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보면 부산(동래) 를 점령하고 그다음 서울로 가는 길에 상주로 진군하는 일본놈 영상이 기억 나네요...
@hofffnung Жыл бұрын
@@leonshim8522 지금도 그 길이 충주-상주-대구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죠
@won6359 Жыл бұрын
州(고을주)자 붙은 지명이 농경사회에선 큰도시였죠...전주 나주 경주 상주 충주 청주 진주 광주(경기도) 양주 황주 해주 길주 의주 안주 등등
@백용권-s1j Жыл бұрын
원주는요
@Gordon-rb7nd Жыл бұрын
무주 나 성주는 왜...
@won6359 Жыл бұрын
@@백용권-s1j 네 강원도 원자가 원주니 원주도 강원도에선 큰고을이였죠..첩첩산중에 분지지역이니깐요
@백용권-s1j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shp2310 Жыл бұрын
양자붙은고을은 불고기가 맛남 평양 광양 언양 등
@kmyoo1163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저는 홍성이 고향인데 조선시대에 홍주목은 꽤 큰 고을이었군요.. 근데 요즘 홍성은 겨우 그때의 두배 정도 인구수네요..
@albba-k2m Жыл бұрын
제 외가집 홍성인데 다 반계초 나오셨어요 ㅎㅎ
@은하수-u5r Жыл бұрын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장동건-t3w3 ай бұрын
숙희야...
@카르페디엠-v7h Жыл бұрын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ppjs_18 Жыл бұрын
진주부가 땅이 넓었죠 하동군 일부 남해군 창선도 사천시 일부 산청군 일부 먹을 정도로 컸던..
@이점용-l7k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 백성들이 왜군을 막아 당시 인구의 반 이상 희생된것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김시민 장군도 알려지고...
@까마귀용 Жыл бұрын
충청도ㅡ충주 청주 경상도ㅡ경주 상주 전라도ㅡ전주 나주 강원도ㅡ강릉 원주 중에서는 청주 전주 원주가 그나마 어느정도 규모 유지중
@SonHeung-min Жыл бұрын
충주 상주.. 완전망함
@까마귀용 Жыл бұрын
요즘은 수도권 아닌 지방은 부산 대구나 광주나 어디나... 그나마 충청권 대전 세종 청주 천안이 일자리나 인구유지나 선방중
@믿음소망사랑-f6p Жыл бұрын
울 부모님 상주 출신. 그런데 정작 저는 경상도를 별로 안좋아함. 친척들끼리 사기치고. 어휴..... 연 끊은지 오래됨. 사투리만 들어도 사지가 떨림.
@까마귀용 Жыл бұрын
전형적인 좁은 시야입니다ㅎ 예로 서울에서 살인이나 사기 사건.서울 사람 모두가 그런게 아니고 타지역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그지역이 그런게 아니듯. 그사람이 그런것 성인이라면 객관적으로 볼수있는 시야는 기본이지요ㅎ
@jaekim1802 Жыл бұрын
원레 옛부터 갱상도 지방은 골치 아푼 지방으로 향소부곡 천민 거주지로 지정한 지방 이였어요.. 멘날 반란만 일으켜서 그 갱상도 지방을 200년동안 과거를 금지시키고 정부 중요자리에 등용을 금지시킨 지방 이였지요..일제 해방후도 공산 빨갱이 폭동을 멘날 일으켜 그때 북한 빨갱이 박정희형 박상희도 우리군이 사살했고 그후도 멘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이 쿠테타로 우리국가 전복해 독재국가만 만든 골치아푼 지방임 현제도..
@LEEkyouho Жыл бұрын
조선의 기록은 엄청나죠. 세종대왕이 인력을 사용해서 아날로그 종이 엑셀을 사용하셨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세금품목들 종이에 항목별로 각각 적어서 마당에 펼쳐놓고 “날짜별로 내림차순해보게”, “날짜별로 소계 정리해두게”, “이번엔 품목별로 분류해보게”, “품목별로 소계 정리해두고” 이런식으로 아날로그 수동 엑셀 ㄷㄷㄷㄷ
@Gordon-rb7nd Жыл бұрын
과학기술은 뒤떨어졌지만 기록만큼은 진심인 나라..
@겜쇼츠-s7q Жыл бұрын
실수로 누락하거나 계산착오시 퇴근불가. 그일을 매듭짓기까지 매일 야근에 주말특근에, ㅋㅋ 한번 출근하면 퇴근가능한날이 손에 꼽을정도. 아 물론 성군답게 밥은 잘먹이심. 것도 정1품 특제 고기반찬이 삼시세끼 내새 푸.짐.히. 거 그거 맛나게 들고 남은 정무를 이어서하게.(세종대왕 전언)
@user-cb2ik9kq5v Жыл бұрын
노비종모법.
@gamdoli Жыл бұрын
ㅁㅊㅋㅋ
@anfwoijwej1742 Жыл бұрын
다른나라도 그렇게 다 했어요..
@뿅뿅-j9x Жыл бұрын
유익합니다 늘 잘보고있어요
@city_lab Жыл бұрын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hacksuny Жыл бұрын
보물같은 유투브 영상이네요.
@city_lab Жыл бұрын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노래근육주식9 ай бұрын
이 영상을 충주맨이 좋아합니다
@강성민-d3z Жыл бұрын
내가 사는 성주군이 예전엔 큰 도시였다니~~~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많았던거 같은데,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교육때문에 대구로 가다보니 지금 이모양이 된거 같네요ㅜㅜ
@포스리드 Жыл бұрын
성주ㅋㅋㅋ 씹상북도 상종자들이 사는곳아님?ㅋㅋ
@gustave7223 Жыл бұрын
경부 고속도로가 놓일 때 고속도로 경유지가 대구가 아니라 상주가 될 예정이었는데 상주에서 반대해서 대구가 경유지가 되었고 대구가 경상도 교통 중심지가 되어서 공업 도시가 되었다네여
@촉법소년단-q1c Жыл бұрын
@@gustave7223 이미 일제때부터 경북의 메인스트림이 대구가되어서 낭설에 불과할지 싶네요.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은 장본인이 구미출신 박정희 대통령인데 설마 대구를 그냥 지나쳤을리가...혹시 경부선 철도 부설할때 공주와 대전의 얘기랑 혼동하신듯
@hofffnung Жыл бұрын
@@gustave7223 대구는 이미 조선후기부터 경상감영이 있어서 상주보다 잘나갔고, 지금이야 소백산맥에 조령이든 죽령이든 이화령이든 육십령이든 터널 뚫어버리고 고가 놓지만 그 당시에 무슨 상주를 감 ㅋㅋㅋ 아재들 할배들 떠드는 거 다 헛소리임. 경부선 놓을 때, 제일 만만한 추풍령으로 간거고 경부고속도로도 따라 간거임. 추풍령 구간 지금 같았으면 터널 뚫어서 직선으로 갈만한 구간이지만 그 당시에 기술이 없어서 고갯길을 타고 오름. 동시대 지은 구마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 하다못해 평지에 지은 경인고속도로도 은근 고저차 있음.
@-kimchi0327- Жыл бұрын
@@촉법소년단-q1c 낭설은 무슨 낭설? 박정희가 상주로 내려고 했는데 지역 유림들이 반대해서 김천으로 간건 팩트인데~ 잘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 안동에 지역 지역 mbc, kbs도 원래 상주로 오려고 했고 예천에 있는 공군부대 및 공군비행장도 상주 오려고 했고 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요. 상주는 전통적으로 신라때도 중요도시, 고려때도, 조선시대때도 마찬가지고 님이 대통령이라면 전통적으로 이름 있는 지역으로 고속도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별 이름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현희정-l4l10 ай бұрын
관심있었는데 이리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배영수민턴 Жыл бұрын
저는 충주시민인데..ㅎ 아쉽네요~충주~^ 잘 봤습니다
@고독한쇠파이프 Жыл бұрын
기업인 여러분 상주에 투자하세요 서울부산 그리고 동과서로 딱 중심에 있는도시이고 낙동강이 흐르고 넓은 평야지역이 많고 청주 대구 대전과 1시간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고독한쇠파이프 Жыл бұрын
현재 주로 끝나는도시 상주경주나주청주 등등 주로로 끝나는도시는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라보면됨
@minsuh19768 ай бұрын
그 도시들의 앞글자를 따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지요
@월드힐링8 ай бұрын
충주 생각보다 더 근본이엿네요ㄷㄷ
@파아란-v7j12 күн бұрын
임란 전까지 충청도 관찰사가 있었고, 그 전에 고구려때 국원성, 신라때 국원소경-->중원경등이 설치됐습니다. 충청도가 남북 분도 됐을때 충북도청이 설치되었다가,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제천)의 거점이 되면서 도청을 청주로 이전하게 됩니다.
@뭉게구름222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지역별로 인구 분포도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city_lab Жыл бұрын
격려 감사합니다.
@최준식-i3k Жыл бұрын
😊😊😊😊⁸⁷7
@noelsu9454 Жыл бұрын
확실히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제외하고는 인구수가 그리 큰 차이 안나고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군요 경기 서울권 인구 비율이 9% 지금은 50% 이상이 인상적이군요
@황솨이드 Жыл бұрын
무슨 경기도 인구가 50프로야...빙신이냐?
@_RED_FISH_ Жыл бұрын
지금 뭔 경기도가 50프로야 ㅋㅋ 헛소리하고있네
@POLICE. Жыл бұрын
경기도가 50퍼는 아니고 경기 서울 인천 수도권인구합쳐서 50퍼 정도네요
@송성룡-f6r Жыл бұрын
서울 경기권이라고 표현해야 할것을 잘못 말씀하셨네요.
@쥬지스님-d5k Жыл бұрын
@@_RED_FISH_;; 금쪽이
@jed240240 Жыл бұрын
성주편에서 대구와 조령을 잇는 도시는 상주가 아닌가 싶네요..확인 한 번 부탁드립니다.
@태상박-l5w Жыл бұрын
조령은 상주를 지나 문경에 있는 소백산맥 줄기의 고개마루로서 한양이나 충주가는 길목이거늘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왠 성주가 거명되는지???
@hyoojin Жыл бұрын
5:42 에 나오는 배경이 전라남도 나주가 아니라 경상북도 경주같은데요... 멀리 드라켄이 보이고 그 앞에 황룡원 중도탑 그 옆엔 경주 더케이호텔이 보이네요 정정 부탁드립니다.
@황꾸쑝 Жыл бұрын
인구수 조사할때 노비들 승려 포함 안한거 같습니다~인구수 아마도 좀더 많았을꺼에요~
@nseaw13579 Жыл бұрын
이렇게 긴 역사를 거슬러 보면 세상은 또 인구의 이동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한평생은 긴 세월의 한 시대일뿐 그 시대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최고이다.
@냥-i9d9 ай бұрын
오~ 대박 정보 감사합니당^^
@이승찬-t4c Жыл бұрын
너무너무 좋은자료 입니다. 이런자료 또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
@edogawa0225 Жыл бұрын
전주는 조선시대에 남한기준 3위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18위로 밀려남. (청주, 천안, 남양주, 화성한테 밀림.) 거기에 전주가 크질 못한이유가 호남선철도가 익산으로 빠져버린건 두고두고 후회할일인데, 당시 전주의 유지였던 박기순이 이미 측량까지 끝난시점에 와서 반대하였고, 총독부에서도 그 박기순을 이길수가 없었다함. 결국 당시 이리라는 동네로 부설되었는데, 그게 지금의 익산임. 호남선, 전라선의 분기역이 익산이 아닌 전주였으면 광주에도 꿀리진 않았을텐데, 전주는 참 뭐 들어온다면 무조건 반대부터함. 거기에 당시 호남선 철도는 조치원-공주-노성-금마-전주-금구-태인-정읍-광주루트로 가려던게 지금에 이른거. 덕분에 대전이 성장하게 된거고, 반대로 공주와 전주는 쇠퇴함.
@user_jeurbehr Жыл бұрын
전주는 뭐가 들어온다면 무조건 반대함..이거 완전 팩폭입니다 ㅠ
@lifemooon21077 ай бұрын
근데 박기순이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땅이라서 국가에 주기 싫어서???
@ngjguetd Жыл бұрын
안동이 학문과 정치적으로 중요 도시였군요 그래서 증조 할머니(돌아 가셨음)가 안동은 양반이라고 하셨던건가😊
@sewonkim2290 Жыл бұрын
흥미롭네요.. 전국이 고루 살기 좋은 동네로 개성이 있었겠네요. 전 강원도에 사는데 그때도 인구가 적은 소외지역이었나 보네요...
@언제나깨어있는자-p2g Жыл бұрын
강릉,원주..강원도
@Gordon-rb7nd Жыл бұрын
그래도 평안도나 함경도에 비하면 뭐.
@지윤-c6i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기술로는 태백산맥을 넘는게 불가능했으니까요. 1970년대까지도 강릉 사람이 서울에 가려면 배를 타고 부산에 간 다음 경부선 열차를 타야했습니다.
@호호호-k1s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때 전라도(전주.나주)경상도(경주.상주)평안도(평양.안주)같이 8도의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반역이나 큰 범죄가 발생하면 도명을 바꿔버리곤 했습니다. 강원도란 이름도 강릉과 원주에서 큰 범죄와 역모가 발생해서 한때 도명이 원양도(원주.양양) 원춘도(춘천.원주) 강춘도(강릉.춘천)로 바뀌곤 했었죠
@김형규-k9y11 ай бұрын
틀린말입니다. 영동선이라는 열차노선이 있어서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갔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ซอกฮิยอนนํา Жыл бұрын
서울에서 부산 목포 신의주 두만강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있는 도시들이 대도시였습니다 부산방향은 서울 광주 여주 충주 문경 상주 대구 밀양 부산 라인이 가장 빠르게 갈수 있는 길입니다
@내꿈은삼례 Жыл бұрын
좋은정보 잘 보았습니다.
@sophiej.286610 ай бұрын
상주가 조선 시대의 큰 도시였군요! 어쩐지… 상주에 양반이 많지요~ 화려한 영상에 눈이 휙휙 돌아가네요~ 멋진 자료 너무 잘 봤습니다 ^^
@이사장-l9n9 ай бұрын
경상도의 상을 맡고있죠ㅎㅎ
@sorksnrn363211 ай бұрын
충주는 참신기한 도시야 충주맨도 그렇고
@근배정-t9e11 ай бұрын
좋은정보너무너무감사합니다.
@JW-7 Жыл бұрын
대전은 일제시대에 떡상한 도시. 일제가 철도 놓으려고 할 때 다른 도시들은 지배층인 양반들이 철길 지나가는 게 불길하다며 반대. 하지만 대전은 양반들이 없었고 상민들이 양반들 땅에서 소작이나 하던 동네라서 큰 반대 없이 철길이 놓임. 덕분에 떡상.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청주나 충주가 교통요지가 되었을것임.
@user-tv8ny9sx5d Жыл бұрын
반대보다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겠죠 땅을 보상해줘야되는데 기존에 개발된 땅을 사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사는게 훨씬 저렴하기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떡상하듯 그 당시도 경제논리가 가장 큰 이유였겠죠 발전된 공주에 기찻길을 만드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대전에 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니
@JW-7 Жыл бұрын
@@user-tv8ny9sx5d 조선시대는 화폐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던 물물교환의 시대. 경제적인 이유보다 더 큰 건 정신적이고 풍수적인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게다가 왜놈들이 놓는 철길이 관통하다니...양반들이 펄쩍펄쩍 뛸 듯.
@JW-7 Жыл бұрын
@@킹대주 그분들도 바보가 아니고 다들 알았어요....라?...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양반들은 그냥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 같은데요. 공주니 청주니 충주니 자존심 엄청 쎈 양반동네라 "왜놈들이 놓는 철길이 관통한다고? 어림도 없다, 암! 암!!!" 했을 게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양반은 없고 상민들이 소작농으로 사는 대전으로 뚫린 것. 충주는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충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역사책 보면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쟁탈전이 있던 곳이죠.
@tpmwm65 Жыл бұрын
우리가알기로는 일제시대는 아무렇게 탄압하고 양반들이 반대하면 총칼로 무릎꿇리고 철도 놓을줄알았는대 현실은 우리가 알던 사실과 사뭇 다른가보네요
@수분-g3g Жыл бұрын
@@킹대주저기요 저 사학과인데 당시 대전 이외의 곳 가령 부여 같은 곳은 양반들의 반대가 거셌던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며 강행 가능했겠죠 실제로 양반사대부들의 반대가 일부 영향을 줬던 것도 맞고요
@jung7897 Жыл бұрын
진주시 잘 보았습니다.^^
@태상박-l5w Жыл бұрын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제 고향이 경북 상주인데 경상도 지명유래와 감영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았는데ᆢ전국 5위의 큰 고장였는줄은 몰랐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귀 채널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부산은 일제 .625 임시수도 되면서 급격히 팽창된 도시임..대구는 전통적인 대도시 오래된 거대도시다보니 인재가 많이 났고 한국동란때 낙동강전선 중심도시라 그인재들 군인이 되었고 군사정변 주역들이 되었음..
@exo10anniversary5 Жыл бұрын
그 이전에 개항장 설치되었을때 부터다
@jhsuhmail Жыл бұрын
흥미 있는 자료입니다. 당시 개성인구도 궁금합니다.
@jinjunggu4169 Жыл бұрын
당시 개성인구는 태조, 태종 대의 인구 이주 정책 및 차별(향후 100년간 과거시험 응시 금지, 과전 지급하지 않음)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약8700여명입니다. 이들은 과거제에 응시도, 과전도 받지 못하니 강제적으로 상업에 종사해야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개성의 군인, 양반 사대부들도 상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상업이 발달하였고, 대청무역에서 인삼, 홍삼 등이 유행하면서 개성은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개성송상이라고 하는데, 국제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할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후에 개항기가 되면 8만여명에 달하는 상업도시가 됩니다.
@jhsuhmail Жыл бұрын
네 그렇군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jinjunggu4169
@ctypa Жыл бұрын
이 인구에 노비나 천민이 포함되어 있나요?
@생쥐대장 Жыл бұрын
노비 천민이 80%인 국가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푸른산-v3m Жыл бұрын
@@생쥐대장조선시대 인구조사는 호패달고 다니는 사람만 했죠 노비나 여자는 포함안함
@생쥐대장 Жыл бұрын
@@푸른산-v3m 그럼 노비 천민 포함하면 조선 인구가 엄청 많았겠네요 영상으로 충분히 그시절 치고는 많은것 같은데
@푸른산-v3m Жыл бұрын
@@생쥐대장 조선초기는 천민이 많아도 지금 인구조사할때가 정조때라니까 그때는 돈많은 천민들은 양민으로 많이 돌아을것 같은데요 조선후기는 돈주고 양반도 많이 됐다는데 족보도 사고. 호패로 조사안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조사할수는 없지요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없는데
오히려 조선 때 인구분포가 고르고, 현대에 수도권집중화 현상이 심화되는걸 보면, 한국의 도시구조는 점점 퇴화하고 있네요ㅠ 조선시대 문헌들 보면서 도시계획은 어떻게 짰고, 유지보수는 어떻게 했을지 연구하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Seoulmysoul-r5d Жыл бұрын
ㅈㄲ
@user-je7bh6zr7q Жыл бұрын
그때는 sns로 서로 비교를 안했거든요... 정책때문이 아님. 지금은 서울 안살면 루저취급하니까 너도 나도 간것임..
@shinwoori84 Жыл бұрын
산업화시대 이전 농경시대에는 당연히 비옥한 평야지대와 날씨가 온화한 남부 지방에 사람이 많이 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양은 지금 북한의 평양처럼 출입검사를 하고 아무나 살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Whoamihahahah Жыл бұрын
당시는 신분제가 있었고 각 지역별 양반 세도가가 그 지역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수 있었음 반면 평민 노비는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웠음
@mugumahn6061 Жыл бұрын
당시는 농경시대. 농지가 있는 곳에 모여 살았고 지금은 현대시대 상공업이 발전한 곳에 모여 살고.
@blackstone38198 ай бұрын
구독합니다.🎉🎉
@유진곤-n5y Жыл бұрын
대전은 경부철도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였습니다. 거기에 경부고속도로가 예정을 벗어나 대전을 통과하고 호남고속도로 분기점까지 대전으로 결정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서 갑자기 눈덩이 처럼 커진 도깨비 도시입니다.ㅎㅎㅎ
@acsap-win Жыл бұрын
일제강점기 철도부설과 충남도청 이전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김일성-w3g Жыл бұрын
대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1898년 이전에 대전이랑 명칭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허허벌판 황무지 였을뿐~
@바람꽃-b1b Жыл бұрын
대전은 일제 강점기때 발달한 대표적인 도시 지금으로 보면 신도시라할수있습니다 지명도 공주군 진잠 회덕등 병합 흡수하며 호남의 곡물과 북쪽의 광물을 수송 보관하던 군수기지라 보시면 됨니다 이름도 태전 한밭 등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듯 천년의 수도 경주 호남의 중심 전주 그리고 충청의 대표 충주 등 많은곳이 입지가 달라지고있습니다 대전 이제 점점 교통의 요지을 천안 으로 이동하는것 같습니다
@hyunyoon8952 Жыл бұрын
무슨 소리 입니까? 내가 국민학고 다니던때(50년대) 교과서에 전국 4대도시가 나오는데 서울,부산,대구,광주라고 했으며 그다음이 인천과 대전 이라고 나왔고 고등법원도 서울, 대구, 광주, 대전에 4곳만 있었어요. 그이후 부산과 수원이 포함돼 6곳으로 늘었죠.
@공정분배-f8v Жыл бұрын
단군부터 한반도가 본토가 아님. 구한말 1400만명 한반도로 대이주 ㅡ 다음 검색
@AMAGASOO Жыл бұрын
5:41 왜 나주 소개에 경주 보문단지가 보이죠?
@Min-pz7vm Жыл бұрын
춫주가 두번째로 큰 도시였다는게 의외네요 ㅎㅎ 전주는 원래 조선의 뿌리에다가 곡창지대 때문에 큰도시 인줄은 알았는데... 충주가 대도시였다는게 ㅎㅎ 신기 ㅎ
@skim326211 ай бұрын
조선의뿌리는개뿔 . 전주가 어떻게뿌리냐?
@_Honganji10 ай бұрын
@@skim3262 이성계는 함경도, 족보 상 뿌리는 전주.
@silvercat38199 ай бұрын
충주는 국토개발에 정치,지역색 없이 발전되었다면 현재 대전급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운뿐만 아니라 육로의 위치 상으로도 핵심 도시입니다. 경부 고속도로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 이었을때 월악산과 속리산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로서 직선화에 아주 유리하며 좌우 상하로도 중심에 있죠
@신동일-j1f8 ай бұрын
@@skim3262 상도애들은 언제나 이렇더라. 그래야 상도지.
@skim32628 ай бұрын
난 전주가 큰도시였다는게 놀람 . 뿌리는 듣기좋으라고 하는빈말이고
@다더다다다다 Жыл бұрын
총인구는 얼마쯤 되었을까요
@강원도감자0121 Жыл бұрын
일제강점기 초기에 인구가 1200만 즈음이었음 조선 전기에는 1000만명 즈음
@blanc1971 Жыл бұрын
왜 강원도는 없는건가유?🤔
@강아지고양이-g3o Жыл бұрын
그.. 태백산맥부터 어떻게 해보시는 게..
@홍순근-i3u Жыл бұрын
거긴 호랑이 수도 였지라
@blanc1971 Жыл бұрын
@@강아지고양이-g3o 무슨말을 하는거유? 강원도의 강이 강릉,원이 원주를 말하는거라 그곳도 인구가 대충 얼마였고 특색이 무었이었는지 알고 싶었는데 강원도만 안나와서 물어본건데 무슨 뚱딴지를 같은 말을!🤔
@dembaba197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차 없으면 살기 힘들고 척박한 땅인데 과거엔 더 살기 힘들어서 인구가 적었을듯요
@blanc1971 Жыл бұрын
@@dembaba197 그건그래요. 동감합니다.
@BBakHead9 ай бұрын
강원도는 여전하네😊
@설향-h8y Жыл бұрын
약 10만명의 인구가 아파트나 빌라, 연립 주택등 공동 주택이 업이 개인 주택 단층 기와집,초가집등에 살려면 엄청난 주택 용지가 필요해서 오늘날 서울시 만한 땅이 산과 강,호수,도로,공원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집으로 채워질거 같다
@aikawa18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상놈들은 집이 없었어요 그냥 양반집 구석태기 방 하나에 개떼같이 몰아놨음. 지금처럼 집 한채 있고 사람 3~4명씩 있는 구조 생각하면 안됨
@521Qom-gv8ke Жыл бұрын
역시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짱이네요.... 충주와 전주도 대단했고...대구도 지금 6대 광역시중에서 가장 뼈대있는 찐 광역시였군요...
@마라훠궈-n2q Жыл бұрын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깔면서 전주, 충주가 몰락하고 부산, 대전이 엄청나게 떳지
@공정분배-f8v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nationalroad123 Жыл бұрын
아무것도 없던 광주가 지금의 호남의 중심도시로 우뚝 선 상황이 흥미롭다. 왜 전주가 호남의 중심도시를 되찾으려 하는 이유도 알겠고... 전주가 조선시대에 3대 도시중 하나였었구나!
@Kingisgoal Жыл бұрын
수도권 분포가 너무 심각해요... 전주 살기좋은데 3위였던거보면 그간 얼마나 집중분포와 도시 위상이 바뀌었나 알수있네요
@아즈샤라-q6z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Johnssica8 ай бұрын
충주 완전 의외!
@sudahy3 ай бұрын
*좋아요 유익하고*
@즐겁게살자-v1y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 합니다. 댓글이나 설명에 순위 간단 요약이 있었으면 합니다.
@시골버스기사4 ай бұрын
청주.나주.전주.파주.여주.상주.무주 뒤의 주들어가는곳처럼 영암.영광.영주.영천 여천.순천.김천.
@이원민-e6q Жыл бұрын
충주? 대박ㅋ
@나다라-y1p11 ай бұрын
제가 살고있는 진주시가 6위라는게 자랑스럽네요 ㅎㅎ 남강 아주 이쁩니다 놀러 많이 오세요~
@gagamal6369 Жыл бұрын
그많은 옛도시의 성곽과 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ㅠㅠ
@_Tidian Жыл бұрын
와우 신박해요 ㅋㅋ
@k_indi90 Жыл бұрын
2위가 “그 도시”이군요!
@k_indi90 Жыл бұрын
김선태 주무관님의 고장😁
@레오쓰-x9n Жыл бұрын
부산광역시는 그때로 따지면 동래부와 부산포가 아닌가요?
@꾀꼬리재백숙 Жыл бұрын
교통의 흐름이 많은 변화를 불러오지요~ 지금도 통합된 도시들이 정말 많은데~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implebest8735 Жыл бұрын
내 고향 충주, 한때 잘나갔네😢
@peachmoon8492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와 철도, 도로의 영향으로 바뀌어버린 도시..도로경제학이 틀린말은 아닌것 같네요
@clear-sky-6 Жыл бұрын
대전은 조선시대때 문화와 역사가없는 깡촌시골 지역이었다가 일제가 철도깔아줘서 인구도늘고 발전했죠
@fndpsk6758 Жыл бұрын
@@clear-sky-6 대전이 애초에 허허벌판 즉 큰 밭만 있다해서 순우리말로 한밭 이라 불렀고 그걸 한자로 쓴것이 지금의 대전임 ㅋㅋ
@효파리11 ай бұрын
잘봤습니다~ 개성 평양 신의주가 없는게 살짝 아쉽네요 ㅠ
@bastianse5754 Жыл бұрын
인구에 노비도 포함되는지...?
@Lipple_MIN Жыл бұрын
아뇨 호폐가 없으니 카운트가 안되었을거 같네요 실제 노비 백정등 포함하면 저 인구의 4~5배정도 봐야 할듯요
@동기원-x1f Жыл бұрын
논이 많은 곳은 노비가 많죠 @@Lipple_MIN
@tonyali64869 ай бұрын
평양 개성은 얼마나 살았었을까요??
@hyunmin-l9j1v Жыл бұрын
경주는 꽤 높은 아파트들이 사방으로 많이 안 도배되서 좋음
@KkK-wr4bg3 ай бұрын
재밌다...!
@이정영-v9k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는 오늘날과 행정체계가 다름 충주만 하더라도 제천단양괴산음성 등 여러곳이 충주임
@김주형-c4n11 ай бұрын
2:25 4만 746명이라고 나오고, 영상은 4만 7046명인데 어떤게 맞는건가요
@jungchoi5274 Жыл бұрын
충주 레전드네...
@DMZ_hotSum0Winter Жыл бұрын
의주, 개성 ,평양은?
@조영석-c5y9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인구수 2위가 충주라구요? 그랬었군요 ㅎ 충주시민중 한사람 으로 격세지감.. 천천히 한발 두발 그리고 세발 앞으로
@wintersports4737 Жыл бұрын
경주,전주가 옛명성을찾길. 그많은인구가 다어디로갔을련지.
@Utillity Жыл бұрын
아마 저기서 수원은 정확히는 광교산인근의 용인까지 포함하는 지역이거나, 아니면 남쪽의 화성시를 포함하는 인구가 아니였을까 싶네요. 수원자체만으로는 임야가 적어서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chuncheoncity-mayor11 ай бұрын
광교산인근은 광주고, 평택서부 화성동부에 해당되는 지역이예요. 참고로 화성서부는 남양 안산반월주변까지는 광주였답니다.
@박용삼-o4u Жыл бұрын
잘 보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불만이 많았는데 지난 이야기이지만 자부심이 좀 생기네요.
@빵집아저씨-l5k Жыл бұрын
시민들보다 유튜브 구독자가 더 많은 충주시 ㅠㅠ
@동찡-p9x11 ай бұрын
ㅋㅋㅋ
@thinkwiselyactcleverly8 ай бұрын
충주는 가본적 없는데 충주시 유튜브는 구독함 ㅋㅋ
@순수악7 ай бұрын
광역시 승격도 코앞
@P체킷4 ай бұрын
충주위엄 장난없었네요 ㅎㅎ 지금으로 치면 부산급이었네요
@eastwoodscott6024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전주, 충주 대단했구나. 지역 균형 발전 좀 하자~~~~~~~ 서울 집중 좀 그만하고. 무슨 김포 편입이야~ 뜬금없이. 지금 장난해?
@군산갈매기-u2w Жыл бұрын
광주(전남)는 족보도 없슴. 참고로 전남(광주) 제주를 행정 관할했던 전라감영 소재지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해셔 국토 균형개발 끝내야한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조선왕조발상지가 이천년 전주 임. 견훤 후백제 왕도 가장 한국적인 도시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이 답이다.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위해셔라도 지방 균형개발 국토 균형개발 서둘러 해야 합니다.
@푸른산-v3m Жыл бұрын
@@군산갈매기-u2w뭘 균형발전을 억지로 하냐? 그럼 인구 2만정도되는 군부터 살려라
@barnumeffect94222 ай бұрын
김포 시민들 스스로 부동산 값 올리려고 우리도 서울시에 편입해줘 혈안이 되어 있는 걸 어쩌라고
@사라말파라말11 ай бұрын
홍성군 소개편에서 큰 저수지처럼 보여지는 곳이 어디일까요?(홍성군 영상이 아니라 유사영상이시라는데..) 너무 예뻐서 한번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1925년 지역별 인구분포 전라도 300만 경상도 250만 서울경기인천 합 200만 그 외 충청 강원~
@finenicetree Жыл бұрын
수도권은 당시 인구가 많지않았고 과거 1세기전 전라도는 제주 진산금산과 논산일부 다 전라도땅이었네 ㅎ 물론 그지역들은 적은인구였지만 면적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군요. 인구이동을 보니 전라도에서 경상도로의 이동도 많았고 다 짬뽕됬네 산업화후 또 짬뽕되고 교통도 좋지않았을텐데 다섞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