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259회] 우리국경이 이렇게 된 이유 feat 세종과 선조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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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토리fa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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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세종의 토론 능력은 대단하였다.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웬만큼 준비하지 않고 토론했다가는 세종에게 망신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집현전 학자들은 밤낮을 불문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날...(1432년)
"전하~! 야인(여진족) 이만주가 기병 400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와 우리 군을 공격하고 민가를 약탈했다고 합니다.
순하기만 했던 세종은 전에 없이 분노하였다.
"북방의 근심 여진족들을 정리할 때가 왔다.
특히 우리 국경선이 애매하게 그려져있으니 놈들의 침략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여진족들을 소탕하고 우리의 국경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누가 나서 이일을 하겠느냐?"
황희가 말하였다.
"그 일은 최윤덕 장군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는 14살에 큰 호랑이를 잡을 만큼 대단한 맹장이옵니다."
다른 신하들도 모두가 황희의 말이 옳다 하였다. 세종은 즉시 최윤덕을 불러 명하였다.
"그대를 삼군 도절제사에 임명하니 가서 야인들을 토벌하시오!"
"신 최윤덕 전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여기서 잠깐! 당시 애매했던 우리의 국경선을 한번 살펴보자.

Пікірлер: 450
@약탈자-x1n
@약탈자-x1n Жыл бұрын
저렇게 조상들이 피와땀으로 힘들게 지켜낸 함경도 평안도에 발도 디딜수없는 지금이 안타깝네요.
@kiryukazuma2734
@kiryukazuma2734 Жыл бұрын
괴뢰집단들이 하루라도빨리 패망해야할텐데
@엔슈-n1l
@엔슈-n1l Жыл бұрын
@@kiryukazuma2734 너같은 모아서 쳐들어가면되겠다 ㅋㅋㅋㅋㅋ
@user-6626
@user-6626 Жыл бұрын
@@kiryukazuma2734 그 괴뢰집단도 결국 일제시대때 생긴거잖아 공산당이 왜 득세햇는데 일제때 생기거잖아 역사를 알면 그만큼 보이지 독일이 왜 강해졋는데 ㅋ
@user-er1te3ex6g
@user-er1te3ex6g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이 4군 6진을 개척하는걸 보니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상대하는 방식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쳐들어오는 적을 무찌르는게 아니고 우리가 먼저 준비하여 이길 여건을 만들어서 이기는 싸움을 하는게 말입니다. 저도 매사를 사전에 준비하여야 보겠습니다.
@thomaspark9296
@thomaspark9296 Жыл бұрын
좋은역사공부.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일매일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jin.24.
@jin.24. Жыл бұрын
삭풍은 가지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바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가 세종대왕과 함께 북방개척을 하며 지은 시라 하는데 장수의 기개가 느껴지죠. 세종은 4군6진을 두고 "북방정책은 과인이 있어도 종서가 없었으면 해낼 수 없었고, 종서가 있어도 과인이 없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실로 위대한 안보정책이었습니다
@brianjeon8246
@brianjeon8246 Жыл бұрын
팩스토리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제보니 이 채널은 한반도의 역사를 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쓰는 대 프로젝트네요. 근데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시대는 피눈물이 나서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보겠습니다.
@김재한-b9v
@김재한-b9v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우즈이텐겐
@우즈이텐겐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게 잘봤습니다. 세종은 정말 여러 방면으로 훌륭한 위인이네요
@JHYEOM
@JHYEOM Жыл бұрын
정말 잘 보았습니다~ㅎ
@aa87740521
@aa87740521 Жыл бұрын
- 이 채널을 구독하는 이유 - 전쟁에 임했을시의 세종과 선조의 차이를 설명하는 등의 이런 비교들이 아주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
@박경서-l4r
@박경서-l4r Жыл бұрын
일개 부락 토벌 한거랑 수십만의 대병력 그것도 당시 전세계 육군 최강급이랑 총력전 벌인거는 비교 자체가 안 됨 그리고 선조도 여진족은 잘 뚜들겨팼음 7년전쟁 이 후 조선의 국토가 패허가 된 상황에서도 여진족은 뚜들겨 팼음
@aa87740521
@aa87740521 Жыл бұрын
@@박경서-l4r 앞 댓글의 내용은 이 채널을 구독하는 이유가 팩스토리 주인장의 비교 설명이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말인데 느닷없이 왠 똥딴지 같은 소리? 팩스토리의 설명이 재미없으면 구독하지 말고 안보면 될것을... ㅉㅉ
@donchoo4706
@donchoo4706 Жыл бұрын
잉 5분 본것 같은데 벌써 끝났네요..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JLee-sp2vq
@JLee-sp2vq Жыл бұрын
김종서를 무장으로 알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문관입니다. 문관임에도 군사작전을 잘 수행한 것은 기본적으로 군의 운용에 있어서, 보급철저, 공평무사, 올바른 논공행상이 강군의 기틀이고, 이를 정확히 지켰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user-lu9nf3sk6c
@user-lu9nf3sk6c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짱이십니다… 주군!!^^
@박성호-q8s
@박성호-q8s Жыл бұрын
세종시기면 이미 명나라가 여진족들을 포섭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더이상 만주를 우리 땅으로 만들 수 없던 상황
@Suhon-2554
@Suhon-2554 Жыл бұрын
4군6진 정벌명분도 과거 고려시대 당시 개척한 동북9성을 탈환한다는 목적이었음 그래서 명나라가 여진치는걸 묵인해준거고
@eon210able
@eon210able Жыл бұрын
❌️ 요동은 반도가 아님 그리고 발해는 지금보다 훨 컸다 그위에 세운나라가 대진국이다🎉❤
@맨유-n9b
@맨유-n9b Жыл бұрын
지금 개념으로 생각하면 더 위로 늘릴수 있긴 했겠지만 사실 나라의 경계는 바다 강 산 을 기준으로 나눠야 방어가 편함.. 저 경계가 된건 충분히 이해가감
@eon210able
@eon210able Жыл бұрын
식민사관과 사대주의까지 강하게 갖춘 주장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니 참 훌륭한분인가 봅니다
@brianjeon8246
@brianjeon8246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반도 역사상 세번째로 영토가 넓었다고 합니다. 첫째가 발해, 둘째가 고구려. 지금도 보면 영국의 그레이트 브리튼 본섬과 거의 비등비등 하다 합니다.
@옼케발
@옼케발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북괴한테 절반이 점거당한 지금 우리가 조선을 뭐라하기 부끄럽네요.
@brianjeon8246
@brianjeon8246 Жыл бұрын
통일이 되면 간척지도 포함되면서 대한민국이 근소하게 앞질러 세번째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빌어먹을 통일이 된다면 말이죠. 아, 근데 그때가 되면 환경문제 땜에 역간척이 대세가 되려나.
@Holactie
@Holactie Жыл бұрын
엥 고조선이 조선보다 넓지 않음?
@이게나라냐-i2s
@이게나라냐-i2s Жыл бұрын
영토 넓으면 뭐함 고구려땅 다 쓸모없는 벌판...
@user-wl3wq8mr2b
@user-wl3wq8mr2b Жыл бұрын
지금 역사는 다 왜곡된 역사임 고대 신라 백제도 동중국해에 있었슴 일식기록과 일치하는 위치는 동중국쪽~
@TheKody2002
@TheKody2002 8 ай бұрын
재밌고 귀엽네요ㅋㅋ
@eon210able
@eon210able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께서 조선이 고려멸망에 힘을 쓸때 계략으로 세운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세우셨다니 놀라운 일이다
@user-xo6wq8wr3x
@user-xo6wq8wr3x Жыл бұрын
잘봤어요 조선 세종때 현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완성되었네요 더 북진할 수도 있었는데요 너무 아쉽습니다
@sungbinee8
@sungbinee8 Жыл бұрын
강 따라 국경선 정하는게 더 효율적임 그 이북은 여진족 완전히 통제할 자신 없으면 유지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소모돼서 여러모로 국익에 도움이 되자 않았을 것임 이미 사실 저 두만강 경계도 유지가 결코 쉽지 않았을거임 저기도 워낙 본진이랑 멀리 떨어져있음
@hsh6036
@hsh6036 Жыл бұрын
저 북쪽으론 자연 경계선 삼을만한 지형도 딱히 없어서 방어 난이도가 너무 높았고, 난이도에 비해 얻을 수 있는게 딱히 없어서 저 강을 경계로 하는게 제일 합리적이였음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Жыл бұрын
아니 북한영토도 못먹는게 지금 현실인데 뭔놈의 땅 욕심이 큼? 한반도도 우리 영토가 아닌게 현실이다 정신차려 세종때 영토정도면 지금 기준으로 거의 제국임
@user-mt6xu4dk7t
@user-mt6xu4dk7t Жыл бұрын
@@sungbinee8 특히 당시 개마고원과 함경북도 쪽은 농사도 힘들고 둥글둥글 왕감자도 없던 시절이라 그 곳을 개발하고 더 북쪽으로 가기 힘들었지요ㅜ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Жыл бұрын
다들 두만강까지가 현실적이다, 그 위쪽은 쓸모없는 땅이니 두만강까지가 효율적었다, 뭔 땅 욕심이 많냐 하는데 그거 결국 조선이 능력이 북쪽으로 옛고토를 회복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는 말 아닌가요? 옛고토를 회복하고 강대국이 되는게 좋지 그냥 약한 나라가 된걸 합리화 하고 강대국이 되지 못한걸 아쉬워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약한건 효율적이니 합리적이니 하는건 그냥 자기 위로내지 자기최면인것 같네요 마치 청나라에 무릎 꿇고 소중화를 자처하는 조선과 다를게 없는 작태라 생각합니다
@Kimchi_season_leader
@Kimchi_season_leader Жыл бұрын
만주는 커녕 요동도 실제 영위할수가없는게 애초에 한반도 북쪽도 인구가없어서 구슬리기도하고 강제이주도시킬정도였으니 요동이니 만주니 개척한들 갔겠습니까 거 여진놈들이 즈그땅돌려달라고 그난리를 쳐서 고려때도 결국 뺏었다가 포기했는데
@Levis502tpd
@Levis502tpd Жыл бұрын
역시 갓세종 김종서 장군도 명장이네 여진족이 뭉치면 위협이 되는걸 알고 미리 싹을 제거하려 했다니
@fff-mv3jf
@fff-mv3jf Жыл бұрын
세종과 선조의 차이는 개인 역량의 차이보다도 주어진 환경의 차이 문제가 더 크다고 봄. 세종은 선대부터 왕권을 탄탄하게 다진 상황이었고, 선조는 서출이라 왕권도 그다지 탄탄하지 않았고, 세종은 내가 패러 간거고, 선조는 수도까지 털린상황임. 그걸 비교하는거 자체가 어불성설. 주어진 환경이랑 비교하려면 선조는 인조나 고종이랑 비교해야되는 임금인데, 그 둘에 비하면 선조가 훨씬 능력있는 사람임.
@CommanderSupreme-1
@CommanderSupreme-1 9 ай бұрын
우리역사상 신라, 고려, 조선 등 통틀어 가장 큰 업적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라고 생각함. 다른 업적들은 상황에 따라 대체될수 있으나 훈민정음은 전무후무.
@로켓펀쳐
@로켓펀쳐 Жыл бұрын
세종 판단이 되게 신기하네요 본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외적 치라고 준 군대 가지고 회군해서 조선을 세웠는데 만명이나 되는 군사를 보내달라는 말에 흔쾌히 승낙하다니
@goldenboy6826
@goldenboy6826 Жыл бұрын
우리민족이 요동을 영구상실하게 된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조선보다도 발해멸망후 발해-고구려유민들이 만주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만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임.계속 주민으로 남아서 정체성을 유지라도 해줬으면 흡수하기도 쉬웠을건데 여진족/한족들에게 완전히 넘어가버렸으니
@user-nadaungemonde
@user-nadaungemonde Жыл бұрын
맞아요. 고구려가 멸망하고 상당수가 죽거나 중국영토로 끌려가서 인구의 2/3가 소멸했는데 그나마 남은 고구려인들이 발해건국에 참여했지만 훗날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하면서 많이 죽거나 끌려가고 그나마 남은 인구마저 전부 금나라때 산동반도로 강제이주됐죠. 그 이후로 예맥계는 만주땅에서 전부 소거됐죠.
@nagien8158
@nagien8158 Жыл бұрын
나도 평소 이 생각 하던건데 ㅋㅋ
@user-yr4kq1rd7d
@user-yr4kq1rd7d Жыл бұрын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시각은 지극히 한반도계 동이족의 자존심입니다. 만주에 있던 고구려 등 의 나라들이 망했다 할지라도 거기 살던 사람이 어디 가는거 아닙니다. 고구려 발해 여진 으로 이어지는 만주계 동이족의 족보를 우리가 거부했고, 중국이 혈통끊기에 나섰습니다. 한민족인 이들이 갑자기 이민족으로 바뀌는 계기는,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이 중국을 정벌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을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을 정벌하지 못한 자존심과, 중국에 사대하는 굴욕이 합쳐져서 우리의 혈통을 우리 스스로 끊은겁니다 솔직한 말로, 백제가 망하고 죄다 일본으로 갔습니다. 이를 그대로 보면 일본은 열도계 동이족입니다. 우리가 중국에게 지는 이유는 중국은 억지로라도 하나로 뭉치는데 우리는 조금만 달라도 남남으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다르다고 남북 갈라졌고, 동서도 갈라지려 하지요. 이좁은 땅떵이에서도... 그런데 그와중에 아주 오래전에 갈라졌던 키르키스탄이 우리 민족이라며 발 걸치고 있지요 자 백년의 적은 일본이요 천년의 적은 중국이란 말이 있지요?근데 짱개가 우리한테 쳐들어온게 많아요? 오랑캐가 온게 많아요? 둘다 중국이란소린 하지 않겠지요? 우리나라가 아닌, 우리민족, 아니 반도 동이족은 수천년간 민족간 내전을 한 민족입니다
@user-ft4ih1hk3q
@user-ft4ih1hk3q Жыл бұрын
여진족이 발해인 인데 무슨 말인지??? 조선 시대의 사대 사상에 빠져서 동족도 배척한 것 때문입니다.금나라는 신라에서 나왔고 , 금나라 후신이 여진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goldenboy6826
@goldenboy6826 Жыл бұрын
@@user-ft4ih1hk3q 여진족과 발해인은 정체성이 전혀 다름.
@삐뽀삐포
@삐뽀삐포 Жыл бұрын
신이 군사를 이끌고 화근의 씨앗을 제거 하겠습니다 하고 어떻게 되는지 끊는 타이밍 오졌다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Жыл бұрын
조선이 군무에 그리 밝지 않은게 여기서도 드러난다. 왕과 대신들이 군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무관들이 이런 중요한 회의에 참여도 못하니 제대로된 무력이 형성되기 힘들다. 이래서 조선을 문약하다고 하는거다. 그래도 영상에서 말했듯 세종은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현장 책임자가 보기에 맞지 않으면 현장 책임자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다음 행동을 준비할줄 아는 왕이라는게 대단하다. 그에 비해 선조는......... 에휴 욕만 나온다.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Жыл бұрын
그 대신들이 과거 합격하고 대신자리 오르려면 병법을 좔좔 외울 수 있어야합니다.. 임진왜란때 곳곳에서 지나가는 양반 1호가 군사 일으키고 일본군 괴롭힐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고요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Жыл бұрын
@@user-bx1xl7gl5b 외람되지만 그건 고려시대까지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조선의 대소신료들이 병법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애초에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킬걸 눈치채고 제대로 대응을 했을것이며 또 정묘호란, 병자호란같은 국난도 능히 물리칠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 했죠 TMI로 임진왜란때 의병중 군무에 눈이 있어 종군해서 공을 세운 곽재우같은 분도 계시지만 너무 충의만 강조한 나머지 허무하게 무너지는 분들도 더러 있었죠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Жыл бұрын
@@user-bx1xl7gl5b 임진강 방어에 실패해 가토 기요마사의 기만책에 넘어가고 그 상황에서 적의 유인책인걸 아는건 직급이 낮은 조방장 유극량정도 였죠 용인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1600명의 병력으로 조선 근왕군 5만을 패퇴시킨것도 그렇고 조선에서 군무를 아는자가 드물었다고 밖에 생각이 안듭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도 "조선은 문치가 고려보다 으뜸이나 무력은 고려는 커녕 삼국만도 못하다" 라고 하거나 선조가 "우리나라는 백면서생만 있고 쓸만한 장수가 없다. 고려조에는 정세운처럼 적을 쓸어버리는 자가 있으나 조선에는 없다" 라거나 명나라 사신들이 이때의 조선을 두고 "이 나라는 아침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읽기만 하고 그 외에는 재주가 없다. 무략은 거의 내팽겨 처놓고 있다. 이것은 그 강성한 고려의 기상이 조선에와 너무 태평해진데에 있다" 라고 할정도니 조선이 병법과 군무에 밝았다는건 솔직히 말도 안됩니다.
@teli3290
@teli3290 Жыл бұрын
저때 만주로 진격했어야 했다는 분들이 있는데 조선의 국력으로 그건 무리였습니다. 세종이 한반도 최고의 군주 중 하나이지만 그시기 조선은 신생국가의 아직 여러모로 불안정한 면이 남아 있었고 대규모의 군대를 수년간 유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것도 수비도 아니고, 공세적인 입장에서 군대를 굴리는 건 더욱이요. 게다가 조선초기 명나라는 조선을 아주 경계했고, 만주로 나오려는 걸 본 순간 바로 사신을 보내서 제지했을 겁니다. 그걸 무시할 수도 없죠. 게다가 만주는 한반도에 비해서도 불모지라 농사도 상대적으로 잘 안 됩니다. 물론 일부 농경이 잘 되는 곳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동이 이미 명나라의 권역에 들어가 있어서 만주공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만주를 기반으로 한반도로 확장했던 고구려와는 상황이 정반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백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는 만주에 남아있던 예맥계통(한민족) 주민들이 많이 옅어지고 중국이나 여진에 동화되었기에 한반도 국가는 더더욱 만주로 진출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일단 점령하면 당연히 사민을 통해 그곳을 조선의 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엄청난 국력이 소모됩니다. 두만강을 넘어서 사람들을 보내고 성을 쌓고 군대를 보내 지키고 땅을 일구고 하는 게 게임처럼 뚝딱 되는 게 아니니까요..
@joongj8282
@joongj8282 Жыл бұрын
최고의군주중 하나가 아니라 최고의군주죠..그가만든 한글로 현세까지 영향을 끼치고있습죠 한문2천자 안외우는게 어디입니까 이간 축복이죠 세종께서 후세의 노가다를 멈춰준거죠
@dufwjd
@dufwjd Жыл бұрын
명나라초기 조선건국 경계한 이유 수 당 때려 패던 고구려의 후손 후삼국을 외세 도움없이 통일해서 자주국방이 강하고 무역으로 부를 쌓아 강국이었고 요나라 금나라가 상국으로 모신 나라 고려 송나라로 사신이 가면 패악질부려서 공물과 뇌물을 뜯어내는 깡패국가 고려 몽골 제국에 대항하고 살아남은 나라 고려의 후손이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임 이것만으로도 경계할만한대 이성계가 장군으로 활약하던 시절 다 패고 다녔음 전장의 신으로 알려져 주원장이 존나 경계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그리고 조선이 군사력이 건국초에 약하지 않았음 국력이 약했다는건 개소리임 고려는 항상 상비군으로 15만이상 유지했었음 쿠데타로 고려왕조 멸망시키고 그걸 그대로 유지하고 조선이 건국된거임 고려말 공민왕이 개혁하면서 공양왕까지 국고가 비어 있지 않았음 그러니 조선 건국하자마자 개경에서 천도 결정하고 한양에다 경복궁 짓고 관할 건물 다 지었던거임 한양에서 왕이 제대로 입조해서 통치한건 태종때부터임 애초에 고려의 행정도시는 540여곳 조선은 360여곳 연간 세금이 들어오게 넘사벽임 만주가 한반도에 비해 불모지라고 했는데 만주 동북3성 요령성 길림 흑룡강성 남쪽은 곡창 평야지대임 지금 남한 전체 합친것보다 더 큰 땅임 그리고 평안도는 산지가 덜하나 함경도 여긴 쌩 산지중의 개마고원을 끼고 연평균기온이 가장낮고 일교차가 크고 추위는 시베리아급 농사를 제대로 못하는 동네임 조선국력으로 무리가 아니라 조선이 명에게 사대하는 명분으로 안락하게 한반도를 지방 통치 개념으로 나라 세운것임 그리고 만주가 명나라 권역이라는데 이것 또한 개소리임 명나라 초기 수도는 남경 즉 강남쪽임 북쪽으로 원이 밀려났으나 멸망까지 보긴 어려웠던 상황이라 신경쓸 단계가 아님 그리고 조선 말 간도협약 전까진 만주쪽 간도지방 전체와 연해주 노른자땅은 조선인들이 농사짓고 먹고 살던 땅이었음 조선관할인데 관리하지 않고 버린땅이었고 명나라도 청나라도 만주 간도지방과 연해주쪽은 관할 안했음
@유기농콜라
@유기농콜라 Жыл бұрын
세종이 저럴수 있었던건 왕권이 강력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방원이 싹다 조져놔서 감히 왕권을 넘보지 못했지요.
@표펙크쿻-o6q
@표펙크쿻-o6q Жыл бұрын
조선팔도 그 자체가 완성 되는 순간 ㄷㄷ
@춘원이광수-y9s
@춘원이광수-y9s Жыл бұрын
그때 명나라한테 주었으면 분단은 안되었지 ㅋㅋ
@이-방원
@이-방원 Жыл бұрын
@@춘원이광수-y9s 너는 짜장,아니....마라탕이나 먹으러 가렴.
@touchme6097
@touchme6097 Жыл бұрын
@@춘원이광수-y9s 아라따 조선족
@Nong-Rock
@Nong-Rock Жыл бұрын
삼국시대 때 일본도 우리땅, 황해에 근접한 중국땅도 우리땅, 하얼빈 중심 대지도 우리땅이었는데...북한 무력 통일 시키고 원래 땅들 수복 해야 합니다....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Жыл бұрын
문무양쪽에서 공을 세운 제왕의 묘호가 세종. 대표적인게 조선의 세종. 단 명나라의 세종은 예외...;;
@이동욱-s6t
@이동욱-s6t Жыл бұрын
명세종 가정제 주후총. 명나라 11대 황제로 약 40년의 제위기간동안 도교에 심취해 국정에 무관심했고 궁녀들을 때려죽여 궁녀들에게 죽을뻔했던 무능한 황제... 그럼에도 묘호를 세종이라는 과분한 호칭을 받은...
@장혁수-y4z
@장혁수-y4z Жыл бұрын
자신의 의견보다는 유능한 실무자의 의견을 따르는 세종에게서 남북전쟁 당시의 링컨이 보이네요.
@망망-b9c
@망망-b9c Жыл бұрын
팩스토리님 광개토대왕편 몰아보기 다시 올려주세요
@타키수녀님
@타키수녀님 Жыл бұрын
태조 이성계편도 업로드 해주세요 .
@Sibasinu
@Sibasinu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의 4군 6진 정책이 없었다면 함경도는 거란족 땅이 됐을거고 지금 중국땅 될뻔 했었네ㄷㄷ 조선전기 북방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조선왕들께 감사함
@eon210able
@eon210able Жыл бұрын
❌️ 식민사관으로 배운지도를 자랑하지 마라
@user-bn1ch8ot7r
@user-bn1ch8ot7r Жыл бұрын
북진정책을 통한 북방 영토 확장과 유지 라는 측면에서 보면 요동정벌과 4군 6진 개척을 비교하면 4군 6진 개척이 요동 정벌 보다 쉽고 요동정벌이 4군 6진 개척 보다 어렵다고 보면 얼마나 어려울까요? 세종대왕의 4군 6진 개척이 가능한 이유는 고려 예종 시기 여진 정벌을 교훈으로 삼아서 산 ⛰이 아닌 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삼았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sungbinee8
@sungbinee8 Жыл бұрын
요동은 허허벌판에다 북방유목민과 중국대륙 사이에 낑겨잇는 위치라 요동먹음 중국의 간섭과 북방민족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려서 고조선 처럼 뱉어내게 될거라 생각
@sergeirachmaninoff8888
@sergeirachmaninoff8888 Жыл бұрын
4군 6진은 현재로 비유하면 그 당시 이루어진 신도시 개발이고 사실 조선 초기 국경은 철령부터 공험진까지가 아닌가요?
@waitgold1234
@waitgold1234 Жыл бұрын
조선왕조 실록에는 두만강 건너 700리에 고려윤관이 쌓은 쌍성이 있고..이성계의 고향이 거기다..원나라의 관리이고 이성계의 모친이 원나라 사람이고..원나라에서 벼슬을 했고..그곳에서 살었다..고려 공민왕 때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그곳까지 첮았었다..
@김혜규-o8m
@김혜규-o8m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봤습니다! 주제랑 좀 안 맞지만 4:00부터 시작되는 BGM 어디서 찾으신걸까요? 얼핏 게임 브금인것만 기억나고 생각날듯 말듯해서 답답하네요 ㅠㅠ
@hope9170
@hope9170 Жыл бұрын
이 때라도 늘린 게 다행이지. 이후로는 매번 외국에 맞기만 하잖아ㅠㅠ. 커서보니 안쳐들어간 게 아니라 못 쳐들어 간거였음...
@행성파괴용
@행성파괴용 Жыл бұрын
영토 확장하는게 쉬운일이 아님 미국인들 서부 개척하듯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조선인을 이주시키고 자립할때까지 게속 물자 지원해주고 지킬병력을 파병하는 방법과 또 한가지는 원주민위에 군림해서 흡수하는건데 1번 방법은 국력소모가 엄청 나다는거 2번은 위험부담이 큼 4군6진 개척이야 말로 철두철미하게 영구 영토로 확장할려고 게획적으로 했었죠
@JS-Jeong
@JS-Jeong Жыл бұрын
좋은 댓글에 덧븥이자면 조선은 세종 이후 꾸준히 북방 영토를 늘이려는 군주가 나오지 않은 것이 오늘날 소국화의 원인이 된겁니다. 당시 명나라는 한반도의 왕조 교체기 혼란을 틈타 외교로 요동을 먹었습니다. 이후 성리학이라는 정신병 집단이 존화사상,사대주의 결과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는 신세가 된거죠. 지금까지도 ...........
@Levis502tpd
@Levis502tpd Жыл бұрын
영토확장이 그럼 쉽겠냐 기회 있을때마다 계속 무력으로 확장해 나가야 더 큰 영토를 가지는것 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영토도 위협을 안받는거다
@JS-Jeong
@JS-Jeong Жыл бұрын
@@Levis502tpd 문제는 그런 노력도 안했다는거지 ^^
@김대한-u6i
@김대한-u6i Жыл бұрын
​@@JS-Jeong성리학이라는게 지배이념으로는 좋은 사상입니다. 그리고 조선이 중국을 섬겼던게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성리학자들이 교조화 되고 극단적으로 나가니까 그런거고 임진왜란 전까지는 중국을 황제의 국가로 모시는게 더 이득이었습니다 왜냐? 우리가 사신을 파견하면서 선물도 가지고 가면 황제국이라는 체면이 있잖아요 그러면 몇배로 다시 받아서 오고 그 당시 신식 문물도 받아오니 실리로도 좋았습니다
@김대한-u6i
@김대한-u6i Жыл бұрын
​@@JS-Jeong노력을 안했다뇨? 당장 교과서에 배우는 효종시기에 조총을 다루는 군인이나 군인을 북벌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죠 고종 시기에 간도에 행정구역을 설치한것도 그렇구요
@이동연-c6d
@이동연-c6d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께서 더 북쪽, 간도와 연해주 까지 진격 했었어야 했음… ㅜㅜ ㅠㅠ
@ryu9203
@ryu9203 Жыл бұрын
명나라가 코앞에 있는데 그랬다간 난리났음. 그리고 세종때 개척했던 4군6진 인구없어서 경상도에서 강제로 끌고와 사민정책 실시했는데 간도개척 불가...
@이동연-c6d
@이동연-c6d Жыл бұрын
@@ryu9203 에휴야!!! ㅜㅜ ㅠㅠ
@sungbinee8
@sungbinee8 Жыл бұрын
@@이동연-c6d 이북은 명나라 눈치도 있고 강 경계 넘어서면 그곳까지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예상됨 간도와 연해주는 그 사이에 개마고원이 있어서 그곳까지 영향력 행세하기엔 지형적으로도 꽤나 곤란했을거임 조선이 먹는거보다 여진족이 먹는게 더 쉬웟을거라 봄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세종 때 조선의 군사력 ---> "전조[고려]에서는 42도부(都府)를 두고 정병(精兵) 12만 명을 양성했던 고로 능히 이웃 나라를 넘보게 되어, 비록 요(遼)와 금(金)이 서로 번갈아 중국에 들어가도 문정(門庭)에 근거(根據)되어 감히 범(犯)하지 못하였삽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백제(百濟)를 평정할 때도 정병 11만 명을 사용하였사오며, 정종(定宗) 때에 와서 거란(契丹)의 꾀를 듣고 30만 군졸을 가려 뽑아서 이름하기를 광군(光軍)이라 하였다가, 강조(康兆)가 거란을 막을 때에 30만 명으로 막았고, 강감찬(姜邯贊)이 거란을 패퇴(敗退)시킬 때에는 20만 명으로 물리쳤으며,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평정할 때에는 17만 명으로, 신축년(辛丑年)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할 때에는 20만 명을 사용하였사온데, 지금[조선]은 군사의 수효가 서울의 시위 군사(侍衛軍士)를 제외하면 군사가 겨우 10여 만이온데, 선군(船軍)이 일부분이고 시위 진군(侍衛鎭軍)과 수성군(守城軍)이 일부분이며... 선군(船軍)은 다른 일을 시킬 수 없으니 또한 쓸 수 없고... 우리 나라[조선]는 다만 시위 진군(侍衛鎭軍) 수만 기(數萬騎)만이 조발(調發)할 수 있는 군사입니다."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1월 15일 신묘 1번째기사』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이런 한심한 군사력으로 무슨 에휴.. 꿈 깨세요ㅠ
@이-방원
@이-방원 Жыл бұрын
이제 태종 이방원의 열화판.......수양대군(세조)의 등장도 머지않았군요.
@제국전기
@제국전기 Жыл бұрын
세조와 칠삭동이 한명회때문에 조선이 뒤틀어지고 썩어들어갔는데 ㅋㅋ 미친
@이-방원
@이-방원 Жыл бұрын
@@제국전기 그러니까 열화판이죠. 안 좋다는 겁니다.
@snow_bear_kim
@snow_bear_kim Жыл бұрын
​​@@이-방원 사실상 조선판 영락제였죠
@코드지로
@코드지로 Жыл бұрын
왕권강화를 위해 사병제도를 없앴으니 국방력이 약화됐고 영토확장도 못 하고.
@au79ag47
@au79ag47 Жыл бұрын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역시 왕은 똑똑해야 함. 머저리 같은 것들이나 자신의 허세를 앞세우다 폭망함.
@여차저차-o1r
@여차저차-o1r Жыл бұрын
여진족을 조선의 일족으로 받아버려서 만주를 쓸어야했는데...
@eon210able
@eon210able Жыл бұрын
요동땅이라하는 곳은 지금 북경이 있는곳입니다❤
@하느링-k9p
@하느링-k9p Жыл бұрын
이 형님은 진짜 똑똑한게 옛 역사부터 천천히 쭉 달려가면 처음엔 미비하지만 근현대 6.25전쟁부터는 떡상할거란걸 알고있는거 같음 이댓글은 분명 성지가 될 것..
@세점박
@세점박 Жыл бұрын
경계선은 늘 산과 강으로 통상 그어진다. 일하기 싫은 신하들"강건너는 가지 맙시다"
@junyongpark2398
@junyongpark2398 Жыл бұрын
역시 세종
@user-zx9dc2md5s-l2t
@user-zx9dc2md5s-l2t 9 ай бұрын
수양대군이 화근의 씨앗이 되어 김종서 머리통이 날아갔지 ㅠ
@타키수녀님
@타키수녀님 Жыл бұрын
이성계편 업로드는 언제 업로드 돼나요 ?
@parkgoogle
@parkgoogle Жыл бұрын
이번화부터 세종 수염이 나네용
@max-ds2we
@max-ds2we Жыл бұрын
조선 500년 기간 중 세종치세 기간이 나머지 조선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한민족 역사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전체 조선은 사실상 한민족 후퇴의 기간이야
@user-fl1zr9ii2h
@user-fl1zr9ii2h Жыл бұрын
실제로 임진년~호란때까지 무기시스템이나 백성생활은 변한게 없었죠. 심지어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등장하여 거중기나 여러 농사법, 그리고 임상옥같은 거상들이 나와도 그놈의 성리학정치룰로 밟아버렸으니.ㅡㅡㅋ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Жыл бұрын
​@@user-fl1zr9ii2h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회복은 커녕 위에서 자꾸 찔러대는 마당에 무기개혁을 뭘로 해요
@user-fl1zr9ii2h
@user-fl1zr9ii2h Жыл бұрын
@@user-bx1xl7gl5b 수많은 전란때매 민생이 피폐해진거 몰라서 그러는거 아닙니다. 하지만 임진년 1592년~정조 승하 1800년까지 약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른 나라들 발전한것과 비교를 해보세요. 유럽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던 시기고 미국은 서부개척과 독립전쟁까지 하던 시기였고 일본은 메이시유신으로 아얘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개화파가 득세하던 시절입니다. 조선도 충분한 시간과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박제가 정약용 임상옥같은 상업과 공업을 중요시하는 실학자와 상단들이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성리학의 잘못작용된 정치 시스템(사대를 위한 사대, 정쟁을 위한 정쟁)에 의해 민생이 뒷전수준이었다는것만 알아두세요. 원래 혼란한 전후처리를 잘한 국가들은 성장하고 그걸 못한 국가는 망국에 접어들죠. 전자가 대한민국이고 후자가 임진년 후의 이씨 조선입니다. 역사에서 배울것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쉴드치자가 아니라 이젠 두번다시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한다 입니다
@option_no.1
@option_no.1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여진족은 단군이래 고구려을 거쳐 같은 뿌리입니다 정도전이 명에 입조한후 돌아가는길에 여진 말갈등 여러부족을 만나고 간 일을 빌미로 명에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명황제가 정도전을 넘기라는 외교사건이 불거졌죠? 단지 누가 형노릇을 하느냐가 자존심,집안 싸움입니다 조선이후 금나라 청나라가 누가 형이냐를 두고 전쟁이 일어나죠? 금나라와 고려까지는 사이가 좋았지만 청이 들면서 조선은 자존심 새우다 인조가 굴복하였지요 이는 곳 파벌이고 집안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신동일-j1f
@신동일-j1f Жыл бұрын
좋은 얘기인데... 넓혔어야지. 농안까지 넓혔으면 만주 옥토도 우리것이 됐을것.
@King_2333
@King_233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 콩닥콩닥 그림 개귀엽네옄ㅋㅋㅋㅋㅋ
@meguru420
@meguru420 Жыл бұрын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때 개척한곳은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임 왜 한국인은 기록도 무시하고 영토를 축소해서 스스로 움추려드는지 알수없다
@user-pz2pi2bj4h
@user-pz2pi2bj4h Жыл бұрын
팩 좋다 가서 토벌하라
@batuu2601
@batuu2601 8 ай бұрын
신라는 평양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의주와 함흥을 되찾아서 세종대왕의 업적이 크다고 봅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라고 하지만 백두산이 우리 땅인 건 겨우 500년이란게......
@dsswitch6392
@dsswitch6392 3 ай бұрын
문제는 백두산의 많은 부분이 지금 중국땅… ㅠㅜ
@빠방pabang
@빠방pabang Жыл бұрын
거구려시대 땅 다시 찿아와야하는데 멍청스런 이북이 꽉 틀어막고
@shiahlee3083
@shiahlee3083 Жыл бұрын
그냥 현대 이시점에서도 저리 유능하고 인성좋고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과 잘따를 충직한 무리들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국회에는 투명인간들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위해 나랏일 신경쓰는 인간 한명도 없음.
@재인-w1n
@재인-w1n Жыл бұрын
4군6진의개척
@user-ft4ih1hk3q
@user-ft4ih1hk3q Жыл бұрын
좀더 자세한 조사 후 이런 자료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조선초부터 압록, 두만강이 경계였다고 하는데? 압록이 어디에 있는 압록인지 확인 해보세요??
@user-ge5hq7tu7w
@user-ge5hq7tu7w Жыл бұрын
여진에게 나중에 탈탈 털릴것을 그땐 몰랐겠지 ㅠ
@user-xd6wo3sv8x
@user-xd6wo3sv8x Жыл бұрын
땅을 먹으려면 일단 그 땅에 사람이 상주해야 하고, 사람이 살게 하려면 생산되는것이 있어야 함. 원래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뺏어서 원주민들을 흡수하거나, 그 원주민들이 먹고사는 방법을 그 땅에 새로 정착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정착시키는게 일반적인 정복임. 근데 만주는 문명이라는 것이 없던 땅이었음. 바로 옆에 화북도 있는데, 중국인이 만주쪽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았던 이유가 다 있음. 그만큼 만주는 당시 기술력으로 뭘 생산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고, 흡수할만한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인간들이라 강하며 동화시키기가 힘들었고 오히려 조선의 이주민들을 반기질 않았음. 만주를 신성하게 여긴 만주족들도 중국을 정복하면 만주를 내버려두고 중국에 눌러앉는걸 택할 정도로 만주는 산업화 되기 전엔 뭔가를 생산할 만한 땅이 아니었음. 임진왜란 전의 조선은 만주를 먹을 수는 있었음. 실제로 진출하려고 꾸준히 시도를 했기도 하고. 그저 조선의 역량이 딱 압록강 두만강 까지였던 것임. 만주를 먹는게 가능했어도 만주를 먹고 유지하는것 보다 한반도의 땅이나 개발하고 생산량을 늘려 인구부터 늘린 다음 먹는게 정석이었음. 세종때 함경도로 진출하고 안정적으로 백성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한건 세종부터 왜란 전까지의 기간에 조선의 생산량이 일제강점이 전까지 조선 역사상 최고 전성기였고, 그만큼 부양가능한 인구도 많았기 때문임
@user-gp4fs3qd8y
@user-gp4fs3qd8y Жыл бұрын
그 만주땅이 지금은 중국의 최고식량 생산기지가 됐지
@hjwo4516
@hjwo4516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이기도 함.
@user-gp4fs3qd8y
@user-gp4fs3qd8y Жыл бұрын
@@hjwo4516 중공업 기지임 무기창고임
@나안골-b5e
@나안골-b5e Жыл бұрын
민주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왜 물불을가리지않고 공산주의를 넘넘 좋다고 하는지 이해가 전혀😮안됨니다 성추행도 정당화시킬려고 하는지 이해불가능 합니다
@user-cd8kg7br7h
@user-cd8kg7br7h Жыл бұрын
@창조천지-d3v
@창조천지-d3v Жыл бұрын
호랑이 김종서. 늑대 수양대군 얼마 안남았내
@소당-y8m
@소당-y8m Жыл бұрын
정말 지금의 두만강 압록강이 조선의 국경이었을까?
@sangjinkim567
@sangjinkim567 Жыл бұрын
로마가 유럽을 지배한 가장 큰 이유는 병참입니다. 참고로 조선역사상 가장 쌀생산이 많았던 시절이 세종때입니다. 두번째가 영,정조 시대인데 3배이상 차이가 납니다. 국력이 조선역사상 최고의 시절이었다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만주정벌할려다가 회군해서 생긴 게 조선이죠! 이게 아마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네요! 그리고 조선의 지도를 보면 전부다 두만강 넘어서도 조선땅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지도는 전부 다 두만강 안쪽까지죠! 슬프게도 친일파자손들이 문화재청이고 역사학자고 다 그 후손들입니다. 그래서 두만강 넘어 조선지도의 땅은 인정을 못하는거죠!
@빠방pabang
@빠방pabang Жыл бұрын
용그림 노랑색 깃발이 조선의 국기인가요 아무튼 쿠데타로 조선을 만들어서 잘한거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한것 뿐입니다 그것도 많은 반대를 거스르면서 그 거스름이 성계군이 하던버릇인데 결국 500년을 겨우채우나마나 하나보네요
@chang77sek36
@chang77sek36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영토 말아 먹은거지
@youone3584
@youone3584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고구려 발해 땅을 되찾지 못한 건 누구 때문인가요. 궁금해서.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11 ай бұрын
그냥 발해멸망시킨게 거란인데 유목민족 특성상 말타고 덤비면 3대1도 개털릴정도라 고려는 문닫고 수비만해야할지경이였을꺼임
@dufwjd
@dufwjd Жыл бұрын
이씨 조선이 지금의 국토를 만든거지 송나라 송사에 나오는 고려도경 사신이 기록한게 있는데 고려 국토의 범위를 상세히 말함 동서로 2천리 남북으로 1500리 이고 신라 백제를 통합하고 동북으로는 고구려보다 더 큰 땅을 가졌다 라고 했음
@OriginOfMankind
@OriginOfMankind Жыл бұрын
놀구 있네. 신라의 중후기를 장악한 흉노계 중국인들인 김씨들 때문이다. 고조선, 부여와 연관이 전혀 없는 진짜배기 외부 유입 병균 세력. 그것들이 당나라와의 연합을 스스럼 없이 한 이유도 그것. 당나라가 들어선 그 땅에서 수백년간 살면서 중국화 된 세력이기 때문에. 신라 이후로 고려때도 함경북도를 지배하지 못했는데 무슨 헛소리. 설마 원 간섭기에 원황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심양왕에 임명된 거 가지고? ㅋㅋㅋㅋ
@선각자프라이모디얼
@선각자프라이모디얼 Жыл бұрын
조선전기에는 조선군이 엄청 강했음 무기체계는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있었고 역대 한반도 왕조중 가장 높은 생산력이 뒷바침 되었음 게다가 실전경험도 많아서 명나라도 경계할 정도임 병력도 대략 20~30만명에 주력군은 기병 비율이 보병과 1:1일정도로 기병을 중시함 몽골보다 더한수준임 게다가 국력자체도 당시 기준으로는 강대국에 부합함 왠만한 유럽국가보다 더 강한 국력을 자랑할 정도임 태조-태종-세종때 잡힌 기틀을 무너뜨린게 세조임
@sungbinee8
@sungbinee8 Жыл бұрын
그정도 국력이니 임진왜란 전 200년 동안은 태평성세를 이룩한듯 명도 경계할 정도니 사대관계라도 함부로 대하진 않았을거고 하필 일본이 태평양 건너 들어온 서양세력과 접촉해 서양문물을 더 일찍 받아들였으니
@user-ux9uy3nc4i
@user-ux9uy3nc4i Жыл бұрын
@@sungbinee8 100년아님, ?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개소리 좀 퍼트리지 마세여ㅠ 제발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세종 때도 실제 조발 가능한 군사가 불과 수만에 불과해서 한심한 수준이었는데 무슨 말같지도 않은 개헛소리를 에휴ㅉㅉ
@vivivi3865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그 강력했다는? 세종 시절 조선 군사력의 실체 --> "전조[고려]에서는 42도부(都府)를 두고 정병(精兵) 12만 명을 양성했던 고로 능히 이웃 나라를 넘보게 되어, 비록 요(遼)와 금(金)이 서로 번갈아 중국에 들어가도 문정(門庭)에 근거(根據)되어 감히 범(犯)하지 못하였삽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백제(百濟)를 평정할 때도 정병 11만 명을 사용하였사오며, 정종(定宗) 때에 와서 거란(契丹)의 꾀를 듣고 30만 군졸을 가려 뽑아서 이름하기를 광군(光軍)이라 하였다가, 강조(康兆)가 거란을 막을 때에 30만 명으로 막았고, 강감찬(姜邯贊)이 거란을 패퇴(敗退)시킬 때에는 20만 명으로 물리쳤으며,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평정할 때에는 17만 명으로, 신축년(辛丑年)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할 때에는 20만 명을 사용하였사온데, 지금[조선]은 군사의 수효가 서울의 시위 군사(侍衛軍士)를 제외하면 군사가 겨우 10여 만이온데, 선군(船軍)이 일부분이고 시위 진군(侍衛鎭軍)과 수성군(守城軍)이 일부분이며... 선군(船軍)은 다른 일을 시킬 수 없으니 또한 쓸 수 없고... 우리 나라[조선]는 다만 시위 진군(侍衛鎭軍) 수만 기(數萬騎)만이 조발(調發)할 수 있는 군사입니다."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1월 15일 신묘 1번째기사』
@churlkoh8053
@churlkoh8053 Жыл бұрын
영토의 핵심은 기후이다. 국력이 강했던 고려는 이상하게도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위쪽으로는 겨울에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고 북극권 날씨가 나타나기때문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중세 온난기가 끝난 이후부터는 생산력을 기대하기 힘들어지죠.
@mylife-zd7ry
@mylife-zd7ry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여진족을 구별했단다. 유교에 매몰되어 유교 모르면 오랑캐라 한것 아닌지?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Жыл бұрын
당시 조선의 시각으로 본다면 여진족은 대책없는 어른중2병 환자들임요~
@김기창-i4n
@김기창-i4n Жыл бұрын
조선초기의 국경은 중국동쪽 대륙이었다.. 식민사관 역사를 퍼뜨리지마라 우리역사를 축소시키지마라
@라미박-y1o
@라미박-y1o Жыл бұрын
요동성만이라도 수복했더라면 좋았을것을 ㅠ
@777-ve4dr
@777-ve4dr Жыл бұрын
태종 이방원과 세종 이도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 국경선은 만주 이북 요동지방이 전부 편입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왜곡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야합니다. 역사가의 "사관"은 기본적으로 고증적이어야 합니다.
@user-dx1kb2si8i
@user-dx1kb2si8i 11 ай бұрын
세종과 이순신이 함께 계셨다면 몽골댐
@father_job
@father_job Жыл бұрын
현조선족이 모여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구인 간도는?? 간도는 조선의 땅이 아니였나요?? 조선족과 간도땅은 중국의 소수민족이고 중국의 땅이라고 인정하게 되는건가??
@JJH5680
@JJH5680 Жыл бұрын
임진년때 세종이 다시 부활했다면 김종서가 부활했었다면 병자호란도 안일어났을듯
@제국전기
@제국전기 Жыл бұрын
그럴필요도 없이 세조와 역적한명회만 없었어도 조선초 군사력이 유지되었을듯 ㅋ
@jayu546
@jayu546 8 ай бұрын
한반도 절대 작은땅 아님 ㅋㅋㅋㅋㅋㅋ 전세계 영토중에서도 중상위권임 ㅋㅋ
@김재중-g5h
@김재중-g5h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3대병신왕 1위고종 2위인조 3위선조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11 ай бұрын
그건아님 3위가 고종인게마즘 고종은 나라가 평안할때는 중간정도는 가는왕이 될수있었음 허나 나라가 박살나고있던때의 왕으로는 부족해서 병신이라고 욕먹는거임 허나 인조 선조는 그걸 바꿀수있는데도 하지못한 그래서 저는1위가인조2위가 선조라고봄
@user-tj3pl7zo5j
@user-tj3pl7zo5j Жыл бұрын
우선 한반도 40도 이남만 통일하고 남만주 내만주를 차지하자
@js2850
@js2850 Жыл бұрын
이때 더 중원으로 진군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song0105
@song0105 Жыл бұрын
명나라때문에 그건 힘들었지 싶습니다
@js2850
@js2850 Жыл бұрын
@@song0105 오 그랬을수는 있겠네요 그래도 세종대왕님이라면 외교로 잘 해결하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ㅎㅎㅎ
@흐아아아-h3d
@흐아아아-h3d Жыл бұрын
​@@js2850중원땅을 먹은 민족은 중원의 한족에 동화되어버립니다. 결국 한반도의 한민족과 중원 한족의 경계만 모호해져 훈민정음 마저 역사의 편린으로만 남게 될지 모르죠.
@js2850
@js2850 Жыл бұрын
@@흐아아아-h3d 오 진짜 그럴수 있겠네요....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js2850 애초에 그럴 능력이 없는 나라라서 중국에 도전했다간 그대로 반격->합병
@대석-h3d
@대석-h3d Жыл бұрын
고려의 영토는 더 넓어졌습니다
@plussin2760
@plussin2760 Жыл бұрын
최무선의 아들 최해선은 왜 소극적으로 행동했죠?
@jinshiksung
@jinshiksung Жыл бұрын
이차대전이 끝나고 국경선을 그은거임 중국옆에 우리가 쪼메났단 말이지 미친거 아냐 만주국 공무원이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더 많았음 생산양도 6대4 였을걸 그리고 러시아도 만주국 일원 이였어 지나는 이기고 일본만 패망함 네글자 쟎아 나중에 고쳐 줄까
@도토리묵-x4c
@도토리묵-x4c Жыл бұрын
학교에선 분명히 호랑이라고 배웠는데 다시볼때마다 토끼같음
@윤성진-f7y
@윤성진-f7y Жыл бұрын
뭔가 지리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기가 그기가 아닌 것 같은데..............
@captailor
@captailor 3 күн бұрын
호랑이 잡는것은 개 뻥일듯
@박은미-h6j
@박은미-h6j Жыл бұрын
압록강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 이 압록강입니다 과거에는 폐수 . 지금은 양자강 이지요
@이순신박사
@이순신박사 Жыл бұрын
김종서 나중에 결국 세종배반하지 단종을지키지못하고 세조에게 죽임당하지 본인도 단종으로 권력을잡았다가 결국 죽게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상기박-c1m
@상기박-c1m Жыл бұрын
모택동과 주을래가 만주땅 대한민국 땅이라고 말했다 준다는 땅 언제 주냐 만주땅 주며 중국과 친하게지내요 알면서도 일안한 시진핑 이다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모택동과 주을래가 만주땅 대한민국 땅이라고 말했다" =>그런적 없음 ㅅㄱ
@Moonke_Jaeger
@Moonke_Jaeger Жыл бұрын
@@PrettyT-rex 좃1족 바퀴벌레 검거
@을지로4가
@을지로4가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조선 자연 판도 이쁨…
SHAPALAQ 6 серия / 3 часть #aminkavitaminka #aminak #aminokka #расулшоу
00:59
Аминка Витамин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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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거란어 거울을 해독했습니다
8:25
향문천 – 글을 울리는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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