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는 보리고개를 넘기기 힘들었고, 길거리에 거지가 많았는데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비슷했다고??? 1960년대는 많이 회복 되었고, 1970년대부터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sangsikkim60633 жыл бұрын
1950년대 대한민국 경제수준이 중남미 수준은 아닌것 같은데요..대다수 국민들이 보리고개로 생계를 걱정하는 수준으로 지금의 북한, 아프리아 최빈국 수준이었음.
@jeoneddie64512 жыл бұрын
수치 상 그랬다는 거죠
@jienik552 жыл бұрын
2차세계대전 끝나고 아른헨티나는 세계 4위 부국이었는데, 53년 gdp 가 한국의 2.5배라니 뭔가 잘못된 내용입니다. 도회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시골은 먹을게 없어서 초근목피로 살았어요. 내 고향에서는 옥수수 빵도 아주 가난한 학생들에게만 주었는데 서울에서 다닌 친구들은 전교생이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rina-pu3fw Жыл бұрын
@@jienik55 전쟁으로 초토화된 53말고 전쟁나기전 통계를 봤던게아닐까요ㄷ
@바람소리-f7x3 жыл бұрын
50년대 한국은 농업 위주의 국가였고.. 그 마져도 자급 자족은 커녕 상당수가 기아 상태였는데.. 같은 농업 위주라도 자급자족을 넘어 엄청난 양을 수출했는데.. 어서 나온지도 모를 통계를 가지고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보다. 그 통계가 잘못된 거라 봐야 하는거겠죠..
@바람소리-f7x2 жыл бұрын
@Wweryb 냉전 시기 미국이나 소련으로부터 원조 안 받은 나라가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 50년 다 더해도. 80억 달러 정도더군요.. 이스라엘은 지금도 매년 35억 달라씩 원조 받고 있답니다. 당시 대부분의 원조도 식량 원조였고 나머지는 무기 구입하는데 거의 다 썼어요.. GDP 10%까지 됐으니.. 물론 달러 가치 하락은 감안해도 엄청나게 큰 돈이라 할 만한 건 아니란 소리예요.. 본 내용도 실질 GDP와 달리 명목상 GDP는 낫지 않다는 소리 아닌가 싶은데.. 꼴등은 아닐지 몰라도 최빈국은 맞고요.. 부가가치 낮은 1차 산업이 거의 전부인 국가가 1차 산업으로 자급자족도 안 되는데 괜찮은 경제력이다 이런 소리는 성립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EH-se5wy Жыл бұрын
저기 말씀하시는 분은 선대가 이룬 경제성장을 폄하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그렇게 못살았던건 아니다.. 그렇게 얘기해야 업적이 줄어드니까요.
@목단-q6w9 ай бұрын
최박사님❤ 오늘도 좋은방송 감사합니다👏🏻
@Kimtiger04 жыл бұрын
50년대 살아온적은 없습니다만...저희 아부지경험담 들으면 늘 먹을게없어서 고민이였는데.. 1인평균 소고기 100키로를 먹던나라랑 수준이 비슷했다하는건.... 너무 숫자만 들여봐 현실을 이야기 못하는 느낌이네요;;;;;;;;;;;;;
@한정근-l3f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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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근-l3f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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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근-l3f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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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근-l3f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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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wand70873 жыл бұрын
@@Khan-ef1hi 50 60 년대 까지는 대다수 맞고요 70 년대는 먹고는 살았죠.
@eeepro10334 жыл бұрын
1953년 전쟁 직후에 보면 우리나라 정말 못 살았던거 사실인것 같은데... 그 세대에 사셨던 분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 정말 못 살은건 맞는데.. 박사님의 지식은 인정하나 모든게 맞다고 할수 없을것 같아요.
@애국투사4 жыл бұрын
50년대 우리가 잘살았다고 수익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동의할수없어요 폐허솤에 보리보개도 있었고 뭘알고좀 먹을게 없어서 아사자가 나오고 뭔가좀 저짝적 사고 잘살았는대 군부가들어 서서 어처고 저쩌고
@김태숙-l9y4 жыл бұрын
그시절 초등학교 에서 주는 우유 한컵 옥수수빵 얻어 먹고 보리밥 한그릇에 머슴살이 가정부 그의 팔러가는 수준 이런시절이 잘 살았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적어도 난 그렇게 어린시절 살았어요
@finitelife20594 жыл бұрын
인당GDP로 계산해야죠 1960년 한국 1691달러, 아르헨티나 9765달러 지금 우리가 소말리아보는 것처럼 가난하게 봤습니다 내용은 좋지만 정확한 정보를 주길
@auregigogida4 жыл бұрын
그것도 current int dollars 즉 그 때 그때 현재시점변동환율에 따라 계산하느냐 특정시점 환율(constant)을 모든 연도데이터에 모두 적용하느냐에따라 수치가 달라져요
@망중한-g1n3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와 경제수준이 같았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보릿고개에 소나무 껍질 벗겨먹고 똥꼬가 찢어져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공짜빵에 소고기 먹은 아르헨티나와 비교하는게 수치를 떠나서 이상하네.
@yesterday978ify Жыл бұрын
유토피아 같은 곳이였나 봅니다.
@rina-pu3fw Жыл бұрын
공짜빵은 gdp에 안잡히죠
@망중한-g1n Жыл бұрын
@@rina-pu3fw 지디피, 국내총생산은 국내분 가계와 기업, 정부지출을 전부 합산한 것인데 공짜빵이라고 어떻게 계산이 안되나요?
@auregigogida4 жыл бұрын
1953년 21억달러설은 당시 소득을 2000년 기준환율로 재산정해서 나온 수치. 고정환율도 아니고. 환율은 그 시대상의 반영결과인데 그걸 50년 후 기준으로들이댔다는 게..
@fang31314 жыл бұрын
틀린 내용이 꽤 있는데 통계 쪽은 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53년 gdp를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은행 데이터 중 가장 오래된 1960년 기준으로 gdp(2010년 미국 달러 기준)가 아르헨티나는1156억, 한국은 236억 달러입니다. 명목을 가져오셨나 싶어서 명목gdp를 봤는데 1962년 기준 아르헨티나는245억, 한국은 28억 달러입니다. 53년값이라도 아르헨티나 명목 gdp를 완전히 잘못 가져오셨습니다. 인구는 한국이 약간 더 많았어서 62년 기준으로도 1인당 명목 gdp가 열배 정도 차이납니다. 포도 품종이야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명색이 경제방송인데 통계가 이렇게 틀리면 방송에서 이야기한 논리 전체가 다 깨집니다. 출연자 분이 1950년대 한국이 별로 빈국이 아니었다고 하시는데 세계은행 데이터 기준 1960년 1인당 명목 gdp를 보면 한국이 158달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 빈국들이 138달러입니다. 전쟁 종료 후 꽤 시간이 지났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명재경-k1x2 жыл бұрын
옳은 말 씀 미국 밀가루 윈조 없ㅇㅡ면ㅇ님청 굶어 죽었던 나라 대갈 민국
@여니-v4v2 жыл бұрын
전 1953년 기준으로 들었습니다
@user-ip1ny5dy7q2 жыл бұрын
꼬우면 니가 나가서 방송해 ㅋㅋ
@오리지랄방송2 жыл бұрын
@@user-ip1ny5dy7q 무엇이던 정확히 아는게 낮지...모르면 그냥 눈팅이라도혀.....그따구 댓질하지말고....
상이군인들은 목발집고 상거지 깽판 부리고 다니고 아침에 학교가다가 들판에 죽어있는 사람을 여럿보고 다녔어요. 나는 여러군데 옮겨 다니며 살아서 촌구석에서만 그런게 아니란걸 잘 알고 있어요
@kaysjourneyasacanadiannurs42214 жыл бұрын
브라질도 해주세요. 남편이 브라질리언인데 브라질은 참 복잡한 나라, 부패가 상상을 초월하고 도둑놈이 너무 많고 사람들이 법과 룰을 무시한다며 맨날 불평합니다만 사람들은 너무나 나이스하고 정이 많고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운 건 부정할 수 없다며. 본인은 고국이 너무 미워 캐나다 와서 살지만, 브라질 사람들 자체는 따뜻해서 그립대요. 가끔 슬퍼하며 자기 나라가 왜 이렇게 됐나 분석해보곤 합니다. 전문적 식견을 듣고 싶네요. 저도 따로 책 사서 읽어보겠습니다만.
@chonulgwiin50514 жыл бұрын
@Young Soo Kim 노. 노. 무식한 소리 그만! 브라질 의외로 인종차별 씸함. 겉만 보고 왈가왈부 좀 하지 마라.
@박채연-o5r3 жыл бұрын
그래도 농축산업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미국을보면 농업 엄청 지원합니다 먹거리는 나라의기본입니다 싸게사오다 농업포기한나라가 나중에 수출국에서 가격인상하면 의존력이높으면 비싸게팔아도 사올수밖에요 농축어업은 나라의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랄방송2 жыл бұрын
여기 댓글에 좋아요 32개에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네요....
@seranma36922 жыл бұрын
코로나와 우크라이나전쟁을 곀어보니 먹거리만큼은 자급자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user-ri73bdis88h72 жыл бұрын
지금 수출국에서 가격인상 했는데도 국내산 가격의 발끝에도 못따라가고있죠 한국의 농업정책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리드-w7k2 жыл бұрын
기업농을 해서 단가를 낮추든가.. 국내산 물가는 너무 비쌈 전시 상태를 대비하기 위해 전시 상태 수준의 가격을 평상시에 지불해야한다고? 난 잘못됐다고 봄 한국보다 평균 소득이 높은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도 식재료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함
@제다이-z1j4 жыл бұрын
53년 gdp는 미국과 유엔의 원조경제라서 아르헨티나와 직접비교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원조식량이었던 밀가루 옥수수 분유가 아니면 벗겨먹을 초근목피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전 국토가 엉망진창이 되서 산업 기반시설이랄게 전혀 없는 상태여서 지금의 아프리카 난민과 별 차이 없어요.
@wisikahn4 жыл бұрын
Right, nowadays, there is abundance of ignorance, especially with younger generations..
@제다이-z1j4 жыл бұрын
@@wisikahn 직접 겪어보거나 겪은 분들과 동시대를 살며 듣지 못하고 이미 지나간 숫자만 보기 때문이겠죠. 마치 지나간 흑백사진 속 어색한 표정을 보듯 말이죠.
@@Sky-e1g7z 73년생인 제가 어릴때만해도 겨울이 진짜 추웠죠. ㅎㅎ 단열이 제대로 안되는 건물에 장작이나 조개탄 때던 교실.... ㅠ_ㅜ
@제다이-z1j4 жыл бұрын
@@sejinki814 전 대구 수성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큰 도로만 벗어나면 채소 키우던 밭들이 즐비했습니다. 저도 다니면서 무우 많이 뽑아먹었죠 ㅎㅎ
@hanee10904 жыл бұрын
정말 유익한 방송이네요!! 공중파에서 이런 수준 높은 방송은 못하고 맨날 그 배웠다는 피디들 먹방만 하고 정말 후퇴하고 있는데.... 삼프로 정말 정말 정말 방송 유익하고 좋네요.. 방송의 본질을 유투브에서 보다니...
@골딩이2 жыл бұрын
아 정말 좋은지적입니다 ㅇㅇㅇ놈들의 TV는 돌리는데마다 비호감 애들 먹방만하고 볼 방송이 없습니다
@bluefantast4 жыл бұрын
저게 말이 되나요? 앞에 영상에서 아르헨티나가 2차대전때 곡물 팔아서 엄청 돈 많이 벌었다고 했잖아요. 한국은 53년7월에야 겨우 625 끝나 경제 원조 받고 있었는데 두 나라 경제규모가 엇비슷 하다니 이해가 안되네요.
@大신라혼4 жыл бұрын
이런 방송에 무슨 대단한 지식이 있을거라 기대하고 있습니까. 대충 흘려들으세요.
@저녁노을-w3z2 жыл бұрын
감사히 잘 봤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대관하는데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수치와 통계의 오류가 사람들의 의식을 왜곡시킬수가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953년은 3년이상 한국전쟁을 통해 전라도를 제외한 전국토가 전장터였는데 특히 수도 서울이 잿더미가 되서 기왓장만 남아 있는 상황이 아르헨티나와 비슷?? 환율??^^ 몇십년 지나면 새로운 세대는 정말 그렇게 믿겠다!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군요. 난 전후세대로 70년대 초중반 국민학교를 나왔지만 하루세끼 쌀밥먹는집 거의 없었음(쌀보리 섞인 혼합곡 먹음). 산에 나무가 없었음. 대부분 황토색의 허허벌판의 산, 그 많은 칙뿌리도 못캐도록 통제하였음. 이것이 현실이었음(대전)
@mindbeautiful38122 жыл бұрын
60년대.초등하교에.다녔습니다.항상 배가 고팠고.어머니는 굶는것도 옆에서 지켜봐습니다. 학교에서 옥수수 빵을나누어 줬지요. 꿀맛이였습니다.
그때60년대 우리나라는 차도없고 비도로포장 상수도하수도없었고 거지도많았고 나무땔감자급자족 초가집에 겨우농사 정도외에는 생산이 없는 겨우 대도시에 공장이 조금잇을정도 자급자족안되는 그때 가발수출 석탄 전기도 정전 간호사 독일 수출 이웃집 언니 일본인과 결혼 지금 우리나라 시골 결혼 문화비슷 다시는 되돌아가고싶지않는60년대 그땐 엄청 먹고사는게 힘들었네요
@윤인수-r2d Жыл бұрын
그때는 청계천 물도 똥물이었음
@56jhan4 жыл бұрын
15:10 60년대 후반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남미로 이민을 갔는데 그 당시 정육점에서는 소내장은 물론 소꼬리, 소족등을 먹지 않고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의 공짜로 얻어왔던 기억이 나네요.
@선바우4 жыл бұрын
50 년대 아르헨티나 와 대한민국의 경제력비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60 년대 농업이민을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는 선진국이라했다
@정정이-t2b3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전에도 없었던 나라에 6 25의 페허위에 세계 두번쩨 가난한 나라였는데요....
@야발갑-b8r2 жыл бұрын
@@정정이-t2b 미국이 GDP도 바꿀정도로 엄청나게 퍼줬습니다 무작정 가난한나라엿다고 정치질도 있었음 그래야 더타먹을수 있었으니깐
@리드-w7k2 жыл бұрын
나치 잔당들도 아르헨티나로 많이 도망쳤죠 그 당시 아르헨티나는 선진국이었으니
@rina-pu3fw Жыл бұрын
미국이 퍼줬는데 정부가 제대로 분배못함
@user-ny9yn7zx5q2 жыл бұрын
유익한 방송입니다! 다만 오십년대 육십년대는 한국은 먹을게 없었고 아르헨티나는 언급한 것처럼 가난해도 먹고사는 걱정은 없었다!
@footkkkkkkkkk2 жыл бұрын
그러니까요 그때가 보릿고개인데 아르헨티나 잘먹는 넘들이랑 같다구 이건아닌데요
@저승사자-c2w3 жыл бұрын
제대로 알고 하세요 1953년 우리나라 지디피 는 13억 달러로 에디오피아 다음으로 지구상 콜지에서 두번째 임니다
@박가브리엘-x6e4 жыл бұрын
625전쟁 직후에 뭐가 꽤 많은 상태였다구요?
@김동이-e9u3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은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 북부 살타 지역의 건조 기후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는 칠레보다 와인 생산이 많습니다.
@Football_Fan6932 жыл бұрын
밀, 소고기도 많이 생산하죠
@채주석-o9i4 жыл бұрын
박사님 말씀 이 맞아요 방대한 땅에 농사 를 짓는것 도 대부분 기업에서 기계 로 농사를 짓읍니다 유전자변형콩 을 엄청짓는데 워낙 대규모 기계화 가 되어 그곳 에 사는 현지인들 일자리 창출이 안되어서 삶의질이 나아지지 않을수밖에 없지요 그나라 는 세계최고 의 소고기 를 가장많이 먹는 사람 들이고 한국 와서 꽃등신 하며 마블링 찾 지만 그런 고기 는 3등급에도 못듭니다 넓은 땅 에서 스트레스 없이 방목으로 알파칸 이라든가 하는 풀을먹기에 소고기 가 고기와 고기 사이 에만 지방 이형성 되어 아사도 라고 바베큐 를 3시간 이상 굽게되면 고기사이 지방 만 제거 하며 먹는답니다 여기와서 아사도 한번 해먹고 싶어도 그렇게 파는 갈비도 없어 먹지못했답니다 바캉스 때면 5000미터 안데스 넘어서 차로 여행 많이 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지방 에가면 지금도 살만 합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한국 도 그리 될수도 있고 우리나라 치안 자랑 하지만 88년도 이민 갔을때 알젠틴 도 치안 괜찮았지요 방심하지말기를 바랄뿐입니다 2차대전 끝나고 페론이 공업화 시킨다고 지방 사는 사람 다불러서 공짜로 먹이고 해서 실패로 끝난 공업 정책 반대로 에바페론 이 펼치던 포플리즘 정책 으로 막퍼주던 사회제도 는 성공 해서 그리되었답니다 그냥 지방 에서 목축업 하게 놔두었으면 한국 못지 않았을텐데 정치하는 인간들이 잘못해서 그리 된겁니다 저도 기초년금 받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지금 그모양 으로 망가졌어도 기초년금 우리나라 보다 많이 받습니다 그러니 안망하는게 이상 하겠지요,,,,
@use-hvchnk Жыл бұрын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이하셨네요.
@퓨마-s3e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주셔서
@kjblueskyjp4 жыл бұрын
옛날에 1970년대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농업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소작농으로 좁은땅에 농사 지어 보았자 가족들도 강냉이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가 농사를 지면 밥은 실컷 먹을수 있다고 하여 농업 이민을 떠났었는대 막상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보니 워낙 땅이 넓고 자동차를 타고 가며 10시간을 가도 평야만 나오기에 농사를 지을 엄두를 못 내었다고 합니다. 한가족이 손으로 지을수 있는 땅이 고작 최대한 5천평 정도 이기에 5만평 10만평의 땅은 죽어도 소로 밭갈고 괭이로 농사 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농업 이민 떠났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땅의 크기에 놀라 농사를 포기 하였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중국 미국 케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땅 싸이즈가 한국하고 레베르가 완전 틀린 나라인 것 이지요
@진짜세계이야기4 жыл бұрын
땅은 클 수록 좋지요... 남미 이민 1세대 분들께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문제는 땅 크기가 아니라 당시 농업이민에 농업 전문가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농업에 문외한들인데다 토질과 기후가 달라서 한국서 잠깐 받은 영농교육 정도로는 작황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상업으로 전환해서 일단 가져온 옷가지 같은 걸 팔다가 보부상 같은 '벤데'라는 영업형태가 한국사람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기 시작했고, 당시 남미에 부족하고 한국에서 강했던 의류 봉제 판매 쪽으로 많이 들어섭니다. 지금도 남미 한국 교포들 70%이상이 의류, 섬유업계 종사하고 있습니다.
@youngchuolhwang13754 жыл бұрын
이민갈때 호미 굉이 가지고 갔대요
@tokioki93473 жыл бұрын
이민자들끼리 계를 통해 서로 도와서 밀어주고 같이 컸다고 들었어요.
@waitingforapril3 жыл бұрын
그분들이 도시로가셔서 지금에 한인타운 만드셨지요
@kij76393e3 жыл бұрын
그당시 이민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이라도 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행기 값만해도 얼만지 ㅋ 그래서 농부가 아닌 소위 말하는 이민가고 싶었던 돈있는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만간 사람이 대부분이고 처음엔 계약기간 때문에 시골에서 살다 도시로 탈출해서 지금이 아르헨티나 이민족이 된겁니다.
@moyazzz3 жыл бұрын
한가지 첨언하자면.. 수입대체화 산업화는 전체적인 수출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가 했던 새롭게 유치하려는 일부 산업들의 경쟁력이 갖춰질때까지만 일시적,일부분 보호정책을 썼던 유치산업보호 정책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해장술한잔4 жыл бұрын
지구본~~~ 토욜만 기다려지네요 감사합니다♡
@hyol16403 жыл бұрын
삼프로가 이런것도 하네요 산책하면서 들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계속 걷고있네요 앞으로 밀린거 열심히 따라잡아볼게요!
@현홍배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저번주에 이어 아르헨티나 2부 잼있게 보고 갑니다!
@minmuljango4 жыл бұрын
항상 감사합니다. 주말 토요일 아침에 이거 들으며 힐링합니다. 최고네요
@helenjung47592 жыл бұрын
유익한 강의 감사해요. 경제프로그램보다 더 인기 많네요^^
@yesterday978ify Жыл бұрын
유익한 강의는 맞는데 옥석을 가려 들어야 될것 같읍니다. 정제되지 않은 것은 간혹 흉기가 되기도 한답니다.
@정순규-j5u4 жыл бұрын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는데,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으요. 먹을게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시절이었다.
@제클린-d7d3 жыл бұрын
지구본연구소 어떤 방송보다 수준 높다고 생각합니다 도움됩니다
@dantechoi9324 жыл бұрын
Argentina 의 대표 포도주는 Merlot 이 아닌 Malbec 입니다.
@goodhealing17004 жыл бұрын
53년은 6.25전쟁중인데 우리나라 GDP가 그렇게 높았다구요. 저는 13억 달러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확인해주시고 수정해주세요.
@마지막등대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미친여행-y1y3 жыл бұрын
최박사라는 이 사람 진짜 전문가를 가장한 조또 모르는 헛소리만 지껄이네요.. 헐 차라리 아예 무식한 사람이 하는 소리는 걸러듣기라도 하지만.. 이런 최박사같은 사기꾼들이 가장 위험하답니다
@참도라에몽3 жыл бұрын
@@미친여행-y1y 사회학 역사학이라는게 답이 없는 분야여서 사기라고는 볼 수 없죠 ㅎ 숫자 틀린거야 조사 다시 해야하지만
@JeongUnBong3 жыл бұрын
보릿고개라고 쌀이 부족해서 쌀 막걸리 못만들게하던거 하며, 국민학교서 옥수수죽, 우유 배급 받아 먹던 시절이 70년대 초였는데 무슨소리를 하는거지?
@dj-zl3ev Жыл бұрын
빈부격차가 컸던시절 잘사는집은 그시절도 유치원다니고 유학가고 했음
@내졸병뺑코 Жыл бұрын
@@dj-zl3ev 그런 집안이 몇이나 된다고 똑같은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따지면 소말리아는 유치원가고 유학가는 사람 없는가 1965년도만 해도 국민학교에 점심시간 굶는애들이 많아서 미국 원조로 옥수수빵 1개랑 콩우유도 다는 안주고 한반에 4분의1정도 매일 나눠줄 정도 가난했는데 헛소리 하나 그시절을 보지도 못한것들이 헛소리는 진짜 오지네
@고레이트4 жыл бұрын
엄마찾아 삼마리에 나오는 네로가 엄마 찾으러 아르헨티나로 가죠. 엄마는 왜 아르헨티나로 갔나? 아르헨티나가 워낙 잘 사는 나라라 외노자 그것도 가정부로 갔습니다. 시대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외노자를 가정부로 받던 부국이었는데... 우리가 아르헨티나의 절반이요? 어이가 없네요.
@고담룡-v6k3 жыл бұрын
유용한정보 많이 들었는뎨 50년대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비교 하는부분 부정확한부분때문에 나갑니다
@wisikahn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거기 가보지도 못한 사람같애요, 60년대까지는 미국보다 더 잘살아서. 일본 나고야에서 술집에서 제일 인기있는 사람이 알헨티노 였는데
@미친여행-y1y3 жыл бұрын
60년대까지 한국이 아르헨티나랑 비슷하게 살았다.??? 최재형 박사라는 사람 이거 완전 거짓말 사기 치고 있네요… 당시 , 아르헨티나는 일본보다 잘살았고, 한국 초등학생들 대부분이 점심 도시락을 못싸갔어요.. 증말 찢아지게 못살았죠. 일본이 남겨놓은 신업시설과 일본에 배운 기술로 그나마 연명하면서, 미국 원조 받아서 겨우겨우 살았어요
@redboss77124 жыл бұрын
우연히 보게됬는데 재밌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너무재밌네 ㅋㅋ
@sungkim95064 жыл бұрын
옥수수에서 추출한 식용유를 휘발유에 섞어서 차에 넣으면 안될 것이고, 옥수수를 발효시켜 뽑아낸 알콜을 10%정도 개솔린에 섞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식이-t2z4 жыл бұрын
가솔린엔진의 경우 바로 엔진 사망이지만 디젤엔진의 경우 식용유로도 운행이 가능합니다. 다만 문제는 식용유의 저온에서의 점도인데 이부분만 고온의 식용유를 사용하면 사용가능합니다.
@새로운희망4 жыл бұрын
옥수수가 아니고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알코올을 후ㅏ발유와 섞습니다.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알코올이 폭발성이 좀 높아서 엔진에 무리가 간다고 들었습니다.
@허건회-h3t4 жыл бұрын
매주 주말 이 기다려지네요 최준영 박사님의 지구본~~~~ ㅎㅎ 너무 좋은 방송
@심전-m6j4 жыл бұрын
최박사님 방송 아니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온리!
@harubang13 жыл бұрын
백과사전에는 거의 없는 새로운 백과 지식을 최준용 박사에게서 듣게 되네요. 이런 것이 박학다식하다는 말로 표현해도 되나요? 참!!! 진행하시는 삼프로님들도 대단하네요.
@내졸병뺑코 Жыл бұрын
좌경화 시키는 교육으로 봐야 됍니다 박정희대통렁이 아니어도 땅집고 헤엄치기다라는...
@dongkupark79074 жыл бұрын
1950년대 아르헨티나와 비슷했다고? 내가 직접 50년대 초등학교 다녔는데, 겨울에 양말도 못신고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들은 직접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름.
@김종인-c3m Жыл бұрын
언론자유 너무 허용하면 뻥이 심해짐
@김영석-q2f Жыл бұрын
원조받아서 그 혜택을 받는곳만 ~
@고대근-r5s Жыл бұрын
아빠?
@sunkim49644 жыл бұрын
53년 지디피는 좀 납득이 안가네요. 전쟁 직후 폐허 밖에 없고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래도 지식이 참 많습니다.
@최유진-j9u4 жыл бұрын
현재수치로 계산..
@맑고상쾌한주말아침3 жыл бұрын
저거 뭔소리여 우리가 1953년도에 21억 달러였다고 아마 그것은 미국이 원조해준 것이겠지 미국이 우리 전쟁에 쓴돈이 그당시 쌀한가마 2~30원 하던시절에 무려 680억불을 원조해줬으니 물론 그돈은 전쟁무기 / 장비 / 16개국 참전국 전투군인 월급/ 식량원조 / 등 모두 포함한 원조액이지만 그중에서 300억불이 일본에서 생산하는 무기대야금으로 일본에 지급됨 그돈으로 일본이 산업강국으로 패암일본이 재건됨 한국은 일본의 은혜국임 오늘의 일본이 있게한 한국전쟁
@softcowcandy4 жыл бұрын
계산이 좀 이상해서 인터넷 뒤져보니 ‘1962년 기준’ 한국 gdp가 20억달라, 아르헨티나가 250억달라 정도로 10배쯤 차이가 나는데, 53년에 한국이 25억 달라면, 한국이 역성장 한건가요? 그럴수도 있긴 한데 숫자가 좀 이상한 듯 합니다.
@강판-h9w4 жыл бұрын
환율문제
@everforego17424 жыл бұрын
저도이상해사 찾아봤는데 기사를보면 1953년 GDP 13억 달라로 나옵니다 1960년은20억 달라로 나오네요
@charleskim17674 жыл бұрын
구데타세력이 주가조작,화폐개혁으로 경제를 황폐화시켰기 때문에 60년대 초반 gdp급락이 발생합니다. IMF때 충격의 몇 배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내졸병뺑코4 жыл бұрын
1953년 3년간 수백만이 사망한 전쟁이 끝나 전국이 대부분 초토화된 상황에 무슨 21억불 생산 하는가요? 좌파들의 개소리 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경우에도 못살때가 없었다는 개소리??? 한마디로 이승만 박정희는 한게 없는데 헛소리 한다는 이야기 겠지요
@내졸병뺑코4 жыл бұрын
@@송강-r9o 이방송에 남미의 대부분 나라가 과거 그당시 소련과 중공에 미쳐 공산화를 추종해 못산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는게 웃기네요 걸러서 보시면 됍니다
@최춘희춘희4 жыл бұрын
수입대체전략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위치를 높여준 다행스런 일이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잘봤습니다. 역시 믿고보는 삼프로~~~~
@TheHappy12674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 대표 와인은 말벡입니다. 멘도사 지역에서 나오는 말벡은 최고입니다.
@agostinaurdiales3 жыл бұрын
sure
@fuzzyinus28164 жыл бұрын
주말도 삼프로와 함께 ㅎ 감사합니다
@자유인-p7p4 жыл бұрын
지구본 연구소를 즐겨보던 사람으로서 최준영씨에 대하여 보다 더 잘 알게된 동영상이네요. 본인의 사상과 팩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내용을 잃어버린 편이 바로 아르헨티나 2편이군요. 수출주도형 제조업 육성과 노동자 중심의 포퓰리즘 정책은 바로 상극이죠.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에 제조업 육성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기업 중심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가능한 것이죠. 아르헨티나는 이 것이 안된 것이죠.
@난나야-l9m Жыл бұрын
50년대 잘살았다는 얘기는 절대 공감할수없는 얘기인데 다른 차원의 korea인듯ㅋ
@momkk98044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의 60년대 이야기를 들으니 60년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정말 위대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런 경이적인 성장을 이뤄냈을까요?!
@jungpillee4 жыл бұрын
당시 대통령 분들이 위대한겁니다
@morningtube59064 жыл бұрын
극동아시아 인들은 근명성실할수밖에 없습니다.
@argmontkr4 жыл бұрын
90년대 중후반까지도 아르헨이 더 살기 좋았음. 그지된지 얼마 안됨.
@jameskwon31134 жыл бұрын
@@argmontkr 83년쯤 부터 한국이 역전했어요.97년 한국 IMF 터지고 알젠틴 이 잠깐더 잘살었었지만 다시 곧 한국이 재역전했죠.
@내졸병뺑코4 жыл бұрын
@@morningtube5906 공산화되면 안되지 북괴를 보면 알텐데 아직도 공산당을 추종하는 쓰레기들이 종교인처럼 행세하며 사람을 현혹시킴
@오리지랄방송2 жыл бұрын
지혜를 배우는 몇안되는 방송 이네요....감사합니다. 이런 방송을 보면 대통령을 어떻게 뽑아야되는지가 표가나네요...
@jamesj.62752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듣다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기가 막혀서... 53년도에 우리나라가 꽤 괜찮게 살았다는 이런 이야기를, 통계까지 왜곡해서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어릴 때인 60년대만 해도 너무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아르헨티나는 40년대에 먹을 것 걱정 없었다면서요. 통계를 찾아 따지려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댓글을 보니 이런 글을 쓰신 분이 있네요. "틀린 내용이 꽤 있는데 통계 쪽은 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53년 gdp를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은행 데이터 중 가장 오래된 1960년 기준으로 gdp(2010년 미국 달러 기준)가 아르헨티나는1156억, 한국은 236억 달러입니다. 명목을 가져오셨나 싶어서 명목gdp를 봤는데 1962년 기준 아르헨티나는245억, 한국은 28억 달러입니다. 53년값이라도 아르헨티나 명목 gdp를 완전히 잘못 가져오셨습니다. 인구는 한국이 약간 더 많았어서 62년 기준으로도 1인당 명목 gdp가 열배 정도 차이납니다. 포도 품종이야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명색이 경제방송인데 통계가 이렇게 틀리면 방송에서 이야기한 논리 전체가 다 깨집니다. 출연자 분이 1950년대 한국이 별로 빈국이 아니었다고 하시는데 세계은행 데이터 기준 1960년 1인당 명목 gdp를 보면 한국이 158달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 빈국들이 138달러입니다. 전쟁 종료 후 꽤 시간이 지났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bulbob1002 жыл бұрын
57년생 저희어머니는 종로 4층 저택에 거실에 그랜드피아노 놓고 가정부3명 집에서 자랐고 친척들은 옥스포드 할아버지는 와세다. 54년생 아버지는 어릴적 쌀밥구경 하기힘들고 짜장면을 초6때 첨보고 찢어지게가난했다하니 몰겠네요 아마 평균적으로 가난했겠죠?
@정주성-b1p2 жыл бұрын
격하게 동감입니다. 뭘전공했는지.
@당근-t9j5e2 жыл бұрын
@@bulbob100 아무리 망하는 나라도 부자들은 있었어요. 지금도 빈국에서는 1프로의 사람들은 잘살고 있어요 ㅎ
@저녁노을-w3z2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전후세대에 살았던 우리는 정말 못 살았어요~ 70년 초반까지 밥먹기 힘들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죠~
@djjskkawi2 жыл бұрын
23:27 단순 명목 gdp가 아니라 2000년대 물건 가격 기준으로 재가공한 gdp라고 말씀하시는군요.
@이윤지-f9n4 жыл бұрын
한꺼번에 두편이나 ~ wow!! 아르헨티나 축구 좋아했었는데 아르헨티나 참 안타깝네요 만약 우리가 저렇게 깔고 앉은게 많았다면 세계 최강국이 됐을까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삼성-g6g4 жыл бұрын
최준영선생 60년대 살아봤수? 미국이 원조해준 유일한 간식거리 깡냉이빵 들어봤어요? 미군들 식당에서 짬밥통에 유일한 고기덩어리 들어있는 꿀꿀이죽 그런거 너무맛있어서 먹던거 예기는 들어봤어요? 당시 내가 서울연희동(지금은 꽤 괜찮은동네)에 살았는데 우리집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동네 전체가 거반 다그랬었는데 우리나라가 중남미하고 비슷했다고요? 삼시세끼 소금국에 수제비 먹어봤어요? 지금의 방글라데쉬? 파키스탄? 인도 극빈자지역? 우리동네보다 나앗을거 같아요 못할거 같아요? 참고로? 먹을게 없어 며칠 굶어 본적 있습니까? 좋은말씀 감사히 보긴하는데 한국의 오래전 실생활 예기같은것은 적어도 60대중반 여러분 에게 오래전 예기좀 들어보시고 하셨으면 합니다
@정감사-s7y4 жыл бұрын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청야-b4m4 жыл бұрын
17:00 아르헨티나의 주품종은 merlot 이 아니라 malbec 입니다^^
@만만-k7x3 жыл бұрын
50년대한끼먹기힘들었음 47년생인데도시락거의없었다
@jiwonmoon49023 жыл бұрын
이건 독일도 마찬가지였는데 원래 비료는 남미 특히 칠레의 산악지역에 엄청나게 쌓여있던 새똥들로 사용했는데 이 루트가 막힌 독일은 화학에 집중 세계최초로 화학비료를 생산해 내죠 전쟁중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경험은 전쟁이 끝난후에도 영향을 미쳐 이 비료산업은 과거 새똥들로 대체 되지 않고 그대로 존속되게 됩니다. 이렇게 유럽 국가들이 변하면서 아르헨등이 구가해왔던 비교우위를 통한 자유무역의 사슬은 완전히 종료되게 됩니다.
@매직-v5s Жыл бұрын
포플리즘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말 경계해야 할 정책입니다
@한동엽-q4v4 жыл бұрын
50년대 대한민국이 남미하고 비슷했다??? 이대목은 진짜 아니다 부모님들이 엄청 힘들게 사신 시기였는데
@woonlim8574 жыл бұрын
뉴저지에서 방콕하는데 잘 봤습니다
@장준원-v7b4 жыл бұрын
개론으로 듣기는 참 좋은거같은데 중간에 소수설적인 내용도 정설처럼 소개되는건 좀 아쉽기도 하네요. 다만 혼자서 많은 내용 준비하시려면 어쩔 수 없기도 할것같아요.
@해변스케치4 жыл бұрын
저런 무식한 넘은 처은 보는데요 대충 살아도 그정도는 알겠어요 자신의 지식에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글을 모르는 까마귀와 뭐가 다를가요
@대한민국-j5t4 жыл бұрын
씬추리라고 해서 곱창 구워주는 요리가 있습니다..버리지 않습니다..아사도보다 단가가 비쌉니다.
@yeonheekang4194 жыл бұрын
진짜 이런 영상 너무좋아요. 다른나라 경제.무역.역사를 들을 수 있어서요. 학교에서 이런 수업도 했으면좋겠어요 입시위주인 주입시교육이아니라
@stern1214 жыл бұрын
고기에 마블링이 있는건 풀을 먹는 소에게 사료를 먹이고 스트레스를 줘야 생깁니다. 넓은 목장에서 뛰어다니면서 자란 건강한 소에는 마블링이 거의 없죠. 마블링이 많은 고기는 건강하지 않은 고기로 결국 인간에게 좋지 않은 고기입니다. 외국에선 저급으로 평가받는 마블링 섞인 고기.....
@야생초천지3 жыл бұрын
진짜요??
@kevinkim73783 жыл бұрын
@@야생초천지 모르셨군요, 아르헨티나같은 목축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마블링 또는 와규같은 소고기는 먹지않습니다, 마블링의 흰부분은 우리가 알고있듯 인체에서 분해되지않고 혈액순환장애를 일으키는 기름 그 자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수요에비해 공급이 딸리자 미국과같은 소고기수출국들은 소가 빨리자라게 곡물(옥수수)를 풀에 섰어먹이기 시작하면서 소고기의 붉은살사이에 하얀 마블링(기름)이 생기게됐습니다. 하지만 단백하고 질긴 붉은살에 중간중간 기름이 자리잡자 그조화로인한 최고의맞 으로 사람들의 입맞을사로잡있죠. 그러니 그런 소고기를 유통시켜야하기에 제가 어렸을때부터 알고있던 소기름이 인체에끼치는영향따윈 이젠 신경도 안쓰는 거죠, 저는 마트에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살때는 항상 흰 마블링이 적은것으로 사려합니다, 내가족 내아이들에게 나쁜걸알면서 살수가없더라구요
60년대 아르헨티나랑 비슷한이야기는 허무맹랑하다 그당시 아르헨티나에 박정희가 땅을 구입해서 농업이민보냈는데 한국식으로 농사 지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농민들이 농토버리고 도시로 도망갔는데 너무 시대를 착각하고 오버하는듯하다 , ,
@user-dn1wc1us4g2 жыл бұрын
저 통계로 봐도 3배 차이남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님이 생각하는 그 비슷한 개념이 아닌거 같은데
@이재용-l7w3 жыл бұрын
다시 듣고 있는데 언제나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만만-k7x3 жыл бұрын
50년대미군이드럼통으로 분유운동장에 던져줘서살았다
@johnkang4663 жыл бұрын
콩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고 중국의 대량 콩수입으로 많은 농토가 콩재배로 전환되어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중국이 농장도 지배하고 있다.
@kuforen4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 초반에 일인당 gdp가 미국 절반 정도(4-5000달러)였습니다. 인구는 1900만. 계산해보면 gdp는 800-900억 달러 정도 되었겠네요. 부정확한 통계를 인용하시면 해박한 지식과 재미있는 설명의 빛이 바랩니다.
@jameskwon31134 жыл бұрын
일인당 소득은 그당시 아르헨티나 가 미국보다 높았단 얘기네요
@TheMr110004 жыл бұрын
구글 검색만 해도 나오네. 60년대 아르헨티나 200억달러밖에 안되고, 50년대면 방송에 나온거처럼 100도 안돼.
@김명준-p1o4 жыл бұрын
뭔가 잘못알고 계신듯 1960년대초 한국이 1인당 소득이 92달러일때 아르헨티나는 1100달러정도 이고 1988년인가 1990초에 한국이 추월했읍니다
@auregigogida4 жыл бұрын
4천 달러가 아니라 4백달러 아닐까요? 1965년 미국 1인당 GDP가 3000달러 조금 넘었는데 세계 1위였습니다. 그 때 단위랑 지금 단위랑 하늘땅 차이죠. 50년대로 올라가면 0 하나 더 빼고 시작해야 되요.
@노란공-z8i4 жыл бұрын
엄마찾아 삼만리 이태리 의사 자녀가 가정부로 아르헨티나 간 엄마 찾아가는 만화라고 들었는데 그때 이태리 보다 잘살았다 이런건가요 ㅎㅎ
@cirujaaburrido4 жыл бұрын
휘발유에 콩기름을 섞어 판다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대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같이 농산물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휘발유에 에틸알코올을 섞어 팔며, 콩기름은 바이오 디젤 즉, 경유에 섞어 씁니다.
@usgenltleman2 жыл бұрын
이게 맞는 말입니다. 아마도 최준영 박사님이 잘못 알고 있네요. 휘발유에 콩기름이 섞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휘발유에 에틸알코올이 섞여 있어서 오래 운행하지 않는 자동차는 습기가 차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alatohan43724 жыл бұрын
먹을게 없어서 누나는 남의집 식모 살이 가고 동생은 다른집에 양자로 보냈던 나라를 어찌 남미와 비교를 하나? 대한민국은 정말 사람의 두뇌와 노동력 그리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버린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력과 그를 따르는 대다수 국민들의 인뇌와 노력에 이루어진 국가이지 물산이 풍부하고 자금력이 뒷받침 된 백인의 나라인 남미와 다르지.
@cjfl92424 жыл бұрын
아싸 들으면서 자야지
@daemeka61123 жыл бұрын
60년대 살았고, 지금 조그만 무역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 말레이 보다 못사는 나라였고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힘들었고 미국이 주는 옥수수를 죽이나 빵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나누어 주었어요. 배고픈 초딩들이 그 시간을 기다렸답니다. 당시 취업하기는 정말 힘들었지요. 제 생각입니다만 위 방송은 과거 현실을 상당히 왜곡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황하철2 жыл бұрын
저기.. 실례지만.. 연세가...?
@은혜의단비-p7o2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60년대 거지도 많았고 밥얻어러 다니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시골에 살아도 밥먹기 힘들고 쌀 한움큼 넣고 쑥넣고 멀건 죽끓어서 식구들 끼니를 때우고 했습니다 미국원조가 아니었으면 굶은 죽은사람 많았을 겁니다
@user-xg7yx7my3l2 жыл бұрын
저 박사님이 쫌 어거지가 있는듯합니다
@yesterday978ify Жыл бұрын
정치예기가 아니지요. 어디에서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잘살았다는게 말이되는 소리는 아니지요. 나는 어릴때 서울에선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2의 수도 부산에서 어린시절을 격어왔는데 부산에서도 장작 싫은 우마차가 다녔고 초가집과 함석집이 주류였으며 길거리에 휴지와 유리조각 철물조각을 줍는 넝마와 거지가 우굴거렸으며 미군이주는 분유와 옥수수가루 이런것이 유일한 식량과 간식이었는데 잘살았다니? 그때 앞집 옆집이 연기가 안난다며 예기를했었죠. 연기가 안난다는것은 밥을 하지 않는다는것인데 그때는 전부가 장작으로 밥을해 먹었기 때문인데 도대체가 언제 예기인지 이해가 안되네요. 오죽했으면 박정희의 경부 고속도로를 낼때 충청도 양반들이 흰도포를 입고나와서 아까운 문전옥답을 농사를지어도 못먹고 사는데 필요없는 도로를 만들어서 몆대없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놀기위해 하는짓 이라며 어느당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충청도의 박순천 거제도의 김영삼 전라도의 김대중 등의 반대가 매우 심했으며 박정희의 혜안이 아니고 국토개발을 위한 독재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거지 나라 이거나 아니면 공산국가로 살아가고 있을거라 확신 합니다. 오천년 역사에 배를 굶지않고 살아온 옛날이 있었다니? 그것은 지주들의 얘기일뿐이며 일반인들은 먹을것이 없어서 독이있다는 복어알도 끓여서 먹었다는 얘기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저렇게 황당한 헛소릴 들으니 화가나서 하는말입니다. 도대체 어느나라 의 어느시대 얘기를 하고있는건가요? 생각하는것이 너무나 황당해서 적어 봤읍니다.
@ycp9996 Жыл бұрын
@@yesterday978ify 박정희 아니었어도 더 훌륭한 지도자가 엄청나게 많았음 늙다리들은 왜 자기 민족을 폄하하는지?
@johnkang4663 жыл бұрын
정부의 부패가 망한 나라의 첫째 원인이다. 사회 전반적인 부패지수가 높은 희망없는 나라 . 그들 스스로 탄식한다.
@joellastus10343 жыл бұрын
그게 현 문정부고 똥팔육의 유산
@jwkim8193 жыл бұрын
@@joellastus1034 틀
@ayoteacher4 жыл бұрын
아르헨티나는 말벡이죠 ㅠㅠ
@감자-y4g3 жыл бұрын
그때당시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이었지 70년대도 밥 못먹고 살았는데 ~ 이분은 달나라 얘기하고 있네
@hansoo63033 жыл бұрын
그때 경제활동 했던 분.직접격었던 국민 들.경제정책을 입안했던 공직자들이. 살아계시고. 자료도 있으니 흥미위주의 강의는 자제해주시고 팩트체크하시길 바랍니다. 5~60년 남미와 우리의 경제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은 사실왜곡이 분명하고. 효창운동장에서 대부분의 경기가 열리지 않았고.서울운동장 잔듸 보호를 위해 학생경기와 국내경기 일부 만 열렸고. 그나마 1983년 우레탄을 깐뒤로는 경기중 화상환자가 속출하여 경기를 중단했어요
@jin-youngkong37314 жыл бұрын
오, 기다렸습니다~~
@diamolee5594 жыл бұрын
인위적으로 자국 화폐를 고평가하면 실상에 비해 국가 경제규모 GDP가 고평가 되는데..? 한국이 전쟁 이후 경제규모가 실상보다 저평가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를 원조 많이 받기위해 인위적으로 원화 고평가 했다는데 틀린 말 아닌가?
@anahiguerrero6534 жыл бұрын
Argentina aquí 🇦🇷🙋
@임원현-q8i4 жыл бұрын
이승만 때 고환율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gdp가 어느 정도 되었고, 어느 정도 잘 살았다는 말씀은... 만약 정상적인 환율이었다면 달러 기준 환산 gdp가 훨씬 낮아지는 것 아닌가요?
@삼프로만본다4 жыл бұрын
하도 gdpgdp해서 찾아보니 하늘과땅차이인거같은디 ㅎㅎㅎ 한국 1인당 67달러(gnp) 아르헨 4300달러 ㅎ.ㅎ.ㅎ 우리소말리아 맞지않나요??ㅎㅎㅎ
@go2blue724 жыл бұрын
당시 말씀하시는거군요ㅎ 순간 현재 얘기하는 줄 알고 띠용 함
@마지막등대3 жыл бұрын
@@배태건-k4j 맞아요
@오영길-l3h4 жыл бұрын
제트 비행기를 4번 째(5?)로 만들었던 나라. 왜냐면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 과학자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 감(대략 미 4. 소련 4. 아르 2) 이 과학자들이 제트엔진을 만들었슴. 근데 워낙 농산물로 돈 벌던 사람들이라 "그 까짓것"하며 공업을 발전 시키자라는 마인드 가 없었슴.
@장경종-c6y2 жыл бұрын
gdp를 떠나 한국50,60년대를 아르헨하고 비교는 터무니 없네요...그때는 먹을게 없었어요...먹을게...ㅠㅠ
@junjin1383 жыл бұрын
아니 우리50년대랑 아르헨티나50년대 영상 보면 차이가 엄청 나는데 저분은 어디 통계를 가지고 비슷하다고 하는지..
@칸딘스키-q5g Жыл бұрын
건물의스타일이달라서 당신이 그리보는겁니다 순수한 삶의방향과 먹고사는문제 로 지디피는야기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