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쟁사, 한국사! 모두를 한꺼번에 배울수있는 영상이군요 ㅎㅎ 잘 감상했습니다 ㅎㅎ
@newstalktv8282 ай бұрын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한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 그게 바로 우리 민족의 주역사는 한반도가 아닌 요동반도를 넘어 몽골의 땅까지 지배하던 민족임, 지금은 한반도 그것도 반토막난 나라에서 살지만 우리가 만주요동평야를 달리던 민족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하며 반드시 수복해야할 땅은 요동반도와 그 넘어 몽골+연해주와 캄차카반도까지입니다. 반드시 수복해야함.
@이익권-f1h2 ай бұрын
최명신이 아니고 채명신 오타요~
@jujijtoh2 ай бұрын
성문에서 치까지의 거리, 치에서 치까지의 거리는 활의 사거리를 고려하여 설계합니다. 지금 국궁경기 과녁까지 거리는 120보, 145미터입니다.
@성학근-f4p2 ай бұрын
대단한 관찰력 입니다^^
@skyblood992 ай бұрын
지금 한반도가 산성이고 미사일과 장거리 투사능력이 화살이지 성벽이 없는 대신 이젠 접근도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군사력을 키워가는거임
@콤마스나-r1z2 ай бұрын
이게 한국인들 의 dna에 박혀있는듯 합니다. 정말 쏘고 맞추는건 잘함... 올림픽도 쏘고 맞추는건... 한국이 최고라 과거때부터 이어져내려온 뭔가가 있는듯
@user-eeanh2 ай бұрын
과거 우리나라의 주력무기가 칼이 아니라 활이더라구요 따라서 중국이나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와 전쟁하려면 서로 마주하러 다가가다 보면 칼싸움 할 정도로 마주하기 전에 활에 의해 반이상은 이미 죽고나서 전쟁하게 되죠... 맞붙어 칼싸움 하면서도 활은 계속 저격을 하는 것이구요.... 산성전투도 활이 가장 강력한 무기죠
@오유석victorio6 ай бұрын
재업인가요?
@Need_DDong2 ай бұрын
퇴로있어서 항상 퇴로만 바라보며 애매하게 싸울바에 퇴로 없이 한명이라도 더 잡는게 낫지 어차피 혼자죽는것도 아니고 다같이 죽는거라 외롭지도 않을거고
@David-g9i9x6 ай бұрын
헤쳐모여의 민족이내
@tedkim30662 ай бұрын
우리 역사 5천년중 한반도가 주무대가 아닌시대가 더 많았소. 대륙 평야에 지은 성들도 무시 못하오
@지니352 ай бұрын
그래서 산성 안치고 바로 들어온 적도 있죠
@MrParkcool0172 ай бұрын
이분 비전문가이신듯.. 중국도 산성이 발달했고 대표적으로 남송-몽골 전쟁 때 사천성에 산성이 엄청난 역할을 함. 대표적으로 조어성임. 또, 연문관이나 함곡관, 양평관, 대산관 등도 이름은 관이지만 실제론 산성과 같은 형태임.
단어 하나하나에 꼬투리잡고나서…자신이 카메라앞에서 3분간 가장 자신있는 부분을 강의해보세요. ㅋ
@두진권Ай бұрын
@@실쿠 꼬투리가 아님.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주족의 청나라는 엄밀히 따져보면 중국의 역사가 될수없음. 이민족에의한 피지배의 역사의 하나일뿐..그럼 거란과 몽골의 역사가 중국이라고볼수있나? 절대아님~ 한국의 역사가중국역사의 일부가 될수있나? 말도안됨. 괜히 단어사용으로 인한 불필요한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고봄.
@sonsm48812 ай бұрын
여기 댓글러들은 전부 전문가 같네, 제발 가지 채널에서 영상이라도 올리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댓글로 잘못을 지적하면 그게 반영이 될까?
@노용섭-u4p2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화승총 한발 재장전시키는데 다섯 걸음이라. 한발을 쏘고 다섯 걸음에 다시 장전하고 쏘는거다. 이해 할수도 없는
@raincho78096 ай бұрын
대륙의 성들중 상당수가 고구려 성인건 모르시는듯, 치가 있는고구려성. 특히 북경 자금성도 치가 있는 성벽을 가졌지만, 공산당이 부숴버렷죠. 반도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길..
@최호준-f5f2 ай бұрын
오사카성의 예는 부적합한 듯. 오사카성은 평화시기에 지어진 도시급 거성. 일본도 조그맣고 가파른 산성이 대세였음.
@이정환-x7p2 ай бұрын
오사카성 역시도 전국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할수가 없어요 .
@최호준-f5f2 ай бұрын
@@이정환-x7p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정리하고 만든 성임. 물론 전쟁의 가능성도 염두해 둬서 해자도 2중으로 파고 다 했지만, 적들이 다 무릎꿇고 본인의 위용을 드러내게 위해 만든 화려한 평지 거성.
@이정환-x7p2 ай бұрын
@@최호준-f5f실제로 안가보셨죠? 그성 그냥 평화시 과시용이라고 보기엔 성내부 곳곳에 여러 방어장치가 있어요. 그리고 히데요시시대는 절대로 평시가 아니에요.
@최호준-f5f2 ай бұрын
@@이정환-x7p 노르웨이에 안 가 봤지만 그 곳이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건 압니다. 위용을 드러내는 것과 과시용이 같은 말일까요. 방어장치가 없다고도 말 안했구요. 허수아비 논쟁하지 맙시다. 하지도 않은 말, 맥락이 다른 제3의 주제를 갖고 논쟁할 필요가 없어요.
@이정환-x7p2 ай бұрын
@@최호준-f5f 시대인식에서 역사기본공부의 존만함이 느껴지네. 히데요시가 관백이 되었다고해서 수백년 전국시대가 일시에 싹 정리된거라고 어떤 시러배 병신이 그러대? 그런 말은 도쿠카와 막부가 들어서면서나 나와야 하지 않나? 그랬으면 전국평정후 조선침공같은 게 왜 필요했을까? 논쟁어쩌고 저쩌고 우기기전에 일본사에서 히데요시가 전국통일후 바로 평시라는 니 존마난 인식이 옳았다는 근거가 있긴 하냐?
@999eunha22 ай бұрын
산성은 조선시대나 사용했죠 대부분 평지에 있는 성에서 전투를 했죠 가마부대와 같이 역사를 모르시는 분이 저런 책을 쓰다니 한국역사 1만년중에 600년만 보고 한국은 이렇다고 하더니 ㅎㅎㅎㅎ 중국 가보세요 고구려 신라 백제 성이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싸웠지는 역사기록을 보세요 ㅎㅎㅎㅎ 남한 산성에서 한달 버텼나요??? 하지만 고려는 30년 버텼어요 ㅎㅎ
@panibudle282728 күн бұрын
콩나물은 개소리아님?? 그당시 빡통들이 비타민 개념을 어떻게 알겠어?
@swwoo19556 ай бұрын
ㅋㅋㅋ 일본성이나 유럽성도 다 도시를 지키는 외성이 있고 내성이 있고 우리가 감탄하면서 보는 영주의 거주지나 오사카 성은 내성안에 한 건물일뿐인데 뭘 알지도 못하면서 이빨터는 것만 배웠네 하여간에 요즘에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어디서 보고들은 거 짜집기해서 이빨터는 실력으로 승부보는 인간들이 너무 많네.. 선킴인지 뭔지부터
@이지훈-c6r3s5 ай бұрын
이 영상에선 맞게 썼는데요? Castle은 영주가 거주하는 성이라네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건 명칭이 다른 요새 같은 거 같은데요? 참고자료 Ghat GPT GPT가 제시한 2차 참고자료 Britannica: castle - Historical Overview History Learning Site: Life in a Medieval Castle Medieval Chroniclces: Castle Facts
@leepump2 ай бұрын
역사적으로 성안에서 싸움치고 이길 확율은 30프로될라나 성안에서 싸움은 장기전에선 불리함 애꿋은양민들만 학살 당하는 방식이라 별로입니다 참 비교 하는거 보면 좀 의아하네요 산성에서 싸움은 시간벌기 위한 쟁입니다 지원군 없으면 아무 의미없죠 지역에 따라 천차 만별인데 판단을 잘못 하신 듯 예를 들면 국가적 쟁이 발발하면 주변 국가에서 도움 받을 기회가 있어야 산성에 의미가 큽니다 한반도는 대부분 적국이라 그때 당시에 성의 의미는 실패라 봅니다
@백구일비2 ай бұрын
중꿔렌? 어휘 매우 어색
@서기석-k7b2 ай бұрын
청야전 성곽근처 사용할 물건없고 우리도 상대의 보급 끊어버리고 게릴라전하면서 성곽전투하면 상대또한 장기전하기 어려움 성곽전투는 공격하는쪽이 적어도 5배~10배 이상되어야 승산있다고 봄 공격하는쪽도 부담이 큼 우리나라의 경우 적이 성곽공격이 어렵다고 지나치면 이성곽의 병력이 적의 배후를 치는경우가 많아 깨트릴수 밖에 없는 형태임 그래서 하나 하나 깨트려 나가야 되는데 그러면 공격하는쪽도 사상자 많이 나고 보급도 한계있고 결국에는 철군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짐.
@BMW-BMW12 ай бұрын
무슨 질투 시기 혐오 일본놈이 일부러 퍼트리는 선동질을 우파유튜버가 하고 있네
@jinhoon41832 ай бұрын
ㅋㅋ. 뭔 아마추어가 인터넷 지식으로 어둡잔케 강의하내 ㅋㅋ. 중딩대상인가? 상은 기본적으로 해지가 핵심읻바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