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상에 댓글이 얼마 없네요. 어느 주장이 옳다고 하지 않고 소개만 하고 열린 사고를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 느낍니다. 항상 잘 보고 갑니다.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네 되도록 여백을 남겨두려는 편입니다 : )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유은빈-p2e3 жыл бұрын
아니ㅋㅋㅋㅋㅋㅋㅋ 인트로 너무 잘 만드셨는데요? 점점더 어그로 장인이 되어가시는 것 같.....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김순일-m5d3 жыл бұрын
요즘 민혁전도사님 강의로 은혜많이 받고 있어요 제가 말씀을 멀리했는데 다시 말씀을 다시 읽고 묵상하고 있어요^^ 정말 요세 힘이됨니다. 실례지만 이단 강의 부탁 드려도 되나요ㅜ.ㅠ 구원파, 신천지, 여호와 증인 등등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단은 제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조심스럽네요. 듣기로는 바른미디어 채널이 이단에 대해서 오랜시간 다뤄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
@kelvinjr1773 жыл бұрын
12사도 월드컵 해주세요 ㅎㅎ 아니면 구약 예언자 월드컵이요 ㅎㅎ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 좋은 아이디어 감사해요
@민성현-u2j2 ай бұрын
근데 궁금한게 2세기에 종이가 중국에서 발명 됏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양을 감옥에서 쓴거지.... 엄청 비쌋을거같은데...
@dennythedavinchi3832Ай бұрын
당시는 파피루스를 썼습니다. 문제는 그런걸 떠나서 간수가 죄수에게 파피루스를 줘서 서신을 쓰게 허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바울 서신을 읽고 가상의 네레티브를 필사해도 전현 맥락이 맞는 얘기가 하나 없습니다.
@하나림-t6z3 жыл бұрын
영상 목차 노트를 통해 내용 뼈대를 제시해 준 것은 좋은데, 그 목차 구성을 좀 체계적, 논리적으로 하도록 고민해 봐야될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듣고나서 목차는 어느 정도 머리에 남아있게 만들었으면 좋을텐데요.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피드백 감사합니다!
@이규준-q7x3 жыл бұрын
위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진정한 서신과 논쟁적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노예제 찬성여부, 여성의 지위문제, 정치권력의 정당화 문제가 너무 대비되므로 바울의 저작인가에 심각한 의문의 출발점 내지 이 문제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논쟁을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나요?
@davidp-x5l3 жыл бұрын
언급하신 노예제, 여성 등의 문제는 현대에 들어 심각성이 알려진 이후에 생긴 성경의 적용적 문제에서부터 발생한 문제로 보입니다 적용적 문제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유튜브 영상 내용은 그보다 더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생할 수 있는 적용적이거나 실제적인 부분에서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은빈-p2e3 жыл бұрын
아시다시피, 이 책은 신약학 개론서입니다. 그렇기에 '순전히' 학문적인 문제들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10강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리더십', 13강 '성경의 적용과 사용'등에서 글쓴이님께서 언급하신 문제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단순한 논쟁 소개로 그칠까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ㅎㅎ 실천적인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부분에 대해 아는것도 성경을 이해하는 더 넓은 장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theologytoday3 жыл бұрын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답변 남겨주신 두분께도 감사드려요~) 규준님 말씀처럼 윤리적 문제(노예제, 여성 지위, 정치 권력 등)가 위작 논의에 주요한 한 지점일 수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과 이 문제가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위작에 관한 논의는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성, 정경의 형성과 권위 등의 주제와 직결됩니다. 사도성이라는 개념은 정경 형성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로 제시되곤 하는데요. 그런데 과연 바울 서신이 위작이라고 판명난다면 그 “사도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정경에 들어오지 못한 위경과 정경에 들어온 위작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때 성경이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신학적 진술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정경의 권위를 기반으로 도출해낸 교리의 권위는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등등 기독교의 토대를 점검하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굳이 당면한 윤리적 문제와 위작에 관한 논의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물론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논의를 숙고하고 고민해보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