그시절 산증인이 60대가 되었네요
@한국-u2s2 жыл бұрын
그 시절 그 때가 그립네요 아~~~옛날이여,
@돈이-u7h Жыл бұрын
ㅋㅎ 내가 1982년도 부산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토요일 외박 때 부산 금정산 산성에가서 해물파전과 염소고기에 걸쭉한 산성막걸리 싫컷 사먹었었는데 .. 그때도 부산에서 막걸리는 산성에서 먹는 막걸리가 최고였지
@cpntrnd6 жыл бұрын
20-30리길 걸어서 산넘고 물건너 시장갔다온 엄마 시장보따리에 과자봉지 찾던시절이...
@youTube전성시대4 жыл бұрын
사실저때는 너무 배고푸고 부족한게 많았어요.
@dbs99p5 жыл бұрын
정감이 가는 세상입니다 그때 그시절 ㆍ ㆍ
@전민송-d7v4 жыл бұрын
정스럽고 고생스러웠던 저시절 부모님들
@싸타50004 жыл бұрын
60년대는 한복을 많이 입었군요
@박카스-l5f3 жыл бұрын
문명이 발달하고 풍족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저시절이 진짜 사람사는 세상인것같고 정감이 가네요~^^
@mrson58705 жыл бұрын
술 만드는것도 단속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 난 서울태생이고 서울에서 자랐지만 가끔은 친가에 가서 초가집을 본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초가집을보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쌀방에서 쌀벌레가 징그럽지 않고 가지고 놀았는데 ㅎ
@albertchoi44926 жыл бұрын
참 정겨운 농촌 모습입니다.
@안젤라-l8e4 жыл бұрын
난 저시절이 그립다
@사계절봄여름가을-n6h5 жыл бұрын
옛날 시골가면 제일생각나는게 초가집이다 지금은초가집 구경할수없고 민속촌이나가야 초가집을볼수있다
@김차희-i7i4 жыл бұрын
자급자족 엄마 아버지들 ㅡ 고생 많았어요
@김박사-n3c5 жыл бұрын
이광삼님 저는 유튜버인데 이광삼님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박점순-c9m2 жыл бұрын
지나고보니까 가난하고 정많던 그때가 좋아보이나본데 먹을게 잆어서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이야기겠지요 현재 잘사는게 옛날부모님들이 허리띠졸라매고 어떻게해서 잘살게된 나라입니까? 참배부른 소리들입니다 요즘사람들그때로 돌아가라면 아무도 못살것입니다
@inockschaffner69745 жыл бұрын
이 영화도 아마 정부의 살기좋은 우리나라 선전영상쯤 될거에요. 우리나라 이 시절 정말 가난했어요. 에휴, 저 정도만 됐어도 괜챦았을텐데.. 굶어죽고 병들어죽고 사고나 죽고.. 우리는 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우리 부모님)한테 잘해야 한다.
@이루다-n2z6 жыл бұрын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는 법! 물질은 풍부해 졌으나 세상사는 인간미와 평온한 환경은 사라져 버렸다.
@신천박-p2j6 жыл бұрын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이 아니고 옷 잘 입는다고 행복이 아니죠. 모든게 어려웠던 시절에 보리개떡 하나에도 감사할줄 알던 저 때가 정말 좋았던것 같아요
읍내의 장날은 구경거리가 많으니 남이 장에 장보러 가면 자기도 가고 싶어서 지게에 아무거나 지고 장 구경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러니 속담에 [남이 장에 가면 거름지고 따라 나서는 사람이 있다...] ...라는 말이 있는것 이고요. 1972 년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들과 우리집 마당에서 놀고있는데 옆 마을에 사시는 우리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러오셔서 저와 제 친구들에게 말씀 하시길.... [너희들은 참 으로 좋은세상 만나서 살고있다..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읍내에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번이나 있고 내년이면 전깃불도 들어오는데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이러 시므로 .정말 저희들은 복 받은 아이들 이고 우리가 대단한 세상에 살고있구나... 라고 생각했었지요.. 읍내 장 까지는 20 리가 넘는 9 KM 정도 였는데 거의 전부다 걸어서 다녔었지요. 버스가 있었어도..
@333movie2 жыл бұрын
그때는 그렇게 지나갔네요.
@이수일-z1m Жыл бұрын
부산 금성동 85년도에 산성마을에 소풍가니까 산위에서 벼농사 짓더라구요. 산밑에는 아파트단지도 들어서고 부산 지하철이 개통되서 다니고 있는데
@이광삼-f5f7 жыл бұрын
산성막걸리 지금은 정말 맛이 없습니다 부산에 살지만 등따시고 배부르니 산성3세들은 맥을 이어가지못하고 돈뻘이만 생각하는것같습니다 예전의 산성막걸리가 아니더군요 조상들의 얼을 다시 느낄수 있는 진정한 산성 막걸리가 되길바랍니다 돈만 쫒는 요즘 우리네 사람들 죽으면 끝입니다 진실로 살다 갑시다
@강현모-r6x5 жыл бұрын
68년이라고 오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흥물산4 жыл бұрын
물론 그것보다 지옥인 좆생탁이 있죠.
@BOSSBOSS-nj2qn4 жыл бұрын
저 역시 시중에서 파는 금정산성 막걸리 안먹습니다. 너무 맛이 없습니다...
@여인금-r8j6 жыл бұрын
당시엔 금성동이 부산진구였구나! 추억의 회사들. . 성창합판, 삼해공업, 자전거 튜브만드는 흥아타이어. . 흥아타이어가 지금 넥센인가?
그렇죠? 이날까지 정말 피눈물나게 살아 왔죠. 지금 젊은이들이 비하하는 틀딱들 입니다. 존나게 일해서 나라 사려놓으니 배부른 젊은놈들이 틀딱이라 비하합니다. 지금 젊은것들도 늙으면 그보다 더 증오스러운 비하를 받겠죠.
@이응재-g5i4 жыл бұрын
누룩을발로밟으니 술에서꼬랑내가나지
@jhi33847 жыл бұрын
누룩 만들기를 저렇게 탄압했으니... 지금와서 전통 누룩 복원하려 해도 쉬이 될 턱이 있나
@이소나무-h5d6 жыл бұрын
임모탄조 어릴적 술주사 온다고 무서워했던 기억 이나네요
@Lecorep4 жыл бұрын
누룩이 뭐에요?
@bluesky-of5br2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는 쌀이 엄청 부족했습니다 쌀이 없어 굶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쌀로 막걸리를 빗는데 사용하니 정부나 일반국민들은 감정적으로 용납할 수없는 일이었습니다 쌀이 부족해서 부족분을 비싼외화를 들어 쌀을 수입해야 하는데 한 쪽에서는 그 쌀로 술을 빗어 먹는데 사용하니 정부나 국민에게서 용서가 안되는 일이였지요 70년초 품종개량이 된 통일벼 유신미가 나와서 쌀을 자급자족하게 되였죠
@Kirk574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같은데... 허각
@늙은청춘3 жыл бұрын
웃기는소리하고있네!배가곱픈데어떡하라고!😛😛😛😛😛
@davidjacobs85583 жыл бұрын
1961년에 저런 영상을 왜 제작한건지.
@khkk96265 жыл бұрын
아파트 뭐냐?
@남양산꽃미장5 жыл бұрын
신기루입니다.
@freecontroller32606 жыл бұрын
일본의 주세 정책을 이어받아 .. 세금으로 14:16 알고 보니 윗물들은 구린짓 참 많이 했져 ... 스위스에 얼마나 .. 그 세금을 쳐 밖아 두었을까 ... 부산산성 주민들 등쳐서 .. 받아낸 세금으로 말이야 .. 아직도 버젓히 잘 못 한게 없다는 503의 잔존 세력이 있으니 말이다. ... 퍼특 정신 챙기소 ... 마 ! 취업도 있었겠지만 ... 결국 .. 이 눈물로 지켜낸 누룩의 후손이 .. 국순당을 만든다 .. 질긴 국민이여 ... 만세입니다. ㅎㅎㅎㅎ ^^ 관련자료.. 막걸리 관련 책자 .. 막걸리기행 ... ^^ 산성막걸리의 누룩 싸움은 눈물이 날정도였다 .. 지금 보는 것은 .. 홍보영상임을 알고 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