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안동김씨,풍양조씨로부터 시작 되었다 정조대왕께서 순원왕후부녀를 믿고 부탁한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 이속을 차리고 이득이 되는 자들로 왕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jsm92524 ай бұрын
김조순 - 순원왕후 김씨
@sddgh-m5g4 ай бұрын
사실상 철종에서 조선시대는 대가 완전히 끊긴 거였군 인조의 3남의 8대손인 고종이 왕이 되었는데 말이 되는가
@다카우지4 ай бұрын
철종의 조카(형의 아들) 가 있었으나(당시 살아있는 효종의 유일한 후손) 나이가 5살도 안되었고 숙종 이후 적자가 없이 서자로만 6대손이었음
@jsm92524 ай бұрын
사실 철종은 숙종의 서자 영조, 영조의 서자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은언군의 서자 전계대원군, 전계대원군의 서자로 숙종이후 선대조상들이 모두 서자라서 왕위와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었는데 조선후기에 들어서 남자왕족이 점점 귀해지기 시작했고, 효종의 직계후손이 얼마안남은 상황이었던지라 얼떨결에 왕위에 오를수있었죠
@sddgh-m5g4 ай бұрын
@@다카우지 그래도 굳이 왕을 삶자면 고종보다 철종의 조카가 됐어야 하지 않았나 합니다 인조의 방계의 후손이 왕이 된것은 진짜 넌센스입니다
@sddgh-m5g4 ай бұрын
@@jsm9252 그래도 철종은 사도세자의 방계인데 고종은 인조의 방계입니다 너무 먼 방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원기-d7v4 ай бұрын
내 고조부 완창군 이시인의 종손 도정군 사손인 경원군 이하전 까지 왕위 계승권이 넘어갔음 풍양조씨 안동김씨가 왕족 씨를 말림
@rebornlee96023 ай бұрын
대원군이나 고종이나 모두 시대의 영웅들...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었을 뿐이다.
@jsm92524 ай бұрын
남연군은 인조의 3남 안평대군의 6대손으로 '이채중' 이란 이름의 평범한 양반으로 살아왔으나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이 되면서 '남연군' 이란 군호와 '이구' 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자연스레 왕족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김문영-t4i4 ай бұрын
남연군같은 아비에게서 흥선군 같은 아들이 나온게 신기하네~~~
@bibly39954 ай бұрын
얼마전 서산을 다녀오면서 천주교인 일천명 생매장 사건을 알게 되었는데 일개 해미현 현감에게 충청도 전역에 대한 천주교 신도 재판의 전권을 주어 행사했더군요 생매장도 어찌나 가혹하게 이루어졌던지 이름이라도 남게 된 이는 단지 세 사람 뿐이어서 마치 이태원 참사에서 이름을 지운 것과 똑같았어요 저도 참사의 배경이 남연군 파묘로 일어났다는 건 알았으나 가야사를 방화하여 묘를 만든건 다른 역사책에는 없어 의아했는데 여기 채널에서 자세히 밝혀주어 고맙습니다
@김동욱-z9p4 ай бұрын
이태원 사고랑 생매장 학살운 비교하냐 노답
@bibly39954 ай бұрын
서산 순교자 생매장과 이태원 참사는 다른 사건이 맞으나 유사한 점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노비 한명이 전사해도 이름을 남겼는데 생매장하면서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과 비교한 것이죠 이름을 지우면 애도를 할수가 없고 실제로 순교자들의 성인 추존도 이름이 밝혀진 세분만 가능 했어요
@달의신-k2c4 ай бұрын
지들 이익 볼러고 일부러 멍청한 애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안망하기가 더 어렵지
@팔하나3 ай бұрын
은신군이 은언군보다 먼저 사망 은신군만 요행히 살아남은게 아님 ..겨우 목숨만 유지한게 아니라 제주도에 유배당시 사망
@user-hanwon4 ай бұрын
구한말 저러고 있으니 당연 나라를 말아 먹는거였음. 그런데도 아직도 다른나라 핑계를 대니. 답없는 나라다.
@인간늑대-o5i4 ай бұрын
금고를 열어 놨다고 해서, 금고를 털어간 도둑놈이 무죄인 건 아님. ㅋ
@user-hanwon4 ай бұрын
@@인간늑대-o5i 누가 일본이 무죄래? 참 참이다. 좌파?
@레모니아4 ай бұрын
은신군은 영조 때 죽음
@jsm92524 ай бұрын
귀양지에서 풍토병으로 죽었죠
@흰눈이소복소복4 ай бұрын
뿌리깊은 묫자리 가스라이팅. 자식을 왕 만들었으니 명당인가? 나라를 말아먹었으니 흉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