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35세였고 지금 80세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저때랑 같네요.. 서독에 광부로 갔다가 폐가 많이 손상되어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으나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쉬고싶다-e9e Жыл бұрын
저희 아버지랄 동갑이시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박상건-t8e Жыл бұрын
저의 아버님이랑 동년배시네요 뵙수는 없지만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멀취11 ай бұрын
진정 산업역군이시네요.. 더 아프신곳없이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도꼬마리-m6m11 ай бұрын
어르신들이 있기에 지금에 대한민국이 있는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굿데이-k1z7 ай бұрын
어르신 건강하세요
@박성진-b3e9y Жыл бұрын
77년....지금의 나 보다 더 젊었을 아버지, 어머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저 시간 속으로 정말 갈 수만 있다면...ㅠㅠ
@qkim6546 Жыл бұрын
대구 내고향,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keen2clean9772 жыл бұрын
대구가 고향인 저로서는 너무 반가운 영상이네요.
@user-seegui Жыл бұрын
안동에서 올라온 아버지와 상주에서 올라온 어머니께서 대구의 한 방직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시기 즈음의 대구모습이네요.. 어머니 이버지가 항상 늙지않고 듬직하실거라 믿었는데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노후를 함께 신경써드려야 할 시기가 찾아오고있습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네요. 감당하기 어렵네요 세월의 흐름이.
@소우주-n2u Жыл бұрын
또 힘든 시기가 지나가면 괜찮습니다. 힘내십시요.
@리즈시절-v5i2 жыл бұрын
ㅎ 어릴적 아버지, 어머니, 동생, 누나 일요일 마다 앞산공원가서 운동하고 대덕식당에서 선지국밥 먹고 들어오는게 코스였는데.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네요. 부모님은 벌써 80이 넘어셨고 저도 50줄이네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k-jamin Жыл бұрын
저희 작은 증조할아버지가 84살 이신데.. 님 부모님이랑 또래 시구나..
@박소영-x1v Жыл бұрын
대덕식당을 아시네요!!!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이런영상을 보니 너무 반가워요.
@babyandi3397 Жыл бұрын
@@박소영-x1v 대덕식당 사장할머니 손녀가 초등학교 6학년때 저희반이었는데..ㅎㅎㅎㅎㅎㅎㅎ 대덕식당 선지국밥 정말 맛있죠 또 먹고싶다
@tkchsmik4015 Жыл бұрын
대덕식당 운영해 나온 수익금으로 지하철 대명역 부근에 '대덕빌딩'을 지었는데 지금은 신천지 교회가 들어가 있지요.
@Rooisve Жыл бұрын
대덕식당..음..ㅋㅋㅋㅋㅋ 지금은.. 아닙니다ㅋㅋㅋ
@홍준석-y5j2 жыл бұрын
6살때였구나 벌써 내나이 50 저시대로 한번가보고 싶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보다 젊었을 아버지 대구어딘가 계셨겠지 한번 만나뵙고 싶다
@쬬2 жыл бұрын
ㅠ
@아이스-x2h Жыл бұрын
아~~~~~ 그립네요.. 더불어 저랑 동갑 이신듯^^
@gamza12147 ай бұрын
갑장이네요 .
@forjun2 жыл бұрын
그 때도 대구의 도로는 반듯하고 바둑판처럼 잘 닦여져 있네요. 분지라서 평탄한 지형적인 특징 덕분에 도로 하나만큼은 잘 되어 있지요. 우리 아버지가 젊었던 저 시절, 그 때로 돌아가 아버지 만나고 싶네요
@폴리텍기숙사2 жыл бұрын
예 저는 지금 삼일절 폭주족들을 취재하러 대구에 나와잇습니다
@aaakim-r6z Жыл бұрын
대구만큼 도로가 잘되있고 축복받은 지형이라 자연재해에 가장 피해가 없는 곳이예요 어딜가든 가깝고 없는것이 없는 대구라고 하죠~^^기회되시면 변한 대구에도 오시길바랍니다 시민의식은 아직도 정많고 변하지 않았답니다^
@jaeyongjang4296 Жыл бұрын
대구는 일제시대 일본 공무원들이 도로계획를 바둑판모양으로 잘 다듬어서 만들어진 계획도시지요. 덕분에 교통이 매우 발달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건물들이 늘어나도 다른 도시에 비해서 교통체증이 양호한 편입니다. 사통팔달의 대구시 교통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수준입니다.
@chcgo20005 ай бұрын
그리고 근현대사 대구시 소속공무원들께서 계속 이어받아 도로계획을 잘 하신 겁니다
@aaakim-r6z Жыл бұрын
임금낮다고는 하지만 모든 생활 교통이 젤 싸다 ~그리고 부자는 광역시중 가장 많다 잘먹고 잘쓰고 민주화 자유의 시작 중심지는 항상 대구엿다! 참다행이다 대구가 옛날엔 국가발전 !!삼성탄생!!!시민의식 민주주의 사상이 가장 빛나는 대구입니다
@아몬드-l4t4 ай бұрын
민주화 민주화 거리시는데 민주화는 386이 한게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북한이 한국을 공산화 시키기 위해 한국사회를 혼란시키기위해 시작된게 70년대80년대 민주화운동(?) 이고 그 홍위병이 386(무뇌)였으며 당시의 그 혼란과폭동을 민주화라고 하면 정말 말도 안되지요 한국 현대사는 이미 완전히 좌익 역사관으로 물들었습니다 글쓴 사람처럼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미 대부분이 좌익 역사관으로 범벅된게 한국인임
@ChuKwangyoup2 жыл бұрын
저때 대구엔 20대의 고우셨던 울 어무니가 계시겠지 보고싶다.
@choicw01222 жыл бұрын
ㅠ ㅠ
@박유니들2 жыл бұрын
ㅜㅜ
@정은미-x8w2 жыл бұрын
ㅜ.ㅜ
@TheOannes2 жыл бұрын
ㅠ ㅠ
@pierxen11772 жыл бұрын
22살 어무이 ….
@잔망루피-z3p2 жыл бұрын
대구 영상 많이 해주세요 🥺 고향이 대구인데 넘 좋아요ㅠㅠㅠ
@청하a5 ай бұрын
여기 댓글에 대구 고향이신 분들 반갑네요. 저도 대구에서 태어난 77년생입니다. 계성국민학교 나오고, 소풍으로 달성공원가고 엄마랑 서문시장 다니던 대구인입니다. 대구백화점에 옷도 사러가고 수성못에 놀이기구 타고 앞산공원,두류공원 추억 가득한 옛날 기억이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른건지.. 화면보니 옛생각에 마음이 찡해지네요..😢
@추풍령-x7g Жыл бұрын
50년대 대구 성당동 성당못 주변에서 태어나서 객지생활 40년에...벌써 70을 향해 가고 있네요...
@우당-t9s6 ай бұрын
성당동 밑에 본리동출신 60대후반 입니다
@새론별새론별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멀리 떠나 있지만 77년도에는 대구에서 살고 있었네요. 그립습니다.
@baekcar2 жыл бұрын
제가 태어난해의 고향 대구는이랬군요.. 아버지 어머니가 20대의 삶을 살고 계셨을때~.. 감사합니다..
@Mcgovern27 Жыл бұрын
내 마음의 고향 대구. 서울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좋고 도시 자체에도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정이 들어 다시 가서 살고 싶은 곳.
@jaeyongjang4296 Жыл бұрын
대구사람들이 올곧고 정이 많죠.
@Mcgovern27 Жыл бұрын
@@jaeyongjang4296 ❤️ 👍
@davidpae9087 Жыл бұрын
영상 고맙습니다. 어릴때 눈에 익은 거리가 추억을 떠올리는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 60이 되어서 경기도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어린시절 고향 모습이 너무나 좋습니다. 영상에 도로는 안지랑이 가는 도로인것 같군요. 앞산에서 본 대구의 모습은 많이 변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제가 몇년전 앞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가서 봤을때랑 거리는 비슷하고 높은 건물들이 지금은 많아진것 같습니다.
며칠전 앞산 케이블카 타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곳처럼 보이네요 이만큼 발전하게한 부모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배성호-k9g Жыл бұрын
앞산 케이블카 반가운 소리네요 내가 거기 토박입니다 앞산공원길 낼때 박정희 각하께서 5백원 일당에 국토개발 시킬때 학교 빠지고 아버지대신 삽들고 일하러 가서 만든길 그리운 안지랑 시장 먼 옛날입니다 지금은 인천서 옛 생각 뿐이었는데 ................................. 대명초는 잘 있는지,,,,,,,,,,,,,,,,,,,,,, 내 모교 비파산 허리에 구름이 돌고 성당지 맑은물 거울 같은데.................................. 이노래 많이 불렀읍니다
제가 태어나기 3년전이네요. 경북대에서 학교 한 창 다니고 계실 아버지... 오늘 부모님이랑 영상통화로 만나뵈었네요. ^-^
@조영규-n5b Жыл бұрын
달성공원 거인이요
@stephen27178 ай бұрын
대구 대명동일대를 자세히 아시는분이군요. 77년도면 당시로서는 이거리가 번득하고 깨끗한 대구의 중심도로 였었지요. 또 정우맨션이 대단지 아파트로서 그당시 기분으로는 약간 부촌(?)같은 기분도 있었어요 그러나 대충교통이용이 조금 불편했었지요.
@전상진-x8q2 жыл бұрын
어머니 고향이 대구라서 방학때 7살 그당시 대구엔 TBC가 나오지않아 그레이트 마징가를 보지못해 울었던 기억이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개조한 한진고속을 타고 소변급할때 고속버스안 화장실에서 해결한 기억이 달성공원 저도 가보았습니다,
@yorocorome5 ай бұрын
지금은 대구에 TBC가 나오지만 다른 TBC고만? 사실 동양방송은 1980년 폐국 때까지 단 한번도 대구에서 볼 수 없었다는..
@Jy-gx8pu5 ай бұрын
대구시가지및 달성공원을 사진으로 보니 옛날 첫사랑의 사람이 너무 생각나는군요. 저와함께 고등학교 다닐때 송죽극장 구경간 그어여쁜 고등학교 여자분이 너무 그립고 보고싶네요. 그분도 살아계시면 손자손녀 돌보는 멋진 할머니가 되어있겠군요.옛날로 되돌아가 그사람 함께 대구시내를 걸어보고 영화도 보고 싶네요.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mastermindpark57682 жыл бұрын
대구에서 태어난 72년생입니다. 어느덧 제 나이도 50대 초반이군요........6살이었던 저 시절로 돌아가서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명동 골목길을 조용히 걸어 다녀보고 싶습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지금 저보다 젊었을 아버지를 만나서 소주 한잔 사 드리면서, 힘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이제는 고향 대구에 내려가도 하룻밤 묵을 부모님 집이 없어졌습니다.
@김오련-t2h2 жыл бұрын
ㅎ저도 대명5동에서 남도초교다녔는데..
@mastermindpark57682 жыл бұрын
@@김오련-t2h ^^ 명덕시장에서 남도초등학교로 가는 길목 주택가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누나들이 다니던 남도초등학교에 엄마따라 운동회도 갔었죠......ㅎ
@홍준석-y5j2 жыл бұрын
저도 72년생인데 3살때 까지 남도초등학교 앞에 살았네요 같은 72년생이라 반갑습니다
@mastermindpark57682 жыл бұрын
@@홍준석-y5j 반갑습니다. 우리,,,지척 거리에서 살았네요 ^^
@andyl8453 Жыл бұрын
반갑습니다 친구들 나도 72년생 남도초등 다녔었고 대명동 정우맨션이란곳에ㅠ살았었어요
@잘가라나의청춘5 ай бұрын
앞산공원 전망대에서 본 대구전경에 옛날 살던 대명동집과 내가 다닌 대명국민학교가 보이네요. 77년이면 엄마하고 같이 안지랑에 빨래하러 간 기억이 나는군요. 어머니 하늘에서 잘 지내시죠 보고 싶은 어머니 잘 계세요 열심히 일하고 잘살다가 엄마보러 갈게요.
@kimkjhkim7 Жыл бұрын
저 시절의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더 높았을것같은 느낌이 드네요
@하봉-n3n Жыл бұрын
나의 고향 대구모습을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windy500k9 Жыл бұрын
공군비행장 사진에서 뒤에 야트막한 산 하나가 보이는데 지금은 조일로봇공고가 있는 돈지봉입니다. 신평2동(신덕마을)인데 우리 동네에서는 설무산이라고 불렀습니다..... 1977년이면 제가 국민학교2학년때인데 대구변두리에는 초가집도 있었고 기와집도 있었고, 양옥집이 도시에는 지어지던 시대였네요..
@soopark596 Жыл бұрын
영상도 영상이지만 댓글들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avantgarde94792 жыл бұрын
아...내가 태어난 1977년 대구네요.ㅠㅠ
@김달마-l5h Жыл бұрын
내고향 합천 땜수물되고 가족들대구로 이사온지 어언 몇십년 부무님모두 세상떠나시고 지금은 제2의고향이되었네요 참 살기좋은곳이지요 제아이가 어릴때는 달성공원 앞산공원 성당 못 롤라스케이트 태어주던때가그립네요 아들이벌써 40앞을두고있네요
@이태환-k9n8 ай бұрын
합천군 봉산면, 대병면 일부가 수몰되었지요.
@채원-s2l2 жыл бұрын
77년도..태어낫던해. 고향도 대구 기분이묘하네요. 달성공원은 진짜그대로인거같네요
@지나간_봄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ㅎ 달성공원은 변한게없네요ㅎ 같은 대구 77년생 친구 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나간_봄 Жыл бұрын
@배재현 추억속으로 하나둘씩 사라지네요ㅜㅜ
@지나간_봄 Жыл бұрын
@배재현 맞아요! 그분 거인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했었죠. 그분 달성공원 99년인가 까지 근무하시다 질병으로 돌아가신걸로 알고있어요. 어릴때 같이 사진찍어주고 하셨는데 ㅜㅜ
@지나간_봄 Жыл бұрын
@배재현 그분 키가 그때기억으로 2m20인가 그랬었죠.발도 엄청크시구요ㅎ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ㅎ
@배성호-k9g Жыл бұрын
@@지나간_봄 아ㅡㅡㅡㅡㅡㅡㅡ달성공원 경비 말하시는군요 배 곯마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제 생각으로는 아마 병이 있었지 않나 생각 합니다 그때도 잘 걸어 다니질 못했거든요
@yk5672 Жыл бұрын
달성공원 옛날 모습들을 보다보니 문득 그 시절 달성공원 문 앞을 늘 지키고 서 계셨던 문지기 거인 아저씨가 생각나네. 어린 마음에 그 아저씨 볼 때마다 무서워서 울고 그랬던 기억도 나고.
거인 아저씨~~~ 아직도 얼굴이 기억나요 거인아저씨 아는분들 계시니 이렇게 반가울수가ㅎㅎ😂
@청하a5 ай бұрын
@@고동철-x1h 달성공원에서 코끼리를 제일 좋아했어요. 저도 국민학교때 코끼리 배경으로 찍은 사진 있습니다^^
@run-in-the-sun777772 жыл бұрын
와우~ 국민학교 6학년 어린이날 앞산공원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아부지랑 동생들과 함께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wand1004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초중고를 다녔었는데 당시 칠성광명맨션에 살았었는데 그때만해도 고층건물이 별로 없어서 아파트에서 앞뒤로 쳐다보면 대구시내가 다 보였었죠. 지금은 왠만한 고층건물에서 봐도 워낙 고층건물이 많아 막혀서 안보이네요. 화면에서 보는거 처럼 언제 이랬던 도시가 이렇게 발전했나싶고 어느새 나도 50대가 되었나 싶네요.
@탐관오리-v2v Жыл бұрын
4:49 코순이네요... 1971년생으로 아지까지 달성공원을 지키고 있는 국내 최고령 코끼리지요. 저 땐 참 앙증맞게 생겼었네요. 50살이 훌쩍 넘게 같힌 생활 탓에 요즘 정형행동이 심하다던데 안타깝습니다.
@h플러스로 Жыл бұрын
69년생, 대구에서 태어난 완전토박이인데 모교인 신흥국민학교를 가끔 지나갈때는 맘속이 아련해지는데 이 영상을보니 왠지 모르게 울컥하네요. 소중한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풍령-x7g Жыл бұрын
반갑습니다.^^ 신흥국민학교 4회 졸업생입니다...11년 후배님(15회) 되시네요..
@h플러스로 Жыл бұрын
@@추풍령-x7g 반갑습니다. 선배님~^^
@우당-t9s9 ай бұрын
본리국민학교 앞 문방구에는 촌학교라 없던 보배구슬 사러 시내학교인 신흥국민학교 앞 문방구 까지 구슬사러 걸어갔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ᆢ5~6학년인 70~71년쯤 ㅠ
@이태환-k9n8 ай бұрын
@@우당-t9s 본리초등학교는 달성군 성서면 본리동이었고,신흥초교 는 대구서구 내당1동이었지요.나는 내당 초등출신이고,신흥초등은 내당초등에서 분리된 학교이지요, 성남, 서도등도 마찬가지이고요.
@user-zl7yt8mn9q8 ай бұрын
와~~반갑습니다. 저도 69년 생이고 신흥 국민학교를 3학년 2학기 부터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신흥국민학교 앞 내당 아파트에 살았었죠.^^
@jhhk41352 жыл бұрын
이렇게 한 세대는 가고 또 한세대가 오고 나도가고 너도가고 우리 모두가 잊혀진 사람처럼
@986man9 Жыл бұрын
안동촌놈이 대구에 와서 산지도~~벌써 30년이 지나가고 있슴다~^^ 그땐 대신지하상가와 제일서적을 다니며 동아쇼핑 공원에서 비둘기 밥주던 시절이 생각나요~~ 북부정류장에서 2-1번을 타고 다녔던 것도 생각나고~아련한 나의 아날로그 시절이여~~
@우당-t9s2 ай бұрын
성서 본리동에서 배추무우 농산물을 소구루마에 실고 대명동일대 ㅡ성당주차장 부터 영대 계대 까지 골목마다 팔러 다니셨던 아버님 생각에 콧등이 찡합니다 ㅡ 그 어느날 남도국민학교 정문앞 문방구에 사 주셨던 비닐계 축구공이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ㆍ 2:07
@이승준-l6y7k Жыл бұрын
이곳에 대명5동 남도초등학교 근처의 추억을 갖고계신분들이 많군요! 저도72년생 입니다. 그 근처에20년을 살았었지요. 제게는 고향같은곳! 생각날때마다 한번씩 그곳으로 갑니다.😄
@임규태-q6u5 ай бұрын
나도 72.정우맨션에 살았었는데, 아직도 있더군요.
@손공수 Жыл бұрын
어릴때 달성공원 갔을때 엄청 키큰 아저씨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키가 2미터20도 넘었을듯...사진첩에 같이 찍은 사진도 있더라구요 😊
@yangho62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키다리아저씨☕
@미경정-j2p11 ай бұрын
지금은 아쉽게 안계시지만
@허정희-k1f5 ай бұрын
그때 영양실조로 돌아 가셨다던데 시실인지요.
@wschoi08124 ай бұрын
2미터 20은 아니구요~~이제 이름도 잊었네요..저희 선생님 지인이라..걍 달성공원 키다리 아저씨라 기억 합니다..재 어릴적 국교때 소픙을 달성공원으로 갔섰네요..중학교 입학하며 저희 체욕 교사님이 씨름 하셨던 분인데 엄청 유명 하셨더라구요..제가 알기론 달성공원 꺽다리 아저씨 198cm 로 알고 았네요
@lavieenrose1804 Жыл бұрын
77년 대구생입니다. 그립다거나 다시 돌아가서 살고 싶진 않은 그런 옛날이라며 생각하고 살았는데,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곤 합니다. 귀중한 사진 감사합니다.
@이관덕-f3d2 жыл бұрын
우리중학교 다닐때ㆍㆍ 옛날생각 많이나네요 감사합니다
@상현박-y1s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앞산전망대에서 보니까 지금 거리 모습 윤곽은 그대로인것 같네요 바로 앞 사거리가 앞산네거리인데 저래보니 진짜 커보이네요 ㅋ 왼쪽으로 안지랑네거리랑 직진해서 쭉가면 오른쪽 운동장이 남도초등학교랑 영남이공대랑 좀더 위에 대명동 계대까지 다보이네요 ㅎ 저때 내나이가 7살이었는데 저런데서 살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새 참 많이 발전했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나 태어난 해구나 77 년 이제 40대 후반이되었고 어렸을적 기억들이 자꾸 떠오르는걸 보니 나도 나이를 많이먹었구나싶다 세월이 참빠르다
@판도라-h6v Жыл бұрын
만화방 가게에서 흑백 브라운관 티비 에서 틀어주는 타잔 을 보기위해서 옹기종기 동네아이들이 모여서 보던 생각이 나네요 ㅋ 저 당시 마을 동네에는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돼어서 동네마다 시궁창 같은 도랑과 그 도랑으로 통하는 작은 하수도랑이 골목마다 냄새 풍기면 있던게 생각나네요 여름만돼면 모기 와 파리가 들끓고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었죠 마을 공터에는 각종 쓰레기더미가 즐비 했던 시절
@Errrr17 Жыл бұрын
65년생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졸업후 인천,부천에서만 30년째 사는 사람입니다 7:14 에 모교인 경상중학교,지금은 이전하고 없는 심인고등학교, 영남대병원의 건축시작흔적만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저는 중고대학이 모조리 이쪽 동네이네요
@안도애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선배님 심인고 61회입니다. ^^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rrrr17 Жыл бұрын
@@안도애 반갑습니다 동기화밴드보니 전 25기네요. 61기면 젊은나이시네요 하시는일 번창하세요
수성관광호텔 다음다음에 나오는 사진은 캠프워커 헬기 활주로 끝부분에서 찍은 사진인듯 지금은 중동교까지 8차선 도로가 깔려 있지만 당시는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 집들이 있는 동네는 제가 어린 시절 누볐던 동네. 지금은 현대 힐스테이트가 자리잡고 있던데
@몰랑돌이2 жыл бұрын
그리운 내 고향
@임성규-v2d2 жыл бұрын
태어나서 50년 살고있는 대구
@kimseongjin1840 Жыл бұрын
2:07 현충로-앞산네거리 내리막길 맞지요? 벚꽃은 저때도 있었네요
@푸마-b9n Жыл бұрын
살기는 힘든 시절이었어도 저때가 인생의 황금기였어// 도로에 차도 한적하고, 차 있으면 부자소리 듣던 시절. 할머니가 손주를 보자기로 등에 업고 산책하던 시절, 고등학교 여자애들은 성형안하던 순수했던 시절, 비록 나라는 경제성장으로 주변환경은 더럽고 매연으로 넘치고, 오염물과 오염수가 넘쳤지만 낭만이 있떤 시절, 살기 힘들어도 미래가 밝던 시절, 내 어릴적 그 시절이 그립다. 마치 수채화중 흑백모노크론 채색으로 내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던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3킬로살빼기 Жыл бұрын
63년생 대구토박이 입니다. 구독좋아요를 눌렀어요. 영상감사합니다
@ChiHyungKwon Жыл бұрын
저때 내 나이가 8살 울아부지는 서른이셨네 지금은 팔순을 바라보고 계시는데 세월 참 빠르네요.^^
@whitebear02272 жыл бұрын
아련해지네요 님은 이귀한자료를 어떻게구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잘봤습니다
@vndrudkkk Жыл бұрын
77년생..태어난 곳은 경기도 판교인데 신암동 동부국민학교 영신 성광 초중고를 대구에서 나왔네요.. 동부초 ㅁ수영... 나의 소중한 추억~^^ 대구❤❤❤
@인벤터-n9q Жыл бұрын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ksmjjy52102 жыл бұрын
내 고향 대구!!!!
@user-qw8vw1hg1t Жыл бұрын
k-2 대구공군기지 근처에 사는데 가끔 전투기 소리 쩌렁쩌렁 앞산 위의 나즈막한 전경이 쉬원하고 정겹네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숨막힌 듯한
@katacom5 ай бұрын
능금꽃 피고지는 내고향 대구 진짜 그립다. 벌써 반세기가 넘어 머리는 희어지고 어느듯 중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로써는 고향의 향수가 항상 그리워서 가끔은 눈물을 흘리던적도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저 당시 생각이 난다. 아마 중학교때쯤이었다. 좋은 영상 너무 고맙습니다.
@오델-t9o2 жыл бұрын
내가 7살 때네요. 팔달교 노원동에 살았었어요.
@주식은나의인생 Жыл бұрын
현재 대구 살고있습니다. 예전모습 참 보기 좋내요..
@jennykum2532 Жыл бұрын
80년에 대구연합고사로 대구시내 고등학교다녔는데 달성공원 앞산공원 등등 옛날 고등학생으로 대구 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자취방에도 연탄불로 불안꺼지게 하려고 애썼던 시절. 모두가 어려웠지만 큰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기찬-s6z Жыл бұрын
아마도 92년?까지만 해도 연탄불 때었던걸로 기억합니다.그 이후로 기름보일러가 급속히 보급된걸로 압니다.지금은 경기도 분당에 살고 있지요.나름 대구 경북사람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aaakim-r6z Жыл бұрын
대구에 많이 오세요~~^^
@jms67372 жыл бұрын
대구직할시 수성동에서 태어났습니다ㅎㅎ 동산약국...어릴때 몸이 약해서 어머니가 약방문 닳도록 다니신 곳이네요. 달성공원 동물들은 지금 죽었거나 이빨빠진 노년들을 보내고 있고요...옛날 모습들을 보면 유행에 뒤쳐져 있지만 왠지모를 따뜻함과 활기가 보여 뭉클합니다.
@일상을잠깐내려두고2 жыл бұрын
그땐 수성동 아닌데... 동구 신천동 일부가 80년대 들어 수성구 수성동으로 바뀌었는데...
@jms67372 жыл бұрын
@@일상을잠깐내려두고 네 80년대 생입니다. 어쨋든 저곳을 영상을 통해 보게되니 반가워서 남겼네요.
@일상을잠깐내려두고2 жыл бұрын
@@jms6737 오마! 오다가다 한번은 스쳤을 수도 있었겠네요.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그때 그 동네가 저도 그립습니다.
@sunpowerk Жыл бұрын
그땐 동구죠 ㅋㅋㅋ
@배성호-k9g Жыл бұрын
70년대 시절도 수성동 맞읍니다 동구 수성동이었읍니다 내 친구가 수성못 안쪽 동네 지산동 살았읍니다 그안쪽은 범물이고 둑이 높은 범물 저수지가 있고 지금은 그저수지옆으로 경산 신매 고산 가는길이 있읍니다 내가 58년생 앞산공원밑 동네 살았읍니다 그땐 파동 지나서 수성동이었읍니다
@최우영-x7f Жыл бұрын
국민학교 때 매주 수요일은 4교시할 때 집에서 점심 먹고 대구백화점 구경 가거나 집에서 가까운 수성관광호텔에 프로야구 선수들 싸인 받으러 간 기억이 나네요. 초대 삼성라이온즈 서영무 감독님이 83년 감독에서 짤리고 84년 OB베어스 관리이사로 선임되었다가 그해 수성관광호텔에서 쓰러지시고 87년 경북대병원에서 돌아가셨죠. 1965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의 주인공 김천만씨는 2015년에 실제 주인공 이윤복씨는 1990년에 돌아가셨는데 1965년 당시 대구역과 수성못이 나오는 스틸사진의 블로그를 봤네요. 1969.8.29 대구 K2비행장에 아시아 최초의 F4D 6대를 신성일씨 친형 강신구 중령이 편대장으로 몰고와 신성일씨에게 화환을 받는 모습의 사진이 있죠. 1954년 일본으로 조 디마지오와 신혼여행을 온 마를린 먼로가 홀로 군용기를 타고 한국 땅의 첫발을 대구 비행장에서 디뎠죠. 군위가 대구비행장을 받아주는 대신에 대구가 편입된다고 하더군요. 70년대 초까지 달성공원은 이남의 유일한 동물원이 있었죠.
@dresser8566 Жыл бұрын
옛날 양옥집들 추억이다. 대구 칠곡 살았는데 읍내동 매천동 팔달교로 이어진 비포장길이 유일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였는데. 동네 이웃들 얼굴 이름도 다 알던시절
@곽철용-i4j Жыл бұрын
앞산공원은 케이블카 말고 삭도가 최고였죠 ㅎㅎ 동생과 함께타서 아래로 떨어질까 무서우면서도 재밌었던 추억. 그때는 의자에 안전장치도 없었음 ㅎㅎㅎ
@Sophiae7772 жыл бұрын
고루고루 나와서 좋네요.그때가 너무 그리워요
@danielk123 Жыл бұрын
국민학교시절 살던 동네와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
@광야에서-l9r2 жыл бұрын
대구 구미 고속도로가 아니고 구마고속도로(대구~마산)입니다. 1977년 개통했고 왕복 2차선 도로였습니다.
@ghaku-i7i5 ай бұрын
나는 저 고속도로 개통식에 직접 참석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뵈었어요.
@S스마일맨-l6j5 ай бұрын
저기2차선때 유턴하는차보고 기겁했습니다 고속도로 트럭지나가면 역주행해가야해서 엄청위험했죠
@Mio_JJANG2 жыл бұрын
제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진짜 시간여행 하는 거 같아요
@몰아치기-p8n2 жыл бұрын
1977년대 우리 외삼촌은 서울대 낙방후 박정희 세웠다는 대구 영남대 가서 행정고시 합격했는데 그땐 영남대가 서울대 다음으로 행정고시 합격자가 많을 정도로 영남대 가 좋았다 하더군요
@배성호-k9g Жыл бұрын
대구 영남대는 이병철씨 소유 였읍니다 원래는 항공대 였는데 이병철씨가 사카리 밀수하여서 장남 이맹희씨가 고발 하는바람에 박통이 뺏었읍니다 그후로 이건희씨가 회장 물려 받았고요 경산 영남대가 박통이 세웠읍니다 대명동 영남대는 삼성꺼 였읍니다
@곽철용-i4j Жыл бұрын
당시엔 후기대학이 있었는데 영남대법대가 좋았었죠.
@김찰리-i5s Жыл бұрын
학력고사 시절까지만 해도 서울의 3국대보단 영남대가 인풋아웃풋 다 좋았었죠.
@힐써니-l7d Жыл бұрын
그 시절 성대 한양대도 후기로 서울대 떨어진 돈없는 지방우수학생 많이 유치했죠
@추풍령-x7g Жыл бұрын
예전의 대구대와 청구대가 합병해서 영남대가 탄생했지요..
@johnnoh1979 Жыл бұрын
내가 그기서 중학교 다닐 때 ...... 추억속으로 빠져들어 행복했습니다.
@갈대소리 Жыл бұрын
내나이 스무살때 정말 힘들게 살던때 인데 왜저때가 그리울까 젊음이 밑천이던 시절이 지금 생각 하면 철부지로 막살았다는 생각뿐
6:20 경 앞산공원 전망대에서 본 대구전경, 앞에 나오는 못은 성당못, 뒤쪽 산너머에 나오는 못은 감삼못 관찬도서인 대구읍지(조선 영조때) 기록에는 대구에서 감삼못이 제일크고 그 담이 배자못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5년 초등학교 소풍 때 두류공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달성고등학교 옆을 지날 때 감삼못 처음 봤습니다. 그때는 강생이못이라 캤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때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놀러 갔는데, 달구벌 대로는 비포장상태이고, 도로와 연못이 접한 구역에 낚시꾼들이 낚시하고, 건너편 탱자나무 많은 곳에서는 투망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네요, 감삼못은 메워서 달성고, 경운중, 광장타운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근처에 감삼못 공원이 조성되어있습니다.
6:00 바로 보이는 못이 성당못 두류공원 오른쪽 산이 두류타워 짓기 전 산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못이 감삼못, 77년이면 아직 덜 메워진 상태
@DongKwack4 ай бұрын
1977년5월5일에 고향 대구를 떠나 미국에 왔습니다,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 넘쳐...
@Scococ23 күн бұрын
엄청 놀래시겠네요
@kkokkoneOi2 жыл бұрын
와 앞산전망대에서본 전경을 보면 .. 그래도 큰 도로들은 지금이랑 같네요 ㅎㅎ 성당못을 위주로 보면 지금이랑 거의 비슷합니다.
@성락영-l8z Жыл бұрын
제가 5살때네요,,, 대구 밤고개 살았었는데 저랬구나 싶네요
@y60716 Жыл бұрын
77년 4월 논산군번이고,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나왔습니다. 저때 사진에서보다 더 발전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기억과 매치가 되지를 않네요.
@집사-m4b Жыл бұрын
1977년 대구 중1때네요 그립습니다
@김병수-w9u1r Жыл бұрын
많은 댓글들... 한분 한분... 한글 한글... 다 추억! 내 고향 대구의 추억입니다. 고향분들 모두 추억입니다.. 멀리 이국땅에서 대구의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너무나 푸근한 시간을 갖네요. 감사합니다! 대구 영상 많이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
@aaakim-r6z Жыл бұрын
기회되시면 변한 대구에도 오시길바랍니다 시민의식은 아직도 정많고 변하지 않았답니다^^
@에이스튠 Жыл бұрын
1977년 정사년은 대명동에서 범어동으로 전학 간 시기입니다. 그 당시 로버트 태권V와 철인007,황금날개1.2.3의 노래소리가 아직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지나온 삶을 저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저 당시 어린시절의 순간들은 ..너무나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