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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고종이 간도로 보낸 문서를 토대로 한 이태진씨 주장에 따르면 고종은 강제퇴위를 당하고도 국권회복 의지를 꺾지 않은 군주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의병들에 떠밀려 귀국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명민한 군주입니다. 한해 전 자기 비자금으로 무장투쟁 준비에 들어갔던 만주 독립의병에게 독려의 칙유를 내린 결단력 있는 군주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오로지 이태진씨가 날조한 대로 이 칙유가 작성된 날이 1909년 3월 15일이어야 가능합니다. 이태진씨에게 불행하게도 작성일은 1909년이 아니라 1908년입니다.
이태진씨는 2015년 이래 이 칙유를 고종의 근대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내세워왔습니다. 그런데 한문 해석이 틀렸습니다. 창피해야 할 수준입니다. 역사적 맥락, 시간대가 다 틀렸습니다. 역사가로서 더 수치스러운 오류입니다. 그런데 이태진씨는 이후 2023년까지 여러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를 통해서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용 논문 및 기사, 사료 링크]
1. 동아일보: “일제가 독살 확실… 고종 근대화업적 재평가해야”
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90121/93783930/1
2. 한국종교발전포럼 이태진 강연
• 종교인문학특강 제95회 조선(한국)은 과...
3. 문화재청 웹진 이태진 기고
koreanheritage.kr/feature/view.jsp?articleNo=131
4. 디지털타임스: [고견을 듣는다] "`바보 고종`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 근현대사 바로잡아야 미래 있어"
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3010202100569660002
5. 이태진, ‘高宗時代의 ‘民國’ 이념의 전개’ 논문
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24985
6. 이태진,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단행본
7. 이태진, ‘국민 탄생의 역사와 안중근’ 논문
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64384
8. 김종욱, ‘고종의 거의밀지와 국민전쟁’ 논문
mpva.go.kr/mpva/downloadBbsFile.do?atchmnflNo=72055
9. 고종 칙유 ‘諭西北間島及附近各地民人等處’ 원문 유리건판
첫장 db.history.go.kr/id/fl_003_001_007_0004
둘째장 db.history.go.kr/id/fl_003_001_009_0001
10. 고종 칙유 ‘諭西北間島及附近各地民人等處’ 필사본
yoksa.aks.ac.kr/jsp/aa/VolView.jsp?aa10no=kh2_je_a_vsu_20170_001&aa15no=001&aa20no=20170_001_0003&keywords=%20%E5%90%84%E5%9C%B0%E6%B0%91%E4%BA%BA%E7%AD%89%E8%99%95%20%E8%AB%AD%E8%A5%BF%E5%8C%97%E9%96%93%E5%B3%B6%E5%8F%8A%E9%99%84%E8%BF%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