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6 칼빈주의 구원관은 무엇인가? 칼빈주의 5대교리와 칼빈주의 구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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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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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43
@진리교회오봉용목사
@진리교회오봉용목사 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목사님 5대 강령은 대단히 중요한 몸의 뼈대와 같은 진리요 교리라 생각 합니다 아쉬운 것은 목회자들이 성경 진리를 충분히 설명을 못하고 있으므로 평신도들이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목회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신앙을 위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연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병수-n4f
@노병수-n4f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항상 성령충만하시길 바랍니다.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노병수님! 시청해주시고 격려의 글 남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잘 들었습니다. 좋아요를 누르고 싶었습니다. 러시아의 시성 퓨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가 생각났습니다.
@jhpark7825
@jhpark7825 Жыл бұрын
항상 교수님의 강의를 귀하게 듣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저의 짧은 생각을 표현해봅니다. 저에게 제한 속죄 교리는 애매하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속죄가 제한적이었다면 불신자들은 처음부터 구원에서 배제되었다는 뜻인데 이것은 달리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전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일텐데 그렇다면 불신자들이 최후심판대에서 항변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주님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했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첫째 아담의 원죄는 모든 사람에게 유전되었는데 둘째 아담의 속죄는 일부 사람에게 제한적이라는 것은 공평하지 않아 보입니다. 제한 속죄를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나 그 효력은 믿는 사람에게 제한된다"라고 이해한다면 쉽게 수긍이 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밤하늘님!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한속죄는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이견이 있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영상이 제한된 시간에 핵심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한 속죄는 일부 기독교 신학 전통, 특히 개혁주의 전통의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을 믿는 자들이 따르고 있는 구원관입니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속죄가 오직 택한 자에게만 역사하여, 확실하게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제한 속죄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선택된 자의 죄만을 위해 죽으셨고 버림받은 자에게는 속죄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만인을 위한 속죄이지만 그 효력은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미친다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오직 택함 받은 자의 죄만을 위한 것인지 하는 질문이 핵심일 듯합니다.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서 제한 속죄 이해와 관련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할 듯합니다. 1.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속죄의 범위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핵심 논제가 아니었습니다. 제한된 속죄를 가르친 Orbais의 Gottschalk(c. 808 - c. 867), Thomas Bradwardine(c. 1290 - 1349) 및 Gregory of Rimini(c. 1300 - 1358)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2. 종교개혁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종교개혁의 대전제가 핵심 논제였지만 그리스도의 속죄의 범위에 대한 주제를 핵심으로 삼고 중점적으로 다른 종교개혁자는 없습니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3. 제한속죄를 명문화시킨 회의는 칼빈주의 5대교리를 결정한 도르트회의입니다. 하지만 제한 속죄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의견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청교도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존 오웬은 제한속죄를 믿었지만 당시 리차드백스터, 그리고 후대 조지 휘필드는 제한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영국 청교도인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와 같은 소위 "4대 칼빈주의자"는 제한 속죄 교리를 거부하고 대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속죄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도르트 회의에서 칼빈주의 5대교리를 결정한 것으로 TULIP으로 정리하는 것도 도르트 회의에서 각각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이라는 제목 하에 신조를 쓴 것이 아니고 후에 그렇게 정리하여 도르트 신조를 간단하게 알린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그것이 칼빈이나 도르트 총회에 의해 승인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 없이 사실이다"는 것이 칼빈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합니다. Dort 신조에도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이 죽음은 죄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한 희생이며 속죄이다. 그것은 무한한 가치와 가치가 있으며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력이 목적과 범위 모두에서 선택받은 자에게 제한된다는 제한적 속죄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충분한 대가이지만 말입니다. 제가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세계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스프라울이 이에 대해서 기록한 글을 찾았습니다. 다음은 세계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스프라울이 제한속죄에 대해서 기록한 글입니다. R.C. Sproul, "TULIP and Reformed Theology: Limited Atonement," www.ligonier.org/learn/articles/tulip-and-reformed-theology-limited-atonement “나는 칼빈주의의 다섯 가지 요점 중에서 제한 속죄가 가장 논쟁의 여지가 있고 아마도 가장 혼란과 경악(the most confusion and consternation)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리는 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의 원래 목적, 계획 또는 의도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려는 것이 아버지의 의도였을까요? 즉, 하나님께서 단순히 구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속죄는 원래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제한이 있었을까요? 나는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제한된 속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나는 오히려 한정적 구속 또는 한정적 속죄, 즉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구원을 제공하실 목적으로 구체적으로 구속 사업을 계획하셨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양을 위하여 죽으시고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 사실을 전달하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명확한 속죄 개념에 대한 반론으로 자주 사용되는 본문 중 하나는 베드로후서 3:8-9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구절에서 '누구든지'라는 단어의 바로 앞에 나오는 단어는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하나님은 우리 중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모든 인류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말하는 구원은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가치나 공로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모두에게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전통적입니다. 즉, 그 공로의 가치는 모든 사람의 죄를 덮기에 충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은 확실히 그 속죄의 혜택을 온전히 받을 것입니다. 복음이 보편적으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구원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는 믿는 모든 사람과 죄를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제한 속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질문에 깊이감사드리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jhpark7825
@jhpark7825 Жыл бұрын
@@ykparktv 이처럼 성의껏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하나님 편의 예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한속죄의 가르침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듯 합니다. 독생자의 죽음은 택한자들에게 결코 헛되지 않아서 반드시 그들 모두를 구원하는 효력을 나타낸다는 개념을 담은 용어가 제한속죄인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독생자가 누군가를 위해 죽었다면 그 누구는 반드시 구원을 받게되므로 독생자의 죽음은 그 누구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뜻인 듯 합니다. 달리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누군가를 위해 죽었는데 그 누군가가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귀한 죽음이 헛된 것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결국 독생자의 죽음은 구원받는 모든자들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뜻인것 같습니다.
@진리교회오봉용목사
@진리교회오봉용목사 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제한적 속죄는 예수 이름 뜻에서 잘 나타난다고 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 할 자 감히 덧 붙인다면 이름 뜻에서 더 하거나 빼려는 것에서 자기의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진리는 항상 단순 명료 합니다 감사합니다
@류우현-e6t
@류우현-e6t 9 ай бұрын
구독자 1천명이 안될 때 부터 구독하고 경청하고 있습니다.(가남 앨범도 보면서) 기독교회의 바른 교리와 부흥의 역사를 알고 지키기 위한 노력과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ykparktv
@ykparktv 9 ай бұрын
큰 격려가 됩니다. 시청해주시고 귀한 댓글과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용우-c8s
@김용우-c8s 4 ай бұрын
칼빈교리는하나님이주시는믿음의선물을받지않고는믿어지지가않읍니다...
@진리의지식오직예수
@진리의지식오직예수 4 ай бұрын
정확한 지식(칼빈주의에대한)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그래야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이 가능 예정론은 하나님이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타락이라는 전제하에서 구원을 논리적으로 풀어간것 즉 구원은 예정이다 예정된 자에게 불가항력적은혜를 주시고 예정된 자를 위해 죽으시고 예정된자를 견인하시고 예저된자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 이름을 예정이라고 해라 이것은 근본적으로 이슬람교라고 보아야 된다
@fkedj3fkci6fj5
@fkedj3fkci6fj5 9 ай бұрын
정말 궁긍한것이 있는데 칼빈의 이중예정론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것이 제 구원에 영향을 미치나요?? 만약에 제가 이중 예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을 믿어도 지옥에 갈수 있나요?? 다른 목사님께 이중 예정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젱점은 너무 교리적인것에 치우쳐서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예정론이라는 교리를 인정하든 인정 못하든 그생각이 제가 나중에 죽어서 구원 심판대에서 실제로 영향을 있을 만큼 중요한건지 알고 싶습니다 꼭좀 알려주세요
@ykparktv
@ykparktv 9 ай бұрын
저 자신은 믿지만 이중예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지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굉진
@박굉진 3 ай бұрын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또는 하지 않아서 받는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 영역 입니다.신학적 지식이나 관심이 없지만 정말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많은 성도분들이 계십니다
@pinkpig-g1j
@pinkpig-g1j Ай бұрын
칼빈주의 예정론 거부하면 이단인가요?
@youngflower23
@youngflower23 Жыл бұрын
여전히 이부분은 들어도 들어도 어렵습니다 ㅡ칼빈의 예정론이 결정론과는 다른건가요 마치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없으니 수동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가 인간의 책임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칼빈주의입니다. 운명론/숙명론과 다를 바 없습니다.
@jhbak4383
@jhbak4383 Жыл бұрын
알미니아니즘 3조 관련 문의 드립니다. 3조에도 불구하고 선행적 은총에 의해 자유의지가 회복 되고, 자력 회개, 믿음이 가능한 걸로 보는 것 아니었는지요. 십자가 대속을 질적인 의미에서 제한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구속에는 인간의 회개가 필요) 오해로 인한 잘못된 평가였나요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정확한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영상 전 영상 알미니안주의 구원관에 대해서 업로드 한 영상을 보셨는가요? 처음부터 전체를 시청해주시면 많은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알미니안주의가 '항의' 3조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유의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냐? 2. 그러므로 칼빈주의 5대 교리 즉 정통 칼빈주의 입장에서 볼 때 세미 펠라기우스의 입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신가요? 3. 1, 2도 아니라면 어떤 질문 내용이신지 다시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시청해주시고 귀한 의견을 주셔서 다시 깊이 감사드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jhbak4383
@jhbak4383 Жыл бұрын
@@ykparktv 예. 말씀하신 취지의 질문입니다. 웨슬리안은 십자가 구속에 의해 선행은총이 주어진 것으로 보고 의지로 ‘칭의 전 회개’를 할 수 있고, (또 그 것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믿음으로 성령에 의한 회개가 수반되는 칭의로 본 반면, 알미니안은 십자가 사건이 의지적 회개로 유효?해지는 좀 더 느슨한 선행은총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정정될만한 점이 있나 여쭙니다.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jhbak4383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업로드한 구원론 관련 영상을 처음부터 차분하게 시청해주시기를 바라며 여기 간단하게 답변을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세미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안주의를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지만 다릅니다. 세미펠라기우스는 신인협동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알미니안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미니안주의를 자유의지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적어도 '항의' 3항에서 언급한 알미니안주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볼 때 동의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여기 '항의' 3항을 언급합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자유의지의 힘도 갖지 못하며 반역과 조이ㅢ 상태에 있으므로 (구원의 신앙과 같은 뛰어난 ) 정작 선한 일을 자기 스스로는 생각하거나 원하거나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며 이해와 성향과 의지와 그의 모든 능력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올바르게 이해하고 생각하고 뜻을 세우며 참으로 선한 것을 실행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나를 떠나서는너희가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제가 볼 때 항론파의 이와 같은 구원론 입장은 자신의 의지적 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나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에 의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신인협력설을 주창한 세미 펠라기우스주의 구원관과 다릅니다.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해주시고 귀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jhbak4383
@jhbak4383 Жыл бұрын
@@ykparktv 답변 감사합니다. 우선 질문을 한 이유는 알미니아니즘에 대한 비판이 과연 어떻게 재해석 됐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지 논박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단, 이전의 영상들에서 제가 뭘 놓친 것은 없고, 다만, 알미니아니즘에 대한 기존의 비판은 항론5개조에 국한 되지 않고, 알미니우스의 공개논박, 서신, 설교 내용에서 드러나는 자유의지,선행은총,죄론,신론,섭리,신인협동적 인식 등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르미니우스의 아담의 부패는 계승됐으나 죄책은 계승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연 아르미니우스가 말한 은혜는 개혁교회의 은혜와 같은가?, 선행은총은 포괄적인가? 제한적인가?, 중생 이전의 회개는 자유의지인가? 아닌가?, 중생 이후의 믿음은 과연 전적인 은혜인가? 아닌가?, 그의 예지예정, 죄론, 하나님의 의지는 과연 신인협동을 사실상 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가? 아닌가? 등...이런 비판들이었던 까닭에 이러한 부분이 어떻게 재해석 됐는가를 여쭌 것입니다. 다만, 항론3항을 지속 답변하시는 것으로 보아 논지를 도르트회의로 한정하고 그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심으로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jhbak4383 J. H. Bak님! 정성을 다해 본인의 생각과 의견을 진솔하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답변이 님의 논박을 일축하는 답변이 아니라 강의 내용과 관련하여 제 의견을 핵심적으로 간단하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좋은 의견을 주시고, 부족한 유튜브를 소통의 창으로 삼아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에-w6h
@라에-w6h 3 ай бұрын
택자가 아닌경우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모르시지 않을텐데요 공정하신 하나님 이신데요
@drchoclinic4974
@drchoclinic4974 8 ай бұрын
칼빈주의 신봉자들이 바로 계시록의 용입니다.
@ykparktv
@ykparktv 8 ай бұрын
거짓 교사에 속지 마세요.
@archetypa4075
@archetypa4075 6 ай бұрын
계시록의 용은 곧 " 옛 뱀 ( 사탄 ) " 으로 본문 자체에서 해석이 드러나 있습니다 .
@ykparktv
@ykparktv 6 ай бұрын
@@archetypa4075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에게 속으면 성경의 진리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김용우-c8s
@김용우-c8s 4 ай бұрын
구원받은자녀들만믿어지지읻어질수가없읍니다~^^
@siderlife
@siderlife 2 ай бұрын
칼뱅주의는 비성경적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이미 구원 받을 자를 정해 놓았다면 과연 공평한가요?
@하신용선한목자영성연
@하신용선한목자영성연 2 ай бұрын
이분은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설명 안하네요 왜 그러시지 구원이 뭔지를 설명해주세요
@야긴과보아스-m2k
@야긴과보아스-m2k Жыл бұрын
기독교의 구원과 관련해서 교수님께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저는 장로회 소속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불신자에게 전도 시, 복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에 한하여 '영접(요1:12)' 혹은 '영접기도'를 따라 하게 합니다. 즉, 전도자가 전한 복음 메시지를 불신자가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하면, 불신자는 전도자의 짧은 기도를 한 구절씩 따라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궁금한 점은, 같은 장로회 교회라도 영접을 안 시키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는 영접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또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와, 성도가 구원받은 후 예배드리고 신앙생활하는 개념을, 뭐랄까... '성경 공부'와 '신학 공부'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교회 예배당에서 그렇게 공부하는 행위가 그들에겐 곧 복음이고, 예배이고, 전도이고, 선교이고,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생활로 믿는 것 같았습니다. 즉, 그 공부 안에 신앙의 모든 것이 집약되고 압축되어 있는 셈이지요. 오래전, 실제로 제가 그렇게 공부하는 교회의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있었는데,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기억할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 목사님의 견해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기에 그런 교회는 대부분 본당에 대형 칠판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목사님의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은 대단히 광범위한 편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질문입니다. 위의 말씀 드린 차이, 곧 영접을 하는 교회와 영접은 모르고 공부만 하는 교회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아울러 한국 교회에서 전도 시, 불신자에게 영접을 시키는 것은 언제부터, 또 어느 교단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까? 다시 말씀드려, 영접에 대한 역사는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외국 교회에서는, 전도 시 영접을 시키고 있습니까? 2. 예정론에 근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이미 택하셨기에 구원받을 사람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전도하는 사람은 그 택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불특정 한 소수와 다수를 막론하고 복음을 전파합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바,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을 자를 알고 계심에도, 전도자들에게 그들(구원받을 자)만을 콕 집어서 찾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4장 14절, 곧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신 말씀에서처럼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그럼, 감사합니다. ^^😅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시청해주시고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계적인 개혁파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나 로이드 존스를 비롯하여 훌륭한 칼빈주의 지도자들은 예정론과 복음전도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전도의 대상입니다. 누구도 제외할 수 없습니다. 누가 택함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인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쳤습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 틀리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주님께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한 것도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마가복음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도 난다고 분명하고 말하고 있고,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예정'에 대한 교리가 우리의 신앙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복음전도의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과 좋은 질문 깊이 감사드리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Mariakim0691
@Mariakim0691 Жыл бұрын
구원은 모든 이가 대상이라고 믿습니다 아멘아멘아멘
@kimsangjong8552
@kimsangjong8552 Жыл бұрын
@biblebeltkorea우리는 설령 누군가가 택함을 받지 못했다고 한들 알 수가 없기에(판단할 수 없기에) 모두를 전도해야하는데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sarang775
@sarang775 Жыл бұрын
말이 됩니까 그럼 예수님은 왜 오셨습니까
@야긴과보아스-m2k
@야긴과보아스-m2k 6 ай бұрын
@@archetypa4075 질문자입니다. 먼저 이런 정도의 댓글에 반론을 제기하기가 대단히 귀찮습니다만, 그러나 제 신앙 양심상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없으니, 좀 귀찮아도 솔직한 글로써 몇 자 적어 보고자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저는 조금 전에 올리신 댓글을 읽은 후, 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댓글을 올리신 분이 저와 무슨 말장난을 하시자는 건지, 그게 아니면 어떤 논리성이나 인지 능력이나 혹은 언어에 대한 감각이나 추리 능력 같은 것이 떨어지는 분이셔서 그런제는 몰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초신자는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딘지 꽉 막히고 답답한 분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려, 먼저 신약성경 어디에도 '영접 기도' 드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셨는데, 굳이 그렇다면 제가 영접 기도와 관련해서 이해하실 수 있도록 권면을 하나 드리지요. 즉 지금처럼 신약성경에서 영접 기도를 드렸다는 증거가 없기에 '영접 기도는 하는 게 아니다' 라는 식으로 단정지어 이야기 하시거나 이해하지 마시고, 그 영접기도에 관한 기준이나 증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지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권면드립니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우선 제가 아는 바, 두 군데만 성경 구절을 제시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마태복음 10장 32-33절'을 제시해 드리며, 또 사도 바울이 한 말로서 '로마서 10장 9-10절'도 제시해 드립니다. 아울러 요한복음 1장 12절을 제가 다시 플어드립니다. 즉 요한복음 1장 12절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신앙 고백'하는 것"이라고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건 정말로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왜 영접 기도를 부정하시나요? 납득이 되지 않네요. 즉, 그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영접 기도'입니다. 이 말을 도식화해 보자면, '신앙고백'='영접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영접 기도란, 성경 말씀과 동떨어지거나 증거가 없는, 어떤 이단적 •이교적 행위나 의식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탄•마귀• 귀신을 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자 하나님,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구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그것을 말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혹시, 댓글을 다신 분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작 시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제가 생각할 때 영접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행위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영접 기도는 생애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고자 히는 사람이 고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휴우~ 아무튼 많이 힘드네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park8878
@park8878 Жыл бұрын
예정론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는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시간속에서 행해진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시간을 벗어난 존재상태를 알지 못합니다. 시간과 무관한 존재의 상태를 인간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시간과 무관한 예정하심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의 예정(생각)은 시간을 상정한 인간의 개념일뿐 시간과 무관한 신의 예정을 우리 인간의 예정으로 상정하고 논리를 전개하니 처음부터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수 없습니다. 교수님이나 저나 우리 인간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고 있는 시간에 속한 개념만 인식할뿐 우리는 시간과 무관한 생각(예정하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과거에 예정하셨다는 의미일까요? 그러하다면 "창세전 하나님"을 시간속으로 끌고 들어와 시간의 제한을 받는 존재로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예정하시고 있으신가요? 예정론을 말한 모든 사람들이 그 시간과 무관하신 하나님의 예정하심의 존재상태를 경험하고 말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시간속 경험개념인 인간의 예정(생각)을 갖고 신의 예정도 그와 같을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ykparktv
@ykparktv Жыл бұрын
귀한 글을 남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예정의 문제는 쉽게 이해되거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정의 성격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만 예정 자체는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가르침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park8878
@park8878 Жыл бұрын
@@ykparktv 네...분명히 있죠..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προοριζω 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밖 예정하심을 나의 시간속 예정과 선택으로 끌어와서 나와 너를 단정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는 우리모두가 주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pinkpig-g1j
@pinkpig-g1j 7 ай бұрын
​@@ykparktv목사님, 하나님의 구원😢 진리는 단순합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참진-d1b
@참진-d1b 3 ай бұрын
구윈론을 칼빈 웨슬래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가 중요한 것이다 뭘그렇게 어렵게 설명하고있어요 지식자랑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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