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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열린유신론? 과정신학? 다 똑같은 이단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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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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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66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영상에 언급된 양시무스님과의 예정론 끝장토론 kzbin.infooica90-kNJY?feature=share
@j-wn6ij
@j-wn6ij 5 ай бұрын
저는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전지 전능 전선에 대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논리적인 오류가 아닌가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인간의 논리보다 더 큰 영역인 전지 전능 전선을 인간의 논리안에 담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에서 일부분을 담아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혼인찬치 때는 전지 전능 전선이 무엇인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kidocee
@kidocee 5 ай бұрын
오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치밀한 구상과 이해를 한다해도 오히려 필연적으로 모순과 오류에 빠지는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derggt
@derggt 5 ай бұрын
그걸 이해한다면 신이겠지 악에 물들인 인간이 신을 해석 하려드는거조차 신에대한 반역이다
@user-nt5pp7zb5r
@user-nt5pp7zb5r 5 ай бұрын
전지와 전능이라는 개념에서 파생되는 논의 자체가 논리 규칙을 따릅니다. 고로 전지와 전능이 논리 바깥에 있는것이 아니라, 논의자들이 논리훈련이 안돼있거나, 애초에 전지와 전능이라는 전제를 깨고 싶은 것이겠죠.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본문 영상에서도 언급된 거지만, 애초에 전지 전능 전선이라는 개념부터 중세 철학적 논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사실은, 하나님은 미래를 모르실 수도 있어요. 그조차도 불가지의 영역이라고 해야 공평한 겁니다.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건 인간의 인지 제한으로 인한 논리오류다! 라는 건 기존의 전지전능 해석에 편향적으로 인간의 인지제한을 이용하는 작태일 뿐이죠. 논리게임을 해볼 것 같으면 정직하게 제대로 참여하든가. 불가해로 남겨두고 싶으면 공평하게 똑같이 남겨두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데 유리할 때는 논리를 가져다 쓰고 불리할 때는 인간의 한계를 들먹이죠
@user-nt5pp7zb5r
@user-nt5pp7zb5r 5 ай бұрын
@@user-ou7yt1hn3n 중세철학적논리에 불과.. 전통과 계보를 무시하는게 기독교는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교부철학의 성과를 무시하는게 기독교가 아닙니다. 변증을 포기하는것도 기독교는 아닙니다. 변증을 포기할거면 숭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죠. 당시 세인들의 거센 공격 속에서 교회를 지켜낸 처절한 성과를 고작이라니.. 그렇게 안일하니 수백만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도 세속 담론에 휘둘리는 겁니다.
@user-qh5eq8uw2r
@user-qh5eq8uw2r 5 ай бұрын
너무 공감되고 이해되는 내용이네요. 저도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겪었습니다. 확실히 전지전능 안에서는 자유의지가 설자리가 없는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전 제 나름대로의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완벽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오컴의 반사실적 영향력이라든지…전지전능을 어느정도 내려놓고봐야 자유의지나 희생, 사랑이 설 자리가 보이거든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user-qh5eq8uw2r
@user-qh5eq8uw2r 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5 ай бұрын
사실 이 세상을 만드신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을 제한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로 세상에 숫자란 개념이 주어짐으로 그 누구도 그 무한대적으로 뻗어나가는 숫자의 끝을 헤아리기 불가능해졌습니다. 논리에도 이런 부분이 여럿 존재하죠. 또한 사람의 자유의지적인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도 방법과 규칙이 보여지는 부분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둔 것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보내실 이유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그 제한된 규칙 속에서도 하나님께선 당신의 뜻과 계획을 능히 이뤄가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우린 전능함으로 인지함이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믿습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옳습니다. 케노시스 창조론이라는 책에서 많은 신학자와 과학자들이 이에 관한 견해를 펼쳐놓았지요.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5 ай бұрын
@@DamascusLiveTV 책 소개 감사합니다
@thoma2028
@thoma2028 5 ай бұрын
과정신학 안에서 하나님이 악에게 패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가? 일단 저도 배움이 짧아서 잘은 모르지만 논문을 찾아본 결과,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과적 본성은 이러한 보존 기능이외에도 이상화 기능을 통하여 각각의 존재를 객체적으로 불멸하게 만든다"(Stephen Ely, The Religious Availability of Whitehead's God, 259) 즉 하나님의 기억에서 개인의 악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사소함 속으로 잊혀지나 그 개인이 실현시킨 가치들은 영구하게 기억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악의 경우들이 단지 잊혀질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은 이상화의 기능을 통해 그 경우들을 완성된 체계 속으로 통합시킨다.(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525)" 라고 하네요. 오히려 악에게 패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악 조차도 하나님 안으로 통합시키는 사상이 과정신학 사상인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이게 패배라고 한다면 패배라고 할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연세대 손호현 교수님의 이라는 논문 참고했습니다.
@thoma2028
@thoma2028 5 ай бұрын
논문에서 일부분 발췌를 했지만, 논문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악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좋은 쪽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잘 몰랐던 부분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johnko5234
@johnko5234 5 ай бұрын
만렙스탯을 유지하기위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제한되면 하나님이 악신이라고 하는건 인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이타적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자기중심성으로 모든 영광을 받길 원하십니다 '은혜의 영광'이라는 표현이 성경에 있듯이,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짐으로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뱉으신 모든 말씀이 성취됨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거기때문에 그중 하나로서 악인에 대한 심판 역시 말씀에 기록된대로 이루어져야하고 그로써 영광을 받으시는겁니다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거처럼 심판으로써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로왕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위한 예비한 그릇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악을 심판하는 하나님도 우리에게 영광을 받으실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이타적이면서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라는걸 인정해야합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그 완전한 자기중심성을 악하다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magiah2481
@magiah2481 5 ай бұрын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십니다. 인간이 자기가 보기에 하나님에게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다 악이라고 규정하고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할 리가 없다." 고 말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다 빼버리려고 하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짓입니다. 심지어 그걸 판단하는 기준도 인류 전체의 기준이 아니라 그냥 자기 개인의 기준입니다. 나한테는 안 좋게 보이는 하나님의 어떤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좋게 보일 수도 있거든요. "뭐? 하나님이 미래를 다 아신다고? 그런 하나님은 안 믿을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뭐? 하나님도 미래를 모르신다고? 그런 하나님은 안 믿을래!"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어느 쪽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입니까?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면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가져와야지 우리의 취향이나 선호를 가져오면 안 되는 겁니다.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왜 만렙스탯이 유지되면 선하심이 제한되고 하나님이 악신이라는 것인지 그 논리적 추론 과정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때 만렙스탯이라는 것은 전지전능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런 겁니다. 1.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면 결정론이 참이다. 2. 따라서 자유의지는 전면 부정된다(구원에 대한 자유의지 뿐만이 아니라). 3. 그러므로 결정론이 참이라면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밖에 없다. 4.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도 사실은 하나님의 결정이다. 왜냐하면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 행위는 하나님의 입력이기 때문. 5. 예컨대 살인도 살인자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고 강간도 학살도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러한 개별구체적인 악들이 고차원적인 선에 봉사한다 하더라도 각각의 악 자체는 인간의 자유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 행위라는 것. 즉 인간은 그 어떠한 자유 행위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6. 궁극적으로 모든 악은 하나님께로 귀속되고 하나님께로 수렴된다. 논리적으로는 이게 맞습니다. 이건 지난 토론에서 양시무스님도 인정했던 부분입니다. 그분은 물론 자기는 전지성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비논리적으로 믿는다 하셨지만요.
@johnko-fz3se
@johnko-fz3se 5 ай бұрын
@@user-ou7yt1hn3n 아이디를 보니까 저랑 구원론, 예정론으로 토론했던 분이군요. 결국 대답을 마지막에 안하셨는데 그 당시 제가 대화를 하면서 느낀것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로 말씀을 하셨고, 예정론에 대해서 극렬한 비판을 하셨었죠. 근데 막상 본인 구원관을 얘기하는데 너무 모순되고 정리도 전혀 안 되어있어서 그걸 지적했더니 결국 답을 안 하셨습니다. 예정론을 비판하면서 예정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세상에 대해서 매우 비성경적인 말씀을 하셔서 놀랬습니다. 지금 본인 댓글도 그 때 나눴던 얘기와 유사해보이는데 솔직히 굳이 답을 해야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간단히 답을 드리자면, 일단 님 의견이 다 맞다고 쳤을때 인간이 하나님을 악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릇은 만든자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발언할 수 없습니다. 루터가 한 말을 지지합니다. "만일 구원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당신 마음에 든다면, 구원 받을 자격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때 당신은 불평하면 안됩니다."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johnko-fz3se 저번에 나눴던 대화 말씀이시면 저는 댓글을 남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오류인지 뭔지 댓글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가 되어 있더군요. 다시 작성해서 남길까 하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기력이 너무 딸려서. 저희가 나눴던 동영상 다른 댓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다른 분들이랑도 길게 얘기를 나눴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넘겼습니다. 그때 존코님의 반론에 간단히 답변드려 보자면 특별히 어떤 제 구원관이라는 것이 있다기보단 그나마 합리적으로 수용할 만한 구원 가설은 그런 거라고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 구원 가설이 제가 이전해 말씀드렸던 자유의지 전면 부정과 모순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존코님께서 범주 구분을 잘못하신 겁니다. 저는 두 단계로 나눠서 답변을 드렸었던 거거든요. 1. "예정론이 함의하는 클래식한 전지성 해석이 참이라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2. 그로 인한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클래식한 전지성 해석을 수정해서 자유의지와 양립시키는 것이 논리적으로 유효한 방편이다. (그 자유의지는 물론 구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타락가설이 온전히 상쇄될 수 있기 때문. 타락은 인격적 하자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기계적 하자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자유의지로 상쇄되지 않을 경우 악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자유의지 긍정은 전적타락이랑 모순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셨는데 뭐 전적타락 가설을 가장 믿을 만하다고 지지하시는 것은 존코님의 자유지만 사실상 부분타락 가설 아니냐고 하셨던 선재적 은총론을 믿는 분도 많고 부분타락 믿는 쪽도 많고 그렇습니다 신교 구교 포함해서.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성경 텍스트 해석인지까지 논할 생각은 없고요 제 관심사가 아니라서. 다만 논리적으로 보면 부분타락이(혹은 선재적 은총론이) 낫습니다. 자유의지를 양립시킴으로써 악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하여튼 악하시지 않다는 식으로 회피할 수도 있긴 하죠.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1~6번까지의 논리 전개 자체는 회피하실 수 없습니다. 예컨대 님의 주장은 결국 이런 겁니다. '당신(캭하)의 의견이 맞다고 쳤을 때: 즉 전지성이 참이라면 결정론도 참이고 진정한 자유 행위 주체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고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도 사실은 다 하나님의 결정이다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 행위는 하나님의 입력이기 때문이다 살인도 살인자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고 강간도 학살도 하나님의 결정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악은 하나님께로 귀속되고 하나님께로 수렴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악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여튼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튼 전선하기 때문이고 악하다고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살인과 강간과 학살의 자유행위 주체이지만 하여튼 선하다' 요컨대 지금 존코님께서는 제가 제시한 논리전개 자체는 단 하나도 논파 못 하셨습니다. 그냥 선하시니까 선하다라는 순환논리로 '하여튼'을 시전한 겁니다. '하여튼'은 논리가 아닙니다. 비논리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비논리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비논리적인 신앙도 얼마든지 있을 순 있죠. 다만 비논리적이라는 것일 뿐.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johnko-fz3se 그리고 무엇보다도요. '하여튼'을 시전하시려면요. 요컨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시전하시려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악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여튼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튼 전선하기 때문이고 악하다고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 앞에 것도 인정은 하고 들어가야 하거든요. '즉 전지성이 참이라면 결정론도 참이고 진정한 자유 행위 주체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고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도 사실은 다 하나님의 결정이다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 행위는 하나님의 입력이기 때문이다 살인도 살인자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고 강간도 학살도 하나님의 결정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악은 하나님께로 귀속되고 하나님께로 수렴된다' 이에 관해 따로 논박하지 않으실 생각이라면 말입니다. "님 의견이 맞다고 쳤을 때" 같은 언술로 회피하지 마시구요. 그게 번거롭고 성가시니까 '하여튼'을 시전하신 거겠지만요. '하나님은 살인과 강간과 학살의 자유행위 주체이지만 하여튼 선하다' 그냥 정직하게 이렇게 주장하세요. 하여튼 불평 못한다고 했으니까 선하다를 시전할 것 같으면요. 제가 이전에 대화를 나눴던 양시무스님은 저거 다 인정했습니다. 다 인정하고 하여튼 시전헀습니다. 존코님보다는 훨씬 정직한 태도를 보여주신 거죠. 여담이지만 위와 같은 얘기들이 다소 과격하고 감정적으로 보이실 순 있어요 그런데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저런 결론이 나와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지난 토론에서 이중예정을 지지하셨던 양시무스님께서도 저 부분은 인정을 했던 거고요 논리적인 측면에서는 저게 맞으니까요
@Kst0318
@Kst0318 5 ай бұрын
ㅎㅎ 미국에도 많은 신학이 있고 서로 반대입장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멋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정말로 감사하네요 ㅎㅎㅎ 그리고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선택해서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탄은 하나님 산하에 있는 한 명의 신하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십자군 전쟁, 세계 대전, 죽음, 피 이 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악이 하나님을 이겨서가 아니라 신을 계속해서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인간이 그것들에서 벗아나 계속해서 악을 택하여서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과 악에 선택권을 주신건 아담 때 부터 이니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이용한 사람은...참 무섭네요.
@Wagugugu-bi6ec
@Wagugugu-bi6ec 5 ай бұрын
전지전능전선이 100% 만렙인 상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지금 계속 공부하는 입장이지만, 저는 전지전능전선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저를 이끌어가실 것이 믿어지고, 동시에 그 주님의 은혜 안에서 저에겐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논리적으로 보자면 모순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도 저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그 초월자인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논증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100% 만렙 기준을 놓고 볼 때 50%일까요, 30%일까요, 10%일까요? 1%? 아니면 0.00000.......01%일까요? 그 부족한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전지전능전선에 대해 가능성을 닫아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이중예언이 믿어집니다. 그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고요. 물론 운명론, 결정론은 결코 아니라고 믿고 있고요ㅎㅎ 다메섹님의 말을 반박한다기보다는 전지전능전선측의 입장에서 제가 느낀 점을 그냥 주저리주저리 해봤고요... 다메섹님 영상은 항상 깊은 인사이트를 줘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좋은 영상 많이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세요!!
@gods705
@gods705 5 ай бұрын
우리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과 무한가운데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시작과 끝을 동시에 바라보시는 분이며 어느 한공간에 제한 된 우리가 아니시기에 모든 것을 다 보실수 있습니다 한순간과 한 공간에만 존재하는 우리가 감히 창조주요 전능자를 왈가불가 하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paupukkewis
@paupukkewis 5 ай бұрын
너무 좋네요. 응원합니다.
@johnko5234
@johnko5234 5 ай бұрын
애초에 믿음도 믿어지는거지 믿어내는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면에서 기독교적 변증이라는것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성의 타락으로 잘 믿지 못하게 된 우리 인간들을 향하여 '친히' 한 단계 더 내려와 주신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하게는 안 될지라도 최대한 믿음에 이를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죠. 근데 거꾸로 사람 입장에서는 변증의 본래 기능(타락한 이성을 향해 내려와주시는)을 벗어나 하늘 위를 올려다보면서 하나님을 전부 설명해내려는 야망으로 변질 되는걸 많이 보는듯 합니다. 따라서 변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변증하는 사람이 얼마나 ' 하나님의 찾아와주심'을 대행해줄수 있는지, 즉 얼마나 '성령께 사로잡혔는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지성의 상아탑에 스스로 속고 남도 속이는것이 아니라 올바른 수단으로써 변증을 사용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문제는 그 전지전능 정의조차도 말씀하신 그런 지성으로 올려다보기 중의 하나란 겁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반론하면 하나님을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 함부로 감히 판단하지 말라! 이런 소리를 하죠
@johnko5234
@johnko5234 5 ай бұрын
​@@user-ou7yt1hn3n 제 글이 전지전능이랑 어떤 관련이 있다는거죠??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johnko5234 "하늘 위를 올려다보면서 하나님을 전부 설명해내려는 야망" 부분이요. 전지전능과 자유의지는 양립불가능하다는 논변이 그런 지성으로 올려다보기이듯, 애초에 그 전지전능에 대한 클래식한 해석부터가 그런 지성으로 올려다보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준코님이 전지전능을 직접 언급하진 않으셨지만 본문 영상과의 맥락적 일관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 관련이 있죠.
@johnko-fz3se
@johnko-fz3se 5 ай бұрын
@@user-ou7yt1hn3n 그러니까 제가 '지성으로 올려다보기'를 비판하고 있고 애초에 제 글은 전지전능에 관한게 아니라 참된 변증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찾아와주심'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의미로 쓴겁니다..
@user-ib3gg1pe2b
@user-ib3gg1pe2b 5 ай бұрын
다마스커스님 질문에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 다름 아닌 다마스커스님 영상 중에 기독교 분파가 많은 이유에 대해 다룬 영상이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제목이 뭐였을까요,, 키워드만 치면 안 나오네요,,
@user-uy2tx9uj2z
@user-uy2tx9uj2z 5 ай бұрын
언젠가 교회를 떠난 동생이 제게 묻더라고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셔서 하나님이 들어올릴수 없는 돌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럼 그 돌을 들어올릴수 없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은것 아니냐 라고 제가 생각한 답변은 그 돌을 들어 올리실 수도 들어 올리지 못하실 수도 있는게 전능하신것 아니냐 라는 답이었어요 당시에는 궤변처럼 낸 답이지만 겨우 인간이 생각해낸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그 계획을 판단하고 재단할수 있을까요 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안에서 선악이 있는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계획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johnko5234
@johnko5234 5 ай бұрын
그렇습니다 그 공존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게 아니니까요. 애초에 믿음도 믿어지는거지 믿어내는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면에서 기독교적 변증이라는것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성의 타락으로 잘 믿지 못하게 된 우리 인간들을 향하여 '친히' 한 단계 더 내려와 주신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하게는 안 될지라도 최대한 믿음에 이를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죠. 근데 거꾸로 사람 입장에서는 변증의 본래 기능(타락한 이성을 향해 내려와주시는)을 벗어나 하늘 위를 올려다보면서 하나님을 전부 설명해내려는 야망으로 변질 되는걸 많이 보는듯 합니다. 따라서 변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변증하는 사람이 얼마나 ' 하나님의 찾아와주심'을 대행해줄수 있는지, 즉 얼마나 '성령께 사로잡혔는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지성의 상아탑에 스스로 속고 남도 속이는것이 아니라 올바른 수단으로써 변증을 사용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사실 대부분의 질문에는 논리적 답이 없는게 아니라, 답변자가 논리적인 답을 모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초논리성은 그분이 주신 이성이란 선물을 사용해 논리적으로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고뇌해본 뒤, 그래도 이것은 신비일 수밖에 없을 때 도입되어야 하는 개념이라 봅니다. 한국교회가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그런 노력을 하는 이들을 비웃기까지 하며 자신들의 지적 게으름을 자랑하는 행태가 자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5 ай бұрын
참고로 신은 들어올릴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논리적으로 답변 불가한 영역이 아니라, 이미 여러 깔끔한 답변이 나와있고, 신앙과 관련이 없는 스탠퍼드 철학사전에도 관련 논의가 등재되어 있는 주제입니다. 참조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johnko5234
@johnko5234 5 ай бұрын
​@@DamascusLiveTV동의합니다 반지성주의는 올바른 진리를 믿고 성장해야함을 방해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반대로 지성주의로 신학계가 물들어간다면 생명력을 잃은 지성의 상아탑이 될것이므로 역시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의미에서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설교를 했더니 3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현상은 베드로가 사도행전2장 전체에 걸친 탁월한 변증때문인가요? 제 생각엔 변증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3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날것 같진 않은데요. 영상에서는 바울도 베드로도 변증했다고 하시면서 변증을 강조하시는것 같아서요. 저는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것이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그전엔 성경지식이 있어도 적재적소에 쓸줄도 몰랐는데 성령을 받은 이후엔 말씀인용이나 흐름이 너무나 유려해지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찌르는 명설교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성령께서 그 말씀을갖고 일하셨기때문에 3천명이 돌아온것이고요. 만일 베드로가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똑같은 설교문을 누가 써줘서 읽게한들 아무 일이 안 일어났을거같습니다 영상을 보면 변증을 잘하면 비례해서 전도도 잘 할수 있다는 논리로 보여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user-cf8bv7lt1y
@user-cf8bv7lt1y Ай бұрын
7:35 ㅋㅋㅋㅋ 띡 던져놓고 의기양양하게 가버리는 거 공감되네요
@user-fl9eb6rn6w
@user-fl9eb6rn6w 5 ай бұрын
애초에 과학적으로도 이미 미래는 정해져있는데 관측과 비관측으로 양자역학으로도 이미 미래는 정해져있으면서 정해져있지않음 양자얽힘관계에서. 그 말은 하나님.즉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미래를 모를수가없음 다 그의.법칙이라서
@user-wp8lc6xq6i
@user-wp8lc6xq6i 5 ай бұрын
오목사님께서도 그런말씀하신적 있는데 사실 전지전능부터가 뭔지 인간이 이해하기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Daniel_kang
@Daniel_kang 2 ай бұрын
전 오히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때문에 악의 창궐을 놔두신 듯한데요.... 그 악의 끝조차도 알고 감당되니까 악의 싹도 틔워주셨다고 생각되네요. 그럼 왜 악의 창궐을 놔두셨는가 란 질문엔 악을 제거하는 것이 선이기에 악을 놔두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거하는 행동을 위해 악을 성장시키신 것이죠. 그리고 그 악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하기 싫어하는 부분이기에 자유의지를 통해 피조물 천사와 사람의 선택에 맡기셨다고 봅니다. 왜냐면 버리는 영혼들이 많아야 선택받은 영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결국 구원받을 영혼은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사탄 조차 창조시에 타락할 것이 정해져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강아지 입양할때 한마리의 입양할 강아지와 선택을 받지 못해 살처분 당할 99마리의 강아지들을 생각해보았을때 한마리의 입양한 강아지로 자신의 선택으로 살처분 당한 99마리의 강아지의 죽음은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도 구원받은 한 영혼으로 인해 큰 기쁨을 누리실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syul4133
@syul4133 2 ай бұрын
전지전능하기에 전지전능하지 않아도 된다
@joonhyukkim-is3jq
@joonhyukkim-is3jq 5 ай бұрын
혹시 철학사나 신학사를 잘 정리해놓은 책이나 자료처 알고 계신게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luniaq2000
@luniaq2000 5 ай бұрын
다른 영상에서 군나르 시르베크 서양철학사 추천하셨어요
@joonhyukkim-is3jq
@joonhyukkim-is3jq 5 ай бұрын
@@luniaq2000 감사합니다 :)
@lichtundwasser9044
@lichtundwasser9044 5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지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정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내는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라고 확신하고 논쟁하는게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sh109521
@csh109521 5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님은 사랑이 많은 아저씨와 뭐가 다를까요?
@lichtundwasser9044
@lichtundwasser9044 5 ай бұрын
@@csh109521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 : 25절) 말씀이 있는데 무슨 동네 아저씨랑 비교하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5 ай бұрын
여기 유튜브 쥔장은 그런 거 모름. 그냥 호교론자임. 양손에 신앙의 칼을 들고 눈 앞에 보이는 건 죄다 이단의 죄를 씌워 죽이는 사명을 타고난. 신학이란 이름의 호교론자.
@user-cj7yu2eb3o
@user-cj7yu2eb3o 5 ай бұрын
시대에 따라 논리가 변한다는게 신이 인간을 만든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건 아닌지 의문이 드네요
@user-po3sv3gj1r
@user-po3sv3gj1r 2 ай бұрын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중에 가장 완전한 것은 무(nihilo)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무가 다르다고 상상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보다 완전하다고 상상합니다. 하나님이 완전하고 자족하셨다면,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없음(무)조차 없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 세계는 하나님이 완전하지 않으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하나님의 바깥, 즉 없음(무) 안에 창조되었고(creatio in nihilo), 창조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세계에 오신 것은, 없음(무, 죽음)안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이고, 무이고, 없음입니다. 진화는 껍질의 유전일 뿐, 진정한 창조는 하나님의 타자에 관한 테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완전하다면, '선'은 다시 규정되어야 합니다. 사실상 불필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기 때문에 interpeneration과 perichoresis의 삼위일체인 것은 아닙니다.
@sheep_maximus
@sheep_maximus 5 ай бұрын
하이퍼 칼비니즘이 짱입니다 히히
@gospelkim484
@gospelkim484 5 ай бұрын
🤣🤣🤣🤣
@user-it1tg7nc6n
@user-it1tg7nc6n 5 ай бұрын
아멘
@JOUOii
@JOUOii 5 ай бұрын
전능하시지만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으시는거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예배하기 바라시니까요. 모든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냥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면 되지 않느냐? 그것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자신을 예배하기 바라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싫어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아닌거냐. 당신의 자녀를 사랑한다고 모든 죄와 잘못을 덮어두고 용서해주는 부모가 될 것입니까? 사랑한다면 잘못에 응당하는 처벌은 피하면 안되는 필수과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지만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기에 각 인간이 결과적으로 그 자유의지로 구원받게 될지 구원받지 못하게 될지도 아시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자에 대해선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을 통해 친히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인간이 목숨을 잃는 고통을 피부로 느끼시면서까지 처절하게 그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신겁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그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알려주신 겁니다. 인간이 감당해야할 벌의 무게를 시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셨고 그분을 향한 두려움과 감동으로인하여 자유의지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전지 전능 전선 어느하나 훼손시키지 않으며 완벽하게 들어맞는 톱니와 같이 흘러갑니다.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전지성이 참이면 자유의지는 거짓입니다. 전지성은 결정론적인 세계를 함축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이 전지성 관련 논리만큼은 이중예정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거지요. 전지성이 참이면 결정론적인 세계도 참이고, 그렇다면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인 사건들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정하셨다고 보는 게 타당하니까요. 세상을 결정론적으로 창조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초월해 계신다느니 시간의 안에서 보는 거랑 밖에서 보는 거랑 다르니 어쩌니 다 논리적으로 기각입니다. 특정한 행동을 하는 식으로밖에는 나아갈 수 없는 존재를 자유롭다 하지 않는 까닭이지요. 전지성이 참이라는 것은, 특정한 결과값들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요. 그래서 본문 동영상에서 제시된 것처럼 클래식한 전지성 개념을 수정하려는 관점들이 있는 겁니다. 자유의지와의 양립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물론 논리 그딴 거 모르겠고 나는 비논리적으로 믿을래 해도 안될 건 없습니다만 뭐 어쨌든 논리적으로는 그렇단 겁니다.
@JOUOii
@JOUOii 5 ай бұрын
@@user-ou7yt1hn3n 전지성이 참이라면 자유의지는 거짓이다 라는 명제는 마치 제게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면 성부 성자 성령은 구분될 수 없다라는 말로 들립니다. 3은 1이 아니다 라는 말로 들립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전지성이 참이기에 각 인간의 구원여부가 모두 결정되어있음이 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인간이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를 어떻게 발휘하여 구원받음과 구원받지못함에 이르는지까지 포함하여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신과 같이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장소에 종속되지 않는 존재라면 하나님의 전지성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논리에 빈틈이 없지만, 모든 장소에 존재하고 보시며 모든 시간을 동시에 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다르게 인간은 하나의 장소와 시간에 종속되어있고, 그 안에서 발휘하는 자유의지로 하는 선택과 경험들에 의존하는 구원여부가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자유의지냐 하시겠지만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100% 완벽한 의미에서 즉, 님이 말하는 논리적 의미에서의 자유의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관점 밖에서 보아도 애초에 인간에게는 100% 이상적인 의미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이것은 실제 인간의 자유의지와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칭하는 것이 신학적 담론과도 상관없이 거의 99% 상황과 환경과 주변인과 생물학적 특성과 감각과 경험과 지식과 물질과 시간과 공간에 종속되어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인간자유의지의 한계이자 속성입니다. 자유의지를 실제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다른 이상적인 자유의지로 정의한 채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논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지성과 이상적인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양립할 수 없다고 하겠으나, 아무 의미없는 명제와 답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상적인 자유의지는 신의 전지전능전선과 양립할 수 없지만, 그런 이상적인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이다. 실제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의 전지전능전선과 완벽하게 합치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5 ай бұрын
​@@JOUOii 길게 말씀하셨지만 간략하면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양립 가능하다"가 되겠습니다. 물론 이는 매우 소수적인 관점을 피력하신 거고요. 왜냐하면 모든 사건이 결정되어 있고, 특정한 행동들을 하는 식으로밖에는 나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지 않거든요. 예컨대 누가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두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살인을 한 까닭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두셨기 때문인 거고요. 요컨대 그 행위들은 그들의 자유행위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론적 창조행위에 의한 결과란 것입니다. 즉 인간은 플레이어가 아니에요. 하나님만이 플레이어인 겁니다. 요컨대 살인자는 살인을 하게끔 창조되었습니다. 학살자는 학살을 하게끔 창조되었고요. 왜냐하면 우리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인 결과들은 하나님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9% 상황과 환경과 주변인과 생물학정 특성과 감각과 경험과 지식과 물질과 시간과 공간에 종속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말하는 자유의지도 그런 모든 조건들을 초월할 수 있는 100% 자유의지가 아니거든요. 일반적으로 자유의지 담론에서 논의하는 자유의지도 당연히 그런 "이상적인 자유의지"가 아니고요. 인간에게는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뭐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란 거죠. 다만 어느 정도로는 자유가 있어야 하죠. 보통 1%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요. 결정론이 참이라는 건 99%도 아니고 100%라는 겁니다. 결정론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캐치하셔야 합니다. 요컨대 인간에게는 그 1%도 없어요. 0%입니다. 0.1%도 아니고 0.00000001%도 아닙니다. 그냥 0%입니다. 1%도 자유롭다 할 수는 없지만, 결정론이 참이라면 문자 그대로 아예 0%라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해 계신다는 식으로 방어논리 펼치시는데 그게 결국 결정론이에요. 시간 초월 논리가 예정론자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인데 그거 자체가 결정론을 함축한다는 걸 잘 모르시더라고요.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1. 하나님이 시간을 초월해서 우리 세계의 모든 사건을 동시에 관찰하고 계시다면 2. 모든 결과값들은 특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3. 모든 결과값들이 특정되어 있다 함은 결정론이다. 4.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양립 불가능하다. (창조론과 유신론을 전제하는 결정론은 특히나 더 불가능함)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하여튼 가능하다' 그렇게 믿으실 순 있어요. 근데 그건 논리가 아니라 비논리입니다. 인간의 인지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다 파악하지 못할 순 있어도요. 다만 그건 믿음의 영역이지 논리의 영역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온갖 사안에 인지제한이 걸려 있습니다만 통상 논리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그런 인지제한을 근거로 쓰진 않죠. 그런 온갖 인지제한들을 고려할 것 같으면 정말 밑도 끝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그런 인지제한은 감안하지 않고 그냥 비논리로 처리하는 거고요. 그리고 그 인지한계를 공평하게 적용할 것 같으면요. 그냥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 불가능한 게 맞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냥 클래식한 전지성 해석이 틀린 걸 수도 있고요. 그런데 예정론자들은 인지한계를 공평하게 적용 안 하죠. (결정론을 함의하는)전지성과 자유의지의 양립을 당연한 참으로 설정해 두고 그것을 참이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인지한계에 책임을 전가해 버리죠. 사실은 전지성과 자유의지의 양립이 당연한 참인지부터가 모를 일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보면 그냥 모순인 게 맞고요. 믿음의 차원에서 인지한계를 상정한다면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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