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장소중 하나인 나주국립박물관 고분군쪽 다녀가셨군요. 저도 마한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남도 들판에 영상주제가 가득한데 물리적인거리가 발을 가로막습니다😌
@하울-z5j4 ай бұрын
이분 지식의 깊이 영상미등 정말 좋고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 영상인게 느껴지네요 구독자가 100만은 되어야 맞는데 유튜브 시청자들의 수준이 안타깝네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좋게봐주시니 보람이 느껴집니다😌
@제주바른마음과몸연구4 ай бұрын
저도 마한이라 부르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 👍👍👍🧧
@사적돌4 ай бұрын
염려 감사드립니다 제마음도 역시 같습니다😌
@탐구열4 ай бұрын
오늘 컨텐츠는 영상 하나 하나, 사진, 나래이션 하나하나가 정말 보물입니다. 국립나주박물관에서 활용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사적돌님! 26년 충주박물관 개장에 맞춰 국립박물관의 특징과 볼거리를 특집으로 다뤄주시는 게 어떠신가요? 예를들어 청주 박물관의 금속문화와 야외 석조물 같이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청주박물관 참 잘해놨지요 해당영상은 적극 고려해보겠습니다 단 허가과정이 까다롭습니다 잘지켜가며 진행하겠습니다😌
@송하나라4 ай бұрын
상당히 오랜 기간 독립적인 세력으로, 복속되고도 자치주에 가까울 만큼 독립성을 가졌던 것 같고, 노령산맥을 기준으로 전래민요에도 차이도 보이고 지금도 전남과 전북/ 해안과 내륙은 낯선 이웃 같이 인식을 하고 서로를 헐뜯거나 조롱하는 말도 없지 않으니 아마 토착(마한)/외부(한강이남이주세력) 구도가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은 나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골도 깊고 사람도 많은 큰 나라이기도 하네요 😊
@사적돌4 ай бұрын
이땅의 지형이 고립된 지역을 많이 만들었지요, 어찌보면 사람은 땅에 매여있네요🤔
@실버선장-q4r4 ай бұрын
백제부흥운동때도 미온적이었고 후백제때도 독자적인 세력이라 고려에 협조했고 고려건국때 상당한 지분을 가졌었죠. 현종이 피난처로 택했던것도 의지할 세력이 남아있었던거고 나주로 중앙집권화 될때까지 아주 오래기간 해먹었죠
@joefortomorrow4 ай бұрын
비어있는 사서의 기록도, 발굴과 답사, 상상과 논리를 통해 채워갈 수 있음이 놀랍습니다. 지금은 인구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시골의 마을들도, 먼 과거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못지 않은 각 세력들의 각축장이자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겠지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생각보다 많이 치열했을것같습니다😌
@l2lMrFox4 ай бұрын
나레이션으로 찬란했던 지역사와 그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이 남긴 화려한 유물들과 커다란 고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데, 반면 영상속에 한적한 농촌풍경이 정겹네요. 옛 선현들이 유적지를 다니면서 세월을 한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과거 탐라국과 우산국 땅이었던 곳에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언젠가 꼭 가야지요 채널이 커지면 해외에서도 찍어오겠습니다😌
@throneblack69014 ай бұрын
댓글 읽으니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소설 마지막 부분에 본편에서 어린 소년이였던 수도사가 노인이 되서 돌아와 소설의 중심무대였던 옛 수도원이 폐허가 된 것을 보며 한탄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국어시간에 배운 목은 이색의 부벽루라는 시도 생각나구요 ㅎㅎㅎ
@Fifty_Fifty_Orbit4 ай бұрын
장고분 포함 옛 백제 마한 세력의 고분을 종합적으로 다룬 영상이라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공부해야할 영상이네요! 대한민국이 크지 않은 땅임에도 다양한 문화권의 유물이 나온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워각 이견이 많은 지역이기도하지요😅 근래 발굴성과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4 ай бұрын
와 직접 발로 뛰시는것도 힘드실텐데 세밀하게 기록과 유물과 대조해주시는게 정말 흥미롭네요.. 다음에는 이 영상 마지막에 넣으신 위서 동이전과 같은 기록들에 있는 지명 or 건물들을 찾아가실 생각이 있나요? 혹은 관북리 유적과 관련한 영상도 찍어주시면 좋을거같습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관북리유적은 여기서 다루었습니다 kzbin.info/www/bejne/iWOneaJ9mKlog7s 새소식은 쇼츠로다루고있습니다😌
@tv-kt9ic4 ай бұрын
이번에 나주 오셨나보군요 감격입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나주에 이야기가 많지요😄
@LBY02104 ай бұрын
반남 고분군(예전에는 덕산리 고분이라 불리는 곳)... 제 외할머니댁 근처네요! 나주박물관 생기기 이전 그리고 역사 배우기 이전 초딩때 이런 유적인지 모르고 등산을 했습니다 ㅠㅠ
@사적돌4 ай бұрын
그래서 더욱 좋은 추억 같습니다😄
@wenmi77864 ай бұрын
나주쪽의 마한은 영산강마한(5-6세기)이라고 별도로 분리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추가로 구슬(고대때부터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해상세력의 대표적인 교역품이었던 구슬, 분명 백제한테 통치받았을 5-6세기에도 동시대 중앙의 백제 무덤에서보다 더 많은 구슬출토)문화, 해양세력으로 봐야된다는 의견도 들은 적이 있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마한과 연계되었을 광주 신창동 유적관련해서도 다뤄주세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신창동은 갈때마다 촬영에 실패하네요 덕이 부족한가봅니다🤔
@권민섭-b6p4 ай бұрын
사적돌님!! 언젠가는 문경 고모산성도 방문해주세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기억하고있겠습니다😌
@manson01164 ай бұрын
마한의 영역으로 추청되는 지역에서 보이는 옹관의 묘제는 충청남도 남부지역부터 전북전남지역까지 쭉 이어집니다. 초기형식 옹관도 무덤 주위에 쭉 주구를 두르고 내부에 구슬 옥 등 마한인들이 좋아하는 부장품들을 넣었지요. 물론 주구도 옹관도 봉분도 사이즈가 많이 작습니다. 익산 전주 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주 중노송동 재개발 지역 내 후백제 추정 유적의 조사가 거의 마무리가 되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조합의 발표에 따르면 시굴발굴 조사에 특별한 유구가 나오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저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ㅎㅎ
@사적돌4 ай бұрын
아,, 무척 아쉽습니다;;😞
@올빼미올빼미4 ай бұрын
ㅎ, ...거의 거론이 안돼서 그렇지 옹관묘제와 장고형 고분은 대동강(평양) 인근에도 있었습니다. 즉 왜계 묘제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특히 구슈지역)에 선 도래한 이주민에 의해 일본에 퍼진 것이지, 일본에서 시작된 묘제가 아닙니다. 나중 왜와 가까운 후기 백제에 의해 후손들을 다시 불러올 수는 있었겠지만, 전후 또는 막간의 사실 유추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saineiss144 ай бұрын
나주는 후백제와 태봉~고려와 공방전이 있었던 격전지였죠^^
@사적돌4 ай бұрын
반남고분군 앞까지 바다였지요😮
@kimsaam4 ай бұрын
보면 볼수록 대단함
@사적돌4 ай бұрын
당시 이곳은 생각보다 번화한곳이었음이 틀림없지요😄
@maximschuneider1984 ай бұрын
지금 반남고분,나주국립박물관에 가면 사방이 뭍이라 과거 이곳이 사실상 해양문명이었다는게 실감이 되질 않습니다;; 이땅에 저 그리스 폴리스들과 같이 개방적이고 무역중심 해양문명의 도시국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땅에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게 정말 아쉽네요 그래도 이런 고고학적 연구로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건 정말 멋집니다😊😊
@SouJungH4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이신데, 문제는 이런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오는 배는 작을 것이고, 그걸 타고 어떻게 왜 일본까지 갈 수 있냐는 겁니다. 게다가 왜는 갔으면서, 위진 시대의 중국에는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 왜와 중국에는 이들의 활동 기록이 없는 이유는?
@사적돌4 ай бұрын
근래 발굴 성과가 괄목할만하네요 지자체 중심이라 의의가 더큰것같습니다😄
@늘푸름-d8b4 ай бұрын
@@SouJungH 반남 그쪽은 영산강 본류가 흐르는 곳이며 제법 큰배가 올수 있는 곳 입니다. 반남 보다 상류인 영산포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해방전 까지만 해도 (영산강 하구 공사 전까지) 영산포에 배 들 이 들어 오고 그 배들 을 안내하는 등대가 필요한 곳 이였으니까요 왜 와 중국에 기록이 없는것이 아니고 그들이라고 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 합니다. 확실치 않으므로 정사로 인정 하지 않는것 뿐 입니다.
@chaokaoli4 ай бұрын
사적돌님 영상은 내용도 좋지만 댓글로도 많이 배우게 됩니다 전 여러 인연이 너무 이어져 태국 사원에 담긴 역사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 사적돌님 영상을 자주 보지 못했네요. 그래도 꿀단지처럼 남겨두었다 천천히 보렵니다 전 란나 엑스포2024에 초대되어 참관 후 귀국하려합니다. 북부 미인들이 나온다해서 꼭 참가하려고요 ㅋㅋㅋㅋㅋ
@사적돌4 ай бұрын
그곳도 무척 흥미진진해보입니다😄
@chaokaoli4 ай бұрын
@@사적돌 인연이라는 것이 참 소중하기도 하고 무서울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배움과 더 넓은 또 현지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물론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요 ㅋㅋㅋ 북부 사투리만 늘었네요 ㅋㅋㅋㅋ
@thflskan4 ай бұрын
한참전에 소개 하신 괴산의 마애불상을 저번주에 다녀왔습니다 실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지인들에게 한시간 거리이니 찾아 보라고 했더니 교회를 다닌 다는 정말 엉뚱한 소릴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적돌님이 구독자들과 함께 하는 역사여행 어떨까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10만 부터 분기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 일반적인곳은 다른분들이 많이 하고 계시니 저는 어려운 곳 위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찰리-s7u4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가능합니다.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 당시의 기록들이 많이 발견되었으면 합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나주가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자체적으로 발굴을 많이 추진하네요😄
@늘푸름-d8b4 ай бұрын
제 생각으론 영산강 유역의 세력이 일본 열도로 진출했고 고향인 영산강 유역 과 열도를 오가면서 교류,교역한 흔적으로 봅니다 영산강 유역은 나중에 백제에 우호적으로 합병되고 열도로 진출한 그들은 기존 일본과 하나 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일본식 장고분이 그곳에 존재하고 반남고분군 에는 옹관묘에서 석실형 묘로 바꿔지는 중간 단계 묘 도 있으니까요(장고분 은 석실형 묘 입니다)
@뚱냥-e3l4 ай бұрын
지립니다 바지에 싸고 갑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왜때문이지요😱
@뚱냥-e3l4 ай бұрын
@@사적돌 훌륭한 요점정리와 논리때문이지요♡
@김선자-l3c9 күн бұрын
11월 21일 나주를 방문했었는데요 특별히 역사여행을 좋아해서 다녀왔습니다. 빛나는 나주시 였어요. 지자제장님을 칭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백제 시대의 흐름이었거나 일본 어쩌구 하는사람들 이때는 왕권이 확립되었던 시기인데 어찌 부덤을 아파트화 합니까? 제발 반성들 하시길
@사적돌9 күн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백제근초고왕-o3t4 ай бұрын
백제가 노령을 넘는게 6세기가 넘어야죠 근초고왕때 넘기는했지만 영토화하지는못한
@사적돌4 ай бұрын
고고학적 자료보면 딱딱들어맞지요😯
@PrettyT-rex4 ай бұрын
영산강 유역의 세력들이 왜의 세력을 이용하여 백제로부터 독립각을 재봤다는 해석은 무리일까요?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백제관청인장와가나왔지요 기본적으로 무역을 중시했고 절대적인수의 백제유물이 나와서 느슨한연방이나 종속국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럼에도 백제가 멸망할때 전혀등장하지않지요🤔
@DS-nl5pp4 ай бұрын
운봉리회칠고분도 전방후원분인가요?자미산 최근에 제사유적 발굴하던데
@사적돌4 ай бұрын
마지막에 방울사진이 자미산성 제사유구에서 나온것입니다😄
@향원익청4 ай бұрын
저 역시 지역적으로 마한 출신이고 여기 나오는 유적들 늘 다니던 곳이지만 요즘 발굴성과들도 그러하고 예전 페니키아인들의 ‘카르타고’같은 성격의 국가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아무래도 각각 독립적인 모습이지요😯 더 본격적인 발굴이 이어졌으면좋겠습니다😄
@solgga_history4 ай бұрын
한국을 삼한으로 분류하면 마한이 맞습니다. 그러나 마한 내에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더 세분화하는 것이죠. 동한과 남한(하한)이 그것입니다. 영산강 유역을 특정할 수 있는 지칭은 남한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항상 감사드립니다😌
@백제근초고왕-o3t4 ай бұрын
저 해남 고다산성은 고해진국으로 보입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왜계유물이 많이나와서 그런지 발굴이 지지부진하네요 기대가 많은곳입니다😄
@별나무-c8e4 ай бұрын
지형적으로 보면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 것 보다 통합되어 하나의 세력을 형성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는데 오랜 기간 통합이 안 되었음
@사적돌4 ай бұрын
그렇지요 고대 도시국가들보는것같습니다🤔
@백제근초고왕-o3t4 ай бұрын
유력 세력 신미대국이 있던 나주
@사적돌4 ай бұрын
저렇게 풍요로운곳이 흔치않지요😮
@백제근초고왕-o3t4 ай бұрын
저 회진이라는곳이 저는 장흥이나 강진같아보이죠
@사적돌4 ай бұрын
오 산을 넘어야되는군요🤔
@백제근초고왕-o3t4 ай бұрын
@@사적돌 이름이 장흥이나 강진의 옛이름같아 보여서요
@Slayer-x4j4 ай бұрын
아,영산강 마한 전방후원분유적,알렉산더 보빈의 반도 일본어설,규슈와 전남의 cis혈액형 등을 종합해봤을때 영산강 마한세력,침미다례가 한반도 최후의 고대 일본어를 쓰는 정치적 세력이 아니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시청감사드려요 😌
@SouJungH4 ай бұрын
'마한 문화 공원'에 많은 고분들이 있는데, 그건 빼시는군요. 문화 공원을 세울만큼 중요한 곳인데... 백제, 마한, 왜 - 세 세력의 공존에 대해서 별로 설득력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적돌4 ай бұрын
시청감사드립니다😌
@레발랑도르4 ай бұрын
춘추전국시대 오월의 난민들이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넘어왔음
@사적돌4 ай бұрын
시청감사드려요😌
@kunufelixАй бұрын
한국 고고학의 2대 아픈 손가락..평양 낙랑 유적, 임나 왜계 유적...
@사적돌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바람에휘날려-l6p4 ай бұрын
전 정말 한반도 남부에 왜인 세력이 점거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시청감사드립니다😌
@tskk6144 ай бұрын
조작설이 있지만, 왕건의 훈요8조에 호남인들의 등용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는것도, 사실, 고려초까지만 해도 한민족의 주류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고있던 전라지역의 연원을 알 수없는 다양한 민족형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마한이던, 왜나 기타 다른 고대민족이든.
@mhhan45794 ай бұрын
8조의 차령 이남, 공주강 밖은 호남보다는 공주강을 금강으로 비정하고 청주, 진천 지역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 청주시의 금강을 낀 강외면이 강내면보다 북쪽에 있습니다. 청주호족들이 궁예 지지세력이었고, 궁예축출 후 반란이 속출한 전력도 있죠 반면 나주는 지속적으로 왕건의 지지세력이었고, 현종의 몽진지였으며, 훈요십조의 8 조를 호남으로 한 해석은 후대에 나온 거라 근거가 매우 취약하죠 거기다 차령산맹과 금강은 의외로 멀어서 동일한 지역만을 뜻하는 지리적 표기로 그 이남으로 해석하면 그 중간지역이 애매하죠
@사적돌4 ай бұрын
정작 나주호족 오다련이 없었다면 삼한일통을해낼수 없었겠지요 의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대목입니다🤔
@tskk6144 ай бұрын
@@사적돌 훈요십조는 왕건의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정신적 스승이랄수 있는 도선이나 신숭겸 또한 전남출신이며, 통일후 나주(전남)출신 인사를 중용하는 호족들의 반대에 대해, "나주는 충성스런 곳이다" 고 두둔하기도 했잖습니까? 그럼에도 호남지역의 모호한 역사는 많은 수수께끼를 전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상경했을때 이웃에서 듣던 얘기중 당시엔 이해가 안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쟤네(전라도 사람들)는 왜놈들 후손이라며?" 과연 천여년동안 호남지역 고대인(민족)들에 대한 풍설이 전해져 온걸까요?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평범한) 이웃 아줌마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ㅎㅎ
@병민최4 ай бұрын
차현이남(車峴以南) 공주강외(公州江外) 이 문장에서 "호남" 이라고 단정할 단서가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tskk6144 ай бұрын
@@병민최 말꼬리 잡기가 취미이신 듯하네요. 차현이남이 뜻하는 의미는 역사적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꼭 직설적으로 짚어줘야만 알아듣는다면 본인의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거 아닙니까? 이런 독해력이라면, 산문형식의 많은 고대사적의 문장을 부인하는 것일뿐. 그럼 본인은 차령이남이 어디라고 보십니까? 절대 호남은 아니라고 믿고싶습니까? 그럼 그렇게 믿으세요. 남들이 뭐라하든. ㅎㅎ 나도 전남(장성군)출신이지만, 지역주의는 징글징글 합니다. ㅎ
@미제드론4 ай бұрын
영산강 장고형 고분들은 정말 의문이네요.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군에 대가야와 왜군도 참전할 정도로 심심찮게 왜인들이 드나들었을것 같습니다.
장고분 몇개 그것도 거리와 시차를 두고 발견되었고..딱히 왜의 유물이나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는데..왜군 운운하는건 무지한 생각입니다..😮😮😮
@Kenny-fh3om2 ай бұрын
@@사적돌무슨 왜계유물들이 많이 나와? 대부분의 유물들이 3국시대 유물들입니다.. 장고분도 시차와 거리를 두고 겨우 열몇개... 😮😮😮😮
@tankquon4 ай бұрын
전남지역은 저 시절 왜의 일부였습니다. 그 당시 왜의 개념이 지금의 일본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 남부와 한반도 남서 해안을 아우르는 집단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백제에 복속된 기간은 아주 짧습니다. 오히려 통일 신라에 복속된 기간이 훨씬 더 길지요. 많은 유물들이 그 증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왜의 영역을 기준으로 현대까지 동질성을 유지한 국가가 지속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장고형고분을 포함하여 과거의 유물들이 발견되면, 그 유물에 대해 양심적으로 연구 발표하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친일파라는 무서운 딱지를 쓸만한 용기가 있는 역사학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발견된 장고형 고분을 조사하다 다시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중심에는 전남지방 거주민 자신들의 혈통이 왜인이라는 딱지가 씌워질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남 제주지방의 혈통은 선대 거주 왜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전남지방에 정착한 주민들은 몽골군에 편입되어 정착한 그 어느 나라의 후손입니다. 역사 기록에서도 적시되어 있듯이 삼별초의 난 당시, 지금 전남 제주 지방의 대부분 양민들은 학살 당합니다. 몽골군이 학살한 것도 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삼별초가 훨씬 심한 학살을 자행합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이자 최대의 홀로코스트였습니다. 이후, 삼별초도 완전히 전멸하고, 빈 땅에는 몽골이 들어와 살게됩니다. 진돗개, 조랑말, 목호의 난 등등... 그런데 몽골군은 숫자가 적어서 항상 그 전에 정복한 국가의 병력을 최전선에 내세우는 병법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여몽연합군으로 일본을 침공했다고 알고 있지만, 고려군은 사실 정복당한 국가에서 차출된 선봉화살받이였듯이. 그래서 결국 지금 전남 제주 지방에 거주중인 토착주민들의 선조는 몽골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정복된 국가에서 끌려온 주민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400여년 전 메이플라워를 타고 오늘의 미국을 개척한 백인들이 인디언을 자신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인디언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았지만 선거주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를 숨기거나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전남 지방에서 발견되는 고대 유적지들을 만들고 그 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지금 주민들과는 혈연관계가 단절된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토착민을 죽이고 없애버린 침략자의 후손들이 그 말살해버린 선거주민들을 자기들의 선조라고 착각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늘푸름-d8b4 ай бұрын
민감한 내용을 ... 저도 많이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영산강 유역과 남해안이 왜 의 고향이고 일본 열도 까지 진출 해서 일본 남부와 한반도 남서 해안을 아우르는 집단 으로 성장하고 나중에는 한반도 왜는 백제 에 우호적으로 흡수되고 열도지역은 왜 로 존재하다 일본으로 통합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사적돌4 ай бұрын
장문의 덧글 감사드립니다😌
@하트호야-d5h4 ай бұрын
용감하시네요 대가리 깨진 놈들에게 물어 뜯기기 딱 좋은 글인데
@아사리판과객4 ай бұрын
왜인을 불러와 정착시켰다는 의견이 많다고……. 소설을 써라. 여기 살던 사람들이 근초고왕에게 밀려 영산강을 따라 왜로 갔다 고향 찾아 온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