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갑 #북한 #귀순 1983년 대한민국 상공에 북한 전투기가 떴다?!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정체는 북한군 이웅평! 그가 직접 전투기 몰아 휴전선 넘은 이유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일) 밤 11시 방송
Пікірлер: 586
@TheLesleygore2 жыл бұрын
이때가 나 국딩 2학년 때인데, 아빠하고 TV권투중계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중단 되더니 관중들이 우루루 나가는게 아닌가??? 갑자기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동네 5학년 형아는 전쟁 났다면서, 이제 학교 안간다면서 교과서 공책 등등 전부 찢어발겨 버렸으나 그 형아가 그토록 염원하던 전쟁은 당연히 안나고... 그 형아는 나중에 학교가서 선생님 한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음... 리웅평 상위 미그기 귀순으로 인한 남조선 비공식 인명피해: 부상 1명 (선생님 에게 맞아 치명상)
@vvkd4232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ㄲ
@럭비공-h9n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
@柳鍾吉2 жыл бұрын
동네 5학년 형아 한명만 있었겠소? ㅋㅋ
@이정재-g7h2 жыл бұрын
나는 구덕야구장에서 야구보든중이었습니다 심지어 제대한지 일년정도 지난시기라 심장이 쫄깃쫄깃 했죠
@옒빠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베카 Жыл бұрын
이분 마지막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이왕 남한에 잘왔으니 그대로 편하고 행복하게만 살다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북에 남은 가족들 버린거라고 비난하는경우를 봤는데 당장 탈출하지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상황에서 다급하게 탈북한걸 비난할순없다고 생각해요 북한의 폭정에 의한 피해자였으니 모든걸 감안하고 명복을 빌어줍시다
@rnrQhdcjrtkf9 ай бұрын
비난하는 애들은 주사파 애들이죠 운동권놈들
@oldboy88442 жыл бұрын
50대 이상은 리웅평 모르는 사람이 없을듯,,,저때 어렸을적 서울살았는데 너무 놀랐다는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한라봉-u9f2 жыл бұрын
ㄷ ㄷ
@beckham75912 жыл бұрын
저도 초등학교2학년이었는데 기억이 생생합니다. 40대 후반도 알아요
@날근재8 ай бұрын
여의도에서 환영식을 대대적으로 할 때,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웅평대위께서 만세를 외치실때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고 또 비맞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아팠어요. 42년이지난지금생각해도 왜그리 눈물이 쏟아졌는지 알수가없네요.
탈북자한테 이웅평씨 가족들 다 몰살시켰다는 소식 듣고 매일 술로 괴로움 다래다 간암으로 사망... 엄청 괴로워 했다지요.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Жыл бұрын
쟤땜에 가족 몰살 ㅋㅋ
@jhye777 Жыл бұрын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니땜에 이미 너희 부모님 억장 몰살 ㅋㅋ
@user-jj9mi6ti8t Жыл бұрын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남은 가족을 두고 탈북을 한다고 했을 때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못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진 않았을 테고 꼭 남한에 와야 할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힘들어했던 사람 얘기에 그렇게 비아냥 거리며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Fci67z4 ай бұрын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북한 정부 때문이지 뭔 ㅋㅋ
@담배충-s3q2 жыл бұрын
참.. 탈북자들의 가장 큰 고통.. 북에 남겨진 가족들..ㅠㅠ
@grimreaperkim943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공군대령까지 올라간 것도 대단...
@gabijohn56832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비상착륙 현장에 아버지가 계셨음. 수원 10전투비행단에 복무하고 계셔서. 이웅평이 타고 있던 미그기가 똑바로 날지 않고, 기체가 좌우로 뒤뚱뒤뚱 거리면서 날아왔다고 함. 전투기가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한다는 건, 적에게 항복한다는 신호임. 당시 활주로에 있던 사병들이 처음에는 일반 비행기로 착각했다고 함. 그러다 바로 비상경보 울렸고 비상 착륙 인도한 거임.
@자라라모발아2 жыл бұрын
오!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하는게 항복한다는 신호군요. 처음알았어요 ㅎㅎ 진작에 격추되지않겠나? 생각했는데 이런 사실이
@노란딱지-k7c2 жыл бұрын
뱅크기동이라고 불리죠
@라잇트리-k5n2 жыл бұрын
지식+1 증가 감사합니다
@태경정-m9x2 жыл бұрын
아부지60년생?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Жыл бұрын
뻥치지마. 니 지금 고등학생인데 니 아버지가 어떻게 저기 있냐? ㅋ
@하늘-v2w5z2 жыл бұрын
애절하네. 고인이신데. 존경합니다
@어두운조명2 жыл бұрын
와.. 돈을 진짜 많이 받으셨네 근데도 사업하거나 놀지 않고 군에서 일하신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창현-x6r2 жыл бұрын
그랬으면, 사기당하거나 다 까먹었겠죠. 똑똑한거죠. 대령으로 예편했으니, 연금까지 제대로 받았을꺼고, 확실히 챙겨드셨네. 그쪽 부모님과 형제들은 아오지행이었겠네.
@Battlee2 жыл бұрын
@@이창현-x6r 당시 북 최신 무기가 도둑맞은건데 ㅋㅋㅋ 농담아니고 아오지 절대 아니고 저분 3대 모두 사형입니다. ...
@wifjfwhrhd2 жыл бұрын
@@Battlee 더이상 잃을게 없었기 때문에 저런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Battlee2 жыл бұрын
@@wifjfwhrhd 영상보면 북에 가족있다 나오네요
@scms28282 жыл бұрын
@@Battlee 부모는 처형 당하고 아들,누이들은 완전 통제 구역인가에 있다고 하네요...
@이은수-r5f8 ай бұрын
일찍가신게 너무 맘아프네ㅠ 부디 극락왕생하시옵기를🙏🙏🙏
@쓰바씨바휘바휘바2 жыл бұрын
저 시절 15억이면 작살나네.... 북한 공군한테 15억 홍보했으면 줄줄이 올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
@하늘보리-z5c Жыл бұрын
북한 입장에서보면 너무너무 심한 역적이라 혹 그 가족들이 3대가 아닌 5대이상 고통받고 있는건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네요.
@남최우혁-i5j2 жыл бұрын
대만도 중국전투기가 상당히 많이 귀순했는데, 빵터진 귀순이유도 있는게 왜 중국에서 대만으로 귀순했냐 물으니까 등려군 보고싶어서 귀순했다고 함 그래서 공군참모총장이 빵터져서 등려군을 이사람 귀순환영식에 초청했다고함
@hyeon80462 жыл бұрын
대만으로 귀순이요? 귀순이 아니라 망명이겠죠. 님은 대만을 중국과 같은 나라로 보고 있네요. 귀순은 같은 나라에서 쓰는거고, 다른 나라로 가는게 망명이죠.
@김은석-k4j2 жыл бұрын
@@hyeon8046 다른나라에서보면 우리나라랑 북한도 서로 다른나라임. 그리고 중국과 대만은 각각 타이완섬과 중국본토가 자기나라 영토라고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있음. 최근들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법에도 있는만큼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기본으로 깔고보면 대만입장에서는 귀순이 맞음.
@빅트리-d5e2 жыл бұрын
@@hyeon8046 장체스 마오쩌뚱 즉 민주 와 공상 두 사상이 싸우다 장체스가 져서 튄땅이 대만임... 한마디로 두민족은 같으나 사상이다른거면 귀순이 맞음.. 우리도 625때 낙동강밀렷으면 대만마냥 제주도만 한국이였을꺼임 섬이라고 귀순이 망명이됨?
@Sibasinu2 жыл бұрын
역시 월량대표아적심의 나라 대만, 낭만있네
@닭튀김 Жыл бұрын
등려군은 못참지 ㅋㅋㅋㅋㅋㅋ
@100redrose62 жыл бұрын
이웅평 대위가 남한에서 대한민국 시민권자와 단란한 가정과 권위 능력 직위 계급에도 늘 술과 말 못할 심적 고통과 압박으로 적응못하고 현실감각에서 깨어나지 못한것이 북측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사와 죄책감때문에 간암으로 모든것을 스스로 내려놓음 결국 ~ 남겨진자와 살아남은자의 풀지못할 속쇄인것
@메인-q2l5 ай бұрын
애초에 북한에서 전투기조정사라는것자체가 엘리트중의 엘리트임. 똑똑한거죠
@ghjkh4822 жыл бұрын
에구 난 이세상에서 태여나지도 않을때네. 이런일도 있었구나. 근데 전투기에서 내리는 모습 넘 멋있다
@박영숙-m5h Жыл бұрын
이웅평씨를 제가 직접보았는데 신기했어요 형사분이 꼭 같이 있더라구요 신기했어요
@grizzlyfired65532 жыл бұрын
당시 남한 공군은 꿈도 못꾸던 최고급 가죽 자켓에 기골이 장대한 훤칠한 멋쟁이가 항복의사 두손 들고 내린것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성큼성큼 내려와 먼저 한국군 장교에게 악수 청하고..한국군 장교 하마터면 관등성명 댈뻔한 분위기.저사건이 83년 2월이고 난 7월달에 입대해서 83년 10월달에 버마 아웅산 테러 터지고 하마터면 재수없이 군대에서 실제상황 싸이렌 2번 들을뻔 했음. 진돗개발령 상황과 학교 시험때 답안지 못썼는데 시험지 가져가는 꿈은 정말 졸업후 제대후에도 수없이 많이 꿨는데 군대 가있는 꿈은 특히 최악.
@SUN-wo2ez2 жыл бұрын
아녀요 이월은 아니고 프로야구 하다가 싸이렌 났으니 사월 오월쯤 인것 같아요 야구 라디오로 듣다가 화장실에서 났던 사건임 확실합니다
@김계남-l5m2 жыл бұрын
@@SUN-wo2ez 5~6월 일요일 이었지
@abcd-pe7tx2 жыл бұрын
저때 남한 공군은 f4 팬텀을 운용중이었고 조종사는 g슈트를 착용했음. 가죽쟈켓 따위보다 훨씬 발전된 우월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음.
@앤토-m8u9 ай бұрын
그거 그냥 재연 영상이라는데
@Alex-fd9wj5 ай бұрын
뭘 꿈도 못꿔요 83년이면 우리가 이미 북한보다 훨씬 잘살때인데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이 있긴했지만 그조차 꿈도 못꾼다는 표현할 정도의 차이가 난적은 없어요 83년에 꿈도 못꿀정도의 차이라는 말을 굳이 하자면 그건 북한이겠죠
@사머아마영철이2 жыл бұрын
북한사람인데 피지컬이 장난아니네ㄷㄷ
@stevennbafan66112 жыл бұрын
저때는 북한이 우리나라 보다 잘살아서 잘먹고 잘컷거든
@sebastiancho92192 жыл бұрын
@@stevennbafan6611 저때는 우리보다 못 살때거덩 ..뭘 알고 씨부리자 ㅡ.ㅡ
@Pocari4132 жыл бұрын
@@sebastiancho9219 이웅평 성장기라면 북한이 더 잘 살 때 맞는데
@티치앨쥬스피앙2 жыл бұрын
180 ~182라던데 ㄷㄷ
@김규만-v8x2 жыл бұрын
듣기론 북쪽지방이 덩치가크고 키가 큰유전인데 못먹어서 그런것같은데 그래도 군인신분으로 일반인민들보단 잘먹었을듯요. 아는동생도 새터민인데 집이 중산층 정도는 되어서 밥은 굶지않았다네요 그래서 그런지 현북한사람들 치고 키170대는 넘드라구요.
@김정구-r2w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Hayan_Yeou2 жыл бұрын
라디오로 방위 맞춘건 현재는 퇴출 되고 있는 ADF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ADF에 주파수를 맞추면 주파수가 나오는 방향을 계기가 가리켜요. 2차대전 당시 일본애들도 미국 라디오 전파잡고 간적도 있고 ADF로 라디오를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FM방송이 아니라 AM 방송입니다. 현재는 잘 안쓰이는 항법 방법이며 VOR/DME, GPS로 대체 됐습니다.
@leeheesung59122 жыл бұрын
ㅜㅜ 행복하게 발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 돌아가셨구나.. 남은 가족들도 행복하시길
@YJ-lw6bv4 ай бұрын
초등학교 때 친구 아빠가 이분이셨어요. 남동생도 같은 학교에 다녔고 꽤 친하게 지냈던터라 이목구비 큼직하시던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나네요. 당시 여자아이들끼리는 교환일기, 다이어리 꾸며주기, 쪽지쓰기 등 각종 편지로 소소한 일상 얘기 주고받는 일이 참 많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이제 편지를 못 쓰게 되었다고 단절하더군요. 전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의아했었어요. 졸업 전에 갑자기 개명을 하기도 했었고. 커서 이런 배경을 알게 되니 그 때 친구의 낯설었던 행보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 어머니도 귀티나는 분이셨고 집도 잘 살았고. 방배동 삼호아파트 살았던 것 같은데. 음악, 미술에 고르게 재능이 많고 “코발트블루”를 좋아한다고 했던 세련된 친구로 기억해요. 다큐에서 아버님 투병하시는 걸 보고도 마음 아팠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ㄴㅇ아 행복해라^^
@wjdgus44322 жыл бұрын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귀순 용사네요 멋집니다
@jeehyelee35602 жыл бұрын
인생역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가족들 생각에 힘들었겠다. 키 180ㄷㄷ 추운지방 사람들이 더 키 큰 유전자이긴할텐데.. 북한사람들 잘 못 먹어서.. 남자평균키 165정도아닌가 어딜가든 눈에띄게 컸겠다
@sjpark42372 жыл бұрын
고위급이나 똑똑한 탈북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
@김계남-l5m2 жыл бұрын
위험하지 어떤맘으로 탈북했는지.,
@김계남-l5m2 жыл бұрын
고위급 이나 똑똑한 탈북자는 대한민국의 안보상 더 위험하고 ,멍청한 척 하는 탈북자도 다 받아 주지 말아야 돼.앞으로 몇년 계획을 세워서 김정은이 일부러 풀어서 탈북자로 보내는것 일수도 있지...남한과 북한의 경계 초소가 동네 야산이나 개울건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텐데 어떻게 그리 쉽게 잘도 넘어들 오나?
@신비한-k9f2 жыл бұрын
크 멋있네요 자유를 향한 날개..
@꿀벌지키기운동 Жыл бұрын
가족들이랑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불가능한 상황인 건 알지만 돈을 저만큼 받고.. 가정을 꾸리셨어도 북에 남겨진 가족 생각에 얼마나 슬프고 괴로우셨을 까 싶네요..
@김영주-w4d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김유일-x9l Жыл бұрын
이미 북에서 결혼해서 자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user-haha7772 жыл бұрын
83년도 대학입학을 앞둔 어느 날 싸이렌소리가 생각나네요.국민여러분 실제상황입니다! 라고 반복해서 외치던 다급했던 경계경보
@gim567882 жыл бұрын
와.... 아 근데 다시 봐도 진짜 훤칠하다
@SiA-oj2em2 жыл бұрын
이웅평 대위가 말한 북에서는 북침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막은 북침을 남침으로 바꿔서 적었네요.. 남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북침 북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남침이 맞습니다
@algerhoratio16212 жыл бұрын
최초이자 최후였죠,, 대단한 일입니다
@traveler079 ай бұрын
아닙니다. 조금만 관심갖고 찾아보시면 나오는데. 최초는 1950년 4월에 ll-10을 타고 넘어온 이건순 공군 중위로 1974년에 공군 대령으로 예편. 그 후 1955년에 Yak-18 훈련기로 함께 탈북한 북한 공군 이운용 상위와 이인선 소위(역시 대령까지 진급함). 1960년에 MiG-15를 타고 귀순했던 정낙현 소위(역시 공군 대령까지 감). 1970년에 MiG-15를 타고 넘어온 박순국 소좌(1976년 한국에서 사망 당시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됨). 그다음이 이웅평 대령님이고. 마지막으로 1996년 MiG-19기를 타고 귀순한 이철수 대령님까지 계십니다. 공군쪽만 이렇게 되며 육군이나 해군쪽도 있고요.
@koreanbeavertrucker86695 ай бұрын
@@traveler07 좋은 소식 소식 알렬 주어서 감사합니다
@lIlllIlllIll-c2l28 күн бұрын
잘못된 정보를 아셨으면 정정하시거나 지우심이,,,
@어센트-c5u2 жыл бұрын
저때 쓰던 F-5를 아직도 쓴다는 것도 놀라움
@cindykoh5264Ай бұрын
이런 현실 슬프다.. 이웅평 대위 모든걸 걸고 오신 분 부모 형제를 두고 이 위험한 길을 올떄 얼마나 많은 생각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용기에 무한 박수와 존경을 표합니다
@Polar_bear19742 жыл бұрын
원래 남방계보다 북방계가 타고난 피지컬이 좋음. 요즘은 영양부족으로 다까먹는중...
@szk259 ай бұрын
도대체 같은 민족에 남북한 다해도 남북방 갈라봐야 의미가 없는데 무슨 피지컬 ㅋㅋ.. 영양공급 질좋고 본인이 운동하면 피지컬은 얼마든지 키우는거지 북방계 얘기하려면 무슨 몽골계 정도는 보고 얘기해야지
@朝鮮足刺殺5 ай бұрын
남방계북방계는 그런걸 따질때 쓰는게 아님.북한주민이라고 전부 북방계가아님.남한주민이라고 전부남방계가 아님.
@정훈-w9w Жыл бұрын
자유에 오신걸 환영 합니다 대단 합니다
@shoxtl07092 жыл бұрын
저는 1996년 초등학교때 수원 살았었는데 오전에 학교에 있을때 공습경보가 울렸었는데 그 때도 미그기타고 북한군이 수원에 귀순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Fortuna-Aesculapius5 ай бұрын
저도 기억나네요. 이철수 님이었나.
@벌레광5 ай бұрын
전투기에서 내려 인사할때 표정이 꼭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반가워하는 표정이네요
@LEE-by8loАй бұрын
마치 차량 자가용타고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도착한듯 ㅋㅋㅋ
@shkwon65562 жыл бұрын
국민학교 4학년이었구나. 전쟁나는 줄 알고 꼬맹이 시절에 급 비장해졌던 느낌 아직도 생생.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싸워서 이겨야지 생각했다. 야구 중계하다 갑자기 사이렌 울리고 경기 급중단, 동네 아저씨들은 북괴 공군기가 아군 전방 공군기지 공습한 모양이다, 웅성웅성.
@스탤스-x5j2 жыл бұрын
키크고 잘생겨서 인기짱이었는데 ㅎ
@재이-i1g Жыл бұрын
지금껏 본 탈북한 사람들 중에 키가 젤 큰 느낌. 걷는것도 엄청 당당하고.
@JackTheTato Жыл бұрын
전투기운용할 정도면 잘먹고 자라셨을듯 싶네요
@柳鍾吉2 жыл бұрын
83학번인데 그 때 당시 서울의 사립공대 등록금이 50만원이었습니다 지금 사립공대 입학금이 420만원 정도이니까 ...
이웅평씨는 암살의 공포, 북에 남긴 가족걱정으로 폭음하다가 간경화가 왔고 간이식 받아서 살아나나 싶었으나 결국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러버석4 ай бұрын
방금 이철수 대령님 사연 보고 왔는데 결국 두 사람이 거지같은 북한 체제라는 똑같은 이유 때문에 떠났네요...ㅋㅋㅋㅋ 전투기 뺏기고 전투기 시스템, 노하우까지 다 우리 나라로 넘어갔는데 그쪽에서도 손해 아니에요?ㅋㅋㅋ 그러니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체제부터 바꾸시죠.
@dahmha91622 жыл бұрын
86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 바로 전날 싸이렌이 울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가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준비되지 않으면 언제든 나라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오현백-x1y2 жыл бұрын
83년이맞습니다 내가전역이83년인데 이웅평대위월남후 제대했습니다
@frankismet2 жыл бұрын
83년이 맞는듯요 이웅평대위 월남했을땐 성북구에 살았고 86년엔 목동에 살았는데.. 성북구에서 TV로 본기억이 확실히 남. 싸이렌까지는 기억이 안나도 하루종일 TV 특보로 틀어대서 그건 확실히 기억남.
@남사마-d4g2 жыл бұрын
구라..
@byungsupnoh4142 жыл бұрын
85년에 전역함. 확실히 83년 논산훈련중 청소년축구 4강소식도 들었다
@McLee2 жыл бұрын
83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는 국민학교죠, 이웅평 귀순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salib7492 жыл бұрын
수원서 시내뻐스타고 가다가 격은 일이네요. 그때 깜짝 놀랐지요...
@박형기-s9g2 жыл бұрын
미그기 귀순 이웅평소령 요즘은 좋은 B형간염 치료제가 많아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병이랄것도 없이 하찮은 정도여서 일찍 치료약 복용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치료가 잘 되므로 정기적인 검진과 함께 금주 과로를 조심하면 완전 정상인으로 천수를 다할수 있는 좋은 세상인데 간경화에서 진행된 간암으로 생체간 이식까지 받고도 일찍 유명을 달리한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챤스-c4s2 жыл бұрын
내나이 29살때 내천에서 낚시하고 있을때 일어났던 날 이네요 그당시 머리끝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곤두섰었는데 조금 지난후 해제 됐지만 ㅎㅎㅎ
@이종열-d3w2 жыл бұрын
이웅평씨는 귀순전에 이북에서 우리가 보내준 라면봉지의 반품에 관한 글자를 보고 처음 탈북마음을 갖게된것이라고 당시 말하였읍니다
@중케-l5h2 жыл бұрын
,,
@전동표-q8d2 жыл бұрын
좀오래 사셧으면 좋았을텐데 두 고온 가족들 생각에 술 때문에 일찍 가셔서 안됏어요 ㅋㅋ
@hjlee38382 жыл бұрын
@Note_Allen 그냥 그러러니 합시다. 저분들이 배울 땐 저게 바른 맞춤법이었습니다.
@MultiDanielan2 жыл бұрын
@Note_Allen 따지기는.. 뭣이 중요한디ㅋㅋ
@gim567882 жыл бұрын
그거 말한적 없다고 하던데요
@BigOneFishingClub2 жыл бұрын
밑에 댓글에 아재들 많던데 ..... 동사무소에서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반복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또 전쟁이 터진거라며 염병헐 놈들이 조용히 좀 살지 않고 또 지랄한다고 ㅋㅋㅋ 나도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이대령이 남조선에서 살았던 삶은 또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고 허더군요 늘 간첩으로 부터의 테러와 남조선 당국의 감시로 부터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간경화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많이 불행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잘 컸는지 모르겠네요 .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실제로 비상상황 나면 식량같은 물자가 제일 중요함 미친거보단 현실직시하고 빠른 행동 하신 현명한 분인거같은데??? 그냥 피난 가봐야 배만 곪지
@김강-d5e4 ай бұрын
잠시 공습경보기 울리고 울 나라 비행기 뜨고 군인들 총들고 하는데 가숨이 뭉쿨 하고 눈물이나네요 너무 멋지고 너무 신감나고 이응평님 지금도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 참 똑똑하신분이엿네요 ~
@bokjAnJoonboTV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공군 멋지네요
@바람개비-w3k2 жыл бұрын
북악스카이웨이 경계근무중 진돗개하나 발령되고 전 부대 개인호 투입하고 실탄 수류탄 지급되는등 백프로 전쟁난 줄 알았죠.엊그제 같네요ㅎㅎ
@김소유-q8k5 ай бұрын
이철수님도 멋있음 ㅜㅜ
@강의만-y8o2 жыл бұрын
그전휴전직후에노금석소령이귀순했지요.피아간귀순할때 총가지고오면저들은 몇백원비행기몰고오면몇천원했어요.우리도 대북방송시에 마찬가지로 얼마얼마를포상금을준다고해습니다.
@리치스태커김기사2 жыл бұрын
전투기를 몰고왓기에 포상금으로 현재금액으로 160억 정도를 받앗다고 합니다. ak소총 가져온 병사는 1600만원정도 받았다고 하지요.
@jins86862 жыл бұрын
1600만원…. ㄷㄷ 저당시면 각그렌저 살돈아닌가요??
@xenic1331 Жыл бұрын
총알값도 주죠 ㅋㅋㅋ
@김계남-l5m2 жыл бұрын
83년도 2월이 아니라.반팔 입었던 여름, 일요일 오후2시경 이다...가까운 유원지에 운동삼아 걸어 갔다와서 .늦은 점심 (칼국수) 먹으려던 중...실제 상황 이라며 싸이렌 울리며 뉴스 나오는 소리 듣고.휴일이라 쉬던 주변의 군인들이 전투복 챙겨 입고 각자의 부대로 복귀했던날 이다. 39년전 일이다....
@꽃말랭이의아침 Жыл бұрын
@@나채상-t6n 중국 민항기는 83년 5월5일에 납치되서 대만으로 가려다 춘천에 착륙했구요 내가 이등병때인 83년 8월 7일 일요일날 활동화 빨아 옥상에서 쉬면서 말리고 있는데 실제 인천이 폭격 당하고 있다고 완전군장하고 대기하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손천근씨가 미그 21 몰고 귀순했다 하더이다
@빙고-h4s8 ай бұрын
대성리유원지에서 공습경보 발령 여름맞아요~
@朝鮮足刺殺5 ай бұрын
원글자님 모르는소리마셈 검색해보셈
@3gb6ol1w2 жыл бұрын
이때 내가 중학생이었는대 수원 완전날리났음 이후 북한은 공군들에게 기름을 조마조마하게 주입을했다고하지 또다시 귀순하는것을막기위해
@hwengkwon1lee3244 ай бұрын
정말통일되서 배부르게잘먹고 살게통일합시다북에있는어린이보면마음이아파요
@김창호-w2q2 жыл бұрын
진실을 알리세요 82년 군입대 수방사 33단 근무 인왕산 ,근무 오침 끝나고 이웅평 서울시내로 너머 왔어요 서해로 조작 내눈으로 직접 봤어요 그당시에는 서울 상공에 비행기 뜨기전에 부대로 연락 와요 방송 하는사람들이 모르고 하는건지 군사정권에 속은건지 답답 하네요
@MultiDanielan2 жыл бұрын
서울시내로 넘어와(지나처) 수원비행장으로 착륙을 했지요ㅋㅋㅋ
@바람개비-w3k2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저도 33단 근무했습니다.그날 op에 근무중이었는데 정확히 기억하시네요.반갑습니다.전 83년 4월입대 ㅎㅎ
@try7502 жыл бұрын
수원비행단이 어디있는진 알죠?
@TimeMaster332 жыл бұрын
당시에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때인데 갑자기 공습경보 울려서 진짜 시껍했던 기억이...
@bluegress70882 жыл бұрын
계속해서 북한에 삐라를 뿌려야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한다
@alpacino66416 ай бұрын
군복무 일병때 이웅평이가 넘어 왔는데, 군장차고 사단 전군 전쟁태세 돌입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어느듯 40년이 되었네요
@러버석4 ай бұрын
3:00 하늘이 도왔네...
@bradgatz2 жыл бұрын
아 그 때 북한인이냐고 놀렸던 리현진 누나가 리웅평 가족 일수도 있겠네. 잘사는 집이던데
@최기학-s9k2 жыл бұрын
이웅평님 기자회견 자막 오류났네요. 북에서 남침교웍한다고한거..
@대발해국황제대조-m1r2 жыл бұрын
이웅평공군대령~
@서민홍-o5q Жыл бұрын
저시절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거의 우리 한국인들의 외형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요즘 북한인들은 고난의 행군을 거친 구십년대 부터 영양실조로 체형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것이다.
@taeri1019 ай бұрын
8:40 진실이 아닌 사상을 스스로 깨부수고 자유를 찾아 떠난 역사를 남긴 게 의롭다고 한 것 같아요!
mig-19는 1960년대 초반 개발된 기체임. 공산권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1983년 당시에도 구형에 속하는 기체였음.
@티치앨쥬스피앙2 жыл бұрын
저 전투기를 60년전에 만들었다는게 신기
@minsuk04262 жыл бұрын
@@티치앨쥬스피앙 저게 아직도 주력이라는 것도 신기
@깡쓰맨ii10 ай бұрын
개발된지 20년 밖에 안된 기체가 구형되는게 맞음????
@앤토-m8u9 ай бұрын
@@깡쓰맨ii님 20년 전에 나온 핸드폰 차 이런 거 아직도 그대로 쓰는 사람 봤음? 극소수말곤 없잖아 그거랑 같은 거임
@깡쓰맨ii9 ай бұрын
@@앤토-m8u 예시가 잘못됐음 전투기 20년이면 현역이어야 정상이야 f22언제나온건지 알음?
@kieno-f5b2 жыл бұрын
아 그런데... 가족이 있으셨구나... 전투기까지 타고 남으로 날아버렸으니 신원 파악이랄것도 없이 누군지 알것이고 그 가족들은... ㅜㅜ 가족들에게 말하고 나올 시간도 없었으니 가족들은 아무 대비 못한채 정부에게 당했겠네요... 이런것때문에 이분도 오셔서 그렇게 술을...
@재윤정-f7w6 ай бұрын
잘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보고보고-x3q2 жыл бұрын
당시 중고기체 가격 신품 50% 120만 달러, 달러당 795.5원이면 대충 10억 나오는데 15억 6000만원이면 진짜 풀로 준거네요. 전투기 신품일때 20억 정도하는데...
@뚱바좋아2 жыл бұрын
기계값만 받는게 아니고 군사비밀도 인계받았잖아요
@보고보고-x3q2 жыл бұрын
@@뚱바좋아 보로금 얼마전 개정전 최대액수가 1억이었어요. 저때는 더 낮았을거에요.
@갓라-d8v2 жыл бұрын
적국에게서 10억 뺏고 우리나라에서 10억 이득이니 두배입니다
@xenic1331 Жыл бұрын
기총, 탄 등 장비 값도 줘야하죠. 정보 제공비도. 총들고 귀순하던 병사들 철책 부근에서 총버리고 온 경우 많은데 이 사실알고 농담삼아 후회했다하죠 ㅋㅋ
@보고보고-x3q Жыл бұрын
@@xenic1331 제일 후회하는게 북한 신분증으로 알고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준다고 들었어요.
@story823882 жыл бұрын
저 국민학교 2학년때 일입니다.
@애니플러스-r5l8 ай бұрын
몇화인가요
@halford6149 ай бұрын
정말 저때 기억납니다!! 깜짝 놀라서 거의 패닉상태였던 기억이.. 그리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거의 알콜에 의존하는 삶을 사시다가 요절하신걸로 기억됩니다.
@明成-h6v2 жыл бұрын
아닌데...?? 83년8월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당시 일병 막 달려고 하던 때. 토요일인가...일요일인가.. 점심먹고 좀 지난 시간이었죠.. 중공민항기 때문에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비상났고 완전무장 대기, 휴가 외출병들 막 귀대하고 있었고... 이웅평 올 때는 안났던 거로 기억 함.. 벌써 39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베낭끈 만지작거리면서 ' 아 일병도 못달아보고 죽는구나...'하는 생각 했던 적 있어서 기억은 생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