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강화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 KBS 2006.2.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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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KBS역사저널 그날

3 жыл бұрын

- 고려가 강화도를 수도로 선택한 이유는?
1231년 몽골의 침입 후 수도를 강화로 옮긴 고려!
고려 정부는 1270년 다시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40여 년간의 수도를 강화도로 정했다. 그렇다면 당시 강화도가 수도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외성 외에 중성과 내성까지... 3중의 방어성이 구축됐던 당시 강화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개경에 버금가는 궁궐과 3중 방어성을 갖춘 고려의 수도, 800년 전 강화도를 살펴본다.
- 30년 몽골전쟁, 강화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몽골은 고려와의 30년 전쟁 동안 단 한번도 강화도 침공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강화도가 갖고 있는 지형적 조건 외에 유목민족인 몽골군이 수전에서는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몽골은 섬나라 일본 원정을 비롯하여 남송과의 전투 때도 수전을 시도, 승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말 몽골군이 강화도를 침공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고려 영토 대부분이 초토화되는 수십 년간의 전쟁 동안, 강화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몽골군
유라시아 문화의 집결지로 한때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라 불렸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13세기 이 지역에는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던 호라즘 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1220년 몽골의 침략 후 이곳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과연 당시 몽골군이 그처럼 순식간에 호라즘 왕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서양에서 들여온 현대적 무기를 활용함은 물론, 몽골 군대의 무서움을 더욱 강하게 했던 것은 그들의 잔인함이었다. 호라즘 왕국 정벌 당시, 몽골군은 포로로 잡은 주민들을 동원해 화살받이로 이용하는 잔인한 작전을 사용했다. 중국대륙에 대한 정벌을 시작으로 이슬람과 러시아, 유럽 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대제국 몽골 군대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 최우정권이 반대에도 천도를 밀어붙인 이유는?
전 세계 수많은 강대국을 굴복시킨 몽골 군대가 마침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집권층이었던 무신정권이 내놓은 항전 대책은 강화 천도였다. 하지만 천도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는데...
게다가 고려사에는 ‘최우가 왕을 위협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게 했다’는 기록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많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을 협박하면서까지 최우 정권이 강화 천도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앙 정부와 군대의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몽골의 거센 공격에 맞섰던 일반 백성들! 백성들은 무방비로 방치됐지만 지배층이 있던 강화도에는 당시 고려의 방어력이 총집중됐다. 게다가 무인정권의 무력기반이었던 삼별초는 철저히 강화정부와 무신정권을 지키는 데만 이용됐다.
800년 전, 고려 정부가 선택한 강화 천도는 과연 대몽항쟁을 위한 고도의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도피에 불과했나?
강화 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한다.
HD역사스페셜 36회- 강화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2006.2.10.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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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232
@soomgotv
@soomgotv 3 жыл бұрын
좋은 콘텐츠 감사합니다~
@user-bg3pf5vh5z
@user-bg3pf5vh5z 3 жыл бұрын
조아요..👍🇰🇷💥🔨
@user-gt3nc8xv6u
@user-gt3nc8xv6u 3 жыл бұрын
전략적으로 보면 천도는 작전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 십 년간에 걸쳐 백성이 도륙 되고 국토가 유린되며, 그 와중에도 강화도 궁궐에서는 주지육림이 벌어지고 있던 걸 보면 자신들의 권력과 착취 수단을 연명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고도 보여진다.
@brilliantachieveharmony2906
@brilliantachieveharmony2906 2 жыл бұрын
천도가 없었다면 지금 한반도는 중국의 한 지방성으로 존재할 것.
@user-pr7ym3gi7n
@user-pr7ym3gi7n 2 жыл бұрын
.
@hiflora1996
@hiflora1996 7 ай бұрын
둘 다 맞지요
@kth4333
@kth4333 2 жыл бұрын
전국토가 유린되고 왕성만 점령 안 당한게 항전이라 할 수 있는가??? 강화천도 이후은 영토 국민 주권 세가지 모두가 국가라 할 수 없는 시기였음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그 시대는 근대국가 개념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국가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근대 이전의 국가와 근대 이후의 국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지요.
@user-ho7ur2bv5c
@user-ho7ur2bv5c Жыл бұрын
왕이 곧 국가인 시기인데...뭔 현대개념으로 생각하냐..국민주권개념이 생긴지 200년도 안 되고 아직도 왕이 존재하는 나라가 있구만 ㅋㅋ
@s2ns
@s2ns 8 ай бұрын
하긴 그땐 인권도 없었으니
@We_are_Koreans
@We_are_Koreans 7 ай бұрын
전형적으로 무식한 댓글. 그 주권 3가지가 1600년대에 유럽에서 나타난 개념임 .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선 통영되지도 않던 개념. 왕이 곧 국가이던 시기에 주권 3요소 운운하는 수준. 오늘날의 개념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니 오류투성인거지
@hanhan4980
@hanhan4980 2 ай бұрын
위수여(韋壽餘)는 ㅡ심주(沁州)의 강화현(江華縣) 사람 ㅡㅡ심주 중국 산서자리지도 안에 있음 위수여(韋壽餘)는 ㅡㅡ심주(沁州)의 강화현(江華縣) 사람으로, 마음이 바르고 행실이 성실하며, 법도를 잘 지켰다. 광종(光宗) 때부터 사선(司膳)으로 있으면서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하다가, 목종(穆宗) 때에 여러 차례 전임되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되었다. 현종(顯宗) 초에 〈위수여가〉 나이를 이유로 치사(致仕)를 청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고 궤장(几杖)을 하사하였다. 왕은 위수여가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장차 크게 쓰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이듬해에 문하시중 상주국 ㅡㅡㅡ강화현개국자(門下侍中 上柱國 江華縣開國子) 식읍(食邑) 500호를 주었으며, 〈위수여가〉 죽으니 안공(安恭)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내사령(內史令)을 추증하였다. 강화도와 인근의 토지를 용처에 따라 나누다ㅡ그 시대 강화의 토지가 2500만평이 안돤다 〈고종(高宗)〉 46년(1259) 9월에 강화(江華)의 토지 2,000결을 공름(公廩)에 소속시키고, 3,000결은 최의(崔竩)의 집에 소속시켰다. 또한 하음(河陰)·진강(鎭江)·해녕(海寧)의 토지는 제왕(諸王)과 재추(宰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지급하였다 강화 연안 수비를 엄중히 하고 광주·남경을 강화에 합치다ㅡ지금의 서울이 강화 라고 임오 전후좌우군(前後左右軍)의 진주(陣主)와 지병마사(知兵馬事)에게 명령하여 강화 연안을 수비하게 하고 또 광주(廣州)와 남경(南京)을 합쳐 강화(江華)로 들어오게 하였다 북방오랑캐가 청천강을 건너자 송도를 방어하는 양반을 강화로 오게 하다ㅡ ㅡ몽고군 못가는 강화 양반은 자유롭게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보고하기를, 북방 오랑캐[狄人] 40기(騎)가 수달을 잡는다는 핑계로 청천강(淸川江)을 건너 서해도 경내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이에 송도(松都)에 나가 있던[出排] 양반들을 모두 강화(江華)로 돌아오게 하였다. 당시 양반들을 번갈아 보내어 송도를 지키게 하였었다. 원이 강화도의 쌀을 풀어 요양과 심양의 기민을 구휼하다ㅡ고려사에서 검색되는 수많은 강남 경인 원(元)이 중서사인(中書舍人) 애아적(愛阿赤, 아야치)을 보내왔다. 이는 앞서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중국 강남(江南)의 쌀 100,000석을 운반하여 강화도에 두었었는데, 지금 요양(遼陽)과 심양(瀋陽)에 기근이 들었다고 보고하였으므로 황제가 그 중에서 50,000석으로 진휼하라고 명령하였다. 쟈릴타이 등이 갑곶강 밖에 와서 군세를 과시하다ㅡㅡ강건너도 섬인가 신사 차라대(車羅大, 쟈릴타이)와 영녕공(永寧公), 홍복원(洪福源) 등이 갑곶강(甲串江) 건너편에 와서 깃발을 가득 벌여놓고 밭에서 말을 먹이고, 통진산(通津山)에 올라서 강도(江都)를 살펴보다 안해현(安亥縣)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강화도 주현군의 종류와 액수ㅡㅡㅡ섬도가 아닌 길도 강화도 아래내용 아시는분 개성괖비교좀 강화도(江華道) 내에는 보승(保勝)은 199인, 정용(精勇)은 54인, 1품(一品)은 171인이다. 개성부도 주현군의 종류와 액수 고려사 원문이미지 지 권제37 경기(京畿) 개성부도(開城府道) 내에는 보승(保勝)은 52인, 정용(精勇)은 240인, 1품(一品)은 190인이다. 고려사 ㅡ충렬왕이 병란을 피해 강화도성 밖에 바닷가에서 살았다 출렬왕이 어부인가 강화 선원사 기록 ㅡ1290년 12월 18일 (음) 정해 왕이 강화(江華)로 병란을 피해갔는데, ㅡㅡ선원사(禪源寺)에 처소를 정하고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使司) 송분(宋玢)에게 명령하여 왕경(王京)에 남아 지키게 하였다. 지산리 692-5 ㅡ 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제259호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선원사지는 과거 교통정체시 강화읍을 거치지 않고 강화대교로 가는 지름길로 논길옆에 위치 강화에 200만명이 살았나 윤5월 병진 초하루 왜구가 강화(江華)를 노략질하여 300여 인을 죽이고, 쌀 40,000여 석을 약탈하였는데, 심몽룡(沈夢龍)이란 사람이 왜구 13명의 목을 베고 나서 결국 적에게 살해되었다 강화의 춘곤기 5월에 4만석은 220만명이 9개월간 먹을수 있는 식량 ㅡㅡ강화인구가 200만명 선두포제방은 폭 41파, 길이 410보로서 강화부와 소속군영에서 공사완료까지 연인원 약 11만 명을 동원하고 소요경비로 쌀 2000석, 병조목(兵曹木) 50동, 정철(正鐵) 7000근을 들여 완성하였다.” 축언과정을 자세하게 비에 새겨 선두포 뚝에 세워놓은 것이 “선두포축언시말비” 이다. 지금 이비는 강화역사박물관이 개관되어 강화역사박물관 1층 전시실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ㅡ공사가간 9개월 ㅡ 고려사애서ㅡ왜적도 함락한 강화를 역사상의 제국 몽고가 해적만도 못하단 말인가 왜적이 또 강화부(江華府)를 노략질하자 만호 김지서(金之瑞)와 부사(府使) 곽언룡(郭彦龍)이 마니산(摩利山)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적이 크게 노략질하고 김지서의 아내를 잡아갔다. 신우가 나세(羅世)·이원계(李元桂)·강영(康永)·박수년(朴壽年)·조사민(趙思敏) 등을 보내어 강화에서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최영은 도통사(都統使)가 되어 승천부(昇天府)에 머물면서 방비하였다. 왜적이 강화를 버리고 물러가면서 수안현(守安縣)·통진현(通津縣)·동성현(童城縣) 등을 노략질하니 지나는 곳마다 텅 비게 되었다 이 당시 마니산은 고가도라는 섬입나다 지금의 강화도라면 가까운 고려산이 있눈데 ㅡ 배를 타고 먼 마니산 강화도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이며 바다 고속도로 해양시대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전국체전때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온 국민이 함께 ㅡ올림픽 성화처럼 퍼레이드 1 우리역사-History 답글 답글 2개
@user-si5xh2di4c
@user-si5xh2di4c 2 жыл бұрын
건국대 김기덕교수님의 말씀에 백% 동감합니다
@user-eo3re9hq9c
@user-eo3re9hq9c 2 жыл бұрын
예나 지금에나 권력자을 잘 못 만나면 고생과 고통은 국민의 몫 이다.
@Ernesto1218
@Ernesto1218 2 жыл бұрын
댓글도 많고 조회수도 꽤 많네요...우왕..
@jh.h0911
@jh.h0911 2 жыл бұрын
🌹💝👍
@renovatio2946
@renovatio2946 3 жыл бұрын
국민은 싸우고 지배층은 도망가고...
@user-we7sg3if8p
@user-we7sg3if8p 2 жыл бұрын
저 시대에 몽골피 많이 섞였겠네.. 강화도로 튀고 백성들은..
@ykpark5289
@ykpark5289 3 жыл бұрын
역시 고려나 지금이나 나라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것은 오로지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밖에 없구나. 위기의 시기에 윗대가리 놈들은 다 숨어버리고 고통은 오롯이 국민의 몫 . . 진짜 백성과 국민들이 없었다면 이나라가 과연 지금까지 남아있었을까 의문이다
@user-jq2em1cz2r
@user-jq2em1cz2r Жыл бұрын
ㅋㅋㅋ 자다가 이불 차겠네 그래서 일본에 먹혔을때 지켰냐? 니 말대로라면 윗대가리만 살고 다 나라 지키다 죽었어야지
@pae4451
@pae4451 8 ай бұрын
고려시대 강역은 중국 동남부 포함 하북성. 만주가 고려 영토 였어요.. 하북성 북서쪽에 당시 요나라 거란이 있었고.. 송나라는 저기 멀리 있는 산지.. 사천성 산서성..감숙성...이런데 짱박혀서 살았어요. 몽고가 쳐들어와서 고려가 마지막까지 항쟁한곳이 산동반도에 강화입니다..
@asoulforsaleorrent2600
@asoulforsaleorrent2600 3 жыл бұрын
결론: 망할 나라는 망하고 흥할 나라는 흥한다.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3 жыл бұрын
45:05 이거 완전 임진왜란 빼박이다.ㅉㅉㅉ
@user-si5xh2di4c
@user-si5xh2di4c Ай бұрын
강화도가 인천강화가 아니라 지금의 산동반도였다는 설 에 대해서 ᆢ 어떤설이 진실인가요?
@yunguso
@yunguso 3 жыл бұрын
댓글에 분명히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와 이어져 있다. 란 댓글 달린다.
@user-zl3yw5hr1j
@user-zl3yw5hr1j Жыл бұрын
신라것들의 조작된 역사가 아직 이어지고 잇죠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정말 어떻게 고려는 쿠빌라이와 혼인동맹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그 만큼 고려가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어서 가능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쿠빌라이 입장에서도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을텐데 정치적, 전략적 가치가 없었다면 혼인동맹은 이루어질 수 없었겠지요.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염하 라는 말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이 처음사용`
@user-zl3yw5hr1j
@user-zl3yw5hr1j Жыл бұрын
최씨들이 백성을볼모로한 유희엿지 저게 항쟁인가?
@user-bt9md6zp2x
@user-bt9md6zp2x 2 жыл бұрын
왕하고 신하만 살면 국가가 유지한다는게. 개. 스럽다.
@jwsangyun
@jwsangyun 11 ай бұрын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해요.. 변수가 워낙 많다보니...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점은.. 웬만하면... 공과 과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했으면 한다.. 물론, 이게 절대불변의 관점은 아니다.. 공은 100프로 평가하고 과는 어떻게해서든지 변명거리를 만들고... 그렇게치면... 웬만한 역사속 공도 다 권력층들의 공이 아니다... 궁궐은 누가 지었다.. 수많은 역사속 제품들은 결국 누가 만들었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실제로 역사에서 칭찬하는 대다수의 물건은 모두 일반국민들이 만들었다.
@user-sj7ft7ym9k
@user-sj7ft7ym9k 2 жыл бұрын
도피이자 작전이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gimhaeyong45
@gimhaeyong45 2 жыл бұрын
김준 : 주군은 군사막부의원흉 최우 : 네이놈 김준아~~ 김준 : 장기에 보면 빗장이 있죠 궁집을 강화도로 들이면 몽골이 어찌하겠습니까? 최우:강화도로 천도해라
@user-yv4vn6uc4w
@user-yv4vn6uc4w 5 ай бұрын
강화도의 어느 성으로 천도했나요? 성도 없는데 한반도의 강화도로 위치를 비정하다니 한심하고 안타깝습니다
@user-wr3rz1iy6u
@user-wr3rz1iy6u Ай бұрын
강화도 자체가 거대한 성 입니다 산들이 겹겹이 자연 방어를 이루지요 한번 차로 방문해보세요
@user-yv4vn6uc4w
@user-yv4vn6uc4w Ай бұрын
@@user-wr3rz1iy6u 산천을 방패삼아. 왕이 수십년을 살았다는 말씀이시군요 산적도 아니면서 산적이 되었네요 고려사에는 강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화도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정해준거구요.
@user-ms9id4le7f
@user-ms9id4le7f 3 жыл бұрын
58:33
@user-di9me8hf1p
@user-di9me8hf1p 2 жыл бұрын
우와 끝내주내요
@pae4451
@pae4451 8 ай бұрын
사기 치지 마세요..나쁜 콘텐츠 그만두세요~ 경기도 강화도에 뭐가 그리 방어력이 세다고 당시 천하무적 몽고의 침입을 40년이나 막아요???? 무슨성벽이 깨지지 않는 초합금인가요? 섬으로 되어 있어서 뭐 먹고 살건데?
@athanasius1124
@athanasius1124 2 жыл бұрын
작전ㅋㅋㅋㅋㅋ 작전이고 뭐고 그냥 빤스런 한 거 아니냐
@user-zk4dv9pk4r
@user-zk4dv9pk4r 2 жыл бұрын
광개토태왕이 그 어려운 강화도 관미성을 점령 했으니 대단하네
@user-vy5kz2rm8e
@user-vy5kz2rm8e 2 жыл бұрын
관미성의 위치는 아직 모르지 않나요?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user-vy5kz2rm8e 못 찾는게 아니고 찾지 않기위해 노력하고 있는거겠지요... 참 못할 노릇들입니다..
@user-yv4vn6uc4w
@user-yv4vn6uc4w 5 ай бұрын
강화도에 관미성이라뇨 무에서 유를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성곽은 무너져도 성터는 남아있죠 가녀린 산성 곽이 아닙니다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관미성 은 황하
@bluesky65556
@bluesky65556 2 жыл бұрын
최우의 천도는 신의 한수. 원종이 쿠빌라이를 만나러 간 것도 신의 한수.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고려는 거란의 침략을 물리침으로서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세력균형을 성립시킨 강국이었는데 조선보다 고려를 열등한 나라로 왜곡하고 깍아내리고자 한 식민사학자들의 저열한 수작들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있지 못하는 겁니다. 아. 진짜 열받아.
@user-wv3ph8ic4q
@user-wv3ph8ic4q 3 жыл бұрын
어차피 사람의 일. 역사에서 배운다.
@user-zx2wl7xg7z
@user-zx2wl7xg7z 2 жыл бұрын
1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터가 확인이 될 리가 있나... 참 못할 노릇들이다. 허송세월도 이런 허송세월이 있을 수 없구나. 군사적인 일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과학적인 추론은 아예 금기겠네요.
@user-yw5rh7ig3c
@user-yw5rh7ig3c 3 жыл бұрын
강화도에서 뭔 항쟁? 고려전체가 몽골군으로 뒤덮혀있는데 보급도 다 끊겼을거고 강화도가 넓기라도 할까?
@user-vz3uf9ol5t
@user-vz3uf9ol5t 3 жыл бұрын
강화도는 널기도 하지만 주위의 바닷물은 물살이 아주 급하다는 문제가 있지요. 또한 님이 말하는 보급은 님은 생각지 못한 문제지요. 몽골은 수군이 없으니 수군은 우리가 장악이란 뜻입니다. 이런 글을 모르는 님은 일본이 사용한 미국과의 전쟁에서 가미카제라는 암호를 왜 사용했는지 이유도 모를 겁니다. 바로 태풍입니다,
@user-xm7sj1gq9c
@user-xm7sj1gq9c 3 жыл бұрын
저도 항쟁보단 도피수준으로 보지만 강화도로 남서해안 바닷길로 풍족한 물품이 들어갔다고 함 그게 더 화가남 강화도에서 잔치하고 백성들은 산성과 인근섬으로 들어가서 버티라는 수준의 해결책을 주는...
@user-vz3uf9ol5t
@user-vz3uf9ol5t 3 жыл бұрын
@@user-xm7sj1gq9c 예. 대응이 틀린 것이니까 님의 글이 맞지요. 그날이 이야기 한 그대로 저항한 나라로서는 왕조의 족보를 지킨 셈이니까요. 그러나 반대로 백성이 죽어났지요. 그리고 강제로 동원된 수군으로 왜놈을 쳤으나 2번의 태풍으로 망했는데 그때 가미카제라는 이름의 태풍으로 태풍이 신격화 된 것이지요.
@user-yw5rh7ig3c
@user-yw5rh7ig3c 3 жыл бұрын
@@user-xm7sj1gq9c 솔찍히 아픈 과거지만 알아야할것은 그 당시 고려는 몽골에 의해 중남미가 소수 스페인군에 의해 민족이 변할만큼 몽골인화 되었다는것이죠 뭐 우리 조상이 고려 몽골침입 이전하고 그 이후가 달라질 정도입니다 간단히 애기때 몽골족의 특징인 엉덩이 몽골반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도피한 강화로 보급해줄 육지세력이 남아있다고 보긴 힘듭니다 그냥 무신정권 자기들 기득권 못 놓고 백성들은 학살 당하던 말던이었죠 저 시대 백성들은 누가 지배하던 자신들 학살만 안당하는게 최선이었죠 괜히 정권의 지키지도 못할 지역 방어하느라 결국 지역 백성들만 몰살 당한경우 많습니다
@user-yw5rh7ig3c
@user-yw5rh7ig3c 3 жыл бұрын
@@user-vz3uf9ol5t 현재 강화도랑 많이 다르죠 현재 강화도와 교동도등의 논들은 조선 숙종시대정도 되어서 간척으로 이뤄진곳들입니다 고려시대 같으면 지금 논은 거의다 뻘이나 바다였죠
@user-so8hu7wv9e
@user-so8hu7wv9e 2 жыл бұрын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ㅋ 그냥 바로 굴복하면 백성들 도탄에 안빠지나? 안빠진다면 잘한거라고 볼수 있는데, 근데 도탄에 빠지면? 아님 적당히 싸우다 굴복하면 되나? 아님 항거 해보는데 까지 하다 굴복하면 되나? 어느 정단이 가장 합리적인 걸까! ㅋㅋ
@user-nk5mx4kt4s
@user-nk5mx4kt4s 3 жыл бұрын
지들 권력 뺏길까봐 토낀거지
@user-gj8sv1br6p
@user-gj8sv1br6p 8 ай бұрын
예나 지금이나 패도 정치가 문제라 봅니다.
@user-yv4vn6uc4w
@user-yv4vn6uc4w 5 ай бұрын
한심한게 수십년간 왕과 왕비 공주 왕자 그리고 군신들은 주지스님방을 차지하고 살았을까요? 천도했는데 왕성터가 어디 남아 있나요? 강화와 강화도는 같은 위치인가요?
@user-vg7jc7hy6z
@user-vg7jc7hy6z 11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엄청 당했어 지금지킨거를 더 성장시켜야지 보이스핑들 다 몰아내고 좋은것만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고려 江華, 江都 는 지나 대륙 양자 강 에 있었다~
@johnathanha9340
@johnathanha9340 2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수도를 강화로 천도했을 때는 지리적, 위치적, 자연적인 수비에 유리한 점 뿐만 아니라 점령국들 간의 연합전선을 막고 고려의 땅을 침범해서 왕국을 강화시키려던 몽골의 의도를 파악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user-ie3je3yw6w
@user-ie3je3yw6w 3 жыл бұрын
사직이 아니라 지들 권력 유지를 위한거지
@user-mj3xn9en1g
@user-mj3xn9en1g 3 жыл бұрын
아 근데 저
@user-nz3vk3pe5p
@user-nz3vk3pe5p Жыл бұрын
고려왕실과최씨네정권그리고그사병들인삼별초때문에얼마나많은사람들과귀중한문화재가없어졌는가지들살자고한반도전역이불타고사람들이많이죽었지몽고는항복하면용서하는데어쩌면조선때인조가삼전도에서청나라에게일찍항복한게잘한일이지이기지도못한게항쟁 운이좋아서나라가유지됐지안그랬으면한반도에개미새끼한마리도안남았을거다
@user-px1qd5pm1r
@user-px1qd5pm1r 2 жыл бұрын
몽골군이 러시아를 정복하고 동유럽을 석권했을때 몽골칸이 죽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몽골군에게 정복됐을 겁니다. 이를 보면 30여년간에 걸친 고려의 대몽전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죠. 육지의 백성들은 비참했으나 고려의 항쟁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항쟁이었죠. 이걸보면 우리 민족의 끈질김이 대단합니다. 몽골의 칸도 작은 나라 고려가 30여년간에 걸쳐 끈질기게 항쟁하자 감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user-it6jh8vv2e
@user-it6jh8vv2e 3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서해가 인맥줄이다 그게 역사다 kbs 국뽕
@khankorea3938
@khankorea3938 3 жыл бұрын
참역사 운영자입니다.저는 당시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위해 직접 현장을 4번방문했던 사람입니다.먼저,고려는 이조선과 전혀 성격(사상,개념)이 다른나라였고 전쟁에서 진적이 거의없는강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러니까 당시 대제국인 몽골(지금 중국이나 미국)이 한두번도 아니고 7번씩이나 공격했지만 정복하지못하고 평화공존했던겁니다.다른나라들은 국가와 민족자체가 다 없어졌던시기임을 참고바랍니다.즉, 전쟁전술에서 지휘부의 이동(전진,후퇴)이나 배치는 전쟁전술중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당시상황은 국가대 국가의 큰 전쟁중이었으므로 천도가 아니라 지휘부 이동으로봐야 마땅함에도 이조선중심으로 폄훼하려니 천도라고 한건데 지극히 무개념하고 몰상식한 국사내용이 아닐수없습니다.어떻든 전투를 계속했고 결과적으로 고몽이 공존했다는게 아주 중요한 핵심입니다.그런데 이조선때 왕조처럼 도망친걸로 묘사하고있는데 바로 내동공정이라는 것으로 우리안에 이러한 왜곡,조작이 중국이나 일본의 조작왜곡보다 30배더 심각하고 그 중심에 이조선왕조(현재 이왕손 이완용후손 4명중1면으로 650만/고위공직43%)찬양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아주 무개념한 개돼지뇌상태로 만들어놓고 천시하고 폄훼해서 이조선왕조를 찬양하는 수법으로 저질중에 저질방식인데 아무생각없이 그대로 믿고있다는 무뇌상태의 역사개념임을 알려드리니 모쪼록 유념해주시기바랍니다. 이조선시대는 전쟁나면 왕은 중국으로 양반지도층은 첩데리고 산으로 천민상놈들만 농기구가지고 싸우려햇었다는 팩트를 생각하셔야하고 특히, 이왕조는 본국인 중국으로 귀화까지 시도한 사실이 명백합니다.이왕조는 중국계임이 밝혀진바있드시 이방인왕조들의 공통점입니다.토착중국인왕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실 명심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khankorea3938
@khankorea3938 3 жыл бұрын
여러분!! 우리역사중에 아주 흉악한 외국계(중국계)범죄일가가 있어 이를 고발 합니다. 조선의 식민제도가 바로 상놈제도,노비제도-관기제도였다는 최근 발표된 연구논문내용입니다.조선의 이 노예제도는 서양의 노예제도와 같은 식민제도입니다.식민제도란 세계역사적으로 외국계왕조시대때 실시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런데 우리 학계는 아직도 조선왕조시대의 이러한 식민제도에 대해 당연시할뿐 과학적 객관적시각이 전혀 없이 오로지,국사하면 일제시대 식민제도만 알고있을뿐인데 그 두가지 원인은 "중국유교사상과 현재 암기교육방식"입니다.로써 이두가지가 백년째 노벨물리학상을 단 한개도 못받게하는 미개한 대한민국 교육학계를 만들고있다는 사실입니다.(현재 국내 대학은 교육을 빙자한 기업이고 대졸자들은 기업제품)교육의 중심은 교과이고 그 중심교과는 국사인데,현재 국사인 韓국사는 조선때는 중국이고 현재는 미국이 중심인데 현재도 조선사상대로 오로지 암기일뿐 생각을 허용하지않습니다.그래서 전국민이 국사하면 일본욕만 하며 정작,이땅의 최초 식민제도를 실시한 조선왕조는 찬양토록 최면된 상태를 유지하는 저능한 상태로 백년째 노벨학술상 전무한 원인/사이비종교식역사관(서을대韓국사학과=유교)+중산도(한단고기)지배중인 현실입니다.. 진정한 학자라면,갈릴레오처럼,자기가 맞아 죽더라도 지구가 돈다는 사실이 분명한만큼 진실을 알려야하겠지요.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배워 잘못알고있는 국민여러분께 지구가돈다고 말씀드리는것이 낮설고 동북공정일것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해바랍니다.이에대해 특히,이씨분들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비방과 욕설을 퍼붓고있습니다.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게되있고 이 팩트,사실이 밝혀지게되면 이들 토착중국인들은 모두 자기네 본국인 중국으로 돌아가게 될것입니다.(현재 이완용후손들=DNA교화불가능(예:이영학,이춘재) 식민제도는 이방인 강점왕조에게는 필수적이고,가능한 제도란 사실을 깨우쳐주시고,이조선 521년 식민제도 중,관기제도에 대해,우리 국사학계 지배층인 중국계 이왕손들은"우리 원주민 고려민족 고유의 풍악,춤등을 발전,유지시켰다"고 버젓이 말합니다.지들 음주섹스용 풍악으로 즐겼을뿐이면서말이죠.이런 가증스럽고 교활한 답변을 버젓이하며,상노제도에 대해서는,고려제도를 계승한것이라.해서 혹시나 하고 2년간 샅샅히 조사했으나 근거가 없었습니다.다만,우리민족역사에서 최초의 식민제도인 상놈제도,노비.노예제도는 세종때 전격 실시된 팩트입니다.조선왕조를 정당화 하기위해 우리 본래 제국이었던 고려(당시 만주반도가 하나)를 철저히 조작,왜곡한후,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 중국식 수법입니다.문제는 지금 한국인들 정신상태가 .사이비종교단체(유교탈레반)상태라는 점 입니다. 여러분!!SBS 조선구마사 방영중단사건도,노벨상 많이 받은 선진국같으면"그 내용이 어떻든간에 과연,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합리적,객관적인가?를 먼저 따져볼텐데,우리는 백년째 노벨학술상 단 하나도 못받은 대韓민국답게,전국대학교수90%표절논문학위=가짜,사기교육계답게,중국계이씨들이 지배하는 역사학계답게,저들 토착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중국중심내용이 그대로 정의가 됩니다.즉, 이러한 내용으로 조선의 실체가 드러날것같으면 친일파나 심지어 동북공정이라며 매도하고있어요.그래서 주동자들을 조사해보면 역시나,국내 중국계이씨들입니다.(韓국사 대부=이완용손자 이병도/서울대 최초 한국사교수)조선구마사내용이 사실에 부합되는만큼,한국사학계는 석고대죄하고 주동자 이씨들을 발본해 줃국으로 추방시켜야합니다.(즉각,재방영 실시/중국이나 일본 역사왜곡보다 두배이상 역사왜곡하는 이조선왕조의 실체) 언제나,핵심은 진정성,진실이드시,"동북공정의 핵심은 조선왕조"란 팩트를 유념해주십시오! (고조선이란 이름은 조선왕조때 중국식이름 조선으로 개명된 사실(조선朝鮮이란=싱싱한 생선의 뜻/중국 아침시장에 생선장수들은 지게에 생선을 지고 다니며"조선이요~ 조선이요~(싱싱한 생선이요~)하며 펄러다녔다는 사실 확인/즉,조선이란 중국에서는 싱싱한 생선의 뜻"/실재로 조선의 선鮮이란 생선의 고유글자/본래=원고려/고려사81-755) 여러분!! 21세기에도 갈릴레오는 있는법이고 이순신도 있는 법 입니다.그런데 이땅에는 이순신도 갈릴레오도 없어요? 누군가 수면하에서 다죽이고있기때문입니다.누굴까요? 여러분들이 다 아시드시 바로,이완용이며 현대판 이완용후손들입니다.현재 강남부자 86%가 이완용계라는 사실 아시나요? 저들의 눈에 우리 일반인민들은 개돼지일뿐입니다.조선개국하면서 죽인 고려지도층인사들이 당시 15만입니다.싹다 죽인거에요.한마디로 개돼지만 남겨놓고 다죽인후 자네 중국이씨들만위한 세상을 만든겁니다.청야전술이라 합니다. 그 덕택에 "서양은 갈릴레오죽고 300년후에라도 진실을 깨우쳤으나,여기 조선韓국에서는 2021년현재 833째 못깨우치고있습니다.객돤적으로,이조선 521년이 우리민족역사에 끼친 폐해는 일제강점시대 대비 최소 6배~최대 10 더 암흑기였습니다.(현재,21세기형 유교탈레반국가상태=분단南北조선韓 현실)현재, 정치,종교,경제,군사,문화등의 실질적 내면을 구성하는 철학,사상을 잘 보시면 모두 아실수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모든 동물에게 가장중요한건 "원가정"입니다.당연히 교육중심은 가족사(민족사) 즉 국사이나,우리사회는 진정성이 실종된 상태로 부자,지도층일수록 철저한 내로남불(2중인격/황금만능 생활화)로 눈가리고 아웅(사기)에 능 한 사회상태입니다.이런 현상은 세계역사적으로 오랜 식민역사시대를 가진 개도국들의 공통적 사회 풍습,현상이라는 놀랍도록 정확한 사실입니다.당신이 한국인이라면 가능한 이러한 역사적 실체적 핵심내용을 빨리 깨우쳐주시고 이 근본적인 정신결함부분을 바로잡도록 일일일선해주십시오!! 이 사실을 이기회에 못깨우친다면,당신은 평생 진실을 모른채 살다 헛되리 죽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충고말씀 드립니다. 서양인들이 주는 영화상이나 하버드수석졸업상보다 노벨상이 백 배 더 중요합니다.
@khankorea3938
@khankorea3938 3 жыл бұрын
"21세기형 식민지=분단조선韓의 참역사적 죄표,현실!!" "돼지가 진주목걸이를 한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습,현실"누가 이렇게 완성시켜놨을까요?:"언제나,진정한 적은, 밖에 아니라 우리안에 있드시(중국바이러스,코로나19)"진정한 동북공정은 바로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바로,조선왕조 자체란 팩트"를 꼭,명심해주십시오!.토착중국인으로써 이완용후손들(현재600만)이 바로 동북공정 핵심인데 이들이 국사,사회를 지배하고있고 우리 고려를 폄헤,왜곡,조작한채 이씨조선찬양시키는데도 모두 뇌 해킹된 상태로 그대로 세습중~저들은 우리 인간이 로봇AI같은 구조로되어있다는 사실을 잘알기에 그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 조선찬양/일본욕/남욕남탓/내로남불/하도록 지금도 선동질하고고있다는 서을대 모사학교수의 발언은 충격적입니다. 솔직히 저도 세계사를 공부하기전까지는 조선왕조가 우리왕조인줄알고있었으나,지난 20년간 세계사를 공부하였고 이후,조선왕조와 이왕족들에 대해 별도,연구해오면서 그 진실,실체를 정확히 알게되었고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이었으나,진정한 역사학자로써 이 진실,사실을 빨리 국민께 알려드리는것이 도리이며 의무라고 생각하여 알려드리는 점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조선왕족 시조로써,국내 중국전주이씨 시조인 이자춘/이성계아버지/고려말 중국에서 망명/부자였던 이자춘은 자신의 재산 상당액을 고려황실에 기부하고 받은 관직이 바로 여러분들이 알고있는 그 관직입니다.그런데 이자춘은 소중화국을 꿈꾸고있었기에 아들 이성개를 고려군에 편입시키고 장군이 된한 후 철저하고 교활하게 계획된 위화도쿠데타를 실시하여 고려는 멸망하였고,만주와 반도로 분단.(만주=청제국/반도=이씨조선왕조/원고려이후 4번째 분단) 여러분! 조선의 노예제도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정상적인 부모가 가족중 맞아들은 양반,둘째아들은 상놈,셋째는 노비/넷째딸은 관기로 평생대물림하며 살게할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친 아버지로써는 불가능하고,99%가짜아버지,양아버지 즉,역사적으로는 외국인 강도왕조시대입니다. 여러분!!.이런 우리민족최초의 식민제도는 세종때 전격 실시되었으며,강도행위입니다.역사에도 강도시대가 많습니다.여러분~!역사는 성경이 아나라,과학이며,상식입니다.지금 우리국사인 韓국사는 완전 사이비종교 성격내용으로 쓰여있고 암기교육으로 존재하고있습니다.중심에 중화사상의 이씨조선왕조가 이무기처럼 또아리를 틀고 혀를 낼름거리며 왕노릇을 하고있고 현재 여려분주위 4명중 한명이 바로이들 중국계이씨(작은 중국뱀)들임을 국민여러분께서는 똑바로 볼수있어야만 할것입니다. 당신이 이씨가 아니라면 절대로 조선왕조 찬양하면 안됩니다.이씨들 개돼지가 되기때문입니다.당신이 이씨가 아니라면,훌륭한 고려인(코리언)이고,당신이 고려인이라면.이세종 이순신보다 당신이 더 훌륭한 분 입니다.이것이 바로 고려시대 세계적인 사상인 "실사구시"입니다.현재 전국민이 반중국인으로 뇌해킹된 상태입니다.그리고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작동중이며 수능암기학습으로 유지중입니다.즉,최 상태라는 사실입니다.(참고:영제국종교/성공회,일제국종교/신사,미제국종교/개신교,중제국종교/유교=현재,한국인들 기본사상 중국유교사상=이조선오백년영향=개돼지 뇌프로그램).(참論文92-2발췌)) 펌:참
@user-mh4pi7ml7w
@user-mh4pi7ml7w Жыл бұрын
@@khankorea3938 더듬어 민주당 전 교육부총리 이해찬 이낙연 등이 종친회에도 나가는 열혈 전주이씨더군요 ㅋ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3 жыл бұрын
고려나 조선이나 둘다 도찐개찐 ㅉㅉㅉ.
@user-pw4yd8cu7j
@user-pw4yd8cu7j 3 жыл бұрын
도긴개긴
@ratel1965
@ratel1965 3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조선은 이겼지 고려는 뭐냐 아예 식민지 되었구만 그게 같어? ㅉㅉ
@TheExctshot
@TheExctshot Жыл бұрын
고려를 한반도도 다 차지하지 못한 작은 나라로 지도를 그려놨는데 그정도 영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기록들이지요. 정말 납득이 안돼. 정말!
@user-ri4ic5gd7b
@user-ri4ic5gd7b 2 жыл бұрын
알면알수로개씹이다참
@user-iw7op5df3j
@user-iw7op5df3j 3 жыл бұрын
2220년전.징기스칸왕의.왕과전쟁때.비겁한왕과.비겁한충신들의.역사입니다.46년전쟁중.하나님아버지가.제사장나라.대한민국의.종자를보호하신곳입니다.
@pign5229
@pign5229 2 жыл бұрын
엘리 안당하게 할라고 걍 냅둔거자나
@gogoyogi5377
@gogoyogi5377 Жыл бұрын
칸국을 한국으로 ㄷㄷ ㅋㅋ
@user-sj7ft7ym9k
@user-sj7ft7ym9k 3 жыл бұрын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조선에 와서 승자의 기록일수밖에없는 고려사의 사료에 의존한 평가라는점, 몽골 첫 침입에 항복했으면 백성의 형편이 나아졌을까? 후일 몽골 정복통치전략전술이 바뀌었을때 항복한 것이 진정한 왕권회복일까? 역사를 결과에 맞추어 갖은 사료를 인용하거나 원용해 분석 평가한다는 것이 진정한 역사적진실 규명일까?
@user-cx3gk4jw9v
@user-cx3gk4jw9v 2 жыл бұрын
8
@user-yv1pk4mx9u
@user-yv1pk4mx9u 2 жыл бұрын
말을어렵게하노이새끼야 그래서뭐
@user-yt5rc9fo8q
@user-yt5rc9fo8q 11 ай бұрын
도망간거 그냥 봐준거야ㅋㅋ 역사 제대로 가르켜라 쫓겨났다가 원나라 망하가니까 식민지에서 벗어난거지
@dumbbell2472
@dumbbell2472 Жыл бұрын
빡친다ㅜㅜ 강화도에서 닐리리 논거야?
@EmpireBritish
@EmpireBritish 3 жыл бұрын
한줄요약 : 빤스런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고려의땅은 양자강부터 요녕성 심양까지 거대한 대륙국가였다` 충선왕때 요녕성일대가 뭉 가뭄이 심해지자 양자강 유역 (강화)에서 구휼미10만석을 보냈다
@user-pw4yd8cu7j
@user-pw4yd8cu7j 3 жыл бұрын
40여 년 전, 붉은명찰 가슴에 달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던 땅. 아 ! 언제 또다시 밟아 보려나
@sergioaguero4762
@sergioaguero4762 3 жыл бұрын
어르신 덕분에 저희가 편하게 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user-pw4yd8cu7j
@user-pw4yd8cu7j 3 жыл бұрын
@@sergioaguero4762 그리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군복을 입으면 누구나가 애국자가 된다지요 너 나 할것없이 우리모두 나라사랑하며 살자구요. 감사합니다. .
@sssu6572
@sssu6572 3 жыл бұрын
강화천도는 고도의 술수 전략상후퇴다.힘을기르면서 파티에 썼다는것뿐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2 жыл бұрын
ㄴㄴ 빤쓰런 임.
@user-so8hu7wv9e
@user-so8hu7wv9e 2 жыл бұрын
그래도 끝까지 항거 했으니 세계사 유일 거대 몽골 제국에 당당하게 굴하지 않은 민족이란 수식어가 남은 거 아닌가! 당시 몽골에 당당하게 맞서다 멸망한 몇몇 나라들엔 대단하다 하면서....
@user-so8hu7wv9e
@user-so8hu7wv9e 2 жыл бұрын
@폭행몬스터 그럼 그대는 그런 지경에서 잡혀서 죽음을 맞이 할까!
@user-so8hu7wv9e
@user-so8hu7wv9e 2 жыл бұрын
@폭행몬스터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할까!
@user-so8hu7wv9e
@user-so8hu7wv9e 2 жыл бұрын
@폭행몬스터 항거가 문제! 그렇다면 굴복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니까 뭔 이해를 못한다는 건지, 그냥 당신 판단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거요? 뭔 이해 타령인지! ㅋ
@user-fz2yl1oq4y
@user-fz2yl1oq4y 3 жыл бұрын
고려 왕조계보 쉽게 외우기
@user-px1qd5pm1r
@user-px1qd5pm1r 2 жыл бұрын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3대 정종과 한자가 다름), 문종, 순종, 선종, 헌종, 숙종, 예종, 인종, 의종,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이상, 34대 475년( 918~1392).
@user-dn2oh6zc4s
@user-dn2oh6zc4s 2 жыл бұрын
@@user-px1qd5pm1r 충으로 시작되는 왕때는 원나라로 부터 지배를 받던 시기.
@user-iy5gk4mq6v
@user-iy5gk4mq6v 3 жыл бұрын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고려와 몽골의 약 30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됩니다. 세계를 정복하던 몽골에 비한다면 고려의 군사력은 대단히 미약했지만, 고려는 그래도 긴 시간을 잘 버텼습니다. 물론 그 원인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종 19년(1232)에 단행된 강화 천도도 분명히 포함될 것입니다. 사실 강화 천도를 좋게 보면 대몽 항쟁의 작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쁘게 보면 육지의 백성들을 버려둔 채 최우를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들만 안전한 강화도로 가서 살았다는 식의 도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는 지금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럼 오늘의 다큐도 재미있게 보시면서, 과연 강화 천도가 작전인지 아니면 도피인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마침 어제 제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 이 내용입니다. 15분 정도로 요약된 내용이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강화 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kzbin.info/www/bejne/jHawn3ikepaJh9k )
@_kkjg09
@_kkjg09 Жыл бұрын
강화천도 후 몽골군이 고려 본토인들을 몰살시키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user-iy5gk4mq6v
@user-iy5gk4mq6v Жыл бұрын
@@_kkjg09 몽골군은 일부 지역에서는 상대를 몰살시키기도 했지만, 이는 전반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모든 지역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몽골은 소수의 자국민으로 넓은 지역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만약 상대국가의 국민을 모두 몰살시켰다면, 그곳에서 경제적으로 수탈할 수가 없겠지요.
@_kkjg09
@_kkjg09 Жыл бұрын
@@user-iy5gk4mq6v 아하 감사합니다. 하나 더 여쭤봐도 될까요?
@user-iy5gk4mq6v
@user-iy5gk4mq6v Жыл бұрын
@@_kkjg09 넵!
@_kkjg09
@_kkjg09 Жыл бұрын
@@user-iy5gk4mq6v 옛날 한반도로 대규모 침공을 했던 중국 왕조들은 어떻게 육로 보급을 했었나요? 수많은 병력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소모하는 식량,식수,소 말 먹이 대기도 빠듯할 것 같거든요.. 운좋게 현지조달이 된다면 모르겠지만...아 그리고 보급로에 산이나 언덕이 있으면 수레도 무용지물일텐데 그럴땐 어떻게 했었나요?
@user-iw7op5df3j
@user-iw7op5df3j 3 жыл бұрын
제주도까지.점령하였는대.강화도는.하나님이제사장나라.대한민국종자들을.지켜주심을알아야함니다
@user-si5xh2di4c
@user-si5xh2di4c 2 жыл бұрын
아 ~~무신 하느님이 여기서 ‥ 그냥 무신정권자 죽일놈들이 피신처로 삼았을뿐‥
@hjkim1121
@hjkim1121 Жыл бұрын
민중들은 사실상 방치....... ㅜ.ㅜ
@user-if8gd2wd7p
@user-if8gd2wd7p 2 жыл бұрын
지금의kbs보다는최우가더낳는것같은디.국민방송.웃기네
@user-gc1un3dk4s
@user-gc1un3dk4s 2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최우가 몇명을 출산했나요?
@user-ng1hf1lq5w
@user-ng1hf1lq5w 3 жыл бұрын
제목ㅋㅋㅋㅋㅋㅋ당연히 토낀거지 좀있음 한국전쟁 부산까지밀려난것도 작전이라카겠네
@uhmmaa3
@uhmmaa3 3 жыл бұрын
조선의 역사는 절대 반도를 벗어나면 안돼고 모든 역사는 반도안에서 서로 치고박는것만 가르쳐야 한다. 조선총독부-
@user-dn2oh6zc4s
@user-dn2oh6zc4s 2 жыл бұрын
무슨 반도에 역사를 묶을려고 해요. 우리역사는 만년의 역사중 반도에 있었던건 불과 100년안쪽.12환국.고조선.삼한.삼국.고려.조선..다 대륙에 활동무대 였지.
@user-di9me8hf1p
@user-di9me8hf1p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중국방식? 중국이라는말사용은 100년도 안됐다~
@user-xn7su7dy9x
@user-xn7su7dy9x Ай бұрын
좀 알고 말씀하셔야 할듯 중국이라는 말은 수천년 사용한 말임 한족이라는 말 이전부터 중국인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왔음 한족이라는 말은 한나라때 이후로 사용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중국인들이 이민족과 자신을 구분하고 이민족 국가와 자신들의 나라를 구분할때 중국인 중국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
@user-kl2gb6ph7i
@user-kl2gb6ph7i 3 жыл бұрын
원래 몽고침입이라고 배웠는데 언제 몽골이라고 바뀌었는가
@user-zs7wl3dl1b
@user-zs7wl3dl1b 3 жыл бұрын
몽골이 원어이고 이를 깎아내려 표현한 중국식 표현이 몽고라고 하네요.
@kais2456
@kais2456 2 жыл бұрын
역사 왜곡이 심한 요즘 많이 알지 못하는 짧은 역사지만 고구려 후예 이정기 제나라도 조명해서 널리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user-nz6gg1dg5v
@user-nz6gg1dg5v 3 жыл бұрын
이덕일 선생의 역사방송 추천합니다. 이덕일.이덕일.이덕일.... 돈귀신 뒤집어쓴 백년호강 짝퉁보수 남괴토구당의 뿌리가 , 2천년전으로 올라갑니다. 흥미롭지요.
@user-cy8lw9nm4h
@user-cy8lw9nm4h Жыл бұрын
@user-vc5db3oh1y
@user-vc5db3oh1y Жыл бұрын
강화천도는 작전임돠.나얀한 신료들과황제 밑에놈들이 계경으로 돌아가다망함
@user-sv5hu1wg9v
@user-sv5hu1wg9v 2 жыл бұрын
히을 키우자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반도식민사관 역사왜곡
@user-yc8ju1sb2j
@user-yc8ju1sb2j 2 жыл бұрын
근데 생각보다 강화도가 고려의 임시도피처치고는 건물이나 유물 흔적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음...1232년 몽골 침입 때 강화조건으로 강화 남산의 성을 허물라고 했을 정도로 당시 규모가 상당했음...고려궁지터도 그렇고.
@bgkhan4475
@bgkhan4475 Жыл бұрын
그런거 없는걸로 알고 있는데 40년 수도의 궁성유물 나오면 얘기해주세요.
@user-yd2lg6sm6b
@user-yd2lg6sm6b 10 ай бұрын
C 도대체 모가 있다는거죠 아무것도 없던데
@user-ip9yu7lp1q
@user-ip9yu7lp1q 3 жыл бұрын
개처량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기
@gigicreater
@gigicreater 3 жыл бұрын
몽골한테 배울점이 많네 ㅋ 그걸 미국이 써먹고 있으니 ㅋ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3 жыл бұрын
그 몽골도 한족 문화에 취해서 망함.
@user-eg9oz5uz5y
@user-eg9oz5uz5y 2 жыл бұрын
고려 고종 무신정권 강화도 요세
@jsch4580
@jsch4580 2 жыл бұрын
무신정권의 전략이다
@user-zr8vb1uw6e
@user-zr8vb1uw6e 3 жыл бұрын
어쨌든 항복을 안 했으니 고려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거네
@user-we7sg3if8p
@user-we7sg3if8p 2 жыл бұрын
항복했음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2 жыл бұрын
거기다 빤쓰런
@mezzohk
@mezzohk Жыл бұрын
고려정부 빼고... 몽고군의 괴뢰 정부 세웠으면 어쩔...
@user-sj7ft7ym9k
@user-sj7ft7ym9k 10 күн бұрын
구 왕조시대를 현 민주시대의 잣대로 평하는 것 자체부터 역사적 진실은 왜곡된다
@hab7712
@hab7712 3 жыл бұрын
통일신라 강역은 만주까지 였다 ...유 튜브
@hab7712
@hab7712 3 жыл бұрын
@오징어동해안 조선족 댓글 부대??
@sssu6572
@sssu6572 3 жыл бұрын
신라가 당고종부부에게 덜 맞았구나.정신 안차릴레
@hab7712
@hab7712 3 жыл бұрын
@@sssu6572 상해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인가 망명정부인가 .. 유튜브 요동반도가 한국땅이라는 중국지도부 발언에 난리난이유..유 튜 브
@sssu6572
@sssu6572 3 жыл бұрын
@@hab7712 뭘 홍보할려고? 지겹도록 많이 봤다..님까지 관심 못가겠다.빠이빠이
@hab7712
@hab7712 3 жыл бұрын
@@sssu6572 우리땅인거 가르쳐 주어도 아니라고 하는사람은 왜놈이나 중국놈?
@2f5lofbread57
@2f5lofbread57 4 ай бұрын
찌질한 조선반도에 역사를 묶어두려하네~
@kjs0818
@kjs0818 3 жыл бұрын
여몽연합군. 일본 침략.
@user-vy5kz2rm8e
@user-vy5kz2rm8e 2 жыл бұрын
고려를 멸망시키기 보다는, 재물과 인력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봅니다. 왕조가 없어졌다면 나라도 없어졌을 가능성 이 크므로 결국 최우의 천도는 옳았다 보입니다.
@user-qc3qy9fd2v
@user-qc3qy9fd2v 3 жыл бұрын
그래서어쩌라고
@bruceoh748
@bruceoh748 8 ай бұрын
그건 작전이기도 도피이기도하다 아시아 유럽까지 정복한 원나라의 군대를 이길수는 없었고 원나라도 자기네 조상이 만주와 신라계통이라 고려는 좀봐줘서 가장늦게 손을본것이다 그리고 원나라는 해군이라는게 원래 없었다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를 정복한 이후에 겨우수군을 가질수있었으나 초원의 전투에만 특화되어 있든 몽골은 수군도 원활치못했다 강화도는 수군이 상륙하기엔 매우어려운 지형이었음으로 그렇게 오래 버틸수있었다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가지않았다면 원나라가 망할때까지 버틸수있었다 고려왕실이 강화에 버티고있는한 고려백성들은 죽을때까지 끊임없이 저항할것이기 때문이다 원나라에겐 의미가 없는일이다 요즘처럼 무기와 통신이 발달했다면 국토를 초토화하고 지역을 나누어 식민통치를 할수도 있겠지만 원나라는 서쪽이나 남쪽 송과의 계속되는 전투때문에 고려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몽골이 오래못가고 백년남짖으로 멸망한건 당시로서는 어울리지않는 민주적인 절차 때문이다 지키스칸이 죽었을때 세ㅖ각지에 나가있는 군대가 모두 철수해와서 차기왕을 선출하는 원로원같은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간동안 점령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원래의 주인들이 다시국가를 세우고 점령함으로서 다시전쟁을하는데 군력을 낭비했다 우리처럼 세자를 책봉해ㅎ고 자동계승하고 각지역의 통치자들에게 통지만 했다면 자기들끼리 왕위툼으로 시간과 국력낭비를 하지않았을것이다 원나라는 끝내 이것때문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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