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길도 신분에 따라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도 귀양길에 친구도 만나고 친척도 만나도 지방 수령으로 부터 접대도 받고 했지요
@jupiter53313 жыл бұрын
복귀가능성이 높은 네임드급 고위관직들이나 돈많은 양반들이나 가능했죠...
@황필립의잡동사니3 жыл бұрын
@@jupiter5331 그렇죠
@jupiter53313 жыл бұрын
@@황필립의잡동사니 무전유죄 유전무죄까진 아니더라도 죄를 지어도 갖고있는거나 인맥에 따라 벌받는 강도가 틀린건 조상님들이나 우리나 떡같네요...ㅠㅠ
@이통영-y9v Жыл бұрын
유배지의 고을수령이 같은 당파이면 엄청나게 대우를 잘 받았고 반대당파이면 인생이 너무 피곤해집니다 명종때 유배지 경북 성주에서 묵재일기 를 쓴 이문건에 따르면 지방관이 수시로 술자리를 열어주고 지방관과 마을양반8명이 합동 술자리에서 화대를 추렴해서 이문건에게 고생이 많으시다고 제일 예쁜 기생과 잠자리를 알선해주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문건은 처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라도에서 엄청 편히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고향집에서 아들과 노비가 교대로 와서 시중을 들어주었고 1년에 여러차례 본가에 편지를 주고 받았지요 유배생활 중에 동거를 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는데 유배가 끝나고 얘를 데리고 본가에 돌아가니까 본처가 엄청 질투를 해서 얘를 어디론가 데리고 나가서 행방불명 되었는데 정약용은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지도 않습니다
@이통영-y9v6 ай бұрын
이순신은 귀양을 간적이 없습니다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은 후 판중추부사 정탁의 건의로 처벌을 받지않았습니다 그 대신 백의종군 처분을 받게 됩니다
@alohacaptain70213 жыл бұрын
12:54 위리안치. 2021년에 이걸보니 해외입국자 14일 자가격리 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hanamoni6 ай бұрын
당시 조선을 지배했던 노론파에서도 유력 인사였고 병약했던 경종이 사망하면 즉시 조정내 유력인사로 들어가는게 거의 기정사실적이여서 저런 대우를 받는게 가능했던거 대신 경종이 건강을 회복하고 아들까지 보게된다면 안죽고 찬밥이라도 얻어먹을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인 신세였을테고
@mookdo1239 ай бұрын
죄를 지어도 출세해서 져야 하는구만. 허허!
@황필립의잡동사니6 ай бұрын
@@mookdo123 지금도 마찬가지죠 재벌들이나 유명정치인들은 교도소에 가도 독방쓰며 나름 편안하게 지낼걸요 사식도 스테이크 받아서 썰어먹고
@jupiter53313 жыл бұрын
이상준씨는 짐작이나 했을까요...10몇년후에 자기가 직접 귀양체험과 노비생활을 체험하게 될줄..
@jin26963 жыл бұрын
갑산 가는 코스? 응? 나만 듣고 놀란거야? ㅋㅋㅋ 07:37 참고로 갑사는 지금의 북한 양강도에 있음
@애쉬크레이지3 жыл бұрын
이프로 재미있네 ㅋㅋㅋ
@willpower84132 жыл бұрын
렛츠고 시간탐험대의 원조 인가요?
@cyx04063 жыл бұрын
갑산가는 코스가 다양하지 않다니 이 무슨 대본이오?
@김태호-j4d2z3 жыл бұрын
지리적으로 개마고원 중간에 있는 곳을 가는 길이란 산맥을 관통한다기 보다는 해안가와 강가를 따라 고을에서 고을로 가는 정해진 루트지 않나 싶습니다 의금부노정기란 책에 의하면 유배지에 따른 이동거리, 이동방법 등이 지정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