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쏙쏙 들어오는 말씀, 평소 잘 듣고 있습니다. '구하라~ 얻을것이다.' '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절실함이 아직도 부족한 걸까요? 얼마나 더 구하고 얼마나 더 두드려야 하는건지라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사순절에 더 주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벼리별이-j6j8 ай бұрын
늘 감사합니다 ❤
@jinlee55158 ай бұрын
교수님 영상 볼때마다 심오한 진리 많이 배웁니다.항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Ilovemochamilk8 ай бұрын
아멘 적재적소에 이 말씀 듣게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
@gracejeon3388 ай бұрын
시편처럼 위선 없이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 기도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기도 응답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다 우연의 사건이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이성적인..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요. 그런데 어떤 개인적인 계기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 정말 사소한 것 부터 큰 일까지. 내가 탄식처럼 기도 해 놓고 잊은 것 까지. 다 기억하시고 주님의 때에 내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 해 주셨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다 수용 해 주시고 혹 내가 잘못구할지라도. 인간의 지혜와 이해를 뛰어넘은 방법으로 더 풍성히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
@김에스더-f8o7 ай бұрын
아멘 거듭거듭 아멘을 합니다
@인중이배꼽이와8 ай бұрын
아멘!!! 감사합니다 ~
@별둘맘-m1j8 ай бұрын
깨우침을 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cruk2348 ай бұрын
무지와 폭력과 비윤리적인 나쁜 곳에 종교가 흥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는 그 곳에 마지막 까지 남아있는게 종교다...라는 말씀 듣는데 예수님이 계신 그 곳.딱 그 말이 떠오르네요.. 하늘에 대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고 예수님이 계신 가장 낮은 곳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찾아갈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고 한 어느 목사님의 고백처럼.. 오늘 말씀에 제 자아가 무너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구하라 문을두드리면 반드시 열리깃이니라 말씀 감사합니다 새싹 믿음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영미-n5o8 ай бұрын
목사님에 귀한 말씀이 살아서 영혼을 살리고 있습니다 하루 안빼먹고 듣고 있습니다 목사님 들의 이 방송이 지구끝날까지 변질되지 않고 지속되기를 소원하며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unsookji52068 ай бұрын
김기철교수님 말씀이 믿음생활에 큰힘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sunmicho6476Ай бұрын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깨 저는 누가되고자 합니까..
@신수현-u1u8 ай бұрын
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아멘~~
@jaokku982020 күн бұрын
교수님 안녕하세요! 가끔씩 교수님 영상 볼때마다, 항상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박성진-c9b8 ай бұрын
오늘도 감사합니다~♡
@yslvondecila78 ай бұрын
감사해요!
@estherchoi10888 ай бұрын
아멘 감사합니다 ❤
@moonthai22328 ай бұрын
안경 잘 어울리시네요
@명-s4h4 күн бұрын
숙성된 김치 같은 깊은 맛 ,,, 잔잔하게 스며드는 강론 감사합니다~♡
@AJ-cr4qo8 ай бұрын
오늘도 정말 너무 좋아요 ❤
@정안젤라-s4y8 ай бұрын
말씀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박영옥-s4r8 ай бұрын
아멘
@에이하지마러7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어떤 아버지인지 점점 더 알아가는 복이 너무 귀하고 귀합니다 ㅜㅜ 깨달은대로 행할 수 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김효순-p7l8 ай бұрын
늘 주와동행하시는 날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목사님~❤~
@kyengyeunjang529715 күн бұрын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람나무-77 ай бұрын
잘잘법 감사합니다
@이난엽-v3g7 ай бұрын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 이 되어 내 자신
@sungmilee70192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우리때문에 죽게하셨는데. 뭘 달라고 하겠어요. 이제껏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고인물-y7c7 ай бұрын
구하고 원합니다 하나님❤
@다비다-z4v27 күн бұрын
아멘!!! 목사님 말씀은 우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품격이 느껴지고 깊은 위로가 됩니다. 항상 강건하시길...이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금주-v9o8 ай бұрын
감사 감사합니다❤
@주주주클럽8 ай бұрын
교수님 말씀 아멘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는데 왜 걱정하는지.... 오늘 하루를 살아갈수있는 힘이 생기네요 지금 이순간에도 저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juc73688 ай бұрын
예정론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강의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옘이예미8 ай бұрын
사순절 끝나도 김학철목교수님 매일 영상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susemi5323 күн бұрын
너무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정확히 제가 하던 생각을 꾸짖어주셨습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희-b2h4 ай бұрын
큰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교수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Ohola247 ай бұрын
오늘 목사님을 통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네요. 그동안 주님께 일방적이었던 제 기도를 회개합니다. 바른믿음과 거룩한 기도의 영을 주소서 아멘
@쥬나-b8c7 ай бұрын
아멘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삐삐의하루화가6 ай бұрын
살아계신 주님 제 음성ㆍ절규 ㆍ응답 ❤감사드립니다 ㆍ믿습니다 ㆍ
@류경희-q7i6 ай бұрын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교수님 기도를 잘 할수 있도록 말씀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지혜-q9f23 күн бұрын
오늘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얻어내기 전 하나님이 누구시고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을 알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구하겠습니다.
@전지윤-k9w1g7 ай бұрын
오늘 말씀 주신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다시 순전하게 깨달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실 다른분 말씀을 어제 듣고는 좀 마음에서 어려웠었 답니다. 오늘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기도라는 길이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지 더 깊이 알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sportse-o8z6 ай бұрын
잘잘법 으로부터 예수님의 대한 궁금증을 알수있어요! 감사합니다!❤❤❤❤
@chinsyu8 ай бұрын
The ❤❤ 😊😊
@하늘별-g6c5 ай бұрын
교수님 이런방송많이 해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주세요.전도할때 영상 주면서 전도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요. 많이 많이 영상 찍어주세요
@이현정-r1z7 ай бұрын
교수님 강의 늘 챙겨보고 있고 지루하지 않게 강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실직 6개월차를 넘어서고 있는 50대중반에 사람입니다. 20대초반부터 가장역할로 밤샘작업 마다않고 일해왔고 사실 너무지쳐 결혼이란 단계로 쉼을 가져보려했으나 착각이었던지 아이낳던날도 수술로 아이낳고 마취풀리자 아이얼굴 보러간게 아니고 거래처 분들과 병실에서 업무미팅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화려했던 프로필은 다 지워버리고 이력서에 그 어떤 내용으로도 생년월일에서 탈락되는 때가 오니 다 삭제시켜 보내는 답답하기 그지없고 잠은 안오고 신경은 쓰이고 주님은 등돌리신듯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새벽마다 성경과 기도문을 적어가며 기도드린지도 십년가까운데 이 실업6개월동안은 정말 묵묵부답이신 주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교수님 이럴땐 어떻게 저를 다스려야할까요..
@조은희-z7s6 ай бұрын
저도 무척 힘든 일이 있었는데..그때 마음에 평안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했답니다. 상황이 제가 구하는 것처럼 금방 변하거나 나아지진 않았지만, 놀라운 평안이 찾아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반응(감사, 기쁨, 찬양)을 보일때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실 거에요. 힘내시고, 평안을 회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nomiaiso27698 ай бұрын
🙏
@이정희-f6h8m7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sy-rn7dc6 ай бұрын
괘변 김학철!
@TheSecondLifeOfKim6 күн бұрын
목사님들이 이 정도의 신앙의 학식을 갖추고 성도들을 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은혜최-i9c8 ай бұрын
고집부리는 나쁜딸이어서 회개합니다.그런데 너무 지쳤버렸어요
@kim-jh1en8 ай бұрын
네~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무슨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 집중이 힘들었는데요ㅜ
@조성현-z9l2 ай бұрын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답지 살아가지 못해서 저의 죄를 뉘우칩니다..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요..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볼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김진솔-n8f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아름다운하늘-k3v8 ай бұрын
딸이 교수님 같은 분 만나길 기도해요 🙏😄
@TheChickenManKate7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믿어질수록 제가 기도할것은 세상에서 매순간 하나님자녀답게 결정하고 선택하고 살아가게 해달라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수있게해달라는것외에는 기도할게없는데..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에힘쓰자는데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하는데 마음이 참불편하고 어렵네요 그리고 목사님이 안수기도해주신다고하시면 피하고싶습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행복한물개8 ай бұрын
16:44 단독자로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기도
@jinjoyful7 ай бұрын
너무 감사합니다. 서두에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곡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jaljalroad7 ай бұрын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라는 ccm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chinsyu8 ай бұрын
😮w
@마초-g9c8 ай бұрын
개신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불교 이슬람 힌두교와 같이 비교할수 없는 진리 입니다
@김영희-c3i6x7 ай бұрын
완고한 발언 을...
@worldchampion-linedance8 ай бұрын
교수님 성경책에 나온 모세가 하나님을 증거할때 바로는 하나님이 하시는일인줄 알거든요 근데 왜 강팍함을 하나님이 그마음을 갖게 했다고 했죠?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이고 모세입장에서 보면 영웅을 만들기위함인데 누구를 입장의 일인가요? 너무 궁금해요
@user-asdqfoq11za8 ай бұрын
이번 의료대란에서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버는 넉넉한 직군조차도 자신의 이득과 타인의 목숨중에 자신의 이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현실만 봐도 알수있음. 윤리나 도덕은 자신의 안위, 행복, 사치를 부릴수있는생활을 우선시하는 생물의 본능앞에서 매우 쉽고 얄팍하게 무너짐.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신을 모르는 자가 말하면 그냥 대학교때 들었던 채플수업 같은거임. 점수를 위해서 억지로 혹은 그냥 해야하는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잠깐 지나가는거 무교인들은 그걸 주문같이 오래된 관습처럼 생각할수도 있고 무신론자들은 그것조차도 종교적인 낡은 관습이라고까지 말할수도있음. 그 선서는 신이라는 존재와, 신적인 이데아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했던 로마시대의 철학자들이나 진지하게 선서했을거지 무교인이 60%~70%인 한국인들에겐 아무런 의미없는 선서임. 하루정도 기분을 고양시킬순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관이 될수는없음. 절대적인 가치관이 되려면 종교처럼 진심으로 그것을 믿어야함. 종교와 사랑은 사람을 한계이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수있게 만드는 힘이 있음. 그것이 좋은의미로도 나쁜의미로도 가능하다는것이 문제지만 좋게 작용하기도함. 자기희생이 좋은 한계 중 하나임. 또한 독립운동가들중에 종교인들이 많았다는것만봐도, 종교적인 믿음이 죽음도 불사할만큼의 큰 힘을 준다는것은 틀림없음. 그렇기에 독재국가에서는 종교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함. 기독교인들이 사랑하고 따르는 존재인 예수가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아는 기독교인들은 이런상황에서 생명을 우선시 할것임. 본능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말인데 절대적일수 밖에
반복하는. 기도가 잘못됐다가 아니고 영혼없이 주문을 외우듯 입으로만 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저는😊
@화이트닝-g1h8 ай бұрын
신앙인이라면 그런 세상의 눈과 말에 당당하고 무너지지 않아야겠죠. 성경과 예수님은 이런 일들에 대해 이미 힌트를 주었습니다. 논리와 개연성이 이데올로기와 철학 그리고 시대의 이성을 기독교에 비해 우월한 듯 교만을 부리지만, 성경은 담대하고 의연히 하나님이 보여주실 놀라운 일에 대해 믿음을 견고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그 생각마져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질병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성과 논리를 겸비하여 모든게 완벽해 보여도 죽음을 그리고 죄를 해결한 인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교리적 논쟁에서도 비난 받았죠. 옳고 그름이 상대적인 세상적 이성과 철학이 영원하다면 그 말에 신뢰를 보내겠지만, 한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뒤집히고 반대하는 새로운 싹이 나면 예전의 지지받던 이성과 논리도 개똥 보다 못한 가난함과 천대를 받아 사장되는 경우를 봅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적 유행을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으니 비교할 바 없는 독보적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는 정보죠. 진화론 전문가들도 실제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 논쟁에 있어서도 저를 이겨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로 세상의 이치를 보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말을 잘한다 해도 금새 들통납니다. 과학자들이 저보다 과학적 지식없이 감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사용할 때 꾸짖고 지적하는 것도 기독교인으로서 세울 당당함입니다.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예수가 아니라 모든 복음의 영광을 위해 망설이지 말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도 인생에겐 없고 지혜의 왕 솔로몬도 죄앞에 엎드러 졌으니 세상의 이성과 논리에 고개숙이지마라 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
@nayanaya7 ай бұрын
문명이 발달 할수록 인간이 점점 퇴화됨.
@야돈-c6j8 ай бұрын
자신도 이야기 초반엔 통계와 팩트를 들고 나오다가(사실 초반의 주장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함. 종교인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여성을 핍박하고 테러를 일으키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종교인이 늘어나봤자 그게 특정 세력의 확장일 뿐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다른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감성적으로 접근하며 꾸짖고 싶어진다(??)는 게 좀 이해가 안감. “발전한 사회에서 종교는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말 자체는 뭐 대단하게 우월감을 느끼거나 힘든 사람들에게 공감 못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사실 그것과는 아예 별개의 맥락이지) 실제로 보이는 현상을 관찰하고 느낀대로 말할 뿐인데... “꾸짖고 싶어진다” 니.. 그 정도 사회현상에 대한 서술도 못한단 말인가? 꾸짖는다는 단어 또한 신이 인간을 꾸짖는다,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다, 이럴 때에나 쓰이는 그야말로 자신을 상대보다 한참 높여서 두고 쓰는 표현 아닌가. 이런 거에서 역으로 나는 종교인들의 우월감을 본다.
@duck25947 ай бұрын
저는 1인 안에서 들 수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게 오히려 전지적입장이 아닌 생물학적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적 표현같아서 우상시하지 않게 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저렇게 제가 말할 수 없다면 함부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절대진리에 대해 비추어주거나 느낀걸 말할뿐이지 정제된 절대진리가 아니니 정체성 단계가 아닌, 그것보다 낮은 삶과 생활의 단계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 분의 말이 당신만을 위한게 아니고 다양한 나잇대의 다양한 삶들 앞에서 하는 말이죠. 작은 말투 하나 꼬집다보면 나 또한 여럿 앞에서 말을 전할 일이 점점 없어질것입니다. 당신만을 위한 명쾌한 해답은 하나님과 1:1로 쇼부보세요~ 이 영상 또한 그 쇼부의 채널중 하나라 감사하기만 한데, 여기서 해결 다 안돼면 이렇게 길게 댓글달 시간에 다른 곳에서도 채우고 해야죠.
@야돈-c6j7 ай бұрын
@@duck2594 이 짧은 댓글에서조차 제가 위에 지적한 것과 똑같은 종교인의 모습을 보네요. 댓글 초반엔 “개인 안에서 들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간적 표현을 하는 것 같아 좋다” 고 하더니, 결국 마지막에는 저보고 이렇게 길게 댓글 달 시간에(?) 다른 걸 보러 가라(??)ㅎㅎㅎ... 결국 초반의 “사람의 말은 진리가 아니니 삶과 생활의 단계에서 받아들이자”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진정한 삶의 태도가 아닌, 영상 속 교수의 발화를 지지하기 위한 말일 뿐... 내가 좋아하는 채널에 이 정도의 비판적 댓글이 달리는 것 조차 용납 불가능한 아이같은 마음이 드러난 댓글 후반부의 태도가 당신 마음의 진실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왜 저에게 굳이 “길게 댓글 달 시간에 다른 일이나 하러 가라”라는 초반의 주장과 전혀 다른 참견을 던지겠어요. 제가 욕을 한것도 악플을 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아.. 설마 당신이 생각하는 “개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자유”는 최소한 교수 정도는 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이야기인가요?ㅎㅎㅎ 위의 교수님은 24분짜리 영상에서 혼자 이야기를 하려니 서로 상충하는 두 태도가 나온 게 뭐.. 이해는 갑니다. 영상도 끝까지 들었어요. 하지만 짧은 댓글에서조차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같은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별로 귀 기울이고 싶지 않군요. 당신 말대로 세상엔 다른 좋은 게 많으니.. 좋은 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세요. 이만
@ysjeon22717 ай бұрын
짚고 싶어하시는 맥락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아예 관점이 다른 입장 차이를 생각하면 여기서 하실 말씀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 일단 종교가 역사를 관통하는 믿음과 절대적 진리를 좇는 것을 고려해볼 때... 현대 사회가 이성에 기초한 과학으로 발전한 것은 맞지만,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 지양하자는 말씀인 듯 합니다. 댓글을 쓰신 분은 신앙인이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채널은 신앙인을 위한 유튜브 채널임을 생각했을 때 '꾸짖는다'는 표현이 크게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겁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애초에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단어 하나하나에 목매이는 것(당연히도 옛적부터 쓰였기 때문에 현대 사회인의 주류 통념 상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주시는 목사님에 대해 기본적으로 존중, 가르침을 받는 입장으로서의 존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돈-c6j7 ай бұрын
@@ysjeon2271 저는 신앙인입니다. 이러니 또 불편하시지요? 저는 제 신앙의 유무에 대해서 언급한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신앙인이 아닐 것 같지만..“하고 넘겨짚으시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제가 신앙인이 아닌 편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실 거 같네요. 하지만 저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의 형태와 모습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심지어 기독교로 한정해서조차도 계속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해왔어요. “신앙”혹은 “믿음” 이라는 단어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그 애타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과 동일하지 않은 신앙의 모습들에 모두 “잘못된 신앙(믿음)“ 혹은 ”우상숭배”라는 라벨을 붙이지요. 하지만 저는 신앙 속에서 살고 있으며, 단지 당신처럼 특정 “종교인”이 아닐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목사의 말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건 없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존중하고 경청하되 자유롭게 비판할수 있는 대상입니다.) “신앙인을 위한 채널이니, 너의 댓글은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라.... 잘잘법이 오롯이 기독교인만을 위한 배타적 소유물인줄은 몰랐네요. 잘잘법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의 채널을 이용하여 공개적으로 영상을 올리고 있지요. 교회등록정보를 확인하고 가입시켜주는 기독교인 한정으로 운영하는 채널이 아닙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업로드해놓고, “여기는 우리만의 공간이야! 네 의견은 원하지 않아!” 라니..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자체를 고립시키며 그 안에서 끼리끼리만 칩거하고자 하는 매우 방어적인 태도 아닐까요? 이 정도의 작은 비판의 목소리에도 정면으로 맞설 수 없는 유약함으로 어떻게 구원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이야기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심지어 해당 영상의 “꾸짖음”의 대상 또한 사실상 “비 기독교인들”을 향한 것 아닌가요? 종교인들이 종교 밖 사람들의 말을 꾸짖을 자유가 있다면, 그 반대의 자유 또한 분명 있습니다. 왜 마음 여린 어린아이마냥 일방향적 소통만 하려고 하시는지. “성경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와 달라서..” 류의 변명 또한 낡고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영상은 현대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영상이에요. 그럴려면 당연히 시대적 감각에 맞는 언어를 써야 하는 거구요. 그 언어적 감각에서 제가 기독교인들의 거만함을 지적했다고 해서, ”단어 하나하나 꼬투리 잡지 마! 성경은 옛날에 쓰여진거라 어쩔 수 없어(??)“ 라는 식의 응대는 매우 비루하게 보입니다. 김학철 교수는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죽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어울리는 언어적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걸 무시하고 성경 속의 감각에 따라서 소통하고 싶다면 거기에 따르는 오해와 비판은 감수하면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가르침과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지를 잘 알기에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종교 안에서 칩거하며 그 관점에만 매몰되어 자신과 다른 목소리는 침묵시키고 싶어하지만 마시고, 좀 마음이 불편하고 복잡해지더라도 자신의 믿음과 결이 다른 의견 앞에서 당당한 종교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고 평온하시길. Ps. 아 그리고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감정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지양하고자 하는 메세지“ 부분은 저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섭리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제 신앙의 출발점도 그 지점에 맞닿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비판의 내용이 침묵해야 한다거나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인건 또 아닐 뿐^^
@루나-c8i7 ай бұрын
단어하나에 의문을걸면 모든사람의 언어의 표현에는 모순덩어리에요 종교를. 떠나서 말 자체를 할수가 없을것 같아요 그 의미를 넓게 포용하셨으면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인가 마음으로 들으시면 될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말씀하실수밖에 없구요 시대적감각으로 말씀하실수는 더욱더 없다는것을 디폴트로 놓으시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불치하문-q4m8 ай бұрын
성경이 사회문제를 고치라고 하는가요?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아니,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역사에서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럼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셨는가요? 예수님은 자기 멍에가 가볍다고 하셨는데, 왜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합니까? 성경은 내가 구원 받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가요? 사회문제는, 가난한 자를 돕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도, 사람이면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독교인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그런 일을 하려면, 목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때고 하라고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문제 중의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사랑하려고 너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고 여행하지 않았지만, 기독교인은 이웃을 사랑하려고 불을 켜고 돌아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인으로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급히 적느라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
@adp-cvyip8 ай бұрын
사마리아인은 버림받은 유대인일 뿐이지 유대인이 아니지 않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은 혼혈인이라 짐승취급 받았던 자들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정통 유대인이라하며 신앙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들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짐승취급하는 사마리아인보다 못함을 엿볼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느라 정작 이웃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구절을 지키느라 거반 죽은 자를 내버려두고 갔죠 반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살려내심을 보여주십니다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지켜온 말씀과는 정반대로 행동하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시고, 저주받았다 여겨지는 이들과 함께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유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이단으로 보일만한 행동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거기다 기적까지 일으키시니 사단의 소행이라 모욕받으셨죠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먹이시고, 고치시며,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을 들고 시험할 때 항상 명쾌한 답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으나 할 수 있는 건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님이 말씀하시는 건 행동에 대한 지적이기 보단 구원론에 대한 지적입니다 행위구원은 잘못된 게 맞으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은혜를 입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은 은혜를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려 하는 행함, 인정받으려 하는 행함은 말씀하신대로 잘못된 것이 맞으며 이는 근본 믿고 있는 구원론이 잘못되어 야기된 문제입니다
@9m-thursday8 ай бұрын
사회문제를 고치라고는 안하시지만, 문제속에 있는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복지사각지대, 사회적 소외계층에 속해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이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뻔히 보이는데 모른척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9m-thursday8 ай бұрын
성경은 내가 구원받는 과정이 기록된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깨달은 바로는 진정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경전이라고 봅니다. ㅎㅎ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된 인간, 참다운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며 말씀안에 거하는 존재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구원을 이뤄간다는 말과 상통하는 의미인데, 한국 기독교가 정해놓은 좁은 의미의 구원과 구분하고자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Etranger6158 ай бұрын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만,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님의 마음를 닮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신 마음대로, 허락하신 만큼 사랑하길 원합니다.
@불치하문-q4m8 ай бұрын
@@9m-thursday 1. 저는 “내가 기독교인이니까, 혹은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라 의무이고 자기 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고, 이웃은 단지 내가 사랑을 베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고 대상에 불과하지요.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이웃을 사랑하리라. 강도 만난 자를 보면 도우리라” 하면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볼일 보러 떠났다가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났고,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했습니다. 갔다가 오는 길에 돈을 주겠다고 한 것도 분에 넘치게 한 것이 아니고,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내가 길을 가다가 목마른 사람을 만났는데 마침 나에게 물이 있으면 주면 되고, 없으면 안 주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거기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억지로 우물을 파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억지로 하게 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런 접근법으로 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비유에서 작은 소자에게 행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했던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기들이 사랑을 베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접근부터 그걸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야!” 이게 바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또 예수님은 너희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한 후에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자기가 자기 의지로 무엇을 한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홍수 후에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고 하셨습니다. 밤에 찾아온 이웃에게 빵이 있으면 주면 되는 것인데, 자고 있는 이웃을 찾아가서 빵이 필요 없느냐? 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오히려 정작 필요할 때는 우리 아이가 자고 있다고 하는 것처럼 교회에 가야 한다, 기도하러 가야 한다고 하지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접근하는 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라고 적으셨는데, 이렇게 결국엔 전도를 생각하는 것 자체도 포기 하셔야 할 겁니다. 이웃사랑은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아닌가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 숨을 쉬어야지 하면서 숨을 쉬는가요? 그냥 숨을 쉬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