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진똑 영상 리뷰는 이걸로 종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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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ascus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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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375
@NJT_BOOK
@NJT_BOOK 13 күн бұрын
다른 건 다 좋지만... 9:55에 반박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데드로 치면 200 이상 쳤다" 그리고 여러분. 11:17은 진실이 아닙니다. 다메섹님이 하는 말을 다 믿지 마세요....!
@NJT_BOOK
@NJT_BOOK 13 күн бұрын
그리고 제가 숨긴 진엔딩은 영적 재림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다메섹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으로 향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간과하는 타이밍에 다메섹님이 권면 해주셔서 길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세가 위험하다. 이 말이 정확합니다. ㅎㅎㅎㅎ😅 물론 당연히 저는 여전히 제 해석 방식에 큰 문제가 없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메섹님과 저는 교리를 바라 보는 입장 차이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진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늘 매일 매일 변화하지만, 주님은 늘 변치 않고 계신다는 진실이지요. 제가 다메섹님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종무-t7i
@이종무-t7i 13 күн бұрын
고정으로 올라가시죠ㅎㅎ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3 күн бұрын
저도 좋은 통화 나누어서 좋았습니다. 영상에서도 말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성경 토론이 활발해진 것만으로도 누구도 할 수 없는 큰일을 해주셨다 생각합니다. 데드 200 괴물 인정합니다 😅
@user-xx5ut1lf1e
@user-xx5ut1lf1e 13 күн бұрын
진엔딩 너무 궁금해요~!~!~!!
@cry_st.4604
@cry_st.4604 12 күн бұрын
​@@NJT_BOOK 오! 진똑이형이다
@ShabbyNestHead
@ShabbyNestHead 17 күн бұрын
저한테도 너진똑님이 성서학적 방법론보다는 책 많이 읽으며 북튜버로서 책을 분석적으로 보신 짬밥으로 성경을 읽으신 게 보였어요. 진똑님도 영상에서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직접 성경을 읽어 볼 것을 강조하셨으니 문제될 건 없다 봅니다.
@user-zlanhd
@user-zlanhd 17 күн бұрын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영상만보지 그밑에 댓글을 안봐서...
@류승환-o7w
@류승환-o7w 17 күн бұрын
@@user-zlanhd 댓글이 아니라, 영상에서 여러 번 말했어요.
@정민석-i3b
@정민석-i3b 15 күн бұрын
요즘세상은 댓글에 더욱 생각에 영향을 받습니다​@@user-zlanhd
@귀염살구
@귀염살구 14 күн бұрын
근데 저도 정말 다시 읽을 엄두가 안나긴하네요..ㅋㅋㅋ
@sjh4001
@sjh4001 15 күн бұрын
저는 비종교인이지만 너진똑님 영상을 보고나니 이 영상이 떠서 보게됐습니다. 그 동안 기독교와 종교에 대해서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인으로써 듣기 기분 나쁘신 표현일수도 있어서, 거슬리신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만, 신앙을 주춧돌로 세워서 이미 정해놓은 정답을 맞춰나가고, 비논리적인 부분을 믿음으로 채워나가는게 종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을 전하는 하나의 사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너진똑님 채널이 아니라 굳이 여기와서 이런 댓글을 다는 이유는, 너진똑님만 그런 얘기를 했었다면 기독교에 대한 오해외 편견을 거두기 어려웠을텐데, 채널장님께서 올려주신 논리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종교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저의 비뚤어진 시각을 깨닫게 되어서 답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종교인거 같습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5 күн бұрын
좋게 봐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l묻는자
@l묻는자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보다 보니 다메섹이 뜨네 너진똑이 기독교에 도움 엄청주는것임
@s22울트라그린
@s22울트라그린 17 күн бұрын
신학자들이 군침 흘리는 너진똑 ㅋㅋ
@j-wn6ij
@j-wn6ij 17 күн бұрын
이츠학이 눈치보고 다메섹은 구애하고 양시무스는 전전긍긍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사랑인가요 그대 나와 같다면..
@eope298
@eope298 16 күн бұрын
군침이 사악도노 ㅋㅋ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16 күн бұрын
신학자들, 목사들이 진리 교리 신학 헛소리 내뱉다가 들통나서 무안할 뿐.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16 күн бұрын
예수의 인간적인 면, 어쩌고 저쩌고 들으면 웃김. 인간적인 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너진똑조차 본 것을 신학을 평생했다고, 예수의 제자라고, 진리를 안다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보지 못함) 인격을 너머의 예수를 봤고, 예수를 이해했다는 것은 순전 거짓말인 것임. 그냥 거짓말로 예수를 팔아서 밥먹고 살았던 것이 들통나서 무안할 뿐. 부활 어쩌고 저쩌고도 웃기는 이야기임. 예수를 모르는데 무슨 부활 이야기가 나옴? 웃기는 거 아님? 예수도 제대로 모르는데 무슨 근거로 부활 이야기를 떠벌림?
@황가혜-t2t
@황가혜-t2t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자 이토록 전념했다는 그자체가 너무 감격스럽게 느껴집니다!(하나님을 아는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신자들중에 이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그분을 알고자, 이해하고자 애쓰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요?(저포함) 더불어 참으로 말씀은 그자체로 살아있어 믿음없는 자도 감화케하심을 확인하네요 ㅎ 너진똑님에게 성령의 지혜가 함께하시길 ㅎ
@박박-s4f
@박박-s4f 17 күн бұрын
사실 인간이라면 처음부터 너진똑님처럼 읽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대부분 성경을 읽는 시점은 교회의 선배신도들을 통해 생각의 프레임이 만들어진 상태로 읽고, 일부 구절에 선택과 집중을 강요당하기 때문에... 너진똑님의 영상이 파급력이 큰거라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도덕경 첫줄부터 박아놨죠.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예수도 오자마자 율법을 뒤집은 이유도 이것일 거구요. 개인적으로 황금률급 범종교적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이거 한줄만 이해해도 예수천국불신지옥, 집단적 공개적 동성애혐오, 여기저기 집회다니는 일, 몸집불리기에 가치부여하느라 이웃사랑 깜빡하기 등등의 흑역사는 없었을거라 생각해요...
@티모삼촌
@티모삼촌 17 күн бұрын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동감합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자연스러운 읽기란 점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게 2-3천년 전 글이라 테크닉 없이 읽는게 좀 힘든 부분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낫놓고기억
@낫놓고기억 16 күн бұрын
일부 구절에 선택과 집중을 강요당한다는 건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강해식으로 설교를 하고, 성경 텍스트를 다같이 읽고 필사까지 해가며 소화할 것을 강요한다면 몰라도요.
@성이름-q4y8r
@성이름-q4y8r 16 күн бұрын
그러면 사이비도 새로운 관점 인정해줘야지…
@옼케발
@옼케발 16 күн бұрын
​@@성이름-q4y8r 사이비들은 주제와 요지가 틀렸잖음 ㅋㅋ 너진똑은 다른 해석을 했을지언정 우상숭배금지와 이웃사랑이 최우선이라는 주제를 놓지 않았으니 극찬 받아야 함!
@백상하리유튜브
@백상하리유튜브 17 күн бұрын
설득력 있는 상대방을 리스펙하는 태도부터 신뢰가 가네요
@pampham27
@pampham27 17 күн бұрын
이런 해석 한번 얘기하면 이단이라며 개속 쪼개지는 한국교회인데 쪼개짐 문제부터 정리 해야할듯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큰 문제 맞습니다
@유명재-z2z
@유명재-z2z 16 күн бұрын
그렇네요 가장 중요한 결론이 예수라는건 동일하고 (목적지) 다만 다른건 개인의 경험, 재량, 방식에 따른 해석의 결과물인데 (갈 수 있을법한 여러 길 중 하나) '네 길은 내가 알고 믿고있는 정통의 결과 다르니 이단이다 ' 라고 선 긋기 바쁜 모습을 많이 봤어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예수를 목적지로 보고 사랑이 핵심이라 강조한건 어느 정통 기독교와도 별 다르지 않은데 말이죠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이런 반론이 떠오르죠 '당신의 믿는바가 진리임이 확실하다는건 또 어떻게 타인에게 증명할건데?'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떠난것도 사실인거 같아요 전공자나 목회자 입장에선 모르겠지만 단순히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찬송가 부르고 목사님 말씀 듣는 사람들 관점으로는 보수 진보의 정치적 이념논쟁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그림이거든요
@류승환-o7w
@류승환-o7w 17 күн бұрын
마가복음 9장38-40절(누가복음 9장 49-50절)에서 예수님이 제자에게 말씀하셨듯 너진똑님은 믿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관을 매우 조리있게 설명하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부활과 재림의 개념은 믿음의 길에 들어서고부터 알아갈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그리고 부활과 재림의 개념이야말로 믿음이라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높은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너진똑님은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공부해왔고, 이를 비교 분석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분명 지금의 기독교 변증가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대-s4o
@성대-s4o 17 күн бұрын
[벧후1:20-21]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 말씀 생각나요
@pxuccucpy
@pxuccucpy 17 күн бұрын
저도 이 생각 남
@천사비숑
@천사비숑 16 күн бұрын
@@성대-s4o 정말 옳으신 말씀입니다. 문제는 예수님 이후로도 계속 예언자가 나오고, 심지어 스스로 보혜사 성령님이라 하는 자까지 나오니까요 ㅠㅠ
@namenick2469
@namenick2469 9 күн бұрын
덕분에 말씀을 통해 더 명쾌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kslee5402
@kslee5402 17 күн бұрын
다마스커스님 진면목을 이 영상에서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너무 멋지고 너무 통쾌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bboroopy
@bboroopy 16 күн бұрын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b4d4b00m
@b4d4b00m 11 күн бұрын
근-본
@ima443
@ima443 17 күн бұрын
다마스커스님의 부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분별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이렇게 이성적이고 변증적으로 진리를 수호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바르게 증언해주셔서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참 다행이고 귀하다고 느껴집니다. 저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제 식대로 성경을 파헤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냥 틀렸다고 비난하기 보다 이렇게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다시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중 다마스커스 님도 한 분이시죠~ 너진똑 리뷰 1편 영상도, 이번편 영상도 사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말을 아끼고 싶고 다만 부활에 대한 참 진리를 수호 해주셔서 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포-t5f
@사포-t5f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도 대단하지만 다마스커스님도 대단. 유튜브 덕분에 천재들의 운동장을 구경할 수 있음에 감사.
@--a261
@--a261 17 күн бұрын
예수님 믿는 사람 다 잡아 죽이겠다던 사울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바울로 바뀐 이후에, 오히려 예수님 전하는데 목숨을 걸었죠. 중요한 건 바울이 그 당시 종교 지도자로서는 수재 중의 수재였다는 것. 그래서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죠. 너진똑님도 진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예수 전하는 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Dreampop42
@Dreampop42 17 күн бұрын
인자강 비유 진짜 귀에 쏙쏙 박히네요ㅋㅋㅋㅋㅋ
@qwhoefhoqweg796
@qwhoefhoqweg796 16 күн бұрын
다마스커스님의 차분하고도 진중한 접근,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진똑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pretty9489
@pretty9489 17 күн бұрын
인자강 맞지ㅋㅋㅋ 심지어 본인의 역량으로 125만을 찍어버리고, 마침내 성경컨텐츠로 144만을 돌파해버림ㄷㄷ
@paki1019
@paki1019 17 күн бұрын
데드 180 비유가 너무 찰떡같으면서도 웃겨요 ㅋㅋㅋ, 영상 보다가도 얘기 나오면 또 웃게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짜누-n6p
@짜누-n6p 17 күн бұрын
크.. 역시나 속시원한 해석이네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이 실제 죽은 시체가 살아나고 진짜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게 아니라면 정말로 기독교는 믿을가치가 다른 종교에 비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그 모든 보상이 하나님으로 실제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처음과 끝을 말하는 진리이지,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저는 너진똑님이 cs루이스 같다기보다는 한국의 조던 피터슨 같은 느낌이라 생각합니다. 조던 피터슨도 신화적으로 성경을 대하지만 그 본질은 너무나도 잘 파악했던 것처럼. 그리고 조던 피터슨이 지금은 크리스찬으로 커밍아웃 한 것 처럼 너진똑님도 이런 모든 과정안에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오직 주로 고백하는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성이름-y3p5v
@성이름-y3p5v 17 күн бұрын
이미 고백했어요. 부록에서
@김준수-j8v9l
@김준수-j8v9l 16 күн бұрын
비종교인으로서 "예수"가 단순히 종교의 심벌이 아니라 "사상의 구현"을 어떻게 행했고, 그것이 종교적인 개념을 초월해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주신분이라는것에 참 감사하다 생각합니다. 종교를 믿고 안믿고를 떠나 올바른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게 천국이고 극락이고 유토피아가 아닐까요ㅎㅎ
@Fendersm2006
@Fendersm2006 17 күн бұрын
비신자들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진다고 해서 기독교 핵심 교리를 제끼거나 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 교리를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별개지요. 마지막 부분의 성령님 언급은 격하게 공감합니다
@livininyongin
@livininyongin 16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이 부록영상 1분 33초쯤에서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다고 얘기하셨어요! 마음속의 부활만 믿는것은 아닌듯해용
@Bongguri1234
@Bongguri1234 16 күн бұрын
비교인 입장에서, 최근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러 목사님들의 말씀도 믿음을 설파하시는 과정에서 교회의 환경 및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성경을 해석하여 설파하시는걸 보았습니다. 이러한 설교 방식은 이미 교회에 익숙하신 분들에게 맞는 방식이지만, 아직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저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지드라구요. 요새 느끼는 점은 사랑 및 존중이 부족한 세상에서, 가장 종교가 필요한 현재의 환경에서, 너진똑님은 비교인에게 가장 와닿는 해석을 내놓으신거라 느꼈습니다. 이제 막 교회를 다닌지 1년 조금 안되었지만, 믿음에 관하여 한번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된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matroos8393
@matroos8393 16 күн бұрын
크리스마스에 보기 좋은 영상이네요. 너진똑님 해석의 힘은 무신론자가 이해하기 너무 거부감이 없는 방법이라는데 있는거 같아요. 수학과 전공한 선생님보다 옆자리 친구가 수학을 더 잘 가르칠수 있는것처럼요.
@9.9.d.d
@9.9.d.d 17 күн бұрын
저도 동감합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해서 내가 예수가 되어야 한다(예수를 닮아가야 한다)는 반론의 여지가 없죠. 그러나 "찐"예수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도 믿습니다.
@KORDEVBACKEND
@KORDEVBACKEND 17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비기독교 유입입니다. 15:49 반대로 한국 기성 교회는 이상한 문자에 많이 집착하는 편인가요?
@acorn00
@acorn00 17 күн бұрын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이 대표적인 예시죠.
@박박-s4f
@박박-s4f 17 күн бұрын
성실하고 풍부하게, 히브리어자료까지 설교를 준비해오는 목사님도 한 분 계셨고, 그곳에선 행복하게 교회다녔지만, 이사다니며 어쩔 수 없이 찾아다녔던 다른 교회들에서 마주친 3명의 목사님은 전부 말 듣고 앉아있는 것도 고문...(중략)... 결국 못 찾아서 현재는 교회 안 다닙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
@acorn00
@acorn00 15 күн бұрын
@@piter-h7o당장 신약에 예수님이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앗이라고 했다고, 가장 작은 겨자씨 수호협회 이런거 만들었다는 단체는 못들어봤는데 말이죠.
@핑크-h7r
@핑크-h7r 14 күн бұрын
​@@acorn00 가장 작은 겨자씨 수호협회를 왜 만들어요?
@jasalsido
@jasalsido 5 күн бұрын
저는 불교인이고 무슬림 국가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모든 종교 관련 컨텐츠를 즐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흥미로 보던 유튜브였는데 우연이 보게 된 너진똑님의 컨텐츠는 단연 웰메이드 중에서도 최고였다고 느낍니다. 물론 해석은 누구나 다를 수 있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저한테는 너진똑님의 시선이나 접근법이 굉장히 강력히 다가오네요..
@Harim_Kim
@Harim_Kim 17 күн бұрын
믿지 않던 사람도 성경 말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저런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히시는 은혜에 의하지 않고는 알 수 없겠습니다마는) 여러 이유로 기독교를 거부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접할 기회를 줬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1부 리뷰를 먼저 보고 와주세요. kzbin.info/www/bejne/o4mpkodqrMeei5o
@P플로트
@P플로트 17 күн бұрын
본질 = 사랑
@에던-g9w
@에던-g9w 17 күн бұрын
와 감사합니다 너진똑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이전에 있던 선배 형제님들로인해 더 깊어지게되는것같습니다
@yunsuckyeol
@yunsuckyeol 17 күн бұрын
처음엔 너진똑 영상이 퍼져도 되나 싶었는데 이 리뷰 영상을 보며 한 차원 높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싶었습니다.
@korean_queen69
@korean_queen69 17 күн бұрын
예. 조금 다르다고 퍼지지 않게 덮어두는 건 부패한 한국군대랑 다르지 않지요
@잉잉-f3o
@잉잉-f3o 16 күн бұрын
편협한 생각은 고이기 마련입니다 본인과 다르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맙시다
@ahhhsidid
@ahhhsidid 17 күн бұрын
인자강 비유 너무 찰떡이네요 ㅎㅎ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felis_cauts
@felis_cauts 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의 영상은 어떤 이들에게는 신선한 의문을 던져주고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마치 문제집을 채점하듯 어떤 것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 바쁜 문제가 많은 영상이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이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사람은 지금도 태어나고 죽습니다. 이렇게 방향이 어떻든 끊임없이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눈과 귀를 닫은 사람은 마치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딘가 쉬어갈 곳이 있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안락함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쾌함은 때론 우리의 등을 밀어주는 파도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결론이 지어져 있는 책이 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긴 글을 써봤습니다.
@아무거나-h2h
@아무거나-h2h 17 күн бұрын
어것도 다 너진똑의 은혜겠지요..
@Pneo01
@Pneo01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의 정상화 히익
@눈을감자-v7m
@눈을감자-v7m 17 күн бұрын
너 창 섭
@T1mainstream
@T1mainstream 7 күн бұрын
눈을 떳구나 교회로 오너라.
@s22울트라그린
@s22울트라그린 17 күн бұрын
6:26 근데 많은 목회자들이나 심지어 신학교수들도 세계전집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냥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으로 퉁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서..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
@전광표-w4d
@전광표-w4d 16 күн бұрын
애초에 신앙인과 비신앙인은 생각전제부터가 달라서 이야기가 많이 다르긴 합니다. 결국 성경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성경학이 기본적으로 깔고있는 전제에 대해 동의해야 접근할 수 있는 것이고 그야 그 전제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비 신앙인이지 동의하면 신앙인이겠죠.. 종교가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 정말 관심이 하나도 안갔을겁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다마스커스님의 너진똑 영상이 알고리즘에 뜨길래 너진똑 영상을 봤고 나름 재밌게 봤고 다마스커스님이 올린 영상 역시 나름 재밌게 보았습니다. 저도 어리고 철없을 때에는 무신론자 말이 사이다다~하고 봤던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런건 성경을 공부한 쪽에서 한참 전에 이야기한 묵은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고 다마스커스님의 말도 무척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결국 성경은 해당 텍스처를 적게 된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여 이해한다는 게 표현하신대로 "안전"해 보이고 동의합니다. 성경무오설이니 완전축자영감같은 허접쓰레기 불쏘시개보단 훨씬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텍스처 해독법이라 느껴집니다. 하지만 처음에 밝혔듯 신앙인과 비신앙인은 전제부터가 다르기에 아마 맞추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비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큰 관심사가 아니니 말입니다. 애초에 부활하든 말든 알게 뭐란 말입니까?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걸로 느껴집니다. 아마 독실한 분들은 어떻게 그게 중요하지 않겠냐고 A4지로 15매는 채울수 있으시겠지만 신앙인들이 어떻게든 비 신앙인들을 자신들의 이해 범주 내로 짜맞추려고 노력하듯이 뭐, 무신론자는 신을 부정하기 위해 신을 전제하는 시점에서 이미 신앙인이라느니,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전제되므로 이미 신앙인이지만 그걸 자각했냐 아니냐로 나뉜다느니- 비 신앙인도 신앙인을 나름대로 자신의 개념 범위 내로 짜맞추려고 노력한다는 것만 잘 압니다. 물론 너진똑님이 모세를 냅다 거짓선지자 비스무리하게 독문해석한건 꽤 창의적이라 할 순 있겠지만 아마 찐 결론이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결국 이 분야 권위자들도 아니고(가장 중요) 거인의 어깨가 아닌 발밑에서 시작하면 뭐 보통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매우 진부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leeyelam
@leeyelam 16 күн бұрын
기독교인으로서 리뷰 영상 1,2부 모두 보고 댓글 남깁니다. 속이 시원한 성서학 관점에서의 설명 감사합니다. ❤ 저 또한 너진똑님 4편 부록 영상에도 댓글을 달았을 만큼, 제가 가진 신학적 견해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대속, 회개, 재림, 부활 등 이러한 현대 세속주의자들이 믿기 힘들어하며,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속성들을 완전히 제외한 “논리를 따르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성경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는 전제 자체로 오류같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시리즈 영상 속 모든 해석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제” 즉,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에 결론이 진리와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아쉬움이 컸던 이유 또한 비기독교인을 위한 영상은 100만번 양보해서 충분히 훌륭하고 적절하게 사용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을 위한 에서도 그런 이성주의적 해석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너진똑님은 니고데모와 같은 분이 아닐까요? 바리새인으로서 성경을 깊게 공부하며 주님의 뜻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지만, 정작 “거듭남”에 대해선 모르는 단계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마음을 다해 너진똑님이 중생을 깨달으시길 간구하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을 믿습니다! 비로소, 너진똑님과 많은 시청자 분들이 바울과 같은 깨달음을 얻고, 그토록 원하는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너진똑님의 영향력이 굉장히 큼으로 많은 구독자들과 시청자들이 영상을 통해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는 만큼, 성령께서 더욱 너진똑님에게 거듭나는 깨달음을 알려주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mumu-nn1tf
@mumu-nn1tf 2 күн бұрын
불자로서 너진똑님 영상과 이 영상까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너무 재밌네요 ㅋㅋ 관련 영상들 댓글을 보면서 이 넓은 세상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많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가 이 세상에 아직까지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랑 가득한 세상이 되길 ㅎㅎ
@BeU-J
@BeU-J 14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 영상 내용이 계속 생각나는 와중에 이 영상이 알고리즘에 떠서 왔습니다! 저에게 거인의 어깨가 너무 필요합니다ㅠㅠ 어떤 식으로 성경에 다가가야 할지, 공부를 시작해야할지 도움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이 논리와 생각에 대해 전문가로써 되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어릴 때 천재 소리도 듣고, 백일장에 나가 쓴 시로 동아일보에 이름도 올라가보고, 연세대 나와서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면서 사회적 성과없이 시험공부만 하다가... 올해 여름부터 엄청난 개인적,감정적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을 직면하고 여러가지 이상한 일들을 겪고 있어요. 논리 없이 불편해서 못 살아가는 사람이고 기독교에 반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이 간절한 순간마다 연속되면서.. 결국에는 논리보다 하등한 것으로까지 생각했던 감정을 통해 하나님의 당연한 존재를 느꼈습니다. 뻔할 수 있는 간증같은 이야기를 지금 하고싶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성경을 제대로 고민을 하면서 완독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 계속 질문과 답변을 느끼면서 생각난 것들을 적은 아래의 글에서 어떠한 하나님의 정답과 저의 오류가 있는지 봐주실 수 있을까요? ------------------- (글이 많이 깁니다) 1. 사람은 왜 고통을 겪을까? 인간은 이렇게 약한데 왜 그렇게 아픔을 주시는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그 반대였구나, 약해서 아픈거구나. 인간이 강한 존재였다면 같은 상황에도 아프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한 사람이 쉽게 병이 걸리고 아픈 것과 같다. 이 땅의 생명인 이상 모두 유한하고 약하다. 2. 사람은 왜 공통점을 느낄 때, 비유를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낄까? 인간이 비유와 공통점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인 것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 약하고 바보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일부라도 느껴보라고 인간이 비유에서 쾌감, 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쉽게 설명하려 하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비유이다. 비유는 설명하려는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의 공통점을 통해 연결짓고 이해시키려는 시도이다. ex) 사과 같은 내 얼굴 사과와 내 얼굴은 동그란 원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연결된다. 3. 하나님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 아인슈타인이 알아낸 아무리 명료한 진리라도 라고 아기 앞에서 말해봤자 애가 뭘 알아듣겠어. 자, 가 있지? 여기서 하나가 더 있으면 뭘까요? 하면서 아기의 눈높이에서 가장 쉬운 것 부터 알려줘야지. 아기는 질량은 커녕 숫자 1도 모르니까, 아기가 이미 알고 있는 사과 1개로 비유를 해서 숫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기초부터 이해시키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아기의 사과 1개처럼 우리가 알만한 주변의 것들을 사용해 비유하여서 우리를 기초부터 이해시켜야만 했다. 우리는 3차원에 존재하고, 인식의 한계가 존재하며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도 다시 흔들리고 하나님을 망각하며 육체의 눈에 흐려진다. 그렇기때문에 감정이 필요하다. 중 하나이며, 인간은 감정을 통해 아름다움과 슬픔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가진 공통점을 감정을 통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연결된다. --성경의 글이 물리적으로 일어난 일인지,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처럼 우화같은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3차원의 물리적 현상도 비유이기 때문이다. 중학생을 위한 비유이든, 유치원생을 위한 비유이든. 대상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비유에는 대상의 전부를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만은 물리적 현상으로서도 일어났다는 것을 믿는 것이 맞다. 그 현상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차원으로 내려와 연결되신 증거이기 때문이다.)
@BeU-J
@BeU-J 14 күн бұрын
4. 개개인의 인식 나의 adhd가 발견되었고, adhd라는 것은 평소에 일상에서 느끼는 일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른 느낌을 겪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그게 어떤 건지 감이 안잡힌다. 나도, 내 얘기를 듣는 다른 사람도 각자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못 느낄수가 있나?' 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내 절대음감이 발견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느끼는 음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때서야 나는 인간의 인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고도 내가 어떻게 느끼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차이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는 듣던대로 듣고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 뿐이고, 다른 사람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음을 인식 하는지 나는 인지할 수 없다. 그러다다 다시 '내가 느끼는 게 별 다른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도 사실 다 느끼고 있는 것 아냐?' 라고 생각한다. adhd는 이 사회에서 단점이라고 불리는 것, 절대음감은 이 사회에서 장점이라고 불리는 것인 차이가 있을 뿐. 이 둘 모두, 는 사례가 되어준다. 우리는 이렇게 는, 각자 갇힌 개개의 우주이다. 하지만 공통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에 타인과 닿을 수 있으며 타인, 즉 다른 법칙을 가진 세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은 타인에게서 본 공통점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어 생판 남을 사랑할 수 있다. 5. 하나님 사랑의 비유 자기 자신보다도 타인을 더 아낄 수 있는 큰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뼈가 저리는 감동을 준다. 거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사랑에 대한 비유이다. 3차원의 인간은 어차피 하나님의 어떤 작은 것이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종이에 아무리 정밀히 묘사한대도 모델의 전부를 담아낼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림 중 가장 완벽한 것이 만약에 모나리자라고 해 보자. 누구든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림의 모델이 된 인간 모나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그림에 담아낼 수 없는 부피, 움직임이 3차원의 모나리자에게 있고, 그런 특징들은 2차원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에 불과하지만, 2차원에서 가능한 가장 큰 아름다움을 통해 2차원의 존재가 감동하며 그림 모나리자의 원본인 3차원의 존재를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사랑을 보고 3차원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며 감동하지만 3차원의 것들은 고차원에 존재하는 것의 비유이다. 하다. 하지만 3차원에 존재하는 것 6.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죄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기에게 이성이 없을 때에는 악의가 없으니 죄도 없듯이 말이다. 사실 물리적인 땅에서 물리적인 창조의 방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모든 3차원의 것들은 고차원 즉, 이상과 하나님의 비유이다. 인간의 탄생과 이성은 모두 계획 안에 있다. 진화론의 논리 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진화의 과정 중 생물에서 이성을 가진 존재가 탄생한 순간, 이 땅에서의 인간이 되었다. 창조의 방법으로 하나님은 진화를 택했고 하나님이 계획한 순리에 맞춰 인간이 세상에 생겼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의 정의에는 애초에 이성이 포함된다.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졌고, 이성을 가진 자는 모두 죄를 가진 동시에 도덕의 의무를 진다. 이성을 가진 자가 도덕을 가지지 않는다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생명이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기까지, 규칙을 통해서만 앞으로의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왔음과 같다. 예를 들어, 동족을 먹지 않는다는 규칙이 없이 무분별하게 동족상잔을 하는 생물체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도태되었다. 동물에게는 죄가 없기때문에 그 행동이 나쁜 것이 아니다. 동족상잔을 하는 생물이라면 번식을 하는 데는 지장이 안 생기도록 알을 낳는 암컷이 힘이 세거나, 많은 알을 낳는 새로운 규칙을 통해 세상에 남았다. 이성은 생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이어서, 다른 동식물의 자연법칙과는 다른 차원의 강한 규칙이 필요하다. 이성을 가지면 쉽게 악의라는 무기를 휘두를 수 있고, 모든 생명은 모두 변하기때문에 생명체가 가진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의지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하위 개념일 뿐이어서, 강한 선의도 무조건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세상의 존재하는 시간 전체 중 어떤 순간은 선의가 존재하고 어떤 시간은 악의가 존재할텐데, 한 순간이라도 악의가 있다면 죄인이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죄가 있다면 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죄인이다. 죄인을 규정하는 데에 행동과 그 강도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는데 포함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지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민지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고, 민지를 둘러싼 특징들은 관련 없다. 민지가 늘 빨간 옷을 입고 통통하다고 하면, '빨간 옷을 입는' 민지, '통통한' 민지로 표현될 것이다. 민지가 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파란 옷을 입어도, 말라도 민지이다. 이 비유만큼이나 기독교에서 죄인이라는 개념과, 한 사람이 저지른 악행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다. 이제 좀 이해가 된다. 인간은 인간인 순간부터 죄인이고, 존재하기로 결정된 순간 죄를 지을 운명이 주어져있다. 이성을 가진 존재는 도덕의 의무를 가지고, 도덕의 기준은 절대적이어야한다. 에 인간이 가진 무엇도 기준점이 될 수 없다. 등대가 움직이지 않기때문에 기준이 될 수 있음과 같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고 따라야하는 의무가 있다.
@BeU-J
@BeU-J 14 күн бұрын
7. 선악과를 먹고 세상에 나오기 전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모습 인간인 동시에 죄가 없으면서도 이성이 있고 하나님을 닮았었을텐데. 그건 '이 세상'에서는 존재한 적 없는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의 세계에만 존재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세계에 존재할 인간의 인 것이다. 그렇지, 내가 알 수 없는 영혼계의 모습이겠다. 어차피 3차원에 있는 현재의 나로서는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영혼 쪽에 대해서는 더 고민할 필요 없다. 에덴동산에 대한 묘사를 생각해보면, 모든 동식물이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 그건 생명체에 구애된 한계를 벗어났다는 뜻이고, 자연계의 규칙인 자연선택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규칙이 회복된다면 이 땅의 다른 모든 규칙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땅의 규칙은 이 땅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변동할 수 있으며 유한하다. 중력이라는 물리적 규칙조차 하나님이 언제든 거둬갈 수 있는 물리적 세계의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겨우 4차원 정도의 분이 아니라 그 위 어디 아득한 세계에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8.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 우리가 3차원의 존재이기때문에 인식의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그것들을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3차원의 우리는 소설의 결말을 미리 펴 볼수 있다. 하지만 2차원 속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생을 겪어나가는 동안 그 결말을 알지 못한다. 매 순간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고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3차원의 독자(우리)가 볼 때에 주인공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만 동시에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형편없고 제멋대로인 작가라면 그 소설의 예정도, 주인공이 자유의지를 가졌는지 존재 자체도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완벽한 작가이시다. 그래서 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비유로 연결되고, 모든 복선에 의미가 있다. 완벽한 소설이자 예언이 이 세상이므로 우리는 이 안에서 생명과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소설 안에 예수님이라는 방법으로 들어오셨다. 작가가 종이 속에 들어갈 수 없듯이 하나님의 전부를 3차원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같지만 다른 존재이다. 현실에서 작가에게 소설 한 편은 보잘것 없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설로 직접 내려와 모든 걸 겪어내고 모든 걸 주실 정도로 우리를 그저 피조물로 대하지 않고 완전히 사랑하셨다. --5. 하나님 사랑의 비유 추가설명 소설이 그 소설이라는 것은 진실이지만 그 소설이 3차원에서는 가상에 불가하다는 것도 진실이다. 소설은 3차원 인간의 행동을 비유하여 감정을 이입하게 하고 감동과 교훈을 준다. 소설이 가상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며 가치 있다. 인간과 이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런 현실이라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이 고차원에서는 가상에 불가하다는 것도 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고차원의 이상을 비유하여 감정을 이입하게 하고 감동과 교훈을 준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을 충분히 느끼면서 경험과 감정으로 꽉 찬 인생을 살아야 한다. 9. 질타 말고 사랑 남을 평가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평가를 하려면 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정당한 기준이 없을 뿐더러 평가 대상의 본질을 인식할 수도 없다. ex) 사과를 인식할 때, 1. 평가대상 인식: 눈으로 보거나 만져보면서 본질을 알아봄 2. 기준: 우리가 알고 있던 다른 사과들 --> 평가: 이것이 사과구나 평가 대상의 본질: 우리의 인식은 전부 각자 단절된 세계이고, 아픔과 이해, 사랑이 없다면 아무와도 소통하고 느낄 수 없다. 이 눈 앞의 빨간 색종이마저 너와 내가 같은 방식의 빨강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데. 저 사람이 지금 나보다 편안해보인다 해도, 저 사람의 세계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당한 기준점: 유한하고 의도치 않게 변화하는 것은 기준점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무엇도 기준점이 될 수 없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아픔을 통해 저 사람의 아픔을 추측하며, 나 자신을 이해하듯이 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 스스로도 단죄하지 말아라. 모든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니 스스로에게 벌주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에게로 돌아와라. 10. 가장 중요한 개념들: 정해짐, 규칙, 사랑↔연결 이 모든 것을 지식으로 안다고 해도 인간은 육체의 한계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수 있고, 심지어 인식하더라도 다시 잊어버린다.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한 감정을 통해서만 이러한 지식을 체득하고 느낄 수 있다. 아, 그래서 인간은 아파야만 하는구나. 아프지 않다면 우리는 연결될 수 없고 하나님 또한 느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이 땅에서 나 말고 다른 인간도 한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체험은 감정을 통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개개의 우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더라도 개인적인 것일 뿐이며, 우리는 각자 인식하고 각자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통점과 사랑을 통해 타인에게 다가갔을 때, 내 깨달음과 마음이 전해지기를 그래서 그 타인도 인식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한다. 11. 각자 다르게 만나는 하나님 나라는 타인이 겪은 지식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이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고민과, 내가 하나님과 만난 기록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 다르게 하나님과 만난다. 이 땅에서의 사고회고도 고민도 개인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것도 3차원에 한정된 것이고 유한하다. 개인의 인식이 동작하는 특성대로, 이 땅에서 지적 장애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어린아이 같은 인지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시각 장애를 부여받은 사람이 햇빛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화음에서 하나님을 느낀다거나. 내 생각의 경로를 정리한 내용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면 좋겠다.
@BeU-J
@BeU-J 14 күн бұрын
12. 데카르트 철학 인간 역사상 존재한 모든 철학도 전부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서, 데카르트도 제 1명제를 통해 물리적 세계에서의 모든 인지가 거짓일 수 있음을 도출해냈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고, 내가 감각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이 이성의 힘이고, 이성이 우리를 실존시키며, 이성은 우리가 가진 것 중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힘이다. 안타까운 것은, 데카르트는 지금 이 사고를 가능하게 한 이성이 변화하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착각한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머릿속도 3차원에 머무르는것이 느껴진다. 사람의 생각도 글을 앞에서 뒤로 읽듯이, 순차적으로 밖에 이뤄지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갈 뿐이지 하나의 시간대에 여러개의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하나님과 고차원의 존재를 3차원의 방법에서 예술적으로 표현해 낸 덕분에, 3차원과 4차원의 차이, 고차원의 존재를 막연하게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기독교적 상징들과 모든 사람이 공감할수 있도록 만들어낸 사랑, 과학적 규칙을 담아낸 이야기. 정말 아름다운 예술이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가진 이성이 물리적 세계를 벗어난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이성의 단편이자 이데아의 비유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이신 것처럼, 우리가 지금 가진 이성이 이성이자 이성이 아닌 것도 가능하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동시에 동영상을 상영하듯이 할 수 있지만, 그는 3차원의 사람이기 때문에 두 자신을 동시에 집중하여 볼수는 없다. 규칙은 규칙인 동시에 한계이다. 하나님의 영역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다. 한계가 없는 하나님이 규칙이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 ------ 길어서 한번에 안 올라가 나누어 댓글씁니다!
@방그래-l8k
@방그래-l8k 17 күн бұрын
뭔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사이에서의 개념을 잘 설명해주신 듯 합니다. (너진똑님의 영상을 기독교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비독교인이 듣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왓더f-b1d
@왓더f-b1d 16 күн бұрын
4편 보고 든 생각을 저도 나눠봅니다 전쟁 게임이나 전투 게임을 할 때 경쟁하는 상대방에게 패한 뒤 전술을 흠잡으면서 '얍삽하다', '(대충 쌍욕 시전)'라고 하면 요새는 그런 걸 '극찬'이라고 부르더군요 이게 사실 예수님의 황금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의 반대인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적에게 행하라'라고 뒤집으면 말이죠. 그 말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정말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게 됩니다. 이순신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홍진호에게 삼연벙을 시전하는 임요환을 떠올려봐도 되구요. 너진똑이 4편 부록에서 부처님을 언급하면서 언급했던 많은 인문학자들의 고전 중에는 삼국지나 손자병법,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부류는 함께 언급되지 않더군요. 그러나 사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예수를 적대하는 이들에게 한 일은 그런 '전쟁에 관한 고전'에 나올 법한 일들이기도 합니다. 포전에는 약해도 백병전에는 자신 있던 일본 사무라이들이 멀리서 거리를 유지하고 포를 쏴대는 잘 훈련된 판옥선들과 또, 틈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서 여러방향으로 포를 쏴대는 '올라탈 수 없는 배'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예수와 토론을 하러 나선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느꼈을 감정이랑 비슷했을 겁니다. '저 XX 진짜 X나 얍삽하게 하네'라는 극찬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겠죠.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전술은 둘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 역지사지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를 넘어서는 포용적인 통찰을 필요로 하기도 하구요. 약해보이는 상대를 강하게 볼 수도 있어야 하고, 강해 보이는 상대를 약하게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삼국지에서 가후가 장수에게 조언해서 조조군을 상대하는 것도 비슷하구요. 장수가 가후에게 '당신이 조언한 대로 했더니 잘 되었는데 왜 그런 거요?'라고 물었더니 가후가 하는 설명엔 예수님이 비유를 설명해 줄 때와 비슷한 쾌감이 있습니다. 이마에 돌이 박힌 골리앗의 입장도 그때 당한 조조의 입장과 다르지 않겠죠. 너진똑에 의해 거짓 선지자라 지적된 성경의 부분들도 이러한 '전쟁의 율법'을 대입해보면 큰 교훈을 줍니다. 구약에는 신약에 없는 적에 대한 비정함이 그대로 있어서 개신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이 위선적 평화 뒤에 숨어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꺼려하고 안일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그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예수의 모습을 닮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교에 행한 일을 예수를 닮은 무신론자가 무신론에 대해서 할 것이고 예수를 닮은 동성애자가 동성애에 대해서 할 것이며 예수를 닮은 신천지 교인이 신천지에 대해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극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많은 기도와 지혜가 필요할 거예요.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17 күн бұрын
흑흑..ㅠㅠ 감사합니다 여기다 주절주절 일일히 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문자 전달은 한계가 있어 안타까워만 했는데 이렇게 젠틀하고 담백하게 내용을 정리 설명해주시는게 리스펙!! 다메색님의 존재가 참으로 힘이되고 든든하고 감사하게 되네요~^^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합니다!!
@consourceplum1863
@consourceplum1863 16 күн бұрын
책을 많이 읽고(반복해서 읽고), 작가의 의도나 특성까지 고려해서 보다보니 다다를 수 있는, 일종의 경지 인듯 하더라구요.
@ProducerDsm
@ProducerDsm 16 күн бұрын
"그 자신이 이야기가 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후에도... 이야기로 남아, 불멸이 되었다." 영화 빅피쉬 마지막 대사인데 등장인물의 아버지가 이야기가 되어 불멸이 되었듯이 예수님 가르침을 따르고 그것이 가풍이 되어 세대에 걸쳐서 전해지면 내 가문의 삶이 곧 천국같이 되고 대대로 계승되기에 '영생'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이해했습니다. 너진똑님의 영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다마스커스님의 영상도 잘 봤습니다.
@박승수-q8z
@박승수-q8z 16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은 불교 교리를 섞어서 해석한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해석이 맘에들어
@프로불편러-h1b
@프로불편러-h1b 16 күн бұрын
19:25 너진똑 영상 보면서 성령이라는 말이 나올줄알았는데 안나와서 뭐지? 했던것
@천사비숑
@천사비숑 17 күн бұрын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너진똑의 영상에서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다고 한 적이 있었던거 같아요
@웅먹
@웅먹 16 күн бұрын
기독교인으로서 너진똑님 영상을 보고 궁금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hoaryung
@whoaryung 15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과 다메섹님이 계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hyeryuhwa
@hyeryuhwa 9 күн бұрын
여전히 부활과 재림을 믿기는 어렵지만...! 너진똑님의 해석이 어떤부분에서 학문적 문제가 있는지는 알게되었네요. 지금은 (아마도 앞으로도😂) 성경은 종교가 아니라 철학과 학문으로서, 유학과 불교 등의 여러 선인들의 가르침의 하나로서 받아들이게 될것 같아요... 그래도 너진똑님의 해석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부술수 있었고, 다마스쿠스 님 영상덕에 성서학이라는 신학적 관점의 학문으로서의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비종교인으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관점이었네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humvee6135
@humvee6135 15 күн бұрын
역시 직접 성경을 읽어보는게 맞다! 리뷰가 이렇게 많으니 완전 럭키비키자나~!
@초코파이정-s4d
@초코파이정-s4d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 참 대단한 작업을 하신 부분은 인정 그런데 갸우뚱하게 되는게 십자가 복음이 빠져 있는 것 젤 핵심 내용이 안 보이는게 좀 위태로워 보임 너진똑 님이 말하는 사랑의 주제는 정말 기독교인들도 제대로 못 하는 부분임 그런데 그 사랑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내 의지 내 의로움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음 너진똑 님의 빛나는 모습이 진짜 하나님안에서의 빛이길 바라고 기도함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16 күн бұрын
부활을 안 믿으면 그럴 수 밖에요. 다만 예수님이 정말 너무 좋아진다면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게 구라라도 믿고 싶을 걸요.
@김근형-x6i
@김근형-x6i 16 күн бұрын
그게 3탄아닌가요
@Note-pb5zd
@Note-pb5zd 14 күн бұрын
십자가 복음이 뭔데요 ?
@EORD-1_SKETCHER
@EORD-1_SKETCHER 3 күн бұрын
​@@Note-pb5zd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의 모든죄를 대속하여 죽고, 다시 부활함으로 그 죄의 값을 다 씻었다는 걸 말하는거죠. 지금의 기독교에는 이 보다 중요한 가치가 없거든요.
@eunsuhhwang3183
@eunsuhhwang3183 10 күн бұрын
세계문학전집의 비유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일관된 메세지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저자와 시대적 특성을 고려할 때 모든 책에 동일한 방법론, 내지는 동일한 비유적 풀이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죠. 저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신천지에서 보통 사용하는 비유풀이가 이런 식이죠. 예를 들어, “밭”은 예수님의 좋은 밭 비유에서 “마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구약 어딘가에 나오는 밭은 마음이다, 라고 하는 것이 신천지식 비유풀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전혀 설득이 안 되지만, 신천지 강사의 유려한 언변과 잘 포장된 중간 과정을 거치고나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만합니다. 너진똑 님의 영상이 이단적이다라고 단정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접근적인 오류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귀염살구
@귀염살구 14 күн бұрын
모태신앙인데요 문득 드는 의문이 있는데 저는 정말 너진똑님 영상보고 물론 백프로 동의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긴 했거든요 근데 보면 양시무스님도 그러시고 다마스님도 그러시고 딱히 신선한 해석은 아니고 그냥 인자강이라서 대단하다고 하시는것 같은데 .. 근데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이면 다들 원래 알았던 내용이라는 것인데 그런 논쟁이 있었다는거를..왜 일반 신자들은 그런걸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까요..제가 배움이 부족한걸까요..? 교회에서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것들 이라서요..
@핑크-h7r
@핑크-h7r 14 күн бұрын
교회 목사도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이잖아요... 헌금이 걷히는 설교 위주로, 기복신앙 위주로 설교하시는거 아닐까요? 그리고 너진똑님께서 거의 떠먹이다 싶이 영상 만드신 것도 크다고 생각하구요
@귀염살구
@귀염살구 14 күн бұрын
@ 답변 감사합니다!
@핑크-h7r
@핑크-h7r 14 күн бұрын
@@귀염살구 그래도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쓰시고 노력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저도 겪어봤구요... 부모님 때문에 그 교회를 다니진 못했는데 제게 베풀었던 그 분들의 사랑이 아직도 선선합니다. 몇번 본 적 없는 이웃의 어린아이에게도 사랑을 느끼게 해주신 분이셨는데 다른 분들도 느끼셨을듯요ㅠㅠ근데 사람이 간사한 게 듣기 편한 말, 빌면 축복 온다 이런 말을 더 듣기 좋아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제 부모님부터 섬긴 교회가 동네에서 제일 커졌고 그래도 늦게나마 다행히 그 목사님이 계신 교회도 커지긴 했지만...ㅎ..뭐
@fsdfgdfbgdgf-sy8tq
@fsdfgdfbgdgf-sy8tq 14 күн бұрын
그런 내용들은 신학(혹은 철학)이나 기독교 역사에서 다루는 내용들이고 다루기에 너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교회 설교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해석이 (말 그대로) 성경의 일반적인 해석과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죠.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일반 성도들에게 그런 신학적 논의들은 일반적으로 관심사가 아닙니다.
@핑크-h7r
@핑크-h7r 14 күн бұрын
@@fsdfgdfbgdgf-sy8tq 솔직히... 변명으로 들리긴 합니다ㅜ
@김태훈-e7m
@김태훈-e7m 13 күн бұрын
저는 너진똑님의 영상을 보고 개인적이지만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 이라는 삼위일체에서 성자와 성령의 깊은 연관성을 느꼈습니다. 비신자란 입장에서는 늘 교회에서 예수가 성령으로 왔다하는 말이 어떤건지 몰랐습니다. 하디만 다메섹님의 성령이 말씀이라는 소리에 지금으로서 이해한거 같습니다
@namenick2469
@namenick2469 10 күн бұрын
그래서 저는 너진똑님의 '재림'은 기독교의 '성화'인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이해한 너진똑님의 재림에 대해 목사님께 설명하고 받은 답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답답함을 아주 명쾌히게 뚫어준 답변이었어요. 영상 속 말씀처럼 '성령'으로 가능한 성화말이죠. 재림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조차 모르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때에 일어나는 한 순간의 사건이 맞으며, 개인의 마음과 내면,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성화'라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너진똑님의 본질적인 메세지, 전하고 싶은 핵심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이요.
@onemore-z6x
@onemore-z6x 7 күн бұрын
700개 중에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영상 몇 개 추천해주세요.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16 күн бұрын
한 가지 우려되는 건, 예전 분신정국 때 몸에 불지른 사람들 대다수가 교회청년들이었습니다. 그 꼴을 김지하 시인이 굿판 걷어치우라 일갈했죠.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을 너무 대중적으로 알리는 건 사실 궁예 미륵 사태나 태평천국운동 시즌2 나올 거 같기도 해요. 그럴 때는 딴 거 필요없이 십계명 제2계명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함께-d6e
@함께-d6e 16 күн бұрын
일반성도가 신학배우면 교만해진다는 꼰대담임목사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보니 너진똑같은 사람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김정선-p8w
@김정선-p8w 17 күн бұрын
바울이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가 너진똑의 부활 접근의 근거가 될 수 있지 않나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그걸 부활이라고 말한 적은 없죠.
@김정선-p8w
@김정선-p8w 17 күн бұрын
@DamascusLiveTV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rira2515
@rira2515 16 күн бұрын
@@김정선-p8w바울의 삶을 살펴보면 왜 그런 고백을 하게 됐는지 이해할수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서 가장 큰 랍비였고 로마시민권을 가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자신은 죽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을 아주 가깝게 말한것이죠. 그래서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그분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육체의 부활을 소망하게 되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끊으신거죠.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분과 완전한 연합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 스스로 다짐해서 사랑을 실천해봤자 그것은 날수없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과 같이 살게 되는 삶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너진똑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은 나의 사랑을 통해서 예수가 생겨나는것이고 (그분의 행위를 따라가니 우리도 얘수이고 그분이 우리안에 부활하게ㅜ된다.) 그러나 성경애서 말하는 부활을 실체적인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분을 온전히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가 서로를 완전하게 보게 되는겁니다. 크리스천 얘수님의 좁은길을 가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예수님의 재림후에 부활하게ㅜ됩니다. 신령한 성육신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진똑에서는 이것을 서술하고있지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얘수가 부활하고 재림한다고 그 범위를 한정시키고 축소시켰어요. 이것은 극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어째서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로마의 핍박과 압제에서 전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사랑만으로 됐을까요?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안에 사시기에 그분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도 그 담대함을 얻을수 았는겁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도 있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기에 죄를 심판하실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만으로 안됩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동하여 ‘회개’해야합니다.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여정을해야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 뜻은 유대교인과 이방사람들과의 갈등을 바울이 답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입음) 이방(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 그리스도꺠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죄의 속량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입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는 죄 앞에 엎드러지지않습니다. 죄가 있어도 그분으로 의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의 변호사가 되셔서 죄에 대해 무고함을 밝혀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가야합니다. 회개하여 삶을 돌이켜야합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믿고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려야합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서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세상사람들은 그분의 다시오심을 보며 통곡하는 자가 있게되고 기뻐하는 자가 있을것입니다. 단지 내 안에 예수를 불러내어 사랑만 실천한다고 내가 예수가 되거나 하나의 좋은 가르침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나의 삶이 예수님의 희생에 감동하여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말씀을 보며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을 봐야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안에는 사랑이 없었을까요? 바벨탑에는 사랑이 없었을까요? 서로 사랑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나의 교만함을 부셔야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바로세우심을 믿고 부셔야합니다. 그분이 내안에 사시게 되면 사랑하게 됩니다. 온유하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세상에 대해 애통하고 긍휼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wheeon
@wheeon 17 күн бұрын
매번 찰떡같은 비유를 가져오는 진짜 개똑똑한 다메섹짱. 영상 보면서 궁금했던 점 적어봅니당 1. 성경들이 각기 다른 시대와 저자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불변하고 동일한 신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면, 일정 부분에서는 일관적인 기준과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렇다면 너진똑의 해석법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 시대와 저자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인가요? 2. 너진똑이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부정한다기보다 이전에 언급한 "이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의 접근을 위해 낭만적으로 단어를 재활용했다고 볼 수 없을까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단어의 본래 맥락을 무시한 것은 부활과 재림이라는 핵심교리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위험했던 것일까요? 3. 예수라는 진짜 신의 얼굴을 보기 전, 야훼가 진짜 어떤 신인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기 전인 구약의 인물들은 희미한 거울로 보둣 야훼를 다소 곡해하거나 신성의 일부분만 이해했다는 해석이 기존에도 있던 걸로 압니다(아닌가요???잘모름). 만약 그렇다면 너진똑의 거짓선지자 해석도 그리 신선한 관점은 아니지 않나요? 이미 정통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배척된 해석이 아닌가요?
@Wowie_
@Wowie_ 17 күн бұрын
민음사 세계 문학전집 좋은 비유예요. 그렇지만 언어의 용례 측면에서는 다른 책들과 교차 비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gosomikorean.
@gosomikorean. 17 күн бұрын
다마스커스님 로버트M프라이스의 예수신화론 관련 질문드려도 될까요?
@rndixisja12
@rndixisja12 6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영상 감사히 시청했습니다. 평생을 비신자로 살아왔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실존주의를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던 사람이지만 최근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스스로 인정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실례가 안된다면 질문을 남기고 싶습니다. 답변해주신다면 제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어째서 전지전능하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가였습니다.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전 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실체로 이해했고, 왜 인간을 창조해놓고 비판의 능력을 주시고는 믿지 않으면 불구덩이에 넣겠다고 하시는지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그저 소수의 편리한 통치를 위한 프로파간다로서 의심의 능력을 지우기 위함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든 생각은 천국이나 지옥이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상징의 의미라고 한다면 이는 믿음이라는 과정 자체가 주는 영적충만감의 유무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해보지 않았기에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들었습니댜. 이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 세상의 불합리함과 부조리를 한 개인으로서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 현실 자체가 지옥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믿음이라는 행위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닌 제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만약 이러한 관점으로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고 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과연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실한 믿음이 생길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신자 분들은 어떻게 신앙이 생겼고 강력한 믿음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엘리에나이
@엘리에나이 5 күн бұрын
무신론자의 관점에서는 믿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되고, 내가 모르는 세계를 이해해봐야지 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시면 좋습니다. 성경이 왜 가치를 지니느냐고 하면 3가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1. 한 나라의 건국과정 기록 2. 한 나라의 영토,국경 기록 3. 한 나라의 문화와 풍습 기록 이와 같은 사료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광개토대왕릉비가 있어요. 광개토대왕릉비가 왜 가치가 있나요? 돌덩이인데? 그 돌덩이가 가치가 있는 이유가 있잖아요. 성경이 지금까지 흥한 이유는 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고 1948년 5월 13일날 영국의 승인하에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됩니다. 저 사료들을 근거로 해서요 그리고 미국이 이스라엘 동맹국이면서, 일련의 일들을 승인하면서 최소한 성경에 기록된 고대 국가 이스라엘 기록은 팩트로 끝나는 분위기 입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의 영토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다 이렇게요. 여기까지가 무신론적 관점에서 성경이 의미가 있는 이유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여호와라는 신은 인류사에서 만들어낸 신앙 형태중 최종 발전 형태라는 게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에 가장 적합한 신. = 여호와 세계에 불교도 있구요, 이슬람교도 있고 종교는 크고 작게 있지만 최종형태가 기독교입니다. 이게 왜 그러냐면 유대인들이 미국을 건립하고 세계적인 어떠한 정치 이념을 만들때 성경을 썼거든요. 이 포인트가 중요해요. 지금이 2025년인 이유가 뭔가요? BC, AD가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이죠 가령, 전세계로 보면 신분제해서 사람 급 나누고 차별한게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근데 눈 떠보니 너도 나도 1표씩 행사한다 이러고 있잖아요? 이게 여호와라는 신 앞에서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니까 신분도 없고 너도 나도 같은 자격으로 1표야 이런 사회 발전 배경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신은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 수정됩니다. 성경 잘 찾아보시면 여호와라는 신이 할례를 주고 동물 제사 하라고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하나님 말씀이라고 실천하는 곳이 지금 어디 있어요? 어느 교회에서 동물 잡습니까? 시대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해도 알아서 은근슬쩍 삭제 해가면서 신앙 하는 거죠. 굉장히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거죠. 그래서 여호와 아브라함계 종교가 전세계를 장악을 하는거에요.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나라는 유교를 국교로 해서 공자님, 맹자님을 하나님처럼 받들고 묵상하고 사서삼경 외우고 난리를 쳤지만 업데이트를 안하고 냅두니까 산업혁명을 이념과 사상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시대를 받아드리지 못하니, 그 결과로 발전하지 못해서 열강의 식민지가 되어 버리죠. 인도 힌두교나 이런것들도 시대 발전 과정을 담아낸다고 하지만 전세계에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고 이런식으로 우뚝서게 되는거죠. 천국과 지옥 같은 교리나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거지. 본래는 그런게 없습니다. 왜냐면 아브라함계는 합리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에 따라서 오질 않을 미래보다 눈 앞에 있는 현실에 집중하고,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고 합니다. 이게 주요 사상이죠 예수님 말씀도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고 합니다. 이런것들이 욕심이 투영돼서 천국 지옥을 만들고 하나님이 징벌을 하고, 이런 식으로 변질 되는거죠. 그래서 최악의 변질은 현실을 개판으로 살아도 죽어서 천국가서 뭐가 되니 안되니 논쟁 하는겁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계 종교가 의도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처음이면 조엘 오스틴 - 긍정의 힘이런 걸로 가볍고 라이트하게 멘탈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이런 느낌으로 시작을 하세요. 회개니 어쩌니 하는 것들은 딥한 부분이고 욕심이 투영되는 부분이기에 사이비도 많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내 말을 들어야 천국 간다 이런 류들. 성경을 영적으로 읽어야 된다 이런 류들. 그런 식의 접근은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신천지나 사이비들은 성경을 영적으로 읽으면 너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14만 4천 기득권이 된다. 이런 식의 욕망이 투영된 말을 하는거고 다단계처럼 욕망과 욕심이 이끌다보니 매년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이 나오는겁니다.
@rndixisja12
@rndixisja12 5 күн бұрын
@엘리에나이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잘 설명을 해주셔서 이해했습니다. 하나 궁금증이 생긴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인 것 같습니다. 고대의 맥락에서 성경을 작성한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그 문장들을 현대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다만 어디까지 현대의 맥락에 맞게 해석이 가능한건지가 의문입니다. 어디서부터 사이비가 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가령 말씀해주신 천국과 지옥의 교리와 같은 어찌보면 기독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필수불가결하게 대중의 속성을 고려한 것들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해주신 대로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러한 맥락에서 빛을 발한다고 싱각합니다. 결국 신앙고백을 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저의 주임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위해 재림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할텐데, 다른 모든 것들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면서 수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한다는 교리는 잘 모르는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교인 중심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과학과 심리학, 뇌과학 등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추론 능력을 통해 밝혀온 사실들과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계획을 조화롭게 연결시켜서 이해하고 진실로 따르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엘리에나이
@엘리에나이 4 күн бұрын
​​​​​​​​​​@@rndixisja12​ 예수님을 이해하려면 유대교 발전 과정을 이해하여야 하는데요. 한번 들어보셨을껍니다. 바리새인이라고.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직군이 등장하기 전과 후로 유대교가 달라지고 많은 부분들이 변합니다. 유대교의 흐름을 보면 족장-> 제사장 -> 바리새인 -> 랍비 이런식으로 변하거든요. 여기서 중요한게 바리새인이라는 혁명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을 건국한 신진 사대부의 느낌? 유대교를 개혁한 직군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파. 바리새인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내건 종교 슬로건은 너무 파격적이였어요 "말씀으로 역사하는 하나님" 이게 무슨 소리냐면 바리새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하나님을 만나려면 제사장을 거치고, 성전이라는 특수한 곳에 가야 했습니다. 그게 상식이고 개념이라고 여긴거죠. 그러나 바리새인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순간순간에 하나님이 영혼으로나마 함께하고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영혼의 개념을 말씀 묵상과 접목을 시킵니다. 혁명적 사고죠. 그리고 예수님은 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중에 성령이란 말씀을 하죠. 단지 둘의 차이는 예수님은 기도와 영혼을 접목, 바리새인은 말씀 묵상과 영혼을 접목시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 10번씩 읽어라고 하지 않고, 기도 해라. 왜 기도 안하냐 하는겁니다. 마태복음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집 방구석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고, 묵상하라고 하죠. 예수님이 성전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가 이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성경 말씀을 다듬죠. 거기서 제일 큰 비중이 이웃 사랑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파격적인 해석을 하시는데 창세기에 보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본따서 사람을 지었으니, 내가 나와 마주하는 이웃에게 친절하고 사랑 베푸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는게 아니고 님이 만나는 이웃들이 곧 하나님이고, 너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근데 이렇게 계속 가르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다고 조금 타협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말이 당신은 하나님입니다라는 말이 아니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말이 되는겁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 조금의 희생을 해보는 것. 그러면서 내가 하는 행위가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 이게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런식으로 하나님의 덕으로 돌리는 행위를 하라고 하는게 예수님 가르침의 전부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예수님의 유언이죠. 이거를 예수님의 죄사함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이거는 천국과 지옥 같은 신앙 교리의 영역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 말씀을 참고하시면 거의 대부분 맞습니다. 모세의 글들을 바리새인 영향으로 개정까지 해놓은거라서요 사이비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1=2 이런 것은 어떠한 관점으로 봐도 명쾌합니다. 그러나 사이비들은 특정 관점으로 볼 것을 강조합니다. 가령 신천지라는 사이비를 예를 들면 교주에 예수님이 영으로 임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보면 늙은 할아버지 교주인데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처럼 신성하대요. 이러면 사이비에요. 관점에 따라 뜻이 변질되면요. 그러니 사이비들은 몰래 성경공부를 하면서 특정관점이 자리잡게 가스라이팅 하는거죠 그 순간 늙은 할아버지로 보면 사탄 들린거고, 영적으로 신성한 존재라고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거고 이런 식으로요
@엘리에나이
@엘리에나이 4 күн бұрын
​​@@rndixisja12뇌과학과 종교를 연결 짓는다고 하니 저의 사견을 드리자면, 종교는 뇌의 특정 영역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찬양, 모여서 군중을 이루어 무엇을 하는 행위는 뇌를 계속 활성화 시키는데 이게 죽을때 뇌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데미지를 입는데 이때, 뇌는 평소에 가장 많은 자극을 받고, 활성화를 많이한 영역을 쓰고 그때 종교인들은 매우 긍정적이고 활기찬 천사, 하나님, 천국등으로 이미지화되고 인지되어있는 뇌의 특정부분이 쓰이고 뇌는 마지막 에너지를 그것에 집중하게 되고, 종교인들은 행복하게 뇌와 함께 잠든다는 것입니다. 엔돌핀과 같은 호르몬의 도움과 더불어요.
@apo-c9d
@apo-c9d 3 күн бұрын
@@rndixisja12 안녕하세요.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추론 능력을 통해 밝혀온 사실들과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계획을 조화롭게 연결시켜서 이해하고 진실로 따르고 싶어하시면서도 어디까지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뜻하신 바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데요. 일단 매우 어렵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될까요? 26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내어 주려고 온 것이다. 24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1 옛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마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게 된다’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재판을 받게 되고, 그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가게 되고, 그를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7 또 ‘간음하지 마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라.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네가 옷을 걸고 소송을 당하면,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도 해가 비치게 하시고, 선한 사람에게도 비치게 하시며, 의로운 사람에게도 비를 내려 주시고, 불의한 사람에게도 내려 주신다.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분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활동한 한국의 개신교 목회자로,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릴 만큼 극적인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는 등 순교적 신앙을 지켰고,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이 폭도에게 피살되었음에도 가해자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아 “우리는 미워할 권리가 없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나환자(한센인)들을 돌보며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셨으나 그분의 삶은 이후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이러한 삶이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닐까 확신이 듭니다. 이웃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가장 소외받고 고통받으며 버려진 낮고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그리고 선을 악으로 갚는 이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삶을 나누는 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festival_noodle
@festival_noodle 14 күн бұрын
모세에게 누룩은 어떤 존재였기에...
@Bongguri1234
@Bongguri1234 16 күн бұрын
비기독교인 입장에서,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 이상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러한 부족한 점들로 인해 실패한 선지자들이라고 느껴지더라구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실패한 구약의 선지자들의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완하여 설파하시며, 진정한 믿음을 이루어 내신 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스물고개
@스물고개 17 күн бұрын
고린도전서 15장. 예수가 재림할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것. 내가 비로서 죽고 다시 태어날 때, 즉 내 의식(하나님, 마음)을 알아차리고 세계를 볼 때. 그 마음과 똑같은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동일한 개념 및 원리 : 일체유심조 / 양자역학 / 끌어당김의 법칙)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창조적 해석은 누구에게나 자유이지만, 최소한 바울이 그런 의미로 쓴 게 아님은 대다수 학자의 결론이고, 학문 없이 직관적으로 읽어도 그런 것 같습니다 😊
@파송송부랄탁-J76
@파송송부랄탁-J76 12 күн бұрын
너진똑의 이야기는 둘러둘러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방향으로 가기위해 종교통합을 이야기 하던데 본인부터가 다 종교에서 영감을 받고 행위가 바뀌었고 무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하는것 자체가 그리고 천주교를 옹호한다 ? 더 이상 종교에대해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기간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를 막던게 천주교다. 그리고 과학 자체가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함이고 창조론을 부정하며 성경을 부정하기 위함이다.
@박병규-c9u
@박병규-c9u 16 күн бұрын
맨스티어가 힙합계를 흔들었듯이 너진똑이라는 유튜버가 기독교 채널을 흔드는중
@24M_disney
@24M_disney 17 күн бұрын
자칭 전문가들을 압살해 버리면서,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라는 가불기까지 지닌 기독교 변증계 세체탑 다메섹... 이미 전문가가 아닌가 싶지만, 찐 전문가들을 아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ㅎ 너진똑님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기대됩니다! 언젠가 두 분이 함께 하시는 컨텐츠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7 күн бұрын
이런 그정돈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프포-p7m
@프포-p7m 14 күн бұрын
그럼 신자의 육체적 부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진 바가 없는 거죠? 부활이 육체적으로만 한정되게 되면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 건지가 첫 번째로 궁금하고 두 번째로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왜 굳이 죽고 난 다음에 천국에 가지 않고 육체적 부활이 이뤄져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3 күн бұрын
엄밀히 말하면 부활은 현생에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뤄질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후관이 죽어서 영혼의 천국행으로 많이 잘못 알려져 있지만 (잘못되었단 증거는 성경 내에 아주 많습니다), 실제로는 세계 전체의 부활로 보는게 옳습니다. 제가 들기 좋아하는 비유를 들자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차원이 확장되어 변화된 지구가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이 세계 또한 영원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고, 사람들도 부활해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는 그리스도인이 버리는 카드로 생각해도 무방한 곳이 아니라, 죽어서도 계속 살아야 할 곳으로 여기고 가꾸고 아껴야 하는 것이죠.
@프포-p7m
@프포-p7m 12 күн бұрын
@@DamascusLiveTV 답변 감사합니다! 항상 궁금했던 부분인데 어느정도 해결이 된 것 같습니다 ㅎㅎ
@Yoyo-n6k
@Yoyo-n6k 17 күн бұрын
너무너무 감사한 리뷰
@jjoongu7025
@jjoongu7025 10 күн бұрын
신학자님들마다 지적포인트는 다 다르시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팥차 끓이시는건 같네요ㅋㅋㅋㅋ
@seoldong
@seoldong 11 күн бұрын
9:04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죽을때까지부정......
@anding-og2lv
@anding-og2lv 15 күн бұрын
영상에선 너진똑님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처럼 설명하는데 너진똑님은 비기독교인 아닌가요? 그래서 부활과 재림을 믿는 다른 신학자분들이랑 성경을 읽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fsdfgdfbgdgf-sy8tq
@fsdfgdfbgdgf-sy8tq 15 күн бұрын
이단이란 말이 왜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느굼마-o2r
@느굼마-o2r 13 күн бұрын
다메섹님은 다니엘김선교사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또록또록-j5q
@또록또록-j5q 16 күн бұрын
너진똑보고 다른이야기도 들어보려 왔습니다
@pcy_0513
@pcy_0513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의 영상에는 생각해보니 성령님에 대한 설명이나 언급이 없었네요.
@나르셰_쿤트
@나르셰_쿤트 17 күн бұрын
성경 3부부록에있습니다
@Sy-xj1rx
@Sy-xj1rx 16 күн бұрын
제가 기억으로는 다른 현인이나 성인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해석이 불가능한데 예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살아있는 해석이 가능하다가 말했던 것 같아요
@saltmakers
@saltmakers 14 күн бұрын
소개 감사해요
@OI_EH_hJL
@OI_EH_hJL 17 күн бұрын
육체적 부활이 내가 살아있는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6 күн бұрын
해석과 적용은 어떻게든 할 수 있고 존중 받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다만 성경을 쓴 사람들이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니란 건 거의 확실합니다.
@user-xs2zf3fc4n
@user-xs2zf3fc4n 17 күн бұрын
"'성서에 적힌 부활= 예수가 우리 마음속에서 부활하는 거'다" 라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성서에 적힌 부활 =육체적 부활' 이 맞고 그걸 의도한거지만 그 의도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바람과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즉 그건 신의 의도가 아니다. 진짜 신의 의도는 성경에 적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양지와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한 일관되고 보편적이고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보편적인 가치가 신의 의도이다. 성경은 그런 신의 의도, 절대적 이성, 보편적 가치를 향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기록이며 역사이며 해석이다라는 주장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해석하고 기록한 것이다라는 주장 말입니다. 저는 너진똑 4부에서 하는 말이 이거인 것 같아서요. 이걸 긍정하냐 마냐는 치워두고 말이죠. 그러니까 성서학적 해석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서학적으로 해석했을 때 이게 이걸 뜻하는게 더 맞다고 하더라도 그게 하나님이 한 말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거죠. 성경에 예수가 부활했다라는 문장이 성서학적으로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를 의미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짜 신이 한 말인가. 그말을 한 주체가 신인가. 그게 신의 말씀인가는 다르다는 거죠. 성경에 '주께서 그들을 심판 하셨다'라고 적혀있다라고 해서 그렇게 해석이 되고 그게 저자의 의도라고 해서 그게 진짜 사실인가 그게 진짜 신의 의도인가는 확답할 수 없다는게 4부 영상의 요지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인트로에도 나오지만 초반부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는 것 부터 전제하고 들어가야합니다. 물론 이걸 받아들이냐 마냐는 다른 말이지만 말이죠. 저와 다른 기독교인분들의 생각이 갈리는 지점이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4부 영상에서는 "성경은 신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의 여화와는 진짜 여호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당연하게 "성경은 하나님 말씀.", "여호와는 성경에 나오는 신"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셔서 무너가 다르게 해석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적으로 영상에서 말하는 여호화가 하나님이 기덕교에서 말하는 여호화와 하나님과는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진똑 영상에서 말하는 여호화는 기독교의 신이라기 보다는 완전한 이성, 인간의 이성, 절대적 진리, 보편적 가치, 사랑이라는 기독교를 넘어선 인간 전체가 가진 무언가 공통된 추구하는 이상이라고 느껴졌거든요. 기독교인들이 위헌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성경)이 하는 말은 학문적으로도 맥락적으로도 이 말이, 이 해석이 맞는데 이 해석이 아니라고? 이거 궤변 아니야?" 그런데 이거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보편적 가치를 생각해보면 해결될 듯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건 하나님(인간 보편 가치)가 말하는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소통의 오류가 기독교 분들의 하나님, 여호화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것과 너진똑이 지칭하는 하나님, 여호와, 신의 말씀이 지칭하는 말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너진떡이 지칭하는 여호와, 하나님, 신의 말씀은 인간 보편의 진리, 인간 보편의 가치관, 이성, 인간이 당연히 추구하는 생물학적 특성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걸 받아드리냐 마냐는 떠나서요. 뭔가 기독교 유튜버분들 말이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주시지만 뭔가 내가 영상보고 해석항 거랑 다른데? 라고 느껴지는 부분이거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16 күн бұрын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사상이 아닙니다.
@djebeixke
@djebeixke 12 күн бұрын
그런식으로 따지면 성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거죠..?
@Nanana-x4n
@Nanana-x4n 4 күн бұрын
그..근데 너진똑은 '오직 예수'를 적용시켰다고 보는게 맞을 듯 해용. 모세가 반만 맞은 이유는 100% 정답인 예수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결국 그리스도인과, 예수를 따르는 자와는 괴리되지 않습니다
@gosomikorean.
@gosomikorean. 11 күн бұрын
다메섹님은 마르키온주의자에 대해 부정하시나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1 күн бұрын
전 마르키온 주의자가 아닙니다 ㅎㅎ
@Wowie_
@Wowie_ 17 күн бұрын
예레미야는 저도 좀 놀랐습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이 공통된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아는데 예레미야도 거짓 선지자인 양 너진똑님이 이야기해서 당황스러웠어요. 당대의 유일한 의인이었을 텐데.
@syun2355
@syun2355 16 күн бұрын
예레미야에 대해서는 거짓선지자라고 했다기보단, 끝까지 사랑으로 ‘다른사람’을 못 품었다는 내용 아닌가요?
@scorn8679
@scorn8679 16 күн бұрын
예레미야조차 하나님이 필요로하시는 그 한 명의 의인은 되지 못한거죠 그 분이 나같은 죄인중의 괴수 나부랭이가 정죄해도 될 분은 아니지만 예레미야가 그 의인중 한 명이였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진 않으셨겠죠 하나님앞에서의 의인은 상대적 우월이 아니죠 하나님의기준을 통과해야합니다 그 분이 그 의인이 되지 못한 이유는 그 기준을 넘어서지 못해서죠 그사실을 성경에서 알려주는거죠
@숑이-v5k
@숑이-v5k 16 күн бұрын
@@scorn8679 예레미야가 의인이 아니라는 건 너진똑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이걸 당연한 전제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사무엘이 다시 살아서 기도해도 나의 뜻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인 롯 한 사람이 소돔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듯이 예레미야 한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주님의 진노를 꺼트릴 수 없을 만큼 유다의 죄가 성하고 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격노케 한 므낫세의 죄악 이후 백성들이 끝내 회개하지 않고 악한 길로 나아갔기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한 진노를 거두지 않으신 겁니다. 손자인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성경적 표현 그대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섬겼음에도 주님은 당사자인 요시야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멸망을 보지 못하도록 데려가셨을 뿐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유다의 멸망을 끝내 이루셨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한 의인이 아니었기 때문인가요? 성경은 요시야를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고 다윗의 길을 걸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표현합니다.
@scorn8679
@scorn8679 16 күн бұрын
@@숑이-v5k 의인이 아니란 표현이 너무 경솔했네요 마음 불편 하셨을텐데 죄송합니다. 실제로 저가 유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적기도 했네요 제 경솔한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예레미야 5장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그냥 예레미야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요시아 역시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인물이었을 뿐 진리와 정의를 행하는 인물은 아니었구요 그나마도 임금중에서 가장 온전히 모세의 율법을 준행한 인물이죠 요시아는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그리고 대단히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뭔가를 한 의인 이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열왕 23장 27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옷을 찢고 통곡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이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도 있었죠 열왕기상 21장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중략)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아합 역시 의인 이었나요? 너진똑님의 영상에서 최'악' 이 어떤 것인지 아주 분명하게 나왔죠 주님은 그 최'악'을 절대 좌시하시지 않으십니다. 단 최'악' 만을 피한다면 그 분은 용서하십니다.
@scorn8679
@scorn8679 16 күн бұрын
까놓고 말해 내가 하는 모든 짓들이 누구의 아들 나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중략)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인간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이거죠 뭐 저는 이 사실에 눈 돌리지 않을 겁니다. 성경은 예전에 있던 누군가의 누군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 지금 나에 대한 나를 위한 말씀이니깐요 저가 성경에 나오는 그 모든 인물, 모든 민족, 모든 천사, 악한 영, 죄인들의 괴수 입니다. 저는 진실로 그 사실이 진실임을 믿으며 저를 구하여 그 분 앞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fsdfgdfbgdgf-sy8tq
@fsdfgdfbgdgf-sy8tq 17 күн бұрын
'그래 이거지' 하고 봤습니다.
@WcommS
@WcommS 17 күн бұрын
ㅋㅋㅋㅋㅋ예레미야는 못참지
@user-zn8sk8wu5j
@user-zn8sk8wu5j 8 күн бұрын
너진똑 나름 해석 잘함 ?!
@P플로트
@P플로트 17 күн бұрын
모세는 결국 약속의 땅을 못갔죠
@민민테무르
@민민테무르 16 күн бұрын
아가페적 사랑만 실천하면 부처도 알라도 예수라면 구원은 어떻게얻나요? 아가페적 사랑만 실천하면 구원을 얻나요?
@jieunko665
@jieunko665 16 күн бұрын
아가페적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더 문제 아닐가여???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16 күн бұрын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을지도 모르겠으나, 애초에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가페적 사랑을 무슨 수단을 써서든 실천한다면 구원받을지는 모르나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죠.
@Musso1324
@Musso1324 1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도 비판 가능 그걸 리뷰하는 채널에도 생각을 가지고 비판 가능 그걸 왜 문제라고 하는 건지 원;;; 그리고 성경이 왜 특정 개신교만 해석이 가능한 건데????
@topemk99
@topemk99 17 күн бұрын
17:20 👍
@ArtlessKwon
@ArtlessKwon 17 күн бұрын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찐엔딩 10글자 ㅋㅋ
@토도론
@토도론 17 күн бұрын
그 아저씨 영상 재밌게 잘 만듬
@jieunko665
@jieunko665 16 күн бұрын
근데 진짜...시체가 살아나면 그거 조....좀비.....
@endoless991
@endoless991 17 күн бұрын
좋은 분인 것 같지만 비유부터도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ice_ame_ricano
@ice_ame_ricano 14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보게 된 천주교인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코린토서 15장에서 바오로가 육체적 부활을 얘기한다 하셨는데,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5:42-15:44) 위 절을 보면 육체적 부활을 얘기 하는 게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들어서요.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13 күн бұрын
15장 전체를 보면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리스도 목격담 중 4절을 보면 '장사한 바 되셨다가'를 언급하고, 반복해서 죽은 자들은 잔다라고 표현할 뿐더러, 바울이 대조중인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명백히 당대 유대인들이 믿던 세상의 마지막 날 일어날 육체적 부활을 뜻합니다. 영적인 몸이란 것은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육은 육이지만 이전의 육이 아니란 의미이죠. 나타났다 사라졌다가도 하지만, 결국 도마에게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여주며 넣어보라고 말하는 바로 그 몸입니다. 바울이 '영적인'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을 유령,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되고, 21세기의 우리가 '그 신부님 참 영적인 사람이야.' 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와 동일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Revealoftwo
@Revealoftwo 15 күн бұрын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해라. 너의 몸이 율법의 몸이라면 율법대로 너의 몸이 복음의 몸이라면 복음대로 각 사람은 다 제갈길로 가고 그 안에 각자의 하나님을 보고 가는 것 지혜가 그 속에 있다면 들을 귀가 있을테고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겠다... 받은 분량은 각기 다르고 그 분량을 주인의 뜻대로 방향을 잡는이와 아닌 이가 나뉘고 말미에는 이 모든 것이 각기 하나님 섬기는 일이라 말하리라는 것이 말씀대로겠다 가나안을 토벌하지 못한 건 율법으로 칼을 들고 그 권능으로 정죄해보니 그 칼이 양날이라 가나안에 보이던 죄가 내 안에 있음을 본것. 우상을 섬기던 죄를 없이하려니 그 칼에 나도 없어져야 앞뒤가 맞던 것. 그래서 율법은 죄의 권능인 것. 죄의 삯이 사망이니 해아래 있는 모든 것이 새것이 없고 다 이슬처럼 사라져가는 것. 하여 율법엔 살아남을 자가 없다. 베던 칼이 결국 티끌찾다 내 안에 있는 들보가 마지막에 들어나버릴테니까. 선지자가 오롯이 주인의 뜻을 전하고 그 뜻과 하나였으면 그가 왜 진작 아들이지 않았을까. 주인의 뜻은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데 있었고 영생으로 가는 길엔 낮과 밤처럼 음영이 있다 좋은 마음 밭에 감추인 보화가 심겼는데 그 말도 들으려는 이가 듣는거고 믿고 쟁기질을 할지도 듣는 귀에서 난다 천국은 부활의 증거로 마음에 쓰여있다 예수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데 사흘. 첫날 유월의 사망을 대속피로 건너뛰고 둘쨋날 무교의 누룩없는 떡을 담아 주인의 온전한 뜻이 열매 맺히면 셋째날 첫 이삭이 요제로 주인에게 흔들린다 7일의 창조에는 영원함이 깃들어있고 그 마지막 안식일의 주인이 그리스도다. 영원함의 주인, 생명, 그 길, 이 진리의 중심이 그 인것. 그리고 그가 뿌린 피와 살은 그와 같이 자라나도록 뿌린 씨.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은 마음에서 자라고 이것이 심겨진 마음은 그로하여금 성령이 그리스도가 되게 한다 그래서 들림받아 말미에 하나가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게 사순으로 감춰졌던 넷째 오순의 비밀이다 다시 산 예수가 40일에 들려지고 열흘 뒤 약속된 성령이 다락방에 임하니 뿌려졌던 씨들이 발아해 진리를 깨달아버린것. 이 날의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다. 진리 안에 거한이들이 천국을 말하기 시작하니 씨가 없는 자들은 들어도 듣지를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천국은 시작부터 종결까지 '비유'로 전해졌다 듣는 귀에서 '믿음이 나면' 그 믿음있는 마음에 '성령'이 '성전'을 세운다. 거기서 진리의 말씀이 주야로 묵상되어지는 것이 '예배'이다. 스승이 필요없고 선생이 필요없다 진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길로 걸어가도록 돕는 보혜사니까. 그 잔에 기름을 담아줄 것이고 성령으로 탈 것이고 밝은 빛은 신랑에게 도달하도록 꺼지지않는다. 오라. 신랑이로다. 이것이 다섯째날의 나팔이다. 자녀들이 떠나가고 나면 밭에 두 여자 중 하나가 남는다. 삼일 반 뒤 이 환란 날에 칠일까지 충성하는 자가 여섯째 대속죄의 날에 종의 구속을 받는다. 마지막 초막절은 고센으로 피신한 남은 자들을 위하여. 그 다음이 수전, 겨울이다. 재림의 날이 겨울에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추수는 나팔 속죄 초막으로 문이 닫히고 그 뒤에 마주할 그리스도의 얼굴은 심판주이기 때문이다 포도즙틀이 밟힐것이고 그 잔에 섞인 것 없는 진노의 잔이 부어진다. 땅으로든 하늘로든 여기선 살 자가 없다. 수많은 메시지들 중에 이 말이 섞여들어가는 까닭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마지막 시기라서이다. 교회를 가고 누군가를 믿고 따르고.. 이건 초등학문이고. 회개라함은 하나님을 찾는 일이고, 성령을 구하는 일이고, 온전한 말씀 그 자체를 마음에 담아 그 마음- 그 자신이 말씀이 되는 일을 말한다. 나쁜짓 못된짓 잘못했소 안해요. 이게 아니다. 때가 너무나 가까워서 이젠 어린아이나 노인이 되지 않길 바래야 할판이다 마귀는 너무 많은 가라지를 뿌렸고 땅은 가시엉겅퀴를 내니 온전한 믿음을 기대할수있을까. 그가 다시 올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말씀이 구슬프다. 동시에 너진똑같은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마지막 흔들어 깨우는 등불같은 사람이다 이와같은 존재가 일어나길 얼마나 고대했던가. 논란이나고 압제를 받는데 그 까닭이 예수이름때문이라면 그 상급이 크다하셨다. 이 모든걸 감수하고 전하는 맥을 연 것. 단연코 훗날 수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여 해와 별처럼 빛날 사람이다. 멋진사람. 성령안에 강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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