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 까치 나오는 만화에서도 해태가 끝판왕으로 나오던 시절 만들어주던 존재.. 마무리로 갔을 때 선동렬 끝났다~ 이런 정서도 있었으나 수퍼슬로우모션 나오고 나서 선동렬 공 보면 미친듯이 도는 거 보고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같은 구속인데 선동렬 공은 유독 회전이 많았던 기억.
괴물이었죠 당시... 초딩때 가족들이랑 국밥집 외식 가서 티비 보면서 밥먹으면서 신나있는데, 3K 연달아 뻥뻥 잡는거 보면서 당연한듯이 밥먹던 기억이...
@용트리스4 жыл бұрын
집에서 야구보다가 선동렬나오면 tv꺼버리고 야구장에서 직관하던 사람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짐싸서 집에 가곤했음
@김-l9g9r3 жыл бұрын
나중에 마무리할때고 그건
@kakapo95783 жыл бұрын
@@김-l9g9r 지금 이 화면이 마무리 할때잖아요
@user-re7lb4ps5w4 жыл бұрын
95시즌은 마무리여서 이닝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86시즌이 레전드죠..
@sjame10644 жыл бұрын
동의. 야구9단 봐도 86이 스탯 제일 좋음 그 담에 89 90 시즌 등등
@z9injungho4 жыл бұрын
컴프매 에서는 89가 능력치가 제일 좋은데 게임마다 다르군요 86이랑 91도 좋고
@user-re7lb4ps5w4 жыл бұрын
사실 게임상 스탯은 게임사 마음이라 그렇죠 ㅎㅎ 포지션 이상한 경우도 많아서.. 국내 야구 게임 중에서 완벽하게 아니 완벽에 근접하게라도 반영한 게임은 아직 없는거 같아요
@jakeroberts90s4 жыл бұрын
너무멀리갔음
@다비드-k5g4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세자릿수 탈삼진 달성했죠 조계현단장님이 딱 규정이닝 채우고 방어율1위했어요
@moon20784 жыл бұрын
이때 해태랑 붙으면 그냥 게임 잘 안봤다. OB가 뜬금 우승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전 암흑기에 해태랑 붙으면 개빡쳐서 스트레스만 쌓이고.. 그냥 홈런 장타 막 얻어맞으면서 5,6점 차로 막 깨지고 하면 아예 이해를 하겠는데....야간자율 학습 전에 앞서고 있는걸 보고 자율학습 끝나고 버스에서 라디오로 중계를 들으면서 가면 야금야금 한점씩 따라와서 결국은 한두점 역전 시키고 선동렬 나와서 그냥 게임셋... 만날 이렇게 지니 씨바 짜증나서 우동수 트리오 뜨기 전까지 받았던 스트레스 생각하면 ㅋㅋㅋ
@mongmonga4 жыл бұрын
타자들이 더 힘들 수 밖에 없었던 게 선동렬과 비슷한 선수들이 좀 있으면 적응이라도 해볼텐데 그냥 선동열 밖에 못 던지는 공임. 투수가 진화 하면 타자도 진화해서 그 공을 치기 마련이지만 선동열은 타자들에 비해 몇 단계를 이미 앞서가 버림 마치 시간여행자 같음
타자들이 힘들 수 밖에 없는게 가뜩이나 구위도 좋은 투수인데 바깥쪽 넓게 공 하나 정도를 더 스트존까지 인정해주던 시절이니 칠수가 없죠
@왕건-q7r4 жыл бұрын
송진우는 89년입단.구대성은 93년입단인데 두 선수빼고는 선동렬과 짦게는9년 길게는 십수년 차이납니다.선동렬이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 입단했거나 일본 간 이후에 입단한거라 동시대 선수들이라 보기엔 무립니다.
@David_Lim_jungeun4 жыл бұрын
이상훈 정도는 비벼볼만 하지않음~?ㅎ물론 커리어는 떨어지지만
@전인철-h3m3 жыл бұрын
@@David_Lim_jungeun 이상훈은 송진우, 구대성과 비교 가능 선동렬은 넘사벽이에요 정민태, 조계현, 김용수, 정민철, 이대진 등 최고 에이스들도 자신이 선동렬보다 위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어요 근데 LG팬인 내가 이런 말 하니까 우끼다ㅎ 원래 이상훈 편 들어 줘야 되는데,,,
@웃기는짬뽕-u7h5 ай бұрын
90년부터 야구 봤는데 선동렬만큼 믿음 주는 투수는 없더라...
@MarionBaoNghiАй бұрын
꼼프라>카 씨오엠 알고난뒤로 인생의 전후가 바뀌엇어요 … 사랑해요 꼼프라카
@ttl6579-e8k4 жыл бұрын
선동렬도 대단한데 해태수비 ㄷㄷㄷ 기아 수비보다가 욕나온다
@MTE-URGS-30004 жыл бұрын
수비 못하면 빠따 맞던 시절이라
@키다리아저씨-s2g4 жыл бұрын
야구를 살짝 뒤에서 보니 편합니다. 예전처럼 보면 암걸릴듯...
@위국훈3 жыл бұрын
타구질이 다르단다.
@프로박-y6w4 жыл бұрын
국내에서 썩기 참 아까웠던 시절...91년 한일 슈퍼게임때 일본의 대타자 오치아이 와 다이호, 등이 상대했을때 감탄했던게 생각난다..저런투수가 한국에 있다니
@robertsam8667 Жыл бұрын
내 기억으로는 91년 슈퍼게임은 송진우가 에이스였는데 왜 91슈퍼게임으로 선동열을 빠는건..좀
@pacman4735 Жыл бұрын
@@robertsam8667 91년 슈퍼게임은 선동렬이 부동의 에이스로 1차전 선발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2선발 박동희가 나온것임. 물로 송진우도 91년에 뛰어난 성적으로 대표팀에 승선했음.
@youngsa-d4z Жыл бұрын
한국에선 최고였지만..그당시 일본에선..몇명정도 선동렬급이 있었지..
@야무영웅 Жыл бұрын
오차아이한테 139km로 그때 삼진잡은건 기억나고 정규시즌때 149키로던졌다가 오치아이한테 홈런맞은건 기억안나요?
@야무영웅 Жыл бұрын
@@pacman4735 6경기인데 1~2차전 일본 올스타 3차전부터 지역연고위주에 대회주관사 주니치신문소속 선수들 얼굴마담으로 끼는거 1차전 올스타타선에 선발 요미우리 에이스 구와타. ㆍ 경기전날갑자기 선동열 미스터사탄빙의해서 갑자기 아 발목이야 갑자기 박동희로교체 얻어터짐 선동열의 1.55에이어 1.64로 방어율2위한 조규제등판 아키야마 오치아이에게 백투백쳐맞 2차전 역시올스타 선발윤학길 야쿠르트 히로사와에게 연타석얻어터지며 떡실신 3차전부터 대놓고 한판저준다면서 허접라인업 송진우선발 오차아이삼진잡으며 7회까지 무실점 첫승보이고 선동열몸품.
@이정환-x7p4 жыл бұрын
역대 투수중에 선동렬만큼 타자쪽으로 몸을 끌고나와 던진이가 없었다. 그만큼 하체와 복근의 힘이 대단했던거지... 전체적으로 온몸이 유연하기 그지 없었고.
@donkkim73 Жыл бұрын
공 끌고와서 던지니뭐니 다 지나간 이론입니다. 무슨 70년 80년대 일본이론을 아직 이야기 하나요. 미국 애들은 앞으로 끌고나오지 않아도 160 던지고 있습니다.
@이정환-x7p Жыл бұрын
@@donkkim73 시대에 따라 이론이나 표준도 달라지는 거니까요. 하지만 피칭의 기본은 달라지지 않아요. 선동열은 지금 던져도 통했을 투수라서요
@이정환-x7p Жыл бұрын
@@donkkim73 그리고 선동렬이 던지는 걸 보면 공을 끌고나와서 던지는 건 사실이고요.
@민호임-e9g Жыл бұрын
대단한 선수지요 무사만루를 삼진과 병살타로 끝내는선수지요 지금까지 그만한 선수는 찻기가 힘드지요 박철순이 갔다온 메이저리그도 초창기 갔으면 통했지요~~~
@user-mr-aing Жыл бұрын
@@민호임-e9g 팩트 : 박철순은 마이너에 있다왔지 메이저를 간 적이 없습니다. 메이저에 갔으면 박철순으로 이름이 회자되고 남았겠죠. 본인 증언보면 그때 직업야구가 생겨서 한국으로 갔고 김일권 증언은 미국에 있다 와서 특급 계약으로 한국에서 2400 받았다고 함 김광수도 마찬가지로 철순선배님이 2400 받았다고 했음. 선동열이 그 해 메이저를 갔어도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릅니다. 그가 누누히 얘기한 당시 양키스가 어떤 팀이었냐면 1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를 못간 팀이었습니다. 론 귀드리가 에이스여도 세이버하겐한테 밀려 사이영 수상을 못했고요.
@jajajamjom4 жыл бұрын
2:23 어깨에 무슨 스프링 들어가 있는 느낌@@
@하이케이4 жыл бұрын
김재현 중전안타를 맨드러 냈습니다.
@산사의봄-e3p3 жыл бұрын
ㅎㅎ 탁월하십니더~
@KimNgocNguyetАй бұрын
꼼프라~카 당신은 그저 저에게 빛.. 그자체 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잇
@andlylee1294 жыл бұрын
2:10 포수 공뿌리 것도 간지나지만 투수 제구력이 미쳤다. 포수가 원하는데 그냥 갔다 놓음
@miketrout87222 жыл бұрын
6:40초만봐도 투수제구력미친듯 캐치가 낮게낮게 제스쳐하는거보니 ㅋㅋ
@마이어암셀3 жыл бұрын
제일 가난한 해태서 선동열이 연봉1.4억 타구단 어느 선수도 그 이상을 받지 못함..선동렬이 저 금액인데 감히 더 부를수가 없음..
@희망나눔4 жыл бұрын
캬~무사1루 보내기번트에 병살을 시키는 투수
@cnp914 жыл бұрын
무등산폭격기
@QuachNganThuyАй бұрын
꼼프라까는 성수기 비수기 없어 항상 성수기임 빨리와서 놀다가 열라 핫함..
@김구찌-z7c Жыл бұрын
양준혁이 3할 7푼 칠때 건들도 못했음..전성기 살짝 지난시점
@dogtoro4 жыл бұрын
투구 폼 진짜 부드럽다...
@ThuAnSilasАй бұрын
아다르고 어다르고 꼼프8라카 같이 갓벽한곳에서 재미와 도파민 모두 챙기자구여
@해모수-y6i10 ай бұрын
지금은 선동렬처럼 잘던지면서 수비까지 잘하는 투수는 아예 없음 메저조차 찾을수 없음 9이닝동안 완투 했을때 투수앞땅볼과 투수플라이볼등 삼진을 제외해도 5~9개씩 잡아냈음 9이닝당 삼진이 8개정도는 됐으니 투수 혼자서 4.5이닝을 순삭한것 나머진 야수 도움
@이은수-r5f4 жыл бұрын
추억돋고 그때가그립고...시간이참빠르다..
@fiercehan67912 жыл бұрын
슬프죠
@holidaysummer92564 жыл бұрын
이거 말고 마무리전환하기전 마지막으로 두산인가 비추적추적오는데 날도 쌀쌀하고 혼자 서 다 때려잡던 경기있었음.. 부상당한경기 그시절 정말 잘햇음 오죽하면 내가 해태팬도 아닌데 그냥 와 와 하면서 보는것만으로도 재미있어서 넋놓고 봄..그냥 볼배합이고 구종이고 없음 직구하고 슬라이더 두개 인사이드 아님 아웃사이드 별로 생각안하고 포수싸인받고 바로 아님 고개 한번흔들고 바로..다 때려잡음 직구는 너무나 막강한데다 당시 태평양 존이라 좌우가 그냥 너무 멈..거기에 찌르니 누가 쳐..거기에 슬라이더 고속슬라이더 예술임..다들 넋놓고 삼진..진짜 쾌감장난아니었음 이런선수없음.. 메이저에 페드로같은 선수 봐야 이런느낌남
@entamin17734 жыл бұрын
OB와의 개막전이었던걸로.. OB 선발은 박철순이었구요. 그 경기 선발전원 탈삼진이던가 기록하고 부상왔던걸로 기억하네요.
@겨울비-n5j3 жыл бұрын
선동열의 야구 인생이 선발투수에서 마무리로 바뀌는 시점이었죠. 그거 이후 몇 달 쉬고 복귀해서 마무리로 좀 나오다가.. 포스트시즌엔 못 나왔음. 롯데한테 2승3패로 졌는데, 솔직히 선동열이 있었으면 해태가 1,2,3차전 다 잡고 쉽게 한국시리즈 올라 갔을 듯
@전인철-h3m3 жыл бұрын
와아 반가워요 나 그 때 잠실에서 봤었는데 잘 던진다는 느낌보다는 무섭다 난공불락 괴물투수 이런 느낌이었어요 근데 그게 마지막 선발 뜨악 다시는 볼 수 없는 선동렬의 완봉승 이래서 투수는 비 맞으면 안 돼요 혹사하면 안 돼요
@soridaizin79 Жыл бұрын
@@겨울비-n5j딱히 선동열 나왔어도 결과의 차이는 없었을 겁니다 선동열 역대 po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1992롯데전은 해태가 그렇게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92는 쉬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원래 160-170이닝 선에서 끊어줘야 할 투수가 1990-1991은 2시즌 연속 거의 200이닝 가까이 던지며 무리를 했습니다 그 덕에 1991은 우승을 했지만 후유증이 올 수 밖에 없었죠
@holidaysummer92565 ай бұрын
@@전인철-h3m아이고 이제셔야 봤네요 ㅎㅎ 그러고 건초염인가 어깨 그리고 그시절 수준이 소고기 썰어서 근육위에 올려놓고 치료하던 시절임
@특이체질-l6s4 жыл бұрын
마구마구.....ㅋㅋ
@injimy1230 Жыл бұрын
향후1세기동안 이런선수못본다~~
@제우스빡2 ай бұрын
전라도의 자랑 대한민국의 자랑❤❤❤❤❤❤❤
@다비드-k5g4 жыл бұрын
저때는 유니폼에 광고패치가 없어서 깔끔하네요
@user-uc4px3vu6z4 жыл бұрын
대신 야구라는 스포츠가 시장성이 딸려서 리그의 전체적인 질이 안좋았죠. 선수단 운영비가 적어서 연봉도 실력에 비해 잘 못챙겨줬고 팬에 대한 이벤트도 지금같지 않았으니까요.
@고스트-i8z2 ай бұрын
@@user-uc4px3vu6z 그땐 팬들이 난폭해서 선수들이 팬으로도 생각 안 했을거 같은데
술을 그렇게 먹어대니 간이 안좋아지고 거기서 생긴 염증으로 부상이 올라온거죠. 정말 술만 아니었으면 장담은 못해도 한국에선 계속 선발로 기록 쌓았을겁니다.
@charlie-hx7eg3 жыл бұрын
@@MTE-URGS-3000 어깨 건초염후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고 94년에 잠깐 선발 투수로 다시 돌아왔다가 생각보다 호성적이 나오지 않자 마무리 투수로 완전 전업하죠(지금 기준으로는 중무리지만)
@전인철-h3m3 жыл бұрын
선동렬은 항상 선발투수로 뛰길 강력히 원했지만 김응룡 감독이 억지로 마무리 투수로 바꿈 지금도 생각납니다 잠실 3연전 할 때 첫날 선동렬에 완봉패 한 후 LG 감독이 "오늘은 비록 졌지만 내일과 모래 경기는 선동렬 선수가 안 나오기 때문에 승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요걸 파악한 그 코끼리 김응룡 감독이 "음, 그럼 매일매일 선동렬이 나오면 상대팀이 공포를 느끼겠구나" 그러더니 선동렬을 아예 마무리로 전향시킴 본인 의도대로 상대팀은 선동렬이 선발투수로 나올 때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을 느낌 하지만 선동렬은 그 때도 이렇게 말했었죠 "나는 선발이 적성에 맞지만 팀이 마무리를 원하니까 그렇게 한다" 심지어 선동렬이 20대 전성기 시절, 선발투수로 활약 할 때에도 그 인간(김응룡)은 뻑하면 선동렬을 마무리로 투입함 시즌 중에도 가을 야구에서도 말이 좋아 마무리지 지금으로치면 "중간계투 플러스 마무리"로 많은 이닝을 던져야 했슴 저 영상처럼 심지어 동점일 때도 나와서 던지게 함 "선수 보호?" 그런거 없었슴 예선,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 계속 완투시키던 고교시절 그리고 대학4년까지 으휴!! 지금처럼 고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프로 왔으면 더 어마어마한 투수가 됐을 것임! 그 시대 땐 고졸 프로야구 선수가 없었슴 장종훈, 홍현우가 고졸 출신으로 매우 희귀한 케이스
당시 기억 납니다...... 본헤드 플레이라기 보다는. 비오는날 공이 미끄러운 상태에서 홈송구를 포수가 놓쳤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엘지팬들 한국시리즈 우승한거 보다 더 기뻐했어요.ㅎㅎ.
@정테디4 жыл бұрын
틀딱이가
@마테판스워스4 жыл бұрын
송구홍은 진짜 94년인가? 2년 동안 반짝하고 거짓말처럼 사라진 아까운 선수.
@겨울비-n5j3 жыл бұрын
@@마테판스워스 롯데팬들한텐 선물 같은 기억을 줬던 선수가 송구홍이었죠 ㅎ 95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LG가 역전을 해서 3점차 리드를 하고 시리즈를 유리하게 끌어가나 싶던 때.. 1사 만루에서 3루 앞 땅볼이 나오고 5 2 3 병살이 유력했는데, 홈송구가 주자 (김민재)의 헬멧을 맞추면서 굴절. 이닝 끝날 것이, 단숨에 1점차가 되고 이후 밀어내기 동점까지 감. 결국 9회말에 롯데가 끝내기 승리를 하면서 시리즈의 승기를 잡고 한국시리즈까지 갔죠. 그 송구 하나만 아니었으면.. 현재까지도 한번도 없었던 잠실 라이벌 팀들의 한국시리즈가 성사되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