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경종이 원자로 책봉된 후 쫓겨난 인현왕후 03:12 다시 후궁이 된 장희빈 07:03 장희빈의 난동과 경종을 위협하는 동생 11:03 인형왕후 죽음의 비밀 14:55 장희빈의 죽음 후 경종의 상태 16:45 대리청정을 하게 된 경종 20:38 30년 만에 왕위에 오른 경종 22:08 장희빈의 작호 회복을 청한 유생의 최후
진심 너무한 게 숙종 본인은 적장자로 왕위에 올랐음;; 임금으로서 정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본인이 잘 알거임;; 서장자와 적장자는 그 차이가 엄청나고 특히 왕위 후계자에게는 후에 정통 문제까지 거론될 만큼 중요한 문제임;; 애초에 장옥정이 왕비가 되었던 건 아들이 원자가 되고 세자가 되면서 그 생모자격으로 오른 거임;; 개인적으로 기사환국은 아들에게 정통성을 주고 싶었던 숙종의 변덕이 불러일으킨 사건이라고 봄;; 그만큼 왕위 후계자에게 정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 자기가 서자로 태어난 아들한테 생모를 왕비로 올리면서까지 적장자로 만들어 놓고 왕권 강화를 위해 그 생모를 다시 후궁으로 강등시켜서 서자로 돌려놈;;;ㅋㅋ 거기다 생모를 죄인 만들어 죽이기까지..;;; 경종 입장에서 위협이 안될 수 없었을 듯..;;; 진짜 이걸 숙종말고 누가 함?? 다른 분 말대로 숙종=소비에슈임;;
@Bernadotte_onss4 ай бұрын
숙종이 아무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내들을 계속 내치고 갈아엎는 것도 모자라 세자까지 바꾸려고 하는 건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임금이 아니라고 보여짐, 따지고 보면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을 조장한 것도 숙종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함. 그리고 인현왕후가 일찍 죽은 것도 인현왕후를 폐위시켜 사가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한 숙종의 과실이 크다고 봄. 인현왕후의 죽음을 장희빈 탓으로 돌려 장희빈을 죽인 숙종은 지아비로서의 자격은 0%도 없다고생각함.
@pele243410 ай бұрын
장희빈은 경종을 위해서 숙종의 자진명령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죽었으며 경종을 성불구로 만들지도 않았음. 그랬으면 자진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분노한 숙종에 의해 더 처참하게 죽을수도 있었고 그런 일이 실록에 안 남을수가 없음. 경종이 성기능에 문제가 생긴거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적모인 인현왕후와 사이가 매우 좋았고 당연히 인현왕후가 죽었을때 슬퍼했음. 그런데 갑자기 낳아준 생모도 숙종에 의해서 죽었고 장희빈이 강등된 시점부터 경종을 향한 숙종의 사랑은 냉대로 바뀌었고 적모와 생모가 죽고 난 후에는 아예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하루를 매일 살아가는데 그런 극한의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데 성기능에 문제가 생겨도 이상할게 없음. 숙종 한 사람때문에 인현왕후는 14살때부터 34살까지 불행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함. 폐비시절 얻은 병으로 복통, 설사, 발열, 구토, 오심이 계속 나타나서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죽음. 장희빈은 처음에는 아들을 낳고 그 덕에 중전이 되고 탄탄대로를 걷는듯 했으나 5년만에 희빈으로 강등되며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가 자결하라고 숙종이 명령해서 죽어야 했고 그 모든 일들을 지켜본 경종은 마음고생하다 쇠약해져서 죽었음. 숙종=소비에슈
@뽀송뽀송집먼지10 ай бұрын
열심히 읽다가 갑자기 소비에슈갘ㅋㅋㅋㅋㅋㅋ 숙종이 다른 업적이 많아 그렇지 부인들한테는 개비에슈급 쓰레기죠 진짜...
@pele243410 ай бұрын
@@뽀송뽀송집먼지 이방원은 외척이나 공신을 숙청해도 바른말하는 신하들은 안건드렸죠. 오히려 간언을 하게끔 권장했고 처가와 사돈집을 박살냈어도 아내와 며느리는 놔뒀고 오히려 왕권강화를 중시한 만큼 왕실의 권위를 위해 아내나 며느리가 무시당하는 일도 없게 했고 원경왕후 소생들에게 제일 잘했던거 보면 숙종은 왕권강화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도 못하죠
@too777-s9u10 ай бұрын
인간적으로 너무나 가엾은 사춘기를 보냈군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pele243410 ай бұрын
@@too777-s9u 숙종부터가 병약해서 잔병치레를 하고 크게 병환에 시달려서 오늘내일 한적도 있는데 경종도 숙종의 유전자 때문인지 어릴때부터 잔병치레를 했습니다. 몸이 약한데다 가정환경도 최악이고 두 어머니까지 아버지 손에 의해 죽었고 자신도 언제 내쳐질지 모를 상황에 처해있으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매우 고통스러웠겠죠. 그러니 재위기간도 얼마안되고 금방 죽을수 밖에요. 숙종이란 인간은 자기 아내들과 자식도 가지고 놀며 망치는 게 취미인가 봅니다
@@딩고-c4t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오랜 아동학대로 인해 정신질환이 있어서 본 성격은 아님.
@윤정혜-j2y9 ай бұрын
숙종은 성격이 변덕스러운 사내였나봐요
@백희원-v1h4 ай бұрын
그랫다고해요 흐지부지했다해요 지금으로따지면 이런분은 여자가 쎈분만나야좋죠 장희빈씨를잘만나기는햇지만😅
@수레국화-t2s10 ай бұрын
영조가 숙종을 많이 닮았네요
@에르브10 ай бұрын
당연하죠 그아빠에 그아들임 근데~숙종은 연잉군보다 연령군을 더 이뼈했음
@수레국화-t2s7 ай бұрын
@@에르브 맞아요 그속에서 왕이 되고픈 야망은 더 컸을 겁니다 신기한것이 어떤사람들은 자기를 쏙 빼닮았는데 싫어하는경우가 던데 여기도 그런것 같은 느낌이예요 장희빈전은 궁녀들이 쓰게하고 영조에게 좋은 반응을 받을수록 더 진실과 멀게 포장된것을 강의를 통해 알았네요
@하성명9 ай бұрын
숙종은 모친인 명성왕후도 고개를 저을정도로 고집도 쎄고 변덕도 심했다하죠
@sonador97513 ай бұрын
그에미에 그 아들이니까
@sonador9751Ай бұрын
@@su2pyo 숙종의 어머니도 명성왕후라고 불렀다.
@sonador9751Ай бұрын
@@su2pyo 역사를 어떻게 배우거야.
@sonador9751Ай бұрын
@@su2pyo 숙종의 어머니는 명성왕후이고 순종의 엄마는 명성황후이다.
@su2pyoАй бұрын
@@sonador9751 역사를 세세하게 잘 모르는데 제가 잘못 답글을 달았네요. 그래도 sonador9751님에게 잘 배웠습니다. 몰랐지만 이제 알게되었으니 좋네요 :)
@ireneshin8289 ай бұрын
연산군 이후 원자(원손), 세자, 왕 코스 밟고 장기간 집권한 유일한 왕인 숙종. 연산군은 진성대군(중종) 이라는 대체제라도 있었는데 숙종은 어머니인 명성왕후 김씨의 성격 덕분에 아버지가 일부종사 하셔서 대체제가 없었음. 숙종이 연산군보다 더 했음 더 했지 덜 하진 않음. 14살이란 나이에 친정을 할때도 대신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이 어리다고 깔보는 기세가 보인다 싶으면 나이 직급 외척 불문하고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보다 더 지랄맞은 성질 머리로 패악질 함. "너님 내가 나이어린 왕이라고 무시하냐. 니가 감히 날 무시해?" 였음. 하도 지랄맞은 성질 머리 때문에 대신들이 "너님 연산군 될거냐." 하면 "ㅈㄲ 나 말고 왕 할 인간이 없는데 지금 그 발언 반역이고, 역모인거 알지? 난 연산군과 다름." 시전했다는 숙종. 연산군일기를 챙겨보며 지랄맞은 성질머리로 사대부 대신들을 길들이는데 성공한 숙종임. 조상님 대대로 내려오던 사패 기질도 있음. 자신한테 유리한 정국을 만들기 위해서 중전과 후궁을 폐위시켰다 복위 시켰다 무한 반복한 숙종임. 경종이 단명한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임.
@user-gw4pb4jz6t8 ай бұрын
거지같은 왕이라 신하입장에서는 아주 치를 떨만한 인간이지만 백성 입장에선 그냥 저냥한 왕이었기에 큰 문제는 아닐듯
@찌루박4 ай бұрын
소패네 완전히. 제정신인 사람이면 14살 자식이 있는데 친모를 박대하거나 죽이지않지. 애가 받을 충격은 생각안하나 ㅉㅉ
@조양희-d7p3 ай бұрын
원래 변덕엄마에. 변 덕숙종 이었답니다, 아침에 먹은맘 다르고. 저녁에 먹은맘. 다르고. 성질나면 죽이고. 송시열. 제주도. 유배에서. 불렀는데 급해서. 전북 정읍왔을때. 사약먹여. 죽였음 ,
@치카-o4j9 ай бұрын
아들도 죽인놈이 경종을 안죽였겠냐
@user-go8po3qh8z9 ай бұрын
음악소리가너무커서 스트레스
@에르브10 ай бұрын
숙종을 보면 영조가 세도세자를 미워하는모습까지 보이네요 숙종이 편애한자식은 명빈박씨소생 연령군임 오히려 연잉군보다 더 이뼈했지만 요절하는바람에 세자자리 물려주지도 못했음 연잉군조차 숙빈최씨사후에는 그닥 잘해준적이 없었음 즉 아내든 아들이든 정치적으로 이용만 해먹고 버리는것같음?
@남윤자-e4k18 күн бұрын
영조 숙종ㅡ 부전 자전 입니다.
@손용희-h6b9 ай бұрын
배경 음악이 넘 커서 못 알아 듣겠네요
@연-i8n8 ай бұрын
영조가 아버지 숙종 성질머리 고대로 닮아 아들학대했네
@찌루박4 ай бұрын
경종이 왕에 오르자마자 영조를 몰래 처리했었어야했는데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나요? 그럼 우리가 좋아하는 정조대왕도 없었어요.영조도 다름대로 정치 잘 한거 아닙니까? 연산군.인조.선조.영조보다 못한 왕들 많죠.
@유나예-r6c6 ай бұрын
경종 인생이 참 기구하네요 커서는 생모 가 아버지와 신하들에 의해 사사되면서 외가집도 박살 나고 보호해줄 이도 아예 없어 세자 자리 간신히 지키고 즉위해서 도 끊임없이 시달리며 인정 못받고 노론 과 연잉군에 치이다 재위 4년만에 요절 했으니
ㄹㅇ 소패인듯 14살 가장 사춘기인 시기에 엄마를 죽이면 애 마음이 어떨까. 부모 자질도없고 이기적이고 성격 개판
@김영숙-b7q10 ай бұрын
영조가 숙종을. 빼닮았다 장희빈 조용히 납작엎들여. 살지 그랬으면 경종도 그렇고. 자신도 손주도. 않아보고 오래 행복. 했을텐데. ~사랑이 너무. 깊어서 분노도 컸겠지만 조금만. 참았으면. 정말. 운명이 라는게 있었네요~~~~~영조하고. 숙종하고. 똑 같네요
@쿨맥스6 ай бұрын
않아보고는아니잖아 이 유치원생보다 못한새꺄
@스불재-z8zАй бұрын
니나참으세요아줌마
@섭섭-b6l9 ай бұрын
숙종과 그 모후 명성왕후의 성깔을 보면 영조가 그 핏줄이 확실하단 걸 알 수 있음. 영조가 다른 남자 아들이라는 이인좌의 주장은 모함이 맞음.ㅋㅋㅋ
@user-xd1th4uq3h6 ай бұрын
애초에 영조가 숙종 아들이 아니라고 의심 받은 게 그림 실력 때문임;; 이씨왕조는 대대로 그림실력 좋은 왕이 없었는데 영조부터 정조까지 그림실력이 좋았다고 함;; 그래서 의심 받은 거라고.. ;; 근데 그거 하나로 의심 받기에는 이미 유전자에 각인된 성격이 숙종하고 똑같음-.-;;;
@jykim22034 ай бұрын
@@user-xd1th4uq3h 그림실력?? 조선왕족들은 시, 그림, 악기, 글씨, 활 등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림실력때문에 의심할 정도였다고라?
@Sun-n5y7n4 ай бұрын
속종 어미부터 전해내려온 불같은 성격
@user-xd1th4uq3h3 ай бұрын
@@jykim2203 시와 글씨는 굳이 이씨왕가 아니어도 사대부들의 소양이었고 활은 이성계가 무인 출신이라 자손들도 무인 골격을 갖춘 사람들이 근근이 나옴;; 대표적으로 효종과 사도세자가 있지만 모든 자손이 골격이 좋고 무예가 뛰어났던 건 아님;;; 골격 좋았던 사람, 아닌 사람 반임;;; 악기는 처음 열었던 게 세종이고 마지막이 효명세자였다는데 이거 말고는 악기 다룬 왕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봄;;; 그림실력 좋은 왕은 없었음;; 안평대군(세종의 셋째아들)이 삼절(시,서,그림에 뛰어나서)이였단 소리는 있는데 것도 조선 초기고 그 외 다른 왕족은 모름;; 근데 시,서 만큼 뛰어나진 않은 듯..;; 안평대군도 서예로 유명했지, 그림은...;;; 영조가 숙종의 친자의심을 받은 게 꼭 그림실력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것도 한몫했던 건 있음;;; 당시에는 그림 그리는 화가를 '환쟁이'라고 부를 만큼 그림 그리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는 사대부들도 있었는데 일국의 왕자가 그 환쟁이마냥 그림실력이 출중했으니 그 출생이 의심스러운 사람도 있었을 듯..;; 다 의미 없지만🙁
@장연재-o6g3 ай бұрын
숙종.. 영조를 생각하면 정조의 멘탈에 다시한번..감탄하게 된다.
@자미온성9 ай бұрын
저주를 했다고 인현왕후가 죽은것이 아니고, 장희빈이 저주한 물건을 자신의 방에 두었을리도 없다고봄. 장희빈도 모함을 받았을수도 있을듯
@단통이9 ай бұрын
역사는 승자 쪽에서 기록한것이기에
@pele24346 ай бұрын
장희빈이 저주물을 자기 처소에 둔게 아니라 대부분의 궁녀들이 장희빈쪽으로 기울어서 장희빈 휘하의 궁녀들이 인현왕후가 거처하는 침소 창문에 구멍을 뚫어 인현왕후의 병세를 염탐해도 막아주는 이가 없었을 정도임. 그리고 저주물은 장희빈 본인이 가지고 숨겨둔게 아니라 왕비가 사용하는 대조전과 통명전에 파묻어서 발견된거임
@초보미식가6 ай бұрын
@@pele2434 인현왕후 드라마 작가 들이 졸라게 미화 해놔지 천하에 지고지순한 여자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히려 그반대인데 ㅋㅋ 이병훈 신봉승이 장희빈 만고에 쳐죽일년 만들어놧죠 ㅋㅋㅋ 그리고 인원
@떨-e3k4 ай бұрын
숙종이 남인 서인 계속 자기 왕권 강화하려고 환국을 했기 땜에 정치적으로 장희빈이 팽 당한겁니다.. 약간 도란스? 아버지론 대략 피곤한 사람인듯
@stellalee77747 ай бұрын
숙종시키.. 엄마 둘을 보내버리네..
@esaesoon3 ай бұрын
실제로는 집안부터해서 장희빈이 아닌 인현왕후가 사악했다는 이야기가 쏙쏙 나오고 있죠.. 현세에 이렇게 욕을 먹으니 장희빈은 너무 억울하지.
@joyjoy32192 ай бұрын
역사적 근거가 있나요?
@예술품-q7tАй бұрын
인현왕후가 잘못한거라 해봤자 장희빈이 건방지게 구니까 회초리로 종아리 친거랑 숙종한테 장희빈이 아들을 낳지 못할거라 했다는 것 밖에 없지 않음? 명성왕후가 장희빈을 궁에서 쫒아냈을 때도 인현왕후가 다시 불러들였었고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친아들처럼 키워준 것만 봐도 충분히 대인배같은데ㅋㅋ
@예술품-q7tАй бұрын
장희빈은 저주했다고 고발당한 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평소에 인현왕후한테 문안인사를 안 가거나 장희빈의 궁녀들이 인현왕후를 몰래 감시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서 의심받을만한 상황이었음 물론 장희빈이 악녀 소리 듣기엔 억울한 건 맞지만 어느 정도 잘못한 건 맞다고 봄
@@joyjoy3219 그렇게따지면 장희빈이 저런 악녀로 보여지는 역사적 근거는 있나요? 현재 역사선생님들이 장희빈에 대한 재해석을 내놓는것만 봐도 알수 있는데요
@벽난로-q5s9 ай бұрын
개판오분전 역사속의인물들 나라꼴이 잘돌아갈리없다
@stellalee77747 ай бұрын
유모라던가 대비라던가 아이를 잘 보듬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정문순-p1l24 күн бұрын
TY이도 안보고 역사얘기에 푹 빠졋시요 넘재밋어용😂❤❤❤❤❤❤❤❤❤❤❤
@趙允淑-z3n7 ай бұрын
역사을 바로 알려주세요. 실록에는 장희빈이 중전을 저주굿을 한 기록은 없습니다. 몸이약한세자아들을 위한 기도을 한것으로 보이고 중전저주굿을 했다고 말한이는 숙빈이였다고 합니다! 왕권을 더욱 강화하기로 쥐었다가났다가 이리저리 변덕스럽에 손바닥뒤집은 숙종때문에 희생된거 아닌가 싶어요!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장희빈이 순하고 착했으면 왕비도 않되었지만 사사도 않되고 후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겠지요.욕심이 과했고요.자꾸 숙빈을 천하다 뭐다 하는데 장희빈 엄마도 집안 망하고 조사석 대감의 여종으로 있었어요.조사석의 첩소리도 있었고요.장렬왕대비의 동생이 조사석이니 그 힘으로 장렬왕대비 처소에 있다 인사온 숙종에게 눈에 띄었고요.장희빈 오촌 당숙이 부자지 장희빈 집이 부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user-xd1th4uq3h3 ай бұрын
@@구름나라-b3d 장희빈은 집안이 망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걍 가세가 좀 기운 거예요;; 조사석의 여종으로 있던 게 아니라 먹고 살려고 일 도와준 형식인데 카더라로 와전된 거구요;; 당시 조사석이 장희빈 엄마랑 사통 소문 났을 때 숙종이 직접 낭설이라 말했다는 게 다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 땜에 장희빈이 노비의 자식인 것처럼 보여진 거죠;;; 장희빈의 오촌 당숙이었던 장현은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랑 봉림대군을 따라가(그것도 20대의 나이에) 통역해주고 보필해준 공이 커서 승진하게 되었는데 워낙 능력이 좋아서 정1품까지 승진하니까 사대부들이 겨우 역관(당시 역관은 중인 신분) 한테 높은 품계를 주는 건 부당하다고 반대해서 그 공은 아들들, 나중엔 조카들까지 가요;; 거기서 그런 장현의 공으로 혜택받은 집안 중 하나가 장희빈 집안이구요;; 적어도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숙빈처럼 근본없는 집안은 아니었죠;;; 막말로 궁에만 들어오지 않았으면 그럭저럭 그 시대 보통의 여자로 잘살 수 있던 사람이 장희빈이죠;;;
@정문순-p1l24 күн бұрын
네나이 70고개넘어 이렇게 역사얘기가 재밋는지 몰랏네용 저녁내내 눈만뜨면 계속 듣고또듣고 밥먹을때도 애들 왈 어무니 어메 다시 역사을 배우고 계시요 그러넹용 꾸욱함서 잘듣고잇넹용😂😂😂😂😂😂😂😂😂😂😂😂😂😂😂❤❤❤❤❤❤❤❤❤❤❤❤❤❤❤
@MH-fb6bb3 ай бұрын
지금의 국회와 비슷하네 민주당과 국힘 서로 싸우는것
@정겨운-j6sАй бұрын
아직도 그냥 싸우는걸로 보이냐!??? 나라가 망해가도 싸우는걸로 치부할거임??
@딩고-c4t7 ай бұрын
숙종 경박하고 즉흥적이고 변덕스럽고 저열하고 잔인하고 냉혹하고 품위가 없다
@김영준-u5c4 ай бұрын
미친넘이죠 조선망조들었어요 숙종넘으로 인해
@찌루박4 ай бұрын
걍 소패임. 어케 아들이 14살인데 아들 앞에서 엄마를 죽일생각을 하지.
@사자-u7p6 ай бұрын
경종이 불쌍하다
@수레국화-t2s10 ай бұрын
영조가 궁녀들에게 쓰게해서 남은 장희빈 얘기는 많이 꾸며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써야 좋아했고 보상이 있었겠죠 무술이 였으나 효도 받고 아들도 왕이 되고 윗분들 한테도 사랑받았으니 처세술도 능하고 복이 있다 생각되네요
@bigsmile13536 ай бұрын
무수리.
@juliap82033 ай бұрын
정말 어리석은 남편에다가 못난 아버지였구나 내가 다 부끄럽다
@박지윤-d8j5h2 ай бұрын
배경음악은 없는게나을듯
@davidyoo54666 ай бұрын
줬다 뺏었다 지 맘대로 관심법이네. 질투하면 추방... 영국처럼 계승순위를 존중하던지.....
@세븐틴박사6 ай бұрын
인형왕후 오타 고쳐주세요
@ksmb23337 ай бұрын
장옥정의 인성이나 행실 관련해 인현왕후 시각으로 쓴 야사가 심하게 섞이긴 했지만 경종이 받은 스트레스를 충분히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
@초보미식가6 ай бұрын
굿했다는걸 말한사람이 ㅋㅋ 영조엄마임 ㅎㄷㄷ 즉 ...한효주 ㅠㅠㅠㅠ
@ksmb23336 ай бұрын
@@초보미식가 ㅇㅈ요. 그 신당은 경종이 99년 천연두 걸렸을 때 장옥정이 완쾌 치성드리던 용도로 지었다가 천연두 나은 후에도 함부로 철거하면 동티날까봐 2년간 방치한 거고 당시 궁 사람들 다 알고 있었음. 알고도 최숙빈이 쇼 한거고 숙종은 장옥정 숙청하고 서인 집권시킬 타이밍이라 여기고 속아준 거..ㅎㄷㄷ..
@ksmb23336 ай бұрын
@@초보미식가 ㅇㅈ요.. 그 신당 원래 경종 천연두 완쾌하라고 장옥정이 지어놓고, 완쾌 후에도 혹시 동티날까봐 철거 안 한 거였는데.. 궁 사람들 공공연히 알고도 최숙빈은 쇼했고 숙종은 장옥정 숙청할 타이밍으로 여겨 속아줌.
@손성준-u2u5 ай бұрын
@@ksmb2333 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런데도 경종은 자기 어머니 죽인 천한 것의 아들 즉 이복동생 영조를 목호룡의 고변으로 사약 먹여 죽여버릴수도 있었는데 안 죽인거군요.. 뭐 오래살면 죽였을수도 있었을테지만 이미 그 당시 고변 올라온것만으로도 충분히 죽일만한 사안이었죠 그보다 덜한 사유만으로 수많은 왕족들이 사약먹고 죽었으니 그런데도 살려준 경종이 참 대단
@2020함무라비8 ай бұрын
경종은 엄마의 사사가 원통해서 울분증에 괴로웠을 듯.
@미희손-o9f7 ай бұрын
숙종이나 영조나 아무리 왕이라지만 너무 권력믿고 사람 맘을 좌지우지하는게 좀 그렇다 좀 더 인자했으면 얼마나 좋아 위치도 위치인만큼 더 모범이 되야지 지들 맘대로야 사람 맘 다치든지 말든지
@user-xd1th4uq3h6 ай бұрын
한마디로 성격이 지랄맞은 거죠;;
@ghinscАй бұрын
김태희가 주연으로 나온 장희빈이 실제 장희빈의 모습과 가장 가까웠을 겁니다. 인현왕후가 악녀도 아니었지만 그리 착한 여인도 아니었고 장희빈이 아름다워서 한때 그리 사랑해놓고 왕권 강화를 위해 두 여인 사이를 이용했던 숙종 저 놈이 나쁜 놈 이지요.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어미를 죽였으면 아들은 안타깝게 생각해 왕권을 지켜줬어야지... 지 아들 영조가 괜히 지랄맞은 성격이 아니였네요 숙종 나쁜 점 그대로 닮았고 ...지 어미 천한 핏줄 닮아 며느리 상중에 마구 궁녀들 건드리고 한게... 다 숙종 닮았네요
@시원한여름-f7l9 ай бұрын
경종이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걸요 장희빈도 불쌍 하네요 죽일것 까지 숙종도 참 으이구 쯧쯧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무슨 소리예요? 그럼 정조대왕도 없었어요.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영조보다 못한 왕들도 엉청 많았어요.
@gauntletsilver29963 ай бұрын
@@구름나라-b3d 정조가 죽으면서 아들의 외척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그때부터 조선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병들어갑니다
@moonie21544 ай бұрын
유전이 무섭다 성격이 대대로 내려오는듯
@lana-ri3sj10 ай бұрын
장희빈도 모함당한 지점이 전혀 없었을까?
@이가야9 ай бұрын
있었습니다ㅡ 그로인해 늘 불안했던 장희빈 ㅡㅡㅡ
@딩고-c4t7 ай бұрын
그게 모함인지 아닌지 확실한것이 없죠 그런데 장희빈은 인현왕후 내쫓을때 모함을 했죠
@윤고수-q3y26 күн бұрын
인현왕후로 수정좀 해주세요.
@mandyh990610 ай бұрын
연산군은 친모가 사사되는 걸 보지 못해서 기억은 없는데 경종은 그걸 두 눈으로 보았으니..쯧쯧... 숙종의 변덕과 나르시시즘.. 그걸 닮은 영조... 손주 사도세자까지 미쳐버려서 광인이 된 듯...
@hih37459 ай бұрын
인현뫙후가 먼저 죽었네요. 숙종ㆍ영조 넘싫어요.
@딩고-c4t7 ай бұрын
그보다 더 싫은것은 사도세자입니다 사도세자도 돌쟁이 아들을 칼로친후 연못에 던졌어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사도세자 아들도 너무 불행하게 살다 단명했어요 사도세자 아내와 첩도 다들 불행하게 살았고요 후궁 박빙애는 사도세자한테 목숨을 잃었어요
@kbl231010 ай бұрын
숙종이 명성왕후 성깔을 닮았다고하던데 어려서부터 머리빗기기도 힘들정도였다고한다. 오은영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 명성왕후와 숙종이 같이 상담받고 동생인 영조도 함께 케어받았어야 했나보다. 명성왕후 이후로 자손들 성깔이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가 농담은 아닌것 같다
@하늘땅-p9n9 ай бұрын
명성왕후 때 후궁이 하나도 없었다고 해요. 대단한 일이죠.
@hjgreen-w8p9 ай бұрын
숙종 성질이 너무 까칠해서 하인들이 머리를 빗기지 못할정도라 명성왕후가 들어가 머리를 빗겨주면서 한대 때렸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그 엄마도 한 성질하는데도 자기 아들은 못이긴다고 본인 입으로 얘기했다네요,.ㅋ
@딩고-c4t7 ай бұрын
@@하늘땅-p9n 명성왕후때 후궁이 하나도 없었던것은 칭찬할 일이죠 숙종이 강력한 절대왕권을 누릴 수 있었던것은 어머니 명성왕후 덕분입니다
@미미-l8h4 ай бұрын
솔직히 인현왕후도 장희빈도 숙종의 장기말인것같음
@옥경장-s7z3 ай бұрын
김만종이 쓴 사씨남정기가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빚대어 쓴 소설입니다. 아마도 그것도 숙종에게도 들어가서 숙종의 마음이 변한것 같아요.
@담청-u6i3 ай бұрын
빗대어
@jamesyoung959310 ай бұрын
숙종같은 모자란 왕은 진작에 갈아치워야했다. 중종반정 같이 말이다
@에르브10 ай бұрын
맞아요ㅠ 폐위안된것이 어이없어요
@USER-han3namkill4 ай бұрын
연산군 때는 진성대군(중종)이라는 대체재가 있었는데 숙종 대로 오면서 가까운 남자 후손이 없다시피 함;; 인조 때 소현세자 혈족이 역적이 되고 삼복의 난으로 왕족이 숙청되면서 세울 만한 가까운 왕족이 없어짐;;; 거기다 숙종은 개인적인 인성문제가 심해서 그렇지, 정치능력은 연산군보다 뛰어났음;; 반정을 일으키려고 해도 명분이 없었음;;;
@Sun-n5y7n4 ай бұрын
모자란 왕까진 아님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숙종만큼 잘한 왕도 없습니다.연산군.인조.선조.....
@KingSuKJongWithHeeBin3 ай бұрын
숙종은 조선왕들 중에 탑5 안에 들 정도로 유능했습니다 역사 공부좀 하세요 정치에서 감정은 배제되어야 하는것 모름? 붕당정치의 폐해를 일치감치 알았으니까 왕권강화를 위해 환국정치를 한게 뭐가 잘못임? 그 과정에서 희생은 불가피함 ㅇㅇ 님 숙종 업적 뭐뭐 있는지 알기나 함? 광해군 때 시행된 대동법(세금을 쌀로 통일시키는 제도)을 평안도,함경도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 시킨게 숙종이고 그 시기부터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세종대왕도 실패했던 화폐개혁을 단행함 이 때 상평통보 주조해서 전국에 보급화 시킴 그리고 청나라와의 국경분쟁을 해결하고 백두산정계비 세운것도 숙종이고 과거사 바로잡기 프로젝트가 진행된것도 숙종시기임 이때까지 공정대왕이라 불리던 정종한테 묘호를 붙여주고 노산군으로 강등됐던 단종에게도 묘호를 붙여줌 또 임진왜란, 병자호란 공신들 중에 상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한테 상을 내림 이때 이순신 등 임란 공신들이 충무공 시호를 하사 받게됨 이게 다 숙종 때 업적인데 숙종을 무시한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태종 다음으로 정치 잘한 왕이 숙종인데 ㅉㅉ 굳이 순위를 메기면 1위 세종 2위 정조 3위 태종 4위 숙종 5위 성종 순이라고 보는데
1701년 장희빈 😮 14살 아들 경종 사약사死죽네요 숙빈최씨 아들 연잉군 😮 영조대왕 노론 이이명 독대후 대리청정 경종
@mochalatte048 ай бұрын
경종 너무 불쌍하다. 희빈이 아들을 생각했다면, 좀 욕심을 버리고 있는듯 없는듯 살지. 뻔히 숙종 성격을 알면서;;;;ㅠㅠ
@딩고-c4t7 ай бұрын
희빈성격에 조용히 살긴 힘들죠 그렇게 조용히 사는 성격이었으면 중전이 될 수 없었죠 성격 못바꿔요
@user-tl2zs2oc6sАй бұрын
인조-숙종-영조로 이어지는 싸패 계보 정조가 정상적으로 큰게 신기할 따름
@지니지니-x4f3 ай бұрын
집안 단속 못한 숙종이 젤 나쁜쉨귀다
@AAe-f7x25 күн бұрын
제일 한심한 왕이 숙종이라생각함 자신 살자고 당파 싸움에 부인들을 사지로 몰아낸 왕
@mikyounglee85362 ай бұрын
숙종이 잘못 하신 듯ㅜ😢
@제오르지아2 ай бұрын
숙종의 변덕과 괴팍함이 영조에게도 나타난듯
@구름-w9l10 ай бұрын
장희빈이 피해자 였을지도 모르지 요
@소확행-k9g10 ай бұрын
환국정치로 인한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이었죠
@딩고-c4t7 ай бұрын
수혜자겸 피해자죠 중인신분으로 중전이 되었다는것 자체가 대단한 특혜입니다 무속을 행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것은 심했죠
@KingSuKJongWithHeeBin3 ай бұрын
숙종은 생각보다 유능합니다 정치에서 감정 빼세요 붕당정치가 문제가 많으니까 왕권 강화를 위해 환국정치를 하는건 잘한거임 그 과정에서 희생은 불가피한것이고 숙종 업적 중 몇 개만 말씀드리자면 첫 째 광해군 때 경기도 지역에서 부분시행됐었던 대동법(세금을 쌀로 통일하는 제도)을 함경도, 평안도 제외 전국으로 확대시킴 둘 째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세종대왕도 실패했었던 화폐개혁(상평통보 주조)를 단행함 셋 째 과거사를 바로 잡아 지금까지 공정대왕이라 불리던 정종에게 묘호를 붙여줌 계유정난 때 쫓겨나 노산군으로 강등 됐었던 단종에게도 묘호를 붙여줌 임진왜란 때 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진짜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하사함 이순신 장군도 이때 충무공 시호를 받은거임 넷 째 청나라와의 국경분쟁을 해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움 숙종은 불 같은 성격이었지만 굉장히 능력 있는 왕이었음 개인적으로 굳이 순위를 메겨야 된다면 1.세종 2.정조 3.태종 4.숙종 5.성종 6.문종(세자 시절 굉장한 능력치를 보여줬기에 재위2년만에 죽었지만 높은 순위를 줌) 7.영조 8.세조 9.효종 10.광해군(쫓겨났지만 능력은 있었음) 11.현종 12.태조 13.인종(일찍 죽었지만 굉장히 어진 임금이었음 오래 살았다면 조선이 바뀔 수도 있었을 것 같음) 14.중종 15.예종 16.선조(임란 이전에는 안목도 좋았고 정치도 꽤 잘함) 17.정종(인생은 정종처럼) 18.순조(아버지 닮아 능력이 있었음 성인이 된 후 친정을 했고 뒤에 왕들에 비하면 세도정치에 휘둘리지 않음) 19.연산군(무오&갑자사화로 폭군이 되었지만 마지막 2년 흥청망청 놀기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보다 정치 잘했음) 20.철종(제왕교육 받아본적이 없지만 그래도 뭔가 바꿔보려고 시도는 함 물론 실패함) 21.경종(총명했지만 노론에 휘둘리고 재위4년만에 죽음) 22.헌종(8살에 즉위해서 세도정치에 휘둘림) 23.명종(엄마 문정왕후한테 대들지도 못하는 멍청한 왕) 24.단종(문종의 적장자로써 조선을 이끌어갈 군주였지만 뭐 아무것도 못해보고 삼촌한테 왕위를 빼앗김) 25.순종(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왕 물론 애가 아니었어도 이미 조선은 망함) 26.인조vs고종(세기의 대결 병자호란 때 나라 말아먹을뻔 하고 자신의 아들을 시기해 독살까지 함 100% 독살임 ㅇㅇ, 국제정세 제대로 못 읽고 개혁을 할 시기를 놓침 결국 1910년 나라 뺏기는데 큰 공을 세운 왕)
@j.c.s77623 ай бұрын
능력만 놓고보면 선조를 한 5위 정도로 넣으면 적당할듯
@indchang9585 ай бұрын
숙종이라는 정통성 있는 정치인이 감정에 치우쳐 여자를 갈아치웠을 것 같은가? 내외명부 수장이라는 중전의 법적 지위를 이용해 냉철하게 정치를 했다고 본다.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맞습니다.왕권강화를 위해서 .
@권정미-r4s9 ай бұрын
장희빈이 역사에서 억울한 부분도 다소 있었겠지만 아들낳은 유세로 위아래도 없었고 왕비로서의 덕은 많이 부족했던것도 사실임
@xhyshjh-jbdrt7 ай бұрын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님이 쓴 댓도 추측일뿐
@user-xd1th4uq3h6 ай бұрын
어..장희빈이 왕비로서 덕이 부족했다고 알려진 건 거의 다 야사임;;; 정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음;; 오히려 빈으로 강등된 뒤 행했던 일이 발목을 잡아서 악녀로 남은 거...
@구름나라-b3d3 ай бұрын
야사도 무시 못합니다.
@BbbAaa-yq5pm3 ай бұрын
뭔 사실. 니가 직접 보셨나요?
@gauntletsilver29963 ай бұрын
직접 봤음? 승자들이 자기들을 정당화 하기위해 모함했을 확률이 너무높음!
@taiyunchung79919 ай бұрын
최민수 왕 역할은 안맛는개 악랄한 역할은 그런데로 ㅎㅎㅎ
@SH_Lee742010 ай бұрын
장희빈 악행은 거의 다가 야사임.
@pele243410 ай бұрын
ㄴㄴ 실록에도 충분히 적혀져 있음. 뭐 경종을 고자로 만들었다거나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킨건데 마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함해서 내쫓겼다는건 야사맞음. 근데 숙종을 욕할순 없으니 인현왕후 폐위에 대한 책임을 희빈에게 덮어씌워서 그런거임. 그리고 실록에 이미 장희빈과 장희재의 악행은 야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기록되있음.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9월 23일 정미 1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대행 왕비를 무고한 죄인 장희재를 처형하라는 비망기를 내리다」 "내가 복위된 뒤, 세자의 사친(왕위를 물려받은 자의 친부모, 희빈 장씨를 의미)을 받들어 올리는 규정을 논하면서 '마땅히 일반 후궁과는 달라야합니다' 라고 하니, 그때부터 궁안 사람들이 다 희빈에게 기울어졌다. 원래 궁중의 법도에 따르면 후궁 처소에 속한 궁녀들이 내전에 드나들 수가 없는데, 희빈 장씨의 궁녀들이 항상 나의 침전에 왕래하였으며, 심지어 창에 구멍을 뚫고 안을 엿보는 짓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침전의 시녀들이 감히 꾸짖어 금하지 못하였으니, 나로서는 돌아가는 상황이 한심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몸이 아프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반드시 빌미가 있다’ 고 하는데, 나도 이런 상황이 의심스럽다." --------------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9월 26일 경술 2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인정문에 나아가 궁녀 축생 등을 친히 국문하다」 "너는 본가(本家)의 비자(婢子)로서 숙영(淑英)과 더불어 심복이 되어, 내전의 동정(動靜)을 남몰래 염탐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언제나 항상 내전의 침전(寢殿) 창(窓) 밖에서 엿보았고, 심지어 칙간(厠間)에 갈 적에도 또한 반드시 엿보았다. 경춘전(景春殿:창경궁(昌慶宮)의 인현 왕후가 거처하던 곳.) 이 승하(昇遐)할 때 남쪽 창에 구멍을 뚫어 병의 증세를 몰래 엿보았다가 목숨이 떨어지자 기쁜 기색이 넘쳐 흘렀다. 구멍을 뚫은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고, 나도 또한 직접 본 바이다. 반함(飯含:염습[殮襲]할 때 죽은 사람의 입 속에 구슬이나 쌀·동전 등을 물리는 일.)할 때 내가 아주 가까운 곳에 나아갔는데, 왔다갔다 하면서 기뻐 날뛰는 모양이 너무나도 망측스러웠다." ---------- [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10월 7일 경신 2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국청 죄인 숙정·숙영 등이 흉물을 궁전에 파묻은 사실에 대해 하교하다」 하교하기를, "모역(謀逆)한 죄인 숙정(淑正)과 숙영(淑英) 등이 저주한 일을 자복한 뒤 각씨(角氏)와 참새·쥐의 뼈가루 등의 물건을 대조전(大造殿) 동쪽가 침실 안에서 찾아 내었다. 이외의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으로서 대조전과 통명전(通明殿)의 섬돌 아래에서 파낸 것도 또한 많았다." 하였다. 저주굿만 저주가 아니라 땅에 흉물을 파묻는것도 저주행위라서 빼도박도 못하게 장희빈이 인현왕후 저주한거 맞고 심지어 자기 궁녀들 시켜서 창문에 구멍을 뚫으면서까지 인현왕후의 병세를 염탐하고 측간(화장실)가는 것 까지 염탐했으니 대역죄를 지은건 부정할수 없는 팩트임
@설악산-k4h10 ай бұрын
어떻게 보면 방송사에서 자극적.시청률 때문에 야사 만 보면서 장희빈을 다룬듯 하네요
@산-u2j9 ай бұрын
이조오백년 실록에 기록되어있는데 왜들 각자 해석하는지
@pele24349 ай бұрын
@@산-u2j ㅇㅈ 실록에도 동물의 사체랑 뼛가루들 파묻어서 저주한거 다 나옴. 야사는 경종을 성불구로 만들었다는 둥 사약을 세 사발이나 마셨다, 숙빈을 뭐 고문하고 장독으로 감춰뒀다 이러는데 그런것들 빼면은 장희빈의 악행은 팩트임
@딩고-c4t7 ай бұрын
아들을 고자 만들었다는것은 사실이 아니고 열병을 앓아서 고자된것이라네요 각시형상의 인형 7개가 나왔어요 저주한것은 맞다고 봅니다 장희빈은 중국에다 거액의 뇌물을 받쳤어요 왕세자 승인을 받으려고요 장희빈이 중전이 된후 사치가 심해서 내탕금이 바닥이 났다네요 숙종은 장희빈을 첩으로 들인다고 세금을 많이써서 대신들의 원성을 샀어요 장희빈이 후덕한 성품은 아니었죠 인현왕후는 할말은 다 하면서 후덕한 성품이었던게 실록에도 나오죠
찌질. 쫒아내려고 3년전 애기를 끄집어낼 정도의 인간... 트집잡아 인현 쫓아내 희빈 죽여 영조엄마도 ... 희빈죽인뒤 안봤다던데. 숙종이 문제
@sant-liillyii10 ай бұрын
제목에 인형왕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형?
@euicchunable6 ай бұрын
한국사에서 배울게 뭐가 있을까요?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김영숙-b7q6 ай бұрын
장희빈 납작 엎들여살지 그러면 경종도 오래살고 영조 사도세자. 일이. 없었을것. 인데 🤔
@Liilliilllliiii7623Ай бұрын
인형왕후는 뭐지 ? ? ? ;;;;;;
@루아-o1k2 ай бұрын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정치질만큼이나 아주 지 꼴리는대로 여자를 들였다가 아들이 보고 있는데 폐위에 사사시켜서 갈아치우는것도 변덕이 ㅈㄴ 심했네 여자가 지 좋을땐 곁에 두었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무슨 물건이냐? 장희빈이랑 경종이 불쌍하다
@한성정-g5u9 ай бұрын
이시원분도나오셧네요
@성용e3 ай бұрын
왜 자꾸 경조라고 하시는건가요?
@미미-l8h4 ай бұрын
숙종부터였군
@림림-o2j6 ай бұрын
숙종 성격이상하네
@무지개님10 ай бұрын
😊😊😊
@감효전9 ай бұрын
최민수는 왕역할에 너무 안 어울림.😢
@초보미식가6 ай бұрын
살수집단 우두머리 하면딱임 ㅋㅋ
@박정현-w8e10 ай бұрын
최민수가 숙종?
@슬비이-t8f3 ай бұрын
모든원인은. 숙종. 위계질서가. 개판
@태형이-i2n6 ай бұрын
여자을 이용해 정치질 숙종이 제일나쁨 변덕쟁이 마누라 다죽고 죽이고 😢
@고기사랑-b8d7 ай бұрын
태종ㆍ세조계열의성격임..친동생이고이복동생이고있었으면다숙청당했을듯
@손성준-u2u5 ай бұрын
태종은 그래도 마누라의 처가를 박살내서 그렇지 마누라한테는 잘했음... 아들한테도 잘했고... 근데 숙종 이 사이코패스는 자기 아들 한창 예민한 나이때에 자기 마누라 누명 씌워서 죽여버리고 죽기 직전에는 일부러 자기 아들 견제하는 노론 대신과 독대를 하는 등 끝까지 똥 뿌리고 감.
@허홍-l2z2 ай бұрын
숙종은 장희빈 아들 세자 경종을 등을 돌리고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 (영조대왕) 좋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