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BlockBuster_016] 예지논쟁_칼빈주의 vs 알미니안주의 vs 열린 유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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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신학 BlockBuster_016] 예지논쟁_칼빈주의 vs 알미니안주의 vs 열린 유신론
'복음주의 신학 논쟁'의 3장 예지논쟁!
하나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걸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결정하는지도 아실까? 저 주장들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열린유신론. 각각은 예지에 대해서 어떻게 주장하고 있을까요? 예지와 예정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살펴봅시다. 이번엔 어떤 지점이 논쟁의 핵심이 되는 걸까요?
영상을 보시면서 마지막에 나는 어느 입장에 가까운지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학생이 아니더라도,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선택과 생각에 신학적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거에요. 마지막에 각자의 입장에 투표하실 수 있습니다!
각 입장에 빙의된 설명과 더불어 본격 책 추천을 즐기는 책 덕후 홍쌤, 논쟁을 지켜보며 신학적 입장을 선택하는 TK. 이 둘은 여전히 티키타카가 가능할까요? :) 새로운 즐거움으로 찾아온 홍쌤과 TK의 호흡과 함께! 신학이 어려웠던 분들, 기초신앙 보완이 필요하다 느꼈던 분들, 기독교 기초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 더불어 책을 읽는 교양인이 되고 싶은 분들 함께 해요!
*홍쌤의 책: 어느 무신론자의 편지, 에드워드 보이드, 그레고리A.보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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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54
@boaecheong5063
@boaecheong5063 4 жыл бұрын
밤마다 잠을 못자게 만드는 흥미로운 주제들이네요! 신학이 너무 딱딱하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흥이 나게 알려주시다니요! 첨엔 답을 찾고 싶었는데 지금은 함께 고민하고 싶어졌어요! 열린 (유)신론처럼 처음 들어보는 신학적 입장을 알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홍쌤 너무나 멋지시고, TK님 너무나 센스있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warinlife79
@warinlife79 4 жыл бұрын
응원 감사합니다^^*/
@user-dg8dg6gu4s
@user-dg8dg6gu4s 2 жыл бұрын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열린 유신론이었네요!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고치고 해결하시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가신다는 생각을 종종했거든요. 하나의 논리로 하나님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셨다는 말씀에 다시 한 번 깊이 공감합니다.
@warinlife79
@warinlife79 5 жыл бұрын
책의 번역을 따라서 "열린 유신론"으로 방송을 진행하긴 했는데, 번역이 좀 애매하긴 합니다. 열린 유신론은 'open theism'의 직역입니다. theism을 '유신론'으로 번역할 때는 무신론과 대비되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할 때입니다. 하지만 open theism에는 그런 대비가 없으므로 사실 '열린 신론'이 더 자연스러운 번역입니다. 실제로 다른 책들과 학술논문 대부분이 '열린 신론'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용어입니다^^
@user-qv9ry2sx9c
@user-qv9ry2sx9c 4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의지와 관련된 예정, 예지 등의 논쟁은 결국 하나님의 뜻(의지)이 성경에서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헷갈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와 교훈적 의지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또한 예지를 보통 설명할 때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의 '아신다'는 것이 단순한 앎의 차원이 아니라 '사랑한다'의 히브리적 표현이라는 것이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이라는 설명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user-hn2og3sq8y
@user-hn2og3sq8y 4 жыл бұрын
홍쌤이 말씀하신 예지가 곧 예정을 의미한다는 논리 멋져요!
@orange2971
@orange2971 Жыл бұрын
열린 유신론 관점이 새롭네요. 가능한 다양한 견해들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conan0116
@conan0116 5 жыл бұрын
오늘도 너무 좋은 주제로 깊이 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bongrinunnie
@bongrinunnie 5 жыл бұрын
어려운 얘기도 쉽게 설명해주시는 홍쌤!! 늘 감사합니다ㅎㅎ TK 찢었다 반응ㅋㅋㅋ도 너무 공감가고 웃겨요ㅋㅋ 투표도 있어서 더 재밌네용!
@user-xq5xk8cg6y
@user-xq5xk8cg6y 9 ай бұрын
어려운걸 쉼게 설명해주어서 감사합니다!
@nina726ify
@nina726ify 3 жыл бұрын
쵝오!!!!!!!
@user-wn5vb8xb5e
@user-wn5vb8xb5e 5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근데 너무 전통적인 의견을 선택을 안하시는 것 같은데 이러다 구독자 다 날아가면 어떻게 해요 ㅠㅠㅠㅠ 볼 때마다 어렴 풋이 제 안에 있던 논리들이 이미 정립되어있고 또 더 깊이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ㅎㅎ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주장을 선택함에 있어서 논리와 신비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인 것 같아요 ㅠㅠ 자꾸만 본능적으로 합리와 논리를 중요시하게 되는데 경험적으로 신비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ㅠㅠ 사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가 논쟁이 허용되는 곳은 아닌 것 같고 특히나 목회자가 확고한 주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과 다를 때 굉장히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요 ㅠㅠ 그래도 신 강의 해주실 때 서로 양극단의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려면 주장 자체보다는 주장을 이끌어낸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하신게 와닿아서 그렇게 하면서 살아보는 중입니당 ㅎㅎ 늘 감사합니다 ㅋㅋㅋ 화요일만 올라오는게 아쉬워요....
@warinlife79
@warinlife79 5 жыл бұрын
화요일에만 올라오는게 아쉽다는 애청자가 계셔서 기쁩니다^^ TK의 선택은 재미로 하는거라 큰 의미를 둔 건 아니에요 ㅎㅎ 저희의 공식입장은 언제나 "소개한 모든 입장이 가능하다"입니다^___^
@teo_baek
@teo_baek 4 жыл бұрын
진짜 도움 많이 되네요 와...
@jk0922
@jk0922 5 жыл бұрын
운동에서도 선수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초보가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뻔히 보이는 것처럼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하나님은 비록 인간의 행동이 확률로 존재한다고 해도 아시고 싶으신 만큼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미래 행동의 확률이 하나님께는 아무 영향을 못미치듯이 보이는게 예지처럼 보일 수도 있고 예정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네요. 그것보다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읽으시는 분들은 저런 본문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는군요. self contradictory. 미국에서 Greg Boyd목사님 사역하시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이 책을 설명해주시는 것을 들으며 왜 설교시간에 그런 모습들을 강조하시는지 알고갑니다.
@warinlife79
@warinlife79 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보이드 목사님 교회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가끔 교회 이야기 들려주세요^^
@miralcle416
@miralcle416 5 жыл бұрын
알듯 모를듯 해요^^
@user-vn3qm2to1z
@user-vn3qm2to1z 4 жыл бұрын
기독변증채널을 다루는데요. 다음 주제로 열린 유신론을 찾다가 들어오게 됐습니다 유익하게 아주 잘 시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양자세계의 불확실성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전지함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단면이 중첩된 것일 뿐일 수도 있고요.(현재 최고의 물리학자가 주장하더라고요, 전적으로 믿지는 않지만요) 미래에 대한 것이 양자세계처럼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이미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결정된 사건일 수도 있다는 추측만 됩니다 암튼 이성의 도구로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도 이성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인 것 같습니다. 성삼위일체도 마찬가지고요.
@onyx8606
@onyx8606 Жыл бұрын
구원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정론을 선호하겠죠 그리고 죄에 관계없이 구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도 있고요 그런데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미 하나님이 결정된 것을 가지고 자신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공의가 아닌 것이 됩니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중에 사랑과 은혜의 단면도 본 것이 됩니다
@jew8017
@jew8017 4 жыл бұрын
천재 이심 신기함
@user-ed5xy3dc9d
@user-ed5xy3dc9d 5 ай бұрын
❤❤❤❤🎉
@jeonghyeonchoi3530
@jeonghyeonchoi3530 Жыл бұрын
칼빈이 말하는 예지 예정은 성경과는 전혀 다름니다. 바울의 글에서 실재적으로 볼 수 있는 롬 8:29의 예지 예정의 대상이 누구인가? 롬 8:26에서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롬 8:성도입니다. 그리고 롬 8:28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로 이들은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롬 8:33에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미리 아신 자는 롬 11:1-2에 의거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아모스 3:2에서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외에는 아는 자가 없으니 이스라엘 밖에서는 미리 아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 성도나 택하신 자란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알게 되신 것인가? 창 18:18-19에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들을 포하하는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리 아신 것은 언약에 의합니다. 이렇게 언약을 주심은 롬 8:27-28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뜻을 이르시기 위하여 협력자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택한 것입니다. 그 뜻이 곧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롬 9-11장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접붙임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구원이 유대이에게서 나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엡 1-3장에 등장합니다. 먼저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입ㄴ다. 그 목적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정하신 것입니다. 곧 그 예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엡 1:4의 우리는 미리 아신 자들이며 엡 1:5은 예정입니다. 이 예정은 엡 1:9에서 하나님의 경륜에 의합니다. 이 경륜은 엡 1;10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엡 1:11에서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한 예정을 우리가 입어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리가 엡 1:4에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 기업은 어떤 것인가? 이 기업은 엡 1:14에 등장하며 그 모습은 엡 1:13에 있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듣고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업의 보증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택함과 너희는 복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엡 2-3장에는 우리와 너희의 관계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로 너희는 이방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이 있는 것이 통일 된 것입니다. 이 통일이 엡 3:4의 그리스도의 비밀이요 하나된 모습은 엡 3:6과 같이 이방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합니다. 그러니 예지는 언약에 의하며 예정은 기업을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의하니 그 택함은 자손들은 태어나기 전에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창세 전이란 태어나기 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기업은 아브라함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것으로 이방인으로 하여금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이스라엘과 하나되게 하므로 구원하는 것이니 아브라함 곧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롬 9-11장은 언약과 복음 곧 택함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해도 롬 11;1-2에 이스라엘이 버림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복음은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는 것이니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버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저주라는 실형을 받는 것입니다. 곧 만민 중에 흩어져 실형을 받은 후 그 끝날에 고토로 돌아와 언약대로 그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회복은 롬 11:27-28에 의거 복음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과 택함에 의합니다. 그러니 칼빈 주의의 예정론은 성경을 파괴한 것입니다. 복음 곧 믿음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예정된 것이지 개개인의 구원이 미리 택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택함은 언약에 속한 것이고 믿음은 복음에 속한 것인데 언약을 폐하고 언약에 속한 택함을 복음에 갖다 붙여 미리 택함을 받은 자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파괴한 것입니다.
@docskiss
@docskiss 7 ай бұрын
잼나게 잘봤어요ㅎ 그만큼 하나님을 모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거지요 지나치게 교리주의에 빠지지 마시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고 에수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갑시다❤핫팅
@kshet2000
@kshet2000 4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수용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야합니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훼손되는 교리라는 인식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에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지요.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3 жыл бұрын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가령 절대 주권을 이중예정 개념으로 하나님의 어떤 실제적인 선택과 연관지어 정의한다면 그건 자유의지를 훼손하는 게 맞습니다. 아 논리 그딴 거 모르겠고~ 하여튼 둘 다 양립가능해! 라고 할 것 같으면 뭐 그런 믿음 존중은 해드리겠는데 솔직히 논리적인 소통은 더이상 불가능해지죠. 반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재적 은혜론과 연관지어 정의한다면 논리적으로도 자유의지와 양립 가능해집니다. 그게 무슨 절대 주권이냐?! 할 수는 있는데 애초에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은 논리적 한계가 있어요. 가령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깨시면서 동시에 지키실 수 있으십니까? 그것은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더러, 성경적으로도 하나님께선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하신 언약으로 자기자신을 제한하시는 분이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완전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창조하신 우리 세계의 이치와 섭리 속에서 그분의 전지전능성을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곧 그분의 뜻입니다.
@kshet2000
@kshet2000 3 жыл бұрын
@@user-ou7yt1hn3n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리적. 이성적인 수준에서 어떻게든 양립시키려 노력한 결과가 웨슬리의 선재적 은혜론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신인협력설과 부분타락론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잘 알죠. 인간의 전적타락이나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큰 해를 끼치고요. 가장 심각하게는 구원의 은혜를 심히 훼손합니다 은혜가 은혜가 아니게 보이도록하죠. 저는 선재적 은혜론의 의도는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큰 욕구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외쳐보려고 한 것이겠죠. 그러나 그것은 결국 구원에 있어서(칭의,성화,영화) 인간적인 방법론을 허용하게 만들었고. 찰스피니와 케직사경회, 오순절 성령운동, 등의 현대 복음주의의 기괴한 부흥운동과 목회론으로 이어집니다. 한국교회의 인간적이고 인위적. 그러니까 세상의 심리학적. 마케팅적. 문화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한국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 선재적 은혜론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그 길을 열어준 것이 이 부분이란 겁니다. 부분적으로 회복된 양심과 지성을 인정하니 인간 스스로의 다양한 방법론을 추구하게 만들었죠.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3 жыл бұрын
@@kshet2000 그게 전적 타락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단독설 계통의 예정론자들의 주장일 뿐이구요. 그리고 논리적으로 하나님의 전능성은 원래가 한계가 있는 겁니다. 아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깨시면서 동시에 지킬 수 있냐구요.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까닭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섭리이고 이치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언약을 지키신다는 전지전능성의 제한을 논하셨구요. 전지전능성은 제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 하여튼 가능해~ 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식으로는 주장하지 못할 게 없어요. 웨슬리안도 그렇게 치면 아 하여튼 그래도 전지전능성 별로 훼손 안돼~ 아 하여튼 그래~ 이럴 수 있어요. 그럼 토론이 그 정도 수준밖에는 더 되겠습니까? 그럴 거면 변증은 왜 하는 겁니까? 도덕적 악의 문제와 거기서 파생되는 구원 책임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자유의지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치와 섭리를 그렇게 창조하셨으니까요. 꼬우면 논리적으로 반론하십시오. 로고스의 본질이란 그런 겁니다. 주장과 반론. 논리적인 대화. 그러니,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십시오. 자유의지와 절대 주권을 논리적으로 한번 양립시켜보십시오. 아니면, (구원에 대한 선택 차원에서)자유의지를 부정하면서도 도덕적 악의 문제와 구원 책임의 문제를 한번 변론해보십시오. 저도 이와 관련해서 수차례 논쟁해보았으나 예정론자들의 결론은 결국 그렇습디다 인간 지성의 한계, 인간의 인지체계상 이해 불가능한 신묘한 진리... 설명 불가능하지만 하.여.튼. 양립 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치면 웨슬리안들도 하여튼 완전성 훼손 안 된다 그러면 끝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시려거든 아예 얘기하질 말아주시고, 진지하게 논리적으로다가 답변하시려거든 진짜 성실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소리 안 나오게요.
@kshet2000
@kshet2000 3 жыл бұрын
@@user-ou7yt1hn3n 제 소리는 비논리고 왜 당신은 논리라는 식으로 정해놓으신거죠? 어디서 몇대맞고 저한테 화풀이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예의를 좀 차리시죠ㅎ 서로 다른 체계에서 말을 할 뿐인 겁니다. 정통 예정론자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말하듯이 '아 몰라~'이런 게 아니고요~ '인간 이성의 제한선'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신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이런 태도는 비성경적인 것이라 여기기에 멈추는 것이지 '아 몰라'이딴게 아니에요(인식론이 다름) 멈추지 않으면 교만의 선을 넘는 것이됩니다. 그것이 현재 한국교회를 만든것입니다 한국교회 기성교회 목회자 90퍼센트 이상의 대부분이 알미니안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것 같은데요? 그리스도인의 중생에 성령의 조명과 믿음이라는 은사가 괜히 필요한 게 아닙니다. 변증도 당신같이 이성주의 합리주의 변증 방법이 있다면 저와 같은 전제주의 변증도 있는것이죠. '아몰라'이딴 식으로 자꾸 매도하지 마세요. ㅎㅎ 변증가 레인 크레이그 라인이고 그쪽을 좋아하면 그쪽으로 가시면되지 왜 자꾸 상대를 아몰라의 무식쟁이처럼 말합니까?
@user-ou7yt1hn3n
@user-ou7yt1hn3n 3 жыл бұрын
@@kshet2000 아 네... 제가 좀 흥분하긴 했네요. 그건 사과드겠습니다. 근데 님은 체계가 다를 뿐이라고 하시는데요. 인간 이성의 제한으로 따질 것 같으면 온갖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도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걸 논하는 순간 이 온갖 변증들이 덧없어지죠.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와 대화를 이어나갈 까닭이 없어진다는 거구요. 예정론이 맞을 수도 있어요. 도덕적 악의 문제도 사실 예정론과 모순되지 않을 수 있고 구원 책임의 문제도 예정론과 모순되지 않을 수 있어요.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 자체는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한 시점에서 더 변증할 의미가 없는 거죠.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분들끼리 서로 공감이나 할 수 있을 뿐. 예정론자들의 믿음이 맞을지 반대론자들의 믿음이 맞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니 뭐 자기네들끼리는 서로서로 은사를 받았다느니 어쩌니 하는데 말입죠. 둘 다 은사라는데 어쩌겠습니까. 거기서 변증은 끝나는 거고 평행선만 남는 거죠. 그게 사실 상대주의의 방법론이긴 합니다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각자가 믿어지는 대로 믿는 것이긴 합니다. 저는 그저 논리적으로는 더 맞아보이는 쪽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뿐이구요. 예정론자들도 이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거죠. 진짜로 누가 맞는지는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겠죠.
@cfdtdxtyfd2298
@cfdtdxtyfd2298 2 жыл бұрын
세가지가 복음주의라뇨. 알미니안이랑 열린유신론은 자유주의이고 종교개혁시대에는 이단시취급했는데.
@yuyu1065
@yuyu1065 3 жыл бұрын
도르트신경은 알마니안이 이단임을 분명히 하면서 성경구절로 반박하는데 왜 그건 소개 안해주시는거죠? 사람들이 알마니안이 괜찮은지 알잖아요... 알미니안는 이단입니다. 구원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닌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결합되어야 된다고 보는 이단입니다. 이걸 분명히 하세요.
@yuyu1065
@yuyu1065 3 жыл бұрын
알미니안의 예지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나중 모습을 아시기에 끝까지 구원받을 자만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성경에 있는 결코 내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다는 구절과 모순돠는 주장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거기에 인간의 의지는 개입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자를 온전히 구원으로 견인하실 수 있습니다. (견인론)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 입니다.
@archetypa4075
@archetypa4075 4 жыл бұрын
하나님께서 만사를 다 작정하셨고 사람이 그 작정대로 순종한다면 마치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시되는 것처럼 보시는 것 같은데 성경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아요.하나님은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 사람의 모든 발걸음을 정하셨다고 하셨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드러납니다.자유의지를 행함의 선택 범위로 보는 것은 성경과는 안 맞아요.성경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행했다는 것에 따라 실제로 하나님도 죄의 책임도 물으시는 것이거든요.
@___-et8dr
@___-et8dr 4 жыл бұрын
천당갈 사람 지옥갈 사람 미리 예정 되어 있는데 도대체 선교는 왜하나요?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yuyu1065
@yuyu1065 3 жыл бұрын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누군가 미련하게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선교사님들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이 없었으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모두 다 믿을 수 없지만 믿도록 예정된 사람은 믿을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신비이자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jesus-story
@jesus-story 2 жыл бұрын
칼빈주의 에서는 예정된 자들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외적 부르심(청함) 이라고 합니다. 외적 부르심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도 나오고 성령께서 마음을 여셔서 받아 들이는 사람도 나오는데 받아 들이는 경우를 내적부르심(택하심) 이라고 합니다. (ex 루디아) 칼빈주의자들은, 전도대상자들 가운데 누가 부르심을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외적 부르심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내적 부르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화술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romin1208
@romin1208 11 ай бұрын
그럼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 의해 좌우된다는게 말이 되나요? 구원은 값없는 은혜인데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은 인간의 믿음에 대한 보상이 되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선교는 왜 하냐구요? 말씀을 전하라고 했으니까요.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안믿어도 된다고 생각하시면 그렇게 예정이 되어 있는거에요. 십자가 대속에 대한 감사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또한 그렇게 예정이 되어 있는거에요. 예정되었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게 예정 되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예정되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씀에 따를 뿐 그것에 대해서 불평할 수는 없지요.
@___-et8dr
@___-et8dr 11 ай бұрын
@@romin1208 그럼 미리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네요. 그렇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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