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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링크 : • [Vol.17] 잔잔한 은...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오래전에 한 집사님이 신앙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내 삶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게 맞나요? 그게 맞다면, 왜 제 삶이 이렇지요?”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시 48:14, 개정)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여러분 성경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께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인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때가 있는 걸까요? 또 어느 때는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게 맞아?”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이번 시간에는 이런 궁금증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저는 종종 강의나 세미나를 하면서 이렇게 묻곤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
마치 성화의 예수님이 어린 양을 품에 안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신다고 대답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마치 예수님이 어린 양을 품고 가듯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이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게 맞아?”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방법으로도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게 정말이냐?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신 32:11-12, 개정)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십니까?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인도하듯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독수리처럼 인도하신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신다는 말일까요?
저는 오래전에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는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이렇게 키운다고 했습니다.
엄마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태어나면 먹을 것을 잡아 주고, 보호하면서 잘 키운다고 합니다. 애지중지 정성껏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엄마 독수리가 돌변하는 때가 있답니다. 그게 언제냐?
새끼에게서 빳빳한 털이 나기 시작하면 엄마 독수리가 돌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느냐?
둥우리를 다 망가뜨려 놓는다고 합니다. 그동안 안전했던 보금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맘때 쯤 엄마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잡고 높은 창공으로 오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창공에서 새끼를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새끼가 버둥거리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끼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시 받아 다시 창공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하느냐?
새끼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독수리처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끼 독수리가 어느 날 돌변한 엄마 독수리가 보면서 얼마나 당황을 했겠습니까? 자기를 창공에서 떨어뜨렸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도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때는 어린 양을 품든 우리를 인도해 가시지만, 어느 때는 우리를 독수리처럼 인도해 가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느냐?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앙이 연약할 때, 초신자 수준일 때 어린 양처럼 품으며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신자일 때 그렇게 기도 응답이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신자 때는 생각만 해도 응답이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어린 양처럼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 때 우리를 독수리처럼 인도하실 수 있느냐?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자랐을 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 날아야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독수리처럼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끼 독수리가 둥우리에만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할 수 있으며, 창공에서 떨어지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럴 때 우리가 당황스러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당혹스러울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인도하시는 거 맞아”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끼 독수리가 창공에서 떨어질 때 얼마나 황당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새끼가 이것을 통해 어떻게 됩니까? 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다른 새들은 흉내를 낼 수 없는 수직으로 낙하하며 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한 번도 참새가 수직으로 낙하하며 먹이를 잡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독수리는 이런 훈련과 연단을 통해 창공의 제왕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동일하게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렇게 독수리처럼 우리를 인도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시며, 시련과 역경의 상황을 허락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독수리 인도법”은 대부분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신뢰할 때만 사용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정말 그러냐?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이 예수님을 향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곧바로 보낸 곳이 어디입니까? 편안한 호텔입니까? 아니요. 정반대로, 최악의 환경을 가진 “광야”로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최악의 상황인 광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셨다는 것입니다(마 4:1). 결국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주릴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40년을 먹이신 분 아니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굶주릴 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침묵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이신 예수님께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도하는 것이 맞을까요? 혹시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린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엄마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창공에서 떨어뜨리듯 왜 광야에 떨어 뜰인지 아십니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예수님은 나중에 십자가의 육체를 초월하는 고통과 싸우셔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과 싸우셔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이미 이것을 위해 연단과 훈련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요. 바로 광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광야 통해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40일 동안의 굶주림을 통해, 최악의 환경에서도 육체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훈련과 연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처절한 고통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해 가신 것입니다. 창공에서 떨어뜨리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인도하시기 위해 먼저 광야로 예수님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인도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창공에서 떨어뜨린다고 생각이 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는 자”로 보시기 이런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시련과 연단을 통해 단련된다면, 하나님이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를 두 가지 방법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수준에 따라 어린 양처럼 품으며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때로는 독수리처럼 훈련과 연단의 방법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별력을 가질 때 우리는 내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