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형제님,정말 중요한 말씀을 알려주시네요. 지금도 카톨릭 신자임이 늘 주님께 감사하고 자존감이 크지만 말씀을 들으며 더 자존감 뿜뿜이네요.^^
@jyryu16363 күн бұрын
마태오형제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청취자여러분 걱정하지마시고 천주교로 오세요 잘못된 개신교 사이비로 가면 몸도 마음도 돈도 다 털리고 알거지 됩니다 참 교회인 천주교에서는 요란하지도 말이 많지도 않습니다 왜 일까요? 진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요.....
@그대로-j8v4 күн бұрын
맞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그 나라 언어를 몰라도 미사를 자연스럽게 드릴 수 있습니다. ❤❤❤
@starlight40493 күн бұрын
귀한 영상이네요. 감사합니다❤
@june_joy4 күн бұрын
사도신경에 나오는 4요건 ㅡ하나의 ㅡ보편적인 ㅡ사도로부터 이어지는 ㅡ거룩한 바오로서간에서 바오로사도는 "전통을 굳건히 지키십시오"라고 했죠
@5995ful4 күн бұрын
사도신경은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서술해 놓은 것으로 1. 성부 하느님에 대한 믿음. 2. 성자 예수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3. 성령하느님에 대한 믿음 중에서 3번째 성령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성령님은 거룩한 성교회에서 하나로 모으시고 누구나 어느시대나 같은 진리로 믿는 것이어야하며 사도전승으로 이어져 오는 성령님이 일하시는 (7성사)
@보관함-4backup4 күн бұрын
정확하게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나오는 'unam, sanctam, cathólicam et apostólicam'이죠. 사도신경에서 드러나는 교회론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입니다.
@코파왕4 күн бұрын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마테오 형제님~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항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숙플로라4 күн бұрын
형제님 덕분에 배워나갑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전달할께요 감사합니다 ❤❤❤
@이정민마리엘라-i5v4 күн бұрын
찬미예수님 🙏
@비타민-j4wКүн бұрын
아멘 감사헙니다 형제님♡
@아녜스에리2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
@김정숙-q2m5b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형제님 ❤
@Vocation-bx2hq4 күн бұрын
교의 신학 전공하신 신부님 말씀을 옮기자면 성경이 곧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들어가 있는건 맞지만 그 문자 자체를 진리라고 보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내려주신 진리는 성령이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 해주셔서 그 성령의 힘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게 만들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 그래서 진리의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성령님이시다 그런데 각자가 성령님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있다 우리는 각자 성령이 충만하지 못 하기 때문에 성경해석이 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각자의 다른 신학(믿음)이 있어서 신학대로 본인들이 원하는거를 끄집어 내서 본인들의 신학을 성경을 통해서 증명해내고 있기에 정통적인 개신교 종파라고하는 종파들이 200개가 넘는것이다 모든 이단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 자체가 진리다라고 하는것이 오류다 개신교에서는 교리가 없기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틀렸다라는 근거를 성경에서 밖에 찾을 수 없기때문이다 성경은 문자적해석이 아니라 영적인 해석을 해야하는데 영적인 해석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진리는 교회가 가지고있고 교회가 가지고있는 이 진리를 성전이라고한다 성전이 문자로 표현된걸 교리라고하고 교리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것이 영적인 해석이다 성경을 문자적 윤리적해석에만 그치면 바리사이들의 모습처럼 되는것이다 성체성사로 나아가는것이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자 목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에 세우신 교회는 오직 가톨릭 교회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고 빠른 지름길인 가톨릭 교회를 믿고 따르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
@옼케발3 күн бұрын
네. 솔직히 오직성경 이라고 해서 읽어보려고 하니 ... 부분 부분을 읽다보면 일부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당췌 무슨소린지 모르겠는 부분이 상당수입니다. 참 부끄럽게도요. 단순히 글자로만 보고 단순히 역사공부만 하고 단순히 학문으로서 신학만 두른다고 과연 주님의 성령이 담긴 성경의 은총을 느낄 수 있을까 여전히 겁이 납니다. .... 겸손과 기도 없이 성경을 접한들 말씀하신대로 이단 교리의 근거로 쓰이는 경우도 태반이니... 솔직히 말해 오직성경이라는 모토를 저는 정말 싫어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성경이 대중적으로 노출된다해서 얼마나 주님의 은총이 퍼질까 라는 것이죠.
@송영길을대한민국대통2 күн бұрын
저는 바오로 이며 부천거주중입니다. 반가워요
@stellar47143 күн бұрын
카토릭이란말이 보편적교회란 뜻이군요.전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미사볼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라는 말씀 잘 알겠습니다.감사합니다.
@옼케발3 күн бұрын
정리해주신 것들이 참으로 주님께서 교회에 남겨주신 너무나 감사한 보물입니다. 현실적으로... 개신교계 교회로 주님을 접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교회 쇼핑 교리 쇼핑을 해야한다는 ... 인간적 시행착오와 신앙적 불경이 뒤따르게 된다는 우려가 있을 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냐라고 할 때 답은 하나 뿐이라 생각합니다.
@엘리사벳-b1k3 күн бұрын
저는 어릴 때 엄마에 의해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고등학교까지 성당에 다니다가 뜻하지않게 대학교를 기독교 미션 스쿨을 가게 되면서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자의가 아니라, 강제적으로요...저는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생이었는데 무조건 출석하는 교회가 있어야하며, 교회 찬양대 반주를 해야했었죠. 또, 매주 1회씩 학교 강당에서 채플을 드려야 했고요. 채플 학점(P)이 있어서 그 학점을 못 채우면 F를 줘서 졸업을 못 하게 해놨었어요. 그러다보니, 대학교 1학년때부터 결혼 전까지 교회를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성당을 빠지게 되었어요. 결혼해서는 절에 다니시는 시어머니가 예수쟁이 싫다고 하셔서 교회도 관두게 되었고요. 세월이 많이 흘러 50대가 된 저는 지금 다시 성당을 가게 된지 이제 1년 6개월 정도 되어갑니다. 작년 2023년 7월 1일에 비신자인 남편의 협조 아래,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받았어요. 근데 얼마전 대학교 밴드에서 사건이 있었어요. 대학교 동창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들입니다. 거기서 그러더군요. 천주교는 이단이라고요...어느 동창이 출석하는 교회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찬양대 지휘자와 반주자가 그만두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천주교 신자인 지휘자와 반주자를 데려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저는 그 후로 대학교 밴드를 읽지도 않습니다. 다시 성당을 나가게 된 저는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매일매일이 평화롭고 매일매일이 좋습니다. 💕 💜 마태오 형제님도 감사하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잃었던 양 한마리를 되찾은 사람의 기쁨처럼 하늘나라도 그렇게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셨습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쁘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엘리사벳-b1k3 күн бұрын
@@천베로니카 감사합니다,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엘리사벳-b1k3 күн бұрын
@@DailyBible 오늘 마태오님 영상을 듣고, 출근 준비를 하며 급하게 긴 댓글을 적었는데 답장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늘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위축된 채, 세상을 버텨내던 저였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제가 왜 좀 더 빨리 성당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후회가 듭니다. 절에 다니고 미신과 점을 맹신하던 시어머니가 주신 부적 대신, 현관문을 열면 저를 반겨주는 십자가를 볼때마다 너무도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건강하시고 은총이 가득한 하루 평화로운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전영재-k5z4 күн бұрын
의심하느냐? 믿어라 안보고믿는자는 복되는도다. 감사합니다.
@천베로니카4 күн бұрын
제대로 믿어야지요~ 현대에도 자신이 재림한 그리스도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역시 "의심하느냐? 믿어라~ 보지 않고 믿는자는 복되다" 라고 성경말씀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참으로 제대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모니카-i9n4 күн бұрын
나는 천주교인이요
@천베로니카Күн бұрын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요한 10,16) "한 목자 아래, 한 양떼가 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고 있는 곳은 가톨릭입니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들은 지역교회, 자치교회 형태로 존재했었지만 로마주교인 교황과 일치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 떼만이 '한 목자 아래'로 모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것을 증언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곧 크리스챤이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목자 아래 한 양떼'이기를 거부하도록 부추기는 사람들은 사도시대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세상 끝 날까지도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yunsangkim38593 күн бұрын
가톨릭에는 하늘나라를 증거하고 살고 있는 수도자들과 다양한 카리스마를 가진 수도회가 있죠. 하지만 다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고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수도자분들을 보면, 거룩함이란 것은 결코 규모의 웅장함이나 화려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아주 작고 단순 한 것에서부터 실천하며 꾸준히 살아가는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보고 나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런 믿음을 물려주신 한국의 모든 순교성인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비타민-j4wКүн бұрын
형제님 항상 응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좋아하네말3 күн бұрын
잘보고갑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yoonhojohnkim30474 күн бұрын
Amen 🙏🙏🌿🌿🕊🕊🎼🎵🎶
@Ra_pha_an4 күн бұрын
❤
@조미희-l6f3 күн бұрын
미디어 선교사인 형제님께 기도로 응원합니다.🙏 교회는 에수님을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지체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며 교회를 이끄시는것은 성령이십니다. 성체를 영하는 내몸은 내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작은 성전 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루카22,19; 1고린 11,25-26)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하나의 교회는 성경과 사랑만이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하나의 교회는 사도로부터 (예수님께서 직접 교회의 열쇠를 부여하신 초대 교황이신 사도 베드로) 이어져오는 거룩하고 보편된 하나의 교회이며 (마태16,18-19)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사가 이어지는 하나의 교회입니다.(루카22,19;1고린11,25-26)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와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사를 사랑하지 않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지혜롭다는 인간의 교만으로 갈라진 교회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하나가 되리라 믿으며 성부,성자,성령의 일치로 기도합니다.🙏
@seungwonlee50482 күн бұрын
가톨릭교회의 사도전승과 관련된 사도는 로마에서 반석을 세운 베드로(교황)와 바오로 그리고 인도로 간 사도 토마스 입니다. 정교회는 사도 안드레아(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전승이 있으며 콥트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전승 (콥트교황) 을 잇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끼리 서로 인정하는 사도전승입니다. 초대교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포교된 지역 대부분이 로마제국 통치아래서 탄압의 대상이었던 음지의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내린 서기 313년경이고 이때 자신의 땅을 교회 건축물을 세우는데 기부했는데 이때 첫 공식적인 가톨릭 교회 건축물이 세워집니다. 그곳이 라테라노 성 요한 대성전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총 본산이 어딘가요 묻는다면... 성 베드로 대성전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신자중에도 많을텐데 아닙니다. 라테라노 성 요한 대성전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성당은 초대교회 처럼 규모가 커지면 분가하는 식으로 세워집니다. 옆 동네 성당이 우리 본당의 모(母) 본당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이전의 모 본당을 따라가보면 그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대부분 모 본당입니다. 그런식으로 모교회를 따라가 올라가보면 그 끝에 라테라노 성요한 대성전이 있으며 그곳을 모든 성당의 어머니 성당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릅니다. 이곳이 첫 교황청이 있었던 곳이며 세계 교구의 주교좌 성당을 낳은 교황좌 성당입니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은 베드로의 무덤 기념 성전입니다. 교황청이 후에 이쪽으로 이사를 갔을 뿐입니다. ) 아직도 새 교황님이 선출되면 착좌식은 라테라노 성요한 대성전의 교황좌와 교황 전용 제대에서 이루어집니다. 교구의 주교님들은 그 위의 주교님들에게 서품을 받으셨고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베드로에게 주교 서품을 이어 내려받은 교회가 가톨릭 교회입니다. 행정적 사목적 관점에서 본 가톨릭 교회의 이야기였습니다.
@마바키3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입교하려고 하는 사람인데요, 궁금한게 있어 조심스럽게 질문드려요..! 신앙적 믿음을 통해 삶의 안정을 찾고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입교하려고 하는데 뉴스를 보면 천주교의 경우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진보적 성향을 많이 띠는 것 같고, 개신교의 경우 보수적 성향을 띠는 목사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치적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쪽이든 불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혹시 신앙생활 중 정치적 이야기를 들을 일이 많이 있을까요??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신부님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시기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강론중에 듣거나 하게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사회의 문제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사회의 정치문제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것들이 과하게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신부님들도 보수 진보에 걸쳐서 다양한 분들이 있고, 처한 시국이나 그에 대응하는 강론 스타일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성당에 오시면 강론중에 정치 얘기를 안들으실 것이라고 제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진보, 개신교가 보수 라는 것도 사실 일반적인 구분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천주교는 세계적인 교회이며 그 안에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가 모두 있습니다. 예로 미국의 가톨릭 교회는 보수적인 색채가 매우 강합니다. 그러니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일부 목소리가 큰 사제들의 목소리를 가톨릭 교회 전체의 입장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주교는 지역별로 성당이 정해져있는 속지주의를 따르고 있어서 가까운 성당에 나가서 예비자교리를 받으시고 신앙생활을 하시면 됩니다만, 만에하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본당 신부님의 정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여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라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럴 거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주변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냉담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앙은 사제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의 성격 성향 강론 스타일 등등이 나랑 맞고 안맞고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랑 맞지 않는 사제라고 할 지라도, 그 분께서 하시는 미사와 성사는 예수님의 대리로써 하시는 일이기에 어디서든 똑같이 유효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제를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아무쪼록 입교하시려는 마음을 먹으신것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기쁨을 느낍니다. 성당에 가서 예비자 교리를 받으시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시는 가운데 의문이 드시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주십시오. 신앙의 여정에 성령께서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yunsangkim38593 күн бұрын
사회던 종교던 가장 중요한 식별기준은 약자보호 우선의 원칙입니다. 정치적인 견해 저역시 정구사와 다르지만 약자보호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eungwonlee50482 күн бұрын
한국에서 좌파적 시각을 가진 사제들은 과반 이하입니다. 보수적인 사제들은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지만 보통 좌파적 시각이 너무 짙은 사제가 부임하는 경우... 보통 본당에서 신자들이 옆동네 본당으로 옮긴다는 얘기는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죠. 입교는 거주지 담당 본당에서 예비자 교리 교육과 세례를 받으실 수 밖에 없고 행여 그런걸로 고민 되는 상황이 오면 다른 본당으로 미사를 참여하시더라고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교리적으로는...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보다 훨씬... 보수적입니다.
@goodluck45793 күн бұрын
마태오형제님이 매우 궁금합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ㅎㅎ그냥 아저씨인데요 ~~
@TOPGEUN3 күн бұрын
따지고 보면,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 아니에요. "오직 내 성경 해석대로"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ㅋㅋㅋ
@뭉게구름-y7d3 күн бұрын
ㅋㅋㅋㅋ
@Sohn-ek7wh3 күн бұрын
@@TOPGEUN 성경해석권한을 아무나 할 수 있으니 결국 다양한 의견생각이 발현되서 중구난방 ㅋㅋㅋ
@june_joy3 күн бұрын
@@TOPGEUN 만인사제설 = 누구나 내구미에 맞게 성경해석
@아카이누-i3j2 күн бұрын
혹시 박혁에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DailyBible2 күн бұрын
누가 어떤 권위로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요
@__Fin__2 күн бұрын
영상 잘봤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말씀에서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해석한다고해도 드는 여러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1.첫번째 교회는 이스라엘 지역의 교회였을텐데,왜 모든 교회의 처음과 으뜸은 로마교회인가? 2.베드로가 세운 교회는 많을텐데 왜 로마교회만이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는가? 3.첫 일곱 보편 공의회에서 교황이라는 직책을 인정받은적이 있는가? 4.초대교회에 때는 5주교들이 수평적 관계였지 수직적 관계가 아니였는데 왜 로마의 주교의 권한에 수직적으로 따라야하는가? 이정도입니다 너무 딱딱한 말투긴했는데 공격하는것은 아닙니다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천베로니카2 күн бұрын
1. 첫번째 교회가 로마인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교회 역시 수장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천명의 신자가 탄생하였지요. 성령강림으로 탄생한 이스라엘의 교회는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다교 성전도 파괴되고 예루살렘 공동체도 파괴됨에 따라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창설한 로마교회가 그리스도교회의 본거지인 가톨릭교회의 뿌리가 된 이유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순교한 뒤 바티칸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묻히면서 그리스도 교회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2.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는가? 베드로가 세운 교회는 많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세운 교회 외에는 정교회 또는 오리엔트정교회가 되었습니다. 3. 교황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을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칭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다르게 불려질 수 있습니다. 동양권에서 황제급 정치적 지위로 받아들여 교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서양은 'papa' 입니다. 파파스 (papas)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지역 교회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좌를 이어받은 현재 교황이라는 불리는 주교들에 의해 부활절 성탄절 등이 선포되었고 성경목록도 정하였습니다. 4. 초대교회때부터 수직적이었습니다. 이 수위권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워주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세번의 사랑고백을 들으실 때입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이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권위입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를 대신하여 마티아 사도를 선출할때도 베드로가 회의를 주재했으며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사도회의도 회의결과를 베드로가 선포했습니다. 교황이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한 역사는 초대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베드로의 3대 후계자이며 4대 교황인 성 클레멘스 1세는 코린토 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였으며, 2세기 말 교황 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를 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리기도 하습니다.
@__Fin__2 күн бұрын
@@천베로니카 귀한 답변 감사합니다 베드로(로마의 주교)는 사도단의 리더는 맞으나 그것이 조별과제의 팀장 같은 느낌이지 곧 모든 교회가 굴복해야하는 수위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께선 베드로를 꾸짖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초대교회에서도 로마의 주교가 주교들의 리더는 맞으나 절대적으로 수용해야하는 수위권은 아니였지 않았을까요? 첫 7 보편 공의회를 보면 알 수 있듯 교회의 결정은 공의회를 통해서 수평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지 교황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지 베드로 사도께서 단지 로마에서 돌아가셨다고해서 로마 교회만이 베드로 사도의 후계라는 것은 근거가 어떻게 될까요? 베드로가 세운 다른 교회인 정교회와 오리엔트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파괴되었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예루살렘 총대구교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경 목록은 제가 알기로 동서분열이전 교회 즉 보편교회가 정하였으므로 정교회도 포함합니다
@seungwonlee5048Күн бұрын
@@__Fin__ 2.번에 대해서... 베드로가 포교를 정착하고 죽은 곳 자체가 로마입니다. 당시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을 생각하면 혼자서 포교하고 교회를 세울수 있는 공간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12사도중에 교회를 일정 수준으로 조직화 하기전 순교해버려서 전승이 없어진 사도가 더 많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역을 포함한 세계를 다스리던 로마제국은 그리스도교를 혹독하게 다루던 상황임을 생각해보세요.
@천베로니카Күн бұрын
@@__Fin__ 네~ 님은 그렇게 믿으십시요. 사도들이 첫 포교시기에 제국의 중심 도시와 속주의 수도 등 대도시에 교회를 세웠는데 정치 문화의 중심지인 이러한 도시들은 선교의 출발점이자 교회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속주의 여러 도시들은 수도인 대도시교회와 모교회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의 대교구의 주교들은 지방교회의 주교 선출이나 교회 규율을 감독하여 지역교회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는데, 로마는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안티오키아는 시리아에서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였기에 교회 안에 총대주교가 관할하는 관구가 생기게 되었으며 325년 니케아공의회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교회의 위상을 고려하여 로마교회처럼 자신의 구역 안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전통을 인정하고 동시에 신앙의 발상지인 예루살렘의 특수한 위치를 고려해 서열상 4번째 교구로 지정함으로써 총대주교구 제도를 승인하였습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자 새로운 제국의 수도의 주교 위상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381년의 콘스탄티노플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이 새로운 로마라는 이유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보다는 높고 로마에 다음가는 명예 지위를 허용하여 교구서열이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순으로, 그리고 로마를 제외한 4개의 교구를 총대주교구, 교구장을 총대주교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총대주교구들은 주변 교회들을 지휘하여 거의 독립적인 교구를 형성하였고 각 교구별로 고유한 전례와 관습들을 발전시켰는데 그러면서도 신앙교리의 일치로 그리스도교를 통일시키고 있었으며 공동체에 생기는 문제와 갈등에 대하여 로마의 주교에게 문의하여 확답을 바랐고 교부들이나 이단자들도 로마의 지지를 얻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국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의 위상과 영향이 강화되면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는 독자적 자치권과 로마교회와 동등한 권위를 요구하였고 이에 451년 칼체돈공의회는 신로마이자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총대주교는 로마의 주교와 동등한 품위를 갖는다고 결의하였으며 (이때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견으로 동방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와 분열합니다.) 599년에는 콘스탄티노플총대주교가 이러한 이전 공의회 결정들을 근거로 ‘전 세계 총대주교’라는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오늘까지 이르렀지만 초대교회에는 분명히 로마 주교인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순명했습니다. 특히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따라서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성자이시고, 인성에 따라서는 죄 이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교리가 확정될 때, 레오 교황은 공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음에도 편지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모든 교부들은 “레오의 입을 통해 사도 베드로가 말한다.”고 입을 모았고 “공의회를 통해 사도들의 가르침이 변함없이 지속한다는 것”을 천명하면서 교황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신앙교의를 확정한 초기 4대 공의회가 비록 황제의 주도 하에 개최되었지만 교황사절의 참여와 교황의 동의가 있어야만 공의회의 결정이 유효했었습니다.
@__Fin__Күн бұрын
@@천베로니카 앞에서도 말했지만 로마의 주교가 서열 1위 즉 리더라는 것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천베로니카 형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총대주교들은 자신의 범위안해서 자치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로마의 주교에게 절대적인 수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요
@younglee14503 күн бұрын
저도 가톨릭교회에서 어릴 때 세례받고 38년 냉담하다가 23년 1월부터 다시 성당에 가기시작한 사람입니다만 .. 마태 16장 18절의 내용을 영상의 내용처럼 이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을 반석 즉 베드로라 함은 그 앞절의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믿음은 성령이 주신 것으로 즉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려주신 것 그 믿음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로 그 믿음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주신 믿음으로 그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는 믿음을 반석에 비유한 것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성령으로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는것이죠. 성령의 믿음위에 세운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저승세력도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석은 베드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가톨릭교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의 앞절에서 고백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교회는 성령으로 거듭난 한 사람의 1인 교회일수도 아니면 거듭난 이들이 모일때 1인 이상의 교회가 되는거죠~~^^ 그래서 저는 세상에 있는 교회 중 선택할 때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성령으로 거듭나신 분이었으면 좋고 거듭난 신자들이 많은 교회면 더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가스라이팅 하는 사이비 이단은 접근금지 입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성경에서 새로운 이름의 부여는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이 부여되는 것을 드러냅니다. (아브람→아브라함 / 야곱→이스라엘 / 사울→바오로/ 시몬→베드로) 베드로가 반석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시몬아 너의 이름은 "반석"이다. 그러나 사실 그 반석은 네가 아니다 하셨다는 것인데 참으로 어색하지요. 또한 그 앞절의 믿음이 반석인 것또한 맞습니다. 시몬의 믿음을 보시고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신 것이지요.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의 믿음과 그의 존재가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며, 그를 교회의 눈에 보이는 지도자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 공동체의 통합과 일치를 위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사명인 것입니다.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까지 하사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마십시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만약 믿음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으면 반석이라는 이름의 베드로가 아닌 '믿음을 의미'하는 이름을 하사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이 믿음 위에 내교회를 세운다라고 하셨어야 합니다. 또한 "내가 베드로의 믿음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베드로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요한 1,42) 예수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저자가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즉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보자마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아직 믿음을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보시자마자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아람어 케파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동생 안드레아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에 나선 시몬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주장의 위험성은 바로 이것입니다. 루터의 믿음위에, 칼빈의 믿음위에, 그밖의 수많은 사람의 믿음위에 세운 교회가 개신교입니다. 16세기에 출현한 하느님을 반박하고 나간 사람들의 믿음위에 세워진 교파들이 지금 현재 거의 5만개로 가깝게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믿음 위에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단들도 자신들은 정통 믿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각 사람에게 요구되는 구원을 위한 필수조건으로써의 신앙고백이기에 죽을때까지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믿음은 내일의 불신으로 이어지기는 예는 차고 넘칩니다. 모래성같은, 파도 한번으로도 무너지기 쉬운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당신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성인으로, 사도로, 내 반석으로 만드시겠다는 말입니다. 점점 더 사나워지는 지옥의 공격들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사탄아, 내게서 물러나라" 라고 엄중히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완전하게 다듬어진 정육면체의 바위, 주춧돌이 되기를 원하신 까닭입니다. 베드로라는 주춧돌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베드로를 단련시키는 교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오셨을 때 삼천 명의 신자가 탄생될 때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도 모든 사도들은 겁에 떨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언하시는 분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베드로의 증언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베드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이 단단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오셔서 증언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보고 만지고 생활하면서 당신의 모든 말씀을 간직한 사람들을 통해, 특별히 베드로를 수장으로 삼은 당신 교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GunboPark4 күн бұрын
아.. 제목만 보고 "가톨릭은 굳이 교회를 선택할 필요 없이 그냥 다 가톨릭 아닌가?" 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해버린 개신교도입니다.ㅋㅋㅋㅋ 개신교도는 교회마다 가르침이 다르니까 좋은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가톨릭은 그냥 가톨릭 교회를 다니면 된다 생각했거든요. 이건 가톨릭신도와 개신교도는 확실히 범주를 다르게 설정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그 만큼 대 전제가 다른 방향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의 다양성이 존재하듯 그것을 믿는 방식의 형식적인 문제는 다르게 주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그에대한 신앙적 원리를 설명해 가는 과정 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법들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느님의 한분이시며 그의 의지는 하나이지만 이를 이해하는 인간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느끼기에 인간이 만든 그 어떤 형식도 온전하다 라고 칭할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준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형제로 존중할 수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갱신하거나 떠나거나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창세기의 족장시대의 4명의 주요인물들을 보면 다 그 성정이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해당 인물들의 성정에 맞는 방식으로 약속을 주셨죠. 아브람은 그의 신중한 성격에 맞게 꼼꼼하게 증거를 제시하며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시고 이름을 바꾸면서 약속을 하셨고, 다툼을 싫어하는 이삭은 그의 목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칼을 막아주시고, 그가 평화를 선택할 때마다 우물을 터트려 주시는 신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야곱에게는 "신을 이긴 사람" 이라는 칭호를 주심으로 이기게 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관심을 좋아하는 아이 요셉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 꿈을 꾸게 함으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본인이 믿는 방식대로 이삭을 키웠다면 이삭은 "너무 딱딱해서" 시들어버렸을 것이고, 이삭이 본인이 믿는 방식대로 야곱을 키웠으면 "허술하고 뒤통수 맞는 희생의 삶은 살기 싫다" 며 가출했을 것이고, 야곱이 자신의 방식대로 요셉을 키웠다면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싶지 않다" 라며 그 방식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각 사람의 성정대로 매우 다양한 믿음의 방식들을 제안하고 한 사람 한사람이 변화에 이르게 까지 여러가지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그의 뜻을 이루신다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통을 수호하고 그 전승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반면에 어떤사람은 끊임없이 갱신되며, 기존의 가르침도 맞지 않는다 생각이 들 때 과감하게 갱신할 수 있는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진리는 하나이나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갈래로 있기에 방향이 같으면 어느 순간 정상에서 함께 만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추구함과 동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 믿어지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한다] 는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교회를 선택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믿음을 가지는 주체는 나 이고, 하느님은 억지로 늘이거나 줄여서 사람을 규격화 시키는 그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신이 아닌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그런 신이니까요. 가톨릭의 가르침도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지만 여러가지 지침의 방향성은 현대를 살아오는 사람에 맞게 공회를 거쳐 수정되어 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부의 말을 백프로 있는 그대로 믿기보다 그 시절의 인식의 한계로 인해 현재에 믿어지지 않는 부분은 한계성을 인정하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믿음의 말들은 결국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개인이 믿을 수 있는 영역들만 받아들여지게 되어있다 생각합니다. 좋은 교회는 내 자신이 하느님을 만나고 그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의 다스림과 그의 나라를 소망하며,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의 삶에 동참하게 만드는 곳이면 그 어디나 좋은 교회라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법일 수 있고, 때론 정말 틀린 방식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 교회의 문제가 아닌 그냥 내가 믿어지지 않는 다른 사람의 방식 일 뿐일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교회를 딱 정해서 알려줄 수는 없다고 봐요. 산을 오르는데 어떤사람은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사람은 입구부터 걸어서 올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사람은 중턱까지는 자동차로 타고 중간부터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것이고, 어떤 사람은 암벽을 깨고 올라고 싶고, 어떤 사람은 잘 닦여진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 방식대로 산을 오른 사람은 모두 그 산에 갔다 라고 할 수 있으나, 입구부터 올라가는 방법만이 이 산을 오르는 유일한 방법이고, 이 산을 즐기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간의 마태오 형제님의 영상들은 입구부터 산을 오르면 볼 수 있는 풍경들, 이것의 즐거움을 너무 잘 풀어주셨기에 그 방식에 흥미를 가지게 되며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누군가에게 이 길로 가야만 온전히 산을 즐겼다 할 수 있다. 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도조차 하기 싫어 산을 아예 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입구부터 산을 가기 힘든 사람이 있고, 이들이 산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가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입구부터 올라가는 것과 또 다르게 케이블카로 올라가면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다른 방식을 또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는 부디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한 형제라는 마음으로 서로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마음으로 축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DailyBible4 күн бұрын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진리의 정상에서 만나요 형제님!
@DiDi_77774 күн бұрын
애쓰네.... 왜 레퍼토리가 똑같을까 역시나 처음엔 그렇군요 이해하는척으로 시작해서 결국 그건 아니랍니다 라고가르치려드는식ㅋㅋ 개신교인들은 뭐랄까ㅋㅋ 열등감이 느껴져 ㅋㅋ 우린 이래!!! 열심히 피력하는데 꼭 타종교영상에서 이러는걸까 ㅋㅋㅋ 설득시키려고 하고 합리화하고 싶어하고ㅋㅋㅋㅋㅋㅋㅋ개신교 비판하는걸 끔찍히 못참는
@키오리오4 күн бұрын
@@DiDi_7777제가 예의를 갖추라고 말씀 드렸는데 여전히 안 갖추셨네요....님들도 스스로 합리화 시키려고 하고 설득하려고 애쓰고 자기들 비판하는 걸 끔찍히 못 참으면서 개신교가 그러는 걸 뭐라 하면 내로남불이죠....그리고 개신교를 대상으로 개신교 저격성 영상을 올리는데 개신교인들이 어그로 끌려서 들어오는 게 당연하고요....그리고 개신교가 가톨릭한테 열등감 가질 이유 1도 없으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GunboPark4 күн бұрын
@@DailyBible 넵 언젠가 천국에서 기쁘게 뵙길 기대합니다~
@천베로니카4 күн бұрын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서로 다양한 민족성과 사고방식에 따라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가르침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성사들이 그것입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일치하자는 것이 좋은 말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뉴에이지입니다. 즉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다같이 일치하고 사랑하고 평화롭게 잘 살자.. 하느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하느님이 생각하시는 선과 인간이 생각하는 선이 다릅니다. 즉 내가 생각할 때는 선이지만 다른 입장에서는 악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증폭으로 일어난 것이 전쟁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로써 하느님의 선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선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님의 말씀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는 믿겠다 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불편하고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거부하겠다는 것이 님의 글의 취지입니다. 이념의 다양성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구원의 길을 인정하는 곳이 가톨릭입니다. 그리스도를 내가 거부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됩니다. 당연히 그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메시아 이전의 사람들, 그리고 이후의 사람들이지만 공권력으로 믿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거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우리가 보속이나 희생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그들의 구원 가능성을 위해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교회가 가톨릭입니다. 그래서 모든 구원은 가톨릭교회로부터 나옵니다. 개신교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자체를 하지 않지만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인류 가운데 양심에 따라 즉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았던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법입니다. 가톨릭교회를 예수님을 세우신 것을 알면서도 이 교회를 반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반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나의 기쁨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이용하여 나를 숭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wesewcool38193 күн бұрын
좋은 교회를 고르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유튜브로 오해할뻔 했는데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회적으로 빙빙 돌릴 필요까지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카톨릭교회만이 예수께서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아서 직접 세우신 교회다,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dojfksljm3 күн бұрын
싸움을 피하고 언쟁을 피하면서 슬기롭게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기 위함이겠죠 직설적인 화법은 항상 감정을 건드려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서로 대립시키기 딱 좋습니다..
@이정민마리엘라-i5v4 күн бұрын
천주교 성당 이라고 해주세요!!
@dojfksljm3 күн бұрын
성당은 건물을 말하는거고 교회는 믿는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글의 맥락상 교회가 맞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인들은 천주교면 천주교, 성당이면 성당이라고 하지 천주교성당이라는 말은 잘 안쓰는데요... ㅎㅎㅎ 천주교교회 혹은 천주교회가 맞는 표현입니다...
@밀알아3 күн бұрын
좋은 천주교회 그딴거 없습니다 본당신부가 누가 오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쉰내꼬장노총각 히스테리 본당신부오면 그날 임기사년은 헬성당 입니다 신부님이 누구냐에 따라 천국과지옥 같은 성당이 됩니다
@yunsangkim38593 күн бұрын
그래서 수도회 재속회,협력자회를 추천합니다. 본당신부님 어떤분 오시더라도 굿건히 버틸수 있어요.
@younglee14503 күн бұрын
동감입니다. 노총각히스테리 신부님들 너무 힘들어요.. 늘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그 신부님을 만나주세요. 하구요~~😅 저두 어린시절엔 꼬장꼬장 바리사이 향기나는 신부님 싫어서 냉담했지만 지금은 예수님보고 성당나가게 되니 히스테리 신부님 있어도 그 분 위해 기도하게 되더군요.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하느님께 봉헌되신 분들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비난입니다. 능력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성품과 관계없이 당신의 것으로 뽑아 세우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런 사제를 파견하시는 것도 신자들을 단련하시는 하느님의 수단입니다. 그것을 불평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평입니다.
@최미아-n6s2 күн бұрын
눈먼 이이의 눈먼 ,, 인도자 구약 성경에 사제, 목자에 대하여 거침없이 예언자의 입을 통해 잘못된 사제를 여기저기서 책망 하고 계시지요. 육체의 자녀들이 태어나면 인성 그릇된 부모 잘못 만나 삐딱 성장 하는것과 똑같다 생각힙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한 영혼 영혼이 귀한 것을 참으로 사제가 아신다면 " 영의 자녀로 태어난 하느님 자녀" 를 어떻게 케어 해야 하는지가.무척 중요합니다. 참고로 해외공동체 정말 문제 많은 곳에서 신앙 생활 눈 멀어 보냈습니다. 되돌아보니 신자들도 눈멀고,, 사제분들의 영성도 ,, 말 많고 ,,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 입에 조차 오르 내리는 ㅠㅠ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하는 자가,, 사제여야 하는데,, 사제도 사람인지라,, 깨어 있지 않고.영이 혼탁해 지거나.흐려지면 그 교회는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남미에서 선교 일 하시던 수녀님께서 오셨서 하셨던 말씀이 ~ 여기 교회 아닌거 같다라고 ,, 그당시엔 영안이 잠들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ㅠㅠㅠ 2년전 저의 영적인 상태 알게 되고 과거 ,, 해외 공동체 살이 되돌아 보니,, 마귀 소굴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 났던 많은 일들 , 지금도 , 늘 회개 하고 있습니다.ㅠ 천주교의 맹점이라면 신부님 영성따라 오락가락 한다는 ,, " 영" 은 자라나야 합니다. 성숙할 수 있는 환경 , 갓난아기가 태어나,, 잘 커갈 수 있도록 육신의 성장과 똑같이 " 영의 정체성" 을 깨닫고 ,, 영이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끄는 것이 사제의 역할 아닐까요??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요한 1,42) 예수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저자가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즉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보자마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보시자마자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아람어 케파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동생 안드레아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 앞에 나선 시몬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나 케파는 둘 다 ‘바위’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은 그의 강한 성격에도 어울리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 18)라고 하심으로써 그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의 명단 중 언제나 제일 처음에 기록되었으며 다른 어떤 사도들의 이름보다 매우 빈번하게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주장의 위험성은 바로 이것입니다. 루터의 믿음위에, 칼빈의 믿음위에, 그밖의 수많은 사람의 믿음위에 세운 교회가 개신교입니다. 16세기에 출현한 하느님을 반박하고 나간 사람들의 믿음위에 세워진 교파들이 지금 현재 거의 5만개 가깝게 분열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위에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단들도 자신들은 정통 믿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각 사람에게 요구되는 구원을 위한 필수조건으로써의 신앙고백이기에 죽을때까지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믿음은 내일의 불신으로 이어지기는 예는 차고 넘칩니다. 모래성같은, 파도 한번으로도 무너지기 쉬운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당신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성인으로, 사도로, 내 반석으로 만드시겠다는 말입니다. 점점 더 사나워지는 지옥의 공격들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사탄아, 내게서 물러나라" 라고 엄중히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완전하게 다듬어진 정육면체의 바위, 주춧돌이 되기를 원하신 까닭입니다. 베드로라는 주춧돌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베드로를 단련시키는 교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오셨을 때 삼천 명의 신자가 탄생될 때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도 모든 사도들은 겁에 떨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언하시는 분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베드로의 증언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베드로에게 믿음을 고백받기도 전에 케파 곧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베드로를 바위로, 주춧돌로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성령을 보내시어 베드로를 수장하는 교회를 창설하셨습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552 이 열둘의 사도단 가운데 시몬 베드로가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30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유일한 임무를 맡기셨다. 성부의 계시에 힘입어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했다. 이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하고 선언하셨다. “살아 있는 돌”이신(308)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 위에 세우신 당신 교회에게 죽음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신다. 베드로는 그가 고백한 신앙 때문에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어떤 쇠퇴로부터도 이 신앙을 보호하고, 형제들의 신앙을 굳세게 하는 사명을 맡게 될 것이다.(309) 교리서 552 입니다 424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고 성부께서 이끌어 주셔서,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믿고 고백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가 고백한 바로 이러한 신앙의 반석 위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다.6) 예수님께서는 분명 베드로를 반석 삼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 의 반석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말하는 것도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리서 424입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위에 세워진 것도 맞고 '베드로'위에 세워진 것도 맞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과 '베드로'는 분리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 누구나의 믿음, 혹은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의 '신앙'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면 틀리게 되겠습니다 www.catholic.com/qa/is-peter-the-rock-upon-which-christ-builds-his-church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DailyBible 물론 형제님의 의견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리서의 내용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베드로의 믿음 때문에 베드로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요한 1,42)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시몬을 케파(바위)로 다듬에서 교회를 창설하실 뜻을 품으셨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기 전부터, 신앙과는 무관하게 베드로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과 무관하게 베드로를 당신 반석으로 고르셨고 당신의 사람으로 깍고 다듬어 당신교회에 맞갖은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이름이겠지요. 저는 1차적으로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베드로를 반석으로 당신 교회를 세우실 뜻을 품으셨고 그 베드로에게 믿음을 성장시켜서 목숨까지도 던질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베드로라는 그릇에 신앙을 담아 주춧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때문에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베드로를 반석으로 당신 교회를 세우시고 저승의 세력이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내가 함께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성령을 보내겠다. 교리서 424항,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고 성부께서 이끌어 주셔서,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믿고 고백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가 고백한 바로 이러한 신앙의 반석 위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런데 바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나라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래서 교리서의 내용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베드로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지만 또 베드로처럼 자신이 고백했던 하느님을 부인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의 반석 위에 라는 말은 회개할 줄 아는 신앙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이것이 베드로를 선택하신 이유라고요. 만약 믿음이 충만한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시기로 하셨다면 가장 사랑하셨던 요한을 선택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할 줄 아는 신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베드로를 선택하신 겁니다. 지상에서 순례해야 하는 신앙인들은 모두 다 베드로와 같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고 죄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회개하여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첫 주자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함의 표상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베드로 신앙의 반석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교회를 거부합니다. 거부하고 나가는 것이지요.
@DailyBible2 күн бұрын
아멘~♡ 자매님의 글 잘 읽어보겠습니다
@천베로니카2 күн бұрын
@@DailyBible 베드로의 ‘믿음 위에’라는 말이 맞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에 대해 덧붙여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24항에서 ‘베드로의 신앙의 반석’위에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믿음과 신앙은 같은 것 같지만 조금 다릅니다. belief와 faith의 차이처럼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다름이 존재합니다. 믿음은 일종의 ‘상태’입니다.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대상에 대한 신에 대한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는 마음 정도이며 어떤 사실이나 사람에게도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오직 종교적 차원에서의 믿음을 의미하며, 이 믿음을 바탕으로 절대자와 깊은 유대와 연결되어 자비와 사랑 안에서 의탁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메시아 사상은 온전히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 왕 이후에 신망과 힘을 가진 왕을 갖지 못했던 그들은 자기들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했던 다윗 같은 이상적인 왕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으며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고, 풍족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줄 민족주의와 결합된 ‘메시아 대망론’은 오로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메시아, 현세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메시아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 역시 이런 메시아사상을 기저에 깔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세적으로 누가 예수님 오른팔과 왼팔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말은 이 바탕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고 성부께서 이끌어 주셔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겠다고 하셨지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에 반박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고 단호히 꾸짖으셨습니다. 즉 제자들안에 깔려있는 왜곡되고 잘못된 믿음을 꾸짖으신 겁니다. 네가 나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참 잘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현세적인 삶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왔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하심으로써 진정한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이후부터 알려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자리 잡은 현세적인 모든 것을 부수도록,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로 순명하는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습니다.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버려둘 것이다. 베드로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하나는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나에게 이런 일들을 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너희가 이런 일들이 모두 이루어졌을 때 스스로 자책하다가 포기하지 말고 굳건히 일어날 수 있도록 하여라. 베드로 네가 형제들을 잘 이끌어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루카 22,31-3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안에 자리잡은 선민의식, 고착된 편견, 아집, 왜곡된 믿음 등을 깨부수는데 총력을 다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셨고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와 성령 안에서 당신을 증언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참된 신앙이 다져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세 번의 사랑고백을 들으신 후에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취소하시며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시며 당신의 교회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으로 한 최초의 연설은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에 반박했던 베드로의 그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말이지만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신앙의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 부활, 승천까지를 포함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성자이심을 고백하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동참해야 하는 신앙 위에 세운 교회가 가톨릭교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수제자 배반 사건’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개인사가 있지만 전승에 따르면 순교하기 전까지 평생토록 매일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자신의 배반을 떠올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지며 늘 울고 다녔기 때문에 눈가는 짓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베드로를 반석으로 세우신 이유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엘라-f9y3 күн бұрын
저는 정의사회구현단 신부들 정말 싫어요
@hwangfrancisco3 күн бұрын
개인적으로 저도 그런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사제들을 좋아하진 않음요.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변함없다는 점🫡
@pampham273 күн бұрын
개신교의 오직 성경은 오직 성경만을 따르는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틀리지 않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이지, 교회의 권위를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예요.
@천베로니카3 күн бұрын
그렇군요. 그런데 예수님과 사도들이 보시던 초대교회의 유일한 성경은 70인역 성경입니다. 개신교는 이 성경을 부정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틀리지 않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사도들 특히 바오로 사도가 끼고 다니며 전도여행을 했던 그 성경을 부정합니다. 70인역을 바탕으로 작성한 신약27권과 초대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위한 명분으로 채택한 구약 39권만을 받아들였습니다. 개신교의 논리대로라면 성경이 아닌 7권을 보유한 초대교회를 유다교에서 이단이라고 한 결정을 지지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DailyBible3 күн бұрын
그러나 ~ 가 어디 있냐? ~~는 성경에 없다 라는 질문을 저는 수없이 듣습니다. 아무리 성경에 암시되어있고 수 많은 교부들이 가르쳤다하여도 말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가르치고 보존해온 것들 중 어떤 것은 성경적이다 하고 따르고 어떤 것은 동의하지 않는 비성경적이다 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개신교 교회 내에서도 실상 권위란 없습니다. 교회의 권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비성경적이다라고 하고 교회가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정민마리엘라-i5v4 күн бұрын
성당 이라고 하셔야지 교회라고 라고하시면 개신교 같습니다!!
@bookduck10044 күн бұрын
Catholic Church. 우리 국어로는 천주교회입니다. 천주교는 성당, 개신교는 예배당입니다. 교회라는 언어를 개신교에 뺏기지 마세요~ 천주교인들 공부가 많이 필요합니다.
@fingersilvia3 күн бұрын
가톨릭 교회도 맞는 표현이긴 해요
@juanakim59913 күн бұрын
성당은 장소를 표현하는 개념이니 그 장소(성당)을 갈때는 그 표현을 쓰시고요, 믿음의 공동체를 표현할때는 교회가 맞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때 저희 식구들은 성당에 간다고 하지 않고 교회에 간다고 말했었어요. 근데 tv가 생긴 이후 뉴스를 보니 천주교와 개신교를 성당과 교회로 구별해서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점차 일반인들도 그렇게 말해야 구별해 인식하게 되버린 것이죠. 언론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교회' '기독교' 이런 단어를 쓴다고 해서 이 단어들이 개신교 전용 용어는 아닙니다. 어느 종교든 교회이지요. 카톨릭교회도 정교회도 개신교회도...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의 한자어로 카톨릭을 비롯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를 일컬어 기독교라고 합니다. 오히려 세계적으로는 보편 교회인 카톨릭을 더 연상케하는 단어이지요. 우리나라가 천주(하느님)교라고 명명된게 개신교보다 100여년 앞선 조선시대때 들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대적으로 유교적사상이 바탕에 있었기에 하늘의 주인인 천주가 예수(기독)보다는 좀더 친숙하고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만의 특성이고, 세계적으로는 유대교나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로 기독교가 적합한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기독교와천주교 하지 마시고, 개신교와 천주교로 구분하세요
@Rainstar1425Күн бұрын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거룩한 교회를 믿으며" 그대는 미사때 신경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지않나요?
@이정민마리엘라-i5v4 күн бұрын
성당 이라고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DailyBible4 күн бұрын
우리도 가톨릭 교회 천주교회 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개신교만의 것이 아니랍니다
@이정민마리엘라-i5v4 күн бұрын
@DailyBible 교회라고 하면 개신교 같아서 기분이 안좋더라고요 .
@bookduck10044 күн бұрын
@@이정민마리엘라-i5v마리엘라님의 기분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고 기독교인이고 크리스찬이며 우리는 천주교회고 천주교인입니다. 교회와 기독교라는 단어를 개신교만의 정체성인양 독점하고 뺏긴건에 기분 나빠야합니다~
@Sohn-ek7wh3 күн бұрын
@@DailyBible한국은 개신 =교회. 가톨릭=성당 이라는 암묵적인 단어쓰임에 규칙을 정해서 ㅠ 크게보면 교회든 성당이든 같은 철치 의미지만 ㅋㅋㅋ아프로디테 와 양귀비 두 단어는 다른느낌을 주기때문에😅 결론은.미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