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wangwushi 중국은 역사를 거짓으로 써놨다. 문화대혁명을 봐라. 광개토 대왕비도 한국것이다. 발해도 마찬가지다.
@친일청산-x9mАй бұрын
뭐가 저렇게 무서워서 막을까???????????
@DuckDam-n5lАй бұрын
발해는 동북공정의 핵심이거든요. 발해가 중국 역사가 되야 북한이 추후 중국땅이 될 수 있거든요
@xiwangwushi19 күн бұрын
중국은 한족의 역사를 말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중국 대륙의 역사는 이민족의 역사 그 중 동북민족의 역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동북역사에 집착할 수 밖에 없음
@estherjuwonbaik560517 күн бұрын
화가 치밀어서 차마 못 보겠네ㅠ 도둑놈들아 뺏앗긴 자가 무슨 할 말이...@@DuckDam-n5l
@곰발바닥-h6uАй бұрын
13-7 북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고 도착. (중기본,중중초본) 남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지않고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 초중본) ( 아직까지는 출발지에만 표기 ) 명나라 수도~ 1388년까지의 수도 지명 삭제.(중중기본) 웅진~ 과 주변의 관련 지명을 모두 삭제.(중초본) 천부령 5리
@PrettyT-rexАй бұрын
다른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글쓰는건 지능이 낮은겁니다
@곰발바닥-h6uАй бұрын
@@PrettyT-rex 그저 개인적으로 소소한 댓글이였습니다.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토와덕구Ай бұрын
@@PrettyT-rex이정도도 알아듣지못하면 살면서 쓸때없는것만 배운거겠지
@곰발바닥-h6uАй бұрын
@@하루토와덕구 역사는 역사일뿐, 개인적인 단순한 댓글입니다. 한,중,일의 강단사학에 조금의 위협이 있을수 없습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정성운-d7oАй бұрын
고구려 역사를 지워서 거짓 자체를 모르는게 문제
@배달의민족-o8qАй бұрын
정부~국가~ 역사 학자들 교수 통틀어서 느그들이 한게있긴하냐~?? ㅎㅎ읏을일이지 지금몇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러고있는데 ㅎㅎ 결국 중국한테 다 빼앗긴다 ㅎㅎ
@sirwonjin9616Ай бұрын
다 좋은데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제대로 그리시라. 대륙 동쪽은 고려가 몽고에 땅을 뺏기기 전 까지 삼국과 고려 땅이었음.
@peterzhang324716 күн бұрын
宇宙属于韩国的
@아아아-j4i12 күн бұрын
근거는 하나도 없고 환빠들만 믿는 얘기
@정성운-d7oАй бұрын
안타깝네요
@강물-z5iАй бұрын
큰 나라에서 창피한것은 알고 있니 역사를 손바닥으로 막글수 있니 이 역적 놈들아 넘 추잡하고 더러운 놈들아 열들의식 피해의식 여전이 못나도 넘 바보 의식수준 넘 낮다 한심함
@강물-z5iАй бұрын
하가야 중국 통털어 합처도 대조영 같은 대왕 역대 울 나라 밖에 없지 너네들이 창피해서 그런거 다 알고 있음
@강물-z5iАй бұрын
그당시 여러나라가 합혀 나라를 세운 나라였기에 고구려 이름을 안 붙혔겠죠 그당시 말괄족 백제 서로 썩인 것이겠죠 그니까 서로 자기의 나라의 소리를 낼수도 있었겠네요 온전히 고구려 사람만이 안이였기에 그게 맞을 수도 있네요 서로의 입장차이죠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마한(황하이북, 이남, 산동지역)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중 졸본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졸본,홀본,일본)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왕들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하북성 서화현), 그 오른쪽 개경(북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