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3년 한 해도 좋은 작품들 많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져왔습니다. 도대체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셨다면 끝까지 봐주세요😁
@pick_literature Жыл бұрын
다음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입니다.
@the.feast.of.insignificance Жыл бұрын
@정수 책은 읽는 시기와 그때 컨디션 경험 취향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른 듯 합니다. 저는 인생책 중에 한권이였습니다.ㅎㅎㅎ
@the.feast.of.insignificance Жыл бұрын
@정수 취향은 타고난 것이라서 정수님께서 재미없게 느껴지는게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제가 레몬맛이 맛있다고 해서 레몬맛을 추천해드릴 수 없는 것처럼요~ㅎㅎ 저는 한나가 착하고 지적인 남자와 결혼하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쇼핑중독에 걸리거나 미카엘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하는 부분이 불편하면서도 뭔가 공감이 됬습니다. 미카엘이 한나의 모든 불합리한 말과 행동을 끝없이 인내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구요
@hbk7150 Жыл бұрын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도 부탁드립니다!
@the.feast.of.insignificance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문학줍줍님😊 소개해주신 괴테 ‘파우스트’ 대단한 책입니다.!!! 직장생활 스트레스, 스마트폰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빼앗기는 요즘에 읽기에는 시대상황이 다르고 시적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진입장벽이 높긴 하지만 일단 그 벽을 넘고 나면 노벨연구소, 미국대학 위원회, 서울대가 추천한 가치가 분명한 위대한 인류문화유산입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48년의 끈기와 집념으로 써내려간 작품!!! 줍줍님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언제 읽었을까요? 2023을 불후의 명작으로 시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줍줍님 감상평1 파우스트를 무너뜨린 것(인간의 쾌락에 대한 불만족)에 대한 저의 생각 제가 아직 1부까지만 읽고 결론을 봐서 그런지 줍줍님과 해석이 다르네요. 2부까지 읽어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지???. 줍줍님께서는 파우스트의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이 그를 무너뜨렸다고 보셨고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어떤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만족을 찾고(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어떤 사람은 세상을 다 얻고도 불만족스러워합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점과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되어 좋고 파우스트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은 본인은 힘들겠지만 인류가 발전해나가는데 큰 공헌을 했으니 두 성향이 적절하게 공존하면 좋겠습니다. 2.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구원 (그레트헨의 수동적인 타락도 구원받았고 파우스트의 능동적인 타락도 구원받았다.) 네 두 주인공은 신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레트헨의 경우는 자기가 의도치 않아서 파우스트에게 속아서 타락했지만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은 분명 그레트헨이 선택한 것이고 아기를 우물에 빠뜨린 것도 상황에 떠밀려서였지만 범죄는 범죄입니다. 그러나 그레트헨이 그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는 사회적 상황이 그녀를 떠민 것이니 그녀도 분명 잘못된 사회규범의 희생양이고 그래서 신은 본성은 선한 그레트헨을 구원했고 파우스트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딛고 자신만의 쾌락에서 만족하지 않고 모두가 노력하면 잘 살수있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데에서 만족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3. 줍줍님의 감상평3(이 책의 가치) ‘파우스트’가 고대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유럽세계가 축적한 문화유산을 총 망라한다는 줍줍님의 해석 대단하십니다. 그 점도 분명 그렇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제 아무리 어리석은 일도 제 아무리 똑똑한 일도 옛 사람들이 이미 생각해보지 않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어리석어하는 현자들의 모습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어서 읽다가 웃음이 나온 부분이 많았습니다. 괴테가 유머감각이 풍부한 작가였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신의 선택을 받을 만큼 선함과 현명함을 지닌 이상적인 인물이지만 평생을 학문에 받쳤음에도 결국 인생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회의를 느끼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을유문화사 31p~33p “ 아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마저도 속속들이 공부했다. 죽을힘을 다해. 그런데도 난 여전히 가련한 바보! 이전보다 나아진 게 없어~.” 허무한 결론만 내립니다. 이런 파우스트를 두고 신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기를 합니다. 26p 주님: “그가 지금은 혼미한 가운데 나를 섬기지만 나는 머지않아 그를 청명한 곳으로 인도할 거네. 정원사는 아는 법이야 나무가 푸르러지면 장차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 것임을.” 메피스토텔레스: “내기라도 할까요? 당신이 그자를 잃을 건 뻔해요. 허락만 하신다면 그 자를 나의 길로 서서히 끌어 들이겠나이다!” 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한번 그렇게 해 보시든가.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에 방황하는 법이니까” 파우스트의 승리를 믿는 주님의 대사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에 방황하는 법이니까” 원래 불완전한 인간은 방황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러면서 성장해나간다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46p파우스트의 독백“너는 무자비하게 나를 밀쳐 버렸다. 알 길 없는 인간의 운명 속으로. 누가 나를 가르치는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저 욕구에 따라야 하는가?” 인간은 결국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헤쳐나아가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이야기합니다. 파우스트는 논리학,철학,의학,신학 등 당시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학문에 일생을 바쳤어도 깨달음(만족)을 얻지 못해 생의 의지를 잃습니다. 당시에 종교적으로 금기였던 자살을 결심하고 독약을 마시려던 순간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천사들의 합창소리에 멈춥니다. 신과 파우스트의 운명을 내기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을 받아 젊은 미남자으로 변신한 파우스트는 그와 함께 인간세상을 탐험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파우스트가 젊음과 전능함과 향락을 제공받은 대가가 있었습니다. 105p “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 대사를 말하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기기로 약속합니다. 이 말은 현재의 쾌락이나 편함에 안주하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우스트도 그 점을 잘 인지하고 104p “자네가 알랑거리며 잘도 속여 내 스스로 자신에 만족한다든지, 자네가 향락으로 내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최후의 날이네!” 이야기하는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1부까지 버티다가 뒷부분부터 읽고 말았네요. 스포주의!!! 이성에 대한 육체적 쾌락도 극복한 파우스트가(극복했다기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고 그 상태에 영원히 머물고 싶을 만큼 만족감과 가치를 못느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을 빼앗길 수 있는 금지어 “순간아 멈추어라. 그대는 너무도 아름답구나!”를 외친 순간은 728p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험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기에선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보람찬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간의 무리를 지켜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나는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그대는 너무도 아름답구나! 내가 이 지상에서 이루어 놓은 흔적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이러한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며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한 이상향을 실현한 파우스트는 자아실현을 뛰어넘어 자아초월을 경험하며 크나큰 만족감을 얻습니다. 이러한 유토피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혹과 고난이 있을것이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쾌락을 자제하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다면 우리들의 영혼은 구원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생각보다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않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고뇌와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공감되고 내 자신이 파우스트가 되어 악마의 유혹에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하는 것도 재밌습니다.(메피스토텔레스는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입니다. 외모가 출중하다면 현혹될것 같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인생의 진리가 함축된 멋진 책 ‘파우스트’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가 우리 세대에 태어났다면 더 많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줬을 텐데 아쉽지만 명작을 남겨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드려야겠네요🥲) 2023년 올 한해도 줍줍님의 좋은 작품 소개 기대되고 감사합니다. 파우스트를 시작으로 다음 주에 소개해주실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취향 저격입니다.~ㅎㅎㅎㅎ 한때 미카엘같은 지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상한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아모스 오즈는 그런 사람일까? 한나는 왜 그런 미카엘에게 자신의 결핍을 쏟아내는 걸까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는 한나와 미카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바꿨을까? 줍줍님께서는 한나와 미카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고 다음 주도 기대됩니다. 문학줍줍님께서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pick_literature Жыл бұрын
제 리뷰와 무의미의 축제님 리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어쩌면 다음 작품은 관점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ㅎㅎ
@하원-x2f Жыл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
@pick_literature Жыл бұрын
저도 감사합니다😊
@강대봉-e9d Жыл бұрын
저는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판한 작품"이란 측면도 검토할 여지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셰익스피어도 '리쳐드3세' 작품에서 '역사와 신화(전설)의 관계'를 갈파하여 "역사와 전설은 얽혀 있다"고 표현한 바 있고요, 로마 베르길리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지시를 받고 "로마가 지중해 일대를 정복한 로마판 동북공정을 정당화하고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일리아드' 내용 중에서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전쟁 막바지에 탈출하여 로마의 시조가 되었다"는 로마판 용비어천가를 '조작'해 내어 역사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거든요^^ 세종대왕도 1445년 정인지 등을 시켜 용비어천가를 짓도록(조작하도록) 지시하여 역사위조에 앞장서셨는데, 지금이야 '6룡이 날으샤'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자는 없겠지만, 정인지. 신숙주 등 조선 사대부들은 역사로 믿었거나 믿고 싶었지 않았을까요?^^ 만일 비판적 생각을 가졌다면 역모죄가 되거나 최소한 출세는 불가능했었겠지요?^^ 불교에도 이런 사례들이 많다고 불교방송 스타강사 자현스님(박사학위 6개)이 폭로?하더라고요^^ '세계의 모든 신화'란 책의 저자도 이런 유사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았었던가 보여서, 저도 급공감이 되기도 하데요^^ 저는 유튜브에서 신화를 다루는 영상들과 역사 채널에서 얻어들은 지식을 토대로 '많이' 듣다보니 '어?' 하면서 신화와 역사가 긴밀히 얽히고 섥혀 있단 느낌이 들고 또 추적해 들어가 보니까 "당대 시대상 정치공학적 설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꾸며낸 신화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이런 당대 정치공학적 의도를 도외시하고 후대에 수백년에 걸쳐 '인문학', '고전'이란 늪에 빠진 지식인들이 무분별하게 재각색하거나 재해석한 것들까지 혼재되어 도무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게 되버린 상태가 오늘날 난무하는 신화가 된 듯 싶단 생각에 이르더군요. 비슷한 예로 저자도 모르고 집필의도도 정치공학적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인현왕후전'을 기초로 수없이 재각색되어온 장희빈 드라마가 있고, 결국 그 종착역이 '조선구마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며칠전 유튜브에 올라온 불교방송에서 박사학위 6개 보유자라는 자현 스님이 강의 도중에 "억장이 무너진다~"더군요^^ 사연인즉, 우리도 학교 다닐 때 배운 "염화미소, 염화시중의 미소" 이야기가 "100%구라"라더군요^^ "부처님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보이자 오직 제자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로 기억나는데, '불립문자' 수행근거가 되었지요?^^ 자현스님은, "그거 구라입니다. 내 얘기가 아니고, 그게 구라라고 수십년전에 연구결과 밝혀졌고요, 불교백과사전에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근데 지금도 큰스님들이 법상에만 앉으면 그 염화시중 이야기를 합니다. (감정에 복 받친 듯 숨을 내쉬다가) 이런 거 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저는 오이디푸스왕 신화에서 따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석학이라 불리는 철학자, 심리학자, 작가 등 그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인, 지성인들이 마치 절대진리인양 떠들어대는 걸 보면 피가 꺼꾸로 치솟는 거 같았습니다😢 오이디푸스왕 신화는, 고대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의 실력자 페리클레스와 그의 후원을 받는 극작가 소포클레스가 '공모'하여 당대 그리스 2위 국력 도시국가인 '테베'를 무너뜨리려고 정치공학적으로 꾸며낸 전형적인 가짜뉴스 퍼트리기 전략이었을 뿐인데, 이를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홍보하기 위해 차용한 '노이즈마케팅 전략'에 20세기 대천재들?이 깜빡 속아 넘어가 이젠 (예수의 부활 마냥) 절대진리인양 부동의 위치를 점해버린 상황이지요^^ 자현스님처럼 염화미소를 구라라 실토하면, 아마 불교계에서 엄청 싫어하지 않을까요? ^^ 예수의 부활, 마리아의 처녀수태 등을 몇 억명이 넘는 범기독교 계열 신자와 성직자들은 믿을 지 모르겠지만 제정신을 가진 보통사람 현대인은 '역사적 사실'로 믿진 않을 겁니다. 마치 단군이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어머니에게 태어났다든지 주몽 등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도 없고, 이브가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으려면 뱀이 이브에게 말을 하였다는 건데 뱀이 말을 한다는 걸 믿는 자가 기독교 신자라도 있을까요? 이처럼 "성경도 신화와 역사가 잘 버무러진 대서사시 중 하나"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 종교와 역사가 화해할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십몇년전에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십계' 등 유명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아이맥스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우리 아들이 6살쯤 되었었는데 다 보고나서는 "아빠, 영화는 전부 가짜지?" 그러더군요. '십계' 영화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을 연출하는데요,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놓고서 가운데서 실을 튕기니까 물이 조금 갈라지는 걸 찍어 확대해서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으로 만들더군요^^ '킹콩' 영화의 킹콩은 킹콩 모양의 조그만 장난감을 이용해 바짝 들이대고 찍은 다음 확대시켜 영화상의 킹콩으로 둔갑시키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그 뒤로 지금도 영화는 절대 안 봅니다. 어릴 때 충격이 너무 컷나봅니다^^ 그래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믿음을 유지시키려 마녀사냥도 서슴치 않았던가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판하는 작품으로 보거든요. 괴테가 태어나기 100여년 전에 발발한 '30년 전쟁'의 폐해, 괴테가 청소년기에 겪은 '7년전쟁 (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 등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대학살을 보고 알레고리 기법을 통해 "루터야, 루터야, 이런 꼴 보려고 종교개혁 했느냐?~" 괴테가 울부짖는 모습을 파우스트 전체에 흐르고 있거든요. 이런 괴테의 피울음을 지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더군요. 파우스트가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품인데, 괴테의 이런 괴테의 심정을 이해하면 파우스트만큼 읽기 쉬운 작품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새해에도 건승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훌륭하신 리뷰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강대봉-e9d Жыл бұрын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이 인류 문학사에서 백미를 장식하는 대작임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에 비해 이 파우스트만큼 그 해석을 두고 논란이 많은 작품도 그리 많지 않는 실정이구요. 저는 어느 평론가가 "파우스트 작품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독일'을 상징한다"는 대목에서 망치로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그랬구나 !" 괴테가 활동하던 시대는, 독일이란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이고, 지금의 독일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프로이센이 부상하던 시기로, 300여개의 독립영주들이 독일지역을 독자적으로 통치하면서 통일운동이 거세게 일던 시기입니다. 또한 강력한 민족주의 국가 출현을 앙망하던 철학자 헤겔을 발탁하여 대학 교수로 키운 사람이 괴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 즉 괴테는, 당시 독일 지역의 제반 문제 이면에 '종교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간파했고, 이를 정면으로 다룰 대서사시를 써야겠다 ㅡ독일의 베르길리우스 ㅡ 는 결심을 한 듯 추정 됩니다. 괴테는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763년에 벌어진 '7년전쟁'에서 프로이센(독일의 전신)과 오스트리아가 벌인 참상을 겪은 이후 종교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나는 반 기독교인이 아니라 비기독교인"이라 선언했다고 합니다. 이 7년전쟁을 겪으면서 파우스트를 쓰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짐작됩니다. 1770년 7년전쟁이 끝난 후 자료수집을 거쳐 1774년 파우스트 작품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거든요. 대다수의 학자들은, "파우스트는 괴테 당시 유행하던 마술사 파우스트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그건 바이마르 대공국의 재상을 지낸 괴테 입장에서 왕족ㆍ귀족ㆍ성직자층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작품을 쓰기 위한 알레고리 기법이었을 뿐이라 할 것이고 신랄한 종교 비판서로 추정됩니다. 즉 저는 1, 2 차 세계대전보다 실제론 더 참혹한 세계대전급 전쟁이라는, 전 유럽국가들이 '개떼들 싸움'을 벌였던,, 당시 유럽 인구 800만명이 죽어나갔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미개한 종교전쟁이었던 '30년 전쟁(1618~1648)'을 겨냥했던 작품이 분명해 보입니다^^ 위 30년간 구교와 신교간 신구교 상호간ㅡ가톨릭ㆍ루터파ㆍ칼뱅파ㅡ 피 터지게 싸운 게 과연 하느님의 뜻이었겠는가, 실제론 전쟁터 역할을 한 독일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독일 출신의 )루터가 이 꼴 보자고 종교개혁 깃발을 들었단 말인가?~"하는 강력한 회의감이 들었을 테고, 신교든 구교든 '썪을 대로 썪은 종교 자체'를 다뤄보고 싶었지 않았을까요?^^ 파우스트 1부에선 자신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다는 그레트헨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낸 것은 단테의 신곡을 패러디한 듯 싶고요^^ 죽기 직전에 마쳤다는 2부에선 간척사업을 하는 것으로 마친 건,, 괴테가 사회주의 성향이 있었다는 평을 하기도 하지만, 당대 기존의 종교들이ㅡ신교든 구교든 종파에 상관없이 ㅡ '개인의 구원'을 빌미로 삥을 뜯고 권력자들은 그들대로 종교를 빌미로 권력을 강화하고 민초들을 착취하는 제도적 모순은 전혀 개선되지도 않았다는 시대적 모순을 갈파한 괴테는 '옳은 길로 나아가려는, 즉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당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사회적)구원'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반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비기독교인이라 선언"한 괴테지만 당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쓰다보니 '구원'이란 구태의연한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당신들이 믿는 구원은 신을 믿는 신앙이나 교회가 담보해 주는 게 아니라,, 악마(30년 전쟁, 7년전쟁 ~등등)와 계약을 맺고 온갖 못 된 짓을 했더라도 '옳은 길을 살아가려는 노력,,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노력' 속에 '구원'은 존재한다"는 비기독교인다운 법문 한 자락을 이렇게 어렵게 했던 듯 추정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세계 문학 작품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왜 어렵게 썼을 지 추론해 보았습니다. 만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쉽게 썼다면,, 당대에는 (신ㆍ구교 양쪽에서)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을 테고요 ^^. 괴테의 의도(메시지)가 쉽게 간파되어 명성도 별로 얻지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괴테는 80평생 살면서 얻은 모든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도끼로 이마까' 해도 다 까기 어렵도록 현란한 문체로 대작을 썼기에 글자 한 자 한 자 문구 하나하나가 몇 가지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기에 지금도 감히 비판하는 자가 나오지 못 하게 하는 '안전장치'를 하면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파우스트를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요컨대, 작품 파우스트를 괴테가 '반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비기독교인'을 선언하는 '독일판 홍익인간' 선언문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니체가 '위버멘쉬'로 알렉산더, 카이사르, 나폴레옹, 괴테를 예로 들었었는데 어쩜 니체는 "죽은 죽었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지만 괴테는 같은 말을 파우스트 작품으로 즉 오리무중으로 표현한 걸 존경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새해엔 구독 100만 달성을 기원합니다 👍👍👍👍👍👍👍
@물길-f6s Жыл бұрын
두 분 대단하십니다. 괴테를 모셔오고 싶네요. 대단하신 세 분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게요~~
@하원-x2f Жыл бұрын
악인들의 대한 하늘의 심판(지옥)! 성경은 사실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때 주님께 나아오시길 바랍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만드신이는 하나님이시라ㅡ히브리서 3장 4절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ㅡ히브리서 9장 27절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31 주님은 곧오십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시는 아무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