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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밤 10시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을 치료해 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소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최종 지원율은 25.5%를 기록했다. 하반기 상급년차 전공의 모집 지원율은 더 처참하다. 전국 40개 수련병원의 모집 정원은 총 258명이었지만 지원자는 단 2명이었다. 필수의료 과목인 소아청소년과는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렸다. 붕괴되고 있는 소아 의료체계,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법은 무엇일까.
■ 소아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는 의사들, “소아 심장 수술할 의사 없어지는 거죠”
해마다 2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심장질환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소아 심장을 수술할 수 있는 전문의는 전국에 15명뿐. 김웅한 소아흉부외과 교수도 그 중 한 명으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베테랑 집도의다.
제작진이 김 교수를 만난 곳은 대형 종합병원의 한 수술실. 집도 전 아이의 수술이 잘 되기만을 생각한다는 김 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간 지 7시간도 지나서야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외래 진료를 보러 발걸음을 옮기는 김 교수. 연륜이 쌓인 만큼 체력이 떨어져 걱정이다. 하지만 그의 요즘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다. 자신이 은퇴하고 나면, 대를 이을 의사가 없진 않을까.
0명, 이 병원의 소아흉부외과 전임의에 지원하는 의사가 3년째 0명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병원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한다. 지금 소아 심장을 책임지고 있는 열명 남짓한 전문의 대부분이 김 교수처럼 50대인 상황. 그들이 은퇴하고 나면, 2천 명 넘는 작은 심장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임의 지원이) 끊어진 지 지금 3년 됐어요 지금.
전국적으로도 없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에 선천성 심장병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지는 거죠.“
김웅한 소아흉부외과 교수-
“소아신경외과를 전공하고 있는, 꿈나무죠.
지금 전국에 두 명 있습니다.
지원자가 없고... 지원자가 없으니까
그걸 수련하는 시스템도 많이 무너져가고 있거든요.“
피지훈 소아신경외과 교수 -
뇌혈관 질환을 다루는 소아신경외과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국에 단 두 명뿐이라는 소아신경외과 전임의 이종석 씨는 “부담 반, 걱정 반”이라며 “제가 잘못해서, 저에서 (소아신경외과의) 대를 끊게 하고 싶진 않다”고 전했다.
■ 이미 붕괴된 지방 소아 의료체계... 중증 환자들, 병원 찾아 300km
전라남도 광양시에 사는 김지유 씨는 매주 전자레인지보다도 큰 젖병 소독기를 챙겨 서울을 향한다. 생후 9개월밖에 안 된 아들, 시훈이의 암 치료를 위해서다. 온 가족이 광양에서 서울까지,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상경한다. 병원에서 입원이 가능하다 연락이 왔을 때 출발하면 너무 늦어 병실을 놓쳐버리기에, 전날 밤 미리 올라와 낯선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시훈이네. 이번에도 입원하기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앞으로도 300km 넘는 거리의 병원을 다녀야 하는 시훈이. 지방의 소아 중증 환자들은 병원 가는 길이, 건강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이제 지방은 다 물에 잠겼어요.
태풍이 와서 서울만 둥둥 차오르고 있는데...
여기도 이제 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는데,
환자를 볼 여건이 안 되니까 점점 악순환이죠.“
고경남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
■ 소청과 전공의 부족... 교수는 당직 서고, 2차 병원은 과부하
양유진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오늘도 점심을 거른 채, 외래 진료를 마쳤다. 하지만 곧장 의국으로 가 당직을 설 준비에 나섰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해지자, 75%의 병원에서 교수들이 직접 당직을 서며 밤샘 진료를 하는 실정이다. 양 교수의 병원에는 지금 5명의 전공의가 있지만, 내년 2월에는 전부 퇴국할 예정. 제작진이 만난 의사들은 “내년이 진짜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아청소년과는 어쩌다 기피 과목이 됐을까. 제작진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소아암 환자 생존율은 거의 70~75%에 육박할 만큼 높아요.
이걸 계속해서 지킬 수 있는지는...
앞으로는 이제 물음표로 남겨야 할 일입니다.“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중환자실에 쌓입니다.
‘나는 혼자인데 이 중환자들 중에 어디를 먼저 가야 할까?’
환자들을 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일한 적도 셀 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A씨 -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 현상은 대형 종합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2차 병원인 아동병원, 1차 병원인 동네 의원까지도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이미 그 연쇄반응이 나타난다는 한 아동병원을 찾았다. 원래 아동병원은 소아 의료체계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며 경중증 환자들을 책임져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아주지 않자 이 곳으로 응급 및 중증 환아들이 몰리는 상황. 급기야 서울에 사는 아이도 충남 천안까지 내려와 응급 치료를 받고 입원한다고 한다. 전국 45개의 상급 종합병원 중 소아가 24시간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단 12곳인 현실, 그 현실의 무게를 아동병원이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2013년에 아동병원의 진료량이 18%밖에 안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24%까지 올라갔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역량, 그 이상으로 환자를 보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지금은 ‘2.5차 병원’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최용재 아동병원장 -
양유진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 -
■ 소아과 오픈런? “남들이 다 없어져서...코로나19 때 살아남았기에 지금 환자 보는 것”
오전 9시, 문을 열기도 전이지만 아동병원 앞에는 SNS 맛집에서나 볼 법한 긴 대기 줄이 늘어섰다. 소위 ‘소아과 오픈런’은 부모들 사이에선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병원 문을 열자 물밀 듯이 들어오는 환자와 보호자들. 이인규 아동병원장은 그 이유를 묻는 제작진에게 대답 대신 팬데믹 당시 마련한 음압기를 보여줬다.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600여곳이 폐업했는데, 특히 코로나19로 환자 수가 줄며 소아청소년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 원장의 병원 또한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전 직원들이 9개월 동안 돌아가며 유급 휴직을 해 겨우 버텼다고 한다. 제작진은 이를 못 견디고 끝내 25년간 운영하던 소아과 간판을 내린 이종원 씨를 만났다.
“2020~2021년이 아마 최고로 (병원 사정이) 안 좋았었는데...
하루에 환자가 10분의 1로 줄었어요.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남들이 다 없어져서.
슬픈 얘기인데 그때 살아 남았기 때문에 지금 환자 보는 거예요.“
이인규 아동병원장 -
“‘내가 무얼 대처를 잘못했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우리나라 출산율 감소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종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
■ 소아청소년과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을까
소아 의료체계의 붕괴, 해법은 없을까. 단서를 얻기 위해 제작진은 일본을 찾았다. 일본은 2007년 지역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정원제’라는 의대 입시 전형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학비와 수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의사 면허 취득 후 해당 지역에서 9년 동안 일하면 그 비용 상환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일본은 의무 복무 기간 중에 지역을 이탈할 경우 전문의 자격 취득을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지역 잔존율을 99%로 높였다(2018년 기준, 후생노동성). 더불어 일본은 소아 의료체계를 위해 ‘아이들의 건강을 나라가 책임진다’는 철학을 담은 성육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 직속의 어린이가정청을 설립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정원제로 의대에 입학해 9년째 일본에서 의료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도치기현을 지키고 있는 마스다 다쿠야 씨는 의무 복무 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며 “이후에도 지역에 남아 근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편은 8월 18일 밤 10시 KBS1TV에서 방영된다.
Since 1983, 대한민국 최초의 탐사 프로그램
상식의 눈으로 진실을 추적한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KBS1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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