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란짜강 님 핸드폰 바꾼지 얼마 안돼서 채널이 안보여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채널이 보이면 들어갈 생각입니다 핸드폰이 바뀌어서
@스페란짜강3 жыл бұрын
@@정미남-n2s kzbin.info/www/bejne/eHKalZqve9KhkK8
@qiangdajin4894 жыл бұрын
남인수 선생이 생전에 1천곡이나 부르셨다는데 지금 남아있는 노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네요. 물론 천곡 가운데는 거지같은 노래도 있겠지만 쟁쟁하고 우수한 노래도 많았을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기술이 낙후해서 녹음상태가 엉망이였고 전쟁으로 불타버리고 제대로 보존할 여력이 없어서 유실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스타365 Жыл бұрын
응원 고맙습니다.
@정병규병규3 жыл бұрын
천재가수님 남인수 가수님과 이난영 가수님 목포에눈물 늘 불러봅니다
@스타365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김혁-m7n5 жыл бұрын
가요 황제 남인수님의 육성을 처음 듣네요 너무나 귀한 자료이네요 남인수님의 팬으로서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귀한 자료 들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저 노래가 처음 만들어져 노래될 시절에는 영호남 지역의식이란게 있긴 했어도 지금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죠. 그래서 딱히 호남의 노래라는 의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말그대로 범국민 노래였죠. 굳세어라 금순아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영남의 노래라는 의식이 희박했듯이요. 그런데 정치적으로 호남이 핍박받으면서 그 이후로 호남민의 애향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되버리고호남분들이 가장 애창하면서 타지역분들은 오히려 덜 부르고 그런 식으로 되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산 유 화ㆍ 산에산에 들에들에 봄이 오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건만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ㆍ 무심하더냐ㆍ산유화야 남아 일생ㆍ노래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어수정-s5u6 жыл бұрын
당시 마이크가 속칭(俗稱) '바보 마이크'로 불리던 것이었으니까, 남인수 선생의 카랑카랑하고 변화무쌍(變化無雙)ㅡ고음(高音)과 저음(低音)의 자유자재(自由自在)ㅡ한 창법(唱法)과 목소리(특히 高音)를 제대로 수용(收容), 감당(堪當)하지 못하는 게 느껴집니다. 오늘날의 마이크 음향(音響) 기기(機器)였으면, 일본 ''앵카[演歌]'의 대부(代父)' 고가 마사오[古賀正男]가 1930년대 말(末)에 말했듯이, '100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와 창법'이 얼마나 놀랍게 울려 퍼졌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상상 초월이군요. '장수(將帥) 나자 용마(龍馬) 난다.'라는 옛말이 여기에는 허언(虛言)으로 남는 순간(瞬間)이 돼 버린 것 같아, 너무나 애석(哀惜)합니다. 여포(呂布), 아니, 관우(關羽)가 나자 적토마(赤兎馬)도 났는데, 남인수(南仁樹)는 났으나, 마이크는 아직도 '바보 마이크'만 그대로 있었던 시대(時代)의 열악성(劣惡性)!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영구-w9l Жыл бұрын
귀중한 자료 방송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스타365 Жыл бұрын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정숙-n4x3i10 жыл бұрын
남인수 선생님의 육성과 노래 생전 첨듣고 전율을느꼈습니다!!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아쉬운건 녹음 상태가 좋지않군요!!
@스타36511 ай бұрын
행복하세요
@가람엔산넘어5 жыл бұрын
두분은 한국의 역사입니다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박재근-i6l7 жыл бұрын
참으로감동적입니다.칠순을바라보는 저는어릴때 어머니와 형님따라 두분의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지요. 지금도 막걸리라도한잔먹으면 두분의노래를 노래방에가서 부르기도 합니다.고맙습니다.감동입니다.이시대에둘도없는명가수들입니다.
@스타36511 ай бұрын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러기-n9o4 жыл бұрын
조명섭씨는 천재입니다.;어찌 저시절의 노래을 찾아 불러을까요..찬사를 보냅니다.🖖🖖🖖🖖🖖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woobin-z3c8 жыл бұрын
참으로 귀한 자료, 진정코 감사드립니다~OTL
@정영태-b6u4 жыл бұрын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함께 남인수이난영선생님의노래를 백년천년이갑시다
@스타36511 ай бұрын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gokgang9 жыл бұрын
너무나도 귀한 자료 감사드립니다! 어제 가요무대에서 큰 따님이신 김숙자씨가 고복수씨 은퇴무대 방송(라디오)에서 부르시는 '목포의 눈물'을 듣고 우시던데 아마도 남인수씨 이난영씨가 함께 공연한 이 라이브를 들으시면 더 기쁘실텐데(당시 김 씨스터즈는 미국에서 활동중) ㅉㅉ
@스타36511 ай бұрын
행복하세요
@오뎅국물-q2i5 жыл бұрын
라이브에 굉장히 강하다는걸 알았네요 남인수씨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몽화-m4h8 жыл бұрын
남선생님 ! 자세한 소식 주셔서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 드림니다 지나온 세월 지나온 추억을 새록새록 마음에 쌓으셔서 아름다운 삶을 아름답게 살아 가시길 바라옴니다 덕분에 저도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 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타36511 ай бұрын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선칠-t4z6 жыл бұрын
감동이엇읍니다 지금도 애창곡으로 즐겨.불으고 잇읍니 고마워요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오뎅국물-q2i5 жыл бұрын
그런데 레코드보다 라이브로 듣는게 훨씬났냐 천재구나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alysamcs45224 жыл бұрын
조명섭님~ -황성옛터 -무너진 사랑탑 -낙화유수 불러주세요 !!! 조명섭님외, 다른 가수들은 원곡의 느낌을 전달해주질 못해요, 전통가요를 이어갈 사람은 오로지 조명섭뿐........
@스타3652 жыл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seo44235 жыл бұрын
이난영 선생님 웬지 에띠뜨 삐아프 자꾸 연상됩니다
@스타365 Жыл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금설화-m8s8 жыл бұрын
오태환님께서도 노래를 무척 잘 부르시던데 화가이시면서 노래까지~ 재주가 많으십니다 귀한 자료까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인수님의 생전모습이담긴 영상은 황성옛터 부르실때 모습밖에 없나봐요~ 목소리만 나오니 더욱 가슴이아픕니다
@스타365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mrLee-lc9or Жыл бұрын
남인수 이단영 노래 천재입니 다 사랑합니다.
@스타365 Жыл бұрын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연-y9h4 жыл бұрын
시는 소월의 산유화. 노래는 남인수의 산유화. 나는 시는 소월의 시 산유화와 노래는 남인수의 산유화외는 알지 못한다.
@스타3652 жыл бұрын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luewave08529 Жыл бұрын
귀하디귀한 영상 올려주심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구독, 좋아요, 지인들에게 공유 ^^
@스타365 Жыл бұрын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찬솔5 жыл бұрын
이 공연 실황은 방속국 자료가 이니면 남인수팬이 녹음 하였다가 공개한 자료입니다 남인수씨는 62년 6월26일 우리나이로 45세로 사망 하였습니다.
@김건수-j4h4 жыл бұрын
1918년 생이라고 하니 맞습니다.
@스타365 Жыл бұрын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eatlelism10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귀한 자료네요.
@스타36511 ай бұрын
행복하세요
@김기화-h4f3 жыл бұрын
목포의 눈물 / 이별의 부산정거장 목포와 부산의 만남이다 ~~~ !! 호남과 영남 ~~
@스타3653 жыл бұрын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정미-f3f5 жыл бұрын
목소리가 가늘고 악센트강하시고 흔들림없이 쭉뻗는 느낌 잘기억좀해야겠어요 남강수님보다 목소리가 가늘한느낌
@스타365 Жыл бұрын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찬솔-j2p2 жыл бұрын
이 자료는 방송국 자료가 아니구요, 남인수팬이 녹음 하였다가 공개한 자료 입니다 감사 드려요.
남석훈 의 추억들--나의아버지 남풍명 은 남인수 김난영 시대때에 악단장이였다.김난영의 본 남편은 김해송 인데 작곡가이기도 하고 k.p.k 라는 악극단의 단장이기도 하다.그들은 화목한 부부로서 그 슬하에 그 유명 하였던 김 시스터로서 라스배가스에서 국위선양을 하였던 예능에 뛰어난 이난영의 남편 김해송 은 북한으로 북송 되어 이산가족을 맞은 이난영 은 큰가족을 다리고 6.25 의 피난 길에서 갖은 고생을 하였다.이난영 은 딸 숙자, 애자, 그리고 조카딸 민자 .세자매에게 3 시스터 를 만들었다 그야 말로 호차리를 들어 가면서 훌륭한 여성 보칼팀 시스터를 만들어 미 팔군단에서 최고의 인기ㅣ를 끌다가 라스배가스 까지 가서 크게 활약을 하였다.그 당시에 남인수와 김난영이 만나 부부가 되었다.남인수는 그때에 패병 환자 였으나 김난영은 그의 병 수발을 하면서 살다가 남인수는 숨을 거둔다.그리고 얼마 있다가 김난영도 따라 패 전염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그때에 그 이야기가 나에게는 큰 슲픔 이였다.그들의 순애보 사랑을 존경 까지 하였다.김영난 사망 소식을 듯]고 나는 팔군 쇼에서 받은 한달 월급을 다 들고 남산 올라가는 어느 언덕 길에 가서 조의금을 주고 나려 온 생각이 난다.김난영은나의어머니와 친한친구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