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레젼드형 ㅋㅋㅋ 어린시절부터 삼성 팬입니다 행님 ㅎㅎㅎ 행님덕분에 야구보며 행복했습니다 어여 2세 나으시길바랄게요 2세도 종범행님처럼 야구시켜주시면 더감사할것같습니다 ㅎㅎㅎ
@트리플H-x3f2 жыл бұрын
우승은 일본이 했나요~???
@SJ-lr5gt Жыл бұрын
@@트리플H-x3f 준결승에서 일본 만났는데 화면의 정민태가 9이닝 1실점 완투승 거두고 결승 진출했습니다
@paaj19273 жыл бұрын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_MS_Kim4 жыл бұрын
관리자님은 KBS 아카이브 털기에 푹 빠지셨고 덕분에 야구팬들은 비시즌에 초레어 영상 보게 되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남반타작2 жыл бұрын
정민태선수 공이 너무 좋네요 체격도 어마어마 하고 공이 묵직한게 정가운데 던져도 아무도 못칠거 같아요
@bby29582 жыл бұрын
양준혁을 밀어내고 5번을 친 고장량씨는 프로야구를 안가고 농협을 선택했습니다. 외야수임에도 불구 삼성으로부터 2차 1라운드 아주 높은 순위로 지명받았는데도 말이죠. 실업리그에서 4할 4푼을 치며 리그를 박살냈는데, 당시만해도 프로야구에 의구심을 품고 프로 대신 직장인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지명받고 실업리그 가버리는게 흔했던
@tsg2201 Жыл бұрын
가장 큰 것이 노후보장이었습니다. 실업은 급여는 적어도 은퇴하면 정직원으로 고용되어서 정년까지 별탈없이 갈 수 있었던 반면 프로는 당시 길어야 30세 넘어가면 은퇴하는 분위기에 은퇴후엔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했던 이유로 의외로 많은 유망주들이 실업행을 택했죠 물론 스타급 아마선수들은 계약금 부터 몇 억대의 거액을 받아 계약하는 경우도 적지않았지만요
@skpsun1828 Жыл бұрын
궁금한게, 실업선수가 야구 그만두고 과연 실무가 가능했을지...
@bby2958 Жыл бұрын
@@skpsun1828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오늘날처럼 운동선수=개돌대가리 분위기는 아녔죠. 허구연 양상문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석박사 학위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skpsun1828 Жыл бұрын
@@bby2958 허,양 같은 경우가 극~~~히 드문 케이스였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요즘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운동에만 매달리던 시기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snowbellk11664 ай бұрын
내기억에도 실업야구 출신들이 지점장 까지 가는 경우는 종종 있었던걸로 압니다
@jins86864 жыл бұрын
정민태 현대의 에이스 소속팀이 없어지지만 않았어도 그는 영구결번으로 남았을지도... 변화구낙차와 직구타이밍이 참 기가막혔던... 컴프야에서도 최동원다음으로 정민태공 치기 어렵기로 유명한...
@baeseok4 жыл бұрын
우승을 네번이나 했으니 그 기억만 담지요 ㅎ
@워러스윙4 жыл бұрын
코시 때 최동원의 홀로 4승 다음으로 정민태 홀로 3승도 대단한 기록이죠. 게다가 그3승은 모두 선발승! 특히 마지막 7차전은 완봉승!
@baeseok4 жыл бұрын
@@워러스윙 '03 코시 대단했죠 ㅎ
@김종희-c6p3 жыл бұрын
최동원 선동열 정민태 정민철...
@고라니-t8z3 жыл бұрын
@@최지훈-p6d6s 최동원도 과대평가지만 정민태도 만만치 않음... 일본가서 🐕박살남! 선뚱 일본 4년중 첫해 🐕박살, 2년차 잘함! 3, 4년차 감독이 믿지를 않음. 이대호 한일 두나라 개박살 내버림, 메이저에서 🐕박살남! 오승환 한국에서 날아다님! 일본가서 정상급 수준에 근접함. 메이저 가서 평범해짐! 박뱅 kbo 씹어먹음. 메이저 가서 🐕박살남. War 마이너스 기록하며 팀에 마이너스 요소가 됨. 박찬호 메이저리그에서 딱 5년 잘한 뒤 🐕박살남. 물론, 허리디스크 문제라서 텍사스 가기 전 예견된 문제이긴 했음. 일본 먹튀 후 말년 kbo에서도 🐕박살남. 추신수 고교 때 이미 전국구 탑이었으며 친구 이대호가 추신수와 견줄시 비교대상도 못 될 정도였음. 마이너 생활을 꽤 했지만 잘 했음. 이치로 때문에 못 올라왔음. 클리블랜드에서 s급은 아니었지만 b+ ~ a- 정도의 실력을 6년간 보였음. 그 후 6년이 부상과 에이징 커브로 하락폭이 컸음. 말년에 kbo에 왔으나 기량이 많이 하락한 상태에 왔기에 큰 기대 안함.
@이태형-h4q4 жыл бұрын
정민태선수 직구 ㅎㄷㄷ 박정태선수 흔들타법의 진화전^^ 기태형 하이바 테이핑 ㅠㅠ 정태 기태 홈런 멋져유~~ 양신 수비굿굿 마지막에 정민태선수 공 맞은부위 괜찮은지 ㅜㅜ
@zzang-mathis4 жыл бұрын
박정태 홈런 장면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김성식-b4q3 жыл бұрын
박정태선수가 추신수선수의 삼촌이라죠
@오비슨7 ай бұрын
9:42 대학 응원단 ~ 정말 풋풋하고 좋습니다.
@beaubourg074 жыл бұрын
하일성 의원의 목소리 아련합니다. 오랜세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어요
@meyenxhin68914 жыл бұрын
하일성 위원은 말로가 안 좋았지요
@TWINSNo-ze3gi3 жыл бұрын
의원ㅋㅋㅋㅋㅋ
@포스리얼3 жыл бұрын
@@최지훈-p6d6s 2016년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장상규-e6k3 жыл бұрын
추억의 레젼드들의 젊은시절이 반갑네요~~^^
@오비슨7 ай бұрын
17:25 마지막에 완투승한 정민태 ~ 오른발에 강습타구 맞았는데 ... 아무도 신경 안 써주고 혼자 절뚝이며 내려옴. 이후 한국 프로야구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또한 해외 야구계에서도 여러 사고들이 생기면서 그라운드 위의 안전불감증은 많이 사라진 상황이기에,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때는 그냥 그랬음.
@73comin3 жыл бұрын
와 삐쩍 마른 양준혁에 게다가 수비요정 양준혁이라니 이건 귀하네요 ㅎㅎ
@오비슨7 ай бұрын
북경 아시안 게임 ... 나 재수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방송 못 봤지만 세월이 34년 흐르고, 이렇게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게 되니 ㅎㅎ 감회가 새롭군요. 업로드 감사합니다! 😎
@jhlee10802 жыл бұрын
12:56 거침없는 해설
@---psy4 жыл бұрын
정민태 폼 오랜만에 보는데 끌고나오는 과정이 선동열과 흡사하네요 릴리스포인트도 상당히 앞에있는듯
@karrykim85694 жыл бұрын
선동렬선수가 일본 갈때 남은 한국리그에서 자신의 뒤이을 선수를 정민태선수라고 했죠
@킵고잉-n7q3 жыл бұрын
영리허고 공도 진짜 좋앗쥬
@오영학-y1s3 жыл бұрын
굉음의 알루미늄 배트 소리.추억의 이종범,양준혁,박정태~!ㅎㅎ
@준원김-d7z4 жыл бұрын
9번 이용석 단국대 패트리엇타선을 이끌던 이용석-심성보-강성우 투수 김홍집을 앞세우고 91년 대학야구 최다 우승팀 입니다. 그 당시 해태지명 후에 왜 일찍 야구를 접었는지 ㅜㅜ 후에 한양대 장석희도 그렇고
@jong210004 ай бұрын
당시 고2땐가...일욜 오전에 티비 시청했던 기억이 있는데 박정태 홈런치는거보고 우리 롯데 연고지명 예정선수라 기뻐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으네요...세월 참, 34년전이라니...
@normaltv51502 жыл бұрын
한국 라인업 죽인다.... 캬....
@승락이-f4r Жыл бұрын
전설의 레전드🎉🎉🎉
@확마-i7l4 жыл бұрын
내야 레전드급. 1루 양준혁,2루 박정태,3루 유지현,유격수 이종범!!!!
@포에버0124 жыл бұрын
양준혁이 1루였던 시절이 있었다니...
@AreYouTheNo.13 жыл бұрын
@@포에버012 신인때도 1루임
@brianahn38123 жыл бұрын
2002 축구 멤버급이다.
@이사만루이야기-n3o3 жыл бұрын
@@포에버012 본인피셜 데뷔때 1루 보고 당시 김성래도 1루 보았음. 그러다 이만수, 류중일 대선배와 함께 수비를 하다보니 어느순간 스티브 블레스 걸려서 1루 보기가 힘들어 하던 시기에 95년 국민타자가 1루 정착하고 양신은 자연스레 우익으로 나가면서 터닝 포인트가 되면서 골글 외야수가 됨.
@chkim81434 жыл бұрын
와 지현이형 써드 ㅎㄷㄷ 엘지94년시절부터2000까지 어깨 좋앗는대
@singingindark123 жыл бұрын
국내 라인업 봐봐.. 90년대를 호령했던 타자들인데.. 8:17 그와중에 식빵 구우신 현 엘지감독님..
@jao2022 Жыл бұрын
와나 8:05 저기서 3루까지 다이렉트로 던졌어
@snowbellk11664 ай бұрын
ㅎㅎㅎ 식빵 크게 했네~~
@mskim82754 жыл бұрын
8:15 18을 ㅋㅋ
@baeseok4 жыл бұрын
식빵 먹고싶다 ㅎ
@roeownd14 жыл бұрын
와 오치아이 코치님 젊으신거 봐ㅋㅋㅋㅋㅋㅋ
@victor-wt2qr3 жыл бұрын
1:32 정민태 선수 손가락으로 코 풀고 유니폼 바지에 손가락 닦음
@김종희-c6p14 күн бұрын
ㅋ ㅋ
@fcsunbsv19914 жыл бұрын
야구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선보였지만..... 정식종목이 아니라 시범종목이였음 이때 4개국 출전함.... (금/타이완 은/대한민극 동/일본 4위/중국) 그리고 4년뒤 1994년 히로시마 대회부턴 정식종목에 합류됨.... 또한 소프트볼도 이대회에서 첫 선보임.... 정식종목에 채택되고나서..... (참고로 야구&소프트볼경기장은 베이징 펑타이 야구장임)
@지유안-l5u4 жыл бұрын
8:09 비디오 판독 있었으면 세이프
@jlee45733 жыл бұрын
10:53 포기태 장타치고 뛰는거 포기하다가 아웃
@소용길3 жыл бұрын
고장량,이용석 생판 첨 듣는 선수들이군요
@watch_dogsaiden28843 жыл бұрын
이용석 - 프로생활은 실패 고장량 - 프로 안오고 실업팀 농협가서 그대로 직원으로 여전히 근무
@진짜스포츠4 жыл бұрын
박정태 경성대 아마추어시절에도 진짜 잘했네요.~ 박정태가 이 게임의 MVP네요.
@검언정상화4 жыл бұрын
프로에서 롯데 레전드 아닌가요?
@백동주-f9j3 жыл бұрын
하위원님 목소리 정말 그립네요. 하위원님만이 가진 게임을 읽는 눈이 있었는데요ㅜㅡ 너무 아쉬워요
@좋아고앵이가4 жыл бұрын
kbo 레전드들 출전경기에서 알루미늄 빠따소리나니 되게 위화감 드네 ㅋㅋ
@쿠우-e8r4c2 жыл бұрын
와 마지막 이종범 수비 ㄷㄷ 민태형님 구위도 구위지만 1실점할수밖에 없는 야수진이 있기에 가능했을듯
@kimchi64193 жыл бұрын
하일성 형님 목소리 ㅠㅠㅠㅠ
@yagusamchun4 жыл бұрын
한일전은 종목 관계없이 재밌네요 ㅋㅋ
@won63593 жыл бұрын
국대 4번타자 김기태를 거르고 한양대에서도 별볼일 없는 오희주를 왜 1차지명 한건지? ㅋㅋ 진흥고 시절 명성 하나만으로 오희주 지명한거 같음 고장량은 군산상고시절 조계현 친구였지만 원광대 시절에도 강타자였지만 프로대신 실업을 택함 같은 동기인 군산상고-동국대 4번타자 출신 한경수(해태지명)도 프로대신 실업을 택했었고 백재우는 전주고-원광대 출신으로 해태 지명당했지만 김정수 차동철 김대현 동기지만 프로대신 실업을 택함
@안종구-i9q3 жыл бұрын
일본선발투수가 삼성2군감독이라니 참 신기한 인연이네...
@지성일광3 жыл бұрын
00:24 1번타자 라이또 선수가 나왔습니다 ㅋㅋ
@mook_k7044 жыл бұрын
양신이 국대경험이 없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기 증거가 있네요. 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전에는 국가대표 경기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출전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양신이 데뷔한 93~98년까진 이벤트성 경기인 한일슈퍼게임 정도밖에 나갈 수 있는게 없었죠. 프로 데뷔 이전에 아마추어 대학선수로 국가대표로 뛰었던 게 지금 영상에서 보는 아시안게임이고요. 98년 아시안게임 때는 미필선수들을 중심으로 팀구성했기에 군필인 양준혁은 빠졌습니다(부상으로 이미 면제였던 이승엽도 명단 제외)98년 이후에 99년인가 드림팀2기 명단에 들어갔었죠. 흔히들 말하는 수비능력이 모자라서 그렇다, 동포지션에 더 나은 선수가 있어서 그렇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국제대회가 있는 시즌 명단구성 할 시기엔 부진하거나 부상이었다, 02년 이후로는 국대로 뽑기엔 노쇠화가 진행됐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에 다 동감하지만 한창 잘 치던 시절엔 규정상 출전 자체가 불가능 하기도 했다는 걸 언급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아마야구 대표팀 최고 내야 조합. 1991년도. 양준혁(1루수), 유지현(2루수), 황일권(3루수), 이종범(유격수). 포수 : 장광호 투수진 : 정민태, 구대성. 김홍집, 지연규, 김도완, 위재영, 문동환, 권명철. 정말 멤버가 화려했었는 데... 대만에게 져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게 못 갔음.
@배인규찐일베구걸쟁이4 жыл бұрын
지고, 못갔다면서 뭐가 화려하단거죠? 결과가 헬망인데?
@정성원-r8m4 жыл бұрын
@@배인규찐일베구걸쟁이 결과는 안 좋았어도, 멤버는 좋았었죠. 꼭 멤버 좋은 팀이 좋은 성적 거두지는 않죠. 그 유명한 축구팀들이 항상 우승하지는 않듯이.... 사족으로 핑게로 말씀드리면. 아시아 예선때 편파 판정으로 대만에 졌었어요. 명백한 아웃인데(충분한 아웃) 세잎 처리하고, 바로 직후에 구대성이 역전 홈런을 맞아 버렸죠.
@배인규찐일베구걸쟁이4 жыл бұрын
@@정성원-r8m 아니ㅋㅋㅋㅋㅋ성과를 내야하는 집단서 예선탈락인데 최고라뇨? 개개인의 인성조합이면 몰라도 성과를, 결과를 내야하는 국가서 밀어주는 집단이 아무결과 없이 탈락인데 최고라뇨ㅋㅋㅋㅋㅋ 모래알 팀웤이거나, 능력부족해 진거 그냥 인정합시다. 제발 스포츠에 만약, 만약...달지말고
@정성원-r8m4 жыл бұрын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스페인 축구 팀이 네덜란드에게 1대5로 참패하는 등, 처참하게 조별 예선 탈락했는 데. 그래도 스페인을 강팀 또는 최고 팀으로 부르죠. 나는 성적(결과)과는 무관하게 멤버 그 자체는 최고 팀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쪽은 결과가 폭망인 데. 무슨 최고 팀이냐 ? 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생각 틀려요. 그냥 그쪽 생각대로 사세요. 그만 합시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문제로 서로 감정 상하지 맙시다.
@배인규찐일베구걸쟁이4 жыл бұрын
@@정성원-r8m 그라이소. 주무시소 아재요.
@baseboy51524 жыл бұрын
이 때는 우리도 순순 아마추어라 비등한 대결이 되네ㅎㅎ. 우리 국가대표를 드림팀이라 부른 첫 팀은 98년 방콕대회부터잖아요.
@koleanan10014 жыл бұрын
양준혁과 박정태 아마추어시절엔 타격폼이 얌전했군요
@김구-s4s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프로야구계 레전드들 활약상 프로때도전부날라다녔지만 저때도 대단했구먼
@dennisy53684 жыл бұрын
무슨 내야가 올타임 올스타급이네요 :)
@진지청년4 жыл бұрын
역시나 아마야구가 발전되어야 프로야구가 있다 야구협회 제대로 하자
@montanatony42094 жыл бұрын
아 유수호, 하일성 콤비 그립습니다.
@park5594 жыл бұрын
라이트필다 레프트필다 쏫스탑 ㅡ유수호ㅡㅋㅋ
@화이쌤4 жыл бұрын
오~오치아이감독님^^
@강규영-y7q4 жыл бұрын
당시 구대성은 무슨 경기에서 무엇 때문에 부상을 입었던 걸까? 혹시 한양대 시절 혹사로 인한 부상이?
@그냥유튜브-n1o3 жыл бұрын
구대성 선수는 혹사로 인해 대학때부터 어깨수술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에서 보면 팔이 내려와있죠 윈래 수술전만 해도 전통 오버 투수였고 프로때보다 볼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Hotang284 жыл бұрын
다음 대만전도 올려주세요 ㅋㅋㅋㅋ
@hoonjea843 жыл бұрын
박정태가 스탠스 제외하면 가장 요즘 야구랑 비슷한 스윙이네..
@이태인-r6e3 жыл бұрын
1:40 GG사토 그 사람임?
@윤준식-o5l4 жыл бұрын
일본 우익수 어깨 개좋네 ㅋㅋ
@신더가드4 жыл бұрын
킹준식...
@doubleplay063 жыл бұрын
유지현이 톱타자... 그때 불과 대학생 1학년인거 감안하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엿볼 수가 있겠네요. 이종범은 2학년, 양준혁은 3학년 그럼 김기태와 박정태는 4학년 자료 뒤적여보니 재밌는게 올해 lg입단 신인 이영빈의 아버지 이민호(한화)도 유지현하고 동기였나보네요 같은 1학년으로 여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명단에 끼인거 보면...
@robinji274 жыл бұрын
12:53 ㅋㅋㅋㅋㅋㅋ 알을 까는 이종범 ㅋㅋㅋ 공영방송 캐스터의 멘트 맞음?
@godorara4 жыл бұрын
알을 깠다는 표현은 1989년 한국시리즈에서 장종훈 실책때 제일 먼저 나옴 ㅋㅋ 그때 이후로 쓰게 된거같은데
@이상현-k7i4 жыл бұрын
오치아이 에이지 감독님 리즈 시절
@김재박-l7o4 жыл бұрын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서재응 김병현 선동열 대학경기 보여주세요
@baeseok4 жыл бұрын
임선동 데리고 계셨쟎아요 ㅎㅎㅎ
@dkkang19693 жыл бұрын
양준혁 얼마나 옛날 사람인가 날씬
@시간의강3 жыл бұрын
대학생 이종범 선수를 보다니ㅎㅎ
@포스가함께하길-p1r3 жыл бұрын
유격수 이종범 너무좋다 ㅋ
@tnkm934 жыл бұрын
양준혁 이때만해도 말랐었네ㅋㅋ
@bondjames60064 жыл бұрын
프로데뷔하고도 잠시 말랐었어요 ㅋ
@숨소리-u5c3 жыл бұрын
이대호도 투수할땐 말랐었어요...ㅠㅠ
@트리플H-x3f7 күн бұрын
신인때 도루도 곧잘하고 몸은 슬립했는데 머리가 컸음~ 그당시 머리땜시 체격이 그리 큰지는 몰랐음~!
@빵이빵숙이3 жыл бұрын
아시안게임은 대딩 애들 또는 프로 유망주애들이섞어서 가는게 나을듯 프로애들가는거 이제는 반대임
@휘발유불광동-s7h Жыл бұрын
저정도 멤버면 지금 어디랑붙어도 밀리지않을듯하네요 거기다가 하일성씨 해설 잘하네요 ~
@ComedianZorba4 жыл бұрын
오치아이가 정민태보다 공은 빨랐군요. 선발투수로서의 경기운영은 정민태가 좀 더 낫고.
@gwaksdGSDulsan3 жыл бұрын
역시ㆍ유격수 ㅡ 이종범 ㅎㅎ
@SJ-lr5gt3 жыл бұрын
캐스터 : 유수호 해설 : 하일성
@승현-i1m3 жыл бұрын
01:39 혹시 그 고마워요 사토인가요?
@선우현-m7x3 жыл бұрын
그사토는 G.G사토임 G.G사토 저때 초딩임
@성이름-g3z9o3 жыл бұрын
그 사토는 2008년이고 이 영상은 1990년인데 동일인물이라 보기 힘들죠.
@jyh9478 ай бұрын
이종범 송구속도 ㅎㄷㄷ....
@이성재-n4u3 жыл бұрын
5번치는 고장량선수는 어떻게 된건지?? 이때 5번이면 대단한건데..
@안타쇼824 жыл бұрын
나도 국가 대표 야구선수 되고 싶다. [곧 고등학교입학]입니다.
@김재박-l7o4 жыл бұрын
꿈을 갖고 목표를 확실히 세우고 정진하십시오 이루어질겁니다 단 포기만 하지 않으면요... 강정호가 동료선수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그선수에게 나 메이져리그 갈거다!라고 말했나봐요.. 그리고는 그 후부터 몸을 키우고 홈런을 30개 40개 씩 치고 메이져리그를 간겁니다. 강정호가 그런 말을 할 때가 김하성보다 나이가 많았을때 입니다. 결단하면 됩니다 파이팅
@bondjames60064 жыл бұрын
열심히 하세요 응원할게요.^^♡
@wootaekjeong50274 жыл бұрын
좋은 운동선수는 신체능력으로만 운동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고민하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훈련법을 습득하며 발전해야 합니다. 머리가 좋아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클림업 중에 고장량 선수가 실업에서 4할 2연패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 왜 제의가 없었는지?? 삼성제의를 거절 했네요. 삼성이 워낙 좋은 선수가 많아 본인이 거절 했다는데...
@gwaksdGSDulsan3 жыл бұрын
박정태 살아 있네 ㅎ
@스카이다이버-n5z3 жыл бұрын
이때의 대표팀 유니폼이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이 나서 지금 대표팀 유니폼 보다 좋아 보인다. 마치 예전 해태 타이거즈 홈 유니폼과 비슷한 느낌이다.
@strongpower43402 жыл бұрын
박정태 타격폼 국가대표때도 똑같았네ㅋㅋㅋ
@김윤서-k7v4 жыл бұрын
알벳쓰니깐 수비좋은 사회인야구 같은거 나만 그럼?
@강규영-y7q4 жыл бұрын
서울 올림픽과 1989년 대륙간컵에서는 노모 히데오가 일본팀의 에이스로 활약해서 후루타 아츠야와 배터리를 이뤘죠. 1989년 대륙간컵에서 구대성 선수가 노모의 토네이도 투구폼을 보고 특유의 투구폼을 고안해내고, 서울 올림픽 이후 1991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박동희와 후루타가 다시 만났을 때 후루타가 "뭐? 너처럼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직까지도 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라며 의아해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박동희도 자극을 받았는지 1992 시즌 (전반기 때는 그동안의 태업 문제와 장티푸스 때문에 강병철 감독이 2군에 내려보냈지만) 절치부심해서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해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고 하죠.
@homerun10043 жыл бұрын
07:20 박동희가 이 해에 신인으로 145이닝 10승 7패 7세이브 ERA 3.04 146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아나운서는 단호하게 박동희가 프로 첫해 실패했다고 하네 ㅋ 아무리 박동희가 특급신인이었어도 당시 신인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높았던거냐 ㅋ
@poetjang3 жыл бұрын
그때는 기본 투고타저였고 각팀에이스들 20승이 기본이니 5선발 신인이라도 방어율 2점대 혹은 15승 이상 아니면 그냥 그런 투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