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물현대사 - 장준하 2부, 거사와 죽음의 진실 / KBS 20040116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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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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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58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2003년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장준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다시 전개했다. 2003년 말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를 벌였었고, 옛 중앙정보부 시절 장준하 관련 자료의 추가공개를 국가정보원에 요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잡지 ‘사상계’를 통한 실천적 지식인 운동에 이어, 1960-70년대 박정희정권에 맞서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1975년 8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그가 죽음을 전후로 모종의 거사를 준비했었으며, 그것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언도 나왔다.
장준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이고, 그가 계획했었다는 ‘거사’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보부의 장준하에 대한 관찰기록인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를 최초로 공개한다.
■ 그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죽음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 장준하는 산행 도중 사망했다.
당국은 단순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현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시신은 별다른 외상없이 깨끗했고 추락장소는 전문 산악장비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 장준하는 살해됐는가?
29년간 의문은 계속됐다. 그러나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정황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했다. 죽기 18일 전인 7월 29일, 장준하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 유신정권 타도를 위한 거사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그즈음 장준하는 전국을 부지런히 돌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유신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거의 유일한 현실 정치인이었다. 장준하에게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될 민족의 적이었고, 유신정권에게 장준하는 위해분자였다.
■ 최초로 공개되는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
1975년 3월 31일 장준하는 유신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야권 통합을 추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날 중앙정보부는 장준하를 위해분자로 규정짓고 특별감찰활동계획을 수립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입수한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다.
유신이 우려한 장준하의 위해행위는 무엇이었는가?
■ 장준하의 힘 1, 박정희의 천적, 정직 청렴 카리스마의 정치인
일본 관동군 소위였던 박정희와 광복군 대위였던 장준하. 장준하는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항일독립투사의 후광에 도덕적으로도 깨끗했고, 사상계를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함께 했던 장준하의 힘. 그 힘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을 거치며 박정희와 정면으로 맞부닥치게 된다. 장준하는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3천만 국민 모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만은 안 된다“라고 하며 박정희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 장준하의 힘 2, 다양한 사회 세력을 끌어 모으는 조직력
장준하는 7대 국회에 진출해 국방위원을 역임했다. 군에 대해 높은 관심과 애정을 보인 그에게 많은 현역 장성들이 존경을 표했다. 당시 주월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장준하에 대해 ”살았으면 김대중보다 먼저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라고 애석함을 표했다. 1967년과 75년 두 차례 중요 국면에서 장준하는 야권통합을 강력히 추진했다. 군에서부터 재야까지 모두를 엮어내는 조직력과 높은 도덕성을 가진 그는 유신정권에게 위해분자였다.
■ 거사의 실체는 무엇인가?
1975년에 이르러 장준하는 모종의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유신정권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그와 시국을 논의했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기억하는 공통된 이야기다. 하지만 거사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전국적인 반유신성명 발표였다는 주장도 있고, 군부궐기, 민중항쟁과 같은 실력대결이었다는 說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가능성을 광복군에서 언론인으로, 현실 정치인으로 장준하가 키워온 실질적인 힘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의 반증이 위해분자관찰보고서다.
■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장준하의 죽음을 계속 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목격자는 입을 다물고 있고 관련 기관은 근거 문서의 추가공개를 피한다고 보고 있다. 위해분자관찰보고서가 당시 중요한 정황을 증명해 냈듯이 장준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한 사람의 양심선언일수도 있고 한 장의 문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부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의지이다.
인물현대사 27회 - 장준하 2부, 거사와 죽음의 진실 (2004.1.16.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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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296
@yungyealbae1656
@yungyealbae1656 2 жыл бұрын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멍멍아야옹해봐-t9b
@멍멍아야옹해봐-t9b Жыл бұрын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분이 아닌데.. 재야 대통령 장준하선생님. 청년시절부터 돌아가실때까지 한평생을 오직 조국을 위해 걷고 또 걷고 쉬지않고 걸으신분 하늘에서는 편히 쉬세요.
@spy7907
@spy7907 2 жыл бұрын
존경하는 장준하 선생님은 역사를 올바르게 나아갈수 있게 하신 분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민주주의 국가로 나갈수 있게 방향을 잡으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sangyonghan7507
@sangyonghan7507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씨가 뭘남겼나요 ? 새마을 운동할적에 마을길 한번썰었나
@spy7907
@spy7907 2 жыл бұрын
@@sangyonghan7507 완전독재로 갈수도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부국강병의 국가로의 기틀을 닦으셨다고 믿습니다. 견재없는 권력은 부패 합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sangyonghan7507
@sangyonghan7507 2 жыл бұрын
독재 ? 누가 독재 ? 200만명 죽였나요?
@spy7907
@spy7907 2 жыл бұрын
@@sangyonghan7507 이 양반이 나하고 억하심정이 있나 외꼴수통인가? 어디가면 꼰대소리 좀 듣죠 그렇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보다 하세요.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스딸린 모택동 김일성 등 전체주의 독재에 맞서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이승만이 도입하고 박정희가 지켜냈다. 민주주의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수십만 6.25참전용사들이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민주팔이들은 숟가락 얹지마라.
@임형익-y5x
@임형익-y5x 2 жыл бұрын
시대가 지나고 가치가 변해도 진실은 땅속에서 울부짖는 이시대의 거인 장준하! 이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h4g
@산-h4g 2 жыл бұрын
수시 동향 보고를 하루 4번도 했는데 등산길 미행 하다가 절호의 기회를 잡은 정보부가 행동을 했겠지요 어느누가 합니까?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님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정보부가 애국자네요.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정보부가 그렇게 할일없어 장준하 등산 미행하는가요?
@산-h4g
@산-h4g 2 жыл бұрын
@@kyungchanahn65 /박통때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구타와 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던일 정적과 추종자들은 가차없이 여 야 막론하고 폭력정치 했던 박통의 그늘,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godfinger8913
@godfinger8913 2 жыл бұрын
내용을 좀 잘 보고 이해하고 답글을 써라 ㅉㅎㅁ~!!!
@分一李
@分一李 Жыл бұрын
너무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져있는 현재의 권력 정치/ 혼돈 사회~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깊어진다~~ 세상의 빛과 소금인 언론!!! 실체적 진실 보도에 감사!!!
@박경숙-t2x9p
@박경숙-t2x9p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선생님의 업적과 용기 존경스럽고 숙연해 집니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평생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일제때 학병은 백프로 지원제도일뿐 강제적인 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하는 개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장준하는 친구 최기일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분명히 일본군에 지원입대를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최기일은 일본군의 지원입대를 거부하고 노동어용령에 따라서 강제노동을 떠났다 합니다 따라서 장준하가 분명 의식있는 청년이라면 최기일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준하는 1960년 419후 들어선 민주당 장면 정권하에서 국토개발건설단장이라는 차관급 직책을 맡고 있다가 516이 일어나자 재빨리 쿠데타를 찬성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것은 쿠데타군이 처음에 권력을 장악한 후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추대한후 그의 명의로 각종 포고문 성명서 보도자료 등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즉 장준하는 장도영이 쿠데타를 계획한 지도자로 착각하고 그것을 지지한 것인데 장도영은 장준하와 같은 신의주 출신의 동향출신으로서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입니다 그래서 장준하는 쿠데타를 지지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쿠데타 세력의 내분이 일어나 장도영이 박정희에게 밀려나자 비로소 장준하는 180도 돌변하여 쿠데타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장준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이민규-r5d2z
@이민규-r5d2z 2 жыл бұрын
고마워요 ! 😄
@user-mj9mo2ju4o
@user-mj9mo2ju4o 2 жыл бұрын
뒷통수에 오함마로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유골의 흔적이 그대로 있담니다 중정에서 기자나 의혹을 품은 사람들 입막음을 시켰죠 정치살해입니다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잘죽었어 ...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박나자84
@대박나자84 Жыл бұрын
직접보셨나요?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2 жыл бұрын
유신정권 4공화국 5.6공화국 왜 과거의 의문사 사건들이 많았을까 진짜 가해자들 처벌하고싶다 😤😡😠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spy7907
@spy7907 2 жыл бұрын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흐름을 잘 타면 좋은 시대가 열립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억지스럽게 진행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시대 무슨 의문사가 있는가?
@영이맑은사람-w1s
@영이맑은사람-w1s Жыл бұрын
왜~~ 이재맹이 사기사건의 측근 연루자들은 지금까지만 5명이 의문의 자살을 했을까? 진상을 밝혀라, 배후를 알고싶다,ㅋㅋㅋ
@Dellaley
@Dellaley 6 ай бұрын
@@Kim-ig3qq DJ도 일본에서 사고사 당할뻔 한거네ㅋㅋ
@김진원-z9n
@김진원-z9n 2 жыл бұрын
선생님은 진정한 애국자 입니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평생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는것입니다 일제때 학병은 백프로 지원제도일뿐 강제적인 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하는 개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장준하는 친구 최기일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분명히 일본군에 지원입대를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최기일은 일본군의 지원입대를 거부하고 노동어용령에 따라서 강제노동을 떠났다 합니다 따라서 장준하가 분명 의식있는 청년이라면 최기일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준하는 1960년 419후 들어선 민주당 장면 정권하에서 국토개발건설단장이라는 차관급 직책을 맡고 있다가 516이 일어나자 재빨리 쿠데타를 찬성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것은 쿠데타군이 처음에 권력을 장악한 후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추대한후 그의 명의로 각종 포고문 성명서 보도자료 등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즉 장준하는 장도영이 쿠데타를 계획한 지도자로 착각하고 그것을 지지한 것인데 장도영은 장준하와 같은 신의주 출신의 동향출신으로서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입니다 그래서 장준하는 쿠데타를 지지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쿠데타 세력의 내분이 일어나 장도영이 박정희에게 밀려나자 비로소 장준하는 180도 돌변하여 쿠데타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장준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김현수-y9o1o
@김현수-y9o1o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되니다ᆢ
@꽁지-x2n
@꽁지-x2n Жыл бұрын
사모님의 내조도 훌륭하시네요
@redmoon5363
@redmoon5363 2 жыл бұрын
존경할만한 사람은 해방이후 북으로 갔던지 암살 당하고 비명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다죽고 지찔이만 남아 바르게 이 나라가 제대로 갈일이 있겠나...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그러니 국회의원 300명 중에 독립운동 하신분이 1명 이었다는 매우 충격적 이 나라는 친일 혹은 속국이 맞았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이맑은사람-w1s
@영이맑은사람-w1s Жыл бұрын
그래~~ 니말대로 존경할만한 종자들은 다 월북을 했는데, 북괴는 왜 저 모앙 저 꼬라지고? 돼지혈통 김가왕조가 정상이가? 주민들은 굶주림에 영양실조로 죽는게 부럽나? ㅋㅋㅋ
@이동연-c6d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22:30 일본제국의 군대도 부패하긴 아주 부패했죠. 그리고 사무라이들도 조선의 양반 못지않게 부패하며 칼부림을 저질렀죠.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2 жыл бұрын
배후가 누구일까 😨🤔?!
@옹달샘-j7t
@옹달샘-j7t 2 жыл бұрын
박통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다까기 마사오
@yjbk21
@yjbk21 2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절대자
@kwondavid7258
@kwondavid7258 2 жыл бұрын
박통 은 정정당당한 인물이였고 경쟁자 재야의 경재자 재야의 일인자가 ㅈ되고 싶었던 딱한사람 다이주 그건 의심을 왜안할까
@옹달샘-j7t
@옹달샘-j7t 2 жыл бұрын
박통이 안 끼어든곳이 있는가요? 정준하 선생과는 적인데요!..
@김-f2y
@김-f2y 2 жыл бұрын
타살이다.. 바위에서 굴러 떠어졌다?
@이동연-c6d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고 그로인해 시민의식을 발전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다.
@박경일-q2t
@박경일-q2t Жыл бұрын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가치관이 무너지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영이맑은사람-w1s
@영이맑은사람-w1s Жыл бұрын
무슨 가치관? 중공을 흠모하고 북괴를 추종하는 가치관? 그게 정의가? ㅋㅋㅋ
@janekim5679
@janekim5679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 나라 걱정에 편히 쉬지도 못하시겠네요. 그가 풀어놓은 자들의 거짓말에 마음 쓰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본인들이 무슨 말을, 또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진실을-w2j
@진실을-w2j 2 жыл бұрын
친일파외교를했군 장준하는 독립군이었구요~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타꼬레
@스타꼬레 2 жыл бұрын
이거 뭐 거의 중정에서 제거 한거지 뭐 뻔한거 안겠나 더한짓도 했는데
@kindchang
@kindchang 2 жыл бұрын
굉복군 장교 애국자 장준하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일본군 장교 박정희와 대비됩니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montanatony4209
@montanatony4209 2 жыл бұрын
역시 문성근님입니다.
@smileriver4305
@smileriver4305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이야 정말 이나라의 기둥이십니다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중앙정보부 중정 수상하다 😤😡😁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정-j4h
@수정-j4h 2 жыл бұрын
@@Kim-ig3qq 니가 주였구나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수정-j4h 노무현이 둑었데요.
@younglee2563
@younglee2563 2 жыл бұрын
문성근님 너무 반가워요
@이중희-j6z
@이중희-j6z 2 жыл бұрын
좋은 다큐인데요, 한가지 문제가요, 36:23초~36:27초 사이에 윤봉길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폭탄을 던지러 떠나기 전"이라는 대목에서 오류가 난 것이 문제네요.
@함철수-h4u
@함철수-h4u Жыл бұрын
장준하와 김재규는 생긴게 비슷하다. 겉모습이 그러했듯이 마음도 같았으리라. 뚝심. 초연. 담대. 침묵. 그것이 같아 보인다.
@정혁-m4e
@정혁-m4e 2 жыл бұрын
아…. 대한민국……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인물들은 왜이리도 비명횡사를 하시는 이들이 많단 말인가……
@옹달샘-j7t
@옹달샘-j7t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정혁-m4e
@정혁-m4e 2 жыл бұрын
@@옹달샘-j7t 오까모토 미노루를 말하냐~~?? 천황폐하에게 충성맹세를 한다고 외치며 혈서를 쓰고 일본육사를 나와 만주에서 독립군토벌을 하고 해방이후에는 좌익활동하던 형님을 따라 좌익활동을 하다가 발각되니까 동료들을 팔아서 그들은 다 잡혀죽고 혼자 살아 남은 그 배신자를 말하나~~~??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혁-m4e
@정혁-m4e 2 жыл бұрын
@@Kim-ig3qq 님은 장준하 다큐멘터리와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목격자라고 자칭하는 김용환이라는 작자가 어떤 맞지도 않는 말들을 했고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도 좀 살펴보고 그런 소릴 하길 바람~~~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정혁-m4e 그분의 주장은 일관됩니다.
@Phd-gp1kw
@Phd-gp1kw Жыл бұрын
다카키 이거는 김재규의 총에 안뒈졋으면 얼마나 더 흔적도 없이 죽어나갓겟노
@forrestkim3718
@forrestkim3718 2 жыл бұрын
박 정희 대통령의 최대 실책 장준하선생 죽음. 장 준하 선생의 실수는 김 대중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은 것 ! 모두다 경쟁자인것을....
@yellownblue1865
@yellownblue1865 2 жыл бұрын
다까끼 추종자들의 교활함이 엿보이는 댓글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Dellaley
@Dellaley 6 ай бұрын
이미 장준하는 다 포기하고 DJ 찾아간거에요. Dj는 최소 경쟁자는 아니었죠
@커피콩콩-h3y
@커피콩콩-h3y 8 ай бұрын
강동입니다 존경드립니다
@함철수-h4u
@함철수-h4u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 진정 존경스럽다. 박정희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지. 안기부가 아닌 다른 집단이구나. 보안사 인가? 같이 있었던 놈, 그놈이 누구인가? 밀정같은 놈이겠지.
@박병대-c6n
@박병대-c6n Жыл бұрын
차지철 라인이라고 봅니다
@홀릭야구
@홀릭야구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에 군사재판이 없어져야되는 원인중 하나임
@진실을-w2j
@진실을-w2j 2 жыл бұрын
누군가시켜 불러내 타살인거
@350q8
@350q8 2 жыл бұрын
그를 죽게 한 X도 제명에 못살았겠지
@flyhigh-k2612
@flyhigh-k2612 2 жыл бұрын
그 살인자 나라 돈으로 잘 처 먹으며 지금도 그짓거리 하고 삽니다
@수정-j4h
@수정-j4h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helenchoe5970
@helenchoe5970 2 жыл бұрын
@@수정-j4h 🔥 지옥에서 벌받고 있슴
@회사에서헛소리금지
@회사에서헛소리금지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아버지 박성빈이 동학농민운동가였고 형 박상희가 독립운동가였던건 알고나 하는 소리들이냐 ㅋㅋㅋㅋ 친일파 언론에 세뇌된 인간들 에휴 ㅋㅋㅋ
@회사에서헛소리금지
@회사에서헛소리금지 2 жыл бұрын
@@helenchoe5970 1973년 김대중이 일본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아 박정희 정권 엎으려 했던 것은 알고 있냐? 한민통이 일본정부 후원 받고 있었던거 알기나 하냐? 너야말로 100% 알고 말해라 ㅋㅋㅋ 차보륜이 누군지나 알아?
@부산민헤라
@부산민헤라 Ай бұрын
아니 저런분은 혼자 다니시면 안되죠 ㅜㅜ 가족도 못믿어 ㅜㅜ 정말 믿을만한 사람들이랑 같이 다녀야지 헐
@이동연-c6d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25:46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sanglee4443
@sanglee4443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은 애국자며 독제를 맞서 싸운 정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온 과거사를 볼때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염원인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데 가장 열심히 일하시고 지도 하신 최고의 지도자 였습니다. 그분 때문에 오늘의 경제대국을 만들수 있었읍니다.
@회사에서헛소리금지
@회사에서헛소리금지 2 жыл бұрын
귀에 걸으면 귀걸이, 목에 걸으면 목걸이 ㅋㅋㅋ 박정희나 장준하나 쿠데타 기획한 건 똑같잖아 ㅋㅋㅋ 이승만이 선거조작하고 반민특위 해체시키고 그러니까 명분이 생겼던것.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두지-r3y
@김두지-r3y Жыл бұрын
아까운 민주지도자가 유신독재의 희생
@박병대-c6n
@박병대-c6n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유신독재 의 희생
@lithium7722
@lithium7722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선생과 김재규 의사가 같은 뜻으로 유신의 심장을 노렸을 수 있다는걸 알게되었네요. 먼가 여야, 좌우 따위 이데올로기와는 결이 다른 고결함이 느껴집니다.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sangyonghan7507
@sangyonghan7507 2 жыл бұрын
두사람 다 실패한 인생입니다.
@godfinger8913
@godfinger8913 2 жыл бұрын
두사림 다 영웅적이고 성공한 인생입니다
@회사에서헛소리금지
@회사에서헛소리금지 2 жыл бұрын
언론이 사람들 바보 만드네. 김재규가 지 잘못으로 윤필용 불법도청했다가 들켜서 쫓겨난걸 가지고 박정희에게 앙심을 품게된건 알고서 김재규를 의사라고 불러주는 건가요 ㅋㅋㅋㅋ 세뇌된 사람들이 왜이리도 많냐 ㅋㅋㅋ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박 정 희를 아직도 일본의 군인이라고 말하는걸보니 한반도 잔류 일본인의 후예 20만명중 하나가 아닌가싶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철환-d4t
@윤철환-d4t Жыл бұрын
추 미 애 전 현 희 문 성 근 정 청 래 법학박사송영길 몽 치 면 성공 ❤ 이 재 명~~성공
@sunduckan5844
@sunduckan5844 Жыл бұрын
다른 곳에서 죽이고 갖다 놓은 것이지요,,
@jae-koochang7420
@jae-koochang7420 2 жыл бұрын
우리는여,중앙정보부가 아니라 동네 파출소.. 그러면 집 안방에서 부터 오줌 찔찔...
@미움생각노
@미움생각노 Жыл бұрын
군사혁명 인정한 장준하 누가 대중선생은 살았네ㅡ쩝
@조윤국-g8f
@조윤국-g8f 2 жыл бұрын
경제비화시리즈 다큐멘터리극장신화를만든사람들 2부수출전선25시도올려주세요 일이너무많이지지부진합니다 계속차일피일미뤄지고있어요
@한기석-l9t
@한기석-l9t Жыл бұрын
누구일까?
@문연순-u2i
@문연순-u2i Жыл бұрын
조금 전에 오린 내 댓글은 왜 없나요?
@문연순-u2i
@문연순-u2i Жыл бұрын
그날 장준하를 수행했던 비서(골수 반 박정희 사람) 는 4차례나 조사를 받았다 장준하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져서 죽었다고 위협적인 추궁 분위기에서 4번 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죽음을 박통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음모꾼들, 하느님은 왜 침묵하십니까?
@윤신엽-z1k
@윤신엽-z1k 4 ай бұрын
현재 이나라에 민족주의자들이라 칭할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김은섭-j4y
@김은섭-j4y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의 죄업
@하늘의꿈-p1p
@하늘의꿈-p1p 2 жыл бұрын
그럼누가 발설 한건지.. 김대중 만나서..누가 발설을...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그런 자들 많지. 친일파와 그 후손들. 그런 놈들에게 쇠뇌 당한 자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일베 또 나타나셨군. 사실 20% 허위 80% 교묘한 속임수. 당시 천재였다는 이광수 조차 일본이 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뒤질 때 까지 대동아 공영권을 떠들었단다. 장준하 평전이라도 읽어보아라. 일베야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최태영-t6m 누가 허위사실로 사기를 치고 자빠졌는지 모르겠네 개소리를 작작하고 최기일이 쓴 회고록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을 읽고나서 개소리를 계속하기 바란다 그리고 김대중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1971년 대선당시 김대중이 제일야당 신민당 후보로 선출되자 김대중의 정치적 스승이자 천주교 대부였던 장면 전 내각제 총리와 사이가 나빴던 전 대통령 윤보선은 파토를 놓기위해 군소야당 국민당을 창당하여 자신이 직접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자 했다 이때 창당자금이 부족했는데 김대중과 견원지간이었던 장준하가 5천만원(현재 가치로 50억원 정도)을 당에 기부했는데 이영석이 쓴 야당30년에 따르면 이 돈이 바로 중앙정보부가 준 돈으로 보고 있다 즉 당시 야당분열을 노린 박정희의 중앙정보부가 장준하를 통해서 국민당의 창당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김대중을 꺽으려 한것이란 것이다 이게 과연 사실이라면 장준하는 라이벌 김대중을 꺽기위해 중앙정보부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게 됩니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장준하 선생께서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민주주의 소리치면서, 세습독재 김일성 체제는 비판 한마디 없던 장준하..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2차 대전후 한반도 잔류 일본인들이 남한으로 대거 집결 잔류 20만명 이랍디다. 그 많은 일본인이 현재 우리나라 지배세력인데 민주를 외칠만 했죠. 민주당에서 정권을 내주기만 하면 반공이라는 미명으로 북한과 관계끊기와 일본에 아부하는 기본정치를 유도, 국고를 탕진케 하죠 결국, 지배세력만 배불리고 국민은 피폐해진거죠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크-n2i
@현크-n2i Жыл бұрын
장준하 반공주의자인데요... 김원봉 대놓고 판밖힌 공산주의자라고 깎아내렸어요
@문연순-u2i
@문연순-u2i Жыл бұрын
장준하와 함께 갔던 비서(극렬 박정희 반대주의자)는 4차례나 불려가서 위협 조사 받았지만 4번 다 추락사라고 증언했는데 왜 그의 목격증언을 끝끝내 무시하고 암살로 몰아가는가? 수상한 인간들.
@우간다행버스
@우간다행버스 10 ай бұрын
에엥? 아저씨 뇌내망상 그만하세요
@miong-jelhie7507
@miong-jelhie7507 2 жыл бұрын
민족과 국가를 위해 열심이었던 분은 박정희다..
@younglee2563
@younglee2563 2 жыл бұрын
무슨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서인가 ?? 독재자 박정희 너무나 많 은 사람들을 죽였다
@김승훈-w1h
@김승훈-w1h 2 жыл бұрын
친일파.남로당. 색마. 박정희 철저한 기회주의자..
@gadinkang3200
@gadinkang3200 7 ай бұрын
23:20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건 현재 정치수준은 한국이 일본보다 확실히 높다.
@회사에서헛소리금지
@회사에서헛소리금지 2 жыл бұрын
정치적 이유로 과대포장된 사람 중 하나. 8월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고 실제로 2006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가 이루어졌을때 1975년 7월 29일 김대중과 단독대담을 했었다는 것이 밝혀짐. 또한 장준하의 아들 장호권이 인터뷰에서 1971년 수경사 도청사건으로 좌천되었던 김재규와 친했고 쿠데타 가담을 약속했었다고 증언함. 참고로 거사가 있기 1년 전인 1974년 박정부에서 김재규를 다시 불러 건설부장관직을 제시하자 장준하 금방 내팽겨치고 다시 복직함 ㅋㅋㅋㅋㅋㅋ
@babyjoda1880
@babyjoda1880 2 жыл бұрын
6.25때 장선생은 뭐 했는지…광복군에서 군사훈련까지 받았는데…
@younglee2563
@younglee2563 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 지만 ( 사상계) 라는 책에 장준하 선생의 활동이 잘 기록되어 있음
@sabami709
@sabami709 2 жыл бұрын
그땐 그냥 정신없이 피난가셨어요. 대신 동생분이 국군으로 참전하셨다가 실종되셨습니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동현-f2i6s
@김동현-f2i6s 2 жыл бұрын
정희가 제거했다오
@이동연-c6d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19:17 정작 그 박정희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친일 경력을 남로당 경력 만큼이나 흑역사로 여겼죠.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한 독립운동가에게 자신이 친일과 공산주의 경력 이라는 죄를 지었다며 말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친일행위를 부정하거나 인정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수가 없었다고 자기합리화 했던 다른 친일파들에 비하면 양심적이라고 할수있죠.
@lithium7722
@lithium7722 2 жыл бұрын
김재규를 지칭했던거네요.김재규가 조금만 더 치밀했더라면 최초의 반독재 군사혁명으로 기록되고 김재규 의사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였고, 5.6 공화국 군사정권을 겪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요.., 장담은 못하겠는게, 그리 되었으면 하나회가 다시 한번 쿠데타를 계획, 어쩌면 제3 세계의 군부들 처럼 나라를 진짜 작살내었을지도 모르는거 아니였을까 싶기도 해서요.
@이동연-c6d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lithium7722 ㄴㄴ 김재규도 차지철과 별반 다를게 없었음.
@sweetfan3250
@sweetfan3250 2 жыл бұрын
그때는 나라가 니뽕뿐이었어요
@kwondavid7258
@kwondavid7258 2 жыл бұрын
당신 할아버지도 일본이름이 있ㅎ을것 없으면 입학도 직장도 안되는 일본식민지니 그리고 말끝마다 죠죠 그러늘거 참 않좋은버릇 고치세요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그래서 나라꼴이 석 달만에 고꾸라지는 겁니다 총독부관저 다시 짓는다하고 총독부 사진이 세종로 이순신장군 옆에 걸리고…
@조윤국-g8f
@조윤국-g8f 2 жыл бұрын
9월달부터바로유튜브에올리는거맞습니까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 ,그 잘난 주둥아리, 단 한번이라도 북한세습독재 비판한적 있냐?
@김종엽-m8t
@김종엽-m8t Жыл бұрын
한일국교정상화와 한미동맹이 오늘의 자유한국을 우뚝세웠다
@장만금-g3l
@장만금-g3l Жыл бұрын
타살아니가 따보내까타살이내
@sangyonghan7507
@sangyonghan7507 2 жыл бұрын
나의 입에 보리밥이 자유보다 귀중하다. 박정희와 조국근대화를 함께 했더라면...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2 жыл бұрын
유신? 박정희우리한국의 애국대통령! 우리의 단군이시다
@Phd-gp1kw
@Phd-gp1kw Жыл бұрын
단군이 아니라 여대생과 시바스리갈을 사랑하는 하느님이딘
@윤철환-d4t
@윤철환-d4t Жыл бұрын
문 익 환 목사님 장준하선 생님 김대중선생님이재명 문선근선생님 TV 나오세요 이재명 몽치면성공 ❤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사상계 : 퇴보좌파 이념지.
@피니투라-페투치아
@피니투라-페투치아 2 жыл бұрын
학교 다닐 때 들어본 기억이 없지 왜... 공부를 대충해서 그런가 ㅋㅋ;;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jinna3952
@jinna3952 2 жыл бұрын
개돼지들이 참 많아요 ㅎ
@대선최-p9c
@대선최-p9c 2 жыл бұрын
먹는음식을땅에매장하는짖은~죽을만하네
@스몰히스토리
@스몰히스토리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한 불균형 성장, 격차성장이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 도농간의 격차, 학벌격차, 부자와 서민간의 격차, 서울과 지방의 격차, 이로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돼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한국의 격차 문제는 세계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깜짝 놀랄 수준이라는 것) 사실 한국 GDP가 3만불인데 이 정도 나라라면 근로자 평균임금 수준이 300만원은 되야 하는데 일부 소수의 대기업외에는 한참 못 미친다. 월급 3백은 고사하고 근로자의 50%가 2백도 못 되는 게 정부 통계. 일자리 격차 또한 심해서 3D업종과 자영업이 일자리의 대부분이다. 보통 선진국이라면 서비스 업종의 비중이 높은데 한국은 예외라는 것. 지극히 불균형한 경제구조인 것이다. 지금 한국이 남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인지? 미국에서 마사지 등 미국 하류층이 많이 종사하는 3D업종 종사자에는 중국, 태국과 더불어 한국인의 비중이 높다. 일본인은 없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빛좋은 게살구라는 것, 경제성장의 열매를 서민이 받지 못하고 부자만 더욱 부자가 돼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경제발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박정희때로부터 비롯됐고 지금까지 어떤 정부도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rainbowsea9679
@rainbowsea9679 2 жыл бұрын
독점재벌경제의 대표적인 폐해 . . . 통계조작에 의한 단기적경제 . . . 미래세대들의 재산을 미리 끌여 당겨 써버린 사이비경제세력(재벌 및 부정부패관료들. .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극단적 양극화사회 . . . 서로간의 불신이 팽배해 있고 화약고같은 사회 . . . 매일매일이 지옥같은 사회 . . . 토착왜구들은 솎아 내 이제 처벌해야 한다 .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전후 한반도 잔류 일본인 20만명 일본인의 후예가 지배계급이고 조선인의 후예가 피지배계급으로 출산률 0.75 즉, 단체로 자살중인 나라 불평등의 나라
@박찬준-b6l
@박찬준-b6l 2 жыл бұрын
그건 자본주의의 문제입니다요 빈부격차 자본주의 단점이죠 이걸 만회위해 좌파 복지정책도 받아들이는 각 정부들이 하고 잇지요 미국은 더 심할걸요? 영국 프랑스도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몇은 몇천억 누구는 백만원 거는 돈 쪼금만 없음 병원도 못가요 울나라 건강보험 참 잘돼어잇지요 참 싸게 병원검사 다봣고 진료받지요 전세계가 배우려고 울 나라도 급하게 성장한다고 빈부격차 심한데 인자는 지도자들이 복지에 신경을 써야겟지요 자본주의 단점 지도자들이 메꾸어 나가야겟지요
@myonghan1260
@myonghan1260 2 жыл бұрын
ㅡ ㅡ죄명이 주변에 죽음은 고요하네 ㅋㅋㅋ
@뉴소서노
@뉴소서노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후대의 현재가 그 평가를 한다.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 부국강병의 대한민국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를 그 당시에 함께 해보지 아니한 사람은 평가를 말라. 특히나 그 시대 결과물의 특혜로 지금, 어부지리로 호의호식, 호가호위를 하는 GSGG, GSSG 들의 역사 왜곡은 모두 천벌을 받기를 바란다. 멸공~ !!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 당시 교사인 목격자도 존재한다. 그분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장준하는 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jinna3952
@jinna3952 2 жыл бұрын
딱생각하는 수준이 개돼지네 ㅎ 먹을거 던져주고 밥이나 안굶기면 그냥 꼬리만 흔드는 수준 ㅎㅎ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세종로 이순신 장군옆에 그림이 한 장 있었다 세종대로 뒤에 조선총독부가 자리잡고 20만평 경복궁은 보이지도 않은채 뒤쪽으로 후지산 실루엣의 산에 전범기가 보이고 관서지방 대표 식물, 대표동물 이게 아직도 독립못한 증거다 토 나온다. 아니 대체 당시 300명 국회의원중에 독립군 출신 의원이 1명인게 이게 독립된 나라냐????
@Kim-ig3qq
@Kim-ig3qq 2 жыл бұрын
@@김민준-j5q8b 해방된 조국건설은 전문가가 해야지.. 북괴처럼 비적떼가 지배하면 국민이 개고생..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김민준-j5q8b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준교-b2i
@정준교-b2i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에 이어,김재규 의사에게도 존경합니다.
@kyungchanahn65
@kyungchanahn65 2 жыл бұрын
뼈속까지 붉은 장준하와 사상계, 이런자가 사형 안당한게 안타깝다.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전후 한반도 잔류 일본인이 20만명, 그들은 한반도를 찢고 싶겠지 그리고 속임수에 이용당했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아들딸까지 니들한데 또 당해줘야 되는거지 대대로 말이야
@김영철-z3j
@김영철-z3j 2 жыл бұрын
무식의 극치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일제때 학병제도는 지원제도일뿐 강제입대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학병은 본인이 지원하지 않으면 입대할수가 없는것입니다 학병과는 별도로 일제말에 1938~1943년에 걸쳐 조선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을 통해 1만6천명을 모집하였는데 총83만명이 지원을 했고 1944.4월부터 징병검사를 거쳐 12만명을 선발해 이중 6만명이 참전하여 약6100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징병과 지원은 엄연히 별개의 제도입니다 당시 일본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사람들중에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준하의 친구 최기일 교수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장준하는 친구들이 결사반대했음에도 귀신에 씌인 사람처럼 일본군 입대를 강행했다 합니다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즉시 탈영하여 독립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납득이 안되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기가 사는 신의주에서 바로 만주로 넘어가면 독립군 부대들이 있는데 일부러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군에 입대해서 탈영을 하겠다니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입대2개월 전에 도쿄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도 그랬고 심지어 월남전 때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전쟁당시 입대자들이 전사를 예상하고 미리 자손을 확보하기 위한 관행이었습니다 즉 장준하는 일본군에 지원하면서 탈영을 미리 계획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이미 전사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준하와 같은 분들이 역사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똑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편협함의 최강 장준하 평전을 읽어보고 세상을 넓게 보기 바란다.
@이통영-y9v
@이통영-y9v 2 жыл бұрын
@@최태영-t6m 개소리를 작작하시고요 최기일이 쓴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을 한번 읽어나보고 헛소리를 핫쇼 거기보면 장준하와 최기일의 고향 평북 삭주에 최초로 일본신사가 오픈했을때 가장먼저 참배한 사람이 바로 동네교회 목사였던 장준하의 부친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기회주의자 아들도 기회주의자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닙니까 그야말로 장준하는 평생을 기회주의자의 화신으로 잘먹고 잘살았던 것이다 최기일에 따르면 자신이 노동어용령에 따라 소집영장을 받고 떠나던 날 7~8명의 인원이 고향 기차역앞에 집결했는데 출발하기전에 인솔자인 일본형사가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신사를 참배하고 가자고 했는데 최기일이 거절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거절했는데 이때 최기일은 일본형사에게 따귀 몇대 맞을 각오를 했으나 의외로 일본형사는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고 침묵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준하의 부친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입니까
@miong-jelhie7507
@miong-jelhie7507 2 жыл бұрын
문성근 니 아버지 뭐하시노?
@모니카김숙
@모니카김숙 2 жыл бұрын
아버지! 훌륭하신 목사님! 민주투사!
@모니카김숙
@모니카김숙 2 жыл бұрын
아버지! 훌륭하신 목사님! 민주투사!
@영숙찐한팬됐다요
@영숙찐한팬됐다요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 가 죽인거여요?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가 죽인 사람 여럿 됩니다. 대표적으로 2차 동백림 사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
@금강존자
@금강존자 2 жыл бұрын
박정희의 짓
@조윤국-g8f
@조윤국-g8f 2 жыл бұрын
다음달부터바로올리는거맞습니까
@전현진-j5s
@전현진-j5s 2 жыл бұрын
민주화란 언어가 자유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주는 의미는한마디로 말해서 피곤함 그 자체라고 보고 정치 쓰레기들은 더이상 사악하고 더러운 정치판에서 떠나는 태도가 그나마 자유 대힐민국과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행동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님의 정치철학과 업적을 폄하해서는 않될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추종자들 보다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님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자유 대한민국의 영웅이요 국민들의 자상한 아버지 라고 하겠습니다, [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 위의 말씀을 숙지하는 분들은 정치를 아는 분들이라고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jella-1285
@jella-1285 2 жыл бұрын
문성근! ㅋㅎ
@강촌-l3p
@강촌-l3p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씨도 권위주의정권에서 답답했을 것이나,박통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지금의 선진국가를 만들었으므로 그의 판단은 현재시점에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최태영-t6m
@최태영-t6m 2 жыл бұрын
정희만 아니었으면 남보다 더 빨리 더먼저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김민준-j5q8b
@김민준-j5q8b 2 жыл бұрын
아시아 4마리 용 싱가포르가 배상금받아서 발전 그 덕에 5만달러로 잘 사냐 아니다 싱가포르만큼 청렴한 지도자 만났으면 우리나라도 달라졌을거다 개념있는 깨끗한 정치의 싱가포르가 부럽다
@TV-gj6tc
@TV-gj6tc 2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집에식모살이 하던분이 우리친척이었는데 가난한 보릿고개시절 그집은누룽디를 먹기싫어 땅에 묻었다고들었습니다이웃에게 나누어주면 누룽디도안먹는부자 라는 것이 들어난다고했어요
@대선최-p9c
@대선최-p9c Жыл бұрын
누룽지을땅에매장했다못먹던시절에~죄갑을치룬다잉
@박병대-c6n
@박병대-c6n Жыл бұрын
장준하 선생님과 김재규 장군 그당시 중앙 정보부장 과 의 밀담
@손진일-i2d
@손진일-i2d 2 жыл бұрын
사회주의
@워렌버핏-y8j
@워렌버핏-y8j 2 жыл бұрын
정준하 75년생인가?
@희한장
@희한장 8 ай бұрын
십사점 칠센트 같으면 사람이 죽지 않는다 다만 다리나 팔이 부러질 뿐이다
@박양호-f3v
@박양호-f3v Жыл бұрын
아! 문성근
@염동철-b8t
@염동철-b8t Жыл бұрын
돌아가신 시점이 김재규 거사 전일까요 후일까요?
@박헌걸-l4m
@박헌걸-l4m 2 жыл бұрын
편파 왜곡방송 케이방 시청료 거부
KBS 인물현대사 - 장준하 1부, 민족주의자의 길 / KBS 20040109 방송
58:51
KBS 인물현대사 - 지하경제의 큰 손 장영자 / KBS 20040716 방송
58:41
Хасанның өзі эфирге шықты! “Қылмыстық топқа қатысым жоқ” дейді. Талғарда не болды? Халық сене ме?
09:25
Демократиялы Қазақстан / Демократический Казахста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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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r Rabbit is so bad. He made Luffy deaf. #funny #supersiblings #co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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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ny superhero sib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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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40주년 MBC 다큐멘터리 "기억하라 1979 2부(잊혀진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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