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창동역에서 은행사거리 가려고 114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잠이 들어서 도착한 동네.. 어린시절 내 눈에는 참 신기하기만 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보니, 학생이 여기까지 왔냐며 아저씨 한분이 주먹밥을 주셨던 일이 있었지요. 문득, 작년 백사마을이 생각나 창동역서 똑같이 1142번을 타고 찾아간 백사마을은 공가가 많이 늘었더군요.. 거기를 걷다보니 고양이들이 밥달라고 야옹거리고 있어 황급히 밑으로 내려와 사료와 물을 사들고 어느 공가 앞에 밥을 놔두고 지켜보고 있으니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좋은일 했구만~ 미물이든 사람이든 밥을 주는건 정말 좋은일이야' 라고 방긋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혹자는 이 세상에 '악'만 남았다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라는 것을 백사마을서 느끼고 내려왔습니다. 저가 만났던 할머니와 아저씨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여름의지평 Жыл бұрын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댓글이네요^^
@un음주오락부차관5 ай бұрын
좋은일 했구만~이 질알ㅋㅋㅋ뭔 연극대본씀?
@지미니-e3l2 ай бұрын
@@un음주오락부차관보기 싫음그냥 지나가시게 시비충😅😅😅
@임경철-f9c Жыл бұрын
7:56 동영아저씨! 당시에 지나가면서 인사만 대면대면 하던 꼬맹이 입니다. 사셨던집 아래아래 초록대문집 꼬맹이가 올해 34살이 됬네요. 이 글을 보긴 어렵겠지만 반갑습니다! 여전히 동네에 계신걸 보니 반갑고 다행이네요!
@빅카-z5y11 ай бұрын
따뜻한 물 나오는 집에 사는게 소원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나는 얼마나 당연시 해왔으며 그럼에도 만족하지못 하고 세상에 온갖 허례허식으로 살아온 현 지금의 상황도 반성 하게 되네요
@@Tokinada9 그건 아님. 저분들 대다수가 저 동네에 적어도 40 50년 머무르셨는데 몇십년 같이 지낸 이웃들이랑 대화하면서 같은 동네 풍경 보는게 일상인데 이제와서 어디로 이사를 감 노인들 이사하는게 쉬운것도 아니고 짐 옮긴다고 아사가 끝이 아님 그리고 노인들이 인프라 누릴게 뭐가있음
옛 생각이나니 코끝이 찡해지네요. 20년 전에 중계 주공 6단지 살았고, 저 동네 바로 아래였고... 저 마을 살았던 친구들은 어찌 그리도 다 선량하던지.. 저 마을 가끔 놀러다니곤 했었는데... 다 셋방살이살던 친구들이라 지금은 다들 성공해서 저 마을에서는 살지는 않음... 옛 추억이 사무칠 정도로 떠오릅니다. 그때 친구들이 지금은 거의 대부분 저세상에 있고...
@user-my2472 жыл бұрын
생생한 옛날얘기 들으니 더 재밌어요:)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sikyungmoda92412 жыл бұрын
은시리님 저도 중계동 불암초 옆 현대아파트 살았는데 제 친구들도 6단지에도 살고, 104번지에도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되었네요..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들려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와서 아쉽네요.. 가끔 한국이 그리울때면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합니다.. 오늘밤 꿈속에서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 어릴적 친구들을 만날 것 같은 밤입니다~ 🥲
@딸기연두두부맘2 жыл бұрын
ㅜㅜ
@김태희-g8e2 жыл бұрын
마음이 찡합니다
@한마디-h2g2 жыл бұрын
아~! 중계동! 정규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논밭을 지나 민둥 산에, 서울의 여기저기에서 강제 철거민들이 내팽개쳐져서 시작된 동네. 1960년대 중후반 나도 장화신은 개척자가 되어 거기서 5년의 세월을 보냈었지요. 마을 입구에 조그만 야학교도 만들어 봉사도 했었고, 야무진 꿈을 가진 몇명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온 동네가 잔치를 했던 그곳. 나도 이제는 80에 접근하는 미국의 한 노인이 되었네요. 아~ 그 어려웠던 세월이여!
@와구와구-o1w2 жыл бұрын
늘 건강하세요 어르신
@연꽃-f9u2 жыл бұрын
아!그렇군요!
@호일-i9o2 жыл бұрын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풍암동금당산2 жыл бұрын
나도 미국 좀 데려가 주시오 돈은 만천달러(11,000) 있어요
@사라이-k3x2 жыл бұрын
미국 뼈 묻을겁니까
@WowLuckyBunnies2 жыл бұрын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다큐3일만 보면 아련해지면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제 이런 다큐는 어디서도 볼수가 없다
@노을희-u1i2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어릴쩍 살던 ㄷㆍㄷㅇ네 같아요
@까망이맘2 жыл бұрын
10년도 더 된 영상이지만 참 감사한 영상이네요. 환경미화원으로 나오신 분 사셨다는집 앞집에 애기때 살았는데... 토끼도많고 강아지도 많아서 앞집에 놀러가서 구경도 많이했고 어느날 불이나서 토끼들이 다죽어서 어린마음에 많이 울었던 기억도있네요... 집앞 도로가 아무리 뛰어놀아도 넓고 컸던 도로가 생각이나서 몇년전에 한번 가보니 차한대 간신히 갈수있는 좁은도로였더라구요 옛생각이 많이나네요
@everybodydose Жыл бұрын
옛날 10번 버스 종점이네요 (저는 40살입니다) 저희 할머니가 평생 저 마을에 사셨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집이 태반이었고 눈이라도 오면 길바닥에 연탄재를 부셔서 미끄러지지 않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좁은 골목을 제외하면 오고가는 길이 정해져있어 동네사람들끼리 인사하는게 일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동네 행정명칭이 중계본동이었고 배달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기피하는 동네였으며 사실 불량청소년도 정말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 근처 노원우체국에서 평생 집배원으로 근무하셨어요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울 땅값은 비싸고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홍수라도 피할 수 있게 산기슭에 모인 게 저 마을의 시초죠... 어마무시하게 덥고 습하고 겨울엔 춥지만 어찌되었든 침수는 되지 않았습니다. 저 마을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랬겠지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몸으로 일하며 잠을 자던 보금자리가 시초 일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저 마을에서 노인이 되어 공공근로를 하거나 고물을 주어 파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지금의 은행사거리(학원이 많던곳)이나 노원은 그때 한참 주공 xx단지로 아시아에서 아파트가 제일 많은 곳으로 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유일하게 저 동네만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4호선 창동이나 노원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건물이 낮아지고 네온사인이 없어지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보면 현대화의 그림자 같은곳에 저희 아버지와 할머님이 사셨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글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
@뿌잉뿌잉-t8c6 ай бұрын
91년도 친구 아버지께서 10번버스 운전하셨는데 경기공고 끝나면 딱 그시간에 지네 아버지 지나간다고 좀기다렸다가 꽁짜로 타고 갔던.. 벌써 30년이 훌쩍 세월참 그시절 그립네요 ㅎㅎ
@블링블링-i3n2 жыл бұрын
불평만 하고 살았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지금 주워진 제삶에 행복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이 어려운 삶을 잘 헤쳐나가길 그리고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바래봅니다
@이꺼꿀-i4m2 жыл бұрын
하루뒤면 다 까먹고 다시 불평합니다..
@icecream48739 ай бұрын
@@이꺼꿀-i4m그럴지언정..
@Schiu.da09112 жыл бұрын
이곳에서 연탄봉사를 했었어요 봉사가 끝난 후에 어르신들이 연신 고맙다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 어르신들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바라요
@정광호-v5s Жыл бұрын
잘햇어요@@@
@해피데이-g1s2 жыл бұрын
50넘어 지금은 좋은집에서 살고있지만 어릴적 달동네에서 자란 제자신이 생각납니다. 저분들도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삽질러2 жыл бұрын
연탄에 까만부분있으면 더 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왜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냐....
@ej80022 жыл бұрын
참 오랜만에 보네요..어릴때 밤에 연탄갈기 싫었는데..가스냄새도.. 부모님과 형제들 고생했던게 생각나네요..
@사랑아-w9o2 жыл бұрын
날씨는 춥지만 동네 주민들 마음씨가 따뜻하네요~ 보는사람 마음도 따뜻해져요
@ejlee0862 жыл бұрын
그건 제3자의 입장이니까요.본인 보고 저기서 한달만 살라고 해도 못버티고 뛰쳐나올겁니다🤣
@옥녀봉-k7r2 жыл бұрын
네, 맞습니다. 해요감사님^^ 그만큼 아직까지는 백사마을에 정이 많이 살아있다고보여지네요
@sky79-2 жыл бұрын
맞아요.. 가장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저보다 더한 삶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글 을 올립니다...
@정윤이-u5m2 жыл бұрын
많이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출연하셨던 모든분들 건강하시고 지금은 그 시절보다 좋은 환경에서 지내시고계셨으면 합니다 기도합니다🙏
@BitNana962 жыл бұрын
저도 백사마을에서 15년 살다가 19년도에 이사왔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라도 다시보니 옛추억이 떠오르네요.. 어르신들 건강하신모습보니 마음이좋네요.
@wethinkweare16672 жыл бұрын
2011년 방송입니다...
@힐링수영 Жыл бұрын
아직 재개발이 안됐는지 궁금하네요 ㅠ
@이응리을-i2w Жыл бұрын
@@wethinkweare166715년간 살다가 19년에 이사갔다는 말입니다
@i1zzze Жыл бұрын
@@힐링수영 노원구 사는데 지금은 아파트 밖에 없어요
@i1zzze Жыл бұрын
@@힐링수영헉 아니네요 대부분 이사하셔서 빈집만 있구 재개발 예정이래요
@johnathanha9340 Жыл бұрын
없는 이들의 마음은 없는 이들이 알고 방의 넓이가 행복의 넓이가 아니라는 양희경 배우님의 말씀이 정말로 가슴에 깊히 와닿네요.
중계동 아파트만 많이 있는줄 알았는데 이런곳이 있는줄 몰랐네요ㅠㅠ 옛날 생각난다.. 나도 어릴때 달동네서 살아봐서 고생하는 마음 너무 잘알지요ㅠㅠ 기도하겠습니다ㅠㅠ🙏
@sungjalee03182 жыл бұрын
역시 한국👍 추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생각해서 끝까지 고쳐주시고 가시는 기사님들 정말 고맙고 감동입니다. 저런 분들이 계셔서 나라가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God bless you~
@alforkcl2 жыл бұрын
이게 2011년 1월에 방송된 거였군요. 11년 전의 서울 중계동 모습을 영상에 잘 담았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sudalchingu Жыл бұрын
서울에도 달동네가 존재하는 지 처음 알았습니다. 서울은 도시가스가 놓여서 가스 보일러를 쓸 줄 알았는데 연탄을 쓰는 곳이 있군요. 백사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이 재개발이 되는 것이라니 사연을 아니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주민분들의 표정이 밝고 인상이 좋으셔서 저도 그 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백사마을 주민분들에게 항상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jsyang4614 Жыл бұрын
지금 아파트만 보다가 70,80년대중반까지 저런동네 엄청 많았었지 산동네~ 좁은 골목~쓰레트 집,기와집, 양옥집 정말 그립다 저 때가 좋았던것같다 아놀로그시대가 아직도 있어서
@a-blejun18242 жыл бұрын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 하다는걸 느끼게 하는 방송. 제발 이런 프로그램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
@sky79-2 жыл бұрын
자신은 따뜻하게 풍족하게 살면서 이런 방송을 자주 해달라는건 욕심같아요 겪어본 사람들은 추억이지만 안겪었으면서 이런것으로 위로 받으려한다면 .. 마음이 아프네요... 저분들이 이제는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되 가족과 이웃을 향한 이 따뜻한 마음을 잊지않고 살아가면 좋겠네요
@한마디-h2g2 жыл бұрын
겨울에 갑자기 들어와 언 흙벽돌로 집을 얼기설기 지었기 때문에 봄이 되니까 그 흙벽돌이 녹아 벽에서 물이 질질 흘러 도베지가 늘어지고 곰팡이가 생기고... 어느 따뜻한 봄날을 택해 벽을 새로 세우기도 했지요.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 미국까지 오게 되었지요. 꿈이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오그래영2 жыл бұрын
미국에서 행복하신가요
@물흐르듯이-u1o2 жыл бұрын
댓글을 자주 달아주셔서 보고 있습니다 여행말고는 한국을 떠난적없는 사람인데 울동네 충청도 소도시 읍내엔 미국으로 오십년전 시집갔다가 한국이 너무살기좋다고 일년이면 7.8개월 원룸살이 하다 가는 칠십대초반 언니있지요 아들 딸도 잘있는 미국가면 그렇게 오고싶어 오시는데 이제는 3년까지 살수있는거 만들어서 조그마한 연립도하나 장만 했어요. 뭐니뭐니해도 한국이 제일살기 좋은곳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우린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싶은데... 장단점은 있겠지요 한마디님 건강하세요~~
@sarayee1002 жыл бұрын
@@오그래영 미국에서 멏십년 살면서 한국도 왔다갔다 하는 친구 있는데 미국서 살면 한국생각나고 한국서 살면 미국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들면 어렸을때 살던곳이 그립고 외국생활 오래 하신분들도 나이드시면 고향에 묻이고 싶다고 하십니다..
@한마디-h2g2 жыл бұрын
@@물흐르듯이-u1o 감사합니다.
@한마디-h2g2 жыл бұрын
미국에 산 햇수가 한국에서 산것보다 많지만 마음은 늘 한국에 있습니다.
@esfp84822 жыл бұрын
십일년전 영상 이네요 지금쯤 어떤모습을 하고 있으려나요..^^ 마음속 오래도록 저장하고픈 따뜻한 영상 입니다♡
답십리 재개발되기전에 저런 동네서 살았음 겨울이 눈내려서 한밤중이나 새벽에 눈 치우러 나가면 굉장히 운치 있고 좋음 가로등도 led가 아닌 누런 전구인데다 집집마다 내뿜는 보일러 연기가 어우러질때의 감성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내리막에 눈까지 내려서 마을 어르신들이 종종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눈 치우면 서로서로 수고하십니다 덕담나눴었는데 ㅎㅎ 근데 눈내려도 자기 집앞도 안치우는 종자들은 겨울내내 안치우더라
@@나는나-j2x 그 찰영소 고개가 대장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 되어는대 그 아파트가 17억 한다고 하내요 동대문구 전농동에 17억 이것 누가 살까 53번 139번 뻐스 다 살어 젔지요
@나는나-j2x2 жыл бұрын
@@심마니-q2p 53번, 54번, 139번 53번 지나던 길에 있던 굴다리, 신답극장 아시죠? 언제적 이야기인지... 저에게는 그런게 추억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모습이 추억이겠지요. 오랜만에 옛날 생각 해봤네요. 감사합니다.
@심마니-q2p2 жыл бұрын
@@나는나-j2x 신답 극장은 용답동 입니다 극장 없어지고 예식장 되어다가 없어지고 지금은 아파트 지어고 용답동 3/2종도 재건축 중이고 아파트 짖겠조 요즘 때을 잘못만나 아파트 짖고 있어요(3/1.) 2가 아님 오타
@붉은단풍-s2t Жыл бұрын
이 영상에 등장하신 어르신들 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서울에 얼마전까지도 이런 동네가 있었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고단한 삶을 또 이어가고 계실지…. 모쪼록 건강하십시요. 어려운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재개발, 흉물스런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 징그럽다~ㅜ
@CHO892jaeumusic2 жыл бұрын
정이 듬뿍담겨ㆍ 살아남아있는 동네네요 고향이 그리워지는밤입니다
@TheJujulee2 жыл бұрын
사람이 그리운 요즘 같은 시절에 참... 가슴이 포근해지는 영상이네요. 옛날 우리 세대는 정말 다 저렇게 살았었는데... 이웃사촌... 형제자매들끼리 장성해서도 다 같이 모이고 먹고 나누고....
@박복남-c1r2 жыл бұрын
ㄷ
@젬마-t9t Жыл бұрын
요즘은 해외로 각자 따로 국밥;;;;
@유주나-i2c2 жыл бұрын
백사마을도 재개발 논의가 한창이라던데 원주민 분들이 쫓겨나지 않고 저 지역에서 계속 사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한국에 달동네도 많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도 매우 많음.. 티비에 잘나가는 연예인들 나와서 실없는 소리만 해대니 현실을 아무도 모름 세끼 밥 걱정없이 살며 두다리 뻗고 누울수있는 온전한 내 집, 내 방이 있는 것만해도 엄청난 행운임
@김영희-h8y9s2 жыл бұрын
서울에 신림동 에있는 난곡동 생각나네 달동네 눈에선 하다 좁은 비탈길 난곡초등하교 그립다 사람좋고 인심좋았는데 지금은 아파트
@-dallas_2 жыл бұрын
요즘은 옆집에 누구 사는지도 모르는 시댄데 옛날엔 동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이 살았었는데 참 좋은 동네내요
@gulim6232 жыл бұрын
어릴적 달동네 살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시절 힘들었지만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리운 시절인것 같아요
@생생-f2x Жыл бұрын
가난하지만 인정과 따뜻한 미소가 가슴이 저밉니다 4~5십년 전 우리네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서 만감이 교차하며 큰 감동 받았습니다
@전동우-b8u2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는 저런 마을이 많았지! 옛날 생각나네요! ㅋㅋㅋㅋ 😆 아! 눈물나네!
@이명순-d7f2 жыл бұрын
제일위 교회 아랬집에서 살아는데..겨울이면 살살내려왔는데
@장현호-d9u2 жыл бұрын
하루에 3장씩..ㅠㅠ 곧 추운 겨울이 다가 오는데, 백사 마을 좀 지원 해주세요.. 님들이 공금 횡령 안하면 저 마을 주민들 겨울 충분히 납니다.
@ZachiMungchi2 жыл бұрын
추운 겨울에 찍은 영상인데 마음은 제일 따뜻한 영상이네요! 다큐3일 고마워요!
@dreameroh48192 жыл бұрын
연탄난로에 주전자올려서 따뜻한 보리차 마시던 옛사절...교회가면 저렇게 했었는데 학교에서도...정겹네요 어린시절생각나요.
@펭러뷰-x5i2 жыл бұрын
불편하고 추웠지만 참 정감있고 그리운 풍경이에요. 시골마을 같다고 했는데 시골보다 서울 달동네가 저는 더 더 좋아요.^^ 단칸방에서 가족과 살 부비며 살고… 어렸을적 살던 동네는 지금 으리으리한 아파트로 꽉 차서 그 동네 갈때마다 서글픈 그리움이 들곤 하는데 중학교 졸업앨범에 학교 전경과 재개발 되기전 살던 동네가 같이 나온걸 발견해서 너무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고 눈물도 찔끔 나고 그랬네요. ㅎㅎ
@배달의기수-w7e2 жыл бұрын
그럼 저기서 대대손손 사세요.^^
@whiteblue062 жыл бұрын
@@배달의기수-w7e 어휴. 꼭 그렇게 말을.
@얼굴박살난김에탈코한2 жыл бұрын
달동네가 더좋다는건, 실제 달동네사는사람들 능욕하는거 아닌가? 예비군아저씨가 훈련병들한테 군대 그립다고 하는거랑 뭐가 달라ㅋ
노원구 쪽에 달동네가 있었다니, 중계,상계, 하계 15년 토박인데 왜 못봤을까..여건은 좋지 않지만 옛날감성이 느껴지고 운치가 있는 마을이네요...
@진주-e4j1p Жыл бұрын
음성이 참곱습니다...아나운서 동네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hosookyoo12522 жыл бұрын
저희도 제가 중학교 2학년 1968년도에 상계동으로 이사 갔었지요 수출용 조화공장 하느라고 일할사람이 필요해서지요 구로동애서 하다가 구로공단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할 언니들이 공장으로 이직해서 이사했어요 차편이 너무 불편하고 학교가 영등포라 멀고 고등학교는 홍제동이라 또 멀고 직장은 소공동이라 또 멀고 결혼해서 강남 논현동에 신혼살림 차리는 바람에 그 먼 거리애서 벗어 났지요 지금은 미국에 사니 집에서 더욱 멀어 졌네요 ㅠㅠ
@ming_9999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장면 할머니가 배웅하시면서 눈물 훔치시는게 참 마음 아프네요..
@하얀뭉게구름-o4t2 жыл бұрын
보는 내내 따듯함이 전해지네요 부디 중계동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김서희-o3p2 жыл бұрын
드라마 서울달에서만 본 달동네가 아직도 있군여 서울도심에 있는 시골풍경의 달동네가 있어서 좋으네여 시골처럼 동네분들하고 겨울에 고구마도 나눠먹고 그러시겠죠ᆢ제가 시골이 고향이라서 그런지 시골풍경이 있는 도심속 동네 엄청 좋아합니다ㆍ사라지지 않고 오래 도록 보존되었음 좋겠어여 ᆢ🤗🤗🤗
@별빛짜따요-u8w2 жыл бұрын
중계국민학교 나온지가 엊그제인거 같은데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네요 ㅠㅠ 그때가 요즘들어 더 그리워지는 동네~^^
@loveletter12082 жыл бұрын
6남매보는데 눈물나게 좋다..무진장 행복해보여서!!!
@도토리묵-q4x2 жыл бұрын
불편해도 살아가는 정감은 그대로 있네요
@김영준-z5c8z2 жыл бұрын
이곳으로 배송간 적이 있는데. 뭐... 한때 주말마다 불암산 올라가서 봤던 곳이기도 하구요. 건강하세요. 불편할 뿐이지. 행복은 마찬가지입니다.
@chn38202 жыл бұрын
나보고 살라하면 살고 싶지 않겠지먀 맘이 아련하면서 그리워 지네요
@겨울비트2 жыл бұрын
정겨운 우리 고향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아기여우-u7d2 жыл бұрын
분명 배경은 추운 겨울인데 따뜻한 영상이네요
@아름다운지구-u5h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스승님 💐 날이 무척 춥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 하시고 평안한 저녁 되세요
@박덕희-i9b2 жыл бұрын
70년도에 내가살던곳 중계동104마을 내나이 64살 아직도 그 옛날 그 모습이네요
@솔방울-b7w2 жыл бұрын
나의살던고향 내 어린시절 추억의 살아있는 우리동네가 요즘 엔 가끔 벡사 마을 로고 로 tv 에도 가끔 잘나오네 ㆍ우리 8통 시장통 에 온양 상회 아주머니 건강 하신 모습 반갑습니다
@의정부깽구2 жыл бұрын
전 1통입니다 ㅎㅎㅎ 쌈지공원
@이쁜날2 жыл бұрын
모두가 따뜻하게 행복하게 사는날 되길~
@soojeongchoikim51662 жыл бұрын
어르신들 정말 정감있고 따뜻해요.
@nsy94142 жыл бұрын
어릴적생각이나서 뭉클하네요 그때는 힘든것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려 뭔가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모습이대로인지 궁금하네요
@제이슨리-h6w2 жыл бұрын
쌀 연탄 석유 점빵에서 구매하는 시절두 있었죠
@짤쓰C2 жыл бұрын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11년전에 우리할머니도 저렇게 밝으셨는데
@어즈버-i4d2 жыл бұрын
그래도 그 정겨운 옛 시절이 그립네요 눈물이 납니다
@DDunkang Жыл бұрын
어릴때부터 여기서 살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갑네요 백사마을.. 최근에 갔었는데 팬스가 다 쳐져잇더군요 예전엔 집집마다 빼곡히 사람들이 다 살았엇는데.. 그립습니다 그 시절..
@suemiller1384 Жыл бұрын
와... 저도 78년도에 미국으로 오기전 마포아파트 뒤에있던 무허가촌 달동네에 살았어요. 버스 정류장서부터 걸어 올라가자면 3,40분이 걸리는 거리를 중, 고등학교 책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다리힘은 남못지 않아요. ㅋㅋ
@tv.27452 жыл бұрын
11년전 영상이면 많이들 세상과 등지셨겠다. 가슴이 멍먹 하네요.
@Rcsrhgghgorsz2 жыл бұрын
영화 한 편 본 것 같다.불편함도 많지만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이네요💕💖💕💖💕💖
@kmshin99102 жыл бұрын
아주 오래전 버스10번종점이 있던 곳이네 제 친구가 쌀집이랑 오락실을 해서 종종 놀러갔던 곳
@chaevely20602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이 정말 순수하고 정이 많아 보여요~요즘 이런 분들 시골에서도 없는데..
@normal770792 жыл бұрын
옛날 금호동 살때 분위기가 저랬음. 그래도 거긴 한강이라도 보이니까 답답하면 한강이라도 바라보며 마음을달랬는데 저긴 어떨지..
@루시-q1n2 жыл бұрын
다들 매섭지 않고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가 좋네요. 각자의 행복은 다르겠지만 저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란 인식은 편견 아닌가 싶어요. 매번 스트레스랑 싸우는 사람이나 저 분들이나 뭐.. 삶의 방식이 다른거지
#10년이 넘은 동영상인데 #이런동영상 을 젊은이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따뜻함을 #흠뻑 느꼈습니다. #20년 ㅡ30년前에는 흔히 볼수있는 광경였으나 #지금도 여기저기 있다고 합니다. #내눙력에 맞는 조금이라도 봉사해야겠다는 연민이 갑자기 울컥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