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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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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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연합군 지휘부는 아이젠하워, 브래들리 그리고 몽고메리.
하지만 연합군 최고의 용장이자 싸움닭이라고 불리웠던 조지패튼은
전선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패튼은 전투에 참여하기 전부터 이미 원대한 꿈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비를 미리 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아신다면
패튼이 생각보다 상당히 용의주도했고 전략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마침내 1944년 7월 31일, 패튼이 지휘하는 제 3군은 출동합니다.
너무나 멋진 패튼의 연설 그리고 미국판 전격전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944년 8월 12일, 패튼의 제3군은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를 포위 섬멸할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되는데....
✅ 패튼은 어떻게 강력한 독일의 판터와 티거를 격파했을까? | 2부 : • 패튼은 어떻게 강력한 독일의 판터와 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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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팔레즈포위전#ww2

Пікірлер: 148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FHD로 제작되었습니다. 핸드폰으로 볼 때는 가로로 보면 좋고 PC는 당연히 좋습니다. 전쟁사에 이유없는 승리란 없다! 영상 마지막에 다음 예고편도 있으니 끝까지 시청부탁드립니다. 다음 편 제목은 [패튼은 어떻게 티거와 판터를 격파하며 진격했을까?] 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Жыл бұрын
패튼 장군의 명언 중에 장군이 흘리는 한 방울의 땀이 1갤런의 병사의 피를 절약한다 라는 말이 있지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패튼의 속도전은 미군판 전격전이라고 불립니다. 패튼의 이 전격전 때문에 지나고 보면 오히려 미군의 피를 절약한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현대의 전쟁이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1,2차 세계대전은 그런 정치와 연관된 순수한 전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패튼은 진짜 그런 전쟁에는 맞지 않는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자질로서는 2차대전 때의 연합군 장성중에는 유일하게 싸우는 법에 통달한 진짜 투사이자 진정한 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실제로도 패튼은 롬멜과 단기 승부를 겨루고 싶어했던 유일한 장성이었다고 합니다. 그 전투의 방식을 보면 롬멜과 패튼이 서로 단 한대의 전차를 타고 사막에서 만난 뒤 서로 만나서 악수를 하고 나서 영화 퓨리에서처럼 일대 일의 탱크전을 벌이고 나서 그 승패에 따라서 전투의 승패를 판가름짓자 하는 그런 생각을 평생동안 했다고.....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진짜 패튼은 20세기에 태어난 19세기 프랑스나 영국 중기병대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에서도 패튼을 분석한 독일군 장교가 한 말이 진짜 패튼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도 이 전쟁이 끝나면 사라지게 될거야. 전쟁이 없다면 살아있을 수 없는 그런 인간이니..... 순수한 투사.....이자 진정으로 20세기에는 맞지 않는 고대 시대에서나 빛을 발할 수 있는 진정한 전사 그 자체의 순수한 군인이니...... 진정으로 시대를 잘못 찾은 진짜 착오자이니......'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오늘 컨텐츠에서는 패튼의 익히 알던 그 모습 외에 전략적인 면에 포커스를 뒀습니다. 1944년 7월 31일. 이 날 패튼은 출동합니다. 이 시기의 서부전선 전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패튼의 전략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jongwookchoi7582
@jongwookchoi7582 Жыл бұрын
진정한 용맹한 전사인지는 몰라도 그게 자기 피가 아닌 병사들의 피와 목숨으로 싸우고 승리의 월계관은 자신이 쓴다는 거.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jongwookchoi7582 그러니까 장군인 법이지요. 그래도 패튼은 많은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그런 장군입니다. 무능한 장군 밑에서 개죽음당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유능한 장군 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기도 하고 말입니다. 왜 미군 주력탱크와 장갑자에 패튼과 브레들리 이름이 붙었겠습니까? 사실 병사들의 피와 목숨으로 승리의 월계관을 쓴 장군은 맥아더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맥아더는 병사들이 사지에서 죽는 동안 필리핀에서 호주로 빤스런 하기도 했으니..... (루즈벨트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미군 무기에 맥아더라는 이름은 붙지 않으니까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진짜 패튼 장군은 '나는 20세기가 싫어. 그런 전투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하는 말을 사적인 곳에서 자신의 부관에게 푸념조로 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진짜 패튼은 지금의 정치에 진짜 신경써야하는 장성들과는 틀린 유일한 투사이자 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alexjoo7761
@alexjoo7761 11 ай бұрын
미군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갑기동전을 이해하고 실천한 장군이었죠..
@dksdydgus12
@dksdydgus12 Жыл бұрын
패튼의 명언 내 병사들은 가죽 벨트나 군화를 씹어먹어서라도 진군할 수 있겠지만 전차는 기름없인 안된단 말이다 그러하니 닥치고 기름 내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그리고 그런 전투를 하기 전에 패튼은 롬멜에게 도전장을 보낸 뒤에 신사 대 신사 식의 일기토를 하기를 평생동안 바랬다고......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사실 패튼은 본인이 장군이면서도 항상 최전방에 나가서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변화무쌍한 전쟁 상황에 곧바로 대처하는 그런 유연성 있는 방법으로 전투를 지휘하는 식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하장교들에게도 그 정도급의 폭넓은 재량권을 주었고 말입니다. 패튼의 그런 돌파는 그냥 무대뽀 식이 아닌 변화무쌍한 전장 상황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그런 임기응변 식의 지휘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1944년 7월 31일 패튼의 연설, 로다스 로다스 투주르 로다스! (대담하게 대담하게 항상 대담하게)가 전부였습니다. 큰 밑그림만 지시하고 세부적인 것은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패튼은 독촉만 했습니다. 연합군은 항상 그랬고 독일군도 초반엔 그랬습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손자병법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한 번은 실수를 하는 법이고 멍청한 사람도 계속 생각을 하다보면 한 번은 좋은 생각을 하는 법이다.' 패튼과 몽고메리의 차이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패튼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주력 탱크로 브레들리 장갑차와 더불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지만 몽고메리는 롬멜을 이겼다는 것 말고는 영국의 무기에 이름도 못올리고 (처칠 전차라는 이름을 가진 전차는 있어도 몽고메리 장갑차라는 이름은 없으니까요) 무덤도 지 고향집 근처 공동묘지에 쓸쓸하게 묻혔으니....... 마켓가든 작전 당시 지 실수를 다 뒤집어쓰고 강등 아닌 강등에 퇴역까지 당한 소사보우스키 장군은 그나마 네덜란드 최고 훈장도 수여받고 무덤도 국립묘지에 있지만 말입니다.
@angggery22
@angggery22 7 ай бұрын
12:39 패튼장군에 빙의된 듯 한 멋진 연기였습니다ㅋㅋ 진짜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7 ай бұрын
서부유럽의 독일군 기갑부대에 사망선고를 내린 전투. 팔레즈 전투 당시 실제 있었던 패튼장군과 브래들리의 대화입니다. 이것은 전후에 미국 내에서도 논쟁이 많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여기서 살아나간 독일기갑부대가 벌지전투에서 다시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브래들리 장군의 조심성 넘치는 성격과 조지패튼의 저돌적인 성향이 잘 대비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지패튼이 말만 저렇게 했지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43년 7월 당시 부하 구타 문제로 해임당한 경험은 패튼에게 트라우마였던 것입니다.
@user-nl1me3uj1i
@user-nl1me3uj1i Жыл бұрын
병법의 원칙상,너무 완벽히 포위를 하면 상대는 포위를 돌파하려고 전력을 집중하게 되니, 한쪽을 열어 준다면 전투의지는 떨어지게 되고 아군도 희생을 많이 줄일 수 있겠죠. 하지만 도망가는 병력이 다시 온전하게 나타나 무서운 충격을 줄 기갑집단인 이상 어떻게든 절멸시켜야 했기에 패튼이 하는 말도 맞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최선의 결과는 몽고메리와 패튼이 양날개가 되어 포켓을 독일군이 도망가는 방향으로 길쭉하게 늘리고 도망가는 독일군을 계속 공군력으로 치면서 다 죽을 때까지 따라가는 게 좋았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수부타이가 헝가리군을 전멸시킨 방법이지요.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그당시 연합군은 서로의 이익을 강하게 추구했었죠.
@jongwookchoi7582
@jongwookchoi7582 Жыл бұрын
패튼이 고집불통에 단순무식 스타일로 오해받기 딱 좋은데...의외로 엄청난 독서광이었다죠....그의 탁월한 시야와 전략들이 저절로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것들이 아니었던것.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분명히 오늘 말씀드린 패튼의 저 계획은 애초에 연합군 지휘부에서는 구상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패튼이 전장에 나타난 것이 44년 8월 1일이었는데요. 그때까지 연합군은 노르망디 전선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편 영상에서 패튼만의 티거와 판터 상대하는 법을 주제로 다루겠지만 이번 편에서 나온 전략은 순전히 패튼의 생각이었습니다. 자신만의 필승 전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해임당할까봐 고민했던 그의 독백내용도 모두 사료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user-yx1vy5ry6c
@user-yx1vy5ry6c Жыл бұрын
항상 양질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엄청 기대하고 있었습니다ㅎㅎ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좋은 영상부탁드립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응원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패튼은 동쪽으로 독일군을 쪼개고 진격했고 마침내 연합군은 노르망디 전선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전역은 연합군의 대승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패튼의 전략에 대해 다뤘습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패튼이 어떻게 허접한 셔먼을 끌고 독일의 판터와 티거를 격파하며 진격했는지 그의 전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goguryan
@goguryan 10 ай бұрын
전생에 로마군으로 아프리카에서 한니발과 싸웠다고 말하곤 했던 패튼. 롬멜의 책으로 전차전에 대해 공부한 패튼...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10 ай бұрын
패튼을 무식한 돌격형 장군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사실 그는 굉장히 전략적이며 나름 신중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번 컨텐츠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전략적인 인물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독일군의 방어망을 뚫고 파리까지 가는 길을 연 사람은 패튼이었습니다. 패튼이 상대적으로 강력했던 독일 기갑부대를 맞아 어떻게 신속하게 진격할 수 있었는지 다룬 컨텐츠가 후속편으로 이어집니다. kzbin.info/www/bejne/lXjae3msZdpsetk (패튼은 어떻게 강력한 독일의 판터와 티거를 격파했을까?)
@yosemityful
@yosemityful 4 ай бұрын
브래들리는 덕장 부하군인들의 생명을 소중히하고 사랑하는 장군, 패튼 은 맹장 용감 하고 똑똑하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음 따라서 부하군인들도 모두 용맹무쌍함 ,.. 101 공수 부대도 원래는 브래들리의 1군단 소속이지만 자주 3군단에 대여 되었음.
@ErichLudendorff739
@ErichLudendorff739 Жыл бұрын
서부전선이 쉽게 이해가네요 감사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 6월에 시작되었죠. 그런데 정말로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전투는 그 후부터 벌어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상륙작전에 일단 성공해서 상륙은 합니다만 2달 넘게 연합군은 프랑스 내륙으로 치고 나가질 못하고 죽을 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몽고메리, 브래들리 이 두 사람 모두 죽을 쒔습니다. 그러나 패튼이 연설을 하고 나타나자마자 그는 마치 풀려난 짐승이 달려나가듯이 독일군을 몰아치게 됩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가 그랬습니다~ 팔레즈 전투 예고편 (kzbin.info/www/bejne/pmW9fYyVgc12nsk) 한번 보시지요. 왜 드라마틱한 전투가 펼쳐졌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예고편 영상입니다!
@Nagisa_Nakanami
@Nagisa_Nakanami Жыл бұрын
영상 멋지네요 나레이션도 좋고 잘 봤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yosemityful
@yosemityful 4 ай бұрын
바스톤 구출 작전때 날씨가 나빠지자 군목 불러 기도문 주문한 설 품 패튼: 당신 군목은 나보다는 하나님 과 가까운 사이 이니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해 날씨좋게 만드시오 군목; 그런기도는 아주 두꺼운 카펫이 필요할껍니다 (아주 오랬동안 열심히 기도해 카펫이 닳아 없어질때 까지 기도해야 된다는것을 암시함) 패튼;나는 당신이 날으는 양탄자가 필요 하다 해도 명령 할것이오 당신도 군인이오. 군목:옜써!! 그날밤 군목은 바로 기도문 을 작성 하고 기도문 베포 하면서 모든군인은 특정시간에 읽고 기도하라 명령 함. 군목은 휘하 군목과 함께 또한 밤새도록 기도했다함. 그다음날 날씨는 화창 했고, 패튼은 이런말을 하면서 훈장수여 하겠다 라고 말했다 함 "그 군목 내 생각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였나 보네 그런 군목은 훈장 수여 (Decorate) 해서라도 하나님게 잘 보여야 겠다" 라고 함. 그런데 이말 하면서 그거친 입 때문에 험한 말 썼다 함(영어로 that S.O.B Priest 라고 말했다고함).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래서 전쟁 끝나자 마자 그를 데리고 가지 않았나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함. 기도문 영어 전문 Almighty and most merciful Father, we humbly beseech Thee, of Thy great goodness, to restrain these immoderate rains with which we have had to contend. Grant us fair weather for Battle. Graciously hearken to us as soldiers who call upon Thee that, armed with Thy power, we may advance from victory to victory, and crush the oppression and wickedness of our enemies and establish Thy justice among men and nations. Amen. 번역 하면 전능하시고 가장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의 가장 큰 선하심으로 우리가 참아야 했던 이 과도한 비를 그치게 해주시기를 당신에게 겸손히 간구합니다. 전투를 치를수 있도록 좋은날씨를 간구합니다. 자비로우신 당신에게 당신을 부르는 군인인 우리의 말을 은혜롭게 들어 주소서. 당신의 힘으로 무장하여 우리가 승리에서 승리로 나아가고, 우리 적들의 압제와 사악함을 분쇄하고 인간과 나라들 가운데 당신의 정의를 세울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user-uk7du8vu9p
@user-uk7du8vu9p Жыл бұрын
맹렬한 패튼장군의 공격은 독일 장군들은 물론 히틀러 총통도 관심을 갖고 있었고 다만 비슷한 시기에 쏘련군 대반격(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 중앙군 집단이 괴멸되어 패튼을 막기가 어려웠습니다(헤르만 발크 장군이 실패한 몇안되는 사례), 그리고 이 패튼의 기동전은 너무나 유명해서 나중에 북베트남 군이 월남전 후기에 맹렬한 진격을 할 때 (v 티엔 덩 대장)은 "멈추지 말고 계속 공격하라"고 패튼 장군의 흉내를 냈다고 합니다~
@user-eh1cn6xr8o
@user-eh1cn6xr8o Жыл бұрын
난 개인적으로 패튼이 업적이 많아도 별로라고 생각함 내로남불이고 특히 타이어에 구두약칠해서 깔끔하게 하는거 이게 제일 싫어함 이걸 처음한게 패튼인걸로 알고있는데 이렇게 조직에서 쓸데없는데 힘쓰는 윗대가리를 제일 먼저 프레킹해버려야함 오죽하면 패튼부대 구분하는 방법중에서 장비들에 달린 타이어가 깨끗한부대가 패튼부대라고 하던데...이런걸 멍청하고 융통성없는 국군이 생각없이 이어받아가지고 지금도...난 개인적으로 유능해도 내로남불에 억척스럽고 쓸데없는곳에 미련하게 힘쓰고 고집부리는 녀석은 손절하고 아쉬운소리안할려고 자급자족함
@javaxerjack
@javaxerjack Жыл бұрын
근데 패튼은 아시아에 않 왔다는거.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만약 1945년에 교통사고로 어이없이 죽지 않았다면 분명히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것입니다. 맥아더 대신에 말입니다 실제 활약도 더 기대됩니다. 왜냐하면 패튼은 분명 맥아더 보단 지상전 전문가니까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사실 패튼이 그런 모습을 보인 것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음 싸운 미군들은 진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서 오히려 독일군들이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진짜 패튼이 부임했을 당시에는 사기와 기강이 완전히 개차반 급이었다고...... 그래서 패튼은 그런 식으로 기강부터 잡고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부분은 패튼과 앙숙인 몽고메리도 북아프리카에 부임해서 맨 처음 한 일이 그런 식으로 기강과 군기를 잡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몽고메리 왈 '군복과 군화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군인은 군인이 아닌 무뢰배에 불과하다. 죽더라도 깨끗하고 멋진 시체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영국군의 전통이다.' 라고 맨날 자신들의 부하들을 들들볶았다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북아프리카 전선의 미군이나 영국군이나 처음에는 진짜 시어머니 등쌀에 속썩는 며느리 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다른 장군들보다는 뭔가 해 낼것 같지 않나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user-zh5jl4hj1w
@user-zh5jl4hj1w Жыл бұрын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튼 휘하 부대 병사들의 생환율이 제일 높았고, 병사들은 이런 패턴을 가장 좋아했다 합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user-zh5jl4hj1w 뭐...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군은 자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장군일테니까 말입니다. 그 몽고메리와는 틀리게.....
@user-vw7rn8zy4i
@user-vw7rn8zy4i 4 ай бұрын
패튼은 매우 창의적인 인물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전황에 대응해야하는 창의적인 전략전술은 지휘자에게 필수 능력입니다. 쫄병 구타사건이 있었더라도 아이젠하워가 막아주었어야 하는겁니다. 아무리 리더쉽이 있다 하더라도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이 옳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일군도 최정예이니 저는 팔레즈포위전략의 성공가능성은 50%로 봅니다. 그러나 도주하느라 전열이 흩어지는 독일군에게 막대한 피해는 강요할 수 있으니 100% 승리가 아니라고 해도 성공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몽고메리도.. 이집트에서 운이 좋아서한번 승리한 것이지 그후 내내 바보짓만 하더군요.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그런 부분이 서부전선 전투 당시 몽고메리의 탁상공론 식 전투 (마켓가든 작전) 보다 더 돋보이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사실 몽고메리는 모든 상황을 다 계산한 뒤에 작전을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북아프리카같은 그런 곳에서는 먹힐 작전들이 서부전선에서는 완전히 개판 오분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했으니.....(팔레즈 포켓전, 캉 전투, 마켓가든 같은 전투)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팔레즈 포켓, 캉 전투 모두 채널에서 다룬 전투들입니다. 패튼이 몽고메리를 이렇게 평가했죠. 몽고메리 그놈은 그저 준비 준비, 준비가 되기 전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놈이다. 오늘 소개한 이 컨텐츠에서 패튼이 브르타뉴 반도에서 부터 동쪽으로 쭉 가르고 진격하는 작전은 원래 연합군 지휘부의 머리에 없던 계획이었습니다. 패튼은 브르타뉴 반도의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 원래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패튼은 자기가 일단 일을 저지르면 지휘부에서도 독일 기갑부대를 포위섬멸할 자신의 뜻을 받아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지휘부에서도 들어주긴 했는데 브래들리의 안전제일주의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를 전멸시키는데는 실패했습니다.
@user-kz1sv1lv8e
@user-kz1sv1lv8e 3 ай бұрын
유능한 장군들은 독일쪽에 집중 되어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조지 패튼 영상들 볼수록 만슈타인 롬멜 못지않은 명장이네요 병사는 왜 때렷대 😅;;
@user-kz1sv1lv8e
@user-kz1sv1lv8e 3 ай бұрын
10:12 댕댕이들 군견인가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3 ай бұрын
패튼의 성향은 중세에 태어났다면 기사가 딱 맞는 인물이었습니다. 패튼이 봤을 때 그 병사가 엄살을 피운다고 봤기 때문에 때린 것입니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와 한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이런 논리입니다. 이 사건이 커진 이유는 언론 때문입니다. 언론이 미국 본국에 장군이 병사를 패는데 어떻게 맘놓고 군대를 보내냐? 이런 류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이게 1943년의 일인데 한국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3 ай бұрын
군견은 아니고 조지패튼의 제3군 병사들이 진격하는 도중에 프랑스 마을로부터 얻은 강아지로 보입니다. 독일군도 마스코트 삼아 강아지 한마리를 전차에 태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user-kz1sv1lv8e
@user-kz1sv1lv8e 3 ай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마스코트 강아지 델꼬 댕기는건 처음 들어서 재밌네요 ㅎㅎ 2차대전 다루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도 같이 보고 있는데 여기 영상들 하나하나 퀄리티들이 방송사 못지 않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3 ай бұрын
@@user-kz1sv1lv8e 다큐채널도 이렇게 리얼하고 깊이 있는 멘트는 날리지 못합니다.
@user-zf1bu5ms9i
@user-zf1bu5ms9i 10 ай бұрын
패툰은연합군의영웅이다,영국몽고메리는안전주의로작전했고브래들리는돌파력이없었다 여기에패튼이나서야만해ㅆ다,독일도패튼을두려눠헜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10 ай бұрын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해 상륙이 성공하고 나서 끝!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연합군은 무려 2달동안 지지부진했고 엄청난 희생을 냈습니다. 몽고메리도 2달이 다 되도록 제대로 돌파 한번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하 구타 문제로 나서지 못했던 조지패튼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미친듯한 질주가 시작됩니다! 바로 패튼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levanmagnus3499
@levanmagnus3499 Жыл бұрын
되니츠에 대해 올려주실수잇습니까?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카를 되니츠도 다룰 예정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hawk8873
@hawk8873 Жыл бұрын
저런 무대뽀 식 기동에 대해 당대에도 비판의 소리는 있었습니다만 전후 통계 분석을 통해 패튼이 옳았음이 입증되었죠. 모험을 안한다고 전쟁중에 병사가 죽어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오직 신속하고 올바른 기동만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는 우격다짐에 가까운 패튼의 기동에 대해 부하들이 당혹해 하기도 하고(보병 지원중이던 전차가 훌쩍 전장을 떠서 다시 공격전으로 가버리는,,, 보병들이 지원 안해줘???라면서 애원하는 상황도 종종 있었죠.) 했지만 결과는 다른 어떠한 부대보다 희생이 적었다는 것으로 패튼의 전술이 옳았다는 것이죠. 대신 기갑의 피해는 매우 큰 편이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군과 계속 싸워왔던 북쪽의 영미군이 기갑 피해가 그보다 적은 것도 아니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론 거칠긴 했지만 패튼의 전술 기동이 당시에 가장 훌륭한 전술이였음에는 이론이 있을 수가 없었다는거.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네! 정확하시네요. 패튼의 방식은 롬멜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브래들리는 성향상 안전하게 가고 싶어했습니다. 브래들리는 무리해서 포위망을 닫게 된다면 영국군과 미군끼리 오인사격 문제, 그리고 포위망을 뚫으려는 독일 기갑부대를 패튼이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패튼은 언제나 확신이 넘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둘 중 누가 옳다고 말하기가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때 탈출했던 독일 기갑부대 장교 및 병사들은 상당수가 벌지대전투에 나타나게 됩니다.
@GoodBoy-wd9iy
@GoodBoy-wd9iy Жыл бұрын
어떤 미군 보병들이 독일군의 MG42 진지에 돈좌됬을 때 셔먼 탱크가 나타나서 환호성을 질렀지만, 미군 보병들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고 내달리는 셔먼 탱크에게 온갖 심한 욕을 다 했었다죠..ㅎ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13:17에 나온 브래들리와 패튼 두 사람 중 누가 옳다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 전쟁사를 보면 계속 반복된 원칙 하나가 떠오르네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대승은 없다! 만슈타인이 했던 말이었죠. 만슈타인 전설의 시작 (kzbin.info/www/bejne/qpTHg5-AZ7Wafrc)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브래들리는 자신을 돌볼줄 알았고 패튼은 오로지 충성만을 했던 사람입니다.패튼은 머랄까...중세시대 기사를 꿈꿨던 인물이죠.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로맨티스트랄까요?
@user-cq5cz7zd5c
@user-cq5cz7zd5c Ай бұрын
기갑군단을 이끄는 최고지휘관은 롬멜 기갑전을 설계하고 지원하는덴 구데리안 전선을 보고 전략을 기획하는덴 만슈타인~독일장성들 정말 유능한 사람이 만아요~병사와 장비 보급만 미국처럼 받았으면 연합국이 이기기 어려웠을겁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Ай бұрын
만슈타인이 감독이라면 구데리안과 롬멜은 스트라이크커 쯤 될 것 같습니다. 구데리안과 롬멜의 차이가 있다면 구데리안은 만슈타인의 절친이기에 전격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세계 최초로 전차를 집단적으로 운용하는 기갑사단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독일의 1호~4호 전차 설계에도 관여한 전차의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반면 롬멜은 보병이었다가 다소 늦게 전차사단의 매력에 빠졌지만 열정에 있어서는 구데리안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열정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널에서는 구데리안 시리즈, 만슈타인 시리즈 등에서 매우 자세히 이 사실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롬멜에 대한 컨텐츠만 해도 30개가 넘습니다
@user-cq5cz7zd5c
@user-cq5cz7zd5c Ай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슈타인 감독 구데리안 미드필드 롬멜 스트라이커가 젤 이상적입니다 ㅋ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Ай бұрын
구데리안 1부를 안보셨다면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kzbin.info/www/bejne/apnLqqmEe6ilaLc (구데리안 1부)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Жыл бұрын
사실 2차대전때 미육군의 최고의 명장을 꼽으라면 아이젠하위와 패튼을 들 수 있습니다. 맥아더는 아닙니다. 아이젠하위와 패튼 두 분 다 여전히 저평가된 진정한 명장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일전에 아이젠하워에 대한 컨텐츠 (kzbin.info/www/bejne/lWbTZ2lopd5-aZo) 를 2부작으로 다뤘었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2부 마지막은 감동까지 있을 것입니다.
@Pudding1004
@Pudding1004 Жыл бұрын
패튼이 무조건 돌격형 맹장이기보다 매우 치밀한 전략하에 움직이는 지휘관이었네요! 불같은 성격에 스피드를 추구하는 분이 쫒겨날까봐 군율을 지켜가며 승리를 얻어가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 상황에서는 브래들리 판단이 옳았다는 쪽입니다.(적은 희생) 흥미를 더해가는 패튼 컨텐츠 다음 주도 기대하겠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패튼의 별명이 영상제목처럼 싸움닭입니다. 돌격형 장군이죠. 사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영상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패튼은 전략가였습니다. 패튼이 아브랑슈에서부터 동쪽으로 진격하잖습니까? 그것은 순전히 패튼의 전략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지도로 설명드렸으니 아시겠지만 몬티와 캐나다군은 지지부진했고 브래들리도 지지부진했습니다. 패튼이 약간 남쪽에서 뚫고 지나갔기에 독일군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노르망디 방어선이 무너진 것입니다. 독일입장에서는 그 부대가 패튼부대인지도 모르고 당했습니다. 패튼은 아브랑슈에서 출발할 때 이런말을 했다고 하죠. 어짜피 일이 커지면 지휘부에서 따라가게 되어 있다.
@james00700
@james00700 10 ай бұрын
이양반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면….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10 ай бұрын
해외에서도 If~라고 해서 이 이슈가 나온적이 많습니다. 패튼이 살아남았다면 6.25전쟁에 반드시 참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 중 하나는 빠졌을 거라고 하더군요.
@user-ri8hq1jb9s
@user-ri8hq1jb9s 9 ай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맥아더가 정치력9단에 직급도 높은데 패튼참전 막는건 너무 쉽지않았을까요..?심지어 극동은 맥아더 나와바리인데.. 기갑전의 달인인 패튼이 625혈전에서 잘했을까 라는 가정하기도 전에요
@keb199210
@keb199210 10 ай бұрын
보카쥬
@user-eb5tr5nj8g
@user-eb5tr5nj8g Ай бұрын
패튼 장군지지함
@dugo7119
@dugo7119 Жыл бұрын
패튼이 전략가는 맞죠. 대응시간 안주고 일단 몰아붙어 수세로 만들어 버리니.. 그만큼 공세에 유리 다만.. 그밑 입장은 엄청 많이 죽을수 밖에 없는게.. 셔먼 대 타이거, 팬터.. 비교가 않됨 유럽 전개한 미군 3기갑사단 셔먼전차 완편이 220대.. 44.6부터 45 종전까지.. 박살나 새전차가 680대.. 거기에 전투중 피격으로 수리가 대충 700대 두개 더하면 1300대... 당시 전차 수리병 이야기 들어봐도.. 안에 구멍나면 성형작약탄 메탈제트 효과 일단 다 죽는다던데.. 청소를 해도.. 어딘가 살점이 남아있다던.... 대전자 셔먼 완편이 220대인데.... 다죽었단 소리...// 지금으로 치면 공도리를 갈아넣은게 패튼. 물론 전략목표란 측면 명장으로 볼수 있슴(이와 반대가 태평양전쟁 그나마 잘나갈때 초반 일본군 미른만 전투-산호해나.. 사보섬해전같은.. 전투자체는 일본이 이겼다고 볼수 있으나.. 전략목표란 측면 실패한게 일본군,, 가뜩이나 딸리는 일본입장 큰흐름이 나빠지는계기) 이사람 최후가 종전후 독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데... 전쟁중 갈려나간 원혼들이 물귀신작전 쓴거다라고 해도 할말없을정도 자국군인들 막갈아넣은 사람 .. 벌지전투만 봐도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연합군 수뇌부는 각 국 장군들에게 알맞게 전공을 줘야했고 전후 소련과의 대결을 준비해야했기때문이죠.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Жыл бұрын
패튼 장군의 심복 중 한 분이 6.25때 낙동강전선을 사수한 워커 장군이십니다. 패튼 장군은 생각없이 반자이돌격이나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며 오히러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워커 장군도 정말 훌륭한 군인이셨지만 맥아더에게 시달리다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그래서 본 영상에선 패튼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도록 그가 얼마나 전략적인 사람이었는지 소개했습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이후 2달동안 연합군은 보카쥬 지형에 갇힌 채 제대로 치고 나오지 못하고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결국 전선돌파는 패튼이 하게 됩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전쟁에서는 군인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한 빠져선 안되는 부속품인겁니다.누가 뛰어나고 모자라다는건 없습니다.누군가 실수를 했기때문에 그 반대로 상대가 뛰어나보이는겁니다...패장이 있어야 명장이 생기지 않습니까?...패튼을 말하기전에 그의 소속 군인들을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결국 장군 한명의 영광을 위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많은 병사들의 희생이 있었죠. 그러나 패튼의 빠른 진격 덕택에 미군의 희생이 더 커지지 않은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패튼의 운명도 그렇게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1945년 12월, 패튼은 미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묻힌 곳에 묻히게 됩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마치 어린 아이 같았던 사람...집안도 엘리트 군인집안...유복하기도 했고 억눌리기도 해서 힘들었던 사람...제가 보는 패튼입니다...아마 그래서 주위를 돌아봐주기가 힘들었을겁니다.주위에선 그런 사람을 이해해주기 힘들죠.그런점에서 브래들리에게 많이 의존하고,브래들리도 그만큼 돋보였을겁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패튼이 은퇴할때 주위 측근들이 참 많이 안타까워했었다죠.장군의 위치때와 물러날때의 뒷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padoelec
@padoelec 7 ай бұрын
목소리는 구데리안 인데~~
@tassader3317
@tassader3317 Жыл бұрын
몽고메리가 캉을 빨리 확보 못한게 방어선 돌파에 오래걸린 이유중 하나라고 봄 캉을원래 몇일만에 점령할 계획 이었죠? 몽고메리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꽤나 전략적인 질문 감사합니다. 원래 연합군 계획에는 캉을 몽고메리가 상륙 당일에 점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tassader3317
@tassader3317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당일이요? 하루만에 점령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한거였음? 몽고메리가 ㄷㄷ 아이젠하워 속이 뒤집힐만하겠내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몽고메리기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연합군 작전을 그렇게 짰습니다. 지도를 보면 캉이라는 도시가 거의 해안에 붙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몬티가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독일 기갑부대 때문이었죠. 기갑교도사단 그리고 12ss히틀러유겐트 기갑사단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몽고메리가 캉을 완전히 안전하게 점령하고 치고 내려오려고 했던 어려웠던 전투 굿우드 작전! 이미 채널에선 다뤘던 전투입니다. 몽고메리 폭망전투 굿우드 작전! (kzbin.info/www/bejne/aojWmo2Vl8aLe8k) 이 컨텐츠를 보시면 왜 그토록 몬티가 진격을 못하고 헤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sso4156
@sso4156 Жыл бұрын
만약 패튼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중국군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말씀하신 그 이야기가 패튼 관련 서적에 언급되더군요. 공산주의 소련을 싫어하는 그의 성향상 그가 죽은 5년 후 벌어지는 6.25전쟁에 무슨 수를 써서든 참전했을 것이고 지상전에 있어서는 맥아더보다 한 수 위였던 패튼은 분명 맥아더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levanmagnus3499
@levanmagnus3499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하아 안타깝네요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약 극동군 사령관이 패튼이었다면 암살당했거나 3차 대전이 났겠죠.글고 우린 통일을 했을겁니다...아마 만주까지도...
@levanmagnus3499
@levanmagnus3499 Жыл бұрын
@@user-mz3ho4cm8v 3차대전은 가능성없고요 만주까지 갈 명분없습니다
@jspenzer1004
@jspenzer1004 Жыл бұрын
저는 그냥 블레들리나 아이젠아워 장군님 운전수나 하겠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브래들리나 아이젠하워 운전수나 하는 것이 사실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네요.
@G80G70
@G80G70 10 ай бұрын
현명 현명.
@cz1310
@cz1310 Жыл бұрын
하하하 저런게 구타면 한국군은 살인죄로 기소되겠구만.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맞는말씀입니다. 그런데 2:32 에 약간의 힌트가 있습니다. 괜히 저런 자막을 단게 아니거든요. 당시에 미국 내에서 전쟁터로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반발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언론탓이었습니다. 병졸 하나 때렸다고 3성장군이자 이탈리아 시실리 점령의 영웅을 해임하다니 말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과거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극성에 기레기들이 막 쓰는 그런 기사가 문제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라고나 할까요? 병사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그런 현대식의 군대는 패튼같은 그런 순수한 전사이자 투사에게는 진짜 익숙하지 않았을지도...... 그런데 사실 그 부분을 보면서 생각난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패튼은 아무나 막 손찌검이나 욕설을 하는 그런 장군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전에 한 병사가 목에 관통상을 입어서 넥타이를 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의 미군은 사열식을 할 때 군복에 넥타이를 매어야만 했다고..... 영국군 식 전통인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넥타이를 매지 않은 노타이 차림으로 사열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본 패튼 장군이 욕설을 퍼붓자 그 병사는 말없이 자신의 셔츠 단추를 푼 뒤 목에 난 관통상을 패튼 장군에게 보여주니까 그것을 본 패튼 장군이 괜히 뻘줌해저서 부끄러워 하는 듯한 모습으로 말없이 그 병사를 지나갔다고.......
@cz1310
@cz1310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패튼은 그 뒤에 언론에 계속 시달렸더군요.영화를 보면 잘 묘사가 되더군요.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아직 미혼이시고 아기가 없으시죠?...
@m2cheki1
@m2cheki1 Жыл бұрын
전성기의 롬멜과 붙었더라면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아마 유튜브 플랫폼에선 최초로 말씀하신 그 주제를 다뤘을 겁니다. 패튼 vs 롬멜 과연 그 승자는? (kzbin.info/www/bejne/e5OpoKeIbpZke9E) 이 컨텐츠를 보시면 패튼과 롬멜 그 엇갈리는 운명에 대해 매우 자세히 나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불과 며칠 차이로 롬멜은 본국으로 가버렸죠. 너무나 아쉽게도 두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계속해서 비껴갔습니다.
@pixvod
@pixvod Жыл бұрын
2:05 혹시 6월을 육월로 읽으신 건가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그렇게 발음했네요. 뒤에 6일이 있다보니...
@pixvod
@pixvod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람이 완벽할 순 없으니 그럴 수 있죠. 다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채널인 만큼 실수 하나하나가 보는 분들에게 영향을 줄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2차대전 전략과 전투를 다방면에서 정확하게 분석하는 몇 안 되는 채널이라 어서 유명해졌으면 좋겠네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pixvod 세밀하게 봐쥐니 감사합니다.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Жыл бұрын
세계 최대의 사기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05:24 에 나온 패튼을 잉글랜드 남동부에 박아놓고 쳐들어올 것처럼 했던 연합군의 포티튜드 작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넵! 덕분에 그걸로 저 롬멜까지도 낚아올렸습니다. 혹시나 혹시나하면서도 베를린이 부르자 냉큼 달려 갔을 정도니까!! 패튼은 면이 왕창 상했을터이지만 지은 죄도 있고 나중에 벌충하긴 했지요..... 이런예기 들을 수 있는 곳 흔치 않습니다. 감사
@QuovadisDomine317
@QuovadisDomine317 Жыл бұрын
최정예부대는 맞죠. 몽고메리부대 싸워 만신창이된 최정예부대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패튼이 동쪽으로 쭉 가르고 진격하잖습니까? 거기서 마주친 부대는 최정예 독일 기갑사단은 아니었고 판터와 티거가 간혹 나타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분명 판터와 티거를 상대하며 진격했기에 셔먼으로 쉽게 이길 만한 쉬운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최정예 부대라고 묘사한 것은 몬티와 캐나다군과 싸우고 있던 북쪽의 그 부대들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2달동안 싸우면서 아작이 난 상태였습니다. 패튼은 그 부대들을 아예 다 이 기회에 포위해서 쓸어버릴려고 했던 것입니다.
@joinso3744
@joinso3744 Жыл бұрын
아무리 그래도.. 전 롬멜이 더 좋습니당!!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저도 롬멜이 좋습니다. 패튼은 저돌적이고 용감했지만 너무나 빵빵한 자원을 받으며 싸웠습니다. 그러나 롬멜은 제대로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원맨쇼를 했으니까요. 이 컨텐츠의 핵심은 노르망디 상륙 이후 연합군은 두달간 제대로 진격도 못하고 허둥댔다는 사실과 그 전황을 180도 바꿔버린 것이 패튼의 전략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다음 컨텐츠에서는 구체적으로 패튼이 막강한 독일 기갑부대를 어떻게 격파했는지 그 전술적 측면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전쟁의 전후처리까지 하는걸 전략이라 한다면 전술은 단지 전쟁을 하는 방법일뿐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바로 다음 영상에서 말씀하신 그 전술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패튼은 전술가이지 전략가가 아닙니다. 그건 그가 멕시코 전선에서의 전투에서도 보입니다.정치군인이 되길 원했지만 그만한 그릇도 못됬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패튼이 만슈타인급 전략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뛰어난 용장이자 노르망디 전선을 돌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 지휘부의 전략개념이 패튼보다도 못했다는게 문제였죠. 결국 전선돌파를 한 것은 패튼이 나타나고 난 후였습니다. 패튼이 이 영상에 나온 것과 같은 기동을 했고 그 기동을 계획한 것은 팩트입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패튼이 구체적으로 독일 기갑부대를 상대한 전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는 분명 용맹했습니다. ..세간에선 그런 사람을 맹장이라 하죠.다만 정치적 부분에선 부족했습니다,그래서 용장은 아닌거죠.
@user-mz3ho4cm8v
@user-mz3ho4cm8v Жыл бұрын
@@만물상자TV전쟁의신 비스마르크 사후 전략가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Жыл бұрын
그릇이 못된다? ㅎㅎㅎ
@jtk6911
@jtk6911 5 ай бұрын
소련의 로코소프스키가 더 명장이라고 생각되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5 ай бұрын
로코소프스키도 대단한 명장이긴 했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소련 측 장군들의 활약은 자료가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패튼이 뛰어났던 점은 몽고메리, 브래들리 등 주변 장군들이 모두 죽을 쒔기에 패튼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는 점이었죠.
@user-ps9fq5ln4f
@user-ps9fq5ln4f Жыл бұрын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장군이 독일군에서는 쇠르너이고 연합군에서는 패튼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부하들의 목숨보다는 자신들의 출세와 명성을 우선시 하는 관종끼가 다분한 작자들이다. 반대로 롬멜은 1차대전 초급장교 시절부터 의미없는 전투나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세우는 방식을 철저히 경멸했다. 포로학대나 양민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수치로 여겼으며, 사병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솔선수범의 모범과 기사도 정신을 보여줬기에 적군인 연합군 장병들과 심지어 처칠로 부터도 깊은 존경을 받게 된다. 독일과 연합국 모두에게서 사랑받은 유일한 장군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기다 독일군의 트레이드 마크인 소수로 다수를 쓸어버리며 파죽지세로 돌파해 버리는 전선장악력 까지....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쇠르너라는 인물이 성질이 아주 포악하고 평판도 별로 였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저 또한 롬멜이 부하들에게도 평판이 매우 좋은 장군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30만의 북아프리카 군단 병사들이 포로로 잡혔죠. 이 소식을 본국에서 들은 롬멜은 처음에는 그들을 후퇴시켜야 한다고 히틀러에게 항의했지만 이들이 모두 포로가 되었단 소식을 듣자 "신은 현명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차라리 연합군에게 포로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패튼 또한 부하들에겐 평가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상스러운 말투나 철모나 군화를 깨끗히 하는 등의 군기잡기는 모두 전투에서의 자신감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전장에서 앞장을 서는 등 병사들 사이에서 평가는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롬멜은 아마 살아남았어도 전범재판에서 나올 것이 별로 없었을 겁니다. 북아프리카 전투에서는 전쟁범죄가 1건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hawk8873
@hawk8873 Жыл бұрын
패튼과 쇠르너를 단순비교하긴 급이 다르고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 독일 연방군에서의 롬멜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박합니다. 그의 전술적 기량과 장군으로서의 역량은 별개 문제라서요. 서방측 역사가에 의해 가장 거품이 많이 낀 장성이 바로 롬멜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Жыл бұрын
@@hawk8873 전략가로서는 부족한 인물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롬멜은 진짜 신사이자 무인으로도 최고인 장군이자 타고난 전술가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품도 뛰어나고 말입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울 때 영국군 야전병원에 식수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롬멜이 직접 식수를 자신의 지휘차에 싣고 가져다주니까 영국군이 그 답례로 위스키와 와인을 실어주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전투 자체도 진짜 민간인 학살같은 그런 전쟁범죄 없는 20세기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군인과 군인이 지략과 실력으로 싸우는 그런 깨끗한 전투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2차대전이 끝난 뒤 과거 독일군 퇴역병들의 전우회 활동은 그런 전쟁범죄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국가에서 금지했지만 유일하게 독일 연방정부가 허락한 전우회 활동이 바로 북아프리카 아프리카 군단 전우회였다는 것은 진짜.......
@GoodBoy-wd9iy
@GoodBoy-wd9iy Жыл бұрын
패튼은 최선봉의 탱크가 판터 전차랑 교전하는 장소까지 지프차를 타고 나타나서 독전을 했던 용장입니다
@touchme6097
@touchme6097 Жыл бұрын
패튼 진짜 잘한거 하나 군기확립!! 부하들 사기 올리는거 하나는 잘했죠. 결국은 전장에서 갈아버리기 위한 거였지만..ㅋ
@user-uh9kk3qb2d
@user-uh9kk3qb2d 9 ай бұрын
무슨 전략가..미공군의 지원이 없다고 가정하면 콩가루 됬을텐데..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9 ай бұрын
06:58 에 패튼이 미군 지휘부에서 가장 전략적이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원래 연합군 지휘부가 패튼의 제3군에게 맡긴 미션은 단지 항구 확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패튼은 브래들리와 몽고메리가 가장 중요한 미션달성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자 자신이 가장 그 핵심적인 미션을 달성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그 상황을 매우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user-od5dt6rf1o
@user-od5dt6rf1o Жыл бұрын
소련군이 다차린 밥상에 숫가락올린 미군😊😊😊😊
@12bjquswn
@12bjquswn Жыл бұрын
윤석열이 같은 놈 갔다 쓰지마시요
@james00700
@james00700 10 ай бұрын
째매이는?
@user-fd4do9tf5c
@user-fd4do9tf5c 9 ай бұрын
정신차려라
@user-eu9vw3mn8y
@user-eu9vw3mn8y 9 ай бұрын
중국 짜장
@user-cv6ng7we9i
@user-cv6ng7we9i Жыл бұрын
러시아가 있어서 세계대전은 끝났다 미국과 영국은 싸우는 모양새만 냈을뿐이야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패하고 도망쳤고 노르망디에서는 러시아군이 독일로 쳐들어가지 안았으면 영국과 미군은 괴멸됐다 아이젠라워 뭐라했냐 공부좀해라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Жыл бұрын
정확한 말씀 감사합니다. 연합군이 소련군의 군사적 능력을 신경쓰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44년 6월 22일에 시작된 바그라티온 작전이 독일 중부집단군을 통째로 괴멸시키며 성공한 이후부터 라고 합니다. 그 관련 컨텐츠가 kzbin.info/www/bejne/haDIcpqNbdeYps0 (소련군이 없었다면 미군은 최강의 맞상대인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입니다.
@ningJafo-pg1ib
@ningJafo-pg1ib Жыл бұрын
뭔 개소리세요?미군 참전 안했으면 소련한테 군수물자 안보내줘서 소련 졌을수도 있는데요?미국이 소련한테 지원해준거 겁나 많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소련 이겼으면 미국이 베를린에 핵 떨궈서 짜피 미국이 이깁니다
@user-qn8dp9gk5e
@user-qn8dp9gk5e 9 ай бұрын
​@@ningJafo-pg1ib진짜 개소리 정성스레 한다 소련의 희생이 없었다면, 노르망디가 쉽지 않았을것
@ningJafo-pg1ib
@ningJafo-pg1ib 9 ай бұрын
@@user-qn8dp9gk5e아니 ㅋㅋㅋㅋㅋ내가 뭐 소련의 희생이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함?소련이 없다면 노르망디 상륙은 사실상 불가능한거는 맞는데 내 말은 저 위에 댓 쓴 놈이 미국은 아무것도 안한식으로 말하니까 내가 저렇게 말한거잖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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