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물현대사 - 장준하 1부, 민족주의자의 길 / KBS 20040109 방송

  Рет қаралды 59,383

KBS역사저널 그날

KBS역사저널 그날

Жыл бұрын

1975년 8월17일 58세의 나이로 사망한 장준하의 일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알았고, 평생 그 길을 굽힘없이 걸어갔다. 일제하인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광복군에 들어가기 위해 학도병으로 지원했고, 일본군으로 중국에서 복무중 목숨을 건 대장정을 통해 탈출에 성공,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의 광복군이 됐다.
해방 후 김구 일행과 함께 귀국, 김구의 비서로 있으면서 남북분단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50년대엔 비판적 월간지 ‘사상계’ 발행을 통해 지식인 운동을 주도했으며, 1960-70년대엔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지만, 그동안 의문사의 그늘에 가려 참모습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장준하의 삶. 평생을 민족주의자의 길을 살다 간 장준하의 삶을 2부작으로 제작해 격동의 우리 현대사를 조명해 보고,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1부 ‘민족주의자의 길’에서는 죽음과도 타협하지 않을 만큼 냉철한 순수주의자로 기억되는 장준하의 참모습을 주변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다.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고 당시 대중들에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정신을 일깨우고 학생, 지식인 계층에게는 행동하는 양심의 불길을 당겼던 잡지 ‘사상계’가 어떤 성격과 역할을 한 잡지였는지 알아본다.
또한 아버지의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다 기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테러를 당한 후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30여 년간의 세월동안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계속하다 영구귀국을 선택한 큰아들 장호권씨와 부인 김희숙여사가 가까이서 보고 겪은 장준하의 모습, 학도병으로 끌려간 일본군에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의 광복군에 합류하기까지 장준하가 걸었던 천리 대장정을 장남 장호권씨 그리고 그의 두 딸과 함께 직접 답사해 본다.
인물현대사 26회 - 장준하 1부, 민족주의자의 길 (2004.1.9.방송)
history.kbs.co.kr/

Пікірлер: 173
@user-yd5yf1wb8f
@user-yd5yf1wb8f Жыл бұрын
장 준 하 선생님의 대한 생각이 요 몇 년간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던 차 이 프로를 찿아 보게되었습니다 ' 대의멸친' 하신, 시대의 정신 지주신 영원히 빛나실 !! 감회와 감격의 전율.... 눈에서 무엇이 나오고 있습니다
@user-yd5yf1wb8f
@user-yd5yf1wb8f Жыл бұрын
선생님 시대엔 즉 의문사 그즘은, 어린 소녀기로 막 들어선 시기여서 너무 몰랐던, 소위 성인이라 일컬어진 시절에도 베일, 암막에 가려져 몰랐던, 다만 궁금증과 의문만 품었던... 이번에 확실히 알고는 사지가 찌릿해 오며 너무도 가슴아픈 !! "돌베게" 주문했답니다 아들과 함께 하려고요 고맙습니다.
@user-yd5yf1wb8f
@user-yd5yf1wb8f Жыл бұрын
"돌베게" 보는내내 조바심 떨림 가픈 호흡 긴장으로 달렸습니다 아 ㅡ ! 그 심정 몇마디로 어찌 다 형용 서술하리오 그렇게 세워진 세우신 ....... 아 ㅡ 통탄, 통한이여 ! 이 땅에 선 우리들의 자화상 들 과연 ? 먹먹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것 같은 아픈....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mr.1522
@mr.1522 Жыл бұрын
김구 선생님과 젊은시절을 함께하신 장준하 선생님! 존경합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pparloc
@pparloc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 독재정권하에는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셨던 한국국민의 대부이십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 장준하선생님. RIP
@user-fz9kd7pv8y
@user-fz9kd7pv8y Жыл бұрын
일제때 알본육사 치요노토 슌가와로 일본 장교로 만주국 스끼다부대서 독립군 토벌대엿다 전쟁터로 착출하려니 중공군으로 탈영ㅋㅋ
@user-sq1xx7zm1l
@user-sq1xx7zm1l Жыл бұрын
@@user-fz9kd7pv8y 가서 역사공부 좀 더하고 오시오 학도병으로 김준엽 고대 총장과 함께 일본군을 탈영해서 중공군에 흡수되지 않고 육천리 길을 걸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충칭)에 합류하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이시다 박정희하고 혼동한 듯
@younglee2563
@younglee2563 Жыл бұрын
@@user-fz9kd7pv8y 에휴 ~ 인정하기 싫은거 냐 ?? 한심하긴 ㅉ
@jinna3952
@jinna3952 Жыл бұрын
@@user-fz9kd7pv8y 그래도 다카키마사오보다는 훌륭한 분이지 안그래? ㅎ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bonghanyun2028
@bonghanyun2028 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장 준하 선생님을 정신적으로 따르며 제 인생의 후반기를 눈물로 삽니다. 존경하며, 그 분의 정신이 우리 후손들에게 굳건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같이 못 해드린 죄를 부끄러워합니다. 죽는 날까지 그 분의 얼로 살겠습니다..
@hyejapoling1172
@hyejapoling1172 Жыл бұрын
고등학교 시절 자취하는 반찬값줄여서 사상계를 달마다 사면서 장준하선생님을 존경하고 애국자로 사랑했는데,,,,, 누가죽였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지…….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haeyonbrandstetter-lu8ph
@haeyonbrandstetter-lu8ph Жыл бұрын
왜 살인자 이룸 발포 기피하세요!
@The_Notorious_B.I.G
@The_Notorious_B.I.G 11 ай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반공 기조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멸공
@user-ds1ux6vt2v
@user-ds1ux6vt2v 10 ай бұрын
저희 집안 할아버님이신데,,, 너무 통탄스럽습니다 너무나 강직하셨어요
@user-ih7sf2if9h
@user-ih7sf2if9h 10 ай бұрын
@@The_Notorious_B.I.G 머리에 뭐가 들었소.밥이 아깝소이다.
@user-yu3un1bn7s
@user-yu3un1bn7s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 이시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 아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ib8tt6xg1b
@user-ib8tt6xg1b Жыл бұрын
고마워요 ! 😄
@byungsikkim306
@byungsikkim306 9 ай бұрын
장준하선생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보수입니다.
@ensanglee7995
@ensanglee7995 Жыл бұрын
유신 선포후에 대통령에게 유신의 부당함에 대해 서한을 보내신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서한을 보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절 이었습니다. 혹, 이일로 미움을 받아 약사봉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이 하신것은 아닌지.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dkflxoqkd2000
@dkflxoqkd2000 Жыл бұрын
프랑스가 드골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듯.... 우리도 해방 이후 김구나 장준하 같은 분들이 지도자가 되었더라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인데 ㅠ
@andre2016
@andre2016 Жыл бұрын
이승만이 없었다면 당연히 공산주의로 통일 되었겠죠.깅구는 48년부터 김일성의 주장에 동조하며 단선단정을 끝까지 반대하다 열혈반공청년이며 김구의 한독당원인 안두희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김구는 독립운동가이나 자유대한민국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입니다. 육이오 동란시 임정요인들 김규식 엄항섭 조소앙등 쟁쟁한 인사들이 피난하지않고 서울에 있다가 김일성에게 모심을 당하여 북으로 갔으니 김구도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육천리 대장정끝에 꿈에그리던 중경임시정부에 도착하옇으나 파벌싸움을 일삼는 분열된 임정의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장준하 선생이 돌베게에서 하신 말씀 ㅡ 다시 일본군 전투기 조종사가되어 중경임시정부에 제일먼저 폭격을 하고싶다고 했으니 임시정부 작태가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알수있죠
@user-lc5ot7mm1e
@user-lc5ot7mm1e 10 ай бұрын
지금....... 이 21세기에 역사의수레바퀴가.... 꺼꾸로가고있습니다! 이시대에 진정 이런 정신적인 분이 지금 필요합니다! 진정지금 ...... 필요한... 이런분... 안계신지요!
@user-qs3xc4ti1i
@user-qs3xc4ti1i Жыл бұрын
나는 장선생님을 초대하여 20여명이 직접 강연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때 상당한 감 동을 받은 바 있다 몇년 후 장선생은 등산갔다가 돌아 기셨다 타살설이 많았다
@cyc1749
@cyc1749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의 거룩한 뜻 계승하겠 습니다
@user-rx2sz4ew6k
@user-rx2sz4ew6k Жыл бұрын
뵌것 만으로도 영광이지요
@yeonkkot
@yeonkkot Жыл бұрын
2022년 바로 지금, 나라를 걱정하는 혹은 절망하여 뉴스도 보지 않는 많은 분들께, 특히 민주당의 심약하고 기회주의적인 기득권싸움에 몰두하는 의원들에게 꼭 이 영상을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국힘당에겐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 시점에 장준하 선생을 다시만나게 해준 kbs에게 감사하며, 문성근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더 신뢰가 갑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pp9zt3wz2h
@user-pp9zt3wz2h 2 ай бұрын
수박운운하는 40대 영포티 ㅋㅋㅋ
@Lee-sv4yi
@Lee-sv4yi Жыл бұрын
나는 장준하선생 실물을 직접 뵈었습니다 나의 친형님같은 분이 장준하 선생님 비서실장 ? 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yy2jh9qx8l
@user-yy2jh9qx8l Жыл бұрын
사상은 좋지만 비현실적인 종북 좌파사상에 억메여 안타까울뿐이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bd6mg6yh6j
@user-bd6mg6yh6j Жыл бұрын
장준하선생님은민족에지도자임니다
@VivaKorea815
@VivaKorea815 Жыл бұрын
여명의 눈동자 장하림의 모티브 장하림은 장준하 선생님과 차일혁 경감을 모델로 만들어진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VivaKorea815
@VivaKorea815 Жыл бұрын
@@user-ws6cu3sp1u 강제징집이 없었다고요? 진담이심? 우리 외조부께서 강제 학병징집 당했다가 탈출하셨는데?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개소리작작해라 한번만 더 내글을 지운다면 그때는 정말 골로 가시는수가 있다 분명히 경고했다 학병(100%지원)과 징병은 분명히 별개의 제도라고 얘기했다
@user-vz5jv9ev3b
@user-vz5jv9ev3b Ай бұрын
국민의 대표방송 kbs에서 현재는 만나면좋은친구MBC 좋구나 MBC
@user-pi2ry2uf7f
@user-pi2ry2uf7f 9 ай бұрын
장 준 하 선생님 방송 감사합니다 배기성 문성근 영원하리나 ❤
@yayoimimi
@yayoimimi Жыл бұрын
돌베게 장준하
@user-np2dz5ok8b
@user-np2dz5ok8b Жыл бұрын
장준하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열사님들에 한없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자그마한 일이라도 합니다.
@doroshi99
@doroshi99 Жыл бұрын
태생부터 뒤틀린 이 나라에서 정의를 바라는건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것입니다.민족바라기,민주바라기 많은분들이 이 똥통같은 쓰레기통에 꽃을피우고 향기를 내고자 평생을 투신하셨지만, 바탕이 똥통인곳에서는 똥냄새밖에 날 수가 없어요. 이 희망없는 길을 계속 걸어가는 많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uq8si1jt2n
@user-uq8si1jt2n Жыл бұрын
소가 웃을 일이지. 추락사. 각본이 있겠지. 누군가는 미소를 띄었겠지. 계획대로 했겠지. 그의 길,자취를 더듬으면 알겠지.
@user-jz1nf2dv3r
@user-jz1nf2dv3r Жыл бұрын
김경재가 왜? 장준하 선생님께 죄송하네요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bd6mg6yh6j
@user-bd6mg6yh6j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근대사에서가장큰별옂씁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jayk3784
@jayk3784 Жыл бұрын
대단한분 임니다
@user-nj5op4sr1b
@user-nj5op4sr1b Жыл бұрын
역사를 이끌어 가야할 분이 셨는데 참으로 아까웠습니다. 결국 박정희에게 암살 당하셔서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장준하 평전을 읽고......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bq1yk7jf9d
@user-bq1yk7jf9d Жыл бұрын
소히 민족주의니 민족주의자니 하는 어휘가 근자에는 왠지 가슴에 울림이 덜하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얼마나 전횡을 휘두르고 국민에 끼친 폐해가 만만치않은것 세계적으로나 국내외적으로 민족주의자의 어두운면을 얼마나 목도하고 있는가 한반도의 진정한 화평시대는 정녕 꿈이련가
@1330m
@1330m 9 ай бұрын
4.19에 영향준 양대 매체 [새벽] [사상계] 5.16이후 사상계는 계속 저항 포지션이었고 새벽 진영은 대체로 정권과 공조했다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Жыл бұрын
장준하선생 진짜 궁금하다 🤔?!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zz2vl7jm4y
@user-zz2vl7jm4y Жыл бұрын
훌룡한 선생님 이 타살 당하셨다니 너무 참당합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진짜궁금합니다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난 안궁금해
@johnathanha9340
@johnathanha9340 Жыл бұрын
같은 국토 개발 계획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먼저, 장준하씨는 국민을 먼저 중시했습니다. 아멘+
@hyejapoling1172
@hyejapoling1172 Жыл бұрын
웃기느소리!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ws8eg2de9t
@user-ws8eg2de9t Жыл бұрын
경제발전이 국민발전이지요 두분다 훌륭한분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user-ws8eg2de9t 무엇보다도 최기일은 일본군의 지원입대를 거부하고 노동어용령에 따라서 강제노동을 떠났다 합니다 따라서 장준하가 분명 의식있는 청년이라면 최기일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준하는 1960년 419후 들어선 민주당 장면 정권하에서 국토개발건설단장이라는 차관급 직책을 맡고 있다가 516이 일어나자 재빨리 쿠데타를 지지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것은 쿠데타군이 처음에 권력을 장악한 후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추대한후 그의 명의로 각종 포고문 성명서 보도자료 등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즉 장준하는 장도영이 쿠데타를 계획한 지도자로 착각하고 그것을 지지한 것인데 장도영은 장준하와 같은 신의주 출신의 동향출신으로서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입니다 그래서 장준하는 쿠데타를 지지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쿠데타 세력의 내분이 일어나 장도영이 박정희에게 밀려나자 비로소 장준하는 180도 돌변하여 쿠데타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장준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습니다
@chulsookim6332
@chulsookim6332 19 күн бұрын
'장준하'의 유명한 말.. ["우리는 이곳(임시정부)에 오지 않았더라면 멀리에서 여러 어른들을 계속 존경하고 사모하면서 이보다 더 행복했을 겁니다. 저 자신은 물론 우리 젊은 동지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여기를 빨리 떠나 다시 일본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지금의 제 심정입니다. 제가 만약 일본군에 돌아간다면 꼭 그들의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본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저는 중경 폭격을 지원하여 여기 임정의 청사에 폭탄을 투하하고 싶습니다.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 하면서 겨루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 많은 사선을 넘으며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하여 죽을 자리를 찾자는 것이지 결코 여러 선배들이 일삼고 있는 당쟁의 이용물이 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으로 저의 말씀을 맺습니다." - (돌베개 162p)
@산-h4g
@산-h4g Жыл бұрын
ㅈㅏㅇ준하 선생님 사망사건의 증거는 부족하지만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중정의 짓임을.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ek5zj5pr9x
@user-ek5zj5pr9x Жыл бұрын
한글자막의 70%이상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잘못 나타나는 데, 이를 바로 잡는 방법 : 1) 억지로 철자법에 맞추기보다 가) 소리나는 대로 나) 의미만 통하면 되도록 하면 자동번역이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2) 언어에 관심을 갖는 정부나 공공단체가 관심을 갖고 더욱 참여하고 유튜브를 도와 주시길 건의 합니다. 3) 유튜브의 역할이 기존 언론의 90% 이상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4) 내용 전달의 정확함이 개선되도록 5) 기존 철자법에 매이지 않길 건의하며. 5) 불필요한 어미, 접두사 형용사 부사도 대폭 줄여 정보/내용의 충실도 Integrity/ Fidelity만 만족시키면 6) 유튜브든 계시자든 정보전달의 시간과 공간을 대폭 갖게 될 것.
@user-uc4vu5oj6g
@user-uc4vu5oj6g Жыл бұрын
장준하님을 정준하로밧넥ㅋㄲ
@user-qs4jq3lh7k
@user-qs4jq3lh7k Жыл бұрын
♥♥♥♥♥~난 전투기 무장사 역임~ ♥ 미사일~폭탄을~
@user-ku6qp2ob4f
@user-ku6qp2ob4f 10 ай бұрын
김경재 편집좀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Жыл бұрын
저때 장준하는 함석헌과 같이 본인의 사상계에서 군사쿠데타 만이 혼란정국을 해결하고 동시 근대화를 이룰수가 있다고 섰는데 그렇게 일어난게 바로 5.16 군사혁명 이죠.
@user-su5yo5pp1z
@user-su5yo5pp1z Жыл бұрын
어디서 어줍짢게 듣고와서ㅋㅋ 5.16 쿠데타를 어디 혁명이라하노 그게 혁명이라 말년에 신재순 만지다가 김재규 열사한테 뇌수 터져죽었누?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Жыл бұрын
@@user-su5yo5pp1z 김쟤규? 걔도 민주주의 탄압하며 부정축재한 놈이잖냐? 그런놈이 자기가 정승화와 손잡아서 정권 잡으려고 자기 상전인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고 나서 지 사형 당하려는거 감형 받으려고 개구라 깐게 전부임.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lj3wq9gb7q
@user-lj3wq9gb7q Жыл бұрын
장오근씨는 더불어 가짜 민주당을 같은 편으로 생각하지 마시라. 장준하씨의 진정한 민주가 퇴색될까 두렵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ps6ju1cn4q
@user-ps6ju1cn4q Жыл бұрын
김경재씨 정신찬리시지요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9월달에유튜브에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니가 월급주는것도 아닌데 왜 사람을 시켜먹고 부려먹냐
@user-tc4eh8oc3i
@user-tc4eh8oc3i 3 ай бұрын
유인촌 역사스폐셜 짜르고 인물현대사 누군 줄 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학이네 ㅋㅋ
@7788c
@7788c Жыл бұрын
이승만빼고.....진짜 싹다 암살당했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janekim5679
@janekim5679 Жыл бұрын
어떻게 그렇게 암살했으며 고등학생이었던 큰아들에게 그런 폭행을 가했을까요?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다음주중으로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니가 찾아보던가 타임머신타고 과거에서 보고와
@user-ku6qp2ob4f
@user-ku6qp2ob4f Жыл бұрын
@cddog4165
@cddog4165 4 ай бұрын
문성근이 나오는거 보니 좌편향이네 안봐도 비디오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너무지지부진합니다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몇시간에 한번씩 댓글 달아버리는 너님은 식충이입니다
@user-qi8fn3ni9f
@user-qi8fn3ni9f Жыл бұрын
위대한 장준하선생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국짐당을 지지할까요??
@younglee2563
@younglee2563 Жыл бұрын
그럴리가요 ?? 민주당 선봉에 계시겠죠
@yeonkkot
@yeonkkot Жыл бұрын
@@younglee2563 민주당 호박들을 엄청 꾸짖고 계시겠죠! 민주당의 어른이 되셨더라면 이런 황당한 정권이 나올 수 없었을텐데.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dd6pn9yp2u
@user-dd6pn9yp2u Жыл бұрын
개비에스도 한몫했잖어 뭔 신분세탁질이야 나가요가족사기단도 못 까는 것들이
@doroshi99
@doroshi99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다음달부터유튜브에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니가 찾아서 올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계속해서소식이없고차일피일미뤄지고있어요
@user-qq7vw5hn1l
@user-qq7vw5hn1l Жыл бұрын
왜 문성근이 진행
@user-ct1nk8qy8v
@user-ct1nk8qy8v Жыл бұрын
문성근 노빠의 대표적인 머리통 아닌가 ... 왜 이런 자가 진행을 맡는가 ??? 장준하선생은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다... kbs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yeonkkot
@yeonkkot Жыл бұрын
뭐가 문젭니까?
@user-ln1tc5cy6s
@user-ln1tc5cy6s Жыл бұрын
지식인으로서의 발상은. 고급적이지 못한것가따
@user-sq1xx7zm1l
@user-sq1xx7zm1l Жыл бұрын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이 고급지다는 얘기 인가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일이너무많이지지부진합니다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지지부진하건 말건 니가 월급주냐?
@gajissa7652
@gajissa7652 Жыл бұрын
kbs는 언론과 지식인들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작금의 언론,지직인들의 편향과 관습적 특권의식은 개탄스럽다 술꾼 윤석열과 콜걸 김건희는 이런분들의 삶을 혜아릴수나 있을까?
@user-vk4zo6pk1w
@user-vk4zo6pk1w 10 ай бұрын
장준하,리영희,백기완,김지하,신영복,김원봉,이육사,홍범도~~~
@user-di3zh9de2o
@user-di3zh9de2o Жыл бұрын
경제관련다큐멘터리극장 2부수출전선25는언제쯤유튜브에올리는것입니까일이너무많이지지부진합니다계속차일피일미뤄지고있습니다많이늦어지고있습니다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지지부진하든 미루든 말든 니가 밥한끼 사주며 부탁이라도 한적있냐?커피라도 한잔사준적있냐
@Yu_ma0815
@Yu_ma0815 Жыл бұрын
@@user-qv9ri2wn7v 시비 ㅈㄴ 걸고 다니네 지가 잘란줄 알고 남들 시비거는거 보소 ㅋㅋㅋ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Жыл бұрын
@@Yu_ma0815 보기는 뭘봐 시키 야
@user-dm3jr1jd3i
@user-dm3jr1jd3i 10 ай бұрын
김경재 전광훈 경재야 어쩌다 그모양이냐?
@user-ss7cb3tq7h
@user-ss7cb3tq7h 28 күн бұрын
문썽건이 믿음이 별로
@damdukbc37
@damdukbc37 Жыл бұрын
이런 분들은 너무 한쪽만 보셔
@user-cy8jj1mp6o
@user-cy8jj1mp6o Жыл бұрын
구국의 영웅인 박정권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자체가 죽을짓을 한것이다 하지만 장준하같은 사람도 필요했다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user-cy8jj1mp6o
@user-cy8jj1mp6o Жыл бұрын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까부는건 계란으로 바위치는거나 마찬가지로 조용이 있는게 살길이었다 독재는 이승만 정권이 했고 박정권은 그런 사소한일에 신경안썼다
@user-yy2jh9qx8l
@user-yy2jh9qx8l Жыл бұрын
민주하운동 했던 대부분은 겉과 속이 다른 조국교수과 같은 이중적인 민주팔이들이 많았다는것이 아쉽다
@younglee2563
@younglee2563 Жыл бұрын
조국교수가 뭐가 이중 인격이냐 ??? ㅉ
@yeonkkot
@yeonkkot Жыл бұрын
겉과 속이 다른 인물들 많지요. 김건희, 한동훈, 이낙연, 김은혜, 김순호, 박준형, 오세훈, 김종필...윤석열은 너무 무식해서 다 보이지요. 조국 전 장관의 겉은 뭐고 속은 뭔데요? 대답해 보세요.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yeonkkot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TV-vd5rv
@TV-vd5rv Жыл бұрын
여기서 조국 교수님이 왜 나와? 조국 교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자가!
@rq9m585
@rq9m585 Жыл бұрын
존나 미화한다! ㅋㅋㅋㅋ
@younglee2563
@younglee2563 Жыл бұрын
미화가 아닌데 ,,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딩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rq9m585
@rq9m585 Жыл бұрын
@@user-ws6cu3sp1u 통양아 요약 좀 해라 너무 길어서 안 읽어! ㅋㅋㅋㅋㅋㅋ
@rq9m585
@rq9m585 Жыл бұрын
@@user-ws6cu3sp1u 이름이 통영인데 본명이냐? 아님 윤이상 처럼 주사파 추종세력이냐? ㅋㅋㅋㅋㅋ
@andre2016
@andre2016 Жыл бұрын
그로벌한 시대에 편협한 민족주의가 그리 중요한가 사상이 달라 민족상잔의 비극과 자신의 가족을 잃은 참담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공산주의로의 민족 통일도 괜찮은 것으로 말하는 장준하의 발언을 이해하기 어렵다
@ddon9102
@ddon9102 Жыл бұрын
큰.틀에서 보면 나레이터 자네도 틀렸고 장씨는 우물안개구리다
@yayoimimi
@yayoimimi Жыл бұрын
돌베게 장준하
@user-ws6cu3sp1u
@user-ws6cu3sp1u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ВОДА В СОЛО
00:20
⚡️КАН АНДРЕЙ⚡️
Рет қаралды 30 МЛН
Inside Out Babies (Inside Out Animation)
00:21
FASH
Рет қаралды 12 МЛН
Задержи дыхание дольше всех!
00:42
Аришнев
Рет қаралды 3,6 МЛН
OBS 특집 '인물현대사, 죽산 조봉암'
53:09
OBS TV
Рет қаралды 4,4 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