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의 참전, 왜? 마오쩌둥의 위험한 선택과 조력자들 ▣역전다방 122회 ◆6.25전쟁 ep.14ㅣ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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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1950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등장한 중공군!
중국은 왜? 6·25전쟁에 참전한 걸까?
그동안 꼭꼭 숨겨져 있었던 중국의 참전 이유가 기밀문서들의 공개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참전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설과 북한과의 남다른 관계 때문이라는 설이 그동안 알려졌던 전통적인 관점.
하지만 중국의 진짜 속내에는 통일 이후 어수선한 사회를 통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데..
당시 중국의 내부 상황을 통해 유추해 보는 중국 참전의 진짜 이유는?
6·25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중국 참전 이유에 대한 연구 경향.
각 시대에 따라 중국의 참전 이유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국의 참전 이유는 무엇인지 확인해 본다.
6·25전쟁 초기부터 강한 참전 의지를 내비친 마오쩌둥.
마오쩌둥의 강한 참전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발언들을 조명해 보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 또한 알아본다.
마오쩌둥과 함께 전쟁 참전을 지지한 중국 내 세력은 누가 있었을까?
당시 중공군의 특징과 군 수뇌부에 대해 알아보고
중국공산당 홍군의 장정 과정과 중공군에 끼친 영향을 포 아이즈의 시선으로 분석해 본다.

Пікірлер: 237
@Jay-Bco
@Jay-Bco 4 ай бұрын
이렇게 좋은 영상이 조회수가 11만 밖에 안된다니
@원이-t6l
@원이-t6l 10 ай бұрын
중국 그 시절 역사를 쉽게 배울 수는 없는데 이렇게 설명해 주시니 정말 즐겁게 배웠습니다. 제작진 및 출연진 여러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danjjakchinguTV
@danjjakchinguTV 10 ай бұрын
'6.25전쟁'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Hello_Dex
@Hello_Dex 10 ай бұрын
오늘꺼는 진자... 너무 좋네요.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매번 이렇게 올려주시는 제작진 분들도 감사드려요.
@user_humans_are_omoshiroi
@user_humans_are_omoshiroi 10 ай бұрын
고마우신분들...❤
@송철호-n7n
@송철호-n7n 10 ай бұрын
정말 역전다방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ㅜㅜ
@이현우-l1u
@이현우-l1u 10 ай бұрын
진짜 좋다
@oolim-l7n
@oolim-l7n 9 ай бұрын
한달 전부터 너무 재미있게 정주행 하고 있습니다!!볼수록 너무 좋은 컨텐츠라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깊이 있게 분석해주시면서도 중간중간 위트와 재미를 적절히 섞어주시고 국군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진정성 있게 보여주셔서 믿고 봅니다!!!허준MC님도 옛날부터 웃긴형으로만 봤는데 너무나 훌륭한 진행에 진짜로 다시 보게 되었네요^^
@vanguard1051
@vanguard1051 9 ай бұрын
역전다방 때문에 국방TV 구독합니다. 보석같은 프로그램!
@gomdorij3213
@gomdorij3213 10 ай бұрын
고맙습니다 ^^*
@bramcohen545
@bramcohen545 10 ай бұрын
배속으로 보기 아까운 몇 안되는 콘텐츠 입니다~ 😊😊😊😊😊
@게딱지-x3i
@게딱지-x3i 10 ай бұрын
아쉽지만 중공군이 저렇게 개입한 순간 북진통일의 꿈은 날아갔죠. ㅜ 저 때 이후로는 다시 재북진할때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북진통일을 꺼려했습니다. 압록강까지 다시 재북진함으로서 인명과 물자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 가늠도 못 되었고 인구가 많은 대국 중공이 계속 병력투입을 할 위험도 너무 컸고 더구나 지금까지 간접적인 지원에 그친 소련도 직접 참전할 위험도 크다고 봤기 때문이죠.
@shurike37
@shurike37 10 ай бұрын
이래저래 중국놈들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안되네요
@vpalrmrgua
@vpalrmrgua 8 ай бұрын
미군이 유엔을 데려다 같이 싸운게 독이었지요 핵사용을 너무 반대해버리니까.... 그때 핵을 쐈어도 3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래요 그땐 미군이 핵 보유량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소련이나 미국이나 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가 없던 시절이라.
@Thomas-dq4cn
@Thomas-dq4cn 8 ай бұрын
그때 맥아더가 하자는대로 핵 여러발 만주에 썼으면 전쟁 끝났고 아마 지금 만주까지도 우리영토가 됐을수도.
@SpruceWood-NEG
@SpruceWood-NEG 8 ай бұрын
@@Thomas-dq4cnThe consequence is that tens of millions of Chinese troops crossed the Yalu River and destroyed all living organisms in South Korea.
@Thomas-dq4cn
@Thomas-dq4cn 8 ай бұрын
@@SpruceWood-NEG you think so? where would be the army after bombarded by the nuke?
@Duioll1
@Duioll1 10 ай бұрын
진짜 역전다방 너무 감사합니다.
@Appletree-db2gh
@Appletree-db2gh 10 ай бұрын
서양 밀덕들도 무미건조한 footage 나열식 다큐만 보다가 이렇게 다양하고 깊게 다루는 보면 환장할텐데 ㅠㅠ 최근 미국 넷플릭스에서 흥행중인 2차대전 다큐 보다가 역전다방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미 세계 어딜내놔도 자랑스런 수준인데, 하루빨리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지면 좋겠어요!
@우주썸
@우주썸 10 ай бұрын
ㅇㅈ 외국에서 만든 다큐보다 훨씬 재밌고 신선함
@롯소-z2i
@롯소-z2i 10 ай бұрын
너무너무 흥미진진한 역전다방! 다음 주 중공군 무기고 이야기도 재밌겠어요. 😊 감사합니다.
@no7.1ko9
@no7.1ko9 10 ай бұрын
조금은 내용이 나왔지만 한국전쟁 끝나고 국공내전도 한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킥킥킥-n9f
@킥킥킥-n9f 10 ай бұрын
굿
@gggg33333ee
@gggg33333ee 10 ай бұрын
맥아더 라인이 아쉽긴 하네 ... 10월 24일 1차 중공군 침공에 경각심 갖고 대비만 했었으면 고려초기 영토 정도는 유지 했을텐데 . 많이 아쉬운 부분
@치즈피자치즈추가
@치즈피자치즈추가 10 ай бұрын
역시 전쟁의 이면에는 정치의 영역이 있군요. 독일제국이 출범한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프로이센의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있겠죠? 비스마르크는 어떻게 헤쳐나갔을지, 다음 에피소드로 꼭 보고 싶습니다.
@sk3143
@sk3143 10 ай бұрын
애초에 전쟁은 정치 행위의 연장입니다. 외교는 말로하는 정치고, 전쟁은 총으로 하는 정치죠. 말로 안되면 매를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방가-d6e
@방가-d6e 10 ай бұрын
와 배경만 듣는데 긴장되고 재미있네요 !!
@Thomas-dq4cn
@Thomas-dq4cn 8 ай бұрын
미국의 핵폭탄을 얻어맞을 걱정을 모택동도 했다는데.... 미국이 그걸 쓰지않은게 우리로선 천추의 한!!!!
@mythcreator6019
@mythcreator6019 10 ай бұрын
3개월 참고 안 본다고 했는데,,, 결국 봤다.. ㅜㅜ
@서성원-y8r
@서성원-y8r 10 ай бұрын
주 2회씩 해줬으면 좋겠다
@Inceptor_key
@Inceptor_key 10 ай бұрын
중공군은 아직도 군벌적 속성이 남아 있어 소련처럼 1인이 일방적으로 독재를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각 군구의 지지여부가 권력의 향방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국공내전도 군벌전쟁과 유사하게 전투와 함께 타협과 회유 그리고 전향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한광현-o4x
@한광현-o4x 10 ай бұрын
자리가 사람을 만든달까... 윤 연구원님이 그 자리에 가시니 존재감이 있으시네요. 역시 심소령님 맞은편은 맞장구 쳐주시는 김세환 작가님이고 채박사님 맞은편은 백그라운드 풀어주는 역활이 재격이죠~
@jhlee-ld9dp
@jhlee-ld9dp 10 ай бұрын
이세환 작가님입니다
@tladnwls1234
@tladnwls1234 10 ай бұрын
이세환님은 군사전문기자님이십니다..... 작가아니십니다.............
@Meunuaru
@Meunuaru 10 ай бұрын
​@@tladnwls1234집필하신 책이 있으니 작가님도 맞습니다.
@jamescallahan2985
@jamescallahan2985 9 ай бұрын
역할
@레쓰비-i1k
@레쓰비-i1k 10 ай бұрын
진짜 개존잼 미쳤다...
@myoungkim1680
@myoungkim1680 10 ай бұрын
국공내전도 진짜 궁금한데… 어휴 역전다방은 다음 생까지 하셔야할 듯
@TV-pu5ph
@TV-pu5ph 10 ай бұрын
러일전쟁도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
@kswieg
@kswieg 10 ай бұрын
✴️📈🇰🇷✴️📈🇰🇷 👍👍👍
@게딱지-x3i
@게딱지-x3i 10 ай бұрын
저 당시 중공은 국민당과의 오랜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대륙을 통일했다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그리고 언제 국민당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력이 다시 대륙으로 침공할지 엄청 불안해 했기 때문에 자유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다 먹는 것은 두눈 뜨고 절대 놔둘 수가 없었던 상황입니다.
@JP-vb3rv
@JP-vb3rv 10 ай бұрын
개인적으로는 순망치한설에 무게를 둡니다. 임진왜란때도 평양성이 일본에 떨어지자 명나라가 움직였고, 한국전쟁때도 거의 같은 위치쯤 자기들 입장에서 적대적 세력이 올라오니 움직였던건 우연이라기 보단 중국입장에서는 평양정도가 지정학적 특이점인듯 싶네요. 누가 딱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심리적인. 공교롭게도 임진왜란 중국명칭 항왜원조 한국전쟁 중국명칭 항미원조
@품품-q4s
@품품-q4s 10 ай бұрын
이번 편은 좀 무섭네요. 지금의 미중전쟁의 씨앗을 잉태시킨 옛날이야기
@방가-d6e
@방가-d6e 10 ай бұрын
중국 특유의 보병을 이용한 기동 포위 전술, 유격전은 린바오가 전문인거로 알고 있는데 펑더화이가 사령관이 된건 정치적인 큰 이유가 있었네요
@truth1472
@truth1472 10 ай бұрын
소련이 한 구시대 전술을 모방을 했죠.
@cz_line9051
@cz_line9051 10 ай бұрын
박원장님이 그리워지는 편이네요 정치적인 부분을 빈자리를 네분이 열심히 채우는 모습이지만 이전처럼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 아닙니다
@woonhoshin1690
@woonhoshin1690 10 ай бұрын
그 당시 중국에서는 전투기가 절실히 필요했기때문에, 미그기를 받는 조건으로 참여했다는 문서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방송에서 말씀하신 이유도 있겠지만요.
@waitaoyuanshi5081
@waitaoyuanshi5081 10 ай бұрын
전투기,비행사 훈련, 기술자 지원,핵기술 지원...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한국전쟁 사상자 규모로 역으로 추리해본다면, 중국이 단순히 전투기 얻기 위해서 참전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규모 대충 정리하면 이렇게 나오는군요. 천 단위에서 반올림해 만 단위로 어림셈. 1. 군전사자 : 미국 약 4만 < 대한민국 약 14만 < 중국 약 18만 < 북한 약 29만 2. 군부상자 : 미국 약 10만 < 북한 약 23만 < 중국 약 38만 < 대한민국 약 45만 3. 민간인 사망 : 한국 약 37만 < 북한 약 40만 4. 민간인 부상 : 한국 약 23만 < 북한 약 159만 5. 민간인 행불 : 한국 약 30만 < 북한 약 68만 중공이 투입한 병력 연인원으로 약 135만 중에서, 전사 -부상에 소개 생략한 행불실종포로 포함한 총 인명피해는 약 59만. --------------------------------------------> 즉 한국전쟁에 투입된 중공군의 절반에 좀 못미치는 전사-부상-실종되었습니다. 59만 / 135만. 막 공산화된 중국이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도 있는데, 단순히 전투기 등 무기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국 인명 피해를 저렇게 당하는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합리적 해석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1949년 막 대륙을 장악하고 공산 중국을 선포한 입장에서, 혹시나 한반도의 전쟁이 다시 대륙을 회복하기 위한 미국과 장개석의 명분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기에 원천 봉쇄 차원에서 그 어떤 희생을 무릅 쓰고라도 한반도 전체가 적성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조금은 더 합리적일 것. 그리고 한국전쟁 최대 피해는 교전 당사국들의 군대가 아닌 남북의 민간인 피해. 민간인 사망 + 부상 + 행불 규모는 엄청납니다. 대한민국 민간인 피해는 약 90만 < 북한 민간인 피해는 약 267만 전쟁은 한국전쟁의 우리 민족과 같이 하면 안되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전쟁인 2차대전 영국과 미국의 민간인 제외 군 전사자는 각각 약 40만에 불과. ( 영국은 폭격과 대서양 선원 포함 민간인 약 5만 사망) 영국군 사상 최대급 패배에 속하는 마켓가든 작전 때 발생한 영국-미국-폴란드 총 전사-부상-행불 인명 피해는 약 1만8천(18만 아님). 마켓가든의 전사자 피해는 상대적으로 경미해 영 공수부대 약 1,100명 + 영30군단 약 5,500명, 인명피해 대부분은 포로. 한국전쟁 때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태.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튄지 불과 약 6개월 뒤인 1951년초 한겨울. 중공군 남하 때 발생한 전시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국방비리로 식량과 물자가 빼돌려져, 당시 보충역으로 징집된 국민방위군 약 50만 병력 중에서 + 추정치 약 10만 병력이 비전투 손실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 한국전쟁 국군 전사가 약 14만인데, 총 한 발 쏘아보지 못하고 굵어 죽거나 얼어 죽은 병력이 추정 약 10만. -----------------------------------------------> 이렇게 전쟁해선 안되는 겁니다. 남북 민간인 피해 중 상당 부분은 미군의 폭격 (오폭 포함) 추정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르메이의 폭격으로 초래된 민간인 최대 피해는,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 아닌 한반도 민간인. 특히 북한 지역 민간인. 남북은 북남 서로를 향해 + 그리고 남북 각각 내부에서 -----------------------------------------------> 머리띠 두르고 + 완장 차고, 상대측 또는 내부의 의견이 다른 이들을 열심히 쳐죽여댔습니다. 저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성숙된 한반도로 변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구한말 나라 잃는 과정과 한국전쟁까지 한반도는 냉정하게 본다면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내부 주적질에 환장해 농학농민운동을 외세에 진압 부탁하고, 그렇게 군사적으로 본격 개입한 외세 앞에서 국가 차원의 최소한의 자존심은 국가와 군이 아닌 그 국가와 군에 의해 짓밟히던 동학군 잔존세력 등 민간의 미약한 저항으로 그나마 겨우 지켜졌던. 그 미약한 몸부림 마저 없었다면 도저히 한 국가의 최후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외세 앞에선 빌빌 그 자체. 외세 앞에서 빌빌대면서 + 식민지에서 해방되자 마자, ------------------------------------------------> 지난 수 백년 최강의 적개심과 전투력으로 한국전쟁에서 스스로 초토화한 내부 주적질. ------------------------------------------------> 나라 잃을 때 외세 상대로 한국전과 같은 적개심, 전투력 선보였다면 아마도 나라 잃기 쉽지 않았을 것.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현재는 폐지된 구 독일 국가 1절, 보기 드문 호전성 전투적 특성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죠. 역시 현재는 사라진 공산혁명의 산물인 볼세비키-공산소련 시절의 같은 선율, 다른 가사 노래들엔 개인 우상화 바로 느껴지고. 1. 독일 국가 kzbin.info/www/bejne/jYCWf4uuZdBsY6c 2. 룰브리타니아 kzbin.info/www/bejne/i3zJiYmjact3rZo 3. 룰브리타니아 해군 버전 kzbin.info/www/bejne/oJDaipyemJhqmtk 4. 영국 국가 kzbin.info/www/bejne/jp6adI2sq9h2bJY 5. 볼세비키-소비에트-현러시아 국가 kzbin.info/www/bejne/iZu5dIeHqLp3f80 참고로 볼세비키-소비에트-현러시아 국가는 모두 동일 선율의 가사만 바뀐 국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선율로 여러번 선정된 국가-노래. 소련 붕괴 전 가사는 공산혁명, 공산당, 레닌, 스탈린에 대한 찬양. 룰브리타니아, 1997년 홍콩 반환식 tv 중계를 보면서 처음 접했었죠. 나중에 가사를 알고 나서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의 6.25 노래 가사와 너무나 달랐기에. 내부 주적질에 환장한 정신 넋 빠진 한반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겁니다. 한국전 남북의 6.25노래 유형, 동족 사이 피 맺힌 원한 투쟁가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아더왕 신화 : 앵글로색슨 용병을 불러들인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 신화로 거듭나다. 로마 철수 후 로마화 문명화한 켈트가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로마에 투쟁했던 켈트 막기 위해 앵글로색슨 용병 고용. 수 백년이 흐르며 결국 용병들이 고용주 켈트 지배층 내쫒고 잉글랜드 왕국 건설. 이후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증오와 투쟁. 영국 정확히는 연합왕국 UK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원수나 다름 없는 증오가 가득찬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연합체. 현재 한반도 남북의 적대감, 대한민국 내부 동서 지역분열 등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의 복수혈전 반복되던. 하지만 연합왕국 성립 이후,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으로 팽창했고 미합중국 건국의 초석을 놓았죠.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화적 합병으로 연합왕국, 이 후 내부 분열 극복하고 세계제국으로 팽창. 중미 식민지 개척에 국운을 걸고 전국민이 투자했다 파산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의 평화적 합병을 승인하고 연합왕국이 수립됩니다. 그 이전 까진 같은 국왕 다른 나라였던 동군이국이었는데 진정한 한 나라로.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하고, 로마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 시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브리튼 제도에 오래 전 이주해 살던 켈트족. 줄리어스 시저의 잉글랜드 남부 상륙 시작으로 로마에 점령. 로마화 문명화한 다수 켈트인들이 로마제국 백성으로 번영을 누릴 때, 로마의 군사력에 산악 오지였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바다건너 아일랜드로 쫒긴 켈트인들 로마에 저항. (유명한 미 드라마 왕좌의 게임, 7왕국은 고대 앵글로색슨 7왕국, 스타크 가문이 지키는 북쪽의 얼음장벽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장벽.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웨스트로드 땅덩어리는 아일랜드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붙인 다음 남북을 뒤집은 형태. 즉 왕좌의 게임은 통채로 고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켈트인들은 얼음장벽 너머의 종족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장벽 너머에서 나타난 공동의 적 상대로 함께 싸우게 되죠. 영국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켈트와 앵글로색슨의 원한 증오 시작해보죠. 제정로마 후기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본토 수호를 위해 브리튼의 로마군이 철군하면서, 이미 로마화한 켈트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던 야만적 켈트인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현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지역의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굴러들어온 용병 앵글로색슨이 박힌 돌 문명화한 켈트인들을 내쫒고 잉글랜드 수립. 같은 민족인데 단합하지 못한 켈트인들, 앵글로색슨에 패해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쫒겨났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후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더왕 신화입니다. 현실에선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해서 패배했지만, 신화 속에선 승리하죠. 아더왕의 적은 앵글로색슨 침략자. 그 앵글로색슨이 바이킹의 일족 노르만에 정복당해 오늘날의 영국 왕조 수립.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에 기원을 둔 바이킹들이 유럽 각지로 퍼저나가면서 일부 세력이 프랑스 노르망디 점령. 군사력이 너무 막강해 물리칠 수 없었던 프랑스 국왕은 노르만 공이라는 작위 내리고 땅을 영지로 하사하며 달램. 잉글랜드 왕족들과 친척인 노르만 공이, 잉글랜드 국왕 승계 문제로 전쟁.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붕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 노르만디 지역엔 앵글로색슨에 추방된 수 많은 켈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르만과 함께 잉글랜드 정복군에 가담. 노르만 정복 이후 아더왕 신화가 영국과 유럽에 널리 퍼짐. 선주민 켈트, 켈트를 정복한 앵글로색슨, 그 앵글로색슨을 정복한 극소수 노르만 바이킹, 노르만 바이킹에 협력해 앵글로색슨에 복수한 노르망디의 켈트 유민들. 그들이 뒤섞여 현 영국. 분열해서 좋을 것 없습니다. 민족의 원수 주적이 같은 민족인 것은 어리석죠.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로마화한 켈트인들의 주적은, 같은 민족인 켈트였습니다. 현명한 외세는 어리석게 내부 분열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분열한 켈트인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와 반성이 신화로 재창조된 것이 아더왕 전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더왕 신화는 켈트를 넘어 모든 브리튼 거주민 및 브리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모든 이의 신화. 용병으로 굴러들어왔던 앵글로색슨과 그 앵글로색슨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노르만 바이킹의 고대로부터의 관습들이 국왕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 좀 더 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잉글랜드 왕국 내부로부터, 느리지만 점진적인 왕권제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으로 성과가 시작.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증오에 바탕한 투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죠. 잉글랜드는 결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스스로 평화적 합병을 결정. 그 관련 내용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일단 연합왕국 구성 이후엔, 그들은 내부의 증오가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과 같은 내부 역량을 갉아먹는 대규모 유혈 분쟁을 피하면서 대외 팽창.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약했던 민주주의 싹이 연합왕국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대서양 동서 양편에서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미국 건국은 붕괴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약 2000년 후 부활입니다. 미국 건국에는 수 많은 켈트의 후손들이 가담했고, 앵글로색슨은 미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였죠. 비록 켈트의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앵글로색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는 제2의 조국으로 미국을 건국하였고 많은 미국 대통령도 배출했죠. 사실 함께 섞여 산지 오래라 유전적 분류는 무의미하고, 스스로 누구의 후손이라 여기는지 문화적 차이가 더 중요. 2차대전 때 미 장군 패튼이 몽고메리에 감정적 대립을 보인 겉으로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가 스코틀랜드 후예. 스코틀랜드는 작지만 정말 대단한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고작 500만 정도인데, 영국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1/3, 영국군 막강한 부대들 배출. 영국은 독일 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 더 많고, 단위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미국의 2배 이상인데 영국에서 압도적. 아담스미스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연합왕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죠. 영국이 만든 세계표준의 거의 다는 스코틀랜드의 결정적 역활 때문. 스코틀랜드 단독으로는 결코 그런 일들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원수나 다름 없는 이민족들이 뭉쳐서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함께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또한 영국에서 파생된 미합중국을 건국해서 세계패권을 승계하며 유지한 역사.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 공동체 연합왕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웨일즈 등 켈트와의 끝 없는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내렸던 결단 2가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왕권을 스코틀랜드에 넘기고 + 왕세자 이름,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 아닌 프린스 오브 웨일즈!!! 얼마 전 영국 여왕 사망. 사망 직전 여왕은 스코틀랜드 고성으로 이동해 거기서 사망. 왜??? -------------> 우연 아닐 겁니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정 여론 + 스코틀랜드 독립 의지 ---------------> 등을 고려해 연합왕국 유지를 위한 나름의 마지막 행보??? 현 영국 왕가는 부계 + 모계 전부 다 살피면, 앵글로색슨 왕조의 알프랫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계만 따지면 외부 침략 + 영국내 정변 + 아들이 없이 공주가 왕이 되면서 데릴사위 성씨 ----------------------> 사유로 몇 번 바뀐. 부계 성씨 가장 큰 변화는 3번 정도. 노르만 정복 때 노르만 바이킹이 앵글로색슨 부계를 대체 + 엘리자벳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계로 부계 바뀜 + 공주가 왕이 되며 독일계 데릴사위 ( 명예혁명 때, 유럽 거주 영국 왕실 후손 여왕 + 여왕의 부군 하노버공 공동 국왕. 빅토리아 여왕 때 부군 앨버트 공 ---------------> 데릴 사위 성씨로 부계.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 왕실 부계가 독일계라고 독일이 잉글랜드 정복한 것 아닌 그냥 여왕의 부군 데릴 사위. ) ( 1차대전 때 데릴사위 독일계 성씨 문제로, 영국 왕가 성씨는 윈저로 바뀌고 영구 고정. 즉 앞으로는 공주가 왕이 되더라도 데릴사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윈저 성씨를 영구히 사용. ) 노르만 정복은 이미 소개했으니 스코틀랜드 왕가로 잉글랜드 왕위가 넘어간 부분 소개하죠. 엘리자벳1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로마군 철군 후 반복된 켈트-앵글로색슨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철천지 원수 스코틀랜드 쪽 친척에게 넘기는 결단 했던. 후계 없이 사망할 때 엘리자벳1세는 잉글랜드 내부 아닌 스코틀랜드 쪽 친척인 스코틀랜드 현직 국왕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승계시킨. ------------------------------------------> 1603년? ~1707년 연합왕국 출범까지, 약 100년간 같은 공동 국왕 + 서로 다른 두 나라 체제가 유지되다 ------------------------------------------>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평화적 합병 결의로 연합왕국 출범 + 파산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부채를 잉글랜드가 인수 청산 ---------------------------------------------------------------------------------------------------------------------------->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군사적으로 패해 무력 합병된 것 아닙니다. 엘리자벳1세만 현명했던 것 아니랍니다. 영국 왕위 계승자 왕세자의 공식 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왜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노르만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웨일즈도 정복. 웨일즈의 반란과 투쟁이 지속되자 잉글랜드 국왕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웨일즈 대표들과 회동. ------------------------------------------------------------------>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주면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하겠냐? ------------------------------------------------------------------> 웨일즈 귀족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웨일즈에서 태어나 웨일즈어를 말하는 국왕이라면 충성하겠다! ---------------------------------------------------------------------------------------------------------------------> 즉 잉글랜드 니 넘들 꺼져!!!!!!!!!!!!!!!!!!!!!!!!!!!!!!!!!!!!!!!!!!!!!!!!!!!!!!!!!!!!!!!!!!!!!!!!!!!!!!!!!!!!!!!!!!! 잉글랜드 국왕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임신한 왕비를 웨일즈의 성에 머물게 했고, 운 좋게도 왕자가 태어난. 그 왕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봉하고 + 웨일즈인 보모에게서 웨일즈어를 배우며 자라도록 했고 + 훗날 왕위를 계승토록. -----------------------------------------------------------------------------------> 이 전통은 이미 1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영국 왕세자들은 웨일즈어를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 1천년 전부터 모든 영국 왕세자 책봉식은 웨일즈에서 행해집니다. ( 저 현명한 잉글랜드 국왕, 브레이브 하트에 폭군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폭군이었던 자가 저랬던. ) 최근 영국 여왕 사망 때 새 국왕 챨스3세의 사실상 첫 임무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방문해 연합왕국의 연대를 강조, 특히 웨일즈 의회에선 영어만이 아닌 웨일즈어로도 연설. 따라서 아마도 영국 여왕이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왕조 뿌리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이해 연합왕국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왕 장례식 시청했다면 바로 느낄 겁니다. 스코틀랜드-풍 의식이 연합왕국 공식 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국왕 지위를 철천지 원수 쪽에 넘기는 통 큰 배포와 피의 투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 저랬으니 저 조그만 세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과 미합중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던 겁니다.
@sean7082
@sean7082 10 ай бұрын
정말 중국은 원수임. 장제스가 조금만 더 처발랐어도...
@김수영-h3k
@김수영-h3k 3 ай бұрын
민족통일을 방해한 철천지 원수임 5천년 역사에 항상 한민족을 괴롭힌 원수가 중국
@johnpark6034
@johnpark6034 10 ай бұрын
미국하고 국경을 맞대야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었는데 그게 제일컸지 아마도
@황천의볶음밥
@황천의볶음밥 10 ай бұрын
잔당이 100만대군 대륙의 스타일이란
@손대일-t3w
@손대일-t3w 6 күн бұрын
네가지 조건이 있지만 저는 하나의 포커스를 가지고 있는데요 중공군 참전 결정을 할 때 주은래의 말입니다 남한군이 단독으로 밀고 올라오면 중공군은 참전하지 않는다 핵을 쓰고 싶었던 맥아더를 의식하지 않았나 싶어오
@j.c.s7762
@j.c.s7762 10 ай бұрын
국민당이 중국을 통일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함 역사의 아이러니 ㅎㄷㄷ
@truth1472
@truth1472 10 ай бұрын
그럴수도요!
@shawnpark3354
@shawnpark3354 10 ай бұрын
오늘따라 그 분이 생각납니다. 역사 “요만큼”. 정말 요만큼만 말씀해주셔도 “이만큼”이 들어왔었는데…
@아벤고
@아벤고 3 ай бұрын
은혜는 못갚아도 원수는 갚아야지 ㅋㅋ
@muno7112
@muno7112 10 ай бұрын
지난 역사를 볼때 중립적인 입장 양측의 입장에서 다 생각해보고 해야하는데 6.25이후 오랜기간은 미국 서방의 입장에서만 봤었죠.아직도 일부는 별로 바뀐건 없지만
@KOREAN.21C
@KOREAN.21C 10 ай бұрын
와…저도 지나족들 국공내전에 북한이 크게 기여했다는걸 첨 알았네요. 중공에 보탬도 안 될 거지나라 북한을 같은 이념이라고 그렇게나 챙기는거라고? 라며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네요. 중공이 진짜 북한아니었으면 생겨나지도 않을 나라였으니 챙길만도 하네 써글..
@제이큐티
@제이큐티 10 ай бұрын
그러니 세계사공부 좀 마니해라. 국사책만 보지말고, 각 국의 입장도 살피고, 각 국의 입장서 보자면 어떠한 나라도 나쁜 나라는 없음. 단, 바보는 있을뿐
@KOREAN.21C
@KOREAN.21C 10 ай бұрын
@@제이큐티 챰씨 어이가 없네
@shurike37
@shurike37 10 ай бұрын
@@제이큐티 공산주의 나라들은 나쁜 나라 맞습니다.
@와당탕-k6t
@와당탕-k6t 10 ай бұрын
하월빈이라고 쓰는게 맞나요? 오타 아닌가요?
@정크랫-t7t
@정크랫-t7t 10 ай бұрын
저떄 중공군 참전 안했으면 북한은 자유로운세상이였을텐데
@waitaoyuanshi5081
@waitaoyuanshi5081 10 ай бұрын
스탈린하구 미국 전쟁이구, 대리전으로 서로 피터지게 싸우구, 스탈린은 피 안흘리구 이득 보구, 일본 전쟁 물자 팔아서 부자되구...
@Zuilietzhan
@Zuilietzhan 10 ай бұрын
38:10 원조 곰 ?!!! ㄷ ㄷ ㄷ;;;
@나는개인이오-s5z
@나는개인이오-s5z 10 ай бұрын
소모전 최적의 장소가 한반도지형인데
@fang3131
@fang3131 10 ай бұрын
오늘 내용은 박태균 교수님 전공 분야인데 참 아쉽네요.
@흠냥0001-w3n
@흠냥0001-w3n 8 ай бұрын
영상자료, 기록자료 정말 제대로 모아놓은.... 주장이 아닌 기록을 갖고 얘기하는 "작품" 수준입니다...
@구경춘-h7l
@구경춘-h7l 9 ай бұрын
궄민당과.공산당이 싸워서 국민당이 중국을 통일을.하였으면 중국이 한국보다 경제발전이 앞섰을 수도있습니다
@junheelee6664
@junheelee6664 10 ай бұрын
공산 중국 입장에서는 결과론 적으론 6 ㆍ25가 맞는 선택 이였나요?
@truth1472
@truth1472 10 ай бұрын
오판
@天滚滚
@天滚滚 8 ай бұрын
作为中国人来看抗美援朝是伟大的胜利 有了一个缓冲区,东北是当时最发达的工业基地,绝对不可能容忍美国势力威胁这里的,如今的俄罗斯🇷🇺行动逻辑也类似
@꽃의은하수
@꽃의은하수 10 ай бұрын
중국군 참전논리를 보면 임진왜란때 명나라랑 비슷한거 같네요 순망치한, 이왕 싸울거면 중국 본토보다 타국에서 싸우자, 중국과 명나라 모두 당시 자국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최고지도자 마오쩌둥=만력제의 의지로 참전한것까지.
@沙坪坝圆脸
@沙坪坝圆脸 7 ай бұрын
看来你还记得万历皇帝救了李氏朝鲜,说起来你我祖先都曾是大明皇帝的臣民。
@꽃의은하수
@꽃의은하수 7 ай бұрын
@@沙坪坝圆脸 Ni Hao?
@沙坪坝圆脸
@沙坪坝圆脸 7 ай бұрын
@@꽃의은하수 你会中文?
@꽃의은하수
@꽃의은하수 7 ай бұрын
​@@沙坪坝圆脸 Bu, 只是我很喜欢中国历史,喜欢看中国历史电视剧。
@沙坪坝圆脸
@沙坪坝圆脸 7 ай бұрын
@@꽃의은하수 阁下贵姓?
@johnpreston4580
@johnpreston4580 10 ай бұрын
아니... 류사오치.... 아니..... 헠......
@GGMU-s8n
@GGMU-s8n 9 ай бұрын
만주에서 기갑전 벌어졌으면 엄청났을듯
@내사랑냥구
@내사랑냥구 10 ай бұрын
중국 영화중에 특수부대 전랑2 (1억6천만명 관람), 항미원조 장진호전투 (1억명 관람) 영화를 본 중군군인이 경례를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별로 잘만든 영화는 아니고 중국 국뽕 영화임.
@happyaccompany
@happyaccompany 10 ай бұрын
1949년 당시 중국의 인구가 5억 정도였던...
@kju42
@kju42 10 ай бұрын
맥아더는 얼마든지 국공내전당시 중국에 파견되었던 고위미군장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히 그들의 전술을 알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거나 무시했던 거 같다.
@ImperatorDDragon
@ImperatorDDragon 10 ай бұрын
만약 6.25때 중국이 내분이 심화되서 공산당이 국민당에게 무너졌다면 지금의 역겨운 중국과는 달라졌을까 궁금해지네요 ㅎ
@user-op4ds1np9x
@user-op4ds1np9x 10 ай бұрын
원래 국민당이 더 강했어요 수몰작전등 민심을 잃어서 그렇지 전력으로보면 장제스가 통일해야 맞죠
@truth1472
@truth1472 10 ай бұрын
분단이 됐어야죠.
@hongdonghwan1741
@hongdonghwan1741 10 ай бұрын
역전 다방은 학교에서도 방영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실에 의한 역사
@경걸김-q6k
@경걸김-q6k 10 ай бұрын
안스럽네요
@Ru-qk2bq
@Ru-qk2bq 9 ай бұрын
마오가 통치 중에 몇 천만의 인구 날린 걸 생각하면 통치 능력은 없었지만 대단한 양반이기는 했네
@효녀밍밍
@효녀밍밍 9 ай бұрын
마오쩌둥 경제는 꽝인데 군사적으로 천재인건 분명함
@yoosteve1885
@yoosteve1885 10 ай бұрын
광주광역시에서 세금으로 공원 조성해주는 정율성에 자세히 대해 알려주세요 6.25 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군가를 만들어준 중공국적의 광주출생 한국인이고, 죽어서도 바바오산 혁명열사능에 묻혔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중공의 품에 묻혔나 짐작이 안가네요 벤플리트 장군도 현충원에 묻히지 않았는데 ㅎㅎ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밀양 출신 김원봉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길. 밀양엔 김원봉 이름을 대놓고 내세우진 않았지만 의열단 기념관 이름으로 김원봉 기념관이 이미 건립되어 존재합니다. 또한 경남 출신의 윤이상에 대해서도 알아보길. 광주를 강조하며 의도적으로 취사 선택해서 글 올린 것 아니라면 님은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겁니다. 일제시대 국경 가까운 이북에서만이 아닌 영호남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에서 수 많은 이들이 독립을 꿈꾸며 만주로 대륙으로 갔던 현실 부정하지 말길. 그들의 선택지는 여럿. 1. 우리 우익 상해 임시정부 소속으로 항일 운동. 2. 우리 좌익 공산주의 소속으로 항일 운동. 3. 한반도 독립은 강력한 일본의 패망으로만 달성되기에, 일본 패망의 최단 노선으로 중국의 대일본전 승리를 선택. ------------------------------------------> 당시 시대 상황 + 만주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장개석 아닌 모택동의 중국을 택한 조선인들이 훨씬 더 많았고. ------------------------------------------> 아마 님도 그 당시 만주 거주 조선인 항일투사였다면, 10중 8-9 아닌 100중 98-99는 좌익 공산주의 독립운동 선택했을 수 있고, ------------------------------------------> 님이 중국 공산당 소속으로 싸웠을지 아니면 조선 공산당 깃발 아래서 싸웠을지는 그 당시 님이 처한 조건에 달린 것. ------------------------------------------> 21세기 님의 현 위치와 그 당시 만주에 던져진 님 위치는 다릅니다. 대한민국 입장에선 불행하게도 상해 임시정부 소속의 항일 운동 세력은 수가 가장 적었습니다. 백범일지 읽으면 확인되는데,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내륙으로 침공할 때 적을 때는 가족 포함해도 수십명 수준에 불과. 수는 매우 적었지만 김구 주도 임시정부는 윤봉길-이봉창-백정기 3의사를 배출. 해방 후 3의사 유해 봉환 때 김구는 통곡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대성공 + 이봉창 의사는 폭탄 투척했지만 일왕 행렬 목표 타격 실패 + 백정기 의사는 사전 발각되어 체포 순국. 효창공원엔 3의사 묘소 + 김구 선생 묘소 + 언젠가 환국할 안중근 의사 가묘. 일본이 느낀 수적인 체감 위협 측면에선, 미국 활동에 주력한 임시정부내 이승만 계열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다면, 한반도 독립은 원천적으로불가능. --------------------------------------------->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한반도 독립의 첫 발자국 내딛는 교두보 확보. ---------------------------------------------> 아직 태평양전쟁 터지기 전 상황에선 중일전쟁 승패가 우리 독립에 가장 결정적인 외부 조건. 1번이 수적으로 가장 적었던 이유는, 지난 세기 초 미국의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이 미영의 동맹 조건 때문에 미영의 우리 항일운동 지원이 사실상 봉쇄되었기에. --------------------------------------------->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영이 일본에서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의 우리 항일운동 지원 시작된. ---------------------------------------------> 미영이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지 않았다면 아마도 1000 아닌 10000 중 9998-9999 우리 항일운동 지원 거부했을 것. ---------------------------------------------> 대한민국 우익은 정말 운 좋았던 겁니다. ---------------------------------------------> 미영의 한반도에 대한 사랑과 우정 때문이 아닌, --------------------------------------------->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 뺨싸대가 쳐맞은 우연 때문에 미영이 우리 우익 독립 항일운동 지원 시작했다는 점에서. ---------------------------------------------> 미영의 얻어걸린 뺨쳐맞기 행운이 없었다면, 한반도 역시 베트남과 같이 아마도 거의 100% 좌익 공산주의 항일이 되었을 것.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 프랑스의 동맹이며 식민지를 보유했던 영국과 미국은 아예 무관심. ----------------------------------------------> 일본 항복 당시 영국군은 북위 17도선 이남에서 베트남 독립군 무장해제하면서 다시 돌아올 프랑스군 기다렸고, ----------------------------------------------> 미국은 디엔비엔푸에서 패배하고 철수하는 프랑스 바톤 이어받아 베트남에 개입. ----------------------------------------------> 님이 그 당시 베트남 청년이었다면 100% 좌익 공산주의 반프 독립운동 선택했을 것, 베트남에서 우익 독립투쟁은 불가능.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이란과 쿠바에 대해. 이란은 미국에 사과할 아무런 이유 없지만, 미국은 본질적으로 사과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쿠바 역시 왜 카스트로 혁명이 일어났는지 하나 하나 따져본다면 사실 미국은 별로 할 말 없으며, 애초 카스트로는 공산혁명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극단적 반쿠바 봉쇄로 카스트로는 생존을 위해 소련과 협력해야만 했고 소련의 원조 하에서 어쩔 수 없이 공산주의를 도입한 측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쿠바 혁명의 상징이기도 한 체게바라. 누가 체게바라를 단순히 공산주의자로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남미만이 아닌 유럽과 미국의 청년들이 입은 체게바라 티셔츠,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판에. 1. 이란 이란은 영국 영향으로 히잡 아닌 미니 스커트도 유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중동에서 터키와 함께 가장 서구화 된 곳이어서 이란 출신 여성 수학자가 해외 유학 후 몇 년 전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하기도. 선거로 선출된 이란 정부가 2차대전 이후에 석유 국유화에 나서자 미국과 영국은 선출된 이란 지도자 모사데크 암살 + 선거로 세워진 합법적 이란 정부 전복 후 + 팔레비 왕정 괴뢰 정부 수립 -----------------------------------------------------------------------------> 이란 내부의 반 팔레비 투쟁으로 팔레비 정권 붕괴. 팔레비 정권 몰락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 귀국 후 미국의 봉쇄에 맞서며 서구화에서 이탈되어 이슬람 신정주의 체제. -------------------------------> 미국 영국이 초래한 겁니다. 팔레비 왕정 붕괴, 이란 혁명 성공 후 미국은 철저한 이란 경제 봉쇄. 미국은 이라크 후세인 부추켜 이라크가 이란 선제 공격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미국의 압도적 지원과 이란에 대한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란의 판정승 성격의 종전, 종전 후 후세인은 결국 반미로 돌아서고 걸프전. 소련의 아프칸 침공 때 미국이 지원한 이슬람 반소 게릴라, 소련군 철군 후 그들 역시 반미로 돌아선, -------------------------------------------------------------> 뭔가 미국의 중동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현재 터키 최근에 이름 바뀐 튀르키에와 미국 사이도 좀 우려됩니다. 1차대전 패전 후 오스만 투르크에서 케말 파샤의 공화정 터키, 대대적 서구화로 문자도 알파벳으로 바뀌고 중동에서 정경분리가 가장 확실했던 그 곳이, 미국과 티격태격하면서 점차 이슬람화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최강 패권국이 된지 70년 세월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어설픈 외교 역량. 이란은 미국 영국이 조금만 욕심 줄이고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중동의 서방 핵심 지원 세력이 될 여지도 있었습니다. 이란이 극단적 이슬람 국가로 변해버린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 있을 것, 즉 미국 스스로 중동에 반미의 핵심 세력을 만들어 버린. 현재는 튀르키에도 미국이 조금만 대응 실수하면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사우디도 내부 독재 취약성으로 잠재 위협에 노출된. 사우디는 이란-터키에 비한다면 절대왕정식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치는 황당무계한 독재적 친미 국가. 알파벳을 사용하던 터키나 미니스컷 유행하던 이란과는 전혀 다른 독재 체제가 어떻게 민주주의 모국 미국의 핵심 동맹 자격이 있겠습니까? 현재 사우디 최고 실권자는 국가 권력을 동원해 암살을 자행하는 자인데도, 그런 자에 대해 미국은 국익 때문에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사우디 독재는 미래 언젠가 이란 팔레비 왕조 붕괴되듯 무너질 것, 단지 시간 문제. 그런 일 벌어지면 사우디 역시 반미로 변할 것. 이집트는 미국과 영국 입장에서 그나마 행운이었던.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은 집권 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영국이 언제까지 수에즈 지배해야 합니까?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이스라엘 꼬드겨 3 나라가 함께 연합해 이집트 침공 수에즈 일대 완전 장악, 그 무렵 소련은 체코-헝가리 등 중부유럽 민주화 탄압. 소련은 이집트 사태에 직접 개입하겠다고 협박하고 + 미국 역시 영프에 철군 요구하면서 -------------------> 힘 빠진 영국이 굴욕적 철수로 수에즈 국유화 관철된. 철수한 영국과도 이후 원만한 관계 회복이 이어지며 수에즈는 미군과 영국군 함정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중동에서 서방에 대한 반감도 적은 불행 중 다행인. 하지만 이란에선 미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2. 쿠바 미-스페인 전쟁으로 쿠바와 필리핀 무력 탈취한 미국이 쿠바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했다면, 왜 쿠바에서 축출되었겠습니까? 미국은 쿠바 혁명 이후 21세기 현재 까지도 지속된 경제 봉쇄로 쿠바를 극한의 어려움에 처하게 했습니다. 쿠바의 낙후는 쿠바 혁명의 오류만이 아닌, 힘 있는 미국의 힘 없는 약소국에 대한 극단적 간섭 고집 부림도 큰 원인임을 파악해야. 카스트로는 사악한 공산 혁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의 힘에 의해 무능하고 사악한 공산혁명가로 낙인 찍히고 쿠바 국민들 전체도 고통받게 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도 착각해선 안됩니다. 미국이 흑해 인근 터키에 소련 공격용 중거리 핵탄도 미슬을 먼저 배치했고, 후루시쵸프는 터키 배치 핵미슬 철수 요구했지만 미국이 거부 + 그에 대한 대응으로 소련의 쿠바에 대한 중거리 핵미슬 배치 ---------------> 쿠바 사태 촉발. 미국과 케네디의 뚝심으로 미국이 승리했다고 오해해선 안됩니다. 대한민국 언론엔 쿠바에서 소련 미슬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소련과 후루시쵸프의 굴욕으로 보도되었지만, -------------------------------------------------------------> 실제로는 터키-쿠바 배치 미소 양측의 중거리 핵탄도미슬 모두가 함께 철수되었습니다. -------------------------------------------------------------> 쿠바 사태 해결 직후 양측 지도자 모두는 불행한 최후. -------------------------------------------------------------> 케네디는 암살되었고 후르시쵸프 역시 흑해 연안에서 휴가 중에 실각. -------------------------------------------------------------> 쿠바 사태 당시 르메이는 미 공군 수장으로서 핵전쟁 불사 철부지 행태도 잊어선 안되는. ------------------------------------------------------------> 나중에 알려졌지만 쿠바 위기 당시 케네디는 약물에 일부 취해 있었지만 르메이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고 잘 통제 역전다방에서 이미 소개된 르메이. 유럽 미8공군에서 활동하다 대전말 태평양으로 이동 1945년 일본 폭격 지휘. 믿기지 않겠지만 르메이의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 최대 피해는, 나치독일이나 일본 민간인 아닌 한반도 남북의 민간인, 특히 북한 지역 민간인. 미국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지극 위험합니다. 이란과 쿠바 혁명 직후 미국이 지난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두 나라와 화해했다면 실제 역사 전개와 분명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힘, 세계 경제 영향력을 이용해 철저하게 이란과 쿠바를 봉쇄 이란-쿠바를 악으로 몰았기에 훗날 분명 미 역사의 오점에 추가될 것.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이란-쿠바만이 아니라 베트남 역시 미국은 문제 많았습니다.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는 상황이 꽤 달랐습니다. 베트남은 한반도와 달리 일본 항복 시점 일본군은 일부 항구와 항구들을 연결하는 선을 유지한 정도였고 국토 대부분은 베트남 저항 세력이 점령한 상태. 호지명은 프랑스에서 공장 노동자? 일하면서 유학했었던 반프 독립 투사. 그 상태에서 우리 38선과 유사하게 북위 17도선 경계로 북쪽은 장개석 중국군 + 남쪽은 영국군이 일본군 무쟁 해제 목적으로 주둔. 특히 남쪽의 영국군은 곧 복귀할 프랑스군을 기다리며 베트남 독립군 무장 해제에 나서고 바로 베트남의 저항 시작. -------------------------------------> 프랑스가 정신차리고 기력 회복하자 마자 다시 베트남에 병력을 보내면서 영국군 철군 및 본격적인 반프 무장 투쟁 시작. 프랑스가 베트남 전체를 다시 식민지로 회복하려 디엔비엔푸 침투 공세 벌였다 패배하고 철수하면서 미국이 바톤 터치하고 간접 개입 시작. -------------------------------------> 미국의 개입이 조금씩 강화되며, -------------------------------------> 통킹만 사건 사실상 미국의 조작 왜곡으로 건수 만들어, -------------------------------------> 본격 무력 개입 시작할 당시 미국은 착각했던 겁니다.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본격 무력 개입하면 6개월이면 정리한다고 자신. 하지만 압도적 국력과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수렁에 빠졌고 결국 패배성 철군 + 철군 후 공산화. 미국은 베트남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포지션. 베트남을 식민지배 했었다 군사적 패배로 쫒겨난 프랑스 대타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는 포지션.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베트남에선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미국의 후원을 받았던 북위 17도선 이남의 남베트남 정부 고관대작들은 2차대전 전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고위 관리 출신들도 많았고. 남베트남이 오로지 타락 부패??? 타락 부패한 남베트남 일부 공무원 군인도 있었겠죠, 하지만 왜 미국이 지원한 물자가 베트콩과 북베트남으로 넘어갔는지 냉정히 생각해보길. 타락 부패라고 해석하고 싶은 자유만 만끽하지 말길, 넘긴 이들은 사명감으로 스스로 그랬을 수도 있는 겁니다. ---------------------------------------> 아마도 님 역시 1945년 일본 항복 당시 베트남 청년이었다면, 분명 식민지에서 독립할 것을 기대하며 희망에 가득 찼을 것. ---------------------------------------> 그런데 영국군이 베트남 독립군 무장 해제 시작하고 + 프랑스군이 다시 복귀하는 상황에서 베트남 청년 님은 어떤 선택??? ---------------------------------------> 님이 자발적 베트남 반민족 노선 취하진 않을 정도의 상식과 정의감을 가졌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21세기 현 대한민국 내부 이념 포지션으로 함부로 다른 국가 국민들의 과거 반외세 투쟁 포지션-노선-선택을 폄하해선 안되는. 미국은 명백히 베트남에 잘못 개입한 겁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수행은 도덕적-정치적으로 맹백히 미국 건국 이념에 배치됩니다. 미국 독립 전 영국 북미 식민지 시절 식민지 주민들은 베트남인들이 겪은 역사에 비한다면 광명과 자유가 넘치는 대접 받았음에도 무장 투쟁 독립.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최후 처리 과정은 많이 달랐습니다. 영국은 2차대전 후에 식민지 유지 불가능 판단하고 + 협상을 통해 철수를 조율하면서 평화적으로 철수하면서 식민지들 독립.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알제리 등에서 계속 식민 지배 이어나가려 군사적 개입 선택했다 모두 수렁에 빠지고 결국 쫒겨나는 형식으로 식민지 독립. ---------------------------------------> 영국 식민지 중에서 무장 투쟁으로 독립한 유일한 곳은 1700년대 미합중국 단 하나. ---------------------------------------> 그것도 식민지 주민들 자체가 신대륙으로 이주한 영국인 상태에서 강력한 저항으로 식민지 상실했고 그 교훈을 잊지 않았던.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 된 승리가 없습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비기기로 시작해서 줄줄이 쓴 맛.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겉보기 사상누각 승리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은 사상 최약체 패권일 수도, 패권 장악 확인 도장 찍고서 고작 5년 후부터 저런 허약한 패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경걸김-q6k
@경걸김-q6k 10 ай бұрын
Kf21까지요
@스위밍S
@스위밍S 3 ай бұрын
중공은 한반도를 자국의 영토로 보아서 북한을 도와준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 역사적으로 조공관계인데 미국이 들어오면 자신들의 영토가 침략당한다 생각한거죠. 요즘도 하는 동북공정이란게 중국 사람들의 그런 역사관에서 생긴게 아닌가 합니다.
@이숙영-q8g
@이숙영-q8g 5 ай бұрын
625 전쟁 간단하게 말하면 소련과 중국 이 물밀듯 내려와 남한군인 얼마나 많은피를 흘렸는지 특히 북쪽 전투는 그야말로 처참한죽음 그래서 낙동강전투가 벌어졌다
@iIlilIlilliIiIll
@iIlilIlilliIiIll 8 ай бұрын
조국통일이 앞에 있는데 당연히 진격해야죠
@Coinq1
@Coinq1 10 ай бұрын
중, 일은 이웃나라인데 진짜 우리나라에 도움되는 꼬라지가 없음
@게딱지-x3i
@게딱지-x3i 10 ай бұрын
다만 애초에 북진할 때 평양원산선 또는 안주함흥선에 방어선을 제대로 구축하고 굳혀 놓았으면 중공군이 개입했어도 37도선까지 쉽게 물러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맥아더를 포함한 유엔군의 실책입니다. 실제 중공군도 애초 목표가 평양원산선만 확보되면 거기까진 북진하는 건 눈감아줬을 거라 했는데 이는 만주, 화북지역을 안전하도록 위한 최소한의 완충 지역만 확보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되었으면 밀려났어도 멸악산맥 정도까지만 후퇴했다 다시 재북진해 동서 폭이 짧은 평양원산선 아님 안주함흥선에서 고착화되고 고지전해서 휴전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truth1472
@truth1472 10 ай бұрын
중공이 티벳을 침략을 한것을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그냥 만족을 하는 나라인가요?
@손대일-t3w
@손대일-t3w 6 күн бұрын
잉? 박헌영이? 중국으로 갈 수는 있지만 목소리가 크진 않았을 거에요 남로당 조직이 박헌영이 조직이었는데 6.25 진행하면서 남로당 조직이 한 줌도 안됐던 거죠 그러하니 쏘련파 김일성이 박헌영한테 힘을 실어 줄 리가 만무합니다
@joinso3744
@joinso3744 3 ай бұрын
32:20 이재명 닮앗다
@티모찌-o9o
@티모찌-o9o 10 ай бұрын
과유불급이 어울리는 이번 편
@게딱지-x3i
@게딱지-x3i 10 ай бұрын
또 소련도 중공이 개입하는 걸 반겼는데 이는 소련도 중공만큼은 아니어도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으로 통일되는 걸 절대 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 극동의 거의 유일한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가 대한민국에 너무 가까워져 위험해지게 되고 제대로 된 활용이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여기도 완전한 부동항이 아니라 3~4개월은 얼지만요).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이북으로는 겨울이 너무 추워져 결빙되는 기간이 더 길기 때문에 항구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답니다. 실제 연해주 해안선을 보면 시호테알린 산맥에 의해 고립되어 작은 마을조차 몇 개 없을 정도로 인구가 매우 희박합니다.
@조주현-o5i
@조주현-o5i 10 ай бұрын
미국과 중공은 예나 지금이나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임 우리는 이스라엘 같은 전략으로 버텨야~~~ 이용하려는 주변 놈들을 이길수가 있다오 제발 좀 현실을 직시 하세요
@fantasia3960
@fantasia3960 10 ай бұрын
수천년의 적 중공을 도와준 김일성 일파. 실로 민족대역적이다.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 수천년의 적 중공 ) ??? 리얼리??? 근거 있다면 근거 제시하길. 약 1400년 전 신라의 삼국통일, 당은 신라의 동맹. 당은 그나마 현재 님이 혐오?하는중공 또는 짜장과 밀접한 관련. 약 1000년 전, 현재 드라마로 방송중인 고려-거란 전쟁. 고려를 침공했던 거란은 중공 현 중국 짜장의 적이었던 북방민족. 그 이후로도 한반도 전체를 유린하고 고려를 사실상 속국 부마국으로 만들었던 몽골은 현 짜장의 철천지 원수이며 ------------------------------------> 임진왜란 얼마 후 우리 옛 고구려 소속의 여진이 대륙 정벌에 나설 때, 임진왜란 때 우릴 도운 짜장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 대놓고 짜장에 충성하며 국제 정세 오판해 + 2번의 청의 침공 자초하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땅에 대가리 9번 박은 것은 뭔지????? 냉정해지길. 현짜장은 현 한반도에 국한된 우리 민족 영역 형성의 절대적 공헌한 신라-당 연합의 바로 그 넘 당 직계 후손. 즉 과거의 현 짜장에 의해 고구려의 요동-만주 영역을 사실상 영구 상실하고 + 일본 열도가 한반도와 절연되어 철철지 원수로 바뀌게 되면서 우리 민족의 영역이 한반도 내부로 갖혀버린 것 잊지말길. 님이 수 천년의 적이라고 표현한 그 적들은 대체로 현 짜장을 마구 짓밟던 북방 유목 민족들이며, 특히 옛 고구려의 일원이었던 금과 청(후금)은 나라 잃은 뒤 오랜 고난을 견뎌내고 2번이나 대륙 정벌에 나서, 금은 송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 + 남송으로 후퇴하게 만들었고 + 송-남송은 금과의 강화조건으로 아우-신하로 각하되며 엄청난 조공 바친. --------------------------------------> 금의 시조는 우리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만주로 이주한 후손으로 --------------------------------------> 나라 이름 금 역시 조상의 성씨 김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고, --------------------------------------> 놀랍게도 청-후금 황족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刻羅), 만주어 금의 발음이 아이신, 우리 한자 발음으론 애신. --------------------------------------> 아이신은 자신들이 금 김과 연관된다는 것이며 + 음차어 한자 선택에서 신라가 포함되도록 했다는 것 치명적인 것. 청(후금)이 조상의 원수를 갚고 대륙 정벌에 나섰을 때, 조선은 현 짜장인 명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고대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지극 가까운 형제의 원대한 꿈을 방해하다 국왕이 대가리 9번 박는 수모 초래. 청태종은 대륙 정벌을 최우선시 하며 혹시나 있을 후방의 후환만 미리 제거하고 철수 + 결국 청은 대륙 정벌 성공해 현 짜장의 광활한 영토 만듬. 짜장이 천년의 적이라는 명확한 근거 있다면 대면 됩니다. 냉정하게 살핀다면 현 짜장 쪽과의 동맹과 의리를 중시하면서 국난을 초래했던 정신 넋빠진 정세 오판에 놀라게 될 것. 짜장이 천년의 적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단 관점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데 님이 그렇게 짜장을 적으로 여기진 않을 것 같군요. 고구려의 광활한 대륙 영토 상실에 분노해 현 짜장을 천년의 적으로 여길 님이 될 수 있는지 냉정히 생각해보길. 님이 정말 신라의 동맹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멸한 당을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님의 신라를 보는 입장도 꽤 많이 바뀌는데. 님들 유형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현 우리 민족 형성의 결정적 계기로 보기에 당으로 인해 우리 민족 전체가 한반도로 갖혀버린 것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 님이 호란 때 조선에 있었다면 청이 대륙 정벌에 나설 때 과연 님의 스탠스가, 그 당시 명에 은혜를 갚자일지 아니면 옛 형제 청과 함께 대륙 정벌하자일지 냉정히 생각해보길. --------------------------------------------> 님들 유형은 냉정하게 본다면 현 짜장의 직계 조상들에게 지극 우호적일 가능성 마저 있답니다. 따라서 님 표현 ( 천년의 적 )에서 천년이라는 수식어 빼고, 그냥 무미건조하게 한국전쟁에서 현 짜장은 대한민국의 적이었다고 간결하게 표현하길. 그러면 누가 이렇게 따지겠습니까???????????? 그리고 수 천년은 커녕 1천년 지속되는 적도 사실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영구불변의 적 따위도 없고. 조건에 따라 동맹과 적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 냉엄한 현실. 한미 관계만 살펴봐도 바로 확인됩니다. 미국과 조선의 사실상 첫 대면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촉발된 신미양요, 첫 만남 아주 우아했답니다. ----------------------------------------> 그 이후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의 지배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우리 뒤통수 때리기. ----------------------------------------> 불과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첫 만남 주먹질 + 카쓰라-태프트 밀약 + 진주만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고 우리 독립운동 지원 ----------------------------------------> + 우리 의사 무시하고 38선 긋고 + 한국전 직전 미 극동방어선 애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 한국전쟁 이후 혈맹. ----------------------------------------> 극에서 극으로 왔다리 갔다리, 냉정하게 파악하길. 한미간의 고작 200년도 안되는 이런 근현대사를 살펴보더라도, ( 수천년의 적 )은 실재하는 실체 없는 그냥 님 취향의 극단적 표현에 불과. 혹이나 반론한다면 명확한 역사적 근거로 수 천년 동안 지속된 짜장과 우리 역사 사이의 오로지 적대적 역사뿐임을 제시하면서 입증하면 됩니다. 단 짜장과 짜장을 정복한 북방민족을 헷갈리게 버무려서 개나 소나 다 짜장이라고 우기는 것 아닌 정통 짜장을 잘 선별해서 해보길. 아마도 불가능함을 바로 알게 될 것.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kzbin.info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kzbin.info/www/bejne/bp3HoqKiha98fZI The British Occupation of Japan -------------------------------------------->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오스트리아-일본에 대한 연합군 분할 점령 관련 내용. --------------------------------------------> 유럽에선 전범국이 미영프소 4토막 분할 점령되었지만, 극동에선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미소 2토막 나눠 먹기. --------------------------------------------> 전범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 계획안이 어떻게 사실상 거의 미국 단일 점령에 가깝게 ( 영국이 약간 점령하는 형태 ) --------------------------------------------> 바뀌는지 보길. 소련의 일본 홋카이도-혼슈북부 점령 철회 + 영국의 일본 점령지 축소 + 중국의 일본 점령지 0화 한국전쟁은 외세의 역활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 오스트리아는 4개국 신탁통치 후 영세 중립 선언, 하지만 ---------------------------------------------> 오스트리아는 내용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친서방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된. 그 이유는 ---------------------------------------------> 미국-영국-프랑스군의 점령과 서방측 원조가 친소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 + 현명한 오스트리아 내부 타협 때문. ---------------------------------------------> 한반도의 좌우익은 정파적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해 자발적 내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오스트리아 좌우익은 달랐던.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전쟁 막판 끝내기는 인류 역사상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악수, 최악의 오판 삽질. ---------------------------------------------> 사실상 태평양 전쟁 승패 결정된 상태에서, ---------------------------------------------> 미군 희생 좀 더 줄여보겠다고 +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청 + 소련은 형식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 과장 아주 아주 조금 보태 일본 항복 1초 전에 + ( 게다가 태평양 전쟁 기여도 0 상태에서 ) + 만주 전체와 한반도 절반 점령. ---------------------------------------------> 소련 입장에선 그냥 굴러 들어온 떡. ---------------------------------------------> 만주만 점령해도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의 승리를 결정지을 조건에 + 추가로 한반도 절반 떼어준다는데 왜 거부합니까? 덜떨어진 미국이었지만 자신들이 오키나와에서 악전고투 하던 그 무렵, 미국의 요청으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무혈 점령 가능성 뒤늦게 깨닫고, --------------------------------------------------------------------> 허겁지겁 수정안 즉 38선 경계로 북의 소련군 점령을 용인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는 잔머리. --------------------------------------------------------------------> 소련군이 만주 점령한 그 순간 --------------------------->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 승리, 장개석 패배 확정. --------------------------------------------------------------------> 소련이 만주 점령, 일본군 무장 해제만 하겠습니까? --------------------------------------------------------------------> 소련군이 무장 해제한 일본군 무기는 사실상 모택동에 가는 겁니다. --------------------------------------------------------------------> 또한 소련군이 점령한 만주는 모택동이 대륙 전체를 노리는 배후 강력한 거점으로 변하는. -------------------------------> 저렇게 허접했던 미국, 아마도 소련이 오케이 해준 순간 --------------------> 한반도 절반은 건졌다면서 속으로 만만세 외쳤을 것. 1945년 당시 세계 유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정상적인 판단했다면 이랬어야 하는 겁니다. ---------------------> 소련에 대한 강력 경고, 대일본전 지원 빌미로 감히 만주-한반도 발 내딛지 말라!!! --------------------------------------------------------------------------------------------------------> 태평양 전쟁 기여도 0에 + 일본과 소일-불가및 맺은 주제에 감히 나대지 마라!!! --------------------------------------------------------------------------------------------------------> 혹이라도 일본 항복 밥상에 숟가락 얹는 꼼수 부리면 핵무기 사용해서라도 막겠다!!!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소련이 거부권 행사했다면 불가능, 왜 소련이 안보리 불참 기권했는지도 냉정히 생각해보길. -------------------------------------------------> 독소전에서 우랄 서부 소련의 핵심 유럽 지역이 사실상 완전 토초화 + 민간인 포함 거의 2천만 인명 피해 상태에서 -------------------------------------------------> 강력하지만 덜떨어진 미국을 극동의 국지전에 몰아 넣고,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확실하게 치려고 의도적으로 기권한 것. -------------------------------------------------> 미국이 한국전쟁에 붙들린 사이에 소련은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완성했음을 깨닫길. ------------------------------------------------->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장에서 소련-스탈린이 정말 쫄아서? 멍 때리다 안보리 출석 못해 유엔군 파견??? ------------------------------------------------->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 일소 불가침 맺었던 음흉한 넘이기에 순진하게 멍 때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일 영국 없이 미국 단독으로 유럽에서 종전 협상했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완벽하게 당했을 것. -------------------------------------------------> 영국은 1944년 그리스에 상륙, 공산 빨치산 토벌 + 티토 유고 지원하며 반소 독자 노선 걷도록 유도. -------------------------------------------------> 미국은 유럽에서도 그저 그저 그저 ... 하루라도 아니 1초라도 빨리 미 본토로 돌아가려 정신 넋 빠졌던. -------------------------------------------------> 그러다 전후 막상 철의 장막 현실 보고서, 뒤늦게 처칠 초청해서 철의 장막 연설 들으며 박수쳤던 뒤늦은 수습. 또한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따라서 한국전 이후 한미 관계만 보며,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위험.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남장권영
@남장권영 10 ай бұрын
선관위가 점령한 나라
@1235K-q8t
@1235K-q8t 10 ай бұрын
중국참전의 중국한데 유일한 이점 은 모택동 유일한 정상적인 아들을 없애주었다.아님 북조선같은 나라 하나 더생김
@fierwalt
@fierwalt 10 ай бұрын
생각해보니 북한이 자유진영이었다면 만주가 생각보다 많이 위험했겠네요.
@갈천-c4v
@갈천-c4v 7 ай бұрын
이해가 안가네요. 어째서 한국전쟁 스탈린 유도설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을 하지 않는거죠? 스탈린이 8.27일 체코대통령 고트발트에게 보낸 편지. 왜 언급하지 않나요?
@shurike37
@shurike37 10 ай бұрын
중국이 어쩔 수 없이 625에 참전했다? 러시아가 어쩔수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이런 논리 말하는 자들은 2차대전 독일이 어쩔수 없이 유태인 학살하고 전쟁일으켰다고 주장하는 건가?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전쟁 일으켰다고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전쟁 일으키는 나라와 민족은 없어. 지들 욕심 때문에 일으키는 거지
@johnpark6034
@johnpark6034 10 ай бұрын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하고 국경을 맞대야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는데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바로 눈앞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을텐데 , 가설이지만 그때 중공군이 참전안한 상황에서 국군하고 미군이 과연 압록강에서 멈췄을까요 ? 중공을 옹호하는건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나라가 적이 턱밑까지 올라와서 칼을 겨누는데 가만히 있을수 있나요
@cestlavie0813
@cestlavie0813 10 ай бұрын
순망치한
@장환영-k6x
@장환영-k6x 10 ай бұрын
재레식 무기는 한국이 세계 최강 수준 이다.. 문제는 핵 이다..중국. 러시아는 핵 빼면 한국에게 대패 한다..대한민국은 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copland6268
@copland6268 5 ай бұрын
중국 짱난다
@DarkFuse
@DarkFuse 10 ай бұрын
몬가..급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프로그램이 급하게 뛰는 느낌? 전력질주를 50분중 어떤 부분에서 막 달리는 느낌? 왜 여유가 사라진 느낌일까;;
@박우용-r7f
@박우용-r7f 10 ай бұрын
우리심소령님은 이제 중령되실때되지않았나요 ㅋ
@user-nambook4chunlitong-il
@user-nambook4chunlitong-il 10 ай бұрын
일제때 한민족이 만주에서 1917년경 독립국 건설하려고도 했는데 625전쟁때 북한주민이 남한으로 인구절반이 망명 한 것처럼 일제때 한민족이 한반도의 인구 절반만 이라도 만주 이주 했으면 식량과 병력 문제가 해결되어 만주에서 독립운동 가능 할 수도 있었는데 여진 청나라가 1912년 망하고 일제의 만주국이 1932년에 세워지는 20년간 만주는 중국군벌이 있었으나 사실상 무주공산 으로 한민족 독립국 건설이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시기를 놓쳐 무산 되었다.일제패망후인 1945년 8월20일 경 이나 더 후일에 만주에 사는 한민족이 간도임시정부를 세워 남한과 교류 하는데 남한의 방첩대가 현요동반도 까지 배를 타고 정보교류 했다고 하고 남한과 간도임시정부가 공산화 되어가는 북한을 폭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간도임시정부는 중화민국및 소련과 협정을 맺어 간도를 한민족 이나 한반도에 귀속 되도록 하려고 했으나 요심전투에서 북한에 있다가 만주로 나온 중국공산당의 팔로군과 일부좌익조선족군(은 625전쟁에 북한군 선봉에 섰던 일제때의 중국공산당 휘하의 동북항일연군 소속=소련 장교 되기전의 김일성도 마적및 중국공산당 휘하 였다)과 북한군이 연합해 중화민국군에 승리해 주국공산당이 간도와 만주 차치하면서 간도이머시정부는 배와 비행기로 남한으로 망명 했다고 한다.625전쟁에서 맥아더 장군 주장대로 원폭을 썼으면 당시 미국무부는 만주에 미군기지 설치할 생각 할 장도 였고 무산만 안되었어도 한국은 한반도와 간도나 만주를 통일 할 수도 있었다.세월이 흘러 1990년대에 안기부가 만주의 조선족 사회를 장악 했다는데,지금의 한국 국정원도 다시 만주의 정보를 한류시대를 타고 장악해 친한파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바꿔야 한다.한국 보고 중공이 사드 도입 이나 사드 추가 배치 및 SM-3 를 친중파를 통해 훼방하는 것도 핵강국의 지위가 무력화 되어 재래식 전력으로는 북한을 뛰어넘은 한국과 싸워도 이긴다는 보장을 못하기 때문이고 만주를 한국이 수복할 까봐 그런 것이다.따라서,한국은 한민족시원 이자 발상지인 간도(현 요하동쪽과 송화강 이남)나 만주를 힘덜들이고 통일 하려면 미국의 외교전략에 편승 해야 한다.19세기 후반에 여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과 미국이 우방이나 동맹을 맺지 못하게 하려고 벌인 명분이 갑신정변 이라고 한다.미국과 독자적 외교를 하려고 영어 잘하는 신하들을 살해하고 친일깁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청나라가 개입해 무력화 하고 일본으 이를 구실로 청나라와 전쟁준비를 하게 되고,결국 조선은 청일전쟁→민비시해→대한제국 건국→러일전쟁→대한제국군 해산→간도상실→ 대한제국멸망,을 겪게 된다.근대화 했음에도 실패해 나라가 망한 이유도 있으나 갑신정변 이라는 매국노들이 당시 패권국인 영국 이나 떠오르는 미국과 손을 못잡게 한 것이 멸망의 원인이 된 것이다.대한제국이 건재 했어도 어차피 그레이트게임 상 여진 청나라와 러시아는 멸망이 예고 된 나라들 이라 손잡을 나라들이 못 된다.오늘날에 요것이 중공과 러시아 연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하여,북한정권 붕괴 시켜 한반도통합 하는게 한국이 간도나 만주수복 하는 지름길이 됨,을 기본상식 으로 알아야 한다.어쨌든,이승만이 미국과 외교를 공들여 해온 것이 대한민국 건국(1848.8.15)및 625전쟁에서 공산연합군을 자유민주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 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세화력
@공세화력 10 ай бұрын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은 문화대혁명❤
@센먀락
@센먀락 10 ай бұрын
6.25 전범국 중국, 북한, 러시아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해야 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모닝커피_XD
@모닝커피_XD 10 ай бұрын
👍👍👍
@Courteous0809
@Courteous0809 10 ай бұрын
저런 역사가 있는데도 북진통일을 방해하고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을 죽인 중공군 열병식에 간 대통령과 당이 있었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음 이렇게 최근 역사도 잊었는데 6.25 때야... 우리나라는 참..
@clairehanna9662
@clairehanna9662 8 ай бұрын
keep dreaming🤡
@왕대박-l7n
@왕대박-l7n 10 ай бұрын
다 좋은데...국제정세와 정치 상황에 대한 내용은 전보다 가볍다? 빈약하다라고 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아쉬운??
@게딱지-x3i
@게딱지-x3i 10 ай бұрын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다 차지해 북진통일에 완수하게 되면 중공은 대한민국과 평양원산선의 5배에 달하는 한만국경을 맞대야 하는데 아무리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대치한들 저렇게 긴 전선으로 맞대면 방어에도 굉장한 부담이 되는 상황입니다. 또 미국이 자본주의 한반도를 통해 요동과 만주, 연해주로 진출할 위험도 크고요.
@US.R-g3p
@US.R-g3p Ай бұрын
팩트는 미국이 참전안했으면 중국도 미군청소할라 안왔다는거지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10 ай бұрын
설마 대장정을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같은 거짓조작 책을 보고 떠드는 것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반역입니다.
@scz8333
@scz8333 10 ай бұрын
에드가 스노 건수로 반역 언급??? 공화정 아닌 왕정 시절, 의회 해산 건수로 국왕이 반역죄로 도끼 처형된 냉철 살벌함 안다면 고작 저 정도로 반역 언급 불가능. 최근 북만이 아닌 대한민국도 군 퍼레이드 나섰는데 + 실전 경험 0인 남북의 보여주기 퍼레이드와 비교되는 지난 수 백년 실전 경험 퍼레이드 보길. --------------------------------------->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남북의 현 최고 지도자는 모두 미필이. 북의 그넘 흉내내는 남의 미필이 썬글라스 폼잡기. ---------------------------------------> 하지만 저들의 국왕들은 밴드 오브 브러더스 기원 헨리5세 + 프린스 오브 웨일즈 기원 + 무적함대 격파한 엘리자벳1세 ---------------------------------------> 미합중국의 닉슨 게이트 및 트럼프의 미 의사당 폭력점거 선동, 1600년대 잉글랜드 기준에선 모두 도끼 처형되었을 수도.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셰익스피어 헨리5세, 100년 전쟁 아쟁쿠르 전투 직전, 병력 열세 속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했다는 국왕의 연설 중 일부. ----------------------------------------> 미국이가 저 대사 표절성으로 베껴서 2000년대에 유명한 미 전쟁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 ----------------------------------------> 21세기 현 남북의 미필이 지도자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름을 깨닫길. ( 그리고 반역이란 단어 사용 신중해야. 반역으로 단죄된 이들 보다 단죄한 넘들 중에 어쩌면 진짜 반역의 무리들이 있을 수 있기에. 그리고 에드가 스노, 최소한 그는 그 당시에 험한 중국 오지 기어 들어가 직접 본 경험이라도 있지만 + 님은 100% 주워 듣거나 맘에 든 자료만 취사선택. ) 군 사열, 퍼레이드에서도 영국은 성격이 많이 다르답니다. 군사독재 국가 아닌데도 영국은 수 없이 많은 군 관련 기념비 전사자 추모비가 전국에 널린. 믿기지 않겠지만 해외 파병 후 귀환한 부대의 퍼레이드 사열 단상 위 최고위직은 군인 아닌 민간인 시장. 다른 국가들의 저질 내부 주적질과 달리, 독재 권력을 가장 먼저 타도했기에 군에 대한 확고한 문민 통제 확립. 공화정 아닌 왕정, 아직 어둠이 판치던 1600년대 중반 잉글랜드. 국왕이 의회와 티격태격하다 순간 욱해서 의회해산 하고 세금 멋대로 매겼다는 건수 잡혀, ---------------------------------------> 국왕이 반역죄로 도끼로 목 잘려 처형되는 강력한 내부 투쟁으로 영국은 군의 명칭도 매우 특이한. ---------------------------------------> 아직 형식적 입헌군주제라 해공군은 여전히 로열 네이비, 로열 에어포스, 하지만 육군은 브리티시 아미. ---------------------------------------> 내부 독재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 있는 육군에 대한 군통수권이 국가 원수 개인 아닌 의회에 있음을 선언. 내부 주적질에도 레벨 차이가 있는 겁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 군이 감히 쿠데타 꿈도 꿀 수 없는 공동체 분위기에 대해 소개합니다. 영국에서 파생된 미국 역시 영국과 유사한 군사 문화, 2차대전 때 패튼이 의무병동에서 겁쟁이 사병이라며 사병 뺨싸대기 날렸다 언론에 보도되고 세계대전 상황에서 해당 사병과 부대에 공개 사과 후 경질되는 일도 벌어지는. 1. GUARDSMEN'S FAREWELL TO OLD TED :1965년 1차대전 참전 후 부대에서 50년간 음료 판매했던 노병 은퇴식 kzbin.info/www/bejne/ppzJfpapiq6Abc0 : 나이 80이 넘어 스스로 은퇴, 사열 후 만세 외쳐주는 부대원들 저 노인이 부대에서 차와 음료를 판매하는 푸드 트럭에는 1차대전 참전했던 전투들 이름이 새겨져 있군요. 장군들, 높은 사람들만 부대로 부터 사열받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부대원들의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군요. 나치 독일군이 아무리 막강했다고 해도, 이런 군인들을 상대로 전쟁에서 최종 승리할 자격은 없는 것일테고. 2. The Highlanders Royal Regiment of Scotland homecoming parade through Aberdeen Sept 2017 - 4K kzbin.info/www/bejne/sJvNXmlqfN6rZpI : 뒷 부분 무장하고 실제 전투 순찰 대형, 경장갑 차량도. 3. The Highlanders Homecoming Parade : 2014 은퇴한 노병이 사열받고, 전역 군인들도 함께 행진에 참여. kzbin.info/www/bejne/o3aZlH2AhqZ2fbc 4. Ipswich Honours Suffolks Aka Suffolk Regiment In Ipswich (1953) : 1953 말레이 공산 반군과 교전 후 귀국 kzbin.info/www/bejne/nqC3YWuVqqiqppY : 이 부대 출신 1차대전 노병 퇴역 군인이 사열받음. 영국은 지난 수 백년 간 거의 쉬지 않고 전투 중이죠. 부대를 순환시키며 언제나 지구촌 어디선가 전투 수행. 순환 배치 마치고 귀국한 부대들은 자신들의 부대가 있는 도시에서 퍼레이드를 합니다. 조금 오래 된 부대들은 100년 아닌 100년 단위의 역사를 가졌고. 육군의 경우 대개 지역에 기반한 부대. 그래서 그 부대가 전쟁 파병될 경우, 주민들 가족 중 전사자 부상자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영국은 군사독재 국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전쟁 추모비, 참전군인 동상들이 많죠. 2번, 3번 동영상은 최근의 아프카니스탄 또는 다른 중동 지역에서 전투 직후 귀국한 군인들로 구독일군, 구소련군, 현러시아군 등과 같은 각 잡히고 철두철미한 헬마치와는 다른 느낌의 행진. 전장에서 실제 전투하는 군인들에게 각과 절도 안맞는다고 무시하는 이도 없죠. 실제 전투력과는 별개이니. --------------------------> 실전 경험 거의 없는 국가 군 군인들이 몇 주, 몇 달 개고생 각 절도 잡는 연습 후 퍼레이드 아닌 --------------------------> 실제 전쟁터에서 전투 마치고 막 귀국한 군인들의 퍼레이드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4번 영상은 1953년 말레이에서 3년간 임무 마치고 귀환 퍼레이드. 우리 한국전 때 말레이에서도 교전했군요. 찾아보면 분명 한국전쟁 후 귀환한 부대들의 영상도 있기는 있을 겁니다. 시민들이 전투 후 귀국한 군인들을 맞이하는 모습, 군국주의의 열광적 환호와 분위기 다른. 일반 시민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어린 소년들이 열광하는 모습과 대비된, 차분하지만 따뜻한 분위기. 영국과 미국의 군과 시민들 사이의 관계는 지금만이 아니라 나치독일 등장 전 오래 전 부터 이미 저랬죠. 군이 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의회나 시민이 새로운 저항군을 조직해 투쟁한 역사 전통 때문이겠죠. 장군 크롬웰이 군을 동원해 국왕을 타도한 것이 아니라, 의회가 해산당하자 의원이었던 크롬웰이 저항군을 만들고 왕정을 무너뜨렸고, 북미 식민지에서도 시민들이 저항하며 혁명군이 조직되고 독립을 쟁취했기에 군이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죠. 퍼레이드 보면 사열단에 높은 계급의 현역 군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간인도 있는데 아마도 시장일 것. 과거 내전 당시 저항군의 지도자는 대체로 마을의 수장이었을테니. 경우에 따라선 그 부대 출신의 예비역 노병이 사열단에 서기도 합니다. 미국 조차도 보기 힘든 모습. 미국은 국토가 넓어 주둔하는 마을 도시 출신 위주로 부대가 편성되지 않아. ---------------------------> 영상 자세히 보면 사열단의 최고위직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 실전 경험 별로 없는 허세 가득한 군의 사열단 위, 찬란한 별들만 판치는 것과 대비. --------------------------->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대학총장 교수 복장 비슷한 옷의 민간인, 아마 주둔 도시 시장일 것. 저런 모습이 바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형일 겁니다. 저랬기에 알렉산더-카이사르-징키즈칸-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영웅 없이도 사상 최대의 제국과 미국 건국이 가능했던.
@우문식-k6b
@우문식-k6b 10 ай бұрын
걱정마십쇼 ㅋㅋㅋ 에드거 스노 이 양반 비판 받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ㅋㅋ.. 그거랑 별개로 저 대장정 자체의 경이함은 그냥 놀랍긴하죠.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10 ай бұрын
@@우문식-k6b 대장정은 그냥 패주 과정의 온갖 악행들이 미화되고 경이적이고 놀라운 것이라고 오도되어 있죠. 스노 같은 자들에 의해서ㅋ
@hihappy82
@hihappy82 10 ай бұрын
샤를은 저기서 하는게 없누
@tairizhao5674
@tairizhao5674 8 ай бұрын
역사공부 더해라.
@hero-fc3ic
@hero-fc3ic 10 ай бұрын
저때 일본 때려잡을 때처럼 공중전으로 중국을 초전박살 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듯 미국은 자국의 위협을 감수하고 북중러 상대로 핵전쟁을 감당할수 없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aaaa-v2c4d
@aaaa-v2c4d 9 ай бұрын
모우저뚱이라고 해야 정확한 발음입니다
@parkmason
@parkmason 10 ай бұрын
중국의 혁명동지들한테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oleud
@oleud 10 ай бұрын
맥아더 너무나댓어
@경걸김-q6k
@경걸김-q6k 10 ай бұрын
12.12. 해주세요 난정치적아니예요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10 ай бұрын
6,70년대는 자유주의 열풍이 아니라 네오막시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입니다. 68혁명에서 보듯이. 공산주의의 열풍이라면서 어떻게 자유주의가 되나요. 심소령님 군인인데도 역사의식 정치철학이 오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슬쩍슬쩍 보이네요.
@우문식-k6b
@우문식-k6b 10 ай бұрын
굳이 심소령님 변호를 해드리자면 사회자유주의라고 한다면야...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적확한 표현이 아니긴 하죠. 군인이시니까, 특히 군사학쪽이시니 정치 철학적 계보 정리는 좀 러프하실 수도 있죠 뭐~ 그리고 "공산주의 열풍이라면서 어떻게 자유주의가 되나요" 이부분도 좀 오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이 말한 68혁명이 그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인 '신좌파'가 있는데요 뭐.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10 ай бұрын
@@우문식-k6b 공산주의 열풍이라는 말은 방송내용중에 심소령의 워딩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심소령이 자유주의 시대라고 멘트를 했구요. 그래서 지적한 것입니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란 것은 없습니다. 따틋한 아메리카노, 로크적 루소주의처럼요. 68은 마르쿠제에서 샤르트르로 이어지는 네오막시즘 즉 반자유주의 사조입니다. 그러니까 샤르트르와 반대편 자유주의자 레이몽 아롱이 그렇게 싸웠죠. 해체주의를 자유주의로 오도되어 있죠. 리버럴이라고 하지만 좌파의 용어혼란 수법이고 굳이 거짓에 가담해줄 땐 서구에서는 네오리버럴과 클래식리버럴로 구분하죠.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 좌익 사회주의와 우익 자유주의인 것이죠. 그냥 해체주의와 자유주의로 부르는 것이 적확합니다.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10 ай бұрын
@@우문식-k6b 군인이면 최소한 본인이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국가 국민을 지켜야하는지 알아야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군인이면. 자유민주주의 사회계약의 국가 군인이 반자유주의로 부터 나라를 지키고 공산주의 막시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로 부터 지켜야죠. 그런데 모택동을 빠는 네오막시즘과 자유주의를 혼동한다? 그래서 지적하는 겁니다. 몰라서 그렇더라도 만약 그렇다면 반역입니다. 그것도 군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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