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패왕 항우, 영웅인가 학살자인가 [신안대학살]★본격 초한지⑨ 순삭밀톡-고전 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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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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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거록대전 승리 이후
전투의 神으로 등극한 항우
오점 하나 없이 완벽했던 그에게
'실수' 혹은 '최악'이라 불리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거록대전에서 패한 진나라 장함(장한)군 약 20여만 병사를
신안성 남쪽에 산채로 파묻힌 사건이 발생한건데요
항우를 둘러싼
논란의 정점을 찍은 사건 신안대학살!
이에 대해 수많은 썰(?)들이 존재하는데
과연 리얼 썰은 무엇인지!
그는 왜 20만 대학살을 해야 하는지!!
항우는 영웅일까 학살자일까...
#서초패왕 #항우 #신안대학살 #장함 #초한지 #거록대전

Пікірлер: 101
@kangsj1977
@kangsj1977 4 жыл бұрын
선추천 후감상!! 감사합니다!!
@떵현다졸
@떵현다졸 4 жыл бұрын
오우 박사님 최고!
@seakim7298
@seakim7298 4 жыл бұрын
백기 장군과 항우 장군이 갱을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군량이 부족해서였죠 숫자는 위협적일 만큼 많은데 군량을 주지 못하니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백기와 항우가 포로까지 학살할 이유는 군량 부족보다는 적국의 재기를 막으려는 전략적 판단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20~40만 명의 적국 군사를 살려 준다면 어느 시기에라도 적국 또는 다른 세력의 군사력으로 활용될 여지가 명백했기에 백기와 항우도 눈물을 흘리며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대량 포로 학살을 벌렸건 것입니다.
@polalis1102
@polalis1102 3 жыл бұрын
조조도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 포로 8만명을 생매장해 죽인 전적이 있죠
@티그리-g6e
@티그리-g6e 4 жыл бұрын
항우 옆의 제후들 혹은 제장들도 안말렸던걸 보면 당시 귀족들의 인식이 추측가능하네요 그나마 여러곳에서 병력을 긁어모았고 평민출신이나마찬가지였던 유방의 인식과 너무 차이가 나긴하네요
@아르마딜로-w8z
@아르마딜로-w8z 4 жыл бұрын
학살 시킨 항복한 병사나 그 일대 백성을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려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것이 안타까운..
@타인을사랑하라
@타인을사랑하라 4 жыл бұрын
군량부족해서 먹이기도 빠듯한데 반란까지 도모하니 답없을듯.. 하지만 우리의 유방이라면 안그랬을텐데 ㅋ
@티그리-g6e
@티그리-g6e 4 жыл бұрын
@@타인을사랑하라 유방의 상황을보면 하루 벌어 하루 버치는 느낌이라 우선은 20만은 해산하거보자하고 해산시켰을듯요 항우는 가진게 많아서 풀어줬다가 배신아면 어떨까해서 학살한거고
@안강현-u2e
@안강현-u2e 4 жыл бұрын
광무제 유수였다면 포용했겠죠.
@고대경-b6d
@고대경-b6d 4 жыл бұрын
신안대학살로 항우는 관중 지역 백성들에 대한 인심, 명분을 잃었고 초의제 시해로 항우는 정치적인 명분을 잃었죠.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유방, 한신, 항우 모두 초나라 출신인 거 아시죠? (1) 유방 역시 학살과 약탈을 벌인 적이 많았는데 역사의 승자이기 때문에 묻히는 겁니다. 유방은 항우를 괴롭히려고 팽월 시켜서 초나라를 약탈하고 초나라를 유린하고 초나라 백성을 학살하게 합니다. 항우는 적국을 학살했지만 유방은 본인의 모국을 전략상의 이유로 약탈하고 학살했죠. (3) 항우의 자결 이후 항우의 봉지였던 노현 의 사람들이 결사항전을 하려고 해서 유방이 노현 사람들을 학살하려 했으나 항우를 노공의 예로 장사 지내어 노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유방 역시 학살을 벌였던 군주였습니다. 단지 역사의 승리자이기에 묻히기 때문이죠.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초의제 웅심은 항우의 숙부인 향랑과 항우가 옹립한 왕이었습니다. 초의제는 항우가 아니었으면 왕위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항량과 항우가 옹립하고 나서 초의제 웅심은 송의와 유방을 내세워 항우를 심하게 견제합니다. 초의제 웅심이 항우를 심하게 견제하지 않았으면 항우가 시해하지 않았을 겁니다. 초의제가 초왕이었던 즉위 초 관중에 먼저 입성하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면 유방을 관중으로 파견하여 유방이 천하를 얻도록 돕지 않았다면 항우가 시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초왕(초의제) 웅심 옹립은 범증의 전략적 착오였다는 평가까지 있습니다. 항우에게 거의 걸림돌만 되고 초한 쟁패의 시발점을 제공한 초왕 웅심 옹립은 책사 범증의 실패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진평의 반간계로 항우가 범증을 내쳤다고 하나 초왕(초의제) 웅심 옹립 등으로 범증과 항우의 사이는 미세한 금이 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진평의 반간계가 범증과 항우 결별의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의제 웅심은 왕손이다 아니다 그당시에 논란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통에 워낙 급하게 향랑과 범증이 옹립했거든요.
@이주헌-h5t
@이주헌-h5t 3 жыл бұрын
@@박묘정-n4d ㅇㅈ 초왕옹립으로 초나라 출신인재를 불렀는데 오히려 방해만됨
@쁘O
@쁘O 3 жыл бұрын
재밌다
@eternalrasid
@eternalrasid 4 жыл бұрын
저런식으로 학살을 했으니 결국 유방한테 질 수 밖에... //전략적 이유로 학살?? 전략적 이유로 학살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건 아닌지.. 결국 그런 학살로 인해 역사의 승리자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전쟁도 삶도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것.... 전략적 명분으로 학살을 하면 단기간에 공포감을 줄지 몰라도... 결국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약하고 간사하기만 하게 아니기에...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평가 그리고 그 흐름속에 자신의 업보를 다 감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조조나 항우나... 언급하신 백기나..// 어느 순간 방송이나 서적들에서 '전략적' 이 단어 아래 학살에 대해 너무 쉽게 명분 던져주는 경향이 있네요... 개인적으론 좀 그런 흐름을 반대합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1) 항우의 학살로 유방이 가장 득을 봅니다. 항우가 20십 만 진군을 신안에서 대학살하고 진나라 황족을 몰살해서 진나라 영토와 백성을 이어 받은 유방은 진나라의 반란을 겪지 않습니다. 항우는 할아버지 항연, 아버지 (이름 미상), 본인을 길러준 숙부 항량이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기에 진나라에 뿌리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록대전 후 항우는 황제에 즉위할 수 있어도 관중에 도읍을 정할 수 있어도 진시황와 진나라를 증오해서 황위와 관중을 포기합니다. 항우가 단기간에 잔인하게 진나라를 족쳤기에 진나라는 이후에 절대로 재기하지 못했습니다. 진나라는 정말 강대국이었지만요. 항우도 학살에 대한 업보로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자결합니다. 항우는 정실부인 위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 항룡과 항창을 두었는데요, 항우의 두 아들은 유방과 여치의 눈치를 보며 정말 조용하게 무명으로 살아갑니다. (2) 조조 역시 개인적인 원한으로(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서주 대학살을 벌여 10만 명을 학살하나 위나라를 건립하고 유지하는데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3) 백기는 장평대전에서 조나라 포로 40만 명을 학살합니다. 이후 조나라는 재기하지 못했습니다. 백기는 평생 160만 명의 장정을 학살하는데요, 진나라가 전국을 최초로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백기 역시 그 업보로 소양왕의 명으로 자결하죠. 춘추전국 시대에는 초토화 전술이 아니면 상대국의 재기를 막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4) 근현대사 100년 이내 심지어 최근까지도 대규모의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초토화 전략은 중동 동남아시 등에서도 자행되었습니다.
@dorianfa4209
@dorianfa4209 3 жыл бұрын
몽골군 : 전략적 학살. 우린 그걸로 세계 정복했는데. ㅋㅋㅋ
@swallowtail666
@swallowtail666 4 жыл бұрын
110번째 엄지 남깁니다!
@안강현-u2e
@안강현-u2e 4 жыл бұрын
광무제 유수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20만 명 모두를 품었겠죠? 사람의 그릇 크기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광무제는 후한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호족의 힘에 크게 의지했기에 황권은 약했습니다.
@유상-w4e
@유상-w4e 4 жыл бұрын
장함은 어떻게 되었나요?
@gen9280
@gen9280 4 жыл бұрын
저 김인호 교수님...헤어가...ㅋㅋ👍👍
@올드디지털김성모
@올드디지털김성모 4 жыл бұрын
2000년이나 지났는데 항우는 영웅은 아닌듯 그냥 머리좋고 힘좋은 장수일뿐 유방은 항우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에 장량 소하 진평의 말을 잘 들어서 한 황재가 되죠 혼자만 뛰어나 봐야 큰 뜻을 이룰수 없어요 큰 뜻을 받들어줄 인제들이 필요하죠.
@msk-re6sv
@msk-re6sv 4 жыл бұрын
근데 그 머리와 힘이 중국사는 물론 동아시아사를 통틀어서 1위를 다툴정도니 영웅이라는 소리가 나오는듯 하네요
@lalalakakaksdsung2214
@lalalakakaksdsung2214 4 жыл бұрын
강원도 인제말하는거???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항우는 거병 2년 만에 알렉산더 대왕이 10년에 걸쳐서 정복한 땅의 면적보다 더 많은 면적을 정복하고 18제후를 분봉합니다. 항우와 알렉산더 모두 30대 초반에 요절한 천재이기는 하나 항우는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생계도 넉넉하지 않고 관직도 없는 상태였죠. 항우는 숙보이자 대장군 항량이 전사하고 초회왕의 견제 속에서 대장군 직위를 은통에게서 탈취해서 거록대전에 출병합니다. (항량과 범증이 옹립한 초회왕은 항량 전사 후 항우에게서 군권까지 박탈하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왕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왕이 되어 최강 정예병과 체계화된 국가 체제를 동원해서 항우보다 훨씬 유리한 입지에서 정복 전쟁을 벌렸습니다. 항우는 미완의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죠... 전술만 뛰어났다는 평가도 있으나 31세의 어린 나이에 자결을 하지만 않았다면 전략 분야에서도 대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항우는 이라는 병법서를 저술했으나 역사의 패자여서 이 책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튼 숱한 전문가들이 장수로서는 항우의 재능이 최고라고 평합니다. 항우본기에서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항우를 평합니다. 然羽非有尺寸,그러나 항우에게는 아무 것도 없이 乘執起隴畝之中,그 승세를 잡고 일어난 언덕 밭의 두둑에서 三年,3년 만에 遂將五諸侯滅秦,마침내 다섯 제후를 거느리고 멸망시킨 진으로 分裂天下,나누었던 천하에 而封王侯,이내 봉하였던 왕과 제후이니, 政由羽出,정치연유가 항우에게서 나왔고 號為「霸王」,이름 하여 ‘패왕’이라 했다. 位雖不終,그 자리가 비록 안 끝까지 갔지만 近古以來未嘗有也。근고이래에 없던 일이었다.
@올드디지털김성모
@올드디지털김성모 3 жыл бұрын
@@박묘정-n4d 님 정말 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올드디지털김성모 감사드립니다~ 제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tkqktls7
@tkqktls7 4 жыл бұрын
시바료타로의 항우와유방에서는 땅을 파놓고 저녁에 안심하고 있을때 북과 종을치고 고함지르며 파놓은 땅으로 몰아넣었다고 하네요 처음 몰아넣을때는 힘들지만 공포심이 전염되어서 밟고 밟히고 보이지도 않고 칼이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학살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드네요 저항도 안하는 같은 인종을 이렇게 잔인하게 학살한건 중국역사에서도 ... 몃 없겠지요? ㅠㅠ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백기가 학살하는 방법과 같아요. 백기도 학살할 때 매장했어요. 수장하기도 하고... 참수하기도 하고요... 항우가 역사의 패자이기에 더욱더 욕을 먹는듯요.
@한화솔루션-p6p
@한화솔루션-p6p 2 жыл бұрын
저항을 하지 않지는 않았습니다. 반란도 몇 번 있어서 죽인거죠.
@루카치-u3m
@루카치-u3m 4 жыл бұрын
다음 홍문연 씬스틸러 번쾌가 나오겠군요
@tnmkuoqw4006
@tnmkuoqw4006 4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항우의 주된 학살 타겟은 그냥 점령지 백성들이었고, 항량 생전부터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일이었음. 오죽하면 의제 파벌이 항우를 싫어한 이유가 어디 갈때마다 학살해서였겠음...신안학살이 '그나마' 이유가 있는 축이었을 정도라는 점에서 농담이 아니라 인간이 아니라 발달린 전염병같은게 항우였지요
@tnmkuoqw4006
@tnmkuoqw4006 4 жыл бұрын
진나라가 못된 짓을 했다는 핑계도 안통하는게 같은 육국인 제나라 사람들도 눈에 띄는 족족 파묻어 죽였다고 합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사마의는 공손찬 토벌하고 성안의 백성들 학살하고 두개골로 탑도 쌓습니다. 공손찬 토벌할 때 사마의가 엄청 고생했거든요. 엄연히 사서에 나와 있지만 사마의는 역사의 승리자이기에 저지른 학살이 가려지죠. 고대의 전쟁은 나라의 인구 상당 부분이 동원되는 전면전이었습니다. 항우가 욕은 많이 먹지만 시체를 훼손했다는 기록은 없는듯요. 항우 역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오강에서 재기를 포기하고 자결을 택하죠...
@tnmkuoqw4006
@tnmkuoqw4006 3 жыл бұрын
​@@박묘정-n4d 가려지는것도 한도란게 있습니다. 망탁조의란 말 아시죠? 고통은 커녕 취미생활이었을듯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tnmkuoqw4006 제나라는 항우와 정면승부에서 지고 게릴라전도 벌였는데 군사들이 평민 복장을 입고 숨기도 했습니다. 항우 관련 책을 읽어 보니 제나라 사람 학살도 15세 이상 남자들 위주로 학살을 했데요... 어린 소년들은 살려고주고요. 제나라 여자들은 포로로 잡았답니다. 항우가 학살을 벌였던 주된 이유는 은원이 확실했던 항우의 성격상 희생당한 부하 군사를 위한 복수의 목적이 컸습니다. 항우도 일반 백성 희생시키기 싫다면 광무대치 때는 일기토로 승부를 보자고 유방에게 제안했었고 오강에서 강동으로 가서 권토중래도 포기하고 자결했잖아요. 사마중달 같은 경우 전투가 끝나고 양민 학살하고 인골로 탑을 쌓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옛날에 적지 않은 장수들이 전투 끝나고 힘든 승리를 기념한다고 인골로 탑 쌓기도 했지만 항우는 그런 기록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항우는 역사의 패자이기에 학살의 아이콘이라는 멍애를 지게 된듯요~
@tnmkuoqw4006
@tnmkuoqw4006 3 жыл бұрын
@@박묘정-n4d 항복한 민초를 굳이 씨몰살을 시키면서 부녀자까지 납치해 병사들 노리개로 써먹었는데 이걸 자비심으로 생각해줘야한다니;; 일반백성 운운한건 항우의 처참한 도덕관과 내로남불로 가득한 머릿속을 드러내주는 부분에 불과하고, 권토중래 포기한건 그냥 지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얘기니까 그런 것 뿐이죠. 그 시골구석에서 총인구도 수십만에 불과하다는 땅으로 유방한테 뭔수로 덤비겠어요? 항우가 인골로 탑을 쌓은 기록은 없지만 반대로 항우만큼 여기저기서 갱살을 자행한 케이스도 거의 없죠. 기껏해야 백기정도나 비비는데, 전후 여파를 비교하면 백기도 항우 앞에서는 한수 접어줘야합니다.
@이하늘-c3g
@이하늘-c3g 4 жыл бұрын
근데 진나라군 대다수는 요역으로 끌려온 사람들 아닌가? 그냥 집으로 돌아갈수 있게 하는게 낫지 않나?
@오늘만사는끝판왕
@오늘만사는끝판왕 2 жыл бұрын
조조나... 항우나... 잘 가다가 왜 대학살 같은 짓을 벌여서;;;
@Marksomali
@Marksomali 4 жыл бұрын
앗! 교수님 가발 쓰시니 10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ㅎㅎ
@한화솔루션-p6p
@한화솔루션-p6p 4 жыл бұрын
그런말은 안하는게 예의입니다.
@twosometime2692
@twosometime2692 6 ай бұрын
지금 헬반도에 가장 필요한 정책 ㅋㅋㅋ
@JUNE10215
@JUNE10215 2 жыл бұрын
신안대학살은 실책이 확실한게 만약 20만 병력을 살려서 장한 , 사마흔 , 동예로 유방 견제하게 했으면 단기간에 관중땅이 장악당하는 일을 없었을것을
@unbalancekiss
@unbalancekiss 4 жыл бұрын
사이코패스 항우
@박광수-v6m
@박광수-v6m 4 жыл бұрын
와 죽였나잉. 뿔뿔이 5천명.1만명씩 데려강. 농사나 노가다.고기잡이시키면 되지잉.으이그 겅행 항우가 망한기라잉.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물론 백기와 항우도 단계적인 무장 해제를 해서 포로를 단계적으로 고향으로 돌려 보내거나 노예 등으로 활용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현실에서는 절대로 실행이 불가능했습니다. (1) 포로의 수가 10~4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였고 전황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말기에는 전쟁이 워낙 빈번하여 대규모 병력을 단계적으로 무장해제시켜서 고향으로 돌려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2) 무장해제시켜서 돌려보낸 군사들이 모여서 백기와 항우를 다시 습격할 수 있습니다. (3) 포로의 수가 워낙 많아서 노예로 부린다하더라도 명령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탈출을 감행하거나 반란의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4) 대규모의 포로를 무장해제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내건 노예로 부리건 워낙 수가 많아서 본국이나 그 외 세력에 의해서 다시 군사로 활용될 가능성은 너무나 컸습니다.
@하하-s8d7y
@하하-s8d7y 4 жыл бұрын
와 여긴 '그 전사' 관련 댓글이 없네 ㅎㅎ 클린하다
@레닌-q5o
@레닌-q5o 2 жыл бұрын
신안 대학살 지금도 해야함
@12coom
@12coom Жыл бұрын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시간빌게이츠-y1q
@시간빌게이츠-y1q Жыл бұрын
20만을 어케 다 죽이지 죽이는데만 두달걸리겠다
@유수윤-m4o
@유수윤-m4o 4 жыл бұрын
솔직히 항우가 함곡관 공격한 것도 그렇고 정치력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마피아 보스처럼 카리스마로 누를 뿐 대전략도 없고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1) 항우 27세 vs 유방 52세!!! 항우가 함곡관 돌파할 때 27세쯤이었습니다. 주변에 아는 27세 청년이 있으면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냐?" 한번 물어봐 주십시오. 유방은 출생년도가 확실하지 않은데 항우보다15~25세 많았다고 봅니다. 2013년 이라는 영화에서 유방은 항우보다 25세 많은 걸로 나옵니다. 루 추안 감독이 유방과 항우에 관한 자료를 섭렵하고 영화를 제작했는데 루 추안 감독은 유방이 항우보다 25세 나이가 많은 걸로 판단했습니다. 항우의 정치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단지 유방의 정치력이 워낙 뛰어났죠. 유방은 봉토와 관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죠. 이는 유방이 항우에 가려져 뛰어난 장수였다는 것이 가려진 것과 비슷하죠~ 유방은 말엽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수하 장수들을 못 믿어 친정도 꽤 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기도 합니다. 경포 토벌할 때 유방이 친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경포는 항우가 인정했던 장수였고 원래 항우의 선봉장이었습니다. 유방은 경포를 친정할 때 큐피트 화살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유방이 유능한 장수였듯 항우 역시 유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다만 항우는 25세나 연상이었던 유방의 인생 경륜을 따라잡기 힘들었죠~ 루 추안 감독은 에서 항우를 부하를 아끼는 카리스마 있는 장수로 묘사하며, 여치의 대사를 통해 "항우는 점잖은 사람이었다."라고 간접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2) Daum 백과에서 항우 설명 글입니다. " ~ 그는 장신에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학식을 갖춘 시인이었으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였다. ~"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3) 항우는 을 저술했지만 전해 지지 않고 있습니다. 항우의 학문은 얕지 않았습니다. 훨씬 오래 전에 저술된 과 이 현대에까지 전해지는데 이 전해지지 않아 애석합니다. 당근 빠따 유방과 유씨 황제들이 을 없앴겠죠~ 에는 초나라의 유서 깊은 장군 집안이었던 항씨일족의 집대성된 병법이 담겨져 있을 건데요.. 항우가 역사의 패배자이기에 온갖 모욕을 감내해야 하죠... 학살자라는 오명만 온전히 남고요...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4) 마오쩌둥은 '항우가 독서를 멀리했다.'는 속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항우는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유방이 황제가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항우를 제거하려고 했기에 항우가 지쳐서 결국은 나가떨어졌죠. 항우는 천하를 포기할 수 있었지만 유방은 천하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죠. 어린 항우가 그냥 포기한 겁니다. 유방이 체계적으로 대전략을 구상하기보다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막했던 거죠... 그런 방식이 용케 먹혔던 거고요...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항우의 전투력은 유방이 유능한 장수라는 사실을 가렸고 유방의 정치력은 항우가 유능한 정치인임을 가렸습니다. 역사상 이런 애뜻한 라이벌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이 전생에 연인이나 부부였지 않았을까 하는 억측이 제 마음 속에 똬리를 트네요...두 사람의 전생이 몹시도 궁금해 집니다.
@tnmkuoqw4006
@tnmkuoqw4006 4 жыл бұрын
마치 항우의 학살이 신안에서 딱 한번 일어난것처럼 항우의 학살행위를 희석시키는건 흔한 일이라곤 해도 좋은 행동 같지는 않네요..전통적 시각을 탈피하려는 의도여도 유방에 대한 해석은 또 구태의연하셔서 이도저도 아님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사마의는 공손찬 토벌하고 성안의 백성들 학살하고 두개골로 탑도 쌓아요~ 역사의 승리자여서 학살은 묻혀지죠... 사마의 학살도 사서에 나옵니다.
@고대경-b6d
@고대경-b6d 4 жыл бұрын
항우는 영웅이 아닌 학살을 즐기는 학살자이고 유방을 이긴다고 해도 오래 가지 않고 제2,3의 유방이 나타나서 항우에게 맞서고 명분과 민심, 인심을 잃었기 때문에 망할 수 밖에 없었죠. 군주로써의 항우는 폭군이죠.
@msk-re6sv
@msk-re6sv 4 жыл бұрын
근데 유방을 이겼다는건 전한삼걸도 밟아버렸다는 뜻인데 그러면 최소 항우가 살아있는동안은 그를 넘볼수있는 사람은 없었을듯ㅋㅋ 과연 전한삼걸을 뛰어넘는 먼치킨들이 그 짧은기간안에 다시 나왔을지..?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1) 항우는 워낙 어린 나이었고 발전의 가능성을 져버리고 자살합니다. 항우가 오강에서 자살할 때 31세였습니다. 항우가 거록대전에서 승리해서 전하를 제패하며 실질적인 황제로 군림했을 때 27세 전후였습니다. 유방은 출생년도가 분명하지 않은데 항우보다는 15~25살 나이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유방은 인생 경험과 연륜으로 항우를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항우가 오강에서 자살하지 않고 강동으로 건너가 재기를 시도했다면 항우 역시 인생 경험을 쌓으며 20대와는 다른 경륜을 펼치며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항우가 팽월을 잡으려고 회황을 점령할 때 군사의 희생이 워낙 커서 항우는 회황의 15세 이상의 남자를 산 채로 생매장하려 했으나 13살 소년의 말을 듣고 학살을 하지 않습니다. 외황현 현령의 문객의 아들인 13세 소년은 회황의 사람들은 팽월이 무서워서 협조를 했을 뿐이니 회황의 남자들을 살려주면 다른 10개의 성이 쉽게 패왕에게 귀순할 거라는 건의를 받아 들입니다. 장수로서는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항우는 31세의 어린 나이로 자결하여 미완의 천재로 머물러 있습니다. 항우는 죽음을 앞두고 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패배의 치욕을 참고 항우가 권로중래를 택했다면 분명 20대보다는 현명한 전략을 구사했을 겁니다. 항우 역시 나이 들면서 제2의 유방, 제3의 유방이 나타나더라도 쉽게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잘 대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2) 항우는 의외를 전쟁에 염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항우는 8년 동안 70여 차례의 전투를 직접 지휘하는데요 아무리 항우가 전투의 신이기는 하나 어린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한 수치입니다.항우는 전쟁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록대전 후 천하를 평정하고 나름 천하를 안정시켰던 항우의 입장에서 유방이 황제가 되려는 야망으로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오는 상황에 분노했을 것이고 엄청 지쳤을 겁니다. 항우는 광무대치에서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말고 일기토로 승부를 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어린 나이의 항우가 전쟁을 견디지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자 항우에게서 얻을 것이 적다고 판단하고 인재들이 항우를 떠나 유방을 선택하고 싶어하죠. 항우가 재기를 포기하고 오강에서 자결하는 이유도 초한쟁패로 천하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항우가 적은 병력으로 전투에 임했던 이유는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듯요.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3) 유방이 황제가 되려고 희생한 군사의 수가 항우가 학살한 인원 만큼은 됩니다. 유방은 팽성대전에서 56만 명을 동원했는데 30만이 전사하지만 유방은 게의치 않고 항우를 이기려고 전쟁을 계속 벌여 병력을 들이 붓습니다. 소하는 초한쟁패 말엽에 어린 소년과 노인까지 징집해서 유방에게 병력을 댑니다. 유방은 본인이 초나라 출신임에도 항우를 괴롭히려고 팽월에게 초나라를 약달하고 초나라 백성을 학살하도록 시킵니다. 유방은 항우를 해하대전에서 이기고 나서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대규모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합니다. 그리고 팽월, 경포 등의 건국 공신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토벌전을 벌여 대규모 병력을 살육합니다. 유방이 역사의 승리자여서 그렇지 유방이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생명이 희생당합니다. 단지 유방의 야망을 위해서요.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4) 항우는 기원전 202에 죽습니다. 항우는 2223년 전에 사람인 거 아시죠? 항우가 활동했던 진말한초 시기는 중국사에서 중화민족의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이며 춘추전국시대 직후의 시기였습니다.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은 항우를 보필했을 때 이미 70대였고 범증은 춘추전국시대를 몸소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살육과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적국을 초토화시키지 않으면 언제가 나와 나의 나라가 초토화될 운명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진나라 말기 소양왕의 명장 백기는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160만 명의 장정을 전쟁터에서 학살합니다. 백기는 장평대전에서 조나라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해서 진나라의 전하통일에 큰 공을 세웁니다. 전쟁터에서 사로잡은 수십 만 명의 포로들을 살려두면 언제가는 진나라를 위협하는 군사력으로 동원되기에 냉혈한 선택을 합니다. 항우가 활동한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의 영향이 강한 진나라 말기였습니다. 항우의 모국 초나라 역시 진나라의 학살을 경험하며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규모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초토화 전술은 현대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어져야 하고 없어지겠지만, 살육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2223년 전의 사람이었던 항우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한번쯤을 생각해 주십시오. 항우 역시 전쟁과 살육에 환멸을 느끼고 오강에서 자결했고 학살의 대가로 천하를 유방에게 빼았겼고 항우의 두 아들 항룡과 항창은 숨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달로-f8o
@달로-f8o 4 жыл бұрын
유방도 나중에 쌍놈짓 많이하지 항우만큼ㅋ
@안강현-u2e
@안강현-u2e 4 жыл бұрын
구체적으로 어떤 짓이요? 홍매의 용재수필을 요약한 책에서 그런 짓을 접하긴 했는데 단편적으로만 접해서 잘은 모릅니다.
@유승민-b2f
@유승민-b2f 4 жыл бұрын
@@안강현-u2e 걍 초한지 겉으로 핥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유방 까니까 따라 까는거임
@no.1only.191
@no.1only.191 4 жыл бұрын
유방의 단점은 술+여자+여치,,, 오랑캐들 제거하려고 직접 친정가서 깨지고 오고 하지만 할만큼 다 했음,, 유방 죽고 여치가 함께해온 유방 측근들을 하나하나 불려서 참수한거 빼고는
@티그리-g6e
@티그리-g6e 4 жыл бұрын
공신을 챠죽이긴했지민 의도적으로 수십만 백성을 학살하지는않았쥬
@박묘정-n4d
@박묘정-n4d 3 жыл бұрын
@@티그리-g6e 유방은 본인이 황제되려고 백성들을 전쟁터에 엄청나게 투입해서 죽였죠... 항우 사후에도 숱한 반란을 제압하면서도 군사들을 죽였고요... 유방은 본인이 황제되기 위한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영진-u8h
@김영진-u8h 4 жыл бұрын
정치적으로 보는게 문제 인듯... 모두가 잘먹고 잘살려면 스스로 노력 해야 한다. 하지만 굶어 죽는것도 개인 목이고.. 잘사는것도 개인목이고. 그냥 전쟁 하면 반대 새력은.. 죽여야 함... 그게 전쟁 목적이고.. 나라를 위해희생한 사람들 한테 책임을 지울수 없기 때문.. 반대세력은 전쟁 하면.. 죽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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