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본기에 대해서도 강의 바랍니다 구리군호는 치우시야 리는 동이 국명야 황제헌원은 제후국인 소전의 아들이라
@Yeokg4 жыл бұрын
이미 영상 올려 놓았습니다. 오제본기 참조하세요. kzbin.info/www/bejne/iaXGmXSbYs2dfrs
@노영한-l7f4 жыл бұрын
수양대군은 명함도 못 내밀 조카와의 어마어마한 정난은 명나라 영락제인 주체 이지요.
@김석봉-l4q4 жыл бұрын
답은 1로 하고 실천은 2로 합니다 이게 보통인간 입니다
@Yeokg4 жыл бұрын
ㅋㅋ 인간의 내면을 깊이 보시는군요.
@아구몬-k6z4 жыл бұрын
주공 단 명군이네요
@Yeokg4 жыл бұрын
네 신하의 표본 같습니다.
@sgkm51414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저는 입니더.
@Yeokg4 жыл бұрын
쉽지는 않은데 정답은 없는 것 같군요.
@managera80054 жыл бұрын
고경님께서는 '주공단 vs. 수양대군'을 비교하시면서 '전자는 선, 후자는 악'이라는 평가를 하셨는 데, 저는 '전자는 성인(聖人), 후자는 범인(凡人)'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자가 이상적 존재이긴 하지만, 그걸 따르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을 악으로 평가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수양대군이 모반에 성공하여 세조가 되었지만 그 때 도와준 이들이 훈구파가 되어 조선시대의 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비난한다면, 고려의 신하로 역성혁명을 일으켰던 태조 이성계와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공신들과 외척을 토사구팽한 태종 이방원부터 원죄를 물어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음모와 배신의 연속이였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평가할 때, 당시 사람의 시각과 현재 우리의 시각을 둘 다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즁텐도 지적했듯이 '중국(다른 동양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의 역사는 왕조들 간의 권력교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쟁취한 왕조는 혈통과 천명(天命)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서양은 초기에는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근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국가로 체제변혁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동양은 쌀농사, 대가족 중심 사회였지만, 서양은 상공업의 발달로 거래, 계약이란 개념이 사회 전반에 퍼졌고, 유럽대륙에 엇비슷한 나라들이 촘촘히 몰려있어 서로 쉽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자백가들 사이에서 유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통치이념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먹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봅니다. ('국부(國父)'라는 표현은 정치, 행정 시스템을 가족의 확장으로 보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경님께서 마지막에 언급하신 이상(禮樂)에 너무 집착하다 쇠락의 길을 걸은 노나라를 봐도 그렇듯이, 숭고한 이상은 하나의 가이드로 참고하는 정도에서 멈춰야지 그 선을 넘으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득보다 실이 많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로 모한다스 간디나 선불교에 매몰되어 일반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 불교계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