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대만 봐도 대학원수준이 학부에 비해 많이 떨어짐.. 자대출신 교수 선호도 심한것도 한몫함... 카포와 질차이가 나는게 대학원수준이기에..세계적으로보면 더 차이가 커짐..
@yh441 Жыл бұрын
자대출신 교수 1위 설대, 2위 조선대, 3위 연세대
@leejason9316 Жыл бұрын
의대 법대만 가는것도 문제지만 평균적으로 대학 투자 수준이 얼만데 서울대는 나름 선전하는거임.
@p스티브잡숴 Жыл бұрын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가 한명도 없잖아...
@이보물-c9n9 ай бұрын
딱 1명있죠
@junu39017 ай бұрын
DJ
@Oh_se-chang5 ай бұрын
@@이보물-c9n누구요?
@seosSEO4 ай бұрын
노벨 역사상 돈 주고 노벨상을 타신 떼중이 슨상이 있당께.
@10시10분-o4s3 ай бұрын
@@Oh_se-chang김대중 전 대통령
@스카벨 Жыл бұрын
이런데는 댓글이 없구만~~
@abcdeereijgfhd3215 Жыл бұрын
미국 대학들은 왜 이리 다 시골에 있을까
@장민근미술쌤 Жыл бұрын
서울대가 이렇게 밀리다니... 챙피하다. 이러니 다들 유학을 가지... 이젠 바꿔야 합니다.
@johnhlee6846 Жыл бұрын
세계에서 뽑는거고미국과 유럽대학은 몇개나 올라와 있는데 서울대 저정도면 많이 높은것 아닌가요? 저는 예상보다 높아서 놀랐는데.
@ctment6741 Жыл бұрын
@@johnhlee6846 세계에서 29위인데.. 나름훌륭한거임
@jisefila1218111 ай бұрын
공식력 있는 다른 조사에선 서울대는 세계 100위 안에도 못듬. QS는 기업 당담 임원에게 어느 대학이 좋냐는 주관적인 평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해 연구 논문 인용지수 같은 객관적인 평가 방식보다 공신력이 많이 떨어짐.
@김태곤-n8s10 ай бұрын
노벨상을 많이 배출한 독일과 일본소재 대학이 랭킹에 없는것도 신기하다.?
@박성곤-l5p Жыл бұрын
영국은현대사에가장큰족적을가졌으니우수한대학이많은거겠지.
@NewYorkNYKer Жыл бұрын
미국 랭킹은 매년 똑같음 ㅋㅋ 아이비리그가 1-3위 독식!! 아마 여론의 힘과 명예를 중요시하는듯. MIT Stanford는 그래서 4,5위!! 그리고 Cal Tech도 MIT랑 라이벌처럼 비슷하게 랭킹하는데 세계랭킹은?? MIT 영국사랑 ❤️
@sneeki78 Жыл бұрын
??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말하는거? 팩트가 아님. 1 프린스턴 2 MIT 공동3 하버드,스탠포드,예일 순임. 6위가 유시카고, 공동 7위가 존홉과 유펜이니까 상위 8개 대학은 4:4의 비율임.
@조신재-f8m10 ай бұрын
1위가하버드대학교다 2위가 옥스퍼드대학교다 참내임마이거 뭘모르네
@종우나 Жыл бұрын
컬럼비아?
@100susigo10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대학은 걍 기득권들 밥통 역할 아닌가? 그러니 돈 들어가는 연구 성과라던지 이런게 안나오지 ㅋㅋ
@하성김-t3f Жыл бұрын
동문이 베이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캬.... 머냐..
@포대기 Жыл бұрын
공대들이 휘어 잡는 구나
@앙기모띠주는나무-w9e Жыл бұрын
그럼 문돌이가 뭐하냐
@c7z-cyh Жыл бұрын
그 기관이 어느 나라에 속했는지에 따라 다름
@godot-lee10 ай бұрын
미국사립대 = 돈벌이 대학. 장학금도 많이 주며 매력. 입학과 졸업은 계급장 부여. 대학마다 특성 가짐. NCAA로 세계적 관심 고조. 유대인들이 많음. 의료, 금융, 첨단 주도.
@hohyeongan76010 ай бұрын
지금이 우리나라 대학 랭킹 젤 높을때임
@ModernBuddhism미주현대불6 ай бұрын
영국와 싱가포르의 대학들이 너무 많네.
@ggahfdjwxk Жыл бұрын
스탠퍼드 동문에 현우진이 없네
@이채민-f8e Жыл бұрын
고대에서 초전도체 개발 성공하면 1위 가능한가? ㅋㅋㅋ
@박성준-v3g4u Жыл бұрын
유펜보다 베이징대가 위에 있는것에 웃고간다.
@sekchanwang626 Жыл бұрын
왜?
@santarita414 Жыл бұрын
무슨 이유인지???
@death5296 Жыл бұрын
유펜~?
@death5296 Жыл бұрын
대학원(연구)중심
@jisefila1218111 ай бұрын
전 세계 연구 기관 물리, 화학 인용지수만 따지만 정부 기관, 대학 포함해 베이징대가 하버드대랑 1, 2위를 다툰지 오래 됐음. 연구 논문 인용지수만 보면 유펜은 거기에 끼지도 못하고 상하이교통대에도 뒤짐.
@sevenoctave88 Жыл бұрын
사기꾼들은 명문대에서 다 나오는구나
@insoonlee8813 Жыл бұрын
한국도 마찬가지...설대,호랑리대출신들 보면 4씨들이 많아요.
@요슈에스 Жыл бұрын
너무 영국에 점수를 후하게 준거 아닌가
@scz8333 Жыл бұрын
영국은 21세기 현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미 하바드 대학 설립 1630년대, 약 150년 뒤 미국 독립. 북미 식민지 시작 무렵 이미 신학교지만 하바드 설립된.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를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인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기본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에너지-일의 단위 쥴J + 일률 단위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 기초는 영국 과학자 이름이며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 조차 아직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자연과학의 문을 가장 먼저 연. ----------------------------------------->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성과가 새로 누적되어야만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 체계로 바뀔 것. 대학교 교양 과정까지 배우는 전세계 모든 과학 교과서 핵심 내용 역시 마찬가지. 물리에서 기본 입자들 돌턴 근대 원자설 이후-------------> 원자핵 + 전자 + 양성자 + 중성자, 여기까지 모두 영국에서 확증된. 물리학 부분에서 역대 최고 과학자 단 4명을 뽑는다면, ---------------------------------------> 뉴턴 + 패러데이 + 맥스웰 + 아인쉬타인, 3명 영국 1명 독일. 미국은 아직 멀고 멀었습니다. 뉴턴과 아인쉬타인은 생략. 패러데이는 필드 장 개념을 확립, 전자기학-상대성이론-양자역학은 모두 필드 개념에 바탕. 고등수학 교육을 받지 못한 패러데이의 필드 개념을 맥스웰이 수학적 역량으로 집대성한 것이 고전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 ----------------------------------------> 패러데이로부터 발전기-전동기 및 전자기파의 개념이 시작되었고,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학은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 ----------------------------------------> 아인쉬타인 특수상대성 이론 자체가 맥스웰 파동방정식의 결론인 광속 일정으로 부터 시작된 겁니다. ----------------------------------------> 따라서 맥스웰 방정식은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수정되지 않고 유지됩니다. 생물학-유전공학-생명과학 부분 역대 최고 성과 단 2개를 선택한다면, -----------------------------------------> 다윈 진화론 + 캠브리지 DNA-이중나선, 모두 영국에서 이루어진 업적. 영국이 맛이 간 2차대전 이후 거대한 시설과 자본이 투입되는 물리 부분 거대 가속기 부분에서 약세를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이론 물리학 부분과 생명과학 부분에서 영국의 기여는 결정적. ------------------------------------------> 최초 시험관 아기 + 최초 체세포복제 복제양 돌리 ------------------------------------------> 전파 망원경을 이용한 전파 천문학 탄생 +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신의 입자 힉스 입자. ------------------------------------------> 수학 부분에서도 350년만에 증명된 페르마의 정리. ------------------------------------------> 페르마의 정리 증명한 와일즈는 미국 대학에 몸담고 있었지만, 최종 발표는 모교인 캠브리지에서. 미국은 아직도 단위 인구당 경쟁력에서, 노벨상-필즈상-하계올림픽에서 이미 많이 기운 영국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 미국은 단위 인구당 경쟁력에서 저 모든 부분에서 영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 피겨 스케이팅 + 현대 수영 + 복싱 ... ------------------------> 별로 영국과 관련 없어 보이는 스포츠도 오늘날 체계 잡힌 곳은 영국. 미국 역대 모든 과학자 업적 다 합해도, ---------------------------------------------> 뉴턴, 아인쉬타인 단 1명에 어림도 없는. 미국은 아직 영국이 확립한 저런 세계 표준을 대체할 역량이 없습니다. ---------------------------------------------> 대서양 연안 북미 식민지가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미국 자체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 미국의 진정한 능력은 패권을 잃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 --------------------------------------------->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 미국이라는 우호적인 대체 세력의 기원이 되면서 적대 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했지만, ---------------------------------------------> 미국이 훗날 패권을 잃을 때 그럴 가능성은 완벽히 0. ---------------------------------------------> 미국-캐나다-호주와 같은 드넓은 대륙급 새로운 영어 사용 미래 초강대국 등장 여백 영국은 남기지 않은.
@scz8333 Жыл бұрын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 미국에 과학기술 제공을 통해 미국의 대규모 물적 지원을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은 미국의 시혜-자비만이 아닌 엄격한 기브앤테이크. 2차대전 초 미국이 보관중이던 1차대전 때 구식 구축함 약 50척 인수받는 댓가로 영국은 전세계 요충지 해외 기지들의 미군 사용 허가 99년과 교환했으며 약 80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20년 정도 남았지만 연장될 것이 분명합니다. 대표적인 곳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샤, 대서양 한복판 어센션 등으로 미국과 영국이 함께 사용 중. ---------------------------------------------------> 2차대전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넘긴 과학기술과 해외 기지 사용권, 사실 미국의 운수대통 성격도.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우라늄광 확보 등 물리적 조건에서 미국 우세.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미국에서 행해진 맨허튼 프로젝트. 실제 핵심 중의 핵심 주도한 두뇌는 유럽 국적이거나 막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출신 과학자. 1. 중성자 예측 및 확증 ( 영,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및 채드윅 ) 2. 중성자가 실제 핵 연쇄 분열 일으키는 우라늄 연쇄 핵분열 발견 ( 독-헝가리, 오토한 + 마이트너 ) 3. 핵폭발 임계질량 ( 영 ) 4.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실시된 인위적 우라늄 연쇄 핵분열 ( 이태리, 페르미 ) 5. 임계 핵폭발 일으키는 폭축 렌즈 ( 헝가리, 폰 노이만 ) 미국에서 태어난 순수 미국 과학자들은 관리자 또는 하부 기술적 작업 성격 + 안전한 핵무기 개발 장소와 막대한 자본 투입이 미국의 핵심 기여. 오펜하이머. 하바드 대학 화학과 졸업. 영국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유학. ( 캠브리지는 뉴턴의 모교인 이론 물리학의 성지이자 + 원자핵-전자-양성자-중성자 모두를 확증한 실험 물리학의 메카 ) ( 캐번디시 연구소 내에서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며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 약 30개 + 2차대전 후 분리된 분자 생물학 연구소에서 그 유명한 DNA-이중나선 ) ( 분리된 분자 생물학 연구소에서 수상한 노벨 화학-생리의학상 약 15개 ) ( 캐번디시-분자생물학 연구소에 유학왔던 독일-소련-덴마크-미국-인도-이스라엘 등 다른 국적 과학자들도 노벨상 수상. ) -----------------------------------> 캠브리지 유학 후 오펜하이머는 독일 괴팅겐 대학의 막스 보른 밑에서 공부. -----------------------------------> 막스 보른은 2차대전 터질 무렵 영국으로 망명. 2차대전 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현 양자역학의 기본 입장인 파동함수를 확률 밀도로 처음 해석 양자역학 초창기 대가 중 한 사람. -----------------------------------> 함께 망명한 막스 보른의 딸이 캠브리지 또는 옥스포드 대학의 독일 문학? 전공한 -----------------------------------> 영국 학자와 결혼해 낳은 딸이 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 미국이 왜 오펜하이머를 맨허튼 프로젝트 최고 과학기술 책임자로 임명했겠습니까? -----------------------------------> 미국 과학자 중에서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던 오펜하어머는 영국-독일 유학한 경력. -----------------------------------> 오펜하이머가 유학한 캠브리지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는 사실상 핵에너지 과학이 시작된 곳이며, -----------------------------------> 오펜하이머의 독일 스승인 막스 보른은 영국에서 영국 핵무기 프로그램 자문. 핵임계질량은 핵무기 개발의 핵심 중 핵심. 영국이 구한 임계질량은 약 10~20kg 수준, 그 상태에서도 핵폭탄 전체 무게는 b29에 겨우 탑재할 수준. 만일 임계질량 수치가 당시 폭격기 탑재 불가능한 수치였다면, 세계대전 상황에서 그런 곳에 자원 투입할 국가 지구촌에 없음. 따라서 핵임계질량 확인은 기초 중의 기초, 독일은 임계질량 구할 능력은 있었지만 멍 때렸고 영국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 임계질량 확인에 나섰던.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 본격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충부한 자원과 인력으로 완성시킨.
@scz8333 Жыл бұрын
최초의 제트기 항모 이착륙:1945년 12월3일, 놀라운 2차대전 전시 기술발전 속도 kzbin.info/www/bejne/hn_ShnWfoZx0acU 2차대전 종전된지 불과 몇 개월 후인, 1945년 12월3일 북해 거친 바다, 경사장갑갑판의 영항모 오션에서 세계 최초의 제트 함재기 이착륙이 일어났습니다. 착륙 후 이륙 순으로 성공했습니다. 에릭 윙클 브라운 이라는 테스트 파일럿은 487종의 연합국과 추축국 비행기를 시험 비행한 깨지지 않을 세계 최다 기종 테스트 비행사입니다. 영국해군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전향했습니다. 최다 기종, 최다 항모 이착륙 기록, 기타 수 많은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최다 기종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기종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또한 에릭은 1944년 영공군의 모스키토 폭격기를 항모에 최초로 착함시켰고, 종전 직후 독일의 제트기와 로켓 항공기등 추축국 항공기들을 테스트 했습니다. 소련의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글라이더, 복엽기, 전투기, 폭격기, 민항기, 헬기, 수직이착륙기 등 거의 모든 기종을 포함한 487종.) 제트기를 항모 갑판 거의 끝에서 착륙시켜 아주 짧은 거리에서 멈춘 놀라운 착함 모습입니다. 전쟁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영국과 미국은 제트 함재기로 태평양 하늘을 휩쓸었을 겁니다. 미국 일본 항모와 달리, 지중해와 북해라는 육지로부터 가까워 적 공군력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라 영국 항모는 장갑갑판을 먼저 도입하게 되었고, 지중해에서 여러 직격탄에서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정도엔 벌써 경사갑판으로 개조된 영국 장갑항모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도 이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갑갑판, 경사갑판, 광학식 착륙유도장치, 증기 캐터펄터 등 항모에 필수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영국 해군에서 도입되어 미국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미국이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항모의 스키점프대 역시 마찬가지죠. 유명한 고성능 미 함재기 콜세어의 항모 사용도 미해군이 아닌 영해군이 먼저 도입했습니다. 전방동체가 크고 길어 항모 착함시 시야를 막아 미 해군은 해병항공대 육상기지 사용으로 돌리고 항모 도입 하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이 새로운 착륙방법을 만들어 최초로 항모에 탑재했고 미항모에 그 착함 방식이 이전되었습니다. 직선 경로로 착함하지 않고, 선회하면서 착함하는 방식으로 시야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urved approch : 영 해군이 개발한 corsair 착륙법, corsair 전방 시야가 좋지 않아 항모 접근시 관측하기 용이하도록 (항모 주변을 곡선을 그리며 선회하며 항모 좌현에서 접근하며 측면에서 갑판을 보며 고도를 맞추어 착륙) 7분35초 이후 보기를 kzbin.info/www/bejne/qH_Gh2Rpqsasrtk 풍족한 상태 보다는 조금은 결핍되거나 불리한 상태가 창조성 이끄는. 풍족했던 미국은 그냥 항모 크기를 키우는 선택을 했지만, 쪼들렸던 영국은 경사각을 주어 갑판 효율을 극대화 해야만 했고 + 태평양에서 저성능의 일본 항공기를 상대했던 미국은 핼켓으로 충분해 콜세어를 해병 지상기지 항공기로 돌렸지만, 지중해 북해에서 고성능 독일기 위협 때문에 영국은 고성능 콜세어 반드시 항모 운영해야만 했기에 새로운 착함법 개발로 몰려버린. ------------------------------------> 미 해군 최초의 장갑 항모 미드웨이급은 2차대전말 건조 중지 후 재설계 들어간. ------------------------------------> 대전 말 영국 해군이 경사갑판 선보이자 건조 멈추고 경사장갑갑판으로 재설계해 종전 한참 후에 완성된. 2차대전 영국 항모 거친 바다 악천후 속 작전 모습. kzbin.info/www/bejne/eIW3gHmql79rq9k -------------------------------> 북해와 북대서양의 저런 거친 해양 조건에서, -------------------------------> 미국 일본의 개방형 격납고로 작전은 불가능합니다. 저런 이유로 영국 해군은 폐쇄형 격납고 선택. -------------------------------> 2차대전 후 함재기 가격이 치솟고 + 항공 전자장비 탑재 늘면서, 함재기 보호 필요성 때문에 미 해군 역시 폐쇄형 격납고 채택. 위키백과 인용 (1943년 11월 영국 해군은 보우트사가 납품한 95 기의 F4U-1 커세어를 커세어 MK I 으로 분류하여 배치하였다.[62] 첫 비행중대는 미국 동부 연안에서 결성되어 훈련을 받은 뒤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해군은 커세어를 항공모함에 탑재하고 즉시 작전에 투입하였다. 작전이 실행되자 다수의 커세어의 착륙 특성 문제가 드러났고, 다수의 커세어가 이 과정에서 파손되었지만 영국 해군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영국 해군에 납품되는 커세어는 영국의 항공모함의 격납고 크기에 맞추기 위해 윙팁이 8 인치(200 mm)정도 짧았다.[63] 주익의 폭을 줄인데다 갑판의 활주로도 짧은 영국의 항공모함에서 운용된 커세어는 미국의 경우 보다 오히려 착륙 사고가 적었는데, 영국 해군의 조종사들은 착륙시 갑판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현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면서 하반각을 이루는 날개뿌리 너머로 활주로를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미국 해군의 함상 커세어 운용에도 전파되었다.[64] 영국 해군은 F4U-1A 커세어를 차례로 도입하여 510 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커세어 MK II로 호칭하였다. 커세어 MK II중 마지막 150기는 F4U-1D였으나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MK II로 분류되었다.[65] 이후 도입된 F3A-1 커세어 334 기와 F3A-1D 96기는 커세어 MK III[66] 400 기의 FG-1/1A와 457 기의 FG-1D는 커세어 MK IV로 호칭되었다.[67] 실제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MK II와 MK IV 뿐이었다.[68] 몇 가지 개량을 거친 뒤 영국 해군은 아무런 문제 없이 커세어를 함상 전투기로 운용하였다. 심지어는 갑판이 작은 호위 항공모함에서도 이착륙에 문제가 없었다. 영국은 총 2,012 기의 커세어를 공급받았다.[46] 영국의 첫 함대 항공단은 미국 퀀셋 포인트 항공 기지에서 결성된 1830 비행 중대로 HMA 일러스리어스에 배속되었다.[69] 1945년 7월에서 8월사이 영국의 함대 항공단 소속 1834, 1836, 1841, 1842 비행 중대는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하였다.[70] ) 유투브 게시물 댓글 인용 (Altered Beast 2년 전 The F4U was notoriously difficult to land on a carrier because of the huge elongated nose and massive Pratt & Whitney R2800 engine. Being a tail dragger the attitude of the aircraft on the ground was almost impossible to achieve accurate forward visibility. As with many big radial engine fighters of the period such deck take offs and landings were very risky and resulted in considerable losses. So much so that the US marines who flew Corsairs operated them from ground based airstrips. It wasnt until the British who effectively solved this problem but implementing the curved approach for deck landings that led to US navy pilots adopting the same method. Like many other examples of great ingenuity the British learned to adapt and overcome.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British aircraft test pilot Eric "winkleman" Brown was responsible for many feats of aerial genius. Even making several successful carrier landings in the TR-33 Sea Mosquito. As well as later going on to become the first pilot to successfully land a jet aircraft on the deck of a carrier. He was a true aviation legend, sadly missed..... )
@scz8333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 약 80%를 영국-캐나다군이 상대. 당시 미군은 실전 경험 사실상 전무했던 신병들로 구성되어, 독일 주력 상대 불가능해 영국군이 독일 주력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서 영국-캐나다군이 독일 5호 판터 및 6호 타이거 전차를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소개하죠. 1. kzbin.info/www/bejne/mX-qeKdnhLeCY5I Sherman Firefly vs King Tiger | July 1944 | Tank Duel ----------------------> 44년 7월 18일, 파이어플라이 서부전선 최초 킹타이거 격파. 2. kzbin.info/www/bejne/jF7NeJeQar2KhK8 Sherman Firefly vs SS Panthers - Tank Battle At Normandy, France ------------------------------> 44년 7월 9일,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판터 7대 격파. 3. kzbin.info/www/bejne/f6OopZeDoKt0ZpI Tank Battles of WW2 - The Firefly Ace that knocked out 5 Panthers with 5 rounds ------------------> 44년 7월 14일, 파이어플라이 1대가 5번 사격, 5대 판터 격파 노르망디 전역에서 미하일 비트만이 탄 타이거 역시 영국군 파이어플라이에게 격파당해 전사. 4. kzbin.info/www/bejne/iGWvqn95hLqesKs Cromwell vs 2 Panther tanks | September 1944 | Tank Duel ----------------------> 노르망디 돌파 후 44년 9월 19일 네덜란드, 영 크롬웰 전차 판터 2대 격파. 파이어플라이와 같은 17파운드 포를 장비한 크롬웰도 판터 타이거 격파 가능. 크롬웰은 당시 전차 중에선 기동성 가장 좋아 최고 속도 시속 약 65km/h. 영국은 북아프리카에서 타이거와 첫 교전 후 대응으로 43년 무렵 MBT 개발 시작, 그 사이 과도기에 미 셔면에 17파운드 포를 장착한 파이어플라이 및 크롬웰 등으로 응급 조치하며 버틴 것.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은 타이거 판터 대비 측면에선 사실상 멍 때렸던. 영국은 종전까지 약 2천대 파이어플라이 생산했고, 노르망디 상륙 때는 파이어플라이 생산 초기여서 초기 생산분 약 350대를 투입했다고.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약 80%는 영국군이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 투입된 미국과 영국의 전차 중에서 전차포로 독일 판터나 타이거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군 파이어플라어-크롬웰 정도. 파이어플라이 역시 약한 장갑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당했지만, 독일 타이거나 판터 역시도 파이어플라이에게 먼저 공격당하거나 매복에 걸리면 격파당했기도. 노르망디 전역은 이미 독일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후에 벌어진 전투로, 탁 트인 들판에서 전차가 고속 기동하는 전투 아닌 보카쥬 지형에서의 매복성 전차 전투. 처음엔 공격하는 영국군 전차가 매복한 독일군 전차에게 당하는 위치였지만, 전투가 계속되면서 독일군 전차도 영국군 매복이나 배후 침투에 당해 격파되었던. 독일의 그 어떤 전차라도 격파할 수 있는 전차포를 가진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원거리에서는 약한 장갑 때문에 독일 타이거에게 당할 위험이 컸지만, 보카쥬 지형에선 원거리 아닌 근접 전투도 많았기에 파이어플라이는 나름 역활을 한. 하지만 미군의 일반적인 셔면은 판터나 타이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패전 직전인 1945년 1월, 2대의 독일 판터가 21대의 미 셔먼과 교전했을 때 ----------------> 셔먼 9대 격파 + 셔먼 12대 포획. 만일 보통의 셔먼만 아닌 파이어플라이와 혼성 편성되었다면 판터의 저런 전과 불가능. 45년에도 저랬으니 실전 경험 없었던 44년 노르망디에선 더 취약했을 것. 2 SS Panthers vs. 21 US Shermans kzbin.info/www/bejne/bmeuYaGZidB0oaM 1945년 ( 영 최초 MBT인 센츄리온의 직전 모델인 ) 실전 투입된 마지막 순항전차 코메트. kzbin.info/www/bejne/qoPbhmN4bcismLs Comet Tank vs Tiger Tank | April 1945 | Tank Duel ----------------------------> 45년 4월 종전 직전, 영 코메트(센츄리온 직전 모델) 타이거 격파 여기 영상의 코메트 모습은 현대 주력 전차 유사, 하지만 센츄리온으로 바로 대체된.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은 너무 늦게 투입되어 실전 경험 없었음. kzbin.info/www/bejne/ZnLRoKyJicupfK8 Centurion - Tiger Tank's Nemesis 1945년 5월 8일 독일 항복. 독일 항복 직후인 5월 14일, 센츄리온 6대 영 항구에서 선적, 몇 일 후 안트워프 항에 하역. 최전선 소련군 점령지 경계까지 약 400마일 자력 기동 영국군 기갑부대 배속, 영 미 탱크들과 함께 대규모 야전 기동 훈련 후 7월 귀환. ----------------------------------------------------------------------------------> 2차대전 종전 당시 미 퍼싱, 영 센츄리온 등장으로 이미 독일 전차의 질적 우위는 끝난 상태.
@scz8333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종전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거의 함께 싸웠습니다. 투입한 병력 규모에선 미국이 압도적이었지만, 전장의 다양성 측면에선 의외로 미국이 뒤진 면도. 미국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영국은 경험했으며, 같은 전투에서 조차 미국이 뒤쳐진 부분도. 1. 제트기-미슬 시대의 함대 방공전 -------------------> 미국 실전 경험 없음, 영국만이 포클랜드전으로 유일 포클랜드전에서 시스키밍 대함미슬 요격에 실패, 종전 뒤 세계 각국은 본격 근접방어 체계 도입 시작. 2차대전 후 실전 함대방공전에서 적기를 격추한 경험은 영국 해군만이. 2. 잠수함의 적함 격침 -------------------> 미해군 아직 없음, 단 2건의 기록 중 1건이 영국 핵잠의 기록 잠수함 등장 이후 21세기 현재까지 잠수함 : 잠수함의 수중 전투에서 적 잠수함 격침 기록 역시 45년 종전 직전 북해에서 수중 항해중이던 영 잠이 수중 항해중이던 독 유보트 격침한 사례가 유일한 전과. 3. 대함미슬을 함대공 미슬로 요격 ----------------------> 미해군 전과 없음, 오직 영 해군이 걸프만에서 사상 최초 요격. 걸프만에서 재취역한 미 전함 아이오와급이 포함된 미 함대를 호위하던, 영 방공구축함 T42가 이란의 실크웜 대함 미슬을 시다트 함대공 미슬로 요격한 것이 유일한 전과. 당시 그 함대 소속 미 이지스함의 CIWS는 근처의 미 함정 을 향해 오발 사고. 또한 그 무렵 걸프만의 다른 미 이지스함은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판 격추해, 민간인 수 백명 이 희생되는 대참사. 뿐만 아니라 그 무렵 걸프만의 또 다른 미 수상함은 고무보트 자살 폭탄 테러당해 함정 옆구리 구멍 뚫려 바지선에 태워져 후송. 분명 미 이지스함이 영 T42 보다 고성능인데 막상 실제 상황에선 저런 일 터진. 4. 전차 : 전차, 최장거리 격파 기록 -----------------> 1차 걸프전 때, 영 챌린저1 약 4.7KM 거리에서 적 전차 격파 저 당시 미군이 병력과 투입 전차 수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소수의 영국 전차부대가 최장거리 격파 기록. 사막 지형이라 가능한 기록. 한반도의 굴곡진 지형에선 저 정도 거리에선 적 전차 관측할 곳도 별로 없음. 걸프전 영국과 미국의 전차전 전과는 이렇습니다. 영국은 192대? 전차 투입하고서 300 : 0 전과를 기록했고 특히 전차전 교전 손실 0 달성. 미국은 영국 보다 압도적인 수량의 전차 투입, 끝 자리 수에서 0을 하나 더 붙여 투입하고 600 : 2 전과, 하지만 전차전 전투 손실 2 발생. 우크라이나 전쟁 진행중인 2023년,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나토 기갑부대 경연에서, ----------------------------------------> 주력 전차 MBT 부분 성적, 1위 영국 챌린저2 + 2위 스페인 레오파드2 + 3위 미국 에이브럼스2 5. 아프칸 등에서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 -------------------> 캐나다 영국이 주도하며 미국이 뒤 따르는. 투입 병력은 미군이 압도적이지만 소수의 영국군과 더욱 소수의 캐나다군이 우세한 저격 기록. 캐나다 1위-3위-4위 영국-2위 미국-5위 캐나다의 1위 기록은 2위 이하 기록과 차원이 다른 초장거리, 기억으로 약 3.5KM, 2위~5위는 2KM대 기록. 미군이 투입 병력은 많음에도 실전 기록은 저런. 2차대전 이후 최강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 냉정하게 평가하면 덩치에 비해 내실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지난 70년. 투입한 병력과 보유한 장비 및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믿기지 않는 비효율적 개입과 철수 반복된. 21세기 현재, 서방측에서 미군이 가장 거대하고 장비 또한 최상이지만 미군의 질적 수준이 그렇다는 아무런 보장 없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아직 까지 경험하지 못한 단독으로 최강 적성국과 전쟁에서 승리 기대하기 힘들 것. 생각해보길, 2차대전 이후 그리고 21세기 현 미국이 단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국경 근처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재래식 전쟁 벌여 승리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지를. 미국과 달리 영국은 안쑤시고 다닌 대륙이나 국가 찾기가 힘들 정도, 그것도 지극히 적은 병력으로 치명적 승리를 거두며. --------------------------------------------------------------------------------------------> 미국은 아직 단독으로는 최강의 적성국과 붙어 승리해본 경험도 없는. 21세기 미 핵항모전단
@sgpark5579 Жыл бұрын
리커창 > 히밥 > 대륙남 > 캡틴따거 ^^
@s효돌이 Жыл бұрын
와 우리나라우지 높게 쳐주네ㅋㅋ 연고대가 70위권이라니ㅋㅋ
@kjlee4949 Жыл бұрын
영국이 평가를 할때는 영국 및 영국계 대학은 빼고 해야. 죄다 영국계
@scz8333 Жыл бұрын
영국은 21세기 현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미 하바드 대학 설립 1630년대, 약 150년 뒤 미국 독립. 북미 식민지 시작 무렵 이미 신학교지만 하바드 설립된.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를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인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기본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에너지-일의 단위 쥴J + 일률 단위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 기초는 영국 과학자 이름이며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 조차 아직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자연과학의 문을 가장 먼저 연. ----------------------------------------->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성과가 새로 누적되어야만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 체계로 바뀔 것. 대학교 교양 과정까지 배우는 전세계 모든 과학 교과서 핵심 내용 역시 마찬가지. 물리에서 기본 입자들 돌턴 근대 원자설 이후-------------> 원자핵 + 전자 + 양성자 + 중성자, 여기까지 모두 영국에서 확증된. 물리학 부분에서 역대 최고 과학자 단 4명을 뽑는다면, ---------------------------------------> 뉴턴 + 패러데이 + 맥스웰 + 아인쉬타인, 3명 영국 1명 독일. 미국은 아직 멀고 멀었습니다. 뉴턴과 아인쉬타인은 생략. 패러데이는 필드 장 개념을 확립, 전자기학-상대성이론-양자역학은 모두 필드 개념에 바탕. 고등수학 교육을 받지 못한 패러데이의 필드 개념을 맥스웰이 수학적 역량으로 집대성한 것이 고전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 ----------------------------------------> 패러데이로부터 발전기-전동기 및 전자기파의 개념이 시작되었고,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학은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 ----------------------------------------> 아인쉬타인 특수상대성 이론 자체가 맥스웰 파동방정식의 결론인 광속 일정으로 부터 시작된 겁니다. ----------------------------------------> 따라서 맥스웰 방정식은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수정되지 않고 유지됩니다. 생물학-유전공학-생명과학 부분 역대 최고 성과 단 2개를 선택한다면, -----------------------------------------> 다윈 진화론 + 캠브리지 DNA-이중나선, 모두 영국에서 이루어진 업적. 영국이 맛이 간 2차대전 이후 거대한 시설과 자본이 투입되는 물리 부분 거대 가속기 부분에서 약세를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이론 물리학 부분과 생명과학 부분에서 영국의 기여는 결정적. ------------------------------------------> 최초 시험관 아기 + 최초 체세포복제 복제양 돌리 ------------------------------------------> 전파 망원경을 이용한 전파 천문학 탄생 +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신의 입자 힉스 입자. ------------------------------------------> 수학 부분에서도 350년만에 증명된 페르마의 정리. ------------------------------------------> 페르마의 정리 증명한 와일즈는 미국 대학에 몸담고 있었지만, 최종 발표는 모교인 캠브리지에서. 미국은 아직도 단위 인구당 경쟁력에서, 노벨상-필즈상-하계올림픽에서 이미 많이 기운 영국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 미국은 단위 인구당 경쟁력에서 저 모든 부분에서 영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 피겨 스케이팅 + 현대 수영 + 복싱 ... ------------------------> 별로 영국과 관련 없어 보이는 스포츠도 오늘날 체계 잡힌 곳은 영국. 미국 역대 모든 과학자 업적 다 합해도, ---------------------------------------------> 뉴턴, 아인쉬타인 단 1명에 어림도 없는. 미국은 아직 영국이 확립한 저런 세계 표준을 대체할 역량이 없습니다. ---------------------------------------------> 대서양 연안 북미 식민지가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미국 자체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 미국의 진정한 능력은 패권을 잃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 --------------------------------------------->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 미국이라는 우호적인 대체 세력의 기원이 되면서 적대 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했지만, ---------------------------------------------> 미국이 훗날 패권을 잃을 때 그럴 가능성은 완벽히 0. ---------------------------------------------> 미국-캐나다-호주와 같은 드넓은 대륙급 새로운 영어 사용 미래 초강대국 등장 여백 영국은 남기지 않은.
@scz8333 Жыл бұрын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 미국에 과학기술 제공을 통해 미국의 대규모 물적 지원을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은 미국의 시혜-자비만이 아닌 엄격한 기브앤테이크. 2차대전 초 미국이 보관중이던 1차대전 때 구식 구축함 약 50척 인수받는 댓가로 영국은 전세계 요충지 해외 기지들의 미군 사용 허가 99년과 교환했으며 약 80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20년 정도 남았지만 연장될 것이 분명합니다. 대표적인 곳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샤, 대서양 한복판 어센션 등으로 미국과 영국이 함께 사용 중. ---------------------------------------------------> 2차대전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넘긴 과학기술과 해외 기지 사용권, 사실 미국의 운수대통 성격도.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우라늄광 확보 등 물리적 조건에서 미국 우세.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미국에서 행해진 맨허튼 프로젝트. 실제 핵심 중의 핵심 주도한 두뇌는 유럽 국적이거나 막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출신 과학자. 1. 중성자 예측 및 확증 ( 영,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및 채드윅 ) 2. 중성자가 실제 핵 연쇄 분열 일으키는 우라늄 연쇄 핵분열 발견 ( 독-헝가리, 오토한 + 마이트너 ) 3. 핵폭발 임계질량 ( 영 ) 4.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실시된 인위적 우라늄 연쇄 핵분열 ( 이태리, 페르미 ) 5. 임계 핵폭발 일으키는 폭축 렌즈 ( 헝가리, 폰 노이만 ) 미국에서 태어난 순수 미국 과학자들은 관리자 또는 하부 기술적 작업 성격 + 안전한 핵무기 개발 장소와 막대한 자본 투입이 미국의 핵심 기여. 오펜하이머. 하바드 대학 화학과 졸업. 영국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유학. ( 캠브리지는 뉴턴의 모교인 이론 물리학의 성지이자 + 원자핵-전자-양성자-중성자 모두를 확증한 실험 물리학의 메카 ) ( 캐번디시 연구소 내에서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며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 약 30개 + 2차대전 후 분리된 분자 생물학 연구소에서 그 유명한 DNA-이중나선 ) ( 분리된 분자 생물학 연구소에서 수상한 노벨 화학-생리의학상 약 15개 ) ( 캐번디시-분자생물학 연구소에 유학왔던 독일-소련-덴마크-미국-인도-이스라엘 등 다른 국적 과학자들도 노벨상 수상. ) -----------------------------------> 캠브리지 유학 후 오펜하이머는 독일 괴팅겐 대학의 막스 보른 밑에서 공부. -----------------------------------> 막스 보른은 2차대전 터질 무렵 영국으로 망명. 2차대전 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현 양자역학의 기본 입장인 파동함수를 확률 밀도로 처음 해석 양자역학 초창기 대가 중 한 사람. -----------------------------------> 함께 망명한 막스 보른의 딸이 캠브리지 또는 옥스포드 대학의 독일 문학? 전공한 -----------------------------------> 영국 학자와 결혼해 낳은 딸이 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 미국이 왜 오펜하이머를 맨허튼 프로젝트 최고 과학기술 책임자로 임명했겠습니까? -----------------------------------> 미국 과학자 중에서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던 오펜하어머는 영국-독일 유학한 경력. -----------------------------------> 오펜하이머가 유학한 캠브리지 캠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는 사실상 핵에너지 과학이 시작된 곳이며, -----------------------------------> 오펜하이머의 독일 스승인 막스 보른은 영국에서 영국 핵무기 프로그램 자문. 핵임계질량은 핵무기 개발의 핵심 중 핵심. 영국이 구한 임계질량은 약 10~20kg 수준, 그 상태에서도 핵폭탄 전체 무게는 b29에 겨우 탑재할 수준. 만일 임계질량 수치가 당시 폭격기 탑재 불가능한 수치였다면, 세계대전 상황에서 그런 곳에 자원 투입할 국가 지구촌에 없음. 따라서 핵임계질량 확인은 기초 중의 기초, 독일은 임계질량 구할 능력은 있었지만 멍 때렸고 영국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 임계질량 확인에 나섰던.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 본격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충부한 자원과 인력으로 완성시킨.
@scz8333 Жыл бұрын
최초의 제트기 항모 이착륙:1945년 12월3일, 놀라운 2차대전 전시 기술발전 속도 kzbin.info/www/bejne/hn_ShnWfoZx0acU 2차대전 종전된지 불과 몇 개월 후인, 1945년 12월3일 북해 거친 바다, 경사장갑갑판의 영항모 오션에서 세계 최초의 제트 함재기 이착륙이 일어났습니다. 착륙 후 이륙 순으로 성공했습니다. 에릭 윙클 브라운 이라는 테스트 파일럿은 487종의 연합국과 추축국 비행기를 시험 비행한 깨지지 않을 세계 최다 기종 테스트 비행사입니다. 영국해군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전향했습니다. 최다 기종, 최다 항모 이착륙 기록, 기타 수 많은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최다 기종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기종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또한 에릭은 1944년 영공군의 모스키토 폭격기를 항모에 최초로 착함시켰고, 종전 직후 독일의 제트기와 로켓 항공기등 추축국 항공기들을 테스트 했습니다. 소련의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글라이더, 복엽기, 전투기, 폭격기, 민항기, 헬기, 수직이착륙기 등 거의 모든 기종을 포함한 487종.) 제트기를 항모 갑판 거의 끝에서 착륙시켜 아주 짧은 거리에서 멈춘 놀라운 착함 모습입니다. 전쟁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영국과 미국은 제트 함재기로 태평양 하늘을 휩쓸었을 겁니다. 미국 일본 항모와 달리, 지중해와 북해라는 육지로부터 가까워 적 공군력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라 영국 항모는 장갑갑판을 먼저 도입하게 되었고, 지중해에서 여러 직격탄에서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정도엔 벌써 경사갑판으로 개조된 영국 장갑항모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도 이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갑갑판, 경사갑판, 광학식 착륙유도장치, 증기 캐터펄터 등 항모에 필수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영국 해군에서 도입되어 미국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미국이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항모의 스키점프대 역시 마찬가지죠. 유명한 고성능 미 함재기 콜세어의 항모 사용도 미해군이 아닌 영해군이 먼저 도입했습니다. 전방동체가 크고 길어 항모 착함시 시야를 막아 미 해군은 해병항공대 육상기지 사용으로 돌리고 항모 도입 하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이 새로운 착륙방법을 만들어 최초로 항모에 탑재했고 미항모에 그 착함 방식이 이전되었습니다. 직선 경로로 착함하지 않고, 선회하면서 착함하는 방식으로 시야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urved approch : 영 해군이 개발한 corsair 착륙법, corsair 전방 시야가 좋지 않아 항모 접근시 관측하기 용이하도록 (항모 주변을 곡선을 그리며 선회하며 항모 좌현에서 접근하며 측면에서 갑판을 보며 고도를 맞추어 착륙) 7분35초 이후 보기를 kzbin.info/www/bejne/qH_Gh2Rpqsasrtk 풍족한 상태 보다는 조금은 결핍되거나 불리한 상태가 창조성 이끄는. 풍족했던 미국은 그냥 항모 크기를 키우는 선택을 했지만, 쪼들렸던 영국은 경사각을 주어 갑판 효율을 극대화 해야만 했고 + 태평양에서 저성능의 일본 항공기를 상대했던 미국은 핼켓으로 충분해 콜세어를 해병 지상기지 항공기로 돌렸지만, 지중해 북해에서 고성능 독일기 위협 때문에 영국은 고성능 콜세어 반드시 항모 운영해야만 했기에 새로운 착함법 개발로 몰려버린. ------------------------------------> 미 해군 최초의 장갑 항모 미드웨이급은 2차대전말 건조 중지 후 재설계 들어간. ------------------------------------> 대전 말 영국 해군이 경사갑판 선보이자 건조 멈추고 경사장갑갑판으로 재설계해 종전 한참 후에 완성된. 2차대전 영국 항모 거친 바다 악천후 속 작전 모습. kzbin.info/www/bejne/eIW3gHmql79rq9k -------------------------------> 북해와 북대서양의 저런 거친 해양 조건에서, -------------------------------> 미국 일본의 개방형 격납고로 작전은 불가능합니다. 저런 이유로 영국 해군은 폐쇄형 격납고 선택. -------------------------------> 2차대전 후 함재기 가격이 치솟고 + 항공 전자장비 탑재 늘면서, 함재기 보호 필요성 때문에 미 해군 역시 폐쇄형 격납고 채택. 위키백과 인용 (1943년 11월 영국 해군은 보우트사가 납품한 95 기의 F4U-1 커세어를 커세어 MK I 으로 분류하여 배치하였다.[62] 첫 비행중대는 미국 동부 연안에서 결성되어 훈련을 받은 뒤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해군은 커세어를 항공모함에 탑재하고 즉시 작전에 투입하였다. 작전이 실행되자 다수의 커세어의 착륙 특성 문제가 드러났고, 다수의 커세어가 이 과정에서 파손되었지만 영국 해군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영국 해군에 납품되는 커세어는 영국의 항공모함의 격납고 크기에 맞추기 위해 윙팁이 8 인치(200 mm)정도 짧았다.[63] 주익의 폭을 줄인데다 갑판의 활주로도 짧은 영국의 항공모함에서 운용된 커세어는 미국의 경우 보다 오히려 착륙 사고가 적었는데, 영국 해군의 조종사들은 착륙시 갑판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현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면서 하반각을 이루는 날개뿌리 너머로 활주로를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미국 해군의 함상 커세어 운용에도 전파되었다.[64] 영국 해군은 F4U-1A 커세어를 차례로 도입하여 510 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커세어 MK II로 호칭하였다. 커세어 MK II중 마지막 150기는 F4U-1D였으나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MK II로 분류되었다.[65] 이후 도입된 F3A-1 커세어 334 기와 F3A-1D 96기는 커세어 MK III[66] 400 기의 FG-1/1A와 457 기의 FG-1D는 커세어 MK IV로 호칭되었다.[67] 실제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MK II와 MK IV 뿐이었다.[68] 몇 가지 개량을 거친 뒤 영국 해군은 아무런 문제 없이 커세어를 함상 전투기로 운용하였다. 심지어는 갑판이 작은 호위 항공모함에서도 이착륙에 문제가 없었다. 영국은 총 2,012 기의 커세어를 공급받았다.[46] 영국의 첫 함대 항공단은 미국 퀀셋 포인트 항공 기지에서 결성된 1830 비행 중대로 HMA 일러스리어스에 배속되었다.[69] 1945년 7월에서 8월사이 영국의 함대 항공단 소속 1834, 1836, 1841, 1842 비행 중대는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하였다.[70] ) 유투브 게시물 댓글 인용 (Altered Beast 2년 전 The F4U was notoriously difficult to land on a carrier because of the huge elongated nose and massive Pratt & Whitney R2800 engine. Being a tail dragger the attitude of the aircraft on the ground was almost impossible to achieve accurate forward visibility. As with many big radial engine fighters of the period such deck take offs and landings were very risky and resulted in considerable losses. So much so that the US marines who flew Corsairs operated them from ground based airstrips. It wasnt until the British who effectively solved this problem but implementing the curved approach for deck landings that led to US navy pilots adopting the same method. Like many other examples of great ingenuity the British learned to adapt and overcome.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British aircraft test pilot Eric "winkleman" Brown was responsible for many feats of aerial genius. Even making several successful carrier landings in the TR-33 Sea Mosquito. As well as later going on to become the first pilot to successfully land a jet aircraft on the deck of a carrier. He was a true aviation legend, sadly missed..... )
@scz8333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 약 80%를 영국-캐나다군이 상대. 당시 미군은 실전 경험 사실상 전무했던 신병들로 구성되어, 독일 주력 상대 불가능해 영국군이 독일 주력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서 영국-캐나다군이 독일 5호 판터 및 6호 타이거 전차를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소개하죠. 1. kzbin.info/www/bejne/mX-qeKdnhLeCY5I Sherman Firefly vs King Tiger | July 1944 | Tank Duel ----------------------> 44년 7월 18일, 파이어플라이 서부전선 최초 킹타이거 격파. 2. kzbin.info/www/bejne/jF7NeJeQar2KhK8 Sherman Firefly vs SS Panthers - Tank Battle At Normandy, France ------------------------------> 44년 7월 9일,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판터 7대 격파. 3. kzbin.info/www/bejne/f6OopZeDoKt0ZpI Tank Battles of WW2 - The Firefly Ace that knocked out 5 Panthers with 5 rounds ------------------> 44년 7월 14일, 파이어플라이 1대가 5번 사격, 5대 판터 격파 노르망디 전역에서 미하일 비트만이 탄 타이거 역시 영국군 파이어플라이에게 격파당해 전사. 4. kzbin.info/www/bejne/iGWvqn95hLqesKs Cromwell vs 2 Panther tanks | September 1944 | Tank Duel ----------------------> 노르망디 돌파 후 44년 9월 19일 네덜란드, 영 크롬웰 전차 판터 2대 격파. 파이어플라이와 같은 17파운드 포를 장비한 크롬웰도 판터 타이거 격파 가능. 크롬웰은 당시 전차 중에선 기동성 가장 좋아 최고 속도 시속 약 65km/h. 영국은 북아프리카에서 타이거와 첫 교전 후 대응으로 43년 무렵 MBT 개발 시작, 그 사이 과도기에 미 셔면에 17파운드 포를 장착한 파이어플라이 및 크롬웰 등으로 응급 조치하며 버틴 것.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은 타이거 판터 대비 측면에선 사실상 멍 때렸던. 영국은 종전까지 약 2천대 파이어플라이 생산했고, 노르망디 상륙 때는 파이어플라이 생산 초기여서 초기 생산분 약 350대를 투입했다고.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약 80%는 영국군이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 투입된 미국과 영국의 전차 중에서 전차포로 독일 판터나 타이거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군 파이어플라어-크롬웰 정도. 파이어플라이 역시 약한 장갑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당했지만, 독일 타이거나 판터 역시도 파이어플라이에게 먼저 공격당하거나 매복에 걸리면 격파당했기도. 노르망디 전역은 이미 독일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후에 벌어진 전투로, 탁 트인 들판에서 전차가 고속 기동하는 전투 아닌 보카쥬 지형에서의 매복성 전차 전투. 처음엔 공격하는 영국군 전차가 매복한 독일군 전차에게 당하는 위치였지만, 전투가 계속되면서 독일군 전차도 영국군 매복이나 배후 침투에 당해 격파되었던. 독일의 그 어떤 전차라도 격파할 수 있는 전차포를 가진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원거리에서는 약한 장갑 때문에 독일 타이거에게 당할 위험이 컸지만, 보카쥬 지형에선 원거리 아닌 근접 전투도 많았기에 파이어플라이는 나름 역활을 한. 하지만 미군의 일반적인 셔면은 판터나 타이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패전 직전인 1945년 1월, 2대의 독일 판터가 21대의 미 셔먼과 교전했을 때 ----------------> 셔먼 9대 격파 + 셔먼 12대 포획. 만일 보통의 셔먼만 아닌 파이어플라이와 혼성 편성되었다면 판터의 저런 전과 불가능. 45년에도 저랬으니 실전 경험 없었던 44년 노르망디에선 더 취약했을 것. 2 SS Panthers vs. 21 US Shermans kzbin.info/www/bejne/bmeuYaGZidB0oaM 1945년 ( 영 최초 MBT인 센츄리온의 직전 모델인 ) 실전 투입된 마지막 순항전차 코메트. kzbin.info/www/bejne/qoPbhmN4bcismLs Comet Tank vs Tiger Tank | April 1945 | Tank Duel ----------------------------> 45년 4월 종전 직전, 영 코메트(센츄리온 직전 모델) 타이거 격파 여기 영상의 코메트 모습은 현대 주력 전차 유사, 하지만 센츄리온으로 바로 대체된.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은 너무 늦게 투입되어 실전 경험 없었음. kzbin.info/www/bejne/ZnLRoKyJicupfK8 Centurion - Tiger Tank's Nemesis 1945년 5월 8일 독일 항복. 독일 항복 직후인 5월 14일, 센츄리온 6대 영 항구에서 선적, 몇 일 후 안트워프 항에 하역. 최전선 소련군 점령지 경계까지 약 400마일 자력 기동 영국군 기갑부대 배속, 영 미 탱크들과 함께 대규모 야전 기동 훈련 후 7월 귀환. ----------------------------------------------------------------------------------> 2차대전 종전 당시 미 퍼싱, 영 센츄리온 등장으로 이미 독일 전차의 질적 우위는 끝난 상태.
@scz8333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종전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거의 함께 싸웠습니다. 투입한 병력 규모에선 미국이 압도적이었지만, 전장의 다양성 측면에선 의외로 미국이 뒤진 면도. 미국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영국은 경험했으며, 같은 전투에서 조차 미국이 뒤쳐진 부분도. 1. 제트기-미슬 시대의 함대 방공전 -------------------> 미국 실전 경험 없음, 영국만이 포클랜드전으로 유일 포클랜드전에서 시스키밍 대함미슬 요격에 실패, 종전 뒤 세계 각국은 본격 근접방어 체계 도입 시작. 2차대전 후 실전 함대방공전에서 적기를 격추한 경험은 영국 해군만이. 2. 잠수함의 적함 격침 -------------------> 미해군 아직 없음, 단 2건의 기록 중 1건이 영국 핵잠의 기록 잠수함 등장 이후 21세기 현재까지 잠수함 : 잠수함의 수중 전투에서 적 잠수함 격침 기록 역시 45년 종전 직전 북해에서 수중 항해중이던 영 잠이 수중 항해중이던 독 유보트 격침한 사례가 유일한 전과. 3. 대함미슬을 함대공 미슬로 요격 ----------------------> 미해군 전과 없음, 오직 영 해군이 걸프만에서 사상 최초 요격. 걸프만에서 재취역한 미 전함 아이오와급이 포함된 미 함대를 호위하던, 영 방공구축함 T42가 이란의 실크웜 대함 미슬을 시다트 함대공 미슬로 요격한 것이 유일한 전과. 당시 그 함대 소속 미 이지스함의 CIWS는 근처의 미 함정 을 향해 오발 사고. 또한 그 무렵 걸프만의 다른 미 이지스함은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판 격추해, 민간인 수 백명 이 희생되는 대참사. 뿐만 아니라 그 무렵 걸프만의 또 다른 미 수상함은 고무보트 자살 폭탄 테러당해 함정 옆구리 구멍 뚫려 바지선에 태워져 후송. 분명 미 이지스함이 영 T42 보다 고성능인데 막상 실제 상황에선 저런 일 터진. 4. 전차 : 전차, 최장거리 격파 기록 -----------------> 1차 걸프전 때, 영 챌린저1 약 4.7KM 거리에서 적 전차 격파 저 당시 미군이 병력과 투입 전차 수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소수의 영국 전차부대가 최장거리 격파 기록. 사막 지형이라 가능한 기록. 한반도의 굴곡진 지형에선 저 정도 거리에선 적 전차 관측할 곳도 별로 없음. 걸프전 영국과 미국의 전차전 전과는 이렇습니다. 영국은 192대? 전차 투입하고서 300 : 0 전과를 기록했고 특히 전차전 교전 손실 0 달성. 미국은 영국 보다 압도적인 수량의 전차 투입, 끝 자리 수에서 0을 하나 더 붙여 투입하고 600 : 2 전과, 하지만 전차전 전투 손실 2 발생. 우크라이나 전쟁 진행중인 2023년,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나토 기갑부대 경연에서, ----------------------------------------> 주력 전차 MBT 부분 성적, 1위 영국 챌린저2 + 2위 스페인 레오파드2 + 3위 미국 에이브럼스2 5. 아프칸 등에서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 -------------------> 캐나다 영국이 주도하며 미국이 뒤 따르는. 투입 병력은 미군이 압도적이지만 소수의 영국군과 더욱 소수의 캐나다군이 우세한 저격 기록. 캐나다 1위-3위-4위 영국-2위 미국-5위 캐나다의 1위 기록은 2위 이하 기록과 차원이 다른 초장거리, 기억으로 약 3.5KM, 2위~5위는 2KM대 기록. 미군이 투입 병력은 많음에도 실전 기록은 저런. 2차대전 이후 최강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 냉정하게 평가하면 덩치에 비해 내실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지난 70년. 투입한 병력과 보유한 장비 및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믿기지 않는 비효율적 개입과 철수 반복된. 21세기 현재, 서방측에서 미군이 가장 거대하고 장비 또한 최상이지만 미군의 질적 수준이 그렇다는 아무런 보장 없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아직 까지 경험하지 못한 단독으로 최강 적성국과 전쟁에서 승리 기대하기 힘들 것. 생각해보길, 2차대전 이후 그리고 21세기 현 미국이 단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국경 근처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재래식 전쟁 벌여 승리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지를. 미국과 달리 영국은 안쑤시고 다닌 대륙이나 국가 찾기가 힘들 정도, 그것도 지극히 적은 병력으로 치명적 승리를 거두며. --------------------------------------------------------------------------------------------> 미국은 아직 단독으로는 최강의 적성국과 붙어 승리해본 경험도 없는. 21세기 미 핵항모전단
@JessePilot Жыл бұрын
왜 ICL이 UCL보다 높지? 반대인데
@한글특허세종대왕5 ай бұрын
유엔 유네스코 기네스북 방탄소년단 한국 전세계 하버드대 한글 특허로 한글 공통어된다. 한글 최고 빨리가르친다
@이송강-w2r8 ай бұрын
좀 1등부터 보여주세요 ㅠ
@bluesky4050-l7r Жыл бұрын
고대가 꼴찌네... 연대한테도 밀리다니...
@AAA-um4oz Жыл бұрын
원래 밀림
@insoonlee8813 Жыл бұрын
고대 ㅈㄹ비호감.
@santarita414 Жыл бұрын
MB
@sunglee3935 Жыл бұрын
MIT 가ㅠStanford 보다 좋은게 뭐지 공대 자연대는 비숫해도 인문학은 Stanford 가ㅠ더좋울텐데
@joehuh6779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오버 롤로 볼때 스탠포드가 최곱니다. MIT는 공대, 상 법대는 좋으나 인문이 약하고 의대가 없습니다. 하바드는 문과와 순수 과학, 의학은 좋으나 공대가 약합니다. 반면에 스탠포드는 공대, 의대, 상 법대, 이과, 문과 전부 좋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 등급 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