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나라의 이름만 바꾸면 모두 똑같은 신화? 고구려 주몽, 청나라 누르하치, 몽골 칭기즈 칸의 건국 신화가 유사한 이유ㅣ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 신화 이야기ㅣ다큐프라임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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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Documentary

EBS Documentary

Ай бұрын

※ 이 영상은 2009년 8월 10일에 방송된 <다큐프라임 - 한국 신화를 찾아서 1부 건국신화의 비밀>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신화를 알고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신화가 ‘단군’이야기일 것이다. 한반도에는 ‘단군’ 뿐만 아니라 주몽과 박혁거세 등 많은 영웅들이 존재한다.
1부 ‘건국신화의 비밀’에서는 한반도의 영웅들을 불러내어 한반도의 건국신화들을 되짚어보고, 영웅들의 계보를 정리하고자한다.
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의 건국신화를 통해 고구려 건국 신화의 주인공 ‘주몽’의 흔적을 찾아본다.
우리 신화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몽골, 만주의 신화를 통해 먼 옛날의 넓고 아득했던 신들의 세상을 상상해 보고자 한다
✔ 프로그램명 : 다큐프라임 - 한국 신화를 찾아서 1부 건국신화의 비밀
✔ 방송 일자 : 2009.08.10
#골라듄다큐 #다큐프라임 #다큐 #다큐멘터리 #역사 #한국역사 #신화 #한국신화 #건국신화 #고구려 #주몽 #청나라 #누르하치 #몽골 #킹기즈칸

Пікірлер: 1 000
@kyt87
@kyt87 Ай бұрын
중국이 동북공정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중국땅에 남아있는 우리 역사 다큐멘터리 촬영이 활발했었는데 지금은... 촬영허가가 안 나오는 건 물론, 잘못하면 반간첩법으로 감방 갈 수 있음ㅋㅋㅋ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전ㄱ조는 오히려 동북공정을 옹호함.
@user-xk1rt9ld9l
@user-xk1rt9ld9l Ай бұрын
저 교수라는자도 ㅡㅡ 이미 국가인데 무슨 부족국가 운운
@user-xk1rt9ld9l
@user-xk1rt9ld9l Ай бұрын
역시 우실하!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seonz7734 한중수교 전인 1980년대나 1992년 한중수교 이후에도 한국의 방송사들이 촬영 많이 했었습니다.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user-xk1rt9ld9l 아직 국가로 인정 받은 것은 위만조선 뿐입니다. 그 이전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국가라고 말하기 껄끄럽죠.
@user-lb1bi2nz9g
@user-lb1bi2nz9g Ай бұрын
예 전 알타이신화 책을 보면, 부여, 거란, 말갈, 고구려, 몽골 등 북방지역 신화와 전설들이 다들 비슷 비슷 서로 약간의 변화만을 가진 영웅담 버전으로 퍼져 내려오는 것들이 뚜렷함.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선 수메르 신화들이 성경 속에 다른 버전으로 활용되던 것과 같은 이치.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동이족 신화죠 고조선을 중심으로
@okidoki6935
@okidoki6935 Ай бұрын
@@mariwo 동이족은 하나의 종족이 아닙니다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okidoki6935 하나의 민족이아니지만 고조선을 중심으로한 문화가 있었죠 직계 후손이 한국이구요
@okidoki6935
@okidoki6935 Ай бұрын
@@mariwo 고조선을 중심으로 하지도 않았고 여러 문명이 있었으며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사람을 동이족이라 부른겁니다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okidoki6935 동이족은 고조선이 중심이 맞습니다 명나라 초대왕도 조선 사신과의 대화에서 시를썼는데 단군왕검 서거 이래 고려와 조선이 동이를 이어간다고 시까지 썼죠
@user-gt3fb3ej8x
@user-gt3fb3ej8x Ай бұрын
뿌리가 같으니 신화도 같지...
@lookatthis18
@lookatthis18 Ай бұрын
그뿌리가 나라를 의미한거지 단순하게 우리의단군의후손이다는 아닙니다 고조선은 지금의 미국과같은 연방국이었고 우리의단군은 주지사 같은 개념입니다
@karlmarx3211
@karlmarx3211 12 күн бұрын
@@lookatthis18 뇌피셜인가요? 무슨 주지사입니까?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민족사관으로 집필하다보니 우리와 유목민족을 달리 해석하는거지, 요즘에는 원 뿌리가 같다는 가설에 무게를 주는게 사실입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건국신화에도 단군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조선의 수도가 아사달인데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아스타나입니다. 우리가 한자로 음차해서 기록하다보니 원래의 지명이 아니라 한자화된 지명이름으로 남았을 수도 있는겁니다. 카자흐스탄에 단군기념주화가 있는데 이를 고려인 후예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치부하는데 냉전을 겪으면서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보니 우리의 역사관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몽골역사에서도 우리를 친척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만 신성하게 단일민족이라는 착각은 벗어나셔야 합니다. 댁의 유전자 분석만 해도 몽골계가 상당히 섞여있을 겁니다.
@user-it4dm7rs1p
@user-it4dm7rs1p 12 күн бұрын
단군신화=게세르신화 공쥐팥쥐=신데렐라 해님달님=잭과콩나무 시골쥐와서울쥐=라따뚜이 귀신과요괴=뱀파이어와마녀 .....
@user-eb7bc7ty9s
@user-eb7bc7ty9s 9 күн бұрын
@@karlmarx3211 기원이 어딘지를 떠나서,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맞습니다. 민족이라는게 정말 혈통적인것만을 의미하는건 아니고요, 그 안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 규범, 언어 등등입니다.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고요. 유럽 국가들은 봉건제 하에서 워낙 이리저리 섞였고..
@harucui6443
@harucui6443 Ай бұрын
잎사귀에서 밑으로가면 가지에서 모이고 가지에서 밑으로가면 줄기에서 모인다 줄기에서 밑으로가면 하나의 뿌리
@polyonomata
@polyonomata Ай бұрын
고대 한국인도 북방계 문화에 속했기 때문에 샤머니즘이나 북방식의복, 흰색의 숭상같은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겠지요.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몽골, 퉁구스, 한국과는 결이 다르지만 비슷한 튀르크인들도 비슷한 신화를 공유합니다. 에르게네콘 서사시라든가, 쾨르오을루 서사시라든가, 마나스 서사시 같은 것도 보면 이쪽 신화들과의 교류가 엿보입니다.
@user-gf3ul8iq8u
@user-gf3ul8iq8u Ай бұрын
농사도 제대로 못짓던 미개한 북방 유목민족들은 수천년간 우리 민족을 학살하고 약탈해 왔으며, 심지어 몽골과 만주족은 우리를 식민지배하기까지한 민족의 원수입니다. 그런 그들과 우리가 같다고요? 약탈하고 겁탈하여 피가 섞였다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죠.
@onyvafShin
@onyvafShin Ай бұрын
그 북방계들만이 한국인도 아니고, 더 중요한건 그 부여에맥들은 뿌리나 혈통은 흉노돌궐과 다릅니다 문화 같은것이 이식 되어 올수는 있습니다
@hiouggdj517
@hiouggdj517 Ай бұрын
오늘 한국은 남쪽 신라종자
@user-cp7tl6lx6j
@user-cp7tl6lx6j 18 күн бұрын
• 인생은 하나의 치명적 통증이며 아주 전염성이 강한 통증이다. • Life is a fatal complaint, and an eminently contagious one.
@user-ej8mn8xs9x
@user-ej8mn8xs9x Ай бұрын
식민사학자들은 저런 이론을 싫어하죠 왜곡된 한국사가 언젠가는 새로 쓰여지길 기대해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식민사학이 뭔지는 아시나요? 식민사학의 최대 문제는 일본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식민사학의 핵심 문제를 일본 중심이 아닌 한민족 중심으로 저술해야 됩니다. 그러면 다른게 보일 것입니다.
@user_royisnjsosn
@user_royisnjsosn Ай бұрын
한국사는 뭔 한국사야 노예처럼 사는게 한국사지
@user-qt1fj1ti4r
@user-qt1fj1ti4r 18 күн бұрын
역사는 민족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문화 사상 풍습으로 봐야 합니다 그럼 미국은 잉글로색슨족의 역사 입니까? 다민족 연맹으로 탄생된 옛 조선은 누구의 역사죠?
@user-pr4dc5ux7b
@user-pr4dc5ux7b 15 күн бұрын
​@@user-qt1fj1ti4r 미국은 비교 대상이 아님 차라리 인디언 이라면 모를까
@user-rj6yc2ny9t
@user-rj6yc2ny9t Ай бұрын
신화 못참지!!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고대한국의 건국신화입니다 홍산문명이 고조선문명인것이죠
@user-cm7kr8rx3y
@user-cm7kr8rx3y Ай бұрын
홍산보다 백두산 유역 문명이 수천년 더 먼저 생겼습니다. 백두산에서 퍼져나가 내몽골, 산동•산서를 포함하는 지역이 배달국 문명권입니다. 고조선계 청동기가 쏟아져 나와 덮어버린 감숙성 유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환인의 고국에서 환웅은 태백산, 반고는 삼위산으로 이동해 방계 문명을 이룬 것이죠. 반고는 화하족이 자기네 신이라 받드는 인물이죠.
@AsAs-sf6fj
@AsAs-sf6fj Ай бұрын
따지고보면 우리가 쟤네 후손이고 쟤네한테서 전수받고 은혜 입은 게 맞지 단군신화부터가 하늘?에서 선진문명이 내려와 곰 토템신앙 부족을 교화시키고 다스린 이야기잖아
@user-it4dm7rs1p
@user-it4dm7rs1p 12 күн бұрын
​​@@AsAs-sf6fj 공동의 지배층이여야만 가능한 신화입니다 현제는 라따뚜이가 있죠 서울쥐와시골쥐를 합치면 라따뚜이가 됩니다 인어공주와신데렐라를 합치면 인어의전설이되지요 공쥐와팥쥐를 더하면 막장드라마가 나옵니다
@ktyinthesky
@ktyinthesky Ай бұрын
일제가 만들어준 우리역사관 이후 거의 그 내용에 변함이 없는 지금 대한민국 교과서의 낙후함에 비해 최근 연구의 결과를 반영하려 애쓴 다큐멘터리를 오랜만에 보내요. 앞으로 최근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우리 한민족 중심의 역사 기술을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ookatthis18
@lookatthis18 Ай бұрын
일제 만 역사망쳤단소리 마세요 재야도 마찬가지임
@j3459
@j3459 Ай бұрын
무슨 일제가 역사를 만등어요. 그전부터 지금도 역사는 왜곡되는데
@user-ni8qv2no1k
@user-ni8qv2no1k Ай бұрын
고조선에서는 왕을 단군이라고 불렀다죠 부여에서도 이것을 이어받아 해모수를 단군 해모수라고 부르지 않았을까요
@user-od8fk5fn5b
@user-od8fk5fn5b Ай бұрын
뭐가 모순이라는건지....환웅 단군이 각각 한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모순이 생기는겁니다! 해모수는 단군의 직위에 있었던겁니다!
@dongwk2662
@dongwk2662 24 күн бұрын
단군은 사람이 아니라 직위인 거지
@user-yj3up4db2o
@user-yj3up4db2o 23 күн бұрын
사실 단군 조선을 멸망시킨이가 북부여의 해모수일지도 모릅니다 제정일치 시대에서 왕의 시대를 연인물이 해모수 ?
@pearl_w_m
@pearl_w_m 14 күн бұрын
ㄹㅇ
@user-it4dm7rs1p
@user-it4dm7rs1p 12 күн бұрын
단군조선의 멸망이 아닌 분열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은 현제진행형일수도 있습니다 고조선은 멸망이 아닌 진행중 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합니다 고조선은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조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user-yy5pb1dx4g
@user-yy5pb1dx4g Ай бұрын
이게 절반만 맞고 절반만 틀린게, 사실 건국 신화는 원래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을수밖에 없음. 예를들면 몽골의 건국신화에서 주인공은 푸른 늑대인데 오스만 튀르크, 튀르키예의 전신인, 흉노, 돌궐의 건국 신화도 늑대에서 태어났다고 함. 그런데 애초에 흉노제국, 돌궐제국은 몽골계, 튀르크계, 이란계가 모두 연합한 세계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신화의 유사성이 강할수밖에 없음.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도 신화의 연관성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몽신화에서 주몽이 적군들을 피해 퇴각할때 자신의 검을 두 조각으로 나누고 검의 절반은 자신이, 검의 절반은 자신의 아들인 유리에게 주면서 장성하면 자신을 찾으러 오라면서 떠남.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이게우스가 아이트라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인 테세우스에게 칼을 부러뜨려 절반만 주고는 떠남. 그리고 주몽과 아이게우스 모두 검의 절반만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검의 절반을 가진 친아들인 유리와 테세우스가 찾아와서 검을 열쇠처럼 맞추고 아들로 인정함. 이런 신화가 똑같음. 이런식으로 건국신화들은 몽골같은 중앙아시아 북방제국들, 중국, 로마, 유럽, 고구려, 일본 등 유라시아 국가들이 전세계적으로 공통점이 다 있음.
@nocturna31
@nocturna31 Ай бұрын
저도 동감하는데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추측합니다. 전세계 잘사는 나라들의 학자들이 연합해서 조사한 자료를 꿰어맞춘 자료들이 나오잖아요. 우리 직계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20만년 전에 떠나, 10만년 전엔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왔고, 여기서 백인.황인이 갈라져나오죠. 동남아를 거쳐 인도네시아 순다랜드까지 와서 살다가, 5~6만년 전쯤 중국 남부, 우리나라, 일본, 북방초원까지 올라와 살았다고 하는데, 크게보면 아프리카 - 메소포타미아 - 인도및 동남아시아 - 북방초원까지 다 연결되듯, 고대 인류는 지금처럼 국경이 없죠. 다 이동하면서 역사도, 신화도 퍼져나간거 아닐까요. 우리나라 말도 인도 타밀지방의 단어와 아주 유사하잖아요. 그럼 우리 언어 체계는 농경문화를 갖었던 인도지역 일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정착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죠. 다 연결된 지구촌입니다. ㅎㅎ
@baboigosipda5681
@baboigosipda5681 15 күн бұрын
태왕비에는 추모왕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낮춰부르기 위해 사용한 주몽을 사용하는게 좀 그렇지 않나요!
@user-vi2zy8ee4u
@user-vi2zy8ee4u Ай бұрын
신화의 유사성은 결국 고조선->부여->고구려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이들이 북방 유목민들에 대한 종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종주권이 계속 이동하는 와중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만주족의 경우에도 고대에는 숙신/읍루/말갈로 불리었고요. 이들은 다른 종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 중에서 주도권을 쥔 부족의 이름을 따서 호칭된 경우입니다. 특히, 말갈7부족의 경우에는 혈통적으로 동일한 민족이나 각 부족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많이 했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이 말갈 7부족 중에서 제일 유명한게 흑수말갈이었을 뿐이지요. 고구려에 대항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6부족들은 대부분 고구려인으로 생각하고 고구려에 복속되었습니다. 고당 전쟁 당시에 말갈족이 대거 참전한 것을 보면 말갈족은 고구려를 조국으로 생각했단 말이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게다가 金(금)을 건국한 아골타의 조상은 완안 함보인데? 현재 이 완안 함보는 고려사, 금사에서 신라계 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는 경순왕의 아들 김부가 고려 귀순에 반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죠.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 이후에 김부는 청주에서 고려 귀순 행렬을 이탈하고 고려 귀순에 반대하는 청주/경주 세력들을 규합하여 금강산으로 들어간 정황이 보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고성군에서는 큰 세력이 사찰을 만들고 집단 거주지를 만든 유적이 발굴되죠.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김부와 같은 이 금강산 세력에다가 고려에 귀순해 있던 개성 인근의 경주김씨 세력 일부가 금강산 세력과 합류하여 함경도를 거쳐서 건주여진으로 진입한 정황이 뚜렷히 나오고 있습니다.
@user-rv1os3ju6j
@user-rv1os3ju6j Ай бұрын
뿌리가 같아서임.
@user-tx2kg6bp6i
@user-tx2kg6bp6i Ай бұрын
뿌리가 같은데 침략해서 죽이고 강간하고 식민지만드냐 ㅋ 말도안되는소릴하고있어 ㅋ 저들은 정복할 대상이지 친척이 아니다
@user-jc7nk7qq1f
@user-jc7nk7qq1f Ай бұрын
@@user-tx2kg6bp6i북한도 남한을 침략했다......... 이념이나 종교가 다르면 그렇게 되는거임.
@cyx0406
@cyx0406 Ай бұрын
@@user-tx2kg6bp6i 뿌리가 같은건 역사적으로 따졌을때 상고사 쯤에서 같은거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도지 전쟁이 장난이냐 병x아 자국 이익 따라 치려면 누굴 못쳐 권력 때문에 형제 부자끼리도 죽이는데
@gunwook2154
@gunwook2154 Ай бұрын
​@@user-tx2kg6bp6i 같아도 싸우고 죽이지 그게 인간사임
@jongtaikim621
@jongtaikim621 Ай бұрын
@@user-tx2kg6bp6i 동족상잔이 더 무섭지!! 저 뿌리같다는 논리도 문제인 것이 어학적으로 보면 퉁구스계말 갈라진 것보다 느리게 일본어가 갈라졌다고 하니 저런식으로 따지면 일본넘들도 같은 민족으로 봐야 하니 뿌리 같다는 말은 쓰지 말도록 함이 좋겠다
@suninno
@suninno Ай бұрын
부리야트가 한자로 불여, 부여가 된거에요. 뿌리가 같아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부리야트는 1114 ~ 1125년 사이 만들어진 몽골족에서 1189년 징기스칸이 태어나면서 몽골제국과 함께 하다가 원나라가 멸망하고 북원이 설치되면서 분리된 종족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러니 부리야트족은 기원전의 부여족과는 관계가 없는 민족이란 말이지요. 그렇다면 기원전 부여족에서 부리야트가 나왔다고 말해야 정상이지 부리야트에서 부여가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coolmini0312
@coolmini0312 Ай бұрын
18:19 억양 말투 완전 우리말이네. 한국말을 하는거 같은데 서툰 한국말 쓰는가 했음
@og0140
@og0140 Ай бұрын
한국어와 일본어 합친느낌
@user-tx2kg6bp6i
@user-tx2kg6bp6i Ай бұрын
정신병 ㅋ 말기인듯 같은 한국인인 내가볼땐 그냥 남남이고 힘있으면 정복해야될 대상들이구만
@jackdemon469
@jackdemon469 27 күн бұрын
바이칼호 인근에 사는 예벤키족은 거의 한국사투리같은 억양임 ㅋㅋ 단어중에 ~ 아리랑 쓰리랑 이란 단어를 정확이 이해하고 사용함.
@user-lunchconekted
@user-lunchconekted 6 күн бұрын
제주어
@user-xs7er9ps3s
@user-xs7er9ps3s Ай бұрын
고구려 몽골 청나라 모두 고구려 후예들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삼국사를 찾으면 절때 알수 없다 그리고 삼국사가 아니고 사국사다 가락국이 빠져 있다
@Lisana_0000
@Lisana_0000 Ай бұрын
청나라는 신라의 후예입니다..... 금나라,후금,청나라 까지 삼국의 황제의 성씨가 애신각라 입니다!
@sinj6221
@sinj6221 Ай бұрын
@@Lisana_0000 청나라는 신라계 고려인, 완안함보(김함보)가 세운 금나라의 후손이 세운 것은 맞습니다. 신라 중기부터 신라가 고려로 대체되며 멸망하는 그때까지 신라의 왕족은 김씨였고 신라계 고려인이며 금나라를 세운 김함보를 비롯하여 금나라 왕족 또한 신라 김씨와 같은 김씨이며 청나라 왕실의 성씨 또한 김씨죠. 왕실 왕족의 성씨는 김씨지만 왕위에 오르면 성을 바꿔 사랑애,새신,깨닫을각,그물라를 써서 애신각라라는 성을 썼습니다. 신라는 새신에 그물라 즉 청나라 왕족과 청왕실은 신라의 후예라는 것을 왕의 성을 바꾸면서 까지 세상에 각인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청나라는 신라계 고려인의 후손들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과 같습니다. 그럼 청나라 귀족들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드는데 청나라 귀족들은 고려 초기 신라의 충신들이 고려를 떠난이들의 후예들만이 아닙니다. 멸망한 발해의 고구려계 유민들과 규합하여 여진족이 발생했고 그들이 힘을 합쳐 중원을 탈환했던 것이기에 고구려의 후손이라 말하는 것도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닙니다. 모든 나라의 주춧돌은 백성들입니다. 청이라는 대제국을 건국함에는 신라계 고려인들의 통솔력도 필요했겠지만 훌륭한 자질을 가진 백성들의 존재 또한 매우 중요하며 그 백성들이 고구려계 발해 유민과 규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그들에겐 동족의식이 매우 강했기에 그렇게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다고 볼수있는 것입니다.
@user-ul6ze7hj4b
@user-ul6ze7hj4b Ай бұрын
금나라 청나라 모두 고구려 후예입니다 잘못된 역사관 바로 잡아야 됩니다
@history2780
@history2780 Ай бұрын
거란과 여진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user-cm7kr8rx3y
@user-cm7kr8rx3y Ай бұрын
​@@Lisana_0000신라는 고구려 아니 조선, 부여의 후예입니다. 고구려와 동기간입니다. 고구려의 후예니 신라의 후예니 가를 필요가 없어요. 부여의 후예입니다.
@user-en2ln5iu9d
@user-en2ln5iu9d Ай бұрын
동이 구이 구리 고리 고려 구려 부려 부여 다 같은 음차라고 봅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달라졌을 뿐.
@user-yj3up4db2o
@user-yj3up4db2o 23 күн бұрын
저도 그런 의문을 부여 고려 구이 동이족 9개라 구이 구리 고리 구리 구려 고려 부여 다같은 음차일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우리가 쓰는 나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의 우리가 구이에 나왔다는?
@user-op3om1zx2b
@user-op3om1zx2b Ай бұрын
동아시아는 중국 제외하면 전부 같은 유목민족 뿌리에서 갈라졌다고 보는게 맞을 듯. 언어적으로도 유사하게 연결되어있고 신화도 같은 줄기에서 변형만 된 케이스라고 봄.
@user-iz7wy7pe6q
@user-iz7wy7pe6q Ай бұрын
고구려, 부여 모두 유목하고는 상관없는 농경민족
@user-iz7wy7pe6q
@user-iz7wy7pe6q Ай бұрын
최근 DNA 연구나 언어 관련 논문만 봐도 요서지방의 농경민족에 의해 한반도, 만주 일대의 문화가 분기됐음. 그 전에 요서지방의 농경민족은 동남아를 거쳐 중국화북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user-nt1en9ln8b
@user-nt1en9ln8b Ай бұрын
​@@user-iz7wy7pe6q대체적으로 유목민족이 세력을 규합해 농경민족을 침략하고 지배계층으로 군림합니다. 중국 고대사를보면 대부분의 역사가 유목민의 농경민 침탈의 역사입니다.농경민족의 한족이 몽골 여진등의 왕조의 지배를받습니다. 부여 고구려또한 마찬가지아닐까요?
@user-iz7wy7pe6q
@user-iz7wy7pe6q Ай бұрын
동아시아에서 유목민족이 동북아시아로 침투한건 2200년전 흉노에 의해서에요. 4000년전 속작 농경문화와 무려 2천년 격차가 납니다. 동남아->중국->요서->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문화의 전파경로와 엄청난 시간차가 있죠. 오히려 만주 쪽의 농경문화가 고아시아나 몽골초원으로 전파된겁니다. 물론 코카서스 계통의 유목민족의 역사는 굉장히 깁니다만 그게 동북아시아쪽으로 직접 전파되지 않았고요.. 황백인 혼혈문화라는 흉노에 의해 2200년전에서야 겨우 동북아쪽에 영향을 주게됩니다. 서주시대 이후로 동아시아가 급격히 가물어져 예전의 농경민족이 유목민족으로 바뀐데에는 흉노의 영향이 크긴 했겠죠. 다만 그게 우리민족의 원류라는 발상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얘깁니다. 환빠들 주장이죠
@user-jt8xh2ir5d
@user-jt8xh2ir5d Ай бұрын
전세게에서 유목민이 문명을 이룩한적이있을까요 문명을 이룩하려면 농경 정착생활을해야하
@hochaesun6673
@hochaesun6673 Ай бұрын
다 같은 하나에뿌리 조상님
@bsk6635
@bsk6635 Ай бұрын
청나라의 신화인 세 선녀 이야기의 장소인 Bukuri Alin 의 좌표는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프랑스 당빌의 지도를 보면 지금의 흑하 시에 해당하는 곳에 Poccore Alin 이라고 포고리산의 이름이 잘 적혀 있습니다. 그 옆의 Bulhuri Omo 도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자로는 포륵호리 호라는 호수 입니다. 경도와 위도도 옛 서적에 잘 적혀 있습니다. 세 선녀의 이름도 자세히 흠정만주원류고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호수에 세 선녀가 내려 왔는데, 새가 주는 열매를 먹은 막내 선녀가 아이를 낳은데 그게 청조의 시조입니다. 만주족의 시조. Bukuri Alin 즉 포고리 산과 장백산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홍타이지가 억지로 갑자기 연결시켜 버렸습니다. 가짜 역사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강희제가 또 억지로 그 장백산이 백두산이라고 역사를 왜곡하여 버렸습니다. 지금 방송에 나온 원지라는 연못은 거짓 장소입니다. 강희제가 조작한 장소입니다. 조선의 땅을 빼앗기 위해 만든 조작입니다. 결국 조선은 당시 압록강 이남의 땅을 청에게 빼앗깁니다. 당시 압록강은 지금의 백두산 북쪽에 있었습니다. 현재의 압록강 이름은 강희제 당시에는 대령강이었습니다.
@Oppaanessa
@Oppaanessa Ай бұрын
방구석작가님 소설 잘 읽었습니다
@loveasskim
@loveasskim Ай бұрын
​@@Oppaanessa 응. 판타지 대댓글 잘 봤어.
@user-dk9cs2rj4k
@user-dk9cs2rj4k Ай бұрын
요즘도 이런 소리 하는 사람이 있구나
@user-xn8en6sp2c
@user-xn8en6sp2c Ай бұрын
좋은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가지 의문이 당시 강대한 청이 약소국인 조선을 뺏기위해 강이름, 산이름을 바꾼다? 좀 신빙성이 빈약합니다. 만주원류고는 청의 조상이 신라인이라는 것인데,, 이는 나름 근거가 있는것으로 봅니다.
@user-dk9cs2rj4k
@user-dk9cs2rj4k Ай бұрын
@@user-xn8en6sp2c 별로 근거 없음
@user-wg7fd2im1x
@user-wg7fd2im1x Ай бұрын
같은 조상을 가졌죠. 최근 고고학 연구 결과에서는 하가점 하층 문화가 소빙하기 이후 약 9000년전 동아시아 문명 형성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어요.
@lookatthis18
@lookatthis18 Ай бұрын
같은조상보단 같이 살았던 연방체국가입니다
@dri13829
@dri13829 Ай бұрын
@@lookatthis18 아니 그 당시에는 지금 같이 우리가 아는 민족 분화가 발생 하기 전이에요......... 그나마 당시 기록으로 남아 있는 북중국 ~ 동북 지역 까기 내에 있던 건 예족, 맥족 뿐이었음. 님이 생각하는 것 같은 제민족 연합이 되는 건 흉노의 붕괴와 위만 조선 멸망 이후 정도임.
@j3459
@j3459 Ай бұрын
바이칼에서 만년전 역사가 시작합니다. 인구증가하고 밑으로 내려와 동서남북으로 퍼졌죠
@NEG2357
@NEG2357 Ай бұрын
브라야트..... 부여스럽다.... 아바이게세르도 이름자체가 친근하고.... 풍속도 언어도 친연성이 크다던데...
@Magicland888
@Magicland888 Ай бұрын
오늘날의 한자독음을 보고 닮았다고 여기지 마셈. 당시 한자 독음으로 부여는 바라로 발음되었음.
@FirstClassStar
@FirstClassStar Ай бұрын
@@Magicland888 당시 부여인이세요?
@og0140
@og0140 Ай бұрын
아바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와 같이 쓰이는 말인데 저기 신화에서 시조를 아바이라고 하네요. 부리야트..아마도 1대 환웅천왕 거발환의 아들 2대 환웅천왕 거불리를 말하는걸지도..
@Magicland888
@Magicland888 Ай бұрын
@@FirstClassStar 발음 재구도 모르냐? 지금 발음 그대로 과거에도 발음되었을 것 같냐? 기원후 3세기의 중국어에는 성조가 없었던 건 아냐? ㄱ와 ㅎ와 ㅋ의 구분이 우리 말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던 건 아냐? 고구려가 아니라 사실 '나라 이름 리'자로 고구리로 발음해야 하는 건 아냐?시대에 따라 사람이 쓰는 말도 달라지고, 이는 지금 수준의 자료로도 충분히 재구할 수 있는거다. 제발 모르면 네 저능한 지능으로 모든 걸 네 수준으로 떨구지 말고 알려고 해라.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og0140 현재의 부리야트는 몽골제국 시기에 갈라저 나왔습니다. 지금 부리야트족은 몽골제국의 역사와 같은 상황이라서 기원전으로 따지기 어렵습니다.
@user-qw7ht5nx3n
@user-qw7ht5nx3n Ай бұрын
청나라, 징기스칸의 몽골제국 그리고 우리나라 ᆢ모두 같은 동이족이라고 하겠다.
@springbeom9439
@springbeom9439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중원 동쪽에 사는 사람들 모두 싸잡아서 동쪽 오랑캐라고 낮춰말하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og0140
@og0140 Ай бұрын
@@springbeom9439 夷의 원래 뜻은 큰활을 메고있는 대인배를 뜻하는 말이었어요. 항상 동이족을 동방에 사는 군자들의 나라라고 칭송하다 지들이 인구수도 늘어나고 땅도 넓어지니 그때부터 오랑캐 취급하며 夷를 오랑캐라는 말로 둔갑시켜버렸죠.
@user-do6vw2jk5v
@user-do6vw2jk5v Ай бұрын
@@springbeom9439동이족 원래 뜻 찾아보고 씨부려 ㅋㅋㅋ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springbeom9439 사실.... 서융, 남만, 북적은 낮춰 부르는 말이지만 東夷族(동이족)이라는 용어는 존경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springbeom9439 고대시대에나 중세시대에 활은 아주 중요한 병기였으니까요. 동쪽에 있는 활을 잘 사용하는 민족이란 의미는 상당한 존경의 의미가 됩니다. 한국은 신라/고려시대 때 까지도 궁병으로 대승을 한 경력이 많았습니다.
@user-nc5zt9ig8g
@user-nc5zt9ig8g Ай бұрын
부리야트 게세르= 부여 겨례 란 말인가?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현재의 부리야트는 몽골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바이칼호로 이주하였습니다. 부리야트의 역사는 몽골제국의 역사와 동일합니다.
@gimagim7208
@gimagim7208 Ай бұрын
부리야트가 부여 맞는것. 같아요..몽골에도 고시레라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어요
@lookatthis18
@lookatthis18 Ай бұрын
야트. 이트 이런게 복수형. ~들 이란 뜻이라 들었습니다
@user-nc5zt9ig8g
@user-nc5zt9ig8g Ай бұрын
@@lookatthis18 그렇군요 전라도에서도 어떤무리들 지칭할때 야들이냐? 야들이여? 이러는데 남부여가 백제고 백제 왕족성이 부여씨라더니ㅋㅋ 충청도 사람들도 야들이고마안 이러지 않나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lookatthis18 경상도도 그래요.
@Cresent999
@Cresent999 24 күн бұрын
아바이-아버지 게세르 ㄷㄷ
@undaunted3202
@undaunted3202 Ай бұрын
역사는 써여진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 땅의 역사선생들은 인면수심을 가진 자만 남았다.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그들 대부분이 전ㄱ조라는 조직의 조직원이지요.
@user-lg3fs9wm9h
@user-lg3fs9wm9h Ай бұрын
주몽 칭기즈칸 누르하치의 조상의 고향이 북만주 헤이룽장 성 그러니까 비슷할수 밖에
@Gogury
@Gogury Ай бұрын
주몽은 만주가 아닌 몽골초원입니다 지금도 바이칼호수에 부리족(부여)이 살고 있읍니다. 고구려 는 몽골초원에서 시안으로 내려와서 지금의 북경의 자리를. 잡고. 대륙을 호령하던 천자국이였죠
@user-rq1rf2bf5j
@user-rq1rf2bf5j Ай бұрын
​@@Gogury책보고 지지자는 나가 여기서 ㅋㅋ
@Itttae
@Itttae Ай бұрын
@@user-rq1rf2bf5j 명백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눈감고 장님시늉을 에휴,, 그런다고 진실은 변하지않아요
@Magicland888
@Magicland888 Ай бұрын
​@@Gogury오늘날의 한자 독음을 두고 옛적의 한자 독음도 같았을 거라 생각하지 마셈. 지금은 부여로 읽히지만, 과거에는 바라로 읽혔음.
@user-dt4qo5ij5m
@user-dt4qo5ij5m Ай бұрын
@@Itttae 가져와봐요, 증거를 고고학적 증거가 뭐가 있습니까
@joonhojeon1262
@joonhojeon1262 Ай бұрын
아바이 게세르칸 은 어버지 거서간 이라는 뜻입니다.
@jhd3976
@jhd3976 Ай бұрын
그 게세르가 유럽에선 황제를 뜻하는 카이사르가 되고 카이사르는 시저가 되는 것 입니다
@MomitoSeo
@MomitoSeo Ай бұрын
​@@jhd3976오버 좀 하지 마시오. 뭐 비스무리한 건 다 갖다 붙이네. 카이사르 가문의 이름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는데 황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카이사르 본인은 조상이 포에니 전쟁 때 적의 코끼리를 죽여서 코끼리를 뜻하는 무어의 말 Caesai 에서 따왔다는 걸 좋아해서 실제로 자신의 동전에 코끼리를 새겨넣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비교언어학에서 예전에 한 때 비슷한 음가를 비교하며 친연성을 주장하던 사조가 있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그 기법은 폐기되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도 다 똑같은 주장이 가능하다. 또한 지구 반대편 마야와 영국인도 연결지을 수 있다.
@brgb90
@brgb90 Ай бұрын
​@@MomitoSeo음가 비교를 부정하면서 카르타고 언어랑 음가비교를 하며 코끼리랑 연관 짓는 논리 지리네 ㅎ.ㅎ 국평5 대단하다 대다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brgb90 저게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brgb90
@brgb90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그쵸 국평5니깐요 ㅎㅎ
@user-gt3fb3ej8x
@user-gt3fb3ej8x 18 күн бұрын
거서간이 케사르칸를 한자로 음차한 단어죠...
@user-ei7cc5ig7i
@user-ei7cc5ig7i 3 күн бұрын
만주가 지금의 만주와 다름 당시 만주는 흑룡강 북쪽 벌판과 내몽골과 홍산 그리고 북쪽 흑용강 서쪽으로 흐른 강줄기 방면 적색토가 있는 벌판까지,(이곳이 주몽의 고향이자 징기즈칸의 고향이기도함) 전부만부임 그리고 이전에는 몽골에 몽골이 존재해본적이 없었고 북쪽으로른 전부 부여와 옥저 영역이였음 옥저는 바이칼호 동쪽 동남쪽 동북 으로 만주와연해주 옥츠크해 캄차가반도 주변등이 전부-옥저영역이 였고 (옥저는 동옥저 서옥저(해란강,대륙의 소금강) 남옥저 (서쪽만주 아래서 소금생산을함 ) 그리고 북옥져 캄차가 흑룡강 북쪽 걸판과 캄차반도 주변 캄차카 반도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 옥저밖에 없었으며 몽골중앙 동쪽으로는 동부여 바이칼 북쪽으로는 북부여(바이칼 북쪽의 온달족들도포함 바이칼 바로 북쪽이 윶판의 중심구역이였고 순환과 교차로 역활도 동시에 했으며 / 윶판 서쪽이 알타이쪽과 티벳방면이 였고 이전에는 사막이 아니라 매우 큰 호수가 있었음) 몽골 중앙 서쪽으로는 서부여가 있었고 이들은 부여천왕 자식이 아버지 천제단군(고조선 말기때 북쪽으로 올라간 고조선 말기후 마지막 단군)에게 구테타를 일으켜서 천자가 될때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다른 곳으로 떠남 그리고 서부여에 살던 사람즐이 상당수 서쪽유럽으로 떠났고 바이칼 바로 아래 주변으로는 쿠다라국( 백제) 있어고 고마(고구려) 부리(부여)도 있었고 이때 이들이 각각 트러블이 생기게 됨 (어째거나 부여는 진시왕을 제후국으로 두웠으며 진시황은 부여의 제국으로 유지 되었고 부여를 천자국으로 불러왔음 /내몽골에도 부여가 탄탄 자리잡아 있었는데 성들도 축조 되어 졌으며 (이후 이곳들은 고구려에게 다 넘어가게 됨 감숙성까지 고구려에게 넘어가게 됨/ (수나라는 양쯔강 너쪽 남쪽에 있었으며 양쯔강 바로 북쪽에 고구려가 성을 축조해 놓고 유지하며 수나라를 감시체제로 유지하면서 제후국으로 삼아서 유지됨) 그리고 본래 진나라 와 한 중시 바로 동서남북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해 있었으며 이곳은 치우천황때 동쪽 태백족(한민족) 사람들을 대게 이동시켜 유지하면서 수원(물줄기 첫시작지) 삼위를 보존 관장유지케 유지했는데 대륙을 순환 횡차할때 헌원이 이곳을 쳐들어 가서 이곳 태백 무리들은 내쫒게 되었으나 이후 다시 복구하다 오랜세월이 흘러서 동쪽으로 오게됨 ■그리고 진시왕릉으로 알려진 것은 진시왕릉과 아무상관이 없는 단군릉임 본래 그 곳을 외경이라 하며 그 외경을 묘자리로 삼와 왔음 묘자리는 / 옛부터 왕묘는 내경에 쓰지않았음 ----------------------------------------------------- 그리고 산둥반도에 황화물결이 지금처럼 북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흘렀는데( 이곳에 아주 큰 호수가 있었으며 포구가 있었으며(8개 핵심 포구중 1곳 =포구마다 육부육촌을 배치운영됨/ (대야미라 불렸고 옛부터 발해라 불림 발해는 이곳을 말함 이후 호수가 점점 작아지더니 없어지게 되었고 명칭만 남게 되다 삼국시대 이후는 점점 잊혀지게됨 어째거나 이곳을 옛부터 모두들 발해라고 불러왔고 그렇게 기록되어져있음 신시회+ 조시회뿐아니라 각 담로들이 해시회때도 각-포구들의 모임 이것을 팔관회라함/애초 불교와 상관없음) 이곳은 발해 의 북쪽에서 주관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리고 산둥반도을 엿부티 제주도라 불러왔으며 헌재 제주도 명칭은 후조선때 지우진 거임 ■산둥반도 동쪽바다 장도는 (장도와 인천 사이) 평지 넓은 주변일대가 오리지널 (평양)지명 이였으며 다 바다에 잠겼지 이후 산둥반도 서쪽으로 살수강(황화강)북쪽으로 서평을 삼게되며 그 뒷쪽으로는 마자르 개마산이 있게됨 그서쪽 으로른 태왕들의 무덤터 (장안)이 있는데 이것은 장안 워취를 화족들이 왜곡이킨 것고(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같이 함세해서 왜곡시켜온것임 /실제장안은 3곳으로 유지되었는데 =실제 장안위취는 한중시 북쪽의 북잠안 한중시 남쪽이 남장안 형태로 유지됨 그것은 애초 장안은 티벧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였다. 당시 티벧은 사막이 아니라 큰 호수가 유지되었으며 산둥반도 동쪽 서해에서 비롯된 월지국도 그 곳에 멀티해서 유지함 동쪽에서는 본래 해국(태양국)으로 유지되었다/서쪽에가서 월지국으로 유지하게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카스피해근처에 멀티화해서 유지하다 서유럽 바다 끝 방면 섬에 유지하게 됨
@kevinhuxley9252
@kevinhuxley9252 Ай бұрын
@user-rs4zh9uo8i
@user-rs4zh9uo8i Ай бұрын
부리아트 몽고리 고구리 고리 애신각라
@user-jz1ri2ep6p
@user-jz1ri2ep6p Ай бұрын
알을 가르고 하강했다? 난생 천손강림 신화는 독특하네요. 보통 난생은 남방 신화의 특징으로 얘기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보군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난생은 남방 신화가 아니라... 기존의 세력과 차별하여 독자적인 세력화를 위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압니다. 신라 박혁거세 신화에 나오는 알이나 추모왕 신화의 알도 독자적인 노선을 의미하지요. 보통은 북방 유목민 신화에 많이 나오는 것인데요?
@intelamd3076
@intelamd3076 Күн бұрын
난생설화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태생으로 표현하면 아무런 차이점이 없으므로 지배계층의 신비함이 없지요...그런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서민들 입장에서는 우리 왕족은 정말 특이한 존재들이구나 라고 여론조성하기가 편해서 난생신화는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조금씩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서 일부시기에는 편두를 해서 지배층만 특이하게 보이는 문화도 나오는데 이 편두문화가 그리 오래토록 나오지 않습니다. 잠깐 유행처럼 나왔다가 사라지죠...제 짧은 의견으로는 아마 억지로 편두로 만들려고 하닥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영구장애를 당하거나 해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해서 짧게 유행처럼 사라진것 같습니다.
@cyx0406
@cyx0406 Ай бұрын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 내려온 유목민이 공통 조상이기 때문이지
@sicpimpmania9266
@sicpimpmania9266 Ай бұрын
ㅇㄱㄹㅇ ㅂㅂㅂㄱ
@user-nq4ys4ms8z
@user-nq4ys4ms8z Ай бұрын
고조선이 아주 강성했기에 가능한 일
@nature_sign
@nature_sign Ай бұрын
게세르 신화의 이동경로가 티베트-몽골-부랴트임
@mhjb0034
@mhjb0034 6 күн бұрын
2천년전, 천년전, 오백년전
@modugasarang4988
@modugasarang4988 Ай бұрын
동정녀 마리아가 빛을 받고 예수를 잉태한 것도 같은 신화인데 혹시 동아시아의 저런 신화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동까지 전해진 것인가 ? 하는 추측도 드네요
@user-ex7oz4xj1n
@user-ex7oz4xj1n Ай бұрын
오 그렇네 주몽어머니가 그랬지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실제로는 사생아 였는데 그걸 미화하려면 결국 어머니가 동정녀가 되어야 하니까요.
@user-hf1sq9dx1r
@user-hf1sq9dx1r Ай бұрын
단군은 직책이라 한명이 아니니 해모수가 고조선에서 단군직을 했던거라면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면서 단군의 아들인게 모순이 아닌게될듯...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정확히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만들어 질 당시에는 단군 직책은 유명무실해 진 상황이라서 거의 지방에서 반란이 들끌었죠. 해모수가 나왔을 때 즈음에는 이미 제어 불능이라 단군이라는 직책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러니 부여의 동명왕 신화가 나오게 되었고요. 동명왕이 건국한 국가가 고리국/탁리국/색리국 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 즈음에는 이 고리국/탁리국/색리국에서 지원군이 파병되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고리국/탁리국/색리국 군대가 위만조선 영토로 진입도 하기 전에 위만조선이 멸망해 버리자 그렇게 출진한 고리국/탁리국/색리국 세력은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군 병력을 늘렸을 것입니다.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 한반도로 이동하여 3한 중에 진한(경상도)에 거주하게 된 위만 조선 유민도 있었지만...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실질적으로는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 고리국 군대와 연합하면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기원전 75년 경에 한나라는 현도군에 고구려현을 설치하여 방어 전략에 돌입하게 됩니다.
@user-uw6pi2or6s
@user-uw6pi2or6s Ай бұрын
단군이 이름이고 왕검이 직책이라는 설, 단군은 제사장이고 왕검은 정치와 군사장이라는 설도 있지요.
@user-jb1fh6hh1j
@user-jb1fh6hh1j Ай бұрын
17:39 몽골신화 - 남편 없이 세명의 아들을 낳은 알랑고아
@user-qv2gz5mb9s
@user-qv2gz5mb9s Ай бұрын
심지어 주몽조차도 부여 건국자의 얘기를 그대로 베낀 거ㅋㅋㅋㅋㅋㅋㅋㅋ
@j3459
@j3459 Ай бұрын
이양반아 제발좀 공부좀해요
@user-qv2gz5mb9s
@user-qv2gz5mb9s Ай бұрын
@@j3459 알고 쓴 거야ㅋㅋㅋㅋㅋ 우리가 아는 주몽 얘기는 고구려 시조의 얘기가 아니야 무식해서 용감하네ㅋㅋㅋㅋㅋ
@intelamd3076
@intelamd3076 Күн бұрын
그게 바로 부여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부여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 아닐까요? 부여의 건국설화를 고구려가 그대로 베끼다시피 차용했고, 백제는 아예 대놓고 충남 부여를 도읍으로 삼아서 이름도 "부여"라고 칭한거죠.. 그리고 왕족 성씨 또한 부여씨를 새로 만들고.... 즉, 부여라는 국가를 백제가 직속으로 계승하겠다는 선언같은 의미이죠... 제 주관적 생각은 부여의 일부 세력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고, 고구려의 일부 세력이 빠져나와서 백제를 건국한 것이지만 여전히 국가의 출발점은 (북)부여에 두겠다는 헌법 전문을 완성한 것 아닐까요?
@user-ed5qz7xe4r
@user-ed5qz7xe4r Ай бұрын
다같은 동이족 이라는 겁니다.
@Vinoi
@Vinoi Ай бұрын
고구려라고 부르는 나라는 실제로는 [고구리]이고 장수왕 때 [고리]로 국명을 변경합니다. 조선 시대까지도 [고리]라고 발음했습니다. 그리고 고리는 고대에는 [맥고리(예맥족에서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 + 고리)]라고 불렸다고 발음법까지 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맥고리(고구려), 몽고리, 말갈, 거란(고리), 모두 [음차]가 같죠. 한자는 기록과 분별을 위해서 붙인 것이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같은 [북방기마민족]이고 실제 사서 기록을 살펴보면 [뿌리(부여도 고려와 마찬가지로 부리로 읽어야 맞습니다)]가 같다고 여겼습니다. 태무신(고구려 대무신왕), 오고타이(부여 위구태), 부리야트(부여, 부리), 홉습골(흘승골, 홀본, 몽고리 부리야트족이 사는 곳). 시조도 같고 민족도 같고 장소도 같죠. 그래서 태무신이 본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많습니다. "칭기즈칸이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는 논란까지도 있었습니다. 여튼 우리 모두 부리(부여)에서 시작한 민족입니다.
@user-di7wd3mu8j
@user-di7wd3mu8j Ай бұрын
장수왕 이전부터 고려라고 했고 고구려와 고려를 병행되서 불렸다고 했어요 장수왕은 정식화 했을뿐
@kitchendesigner9542
@kitchendesigner9542 Ай бұрын
​@@user-di7wd3mu8j려 자는 나라 이름으로 쓰일때는 리 자 발음입니다 나라이름일때는 金 금이고 사람이름일때는 김 金 인것처럼요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user-kr5tz5uc7s 뭐가 조롱인가요? 몽골 지원자는 또 뭔가요?
@user-hk8px4bt8r
@user-hk8px4bt8r Ай бұрын
고려에서 코리아가 나왔다면 어색한데 고리에서 코리아가 나왔다면 쉽게 이해 가 됨. 어쩌다 자기 조상 나라 이름도 왜곡 해 부르는 나라가 되 가지고 슬픈 일이다 . 역사 왜곡 하는 기존 주류 역사학자들 다 정리 해야 한다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제 댓글이 몽골지원자를 답하신분 보세요. 모든 몽골족의 어머니가 바로 알랑고하 입니다. 그리고 알랑고하는 고주몽의 친 딸입니다.
@user-ss9fv6mv6c
@user-ss9fv6mv6c 10 күн бұрын
용사물은 못참지
@miro3715
@miro3715 27 күн бұрын
단군조선, 고구려 기원전 발생한 국가인데..우리 역사에 영향 받았나보네
@user-du2fl6vh2d
@user-du2fl6vh2d Ай бұрын
백제의 담로또한 중국 여러군데에서 발견됐었음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건 모르겠지만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담로를 다무로 라고 하고 일본 열도에서는 봉건 영주를 다이묘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BourbonPeat
@BourbonPeat Ай бұрын
아무관계없어요. 다이묘 = 클 대, 이름 명 하사받아 본인 이름 (소유권)이 붙은 영지를 많이 가진 유력자 => 이후 특정 지역의 징세권을 가진 실권자를 뜻하게 되었어여. 담로랑 무관.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Ай бұрын
@@BourbonPeat 음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cyx0406
@cyx0406 Ай бұрын
@@BourbonPeat 고유어를 음차표기 한건지 훈으로 그냥 읽어야하는건지 구분을 누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intelamd3076
@intelamd3076 Күн бұрын
부여, 고구려, 백제 모두 북방쪽에서 건국되었기 때문 아닐까요? 비정할수는 없지만 추후 북부여, 동부여라 부른 것을 보면 북서쪽에 있다가 점점 동쪽으로,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부여세력의 일부가 아래로 내려와서 건국한게 고구려이고, 고구려 세력의 일부가 아래로 내려와서 건국한게 백제(처음엔 십제)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북쪽에 있다보면 필연적으로 유목민세력과 싸워야 하고 중국쪽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전쟁에서 보다 더 안전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도 수도가 지속적으로 남하한 것을 보면 중국쪽 세력들에게 계속 시달리다 보니 두만강, 압록강 이남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한반도 북방에서 건국되었으나 중국측 세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면서 남쪽으로 내려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냥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arise3873
@arise3873 12 күн бұрын
다 비슷할 수 밖에 없지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니까 요즘 드라마 스토리 다 거기서 거기네 하는것과 같은것
@hoonsong6615
@hoonsong6615 26 күн бұрын
후반부 등장한 중국전문가 이야기가 중국의조선족. 이라고 칭하는데 오늘날 중국 조선족들이 원래 중국땅에 살던 민족으로 보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게 진실인지 아님 일제시대 만주로 건너간 한인들이 중국혁명이후 조선족으로 불렸던게 맞는건지 급 궁금합니다😅
@mangwonfish
@mangwonfish Ай бұрын
해모수의 딸은 농사짓기위한 물을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농경문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
@user-ex7oz4xj1n
@user-ex7oz4xj1n Ай бұрын
하백아닌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하백은 물의 신입니다. 그리고 물을 다스린다고 하여 농업과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해륙사관을 적용하면 고고학에서는 한반도/산동반도/요동반도와 연결된 해상 무역이 입증되거든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이미 기원전에 해상무역이 입증되고 있으니 이렇게 보면 물을 다스린다는게 꼭 농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mangwonfish
@mangwonfish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꼭 농업입니다
@user-vy3wc5gw6g
@user-vy3wc5gw6g Ай бұрын
@@mangwonfish 그건 님 생각이고요. 고대의 해양 무역은 근해를 돌아가면서 강을 타고 내륙 깊숙히 까지 들어와서 무역했습니다.
@seonakwon6889
@seonakwon6889 Ай бұрын
시베리아 브리야트, 몽골(원), 만주족(청) 그리고 우리나라 예맥 부여 -고구려, 일본 야오이 언어도 그렇고 유전적으로도 가까운거 보면 한반도 북쪽지역에 홍산문명에서 고조선(동이족) 이전이든 이후든 갈라진 4촌들 같음.
@user-gt9fv5fu4y
@user-gt9fv5fu4y 7 күн бұрын
고조선과 고구려 강역은 거의 겹친다...지도를 보여주지 않고,...말로 때운다...
@unionskhynix7424
@unionskhynix7424 26 күн бұрын
같은 민족
@thatsnotcool007
@thatsnotcool007 Ай бұрын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얘기 중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이야기를 기억하여 거기에 자신의 정통성을 부여하니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하게 돠는 것. 신약 성경 예수 이야기와 이집트 오시리스 이야기가 유사한 것도 그런 이유다.
@intelamd3076
@intelamd3076 Күн бұрын
바알신도 성경에 나오는 것 신과 거의 판박이로 똑같음....그리고 모세설화는 너무 많이 리바이벌 되어서 사실 성경의 모세는 매우 후대에 베낀 내용 같음...
@uolran
@uolran Ай бұрын
아바이 게세르? 아바이 순대? 아버지 게세르? 한민족 이동의 역사...
@jackdemon469
@jackdemon469 27 күн бұрын
부리야트 - 부리 민족 이란 뜻임. (트, 이트 = 카자르족의 복수형을 뜻하는 조사임. 케레이트 = 케레(까마귀) + 민족 이란뜻이 됨) 몽골이나 카자르스탄 등 유목민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언어현상임 고착된 언어가 아니라 교착어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영향을 받음. 송까르( 카자르 어, 매) = 송흘(몽골어. 매) = 송골매(한국어) 한국어도 교착어임. 한겨레 = 캉(카자르어 크다) + 케레(카자르어 까마귀) = 큰 까마귀( 즉, 고구려민족임) 고구려의 상징이 삼족어 = 우리만 있을까요? 천만에 카자르스탄의 카자리안들, 몽골인들. 유태인들 까지 공유함.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단하나,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바이 게세르도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다. 게세르란 이름도 세계적으로 아주아주 많습니다. 거서관(음차. 신라) - 게세르(카자르) - 케세르 - 챠르(러시아) - 카이사르(이탈리아) - 카이저(독일)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봅니다. 모두 최고 권력자를 뜻합니다. 우연일까요? ㅎㅎㅎ 아닐껄요.
@H2CO3_h2co3
@H2CO3_h2co3 19 күн бұрын
구이족 형제다 세 사람 다 같은 뿌리
@user-qx5mr3vu3l
@user-qx5mr3vu3l Ай бұрын
부리야트 부리야의 복수형 즉부리야들이란 뜻이며 부리야족이세운나라가 부여 불여국이다 부여에서 고구려가나왔으며 신라의박혁거세도 혁 게세르란뜻임
@Courteous0809
@Courteous0809 Ай бұрын
칭기즈 칸의 본명인 테무진이 바로 고구리 초기 정복군주이자 이름값 제대로 했던 대무신(큰 전쟁의 신)왕의 대무신입니다.
@onyvafShin
@onyvafShin Ай бұрын
우리는 몽골인이 아니에요 ;;
@Courteous0809
@Courteous0809 Ай бұрын
@@onyvafShin 대무신왕은 우리역사인데요..? 고구리의 영향이 그 뒤의 수많은 북방 민족에게 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몽골인이 아닌 거랑은 상관도 없습니다...
@geon999
@geon999 Ай бұрын
모두 요동 반도가 기반인 문명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요동반도가 기반이라 하기에는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에서 발굴된 홍산문화가 설명되지 않지요.
@user-yc6yw2jk5g
@user-yc6yw2jk5g 6 күн бұрын
아바이~~!!! 이건 아버지란 뜻 아닐까?
@jasonjaejae
@jasonjaejae Ай бұрын
금나라, 요나라의 강역이 아마 옛 고구려의 강역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y94325055
@y94325055 Ай бұрын
우리나라는 이상할정도로 역사를 영토의 역사+민족의 역사로 보려하는 경향이 있음. 사실 따로 놓고 봐야되는데. 저걸 같이 보려고 하다보면 환빠 되는거임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게 대한민국의 주권 수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25 당시에 약 300만명의 인민해방군이 투입되어서 한반도가 초토화 되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한국이 살아 남으려면 결국에는 인민해방군을 멀리 베이징까지 밀어 내어야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이것에 대해서 china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주를 안 빼앗길려고 아둥바둥 대는 거죠. 그래서 저들이 동북공정을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영원히 china에 눌려 살라고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러나 한민족의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지요.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과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이러한 군사력/경제력을 기반으로 주한미군이 없어도 한민족 스스로가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필수적으로 만주를 흡수/병합하여 고구려를 재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user-wy1dr9tn9n
@user-wy1dr9tn9n Ай бұрын
고구려(고려) 사람들이 자기들 조상을 추모라고 하는대 왜 자꾸 주몽이라고 쓰시나요
@youngjunlee3939
@youngjunlee3939 Ай бұрын
추모가 주몽입니다. 추몽이라고도 하고 중모라고도 합니다. 기록 주체와 시기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겁니다. 추모라는 명칭도 지금 독법으로 추모이지, 고려시대에 어떻게 발음됐는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에요.
@lee-rf2eu
@lee-rf2eu Ай бұрын
Ps 조선 주르센 주천 주스 루스 쥬신 다같은말. Ps2 조선인, 쥬신인, 쥬이시 ㅋㅋ 쥬이시가 어느민족일까요?
@gentriker
@gentriker Ай бұрын
현존 최고(가장 오래된) 문헌이자 정사인 삼국사기에 주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모는 19세기말에 발견된 광개토태왕릉비문, 중모, 도모 등은 일본서기 등 다른 서적에 기록되어 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정받는 정사 기록에 따라 주몽을 주로 통용하는 것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gentriker 하지만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추모왕이라고 밝혔으므로 이제 교과서도 주몽에서 추모로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아무렴 고구려인들이 기록한 것이 더 정확한 것이지 한족들이 기록한게 더 정확하겠습니까?
@gentriker
@gentriker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저도 물론 공감합니다. 저 역시 당대 고구려인이 직접 기록한 것이 당연히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어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방식의 차이인 것이죠. 언젠가 고구려 시조는 추모라고 더욱 알려지길 저 또한 바랍니다.
@user-if4pb4bp6u
@user-if4pb4bp6u Ай бұрын
아바이?
@user-wv6nv5jo2p
@user-wv6nv5jo2p 6 күн бұрын
그쪽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자연스레 한반도에 전파된거겠지 혹은 삼국시대에 그쪽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 신화를 한반도판으로 각색한듯
@byoroo
@byoroo Ай бұрын
성령으로 잉태한 누구랑 똑같구만
@wkshin2599
@wkshin2599 Ай бұрын
가라는 태양. 사라는 달. 가사라.. 여기서 모든게 출발함. 가사라ㆍ게세르ㆍ게세르 칸ㆍ거서간. 가사라ㆍ아사라ㆍ아사달ㆍ고조선. 가사라ㆍ가라ㆍ아라. 아리랑.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가라/사라 라는 용어는 또 처음이네요. 어쨌든 유목민들은 중요 거점을 도시화 하면서 그 명칭을 태양의 도시, 달의 도시로 명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신라가 금성과 월성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과 일치하지요.
@hexus2002
@hexus2002 8 күн бұрын
미치도록 궁금한 우리 민족의 진짜 기원…. 암튼 내가 지금 태어난게 조상이 있어서인데…. 그게 누구였냐? 어디서 왔냐?
@user-ij5ku2ck2t
@user-ij5ku2ck2t Ай бұрын
둘째가 단군이면 첫째는 누구죠? 한국은 장자계승 문화권 아닌가요? 아니면 첫째는 다른 지방의 문화권인가? 역사를 보면 첫째가 그지역을 다스리고 힘없는 동생들이 분가해서 다른 지역을 다스리지 않나요?
@gn.l3762
@gn.l3762 Ай бұрын
부리야트 공화국. 내몽골을 외몽골이 통일하면 동방의 몽골제국이 재현될듯 한데.ㅡ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청나라는 왕은 자신들은 신라에서 왔다고 책도 냈어요 멀리서 보면 원나라가 몽골역사처럼 청나라도 한국역사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pus6646
@pus6646 Ай бұрын
피지배층 대부분이 중국애들인데 우리나라역사로 편입은 안돼지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pus6646지배층인 왕족과귀족 양인들은 다 신라에서온 여진족 사람들이 였자나요 노예계층이 한족이고 몽골의 원나라도 그랬는데 몽골 역사이니 청도 그렇지 않겠어요?
@jteek63
@jteek63 Ай бұрын
말갈은 말가리. 여진은 (고)려진(사람). 몽골은 몽고리 입니다... 진은 일본말로 사람이라는 뚯이죠 모두 고리(고려)인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조작.왜곡해 놓았죠 고리=고구려.고려....고리라고 읽었습니다 이러니..신화도 같을수 밖에요
@user-rc8uk6ei9g
@user-rc8uk6ei9g Ай бұрын
​@@mariwoㅋ 명나라가 한국인데요?
@user-dt4qo5ij5m
@user-dt4qo5ij5m Ай бұрын
그냥 덮어씌우는거지 그럼 신라는 흉노족 후예게요.
@mimigogo8975
@mimigogo8975 23 күн бұрын
아바이 게세르? 아버지 게세르?
@user-yt5hq9sg5b
@user-yt5hq9sg5b Ай бұрын
게세르한... 거서간?
@ylogos782
@ylogos782 Ай бұрын
몽골을 몽고로 표기하는 무례한 EBS... 몽골에서 매우 싫어합니다. 중국에서 낮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옛날이라서 그렇습니다.
@SKYBLUE-oo2ld
@SKYBLUE-oo2ld Ай бұрын
게세르=카이저=거서간=박혁거세 다 똑같은뜻 입니다. 결론은 정복자 왕이란뜻
@randy_watson
@randy_watson Ай бұрын
이런 거 보다 보면 환국은 모르겠고 신시는 있었을지도... 이는 동북아시아 초대 건국 신화를 말할 때 초입부에 환웅이 계속 등장한다(한국, 중국, 일본, 몽골) 그리고 말이 신화지 국가 건국 신화를 만들려면 이전 고대 국가들의 신화를 섞어서 정통성을 강요할텐데 그 당시 몰락한 지역 강대국은 좋은 먹임감 일거다 일본처럼 일본 성이 성 교제 했던 장소가 된 것이라는 설처럼 유화 같은 어머니들이 등장하고 장소가 언급이 된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냥 그 시기의 영웅이다
@j3459
@j3459 Ай бұрын
환웅시대보다 훨씬 앞서는 만년전에 창세기 역사가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말자체가 백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화가 비슷한이유는 같은 계열 친척 후손이기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토르 오딘 로키가 우리나라 사람인데 유럽에서는 신으로 받아들입니다. 알라(신)역시 우리나라사람인데 중도에서는 신으로 받아들입니다.
@user-jx9ub7pc4r
@user-jx9ub7pc4r Ай бұрын
글쎄 동이와 흉노(?)가 같다고 할 수는 없고 현재 몽골이 친한이라고 해서 같다고는 볼 수는 없을듯 그리고 건국신화는 유목민족에게서는 차용 등을 통하여 정당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데 ㅜㅜ
@GeeHanShin
@GeeHanShin Ай бұрын
중국이 자신들의 문화를 없애고 동북공정하는데에는 분명히 우리가 몰르는 날조된 역사가 있다가 장담합니다 그 명확한 예가 진시황 무덤에 있습니다 상투 문화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한국 고유 문화입니다 진시황 무덤 보면 알겠지만 석상들이 죄다 상투를 틀고 있죠 중국 일본은 역사적으로 변발입니다 자꾸 이상한 댓다시는분들 계시는데 역사 왜곡 하지말아라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날조된 역사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황하문명으로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동북공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뿌리는 요하문명이라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예를 들면... 'ㅠ' 형태의 고인들 문화의 경우 요하강/압록강/대동강/한강 까지 나타나는 형태인데 china 본토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또한 china 역사서 '송서' 에는 옹관(독무덤)은 동호의 풍습이라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옹관이 나타나는 지역은 산동반도/텐진/요서 지역과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지요. 東胡族(동호족)은 몽골족/거란족/선비족/오환족/산융족의 기원이 되는 종족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china는 이 東胡族(동호족)에 대해서 자신들이 걸고 넘어지고 있고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한국은 부여족이 우리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hyunjungyun7389
@hyunjungyun7389 5 күн бұрын
우리와눈 달라.
@user-nd5np7jh9t
@user-nd5np7jh9t Ай бұрын
한족이 북경및 만주일대를 다스린적이 없기에 고구려.백제.발해를 중국역사에 편입해야만 현 중공사를 합리화할수 있는거죠.북경은 한때 고구려평양성이고 후에 발해수도도 되죠.
@intelamd3076
@intelamd3076 Күн бұрын
지금 북경에 가면 아직도 지명이 "고려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고(구)려 영지라는 뜻인데 고구려 군사들이 주둔했다는 뜻이죠...단순히 짧은 시간 머물렀다고 그런 명칭이 전해내려오지는 않을 것 같고, 몇년 또는 수십년 고구려병사들이 북경에 주둔했던 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고구려 시기만 해도 북경이 한족(화족)의 주요무대가 아니었으니 많은 이민족들이 북경을 제집 드나들듯이 주둔했던 것 같습니다.
@user-ps8wp7eg3h
@user-ps8wp7eg3h Ай бұрын
환웅과 환인의 신시는 인류 모두의 창세기 신화가 아닌가 싶다 우리민족의 역사 일수도 다른민족의 시초 역사일수도 있는 모두의 신화 과거엔 모두가 같으은 언어를 쓰고 같은 민족 이었다는 썰이 있는데 지금와서도 어느나라든 비슷한 단어발음들이 엄청많은것도 그런탓이고 신기하다 모두의 창세기 신화라고 봤을떄 환단고기에서 하늘님의 나라 환국이 동서남북 2만리?? 여러문명의 발생지와 여러문명이 하늘님의 나라에 속해있었다가 각자 독립적으로 흩어지면서 각기 역사로 흩어지는걸까 그럼 우리의 독립적 역사는 배달부터가 우리역사일까 부여부터일까 단군조선부터일까 신비롭다 과거를 볼수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SkyKoreana
@SkyKoreana Ай бұрын
환웅(桓雄) 굳셀 환 => 궅세르 =>크세르=>(아바이) 케세르/부리야트족=케사르/몽고족 수컷 웅 (남신) 케세르한 케세르칸==>환웅 이두식 한자풀이로 풀어본 내용입니다
@user-hr8nd7lx7j
@user-hr8nd7lx7j Ай бұрын
환웅은 웅환인데 이게 바뜨르칸이라고 하는 설도 있죠.. 배달민족 = 배달겨레 = 바뜨르 케레이 = 영웅민족... 만주어로 겨레는 교로.. 청황제성이 아이신교로=ㅇ금민족. 몽골 만주쪽에 츄몽은 활잘쏘는 애란 말이고 유리(동명왕이름) 이승게 온다르(온달) 이런 이름 널렸답니다
@user-daesun-Choi
@user-daesun-Choi 3 күн бұрын
우리 선조님들은 피지배계급을 다스리기 위해서 신비주의로 뻥을 정말 잘 치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말이 않되는 '마늘과 쑥의 곰과 호랑이' '알' 등등... ㅎㅎㅎ 그리고 단일민족도 분명히 아니건만... 어쨌든간에, 자유대한민국 만세!
@user-yr4kq1rd7d
@user-yr4kq1rd7d Ай бұрын
자식의 성공을 위해선 아버지가 죽어,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커다란 교훈을 느꼈다면 즉시......
@user-ng3nm8do2k
@user-ng3nm8do2k Ай бұрын
뿌리가 같은 나라이기 때문..타민족인 지나인이 말할 나라가 아니다
@user-qu6cw8ce3i
@user-qu6cw8ce3i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이전에는 다민족 역사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학자들 보면 무슨 두만강 압록강만 건너면 유목민들만 있있는것 처럼 이야기 하는것도 웃기네요~!!ㅋㅋ 한민족 역사로 보니까 고려도 저따구 해석하니...에휴~
@gd9209
@gd9209 Ай бұрын
원래..중국..몽골..우리나라..일본..4개국은..역사가..엉켜잇지~~🎉🎉🎉
@user-rq1rf2bf5j
@user-rq1rf2bf5j Ай бұрын
중국과는 다르지.
@mariwo
@mariwo Ай бұрын
화하족은 동이족이랑 달라요
@Itttae
@Itttae Ай бұрын
청나라 왕조 만주족 유전자와 언어조차도 한국인에 가깝고, 만주족에게 지배받은 중국어는 언어부터가 전혀 달라요
@user-rq1rf2bf5j
@user-rq1rf2bf5j Ай бұрын
@@Itttae 그니까
@NuligaonKardala
@NuligaonKardala Ай бұрын
유전적으로는 북중국이랑 가까운게 맞는데 기원은 아예 다름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Ай бұрын
제가 헛소리를 길게 적어보죠.😅 훙산문화까지의 요하 일대 문화는 마고 시절입니다. 요하 전기 문화가 일신하는 계기가 금속병용기인 샤오허옌문화인데, 홍산후기와 맞물려 있으므로, 텡그리 신앙과 함께 소위 가위두(桓雄)가 이끄는 天王族이 내려온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부리야트 족이 말하는 일부 파벌의 동방 이주의 본질인 거죠. 나라는 홍산 후기이자 샤오허옌 초기에 홍산인들의 주거지를 피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샤오허옌 후기로 접어들면서 구빈마을판 단군신화의 원형이 만들어진 거죠(이것의 역사판 애정담이 왕봉현 설화죠). 그리고 이런저런 자료들의 저작연대 또는 편찬자의 생몰년 등을 기준으로 할 때, 부정하고 있는 기자조선의 멸망 연도로 알려져 있는 서기전 195년으로부터 7년여 뒤인 서기전 188년 경을 도출해낼 수 있는 서기전 2284년 경이 홀달의 최초 성립이 됩니다. 이것이 웅녀와의 결혼 형태 또는 토착 세력의 지도층의 항복이라는 모습으로 신화 속에 남게 되었죠. 본디 조선은 대제국도 그저그런 지역국도 아닌, 홀달(孤竹) 혹은 잠별(默台)로 불리던 서울국을 중심으로 하는 느슨한 연방 국가였습니다. 거수는 연방 주요 구성국이고, 성립 후 200년 후인 서기전 2000년부터 서기전 1500년까지 융성했던 조선 연방이 등장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문화적 영향력만 있었을 뿐, 거수국과 그 밑의 구이 취락을 내지화시킬 행정적ㆍ군사적 역량이 충분한 시절은 아니었기에 굉장히 느슨했습니다. 군소 마을들의 각축이 벌어졌던 협소한 의미의 중원에서 드디어 동제 기반의 지역국이 등장하니, 그것이 당商입니다. 지금은 상이지만, 당대 음가 추찰 중 세르게이 스타로스틴 파의 주장에 의거하면 당이죠. 제요도당씨의 실제 모티프가 성탕의 원본이 아닐까 합니다. 서기전 1600년대부터 춘추시대가 진행 중이던 서기전 600년대 중엽까지는 황허가 타이항산맥의 줄기를 따라 북류하다가 옌산산맥에 닿지도 않고 동쪽으로 틀어서 지금의 톈진시 서쪽 부근에서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개관 속에서 거의 구이 취락 말고는 접점이 없었던 조선 연방에, 서기전 10세기 무렵, 시퇀산문화를 기반으로 성립된 원 부여인 沸流國이 합류합니다. 그 전부터도 교류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하나가 된 시점인 거죠. 서울국 성립으로부터 1500년 후가 마침 호경이 무너지고 주 왕실이 둘로 쪼개지던 유왕 전후 시기입니다. 점차로 제후들이 자기 거점을 중심으로 지역적 동맹을 무력을 기반으로 성립햐 뒤 왕실의 뒷배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춘추시대의 개막이었죠. 그래서 부리나케 구이를 통해서 조선 연방을 왕국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는데, 서기전 650년 께 이후로 황허의 하류 물줄기가 더 남쪽에서 꺾여 지금의 보하이만 서부 연안 남쪽 부근에서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세력을 키우던 북언과 제가 합심해 구이의 터전을 빼앗았죠. 영지 또는 리지가 화베이 지방의 구이들 왕초 노릇을 해내지 못했고, 회대 지역의 서국 언왕이 도리어 왕초 노릇을 했을 만큼 관계가 튼튼하지 못했고,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단절되고 흩어지는 등의 혼란이 겹쳐 뭉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이때 땅을 버리고 연산산맥 이북으로 달아나거나 굴복했죠. 춘추가 저물고 전국이 되었을 때, 서계의 거수였던 영지 혹은 리지는 서쪽으로는 후누의 동진에 맞서 국체를 유지해야 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더욱이 연방 내 거수국 지위도 흔들린지 오래되어 서남 방면의 언과 제의 강성함도 목도해야 했지요. 결국 이기지 못하니, 이것이 서기전 4세기 동호와 조선의 땅을 빼앗았다는 진개 이야기의 원전입니다. 순식간에 연방의 서계를 빼앗긴 홀달도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무리를 해 일시적이나마 서계를 다시 확보하는데 성공합니다. 다만 진한교체기를 넘어 서기전 195년에 한 제국의 제후국 연국 토벌 때 망명해 온 항장 연인 만이 7년 정도만에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통해 모은 사병을 거느리고 왕성을 점거하니, 準王이 왕위를 찬탈당하여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요하의 하류를 건너 원 부여국으로 들어와 비류수인 제2쑹화강의 수로 상에 위치한 지금의 지린성 지린시 일대에 자리를 잡으니 고려후 추이자 추모로도 불렸던 서울왕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전 조선 연방 수장국의 수뇌부라 하지만 급속도로 강성해져 주변을 핍박합니다. 그래서 비류국 송양왕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 회전을 한 끝에 상대 국호인 부여를 빼앗고 상대에게는 한자를 달리 주어 沃沮로 쓰게 합니다. 이것이 뜻인 불저(多勿都) 대신 소리만 남아서 溫祚가 되었다가, 다시 가차자를 갈아 끼우면서 百濟가 되었지요.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의 전말입니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준왕 직계가 끊기고, 서기전 108년 경에 망명한 역계경 세력과 맺은 방계가 누루벌로 천도할 조짐을 보이자 서울의 수도 사수파가 옥저를 끌어들이며 성립한 황룡국의 백제사 건국신화 속 비류 백제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본조와의 군사적 충돌에서 국력을 낭비한 비류국 사람들을 축출하고, 이미 누루벌로 달려가 감독하던 왕의 눈을 피해 건국한 것이 실제 동부여입니다. 부여 연방 성립 이래 서울국 성립 중 제1차이며, 도리어 건국 부분은 제2차 서울조정인 갈사국(가섭원) 천도를 끌고 왔습니다. 차지하긴 했지만 본조를 누를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소강 상태에 접어든 동부여왕이 방계 1대왕 사후에 등극한 훗날의 대부여왕에게 딸을 시집보내니, 이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로 유명한 자명고의 이야기 원형이 되겠습니다. 도리어 주인공화된 호동은 사실 모본왕이며, 그 사이에 있던 단명 임금인 민중왕이 없는 왕입니다. 대부여왕에게 깨지고 나라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본조 부여국의 수도였고 제1서울국의 정당성이 깨어지는 부분이 동부여 건국신화에서 본조 부여를 상징하는 해부루왕이 본디 서울을 뜻하던 재상 아란불의 천도 건의를 받들어 동쪽으로 옮겼다는 갈사국을 뜻하는 가섭원이 됩니다. 이 갈사국이 새 서울인데, 사실은 왕제가 건설한 게 아니라 추모왕을 쫓아냈다고 하는 대소가 피난한 것입니다. 지금의 함경도 일원입니다. 곧 본디 해두국 왕의 계보였던 비류인들이 동부 관리권을 상실하면서 머리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상주에서 지금의 태백까지 걸친 지역국이었던 사벌국 또는 제3서울국인 동예까지의 지도층을 일컬어 후일 대구ㆍ경주를 포함한 남부인들이 말하기를 阿殘이라 했으며, 곧 고구려 밑에 있다던 조선이 바로 갈사국입니다. 실제 고구려는 칸클리의 전사로, 칸성 즉 왕성을 뜻하는 것의 격음화 이전 개음절 시기 발음인 가그리를 그대로 가차로 하여금 나타낸 말이 시초입니다. 그것이 국명으로 오인된 때는 기록과는 달리 빨리 잡아도 《삼국지》《후한서》등이 편찬된 위진남북조 시기로, 어렴풋이 전달된 게 11대 동천왕 시기 있었던 고위전쟁 때이며, 이게 3세기 선비의 침략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는 부여의 참된 모습입니다. 실제 국호로 사용된 것은 대체로 소수림왕~장수왕 대의 일로 완전히 후대의 일입니다. 즉, 부여계 신화의 시작이 조선 연방과 부여 연방으로 이어지면서 그 정수가 고구려로, 아류가 백제ㆍ신라ㆍ가야로 가서 변조가 심하게 이루어집니다. 지역적으로는 원조일 것으로 보이는 몽골 고원 및 바이칼호 동부를 비롯한 다싱안링 일대가 게세르 신화 본향이며, 퍼졌다가 부여이자 그 연방의 헤게모니를 오래도록 놓지 않았던 고구려의 것에 영향을 받은 실위ㆍ 여진ㆍ만주가 재차용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괜찮은 사관입니다.
@dri13829
@dri13829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이 논리의 허점이 뭐냐면 B.C 1C 말 ~ A.D 2C 까지의 고구려와 그 기반이 된 맥족의 전쟁 및 이동 경로 설명이 불가능 하다는 거임.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dri13829 BC 108년 위만조선 멸망 BC 75년 현토군 고구려현이 공격받아 퇴각 BC 60년 고리국 영리품왕의 공격 BC 37년 추모왕 고구려 건국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dri13829 고리국=탁리국=색리국=탁근국 이게 만주에 있었는데 다들 이 고리국을 신경 안쓰네요.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도 이 고리국 출신이지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dri13829 BC 75년 고구려현 철수 이후부터 BC 37년 추모왕이 고구려 건국 당시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졸본부여왕이자 소서노의 아버지 연타발이 있던 시기가 이 시기 입니다.
@user-mi5lr3pi5b
@user-mi5lr3pi5b Ай бұрын
다좋은데 환단고기충들만 없으면 좋겠군
@Chokungkung
@Chokungkung 12 күн бұрын
만주 더 나아가 몽골까지 우리땅
@user-hr8nd7lx7j
@user-hr8nd7lx7j Ай бұрын
그냥 한뿌리다
@hakshinyi5266
@hakshinyi5266 Ай бұрын
나라 이름만 바꾸면 수메르 신화와 기독교 경전이 같은 것 처럼..
@user-mb6cy2qx7y
@user-mb6cy2qx7y Ай бұрын
탁리국은 탕리(탱그리)국으로 "하늘 나라", "하느님의 나라"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t.hjeong3969
@t.hjeong3969 Ай бұрын
모두 동명성왕 신화에서 따온 것
@die34younjin
@die34younjin Ай бұрын
거서간 = 게세르 = 케이사르 = 시저......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임
@2jaemyungE
@2jaemyungE 6 күн бұрын
칭기즈칸, 청태조 모두 주몽설화보다 늦게 나타난 걸 보면 뭐 원류는
@user-bv2og9st8t
@user-bv2og9st8t Ай бұрын
홍산문화 고조선의 후예로 종족문 화가 같다는 말 肅愼, 稷愼, 女眞 한자를 만주어로 읽으면 jursen 이다 만주족은 자신들은 4-5천년 동안변함없이 조선족이라고한다 오히려 우리가 누구인질모른다
@user-lt9dc8pi6l
@user-lt9dc8pi6l 21 күн бұрын
아바이 동무
@yoyoyout
@yoyoyout 16 күн бұрын
확실히 00년대까지는 한국인들은 자신들 내부에만 관심을 집중한듯. 맨날 저러거 위주로 방송됨. 글로벌적인 이슈나 전 인류적인 문제엔 노관심 이었음.
@gimagim7208
@gimagim7208 Ай бұрын
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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