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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은 대비전의 정치개입을 문제 삼았다.
지지고 볶고 주장하고 반박하고... 성종은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도첩제가 폐지되고 금승법이 통과되었다.
한편... 중전 한 씨가 죽자 윤 숙의는 말과 행동에 각별히 유의하며 대비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냥한 말투와 깊은 배려심까지 더하니... 성종도 그녀를 무척 좋아하였다.
그녀는 남다른 야심이 있었다.
가난한 선비집안에서 태어났어나 든든한 배경은 없었다.
19세에 후궁으로 들어왔으나 믿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
자신의 힘 만으로 이 큰 궁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함께 들어온 후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윤호의 딸로 나이 겨우 12세였으므로 경쟁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언제나 몸가짐을 철저히 하며 검소하고 예의바른 생활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니
왕실도 차차 그녀를 인정하였다.
당시 왕실의 어른으로는 세 명의 대비(大妃) 즉 정희왕후·안순왕후·소혜왕후가 있었는데,
윤씨는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런중에 덜컥 중전 한씨(한명회 딸)가 20세를 못 넘기고 죽어버렸다.
윤 숙의는 기회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더 몸가짐을 조심하여 대비전의 점수를 땄다.
그리고 일이 되려는지 입덧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들만 낳는다면 인생역전이 될 것이다.
대비전도 무척 기뻐하였다.
안그래도 마음에 들었는데 임신까지 하니 정희왕후는 윤 숙의를 불러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래... 앞으로 내명부를 맡는다면 잘 할 자신이 있느냐?"
["‘저는 본디 덕(德)이 없으며 과부(寡婦)의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사전(四殿)에서 선택하신 뜻을 저버리고 주상(主上)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累)를 끼칠까 몹시 두렵습니다."(성종실록)]
"캬~ 겸손한 것 보소~ 합격이야!"
정희왕후는 마음의 정리를 하였다. 전교를 내려 숙의 윤씨를 중전으로 정하였다.(1476년 7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거기에 더해 넉달 뒤에는 아들까지 낳았으니 그가바로 연산군이었다.
이제 그녀의 인생은 뻥 뚫린 고속도로에 람보르기니 타고 엘셀레이터만 신나게 밟으면 되었다.
그러나....
원하는것을 얻자 윤 숙의는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